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미친놈!”남자의 행동에 수미의 피부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이런 정신 나간 놈, 자기 스타킹 냄새를 맡다니!“이거 당장 풀어!”그녀는 거세게 반항했다.당장 여기를, 이 거지 같은 곳을 뜨고 싶었다.“비서님 몸이 참 향기롭네요.”남자가 굉장히 만족한 듯 히죽 웃었다.“이 변태!”수미는 토할 것 같아 이를 꽉 깨물었다.“제가 변태라고요? 당신 이 두 다리가 너무 완벽해서 그래요. 눈을 못 떼겠는걸요.”남자는 수미의 욕에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더 탐욕스럽게 냄새를 맡았다.“당장 꺼져! 이 변태 같은 놈아!”하얗게 질린 수미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남자는 여전히 대꾸하지 않고 수미의 다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다. 마치 완벽한 예술품을 감상하듯 했다.“퉤!”수미는 더 참지 못하고 남자에게 침을 확 뱉었다.남자가 멈칫했다.몇 초 뒤, 팔에 묻은 타액을 쓱 닦아내더니 서서히 일어섰다.수미는 너무 무서웠지만 그래도 변태 같은 행동을 그만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이런 놈이 자기 다리를 계속 쳐다보는 걸 원치 않았다!“난 누가 나한테 침 뱉는 걸 제일 싫어하는 거 몰라?”수미가 다행이라고 느끼기도 전에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수미는 흠칫 놀랐다.남자가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세게 후려갈겼다.짝.손바닥 소리가 찰싹 났다.수미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윽고 얼굴에 얼얼한 아픔이 퍼졌다.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남자는 등 뒤의 탁자에서 날카로운 메스를 들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휘어잡고 얼굴에 칼을 들이댔다.수미는 너무 놀라 순간 동공이 흐릿해졌다.“내가 네 다릴 좋아해 주면 영광인 줄 알아야지, 이 개 같은 년아!”남자의 말투가 굉장히 우악스러웠다.수미의 풀린 눈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몸이 주체할 수없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그녀도 결국 여자였다.눈앞의 이런 상황에 점점 멘탈이 나가기 시작했다.“감히 나한테 침을 뱉어? 좋아, 선택해!”수미의 행동에 단단히 화가 난 남자의 눈에 살기가 차올랐다.
“꺄아!”가슴에 찬 공기가 닿자 수미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흥분한 남자가 입맛을 다시면서 수미 셔츠의 단추를 다 떨어트리려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싫어!”수미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구걸하는 모습은 남자를 더 뜨겁게 자극하기만 할 뿐이었다.그는 다만 이 눈앞의 매혹적인 여자를 차지하고 싶었다.남자의 손이 점점 가까워오자 수미는 절망스러워 두 눈을 질끈 감았다.결국, 오늘 이 자리에서 이 저질스러운 놈에게......“꼼짝 마, 손들어!”이때, 공장의 2층 계단 입구에서 한 여자의 호령이 들렸다.공장이 너무 빈 탓에 큰 소리가 메아리를 치면서 울려 퍼졌다.남자가 멈칫했다.수미는 두 눈을 번쩍 떴다. 자신을 구하러 온 사람이 조명주 중령이라는 것을 봤을 때 마음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전에 조 중령이 자신과 아가씨의 안전을 염두에 두고 위치추적기를 줬던 사실이 떠올랐다.정작 본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넣어두었었는데.그게 자신의 목숨을 살렸을 줄이야!조 중령님이 오셨으니 이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얼른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여전히 가만히 있는 남자를 보고 조명주가 다시 한번 경고했다.“하.”하지만 조명주의 경고에도 남자는 그저 음침하게 웃을 뿐이었다.그는 서서히 돌아서 총으로 자신을 겨누고 있는 계단의 조명주를 바라보았다. 볼캡 아래의 눈은 마치 독사처럼 조명주의 몸을 진득하게 훑고 있었다.제복을 입었는데도 드러나는 그 굴곡이, 군살 하나 없는 허벅지가 계속해서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오늘 운수가 대박이네, 이런 미인을 둘씩이나 만나다니!게다가 한 사람은 작전 지역의 장교라니!장교랑 자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조명주는 남자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불쾌한 눈빛으로 자기의 몸을 훑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그래서 더 크게 소리쳤다. “마지막 경고다, 손들어!”“하하. 조명주 중령님, 드디어 뵙습니다.”음흉하게 웃는 남자는 손들어 항복할
조명주의 동공이 흔들렸다.상대방이 말하는 게 뭔지 모르지 않는다.바로 최음제였다!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눈앞의 남자를 싸늘하게 쳐다봤다. “내가 이거 먹으면, 비서님을 풀어줄 건가?”“하는 거 봐서?”사악하게 입꼬리를 올린 제프가 약을 조명주에게 던졌다.약을 받은 조명주는 조금 망설이다가 단번에 삼켰다.수미는 감동했다.조 중령님이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하하, 좋아!”이를 본 남자는 폭소를 터뜨렸다. 조명주의 몸을 훑는 눈빛도 더 거리낌이 없어졌다.이제 이 여자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다!“이제, 비서님은 풀어드리지?”조명주가 다시 남자를 봤다.“중령님, 전 풀어준다고 한 적 없는데요?”남자는 히죽 웃으면서 입술을 핥았다.“너 이 자식!”조명주는 화가 나 얼굴이 빨개졌다. “지금 당장 죽여버릴 거야!”“움직이지 마, 이 여자 죽여버리기 전에!”남자가 든 날카로운 메스가 수미의 목을 꾹 눌렀다. 순간, 새빨간 피가 새어 나왔다.“아!”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수미는 놀라 비명을 질렀다.“멈춰!”조명주가 얼른 말렸다.이 자식, 진짜 또라이잖아!“중령님, 이제 제 말 믿으시겠어요?”남자는 하던 걸 멈추고 음침하게 웃었다.“믿어.”눈에 살기가 가득한 조명주가 이를 깨물었다. “그래서 뭐 하자는 건데?”“뭐 하긴? 방금 얘기했잖아요, 복수해야겠으니 그쪽 따먹을 거라고.”욕망으로 가득 찬 남자가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머릿속에 여자밖에 없는 저질 같으니라고. 네 놈 죽은 부하들이 불쌍하다.”조명주가 비웃었다. 남자를 화나게 해서 집중력을 흩트리고 빈틈을 노릴 셈이었다.“그러게, 저 저질 맞아요.”하지만 남자는 화를 내긴커녕 입가의 웃음이 점점 더 짙어졌다. “이따가 저 같은 저질한테 따먹힐 생각하니까 엄청 수치스럽죠?”“이 쳐 죽일 놈, 넌 곱게 죽진 못할 거다!”조명주는 이를 갈았다.“하하, 내가 어떻게 죽는진 모르겠고 이따가 그쪽은 좋아죽을 거 같은데?”조명주의 몸을 뚫어져라 쳐다보
“후우, 후우.”공장 안, 조명주의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졌다.이마에 어느샌가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볼에도 홍조가 피어올랐다.그녀의 몸에 힘이 풀리고 있는 것 같았다.젠장!조명주는 머리를 세게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하지만 강한 약효 앞에서 그녀의 노력은 쓸모가 없었다.“중령님, 지금 남자가 막 만져줬으면 좋겠죠?”조명주의 반응을 살피던 남자의 눈에 탐욕스러움이 흘러넘쳤다.얼른 이 도도한 장교가 자기 앞에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이 자식......”이를 깨문 조명주의 말투는 분노로 가득 찼어야 했다. 하지만 최음제의 작용하에 가벼운 숨소리와 색기가 섞여 언뜻 애교처럼 들리기도 했다.“하하.”조명주가 곧 버티지 못할 걸 예상한 남자는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말투도 훨씬 거리낌 없이 방자 해졌다. “지금 이렇게 우겨도 곧 저한테 매달리게 될걸요!”“꿈 깨!”아득바득 버티는 조명주의 이마에 땀이 주륵 흘러내렸다.“중령님......”수미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다 나를 살리려다가......“후우... 후우...”조명주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면서 손이 자기도 모르게 몸을 만지고 있었다.곁눈질로 아무도 없는 복도를 보니 애간장이 탔다.임유환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더 끌다간 나도 비서님도......꿀꺽.이를 본 남자의 목젖이 세게 움직였다.조명주가 더 버티지 못할 걸 알았다.그는 더 참지 못하고 다가갔다. 눈앞의 여장교를 지금 당장 쓰러뜨리고 싶었다.이때 조명주는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거의 반쯤 바닥에 꿇어앉아 있었다. 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입에서 자꾸 신음이 새어나려고 했다.몸이 이상함을 감지한 조명주는 얼른 손으로 입을 막았다. “젠... 젠장...”눈앞이 희미해진 조명주는 자기 혀끝을 세게 깨물어 아픔으로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하지만 아픔으로 버틸 수 있는 약발이 아니었다.자신의 몸이 꼭 폭풍우 한가운데의 나뭇잎 같아 휘몰아치는 파도에 단숨에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중령
슝.서늘한 빛이 날아와 남자의 손등을 적중시켰다"악!"남자는 고통에 숨을 헐떡이며 손을 움츠렸다.그가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은침이 중앙에 정확히 꽃혀 있었고, 바늘 끝을 통해 천천히 피가 스며 나왔다. 같은 시각. 타다닥. 계단 입구에서 발소리가 들렸다."누구야?!" 남자는 고개를 들고 계단을 향해 소리쳤다.임유환의 얼굴은 냉랭했고, 마지막 발걸음을 떼며 2층에 나타났다. "임유환 씨!"수미는 임유환을 보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겁도 없는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여기에 온 거지?! "임유환 씨… 드디어 왔네요…" 조명주는 고개를 돌려 흐릿한 시야 속에서 임유환의 모습을 보았다."조심해야 해요, 이 자식은 상대하기기 쉽지 않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힘이 없는 상태였고, 임유환의 눈빛이 흔들렸다. 조명주의 모습을 보아하니, 약을 먹인 듯했다. "당신이 한 짓인가?"임유환은 시선을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고, 남자는 매우 덤덤했다. "누구지?"남자는 임유환을 험상궃게 노려보았다. 이 자식, 은침으로 나를 다치게 할 수 있다니! "내가 먼저 물었어." 임유환이 대꾸했고, 그의 눈빛은 시종일관 변함이 없었으며 상대방은 이미 자신의 손에 죽을 사람으로 보였다. "이봐, 난 당신 눈빛이 너무 마음에 안 드는군!" 남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가라앉았고,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래?"임유환은 여전히 그 남자를 냉담하게 바라보았고, 조명주가 더 이상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발걸음을 옮겨 그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어이,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이 여자부터 죽일 거야!" 남자는 칼을 꺼내 조명주의 머리에 겨누었다. "그럼 죽여,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임유환은 발걸음을 멈출 생각이 없었고, 그의 말투는 매우 차분했다.이 여자를 이용해 협박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안 남자는 심장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임유환 씨, 당신이 사람이에요?!" 수미는 임유환의 무자비한 말
그렇다, 수미는 무서웠고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았다.방금 그녀가 한 말은 단지 무서운 감정을 표출하고 싶었을 뿐이고, 그녀는 살고 싶었다.그녀는 아직 할 일이 많고, 줄기지 못한 것들도 너무 많았다……"시끄러우니까 입 다물어!"귓가에 들려오는 수미의 거친 목소리에, 가뜩이나 기분이 가라앉아 있던 남자는 순간적으로 화를 냈다.수미는 겁에 질려 가슴이 심하게 떨려왔고, 입 밖으로 내뱉으려던 말을 삼켰다."이렇게 여자한테 소리를 지르는 건 신사답지 않은 행동인 것 같은데?"이때, 임유환이 그 남자를 싸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그러자 남자도 어두운 눈동자로 임유환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이 여자가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쓰면서, 내가 이 여자에게 어떻게 하든 무슨 상관이지?""이 여자의 생사는 별개의 문제이고, 당신이 신사인지 아닌지는 또 다른 문제지."임유환이 침착하게 말했다."지금 날 놀리는 건가?"남자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고, 그는 임유환의 말속에 담긴 희롱을 느낄 수 있었다."하하, 눈치챘나 보네."임유환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그의 절제된 말은 즉시 그 남자를 화나게 했고, 그의 눈에는 살기가 서렸다. "이 개자식이, 네가 정말로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그렇지 않다면?"임유환은 여전히 경멸 가득한 어조로 그 남자를 무뚝뚝하게 바라보았다.그는 이렇게 남자를 흥분하게 한 뒤, 남자가 감정이 격해졌을 때 생긴 허점을 이용해 단번에 그를 제압하려는 생각이었다.사실 이 정도 거리라면 동작 한 번 만으로 상대를 죽일 수 있었지만, 그를 살려두고 정보를 얻으려 했다."어이, 내 실력을 쉽게 보지 말라고!"남자는 화를 내며 임유환에게 소리쳤다.“미안하지만 쉽게 볼 수밖에 없는걸."임유환은 계속해서 남자의 화를 돋우었다."날 도발하려는 속셈인가?"남자는 마음속으로 분노하면서도 늘 피 맛을 봐왔던 그였기에 상대의 도발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도발? 그럴 필요가 있을까?"임유환은 남자를 깔보듯이
수미의 눈이 떨렸다.하지만 그녀의 눈앞에는 임유환의 머리가 깨지는 장면이 펼쳐지지 않았고, 반면 남자가 통증을 느끼며 아랫배를 붙잡고 임유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계속 흘러내렸고, 임유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이제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나?""당신...당신 도대체 누구야?"남자는 고개를 들고 유난히 쉰 목소리로 물었다.방금 전, 단 몇 초만에 승자가 결정되었다.그리고 그는 임유환의 움직임조차 명확하게 보지 못했다!그만큼 상대의 실력이 훨씬 우월하다는 것 아닌가!서인아 곁에 언제 이런 고수가 있었던 거지? 왜 정보에 이 사람은 언급되지 않은 거야?"내가 당신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의무라도 있나?"임유환은 남자를 응시하고 있었고, 검은 눈동자에는 희미한 빛이 흘렀다."당신한테 졌다는 걸 인정하지, 날 죽여라."남자는 고개를 숙였고, 자신의 실력이 임유환보다 열등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했다.그는 임유환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원한다면. 하지만 그전에 내 질문에 답하도록."임유환의 말투는 차가웠다.“누가 당신을 보내 서인아를 죽이라고 명령한 건지 말해.""내가 말할 것 같나?"남자의 입가에 비꼬는 듯한 기운이 맴돌았다.직업 용병으로서 고용주의 비밀을 지키는 것이 그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였다."당연히 아니지."임유환은 덤덤했고? 그 남자의 대답은 그의 예상 안이었다."그런데 왜 시간 낭비를 하는 거야?"남자가 차갑게 웃었다."난 당신에게 자백할 기회를 주고 싶어서 묻는 거다. 당신이 용병인 것도 알고, 평소에 고문에 버금가는 훈련을 받는 것도 알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임유환은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고, 그의 말투는 기복이 없었지만 남자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임유환의 실력을 본 뒤, 그가 이 말을 할 때 결코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그는 정말 그럴 능력이 있는 것이다!절대로 이 녀석의 손바닥 안에 들어가서는
"악!" 임유환은 무방비 상태에서 수미에게 물리자, 근육에 통증이 몰려오며 소리를 질렀다. "수미 비서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비서님을 구하러 온 건데 왜 날 무는 거예요!" 임유환은 이빨을 드러내며 소리쳤고, 수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세게 깨물었다. "수미 비서님 개 띠군요, 빨리 놓아요……" "당신이야말로 개 띠겠죠!" 그제야 수미는 눈을 붉히며 입을 뗐다. 임유환은 원래 그녀에게 한 마디 하려 했지만 그녀의 붉어진 눈을 보고 넋을 잃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두려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에휴, 됐어요." 임유환은 수미가 겁을 먹을 대로 먹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됐다고요? 난 아직 볼 일이 있어요!" 수미는 원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임유환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수미 비서님, 어떻게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 있죠?" 임유환이 무기력하게 말했다."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요? 나쁜 자식, 내가 위험한 걸 보고도 구해주지 않으려 했으면서! 당신은 남자도 아니에요!" 이 말을 꺼내자 수미는 화를 내며 임유환에게 소리쳤고, 방금 겪은 모든 두려움과 불만을 이런 식으로 털어버리려는 듯했다."그 일 때문이었군요." 임유환이 그제야 반응했고,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이건 다 비서님을 구하기 위해서 한 일이잖아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변명이죠!" 수미는 임유환의 말을 믿지 않고 이를 악물었다."수미 비서님, 생각을 해 보세요. 내가 아까 비서님을 중요하게 대했다면 조 중령님처럼 그 악당에게 당하지 않았겠어요? 그때 가서 악당이 나에게 반격을 할 기회를 줄 것 같나요?"임유환은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고, 그의 한 마디 말에 수미의 마음속에 있던 분노가 사그라들었다.그녀는 임유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이 다 사실인가요?" "물론이죠, 제가 그놈을 자극하는 말을 그렇게 많이 했던 게 모두 그 사람의 허점이 드러날 때를 노리는 것임을 못 알아차렸나요?" 임유환이 이
임유환과 윤여진은 최서우의 병이 악화될까 염려하여 일부러 그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임씨 집안으로 향했다.임씨 집안으로 가는 차 안에서 윤여진은 사건의 자초지종에 대해 간략하게 전해 듣게 되었다.영상 속의 그 여자는 임유환의 시중을 들던 나비라는 이름의 메이드이고 그 메이드를 남자들에게 건네준 이가 임준호라는 사실까지 다 듣고 난 윤여진도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윤여진이 알고 있는 임준호는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는데 그런 분이 한 일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잔인한 행동에 15년 전 자신의 친아들을 직접 내쫓던 그때의 임준호가 떠올라 윤여진은 온몸이 오싹해났다.아마도 15년 전 그날부로 임준호가 완전히 변한 게 아닌가 싶었다.30분 뒤 그들은 임씨 집안에 도착했지만 워낙 깊은 밤이라 저택의 대문은 당연히 잠겨있었고 흑기군을 데리고 대문 앞에서 한참 동안 대기하고 있던 흑제가 임유환을 보고 인사를 건네왔다.“임 선생님.”“오셨어요?”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계 제일 갑부의 느닷없는 등장이 윤여진은 놀랍기만 했다.임유환을 대하는 흑제의 태도가 지나치게 깍듯해 그 둘의 사이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물을 때가 아니라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할 때라서 윤여진은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영상에서 봤던 모습을 떠올리며 윤여진이 다시 표정을 굳히자 아까부터 냉랭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임유환이 앞으로 나서더니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임준호, 당장 나와!”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저택 사람들 몇 명이 눈을 떴고 하인 두 명이 달려 나왔다.밖에 나와 상황을 살피던 하인 두 명은 익숙한 임유환의 얼굴에 깜짝 놀랐지만 그런 놀라움도 얼마 오래가진 못했다.하인들은 이내 비아냥거리며 임유환을 향해 말했다.“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임유환 도련님 아니세요?”입으로는 도련님이라 하고 있었지만 그 말투 속에 진하게 녹아나 있는 조롱은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을 정도였다.“무슨 도련님이야, 버려진 도련
임유환의 몸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이미 덜덜 떨리고 있었다.“주인님, 그건 저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이 영상도 그 경찰에 대해 조사할 때 경찰 시스템을 뒤지다 발견한 겁니다.”“경찰 시스템?”“그럼 이것도 정씨 집안에서 한 짓이란 말이야?”“그것까진 아직 모르겠는데... 제가 알아본 바로는 저 여자분은 주인님... 아버님께서 직접 저 남자들 손에 넘긴 거였습니다.”이 일이 임유환의 아버지와 관련되어있기도 했고 영상 속의 여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면 더 위험한 일에 휘말릴 것 같아 흑제는 대답을 망설였다.“아버지?”“네, 주인님.”흑제의 말에 당황하던 임유환은 재차 확인을 거친 후에 또다시 기운을 뿜어내며 당장이라도 임준호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임유환은 어떻게 자신이 직접 데려온 아이를 또 내다 버릴 수가 있는지 임준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당연히 제 한 목숨 부지하고자 행한 나약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겠지만 저 사람들 손에 끌려가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내어준 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인지 의문이 갔다.영상 속 사람들이 말하는 비밀 열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임유환은 나비가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임준호!”갑자기 소리 지르는 임유환 때문에 방 안에 있던 윤여진은 화들짝 놀랐다.“흑제.”“예, 주인님.”“지금 당장 흑기군 준비해서 나랑 임씨 집안으로 간다.”“예, 주인님.”지금 임유환은 약해빠진 임준호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있었다.그래서 직접 집으로 쳐들어가서 대체 나비를 누구에게 넘겨준 것인지, 나비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살아있다면 직접 얼굴을 봐야 했고 죽었다면 그 시체라도 봐야 진정될 것 같았다.임유환은 나비가 그 짐승 같은 놈들 손에 놀아나도록 두고 볼 수가 없었다.살아있다면 당장 데려다가 직접 치료를 해줄 것이고 죽었어도 데리고 와서 묻어줄 생각으로 눈이 빨갛게 충혈된 임유환은 차오르는 분노와
“나비?”아까는 얼굴이 제대로 안 보여서 몰랐는데 영상 속의 여자는 바로 임유환만 보면 도련님이라 부르며 해맑게 웃던 나비였다.그렇게 밝고 예쁘게 웃던 아이가 피범벅이 된 채 모진 고문을 견뎌내는 걸 보고 임유환은 낯빛이 창백해졌고 머리가 울려왔으면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서 쫓겨난 지도 15년이니 나비도 많이 커서 얼굴만 보면 못 알아봤겠지만 나비 문양의 반점 덕분에 한눈에 그녀의 알아볼 수 있었다.나비라는 아이는 5살의 어린 나이에 임씨 집안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름도 없어서 나비도 임유환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었다.나비는 어릴 때 강도들의 손에 부모님을 잃고 그들에게 이끌려 여기저기 팔려 다니던 이이였는데 그런 그녀를 불쌍하게 여긴 임준호가 큰돈을 들여 데리고 오는 바람에 임씨 집안에서 메이드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나비는 임유환을 보자마자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때릴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눈빛이 너무나도 슬퍼 보여서, 웅크린 몸을 떨고 있는 아이가 너무 애처로워 보여서 임유환은 아직까지도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 들어온 이상 더는 그 어떤 괴롭힘도 없을 거라고 다독여봐도 나비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었다.다른 메이드들을 시켜 깔끔히 씻기고 머리도 빗겨주고 깨끗한 옷까지 갈아입혀 주니 왼쪽 얼굴에 있는 나비 모양의 반점도 드러났다.임유환이 그 반점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비는 신분이 낮은 제가 얼굴에 난 반점으로 임유환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어 동굴 속에서 강도들에게 폭행당하던 것처럼 맞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반점을 가리며 몸을 떨었다.그에 임유환은 바로 나비의 손을 잡아주며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다고 천천히 타일러주었다.그리고는 나비의 긴장과 두려움을 해소해주기 위해 정원 산책까지 데리고 갔다.드넓은 정원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있었고 그것들이 함께 조화로운 향도 만들어내고 있었다.이런 아름다운 곳은 처음 보는 나비는 처음에는 몸이 굳어버리며 어색해했지만 이
“아!”남자의 행동과 함께 흘러나온 여자의 처절한 비명이 밀실을 가득 채웠다.화면을 뚫고도 전해지는 여자의 절망과 고통에 핸드폰을 들고 있던 임유환의 몸도 떨려왔고 마찬가지로 비명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윤여진도 임유환 쪽으로 다가오며 화면을 바라보았다.“어머!”사람한테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하는 영상 속 인간들 때문에 윤여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소리쳤다.너무 집중해서 본 나머지 옆에 윤여진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던 임유환이 다급하게 화면을 가리며 말했다.“여진아, 넌 보지 마.”“오빠, 이 사람들 누구예요?”“아직 모르겠어.”얼굴과 입술이 창백해진 윤여진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임유환은 한숨부터 쉬며 대답했다.“여진아, 네 방 화장실 좀 쓸게.”말을 마친 임유환은 화장실로 들어가서 다시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화면 속의 여자는 여전히 은침에 찔린 손을 들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온몸을 비틀려고 발버둥 치는 여자는 마치 불판 위에 올라간 미꾸라지 같기도 했다.하지만 검은 옷차림의 남자는 그런 여자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여전히 차가운 눈을 하고 두 번째 은침을 꺼내 들어 여자의 다른 손가락에 찔러넣었다.“아!”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고통에 여자는 순간 고개를 확 젖혀버렸고 이미 흑과 말라 굳어버린 핏자국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머리카락이 여자의 얼굴을 가렸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몰라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그냥 날 죽여줘요 제발...”“죽여주세요...”남자가 아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지만 여자는 울며불멸 죽기를 애원하고 있었다.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으면 죽는 걸 원하고 있을까 싶어 임유환은 비통하다 못해 화까지 나고 있었다.“말했잖아, 얘기하면 죽여준다고.”말을 마친 남자는 섬뜩하게 웃더니 나머지 손가락에도 하나하나 은침을 꽂아 넣었고 여자는 온몸에 경련이 일듯 몸을 떨어대다가 한계에 다다른 건지 다시 한번 기절했다.은침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열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피들은 빠르게 작은 웅덩이
“마음의 준비요?”의미심장한 흑제의 말에 임유환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영상인데 그래요?”“혼자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미 암호 걸어서 이메일 보내놨어요.”임유환이 영상을 보면 어떤 반응일지 알기에 흑제는 말을 내뱉기가 어려웠다.“알겠어요.”임유환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나서 빠르게 흑제가 보내온 이메일을 확인했다.이메일의 정체는 5분쯤 되는 영상이었는데 영상의 장소는 어두운 밀실같이 보였다.밀실 안에는 똑같은 옷차림을 한 남자가 다섯이나 있었는데 그들은 전부 눈 하나만 내놓고 있었다.임유환은 그들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핸드폰 화면으로만 들여다보고 있음에도 무시무시한 그들의 기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남자들의 발밑에는 거의 죽어가는 젊은 여자 하나가 누워있었다.남루한 옷차림의 여자는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몸에는 채찍에 맞느라 생긴 생채기들이 한가득이었다.생채기 주위의 살들은 진작에 터져나갔고 팔은 안에 있는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그리고 몸에 난 상처는 그뿐만이 아니라 담배로 인해 생긴 작은 화상 자국들도 빼곡했다.옛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 난 상처들은 이미 옷과 붙어버려 여자의 처참한 상태를 더욱 잘 보여주고 있었다.영상을 보고 있던 임유환도 서서히 여자가 불쌍해졌다.다섯 남자들은 대체 누구길래 여자한테 이토록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리고 여자는 또 누구인지 임유환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영상 하단에 떠 있는 시간을 보니 아직 5분 1밖에 진행되지 않은 영상에 임유환은 계속해서 화면을 들여다봤다.화면은 빠르게 전환됐고 여전히 같은 복장을 한 남자 다섯 명과 아까와 다를 게 없는 밀실이 나타났지만 아까 그 일로부터 며칠은 지난 듯 보였다.영상 속의 남자는 찬물을 들어 쓰러져있는 여자의 몸 위로 뿌렸고 여자는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고통 속에서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검은 복면을 쓴 남자 하나가 입을 열자 나머지 네 명도 여자를 차갑게 바라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검사할 거예요 오빠?”그때 귀를 간질거리는 윤여진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부끄러워하면서도 도발적인 말을 뱉어내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심장이 쿵쾅거렸다.“여진아, 나는...”오해를 풀어보려고 고개를 돌려 윤여진을 보던 임유환은 몸을 앞으로 숙인 탓에 훤히 드러난 검은색 슬립 아래의 몸매에 다시 말을 삼켜낼 수밖에 없었다.임유환을 포함한 모든 남자들은 시각 동물인지라 완벽한 몸매와 유독 눈에 띄는 풍만한 가슴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감정도 이내 임유환의 이성에 묻혀버렸다.“후...”임유환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여진아, 진짜 이제 그만해. 진짜 실수한다니까.”“오빠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나긋나긋하게 말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뜨거운 숨결 때문에 점점 본능이 들끓고 있었던 임유환은 이대로 있었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것만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런데 그 순간 윤여진이 임유환의 손을 덥석 잡아 오자 우유 크림처럼 부드러운 그 느낌에 임유환은 일어서려던 다리마저 굳어버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유환 오빠, 나 장난하는 거 아니라니까요.”윤여진은 여전히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하며 잡고 있던 임유환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그 모습에 임유환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고 이 손을 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그런데 마침 타이밍 좋게 울린 전화벨 소리에 둘 다 화들짝 놀랐고 임유환도 또 한 번 울리는 벨 소리에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윤여진도 겁먹은 고양이마냥 손을 빼내며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나... 전화 좀 받을게.”임유환이 어색하게 말하자 윤여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네.”아까의 대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부끄럼 타는 고양이 같은 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리던 임유환이 전화를 받았다.흑제에게서 온 전화라 조금 긴장한 채로 받았는데 역시나 전에 지시했던 일
가슴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지만 임유환은 애써 윤여진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장난치지 말라니까.”윤여진이 여전히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한 임유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말을 돌렸다.“아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고 했잖아, 그거 알려줄게.”“그 얘긴 나중에 하고, 오빠 아직 내 말에 대답 안 했잖아요.”“어... 그 얘기 먼저 하자, 불 끄면 졸려서 못 할 것 같아.”임유환은 기대에 찬 윤여진의 얼굴이 보였지만 어떻게든 이 숨 막히는 상황부터 끝내보고자 평소답지 않게 우겨댔다.그리고 사실 윤여진이 한 말이 장난인지 아닌지 제대로 분간도 가지 않아 아까부터 심장이 떨리고 있었다.장난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장난이 아니라면 아주 어색해질 것 같았다.“오빠, 왜 아까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리는 것 같죠?”그때 임유환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들을 보며 윤여진이 부드럽게 물어왔다.“그... 그래?”“긴장한 거예요 설마?”임유환에게 질문을 하며 코앞까지 다가온 윤여진 때문에 둘의 거리는 3㎝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정말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닿을 것같이 가까운 거리라서 임유환은 윤여진이 내뱉는 호흡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뜨거운 숨결과 함께 풍기는 향기에 임유환은 헛기침을 하며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여진아, 이제 진짜 그만해.”사람 둘은 족히 앉을 정도로 떨어져서야 임유환은 잔뜩 긴장했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장난 아니라니까요.”임유환이 저에게서 멀어지자 윤여진은 살짝 실망한 듯 보였지만 이내 연애 수첩 제1항을 떠올린 그녀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그래서 윤여진은 긴장한 듯 굳어있는 임유환을 보며 익살스레 웃어 보였다.“유환 오빠, 누가 그러는데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긴장을 한대요.”“오빠 설마 나 좋아하는 거예요?”윤여진이 이 질문을 할 때 임유환은 이게 장난이든 진심이든 간에 서둘러 이 화제가 지속되는 것부터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둘이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상해지는 방 안의
“어...”단도직입적인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은 뭐라 변명이라도 해야 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임유환의 생각이 불순한 건 맞지만 그게 오로지 임유환의 잘못은 아니었다.이미 성인이 된 그들은 15년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윤여진은 얼굴이며 몸매며 누가 봐도 예쁜 여자로 성장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도 멀쩡할 남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임유환 역시 남자였으니 검은색 레이스 속옷에 슬립까지 입고 제 눈앞을 돌아다니고 있는 윤여진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슬립 아래로 보일 듯 말 듯 한 윤곽이 아까부터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임유환은 지금 온 정신력을 다 쏟아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자신의 눈이 윤여진의 몸으로 향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임유환이기에 당연히 같이 자자는 그녀의 요구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모든 남자들의 워너비인 그 몸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밤을 조용히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오빠, 이상한 생각 한 거 맞죠?”한편 윤여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임유환을 보며 기쁨이 섞인 목소리로 장난스레 물었다.“어...”임유환은 이젠 정말 자신이 무슨 생각인지도 잘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정말 윤여진을 두고 이상한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그는 윤여진이 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그녀의 몸만 보면 저절로 뜨거워지는 가슴이 대신해서 부정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여진아, 사실... 나는...”다그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해명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 진심이 전달될지 몰라 말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임유환에게 윤여진은 여전히 15년 전 꼬맹이였고 임유환 또한 그때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그는 윤여진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오해하는 것도 원치 않았고 또 윤여진도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여전히 그때처럼 윤여진이 힘들 때 그녀에게 힘이 돼주는 든든한 오빠가 되고 싶었는데 이 마음을 전하기에 말 한마디
“아니야, 그냥 네가 아까 한 말 생각하고 있었어.”“그럼 오빠도 나랑 같이 있고 싶은 거예요?”다급히 해명하는 임유환에 시무룩해 있던 윤여진은 다시 밝게 웃으며 물었다.“그럼.”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그와 윤여진이 말한 같이 있는다는 서로 전혀 다른 뜻이었다.“그럼 오빠, 오늘 밤은 나랑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임유환의 팔을 감싸 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간드러지게 말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몸이 먼저 반응할 뻔한 걸 간신히 참고는 물었다.“여기서 너랑 같이 밤을 보내자고?”“네!”윤여진이 이런 부탁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임유환이기에 제 팔에 닿아오는 말랑거리는 그 느낌도 까맣게 잊은 채 놀랐다.그런 임유환의 반응을 보던 윤여진은 혹시라도 거절당할까 봐 다급하게 한마디 더 보탰다.“여기서 자는 건 처음이라 좀 무서워요, 워낙 낯설기도 하고...”“어...”윤여진의 부탁도 일리가 있어 보여 임유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오빠, 그냥 남아서 나랑 같이 자면 안 돼요?”윤여진은 임유환의 팔을 좌우로 흔들며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임유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가만히 있어도 예쁜 얼굴인데 애교까지 부리니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모습이 섞여 있어 웬만한 남자라면 다 윤여진한테 넘어갈 것 같았다.인내심과 자제력 하나는 자부하면서 살아왔던 임유환도 윤여진의 애교 공세에 3초도 못 버티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임유환은 저도 모르게 긍정의 대답을 해버렸다.정말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저를 향해 애원의 눈빛을 보내는 윤여진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역시, 오빠는 내 말 들어줄 줄 알았어요!”결국 제 말을 들어준 임유환에 윤여진의 촉촉한 눈망울에서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너랑 같이 있어 줄 수는 있는데, 난 바닥에서 잘 거야.”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는 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 돼버렸으니 임유환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 최선책을 찾으려고 노력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