전화기 너머로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르더니 청용의 감격에 겨워 긴장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명왕님, 드디어 복귀하시려는 겁니까?”“그래, 당장 복귀하지.”말을 끝낸 엄진우는 바로 전화를 꺼버렸고 귀에 맴도는 예우림의 애타는 외침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참을 수 없었다.예우림이 그에게 사과했다는 건, 이호준과 절대 한패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오해가 풀렸다.하지만 그녀는 지금 이호준에게 더럽혀질 위기에 처해있다.왠지 모르게 엄진우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녀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반드시 구해야 한다.엄진우는 예우림의 첫 번째 남자이니까!이 순간 엄진우는 더는 별 볼 일 없는 신입사원이 아니다.그는 명왕으로서, 북강의 폭군으로서 화려하게 복귀했다.명왕참살령이 떨어지자 창해시는 충격에 휩싸였고 큰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5년 동안 명왕참살령은 단 두 번 떨어졌다.첫 번째로는 해외의 작은 나라를 멸망시킨 것.두 번째로는 백만 명의 반군을 학살한 것.이제 세 번째 참살령이다.시장 조문지는 호텔 딜리스 부근의 모든 기관에 일체 침묵을 지키도록 명령했고 갑부 소대호는 호텔 딜리스 부근의 모든 산업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철수하라고 명령했다.심지어 어떤 거물들은 아예 가족을 데리고 창해시를 탈출했다.도시 전체가 공포에 빠져버렸다.호텔 딜리스는 금지구역이 되어버렸다. 죽음의 금지구역!호텔 딜리스 내부.욕실에서 겨우 예우림을 끌어낸 이호준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미친년이, 힘도 겁나 세요. 옷 벗기는데 시간 얼마를 낭비한 거야?”예우림은 이미 옷이 갈기갈기 찢긴 채 가련하게 바닥에 쓰러져 이호준을 향해 침을 뱉었다.그 모습에 이호준은 더욱 화가 치밀어 그녀의 뺨을 때렸고, 예우림의 입가에는 피가 배어 나왔다.이호준은 그녀를 억지로 침대에 내동댕이치더니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감상하며 흉악한 표정으로 말했다.“좋아, 네가 발악하면 발악할수록 난 네가 더 갖고 싶은걸? 오늘 널 제대로 박아주지 않으면 내가 내 이름
그러자 예우림은 더욱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엄진우, 상사의 신분으로 명령한다. 나 상관하지 말고 당장 저 사람들 뚫고 도망쳐. 그렇다면 목숨은 건질 수도 있어.”엄진우는 두말없이 한 손으로 예우림의 날씬한 허리를 잡고 어깨에 둘러메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아니요. 그럴 수 없어요.”엄진우는 커다란 두 손으로 그녀의 섹시한 허벅지를 꽉 눌렀다.거친 손은 그녀의 매끈한 피부를 쓰다듬더니 엉덩이를 살짝 꼬집었다.예우림은 순간 온몸에 전기가 붙은 듯이 짜릿함을 느끼더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발버둥 쳤지만 이내 포기하고 앙탈을 부렸다.“너 진짜, 헛소리하지 말고 내 말 좀 들어. 안 가면 해고야!”“해고당하더라도 부대표님 여기서 안전하게 데리고 나갈 거예요.”엄진우의 확고한 말에 예우림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시울을 붉혔다.“고마워. 정말 고마워......”엄진우는 깜짝 놀랐다.차갑기만 한 얼음공주가 울었어?내가 알던 뼛속까지 한기를 풍기는 그 부대표 맞아?”이호준은 그 모습에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예우림! 저 새끼는 만져도 되고, 난 안 돼? 얘들아, 저 새끼부터 죽이고 저 여자 마음껏 데리고 놀아!”“네!”그 말을 듣자마자 이호준의 경호원들은 두 눈에 빛이 차올라 탐욕스러운 눈길로 예우림을 노려보며 사납게 달려들었다.하지만 그들이 겨우 한 발짝 다가섰을 때, 갑자기 머리가 터지더니 피가 콸콸 흘러나왔다.엄진우는 고개를 쳐들고 싸늘하게 말했다.“너희들 너무 시끄러운 거 알아?”퍽퍽퍽!줄줄이 달려들던 이호준의 부하들은 하나같이 머리가 터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예우림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빠를 수 있지? 도저히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순간 모두 놀라 뒷걸음질 치며 다급히 말했다.“이 자식 사람이야 귀신이야?”이호준은 이마에 핏대가 섰다.“모자란 것들! 벌레보다 못한 자식 하나 처리하지 못해? 야, 식칼, 네가 처리해.”삽시간에 족히 2미터나 되는 얼굴에 섬뜩한 흉터
“도도하던 네 부대표가 침대에서 개처럼 꼬리를 살랑이는 모습이 궁금하지 않아? 옷 벗으라면 벗고 박고 싶으면 박고, 너무 황홀하지?”이호준이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네가 늘 꿈꿔왔던 일 아니야?”그 말에 예우림은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와 얼굴이 창백해져 다급히 풀어진 셔츠를 여미고 가슴을 가렸다.어떤 남자라도 이런 요구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만약 엄진우가 이호준의 편에 선다면 그녀를 마음껏 모욕해도 된다.그녀는 엄진우의 긴장된 호흡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망했다.이 남자, 지금 흔들리고 있어.예우림이 또다시 절망에 빠지려는 그때, 엄진우의 시큰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부대표님?”예우림은 겁에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응?”“아파요.”엄진우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그제야 예우림은 자기가 엄진우의 배를 꽉 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게다가 그 위치가 너무 낮아 굉장히 애매했다.그녀는 너무 긴장한 탓에 자기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도 깨닫지 못했다.예우림은 순간 얼굴이 붉어지더니 손을 내리며 말했다.“미안,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괜찮아요.”엄진우는 순간 움직이더니 발로 이호준을 걷어찼고, 이호준은 저만치 날아가 피를 토했다.“이거 완전 또라이네? 내가 우리 부대표님한테 어떤 마음이든, 네가 뭔 상관이야? 내가 여자를 공유할 사람으로 보여?”엄진우는 이호준에게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왠지 이상하게 들리는데? 엄진우 정말 이상한 생각하고 있는 건가?“으아아악! 죽여버릴 거야! 당장 죽여버릴 거야!”이호준은 완전히 격노하여 경기를 일으켰다.“애들 불러! 호텔 아래서 대기하는 애들 다 불러 모아. 모두 2천여 명인데 다 올라와서 이 자식 조져버려!”이호준은 이 나이 먹도록 처음 이런 비참한 상황을 맞이했다. 게다가 별 볼 일 없는 자식한테.그는 호문소주이자 창해시의 하늘이다. 그런데 이런 애송이한테 개처럼 맞았다니.지금 엄진우를 혼내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창해시에서 머리를 쳐들고 다닌단 말인가?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창가로 가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시끄러우니까 다들 입 다물고 잠자코 있어!”아래 수만 명의 사람들은 즉시 입을 다물었고 순간 세상이 조용해졌다.이호준은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하마터면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장강수가 정말 엄진우 때문에 왔다니!창해시 삼대 거물인 지하 황제 장강수가 이 자식 앞에서 고분고분하다니!예우림도 경악했다.“너 장강수를 불렀다고?”“빨리!”이호준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당장 우리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상황 설명하고 호문 사람들을 보내라고 해!”“신호가 잡히지 않습니다.”“시청 놈들은? 이렇게 시끄러운데 왜 움직이지 않는 거지?”이호준은 미칠 것 같았다.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설마 이 모든 것이 엄진우 때문인가?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지역 신호를 차단하고 시청까지 통제할 수 없어!하지만 엄진우는 차가운 얼굴로 이호준을 향해 다가갔다.그러자 뒤에 있던 경호원들은 놀라서 그대로 뒤로 물러섰고 이호준은 겁에 질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누가 없어? 내가 10억 줄 테니까, 아니 100억, 1000억도 호문의 절반이라도 줄 테니까 나 좀 도와줘!”하지만 아무도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돈도 중요하지만 목숨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누가 감히 이호준을 위해 눈앞의 이 대단한 인물을 건드리겠는가?바로 이때, 그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호준 도련님, 어찌 이리도 당황하셨단 말입니까?”가벼운 한마디가 일파만파로 퍼졌다.모두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 이 사람은 바로 무도종사다.이 세상의 진정한 지배자, 무도! 그리고 무도종사는 인간 위의 인간이자 모두가 우러러보는 존재이다.도포를 입은 노인이 침착하고 여유롭게 걸어 나왔다.“행관 스님이 어떻게 여기까지?”이호준은 이내 희망을 찾은 듯 활짝 웃어보였다.상대는 바로 호문에서 모시는 스님 중 일원인 염행관 스님이다.창해시에서 무도종사는 아주 귀한 신분이다. 장문수가 무도에 입문하자마자 지하 황제라는 칭호를 얻었다.
“동작 그만!”순간 엄진우는 예우림의 하얀 손목을 움켜쥐더니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이 세상에서 부대표님 몸을 볼 수 있는 건 오직 한 사람, 바로 접니다. 무도종사면 어때서요? 전 무도종사를 수도 없이 죽였어요.”엄진우의 싸늘한 눈빛에 예우림은 그대로 얼어붙었다.이호준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행관 스님, 저 자식이 스님을 얕잡아보는 것 같아요.”염행관도 큰 소리로 웃었다.“아주 맹랑하네요. 수도 없이 죽였다니, 이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은 지도 꽤 됐으니 오늘 당신의 목을 따서 몸 좀 풀어볼까 합니다.”염행관이 번개처럼 빠르게 뛰어오르자 이호준의 눈빛에는 동경과 광기로 가득 찼다.“이게 바로 무도종사지! 좋아요! 저 자식 죽여버리세요. 예우림은 반드시 내 노리개가 되어야 합니다.”염행관은 바람처럼 날아와 엄진우의 머리에 손바닥을 날리려고 했다.하지만 이때, 엄진우의 눈동자에서 무궁무진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 살기는 마치 원혼처럼 울부짖었다.염행관은 깜짝 놀라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이 순간 염행관은 마치 피바다에 널브러진 시체와도 같았고 엄진우는 그런 자기를 상공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엄진우의 눈에 염행관은 마치 미천한 개미처럼 비쳤다.“저분은...... 저분은......”염행관은 저도 몰래 몸을 벌벌 떨더니 한 공포의 인물을 떠올렸다.“명......”쿵!염행관의 주먹은 엄진우 바로 눈앞에서 멈췄다.이호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행관 스님, 왜 그러세요? 치세요. 스님의 주먹 한 대면 저 자식 바로 죽을 겁니다.”염행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엄진우를 찬찬히 살피더니 순간 혼비백산하며 피를 토했다.염행관은 순간 심장마비로 숨을 멈췄다.“쯧쯧, 무도종사가 대단해?”엄진우는 경멸의 미소를 지으며 이호준을 노려보았다.이호준은 더는 체면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일단 목숨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이때 헬기 한 대가 30층 지붕을 뚫고 들어와 서더니 그 안
이호준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감히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아무 말도 못 하는 거 보니 열 손가락 다 다쳤다는 소리네?”말을 끝내자마자 엄진우는 순식간에 이호준의 열 손가락을 전부 부러뜨렸다.이호준은 두 손이 피범벅이 된 채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엄진우는 이호준의 머리를 발로 밟았는데 상대가 아무리 발버둥 치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걱정 마, 너무 쉽게 죽이지는 않을 거야. 시시하잖아.”엄진우는 또박또박 말했다.“죽지도, 그렇다고 살지도 못하게 해줄게.”말을 끝낸 엄진우는 고개를 들어 싸늘하게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호준의 경호원들에게 명령했다.“이 자식 밟아. 그렇다면 너희들 목숨은 살려두지.”뚜벅뚜벅!순식간에 이호준의 경호원들은 주인이었던 이호준에게 달려들어 발길질했다.“짐승보다 못한 것들! 감히 나한테 손을 대? 개가 감히 주인을 물어? 으아악,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만해! 나 아파!”이호준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그만하라고! 야, 씨. 제발 그만해. 나 아파서 죽을 것 같단 말이야! 그만해!”이호준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오만방자하더니 금세 기세가 죽어 슬슬 기며 애원하기 시작했다.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심지어 창자가 바닥에 흘러나왔다.“그만해.”엄진우는 앞으로 걸어가 반쯤 죽어가는 이호준을 바라봤다.그제야 이호준의 경호원들은 행동을 멈추고 표정을 바꾸더니 엄진우에게 꼬리를 흔들어댔다.“아까는 우리가 보는 눈이 없어서, 아무튼 실례가 많았습니다. 저희를 동생으로 받아주십시오.”엄진우는 그들을 힐끗 보며 말했다.“고작 너 같은 놈들을? 청용아, 이것들 전부 싹 갈아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려”이호준의 경호원들은 아연실색하며 말했다.“네? 분명 살려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약속 안 지키십니까?”“하하, 명왕에게 이치를 따지려고? 이 분은 수십만 명의 항병을 학살한 북강의 폭군이시다.”청용 등이 몰려와 순식간에 한 무리를 죽였다.이 사람들은 평소에 이호준을 따라다니며 온갖 악행을 다 저질
“엄진우 씨? 엄진우 씨가 왜 여기에?”소지안은 깜짝 놀랐지만 궁금증을 해소하기도 전에 엄진우는 바람처럼 사라졌다.“뜬금없네?”소지안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다급히 예우림이 있는 방으로 쳐들어갔다.문을 여는 순간, 소지안은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이호준은 손가락이 부러진 채 사지가 묶여 바닥에 드러누웠고, 백 명도 넘는 시체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대체 누가 한 짓이지?소지안은 문뜩 아까 로비에서 마주쳤던 엄진우가 떠올랐다.설마 그가 한 짓일까?“콜록콜록!” 이때 예우림이 정신을 차리고 서서히 눈을 떴다.“우림아!”소지안은 다급히 예우림을 안고 펑펑 눈물을 흘렸다.“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지안아, 네가 어떻게 여길?”눈을 떠보니 몸은 이미 회복되었다. 하지만 정신을 잃기 전의 기억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그녀의 마지막 기억은 욕실에 들어와 소지안에게 연락했지만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았던 기억뿐이었다.예우림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방안 가득한 시체에 경악했다.“지안아, 이거 다 네가 한 짓이야?”“나 아니야. 내가 왔을 때 이미 이렇게 돼 있던데?”소지안은 사실대로 말했다.예우림은 미간을 찌푸리고 곰곰이 기억을 떠올렸다.문뜩 소지안 이외에 또 두 사람에게 전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하나는 박도명, 또 하나는 엄진우.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도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예우림은 무심코 물었다.“너 혹시 엄진우 봤었어?”소지안이 대답하려는 순간, 갑자기 흰 셔츠를 입은 남자가 수십 명의 무장 부대를 거느리고 들어왔다.“자, 지금부터 전장을 처리한다. 시체들 빨리 옮기도록!”바로 집행청 부청장 박도명이다.예우림이 전화했을 때, 박도명은 분명 거절했다.비록 예우림을 탐냈지만 굳이 여자 때문에 호문에게 찍히기도 싫었고 그만한 담력도 없었다.그러다 문뜩 조문지의 전장을 처리하라는 통지를 받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부청장님?”예우림은 멈칫하더니 감격에 겨워 말했다.“부청장님이 저 구해주신 거
상대는 바로 최란화의 남동생인 최자호, 몇 년 전 실수로 사람을 죽여 옥살이를 하다가 2년 전에 만기 출소했다.역시 사람 본성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엄마.”엄진우는 살기가 폭발했다.“우리 엄마 당장 놔줘. 아니면 당신 내 손에 죽을 수도 있어!”말을 끝낸 엄진우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진우야, 그러지 마!”하수희가 핏기 없는 얼굴로 소리쳤다.“이건 우리끼리의 일이니 내 아들과는 상관없는 일이야. 그러니 우리 아들 힘들게 하지 마.”최자호는 담배를 꼬나물고 하수희를 놓아주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누님, 나도 체면이 있는 사람인데 설마 아무 이유 없이 여길 왔겠어요? 여기 차용증 있잖아요. 누님 남편이 15년 전에 나한테서 빌린 20만 원, 요즘 물가가 이렇게 올라갔는데 이자라도 많이 받아야죠. 그러니까 1억 정도야 괜찮죠?”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엄마, 이게 무슨 말이야?”“네 아빠가 아프신데 집에 돈이 없어서 자호한테서 20만 원을 급하게 빌린 적이 있어.”하수희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진미령은 다리를 꼬고 앉아 말했다.“야, 거지. 들었어? 네 엄마가 우리 외삼촌한테서 빌린 돈이라고! 그날 너의 무례했던 행동은 잊어줄 테니 당장 돈 갚아. 돈 갚으면 우리 두 집안 관계는 깔끔하게 끝나는 거야.”엄진우는 쌀쌀하게 받아쳤다.“15년 전에 빌린 20만 원이 1억이 됐다고? 당신들 양아치야?”최자호는 두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이 어린놈의 자식이 뭐라고 그랬어? 내가 길거리를 씹어먹고 다닐 때 넌 진흙이나 놀고 있었던 거 알아?”최란화는 배를 끌어안고 웃으며 사태를 수습했다.“자호야,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아무리 그래도 한때는 이웃이었으니 이들 사정도 좀 봐주자고. 엄진우, 보아하니 돈은 없을 테고 차라리 땅하고 집 우리한테 넘겨! 그렇다면 이 1억은 없던 거로 해줄게. 어때? 너무 좋지?”남매의 맞장구에서 엄진우는 알 수 있었다.애초부터 그들의 목적은 바로 땅과 집이었다.생각해 보니 전에 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