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날이 어슴푸레 밝아오자 윤서린은 눈을 뜨고 일어나 씻으려 했다.“서린아, 벌써 깼어?”윤서린의 일어나는 기척을 느낀 임유환도 눈을 떴다.“네.”윤서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밤새 뒤척이던 그녀는 걱정이 많아 보였다.“아직도 어제 일 생각 하는 거야?”임유환은 그녀의 모습에 조용히 물었다.윤서린은 눈빛을 피하더니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네.”임유환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녀를 보며 말했다.“인아 일 때문에?”“그것도 있고.”“미안해.”임유환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죄책감이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쳤다.그가 서인아 일로 괴로워할 때, 윤서린이 그 모습에 얼마나 슬플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그는 어젯밤에 일어난 일이 분명 윤서린에게 큰 상처를 줬을 것으로 생각했다.세상에 어떤 여자도 자기 남자친구 마음속에 다른 여자가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다 나 때문이야. 어제 인아랑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어.’“바보.”죄책감에 시달리는 임유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윤서린은 갑자기 그가 귀여워 보여 어젯밤의 우울한 감정이 사라졌다.“나 왜 졸지에 바보가 된 거야?”“난 그 일 때문에 슬픈 게 아니라고요.”윤서린이 나지막이 말했다.그녀는 임유환과 서인아의 특별한 관계를 알고 있었다.임유환이 서인아를 완전히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임유환이 정말 그렇게 정 없는 사람이라면 윤서린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임유환이 한순간에 서인아, 그리고 두 사람의 과거를 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윤서린은 비록 가끔 질투가 나긴 하지만 이 일로 임유환을 탓한 적은 없었다.그녀가 정말 괴로운 것은 자신과 서인아의 차이였다.매번 임유환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그녀는 옆에서 걱정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도울 수 없었다. 하지만 서인아는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다.그런 윤서린의 생각을 모르는 임유환은 우울함에 빠진 그녀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그
“넌 그냥 너 자체로 완벽한 사람이야. 나한텐 네가 가장 소중해.”애정 어린 임유환의 말에 윤서린도 그 달달함에 녹아내릴 듯 심장이 간질간질해졌지만 일부러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거짓말하면 바늘 백 개 삼키는 거예요.”“백 개 가지고 되겠어? 천 개로 하자.”“바보.”임유환의 말에 윤서린은 칭얼대며 눈가에 맺혔던 눈물을 닦아냈다.“아직도 기분 별로야?”“아니요. 이제 괜찮아졌어요.”저를 보며 미소짓는 임유환을 향해 윤서린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세수하러 갈까? 좀 있다 약 발라줄게.”“네.”임유환은 다정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윤서린을 바라보았다.어젯밤에 치료한 덕분에 팔에 잡혔던 멍울들은 이미 거의 사라진 상태였고 등에만 상처가 조금 남아있었다.이 정도는 하루만 더 지나면 다 나을 것 같았다.“서린아, 몸은 아직 아파?”“안 아파요.”“그럼 됐어.”걱정스럽게 건넨 질문에 부정의 대답이 들려오자 임유환은 그제야 안심하며 말했다.“딸, 일어났어?”그때 주방에서 나오던 김선이 방에서 나는 인기척에 말을 걸었다.“네, 일어났어요 엄마.”“그럼 얼른 유환 씨랑 준비하고 나와서 밥 먹어. 죽 끓여놨어.”“네.”식탁에 앉은 둘은 전혀 상반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임유환은 오랫동안 수련을 해와서 그런지 밤을 새우고도 별로 피곤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지만 윤서린은 그에 반해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와 있어 한눈에 봐도 힘들어 보였다.그에 혹시 어젯밤에 말하기는 좀 부끄러운 일을 했나 지레짐작한 김선은 그 둘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엄마, 왜 웃어요?”그리고 그 웃음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린 윤서린이 얼굴을 붉혔다.김선은 딸이 부끄러워하는 걸 알고 윤서린을 주방으로 데려가 낮게 물었다.“너 솔직하게 말해. 어젯밤 유환 씨랑 뭐 했지?”“엄마는 무슨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유환 씨랑 뭘...”너무 부끄러웠던 윤서린은 차마 그 단어를 입 밖에 내지 못했다.“서린아, 이런 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야. 엄마도
임유환은 일부러 못 들은 척하며 죽을 마시며 화제를 찾고 있었다.“서린아, 아주머니가 하신 죽 엄청 맛있어.”“그래요? 나도 먹어볼게요...”윤서린은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임유환에 깜짝 놀랐지만 임유환이 괜히 의심하지 않게 얼른 수저를 들며 고개를 숙여 죽을 먹는 척을 했다.순식간에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윤동호가 걸어 나왔다.그는 임유환을 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유환 씨, 좋은 아침이에요!”“아저씨, 안녕히 주무셨어요?”임유환도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아빠, 엄마가 죽 끓였어요. 뜨거울 때 아빠도 좀 드세요.”어색한 분위기를 깨줄 구세주가 등장하자 윤서린은 그제야 안도하며 말했다.“그래.”윤동호가 웃으며 자리에 앉자 마침내 한 가족이 다 모여앉게 되었다.그때 갑자기 전에 했던 약속이 떠오른 윤동호가 김선을 보며 말했다.“여보, 오늘 저녁에 식사 자리 있는 거 안 잊었지? 어제 직접 문자까지 보냈어. 오늘 우리 꼭 나오라고.”“유환 씨도 같이 가요.”“거길 왜 가!”김선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조덕화 일가가 무슨 생각으로 우릴 초대하는지 정말 몰라서 그래?”“알지, 그런데 내 동창이기도 하고 지금은 세무부 부장이잖아. 그 안사람은 중학교 교장이고. 직접 초대까지 했는데 안 나가는 건 대놓고 무시하는 거지.”“우리 회사 세무 관련해서 부탁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그 집을 믿어?”“정치하는 인간들이 언제 우리 같은 사업하는 사람들 좋게 보는 거 봤어?”“그때도 그래, 그 집 아들이 우리 서린이 좋다고 따라다녔는데 우리 서린이가 목매는 것처럼 말하고.”“제 아들 생긴 거나 좀 보고 말하지! 어디 시골에서 굴러다니는 감자 같이 생겼던데!”“이번에 밥 먹자고 하는 것도 그 집 아들이 유학 가서 사귄 여자친구 자랑하려고 그런 거야. 안 봐도 뻔해!”“그게 아니면 그 구두쇠인 집안에서 돈이 나올 리가 없지.”“여보, 그만해. 유환 씨도 있는데...”“뭘 그만해! 유환 씨가 당신보다 더 사
윤동호는 몸을 움츠리며 괜히 김선의 심기만 건드릴까 봐 더 말하지 않았다.그렇게 저녁때가 되었고 그들은 7성급 호텔인 S 호텔에 도착했다.호텔 사장이었던 임유환은 누구보다 익숙하게 호텔 안으로 걸어들어왔다.김선은 사장이 제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호텔을 둘러보며 감탄을 하기 시작했다.“여보, 조덕화 씨가 언제부터 이렇게 통이 컸어? S 호텔에서 저녁을 산다고?”김선은 식사 한번 하는데 적어도 2천만 원은 드는 S 호텔에서 조덕화가 밥을 산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글쎄,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는데...”윤동호도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채로 직원의 안내를 받아 3002호로 오게 되었다.룸으로 들어가자 조덕화 일가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조덕화는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머리는 한 오리도 빗나가지 않게 깔끔하게 빗어 올려 정치인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그의 아내 소민지는 검은색 치마를 입고 팔에는 값이 꽤 나가 보이는 옥 팔찌를 하고 있어 한층 더 기품있어 보였다.“형님, 형수님, 오래 기다리셨죠?”“왔어? 얼른 앉아.”조덕화는 겉으로는 반기는 듯 보였지만 들어서서부터 인사하는 윤동호에 비해보며 진심이 아닌 게 확 드러났다.게다가 소민지는 말 한마디 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고고한 척을 해댔다.윤동호 일가가 자리에 앉자 처음 보는 얼굴에 조덕화가 임유환을 눈짓하며 물었다.“동호야, 저 사람이 네가 말한 예비 사위야?”“하하, 네.”윤동호는 신이 나서 임유환을 조덕화에게 소개했다.“우리 딸 남자친구예요. 임유환이라고 해요.”“처음 뵙겠습니다, 임유환입니다.”“그래.”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임유환에 조덕화는 담담히 고개만 끄덕이고는 임유환을 향해 물었다.“자네는 무슨 일을 하나?”“그냥 작은 사업 하나 하고 있습니다.”“동호네 집안처럼 사업하는 사람이었네.”조덕화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그 눈빛에는 한 점의 조롱이 어려있었다.조덕화는 사업하는 사람들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돈만 있고 권력은 없는 것들이라고.해결할
윤동호는 속으로 쓴웃음을 삼키며 아내의 화도 삭이고 임유환도 난처해지지 않게 말을 돌렸다.“근데 형님, 명훈이는 왜 안 보여요? 명훈이랑 만난다는 아가씨는 안 왔어요?”“우리 아들?”또 자랑거리가 생각났다는 듯 조덕화는 싱글벙글해서 입을 열었다.“우리 아들은 신비랑 둘이 화장실 갔어. 지금이 제일 좋을 때잖아. 한시도 떨어지기 싫어하더라고.”“우리 아들 여자친구가 올해 로스쿨 석사학위를 땄거든. 생긴 것도 참해서 맘에 들었는데 법까지 배우니까 나랑 우리 집사람 다 너무 맘에 들어.”“그래요? 잘됐네요!”“응.”윤동호가 웃으며 한마디 하자 조덕화도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제 자랑을 이어나갔다.“우리 신비가 워낙 재능이 뛰어나서 말이야. 애들 결혼하면 인맥 좀 동원해서 법원에 들여보내려고.”“기율 검사팀 팀장 정도는 뭐 어려운 거 아니니까.”권력이 가진 힘으로 하는 이런 일들은 사업하는 사람들은 평생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조덕화는 또 으스대기 시작했다.“그럼 미리 축하드려요!”윤동호는 장단을 맞춰주는 척만 하고 있었지만 조덕화는 아마 지금쯤 윤동훈이 그때 윤서린과 제 아들을 결혼시키지 않은 걸 후회할 거라고 혼자 넘겨짚고 있었다.조덕화는 한숨을 쉬며 또 입을 열었다.“아이고, 지금 생각하니까 또 아쉽네. 우리가 사돈이 됐으면 동창이기도 하니까 내가 많이 도와줬을 텐데.”“여보, 이제 와서 그런 얘기 해서 뭐해요. 후회에는 약도 없다잖아요.”그때 소민지도 나서서 조덕화의 팔짱을 끼며 저들의 우월함을 더욱더 뽐내고 있었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윤동훈이 제 딸을 조덕화 아들에게 시집보내지 못해 안달 난 줄로 착각할 정도였다.“하하...”윤동훈은 멋쩍게 웃어 보였지만 김선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누가 결혼시키고 싶댔나!참다못한 김선이 말을 하려고 할 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면서 커플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는데 조명훈과 그의 여자친구였다.조명훈은 165㎝도 안되는 키에 100킬로가 넘는 체구를 가졌지만 꾸역꾸역 정장을
조명훈은 이렇게 말하면 임유환이 분명 자존심 상해할 거라고 생각하며 내심 기뻐했다. 하지만 임유환은 그의 예상과는 달리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그쪽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어 보이는데요?”“내가 왜 자격이 없어요?”모두가 제 발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조명훈은 여전히 우쭐대며 물었다.“그럼 말해봐요. 잘난 게 뭐가 있는지.”웃으며 도발하는 임유환에 마침 제 자랑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던 조명훈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나 예령대 금융학 석사예요. 앞으로 아버지 뒤를 이어서 세무부 부장이 될 거라고요.”“그러니까 부모님 빼면 잘난 게 없네요.”“당신!”임유환의 조소에 조명훈은 발끈하다가 이내 진정을 하고는 비웃음을 흘렸다.“부모님 잘 만난 것도 능력이죠. 설마 질투해요 지금?”“제가 당신을 질투할 필요까지 있을까요?”“그런 것 같아요 내눈엔.”임유환은 고개를 저었지만 조명훈은 멋대로 단정 지으며 말했다.“그리고 부모님 아니어도 난 이미 예령대 석사학위를 받은 고학력자라고요!”“아, 그 돈만 주면 아무나 들여보낸다는 대학?”세계 각지에 제 세력들이 흩어져있는 임유환이 예령대를 모를 리가 없었다.아무 금융학 석사학위라 해도 돈으로 만들어낸 걸 모르는 이가 더 드물었기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제 치부가 임유환에 의해 들춰지자 조명훈은 발끈하며 소리쳤다.“너!”“됐어, 됐어. 그만하고 앉아.”제 아들이 밀리자 조덕화가 나서서 말리는 척하며 조명훈을 위해 한마디 더 보탰다.“자네가 우리 아들한테 안 좋은 소리 들어서 기분 나쁜 건 알겠어.”“근데 존엄이라는 게 그냥 주어지는 건 아니잖아. 돈과 권력을 다 가져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지.”“우리 아빠 말 들었죠!”조명훈이 우쭐거리며 임유환을 보자 임유환은 그런 조명훈을 무시하고는 조덕화를 향해 말했다.“그건 제가 아저씨보다 잘 알 것 같은데요.”한낱 세무부장 따위와는 말도 잘 섞지 않는 임유환이지만 조덕화 일가가 윤동훈과 그 가족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게
“아저씨, 아주머니. 제가 꺼낸 말이니까 제가 해명할게요. 동훈 아저씨 힘들게 하지 마세요.”임유환이 차갑게 말하자 소민지는 그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능력은 없는 게 말만 번지르르하네!”“네가 해명할 자격이나 있어?”“저를 가르치려 드시는 아주머니 자격에 대해서 저는 아직 묻지 않은 것 같은데요.”“허!”임유환이 옅은 미소를 띠며 소민지를 향해 말하자 소민지는 화가 치밀어올라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유환 씨, 이제 그만 해요...”윤동훈은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자 임유환을 말리며 조덕화 일가를 향해 말했다.“형님, 형수님.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소민지는 아직도 코웃음을 쳤지만 조덕화는 저의 너그러움을 보여주기 위해 화를 삭이며 말했다.“됐어, 아직 어려서 뭘 모른다고 생각하지. 다 오랜 친군데, 얼른 주문부터 해.”“감사합니다, 형님, 형수님!”윤동훈이 연신 감사 인사를 하자 소민지는 임유환을 노려보며 한마디 더 했다.“봤어? 이런 너그러움을 보고 배우라고!”임유환도 소민지를 바라만 보며 윤동훈이 난처해지는 게 싫어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네, 네!”윤동훈이 자리에 앉아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김선의 표정은 이미 굳을 대로 굳어져 있었다.망신당하러 제 발로 찾아온 꼴이었다.급격히 안 좋아진 분위기에 안절부절못하던 윤서린도 임유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미안해요 유환 씨,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괜찮아. 일단 밥부터 먹어. 이 일은 나중에 얘기하자.”“네.”임유환이 다정하게 말하자 윤서린도 그제야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여기, 주문!”조덕화가 직원을 불러 주문을 마치자 빠르게 음식들이 테이블에 올랐다.그런데 사람은 여덟인데 음식은 일곱 가지가 전부였다.수프 하나에 소고기, 그리고 해철 무침, 송화단을 제외하고는 전부 나물들뿐이었다.S 호텔에 랍스타, 킹타이거 새우 그리고 다른 메인 요리들이 많았는데 그런 것들은 하나도 주문하지 않은 것이다.올라온 거라고는 집에서도 흔히 먹
“하하, 난 그냥 친구 집안 상황이 어떤지 확인 차 물어본 것뿐인데.”“그러세요?”조덕화가 손을 저으며 말하자 임유환은 그런 조덕화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분명 웃고 있는 표정이었지만 조덕화는 마치 임유환에게 제 속내를 들키기라도 한 듯 마음이 불편해졌다.그리고 아까부터 간신히 참고 있던 김선도 친구의 곤란한 상황을 재미 삼아 자신의 지위를 돋보이게 하려고 수작질을 하는 조덕화에 이를 갈았다.하지만 윤동훈은 속도 없는지 여전히 조덕화의 체면을 챙겨준다고 또 실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문제는 이미 다 해결했어요, 형님.”“그래? 다행이네.”조덕화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도 그 큰 위기를 이미 저절로 해결했다는 윤동훈에 깜짝 놀랐다.그때 김선이 윤동훈의 허벅지를 힘껏 꼬집으며 노려봤다.임유환이 계속 말하게 두지 왜 혼자 좋은 사람인 척 나서냐는 뜻이었다.“여보, 다들 친군데. 체면 구기면 안 좋잖아...”윤동훈이 김선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지만 김선의 마음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체면? 저 사람들은 당신 체면 생각도 안 하는데 왜 혼자 바보같이 그래?”“이번 한 번인데...”윤동훈이 애원을 하며 말했다.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정치인들에게 밉보이는 건 큰 손해였기에 윤동훈도 지금 온 힘을 다해 참고 있었다.더욱이 조덕화는 제 친구인데 서로 불쾌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한편 김선과 윤동훈이 낮게 속삭이는 걸 본 조덕화가 웃으며 물었다.“동훈아, 제수씨, 무슨 얘길 그렇게 해요?”“아무것도 아니...”윤동훈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김선이 입을 열며 대답했다.“그냥 회사 얘기 좀 했어요. 요즘 작은 회사 두 개 정도 인수할까 생각 중이거든요.”“인수요?”“제수씨 말은 요즘 회사 상황이 좀 좋아졌다는 뜻인가요?”깜짝 놀란 듯 보이는 조덕화에 김선이 웃으며 말했다.“네. 다 우리 사위 덕분이죠. 사위가 아니면 우리 집이 어떻게 채권 문제도 해결하고 2만 억이 넘는 계약 건까지 따내겠어요?”“2만 억이 넘는 계약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