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울림과 함께 검은 제복 차림의 군대가 총을 들고 검은 홍수마냥 철문을 지나 강호명의 별장 안으로 들어왔다.1856명이나 되는 군사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삼엄했는데 그들 어깨에는 흑제의 친위부대, 즉 흑기군을 가리키는 독특한 문양의 배지가 달려있었다.“흑기군 통솔자 조무관, 임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겠습니다!”흑기군 통솔자인 조무관이 앞으로 나와 한쪽 무릎을 꿇고는 우렁찬 목소리로 임유환을 향해 말했다.자리에 있던 모두를 얼어붙게 만드는 그 기백에 방금까지도 웃음을 터뜨리던 강씨 일가의 얼굴이 하나같이 굳어 갔고 강호명은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하느라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강호명은 검은 홍수같이 늘어선 흑기군이라 자칭하는 군대와 우산 아래의 임유환과 남자를 번갈아 보며 혼란에 빠졌다.설마... 임유환 옆에 있는 게 진짜 흑제 어르신인가?“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흑제는 연경 8대 가문의 재산을 다 합쳐도 비할 바가 못 되는 세계 제일가는 부자였고 또 그이 명령 한마디면 강씨 집안 같은 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하고도 남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절대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근데 그런 사람이 임유환을 주인으로 섬기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너 진짜 무슨 배짱으로 일을 이렇게까지 크게 벌이는 거야? 흑제 어르신을 사칭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흑기군까지야?”강호명은 눈을 크게 뜨며 눈앞에 보이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표정을 구긴 채 말했다.“사칭?”임유환은 입꼬리를 올리며 차가운 조소를 흘렸다.“건방진 놈!”흑제는 그런 강호명을 향해 호통을 치며 천천히 손에 들었던 우산을 내려놓고는 얼굴을 드러냈다.그 얼굴을 마주한 강호명은 귀신이라도 본 듯 경황실색 했다.정말 흑제 어르신이었다니!뒤에 서 있던 강씨 일가의 한 사람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흑도 백도의 인력들도 말로만 듣던 흑제 어르신의 얼굴을 직접 보게 되자 하나같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저...”강호명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 몸을 부산스럽게 떨어댔다.임유환이 흑제까지 대동하고 물으니 그날 일에 대해 이실직고는 해야겠지만 또 말하자니 앞으로 제게 벌어질 일이 예상되어 두려웠다.“잘 생각하고 대답해.”그때 임유환의 냉정한 말이 다시 들려오자 강호명은 또 몸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들어 엄동설한의 호수마냥 시리고 깊은 임유환의 눈을 마주했다.임유환의 복합적인 감정은 다 보아내지 못했지만 영혼까지 산산조각이 나게 할 것 같은 매정함은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저...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하지만 그때 일을 꾸몄던 세력이 임유환보다 더 무서웠기에 강호명은 임유환이 기회를 줬음에도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여기서 사실을 고했다가는 더 처참하게 죽을 게 분명했다.“모른다고?”강호명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임유환은 살의를 드러내며 눈을 가늘게 떴다.그때 갑자기 울려오는 핸드폰에 흑제가 확인을 마치고는 임유환의 귓가에 대고 낮게 말했다.“주인님, 최서우 씨가 지금 좀 곤란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곧 일을 당할 것만...”“뭐?”최서우의 소식을 전해 들은 임유환은 동공이 확 작아지며 되물었다.“알았어.”임유환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제 할아버지와 똑같이 기회를 줘도 차버리는 강준석에 아까보다 더 짙은 살의를 드러냈다.“흑제, 팀 하나 데리고 가서 최서우 씨 할아버님 구해.”“그리고 조무관은 나랑 같이 가. 나머지는 나랑 흑제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대기한다!”“예!”“내가 돌아오면 이 일까지 같이 책임져야 할 거야.”흑기군의 우렁찬 대답 뒤로 임유환이 살기 어린 눈빛을 한 채 한마디를 더 남기고는 흑기군 분대를 이끌고 뒤돌아나갔다.임유환과 흑제가 떠나고서야 강씨 일가를 옥죄여왔던 두려움이 점차 기시기 시작했다.모두들 겁에 질린 얼굴을 한 채 옷은 이미 땀에 젖은지 오래였다.갑자기 철군한 임유환이 의아했던 것도 잠시 그들은 흑기군이 완전히 철수한 게 아님을 이내 알아차렸다.단지 임유환과 흑제가 분대를 이끌
S 호텔 1206호 로열 스위트룸 앞.흰색 원피스를 입은 최서우가 핸드폰을 손에 꼭 쥔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서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임유환에게 말할까 말까 수백 번을 고민했지만 최서우는 강준석 손에 잡혀있는 할아버지 때문에 그러길 포기했다.강준석은 오늘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순간 바로 거래는 끝나는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었다.최서우도 강준석이 제 할아버지를 납치할 정도로 비겁한 사람인지는 미처 몰랐었다.해외에 나가서 일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어린 서우를 돌봐주고 아플 때 옆에 있어 주며 정성을 다해 보살피는 건 항상 할아버지였다.그래서 최서우는 제 가장 소중한 혈육인 할아버지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강준석에게서 저를 지키고 싶지는 않았다.이 호텔방문을 열면 무슨 일이 벌어지지 최서우도 모르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에겐 애초에 선택지가 없었다.여기서 돌아서면 할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해야 했다.그리고 최서우는 강준석은 지금 당장이라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똑똑똑.최서우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용기를 내어 노크했다.“누구야?”문 너머에서는 익숙한 강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저예요.”최서우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철컥.문이 열리고 최서우는 검은 정장 차림의 경호원을 따라 눈을 도르륵 굴리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철컥.그리고 이내 방문은 다시 닫혔다.“서우 씨, 왔어요?”소파에 편하게 기대 누워있던 강준석은 최서우를 보자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우리 할아버지 어딨어요! 나 왔으니까 빨리 할아버지부터 풀어줘요!”“하하, 너무 조급해 말아요. 서우 씨 할아버지 아직 멀쩡해요.”강준석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 그는 아직 최대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오늘로 최서우의 약점은 할아버지가 맞았고 최대호가 제 손안에 있는 한 최서우는 제가 시키는 대로 할 것임을 알았는데 그 약점을 이렇게 쉽게 놓아줄 수는 없었다.이 얼굴에 이 몸매를 가진 여자라면 한번으론 부족했고 당분간은 계속 제 욕
“이쁘고 몸매 좋은 여자 좋아하는 건 남자들의 본능이에요.”화를 내지만 도망가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는 최서우를 보며 강준석은 득의양양해서 웃었다.그리고 오늘 밤은 꼭 최서우와 보낼 것이라 다짐했다.“그건 당신의 본성이죠.”최서우는 이를 악물고 반박하다 문득 임유환의 얼굴이 떠올랐다. 임유환은 절대 그런 본능이 앞서는 남자가 아닐 것 같았다.“하하, 그건 서우 씨가 아직 남자를 잘 몰라서 그래요. 내가 서우 씨를 사랑하는 마음을 잘 모르는 것처럼.”강준석은 소름 끼치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할아버지 어딨냐고요!”최서우는 강준석이 뭐라고 하든 말든 온 신경이 사라진 할아버지에게만 가 있었다.“하하, 할아버님 잘 있다니까요. 걱정하지 마요. 미래의 내 할아버지도 되실 분인데 제가 설마 함부로 대하겠어요?”강준석이 턱을 매만지며 음흉한 눈빛으로 최서우를 보았다.“그럴 일 없으니까 꿈 깨요!”최서우는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난 지금 할아버지가 무사한지 내 두 눈으로 봐야겠다고요!”“그래요.”강준석은 대답하며 경호원에게 손짓했다.“내 핸드폰 줘봐.”“여기 있습니다, 도련님.”경호원이 공손히 핸드폰을 건네자 강준석은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고 이내 상대방이 연락을 받으며 핸드폰 화면에 어두운 작은 방 하나가 비쳐 들어왔다.그리고 일흔은 넘은 듯 보이는 노인 하나가 의자에 묶인 채 초췌한 얼굴을 하고 축 늘어져 있었다.“할아버지!”최서우는 몇 시간 사이에 초췌해진 할아버지가 안쓰러워 그 모습을 보자마자 눈가가 발개졌다.핸드폰 너머로 손녀의 목소리를 들은 최대호가 천천히 눈을 뜨고는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손녀를 향해 말했다.“서우야.”“할아버지, 그놈들이 할아버지 어떻게 한 건 아니죠!”최서우는 가슴을 졸이며 물었다.“걱정 마, 서우야. 할아버지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켁켁...”말을 하다 갑자기 기침을 뱉는 최대호에 최서우는 빨개진 눈으로 강준석을 노려보며 말했다.“할아버지!”“만약 우리 할아버지 잘못되
임유환 씨...최서우는 가슴이 또 흔들렸다.왜 이 순간에 임유환이 생각났는지는 최서우 본인도 몰랐다.아마도 저도 모르는 순간에 무의식적으로 임유환을 아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미안해요...최서우는 마음속으로 임유환에게 사과를 전했다.파티에서 그 위험을 무릅쓰고 저를 도와줬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버린 상황에 대한 사과였다.최서우는 단추를 다 풀고 어깨끈을 내리자 하얗고 말간 살결이 드러났다.강준석은 음흉하게 바라보며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 제 손으로 최서우의 옷을 잡아끌었다."왜 이렇게 느려요, 내가 도와줄게요!""아!!"최서우는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몸을 빼내려 힘을 주었는데 그 힘에 원피스의 어깨끈이 뜯겨져 버리고 말았다.최서우는 낯빛이 창백해지며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는데 강준석은 뜯긴 어깨끈을 코앞에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더니 더 흥분되어 당장 최서우를 갖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하게 치솟았다.띠-그때 방문에 누군가 카드를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뭐야?"강준석도 깜짝 놀랐고 최서우도 몸을 흠칫 떨었다.문 앞에 있던 경호원이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려고 목을 빼 들 때 문틈 사이로 은침이 하나 날아오더니 경호원의 눈썹 사이에 정확히 꽂히며 몸이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경호원이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은침은 더 깊숙이 꽂혀 들어갔고 그는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쓰러졌다.그리고 방문이 서서히 열리며 익숙한 인영이 강준석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네가 어떻게 여기 있어!"강준석은 놀라서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유환 씨?!"깜짝 놀란 최서우는 다급히 가슴팍을 여며 쥐며 옷이 흘러내리지 않게 잡고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임유환을 바라보았다."진짜 유환 씨에요?""네, 나 맞아요."귓가에 들려오는 다정한 그 목소리에 최서우는 환각이 아님을 확신하고 몸을 떨더니 순식간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유환 씨... 진짜 유환 씨..."최서우는 눈물을 흘리며 진짜로 나타난 임유환에 참아왔던 두려움과 서러움을 한꺼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지고 강준석은 낯빛이 창백해진 채 불에 덴 미꾸라지처럼 팔딱거렸다.그 광경을 보고 있던 최서우도 당황스러움에 시선을 어디로 둘지 몰라 헤맸다.임유환은 귀청이 째지게 들려오는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준석의 가슴께를 지그시 밟았다.그리고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오며 온몸으로 퍼지는 강렬한 통증에 강준석은 신음을 흘리며 감전된 사람마냥 바닥에서 굴러댔다.하지만 더 놀라운 건 아무리 소리를 지르려 해봐도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구멍에서 나는 거라곤 듣기 싫은 쇳소리가 전부였다.“너... 나한테 무슨 짓 한 거야?”강준석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지도 못하고 물었다.그와 대비되게 임유환은 지나치게 차분했고 차분하다 못해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지금의 임유환은 더 이상 강준석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저 빨리 그의 숨통을 끊어 버리고 싶었다.그 살의를 느낀 강준석이 고통을 참아가며 마지막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지금 나 죽이면... 최서우 할아버지도 죽어!”“그래?”임유환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그리고 바로 누군가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발신자는 당연히 흑제였다.“주인님, 최서우 씨 할아버지를 무사히 빼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금 S 시 제일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그래, 좀 있다 바로 갈게.”통화를 마친 임유환이 아까보다 더 짙은 살의가 감도는 눈으로 강준석을 노려보고 있었다.그 눈빛만으로도 살이 떨려오는 강준석은 동공이 확 작아지며 머리가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이제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지...“넌 날 죽이지 못해!”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수가 없자 강준석은 냅다 소리부터 질렀다. 말이 소리였지 목이 다 잠겨버려 그냥 모깃소리만 한 데시벨이었지만 강준석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안간힘을 다 썼다.“어쩌나, 최서우 씨 할아버지는 이미 우리 손에 있는데.”“할 수 없이 그냥 죽어야겠네.”입꼬리를 올려 섬뜩하게 웃은 임유환은 발을 들어
문밖에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서 있던 흑기군들이 임유환이 나오자 조무관의 필두 아래 경례를 올리며 말했다.“임 선생님, 다음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일단 방부터 치우고 강준석은 사람 시켜서 강씨 집안 별장에 데려다 놔. 그리고 내 말도 꼭 전하고.”“예!”차가운 표정으로 명령을 하는 임유환과 조무관의 손짓에 흑기군은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가 정리를 시작했다.최서우는 기세등등하게 서 있는 흑기군을 보며 눈빛이 흔들렸다.흑기군은 분명 흑제 어르신의 친위 부대인데 왜 임유환의 지시에 따르면서 하지 않아도 될 방 청소를 하는 거지?최서우는 놀라운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임유환을 따라 검은색 맥라렌 앞에 멈춰 섰다.“타요, 서우 씨.”그런데 맥라렌의 문을 자연스럽게 열며 최서우를 안내하는 임유환에 최서우는 아직 다물어지지 않은 입을 더 크게 벌리며 물었다.“이거 유환 씨 차예요?”맥라렌이라 하면 적어도 20억은 넘는 차인데 그런 차가 몇 대씩이나 줄지어져 있는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이 차들의 주인이 임유환이라니, 더 놀랄 일이었다.흑기군에 이어 맥라렌까지, 최서우는 처음으로 임유환의 신분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놀라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는 최서우를 향해 임유환이 웃으며 말했다.“일단 타요, 병원 가서 할아버님부터 봬야죠. 다른 건 나중에 설명해 줄게요.”“네!”할아버지라는 말에 최서우도 놀란 표정을 이내 지우고는 얼른 차에 탔다.차에 탄 최서우가 내부까지 화려한 차에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고 그사이에 맥라렌은 호텔을 떠나 병원으로 향했다....그때 평영로 23번지 강호명의 별장에는 강씨 집안 사람들이 모여앉아 초조하게 안지용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누나의 간절한 부탁 끝에 안지용도 직접 나서서 흑기군을 제압하고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임유환의 콧대도 눌러주려 했다.“안 원수님이 나서기만 하면 그 자식은 죽은 목숨이에요!”“이번에야 말고 누구 하난 죽어 나가겠네요.”강씨 일가는 이를 악물며 짙은
“손 신의, 내 손주는 좀 어떤가?”별장 안에서는 강호명이 불안한 얼굴을 하고 방에서 걸어 나오는 손 신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강호명의 뒤에 선 강씨 일가도 숨을 죽인 채 그 대답을 기다렸다.“어르신, 제가 최선을 다해서 도련님의 목숨은 살렸습니다. 방금 의식도 차리셨고요, 근데...”손 신의가 말을 멈추자 강호명은 잔뜩 긴장한 채 물었다.“근데 라니, 왜 그러는가?”“다친 부위가 하필 그곳이라, 그리고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해서... 아이는 못 낳을 것 같습니다...”“아! 내 손주!”강호명은 혈압이 솟구치면서 중심을 잡지 못해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어르신!”사람들이 바로 다가가 강호명을 부축하려 했지만 강호명은 도리어 역정을 내면서 그 손들을 뿌리쳤다.“다 비켜!”‘임유환, 임유환 그놈이 우리 강씨 집안의 대를 끊어 버린 거야!’“어... 어르신,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손 신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강호명은 소름 끼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고생했으니 이만 가봐.”“네, 어르신.”손 신의가 나가고 강씨 일가는 다들 강호명의 눈치를 살피며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이럴 때 강호명에게 함부로 말을 걸었다 괜한 봉변을 당할 수도 있기에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어르신! 안 원수님께서 오셨습니다!”잔뜩 가라앉은 분위기에 하인이 전하는 안지용의 도착 소식은 강호명을 진정시키기엔 충분했다.“다들 안 원수 마중 나가자.”“어르신,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 이미 이렇게 왔잖습니까.”그때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군복을 갖춰 입은 건장한 남자가 대문으로부터 걸어들어오고 있었다.짙은 눈썹과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그 기개를 뽐내며 남자는 성큼성큼 별장 안으로 들어왔다.그가 바로 P 시 작전 지역 원수 안지용이었다.그의 뒤에는 대위계급의 병사 둘이 함께하고 있었다.“안 원수!”강호명은 안지용을 보자마자 안색이 훤해지며 다급히 뛰어가 그를 맞아주었다.“안 원수! 드디어 와주었군.”“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