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 저택 앞.이서가 차량 제공을 요구하자, 입구의 경호원은 다급했다.“아가씨, 사모님이 외출하시기 전에 특별히 지시하셨습니다. 절대 아가씨를 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요. 우리를 난처하게 하지 마세요.”“H선생님에게 사고가 났어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집에 잠자코 있겠어요?” 이서는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다.“제발요, 차 좀 준비시켜 주세요. 두 시간 내에 가지 않으면 그 사람 큰일 나요.”이서가 얘기하는 그 H선생님이 바로 명성이 자자한 SY 대표라는 걸 이씨 집안 사람들은 모르는 이가 없었다.지환이 사고 났다는 얘기에 경호원의 안색이 변했다.“그럼... 아가씨, 도련님이나 사모님께 먼저 전화해 보세요. 죄송하지만 그분들 허락 없이는 보내 드릴 수 없습니다.”“지금 그분들이랑 통화가 안 된다고요. 부탁해요. 나한테 무슨 일 생겨도 괜찮으니까 제발 내보내 주세요.”“통화가 안 된다고요?”이서는 경호원의 손을 잡고 애원했다.“보내주세요, 제발요.”울어 빨갛게 부은 눈을 본 경호원은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그래요, 아가씨, 그럼 제가 모셔다드릴게요.”이서는 그제야 기운을 차린 듯했다.“감사합니다,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경호원은 즉시 차를 몰고 박예솔이 보낸 주소로 출발했다.같은 시각, 줄곧 암암리에 이서를 보호하던 어둠의 세력도 이서를 따라나섰다. 그중 깍두기 머리를 한 남자가 손에 든 총기를 만지작거리며 불평을 늘어놨다.“아니, 보스가 외출하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왜 또 한밤중에 외출이냐고?”옆에 있던 또 다른 나이가 좀 많은 남자가 그의 팔을 툭 건드렸다.“죽고 싶어? 보스 귀에 들어 갔다가는, 앞으로 우리 보스 곁에 못 있을 줄 알아...”별로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지만, 깍두기 머리 사내의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많이 작아졌다.“형님, 우리는 보스의 그림자들이잖아요. 하루 종일 여자만 지키고 있는 거라면, 나는 정말이지, 보스랑 함께하지 않아도 괜찮을 듯합니다!”“너 이 자식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말을 마치고, 이서는 차를 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뒤 따라오던 어둠의 세력 조직원들도 이 장면을 목격하고는 멍해졌다.특히 깍두기 머리를 사내는 참지 못하고 낮은 소리로 불만을 늘어놓았다.“씨X, 저 여자 지금 뭐하는 거야?!”이서의 돌발 행동에 김겸도 어리둥절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목소리를 되찾았다.“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경호원도 두고.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나?”깍두기 머리를 사내는 다소 득의양양해서 말했다.“내가 뭐랬어요? 이 여자 요물 맞다니까요, 우리 보스를 유혹하는...”같은 시각, 경호원에게 자초지종 물으러 갔던 조직원이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보스한테 뭔 사고가 난 것 같습니다.”“뭐라고?”차 안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깍두기 머리를 사내는 바로 일어섰다.“보스가? 그럴 리 없을 텐데...”“구체적인 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그 사람은 얼른 차에 올랐다.“빨리 아가씨 쫓아 갑시다.”깍두기 머리 사내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듯했다.“그럼 저 여자가 외출한 게 보스 때문이었어?”그 사람은 묵묵부답했다.하지만 답은 불 보듯 뻔했다.차 안의 사람들은 모두 침묵을 지켰다.한참 뒤에야 김겸이 말했다.“그러니까 경호원을 두고 간 것도 괜히 무고한 사람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릴까 바였던 거였어?”그녀의 이런 무대포적 행위는 조직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위험천만한 행동이다.하지만 현재 차 안의 모든 사람들이 아무도 이서의 행동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과감한 행동에 마음속 깊이 탄복했다.침묵의 차량 행렬은 어둠을 뚫고 끊임없이 앞으로 질주했다.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는 이서는 목적지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가고 있었다.그녀는 엑셀을 최대한 밟았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눈빛은 확고했다.결국 그녀는 마지막 1초를 남겨두고, 마침내 창고 입구
같은 시각, 차에 있던 ‘어둠의 세력’의 대장 앤서니는 지환이 하지호의 사람들에게 납치당했다는 소식을 받았다.그에게 연락을 한 사람은 조백이었다.조백은 지환의 비서이다. 따라서 그가 보내온 정보는 틀림없다.‘그렇다면 창고에 있다던 그 사람은 누구지?’앤서니는 창고 쪽을 한 번 보고는, 지환을 구하는 게 더욱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명령을 내렸다. 차를 돌려 도시의 반대쪽으로 당장 출발한다고.깍두기 머리 사내가 있는 차량에도 명령이 전달되었다. 차 안의 모든 사람들이 멍해졌다.“우리가 당했어. 우리를 이쪽으로 유인하기 위한 계략이었어.” 김겸이 말했다.“우리가 아가씨를 보호하고 있다는 걸 알고, 하지호가 일부러 아가씨를 이쪽으로 끌어들인 거야.”“나쁜 새끼! 정말 고약하군!”“...”모두가 하지호를 욕하고 있을 때, 깍두기 머리 사내는 창고의 방향을 바라보며 어눌하게 말했다.“우리 모두가 보스를 구하러 가면 아가씨는 어떻게 합니까? 여기 인적이 드문데 설마 혼자 두고 가실 겁니까?”그의 말을 들은 김겸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인적이 드물다는 건 아무도 이곳에 오지 않는다는 거야. 그래서 오히려 안전해. 아가씨는 틀림없이 괜찮을 거야.그리고, 보스는 우리랑 반대쪽에 있어. 우리도 빨리 출발해야 해. 아가씨는 혼자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실 거야.”깍두기 머리 사내는 점점 멀어져 가는 창고 대문을 보며 마음 한 켠은 여전히 찝찝함이 남아있었다.같은 시각, 모든 차량이 출발한 걸 CCTV로 확인한 박예솔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역시! 어떻게 가짜 주소를 보내 그X을 처리해 버릴 생각을...”“내가 뭐랬어? 난 네 편이라고 했잖아.”박예솔의 얼굴에 드러난 승자의 웃음을 보며, 하지호도 입술을 보기 좋게 올렸다.“어때? 내가 준비한 선물은 마음에 들어?”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박예솔은 갑자기 유턴한 차량이 창고의 위치로 돌진하는 걸 보았다.마침 이서에게 손쓰려던 뚱보는 인기척을 듣고
방금 깍두기 머리 사내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이서는 지금쯤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테다.이서는 고개를 저었다.“난 지금 당장 그 사람을 보고 싶을 뿐이에요.”이서의 눈동자에 맺힌 눈물을 본 깍두기 머리 사내는 말투가 다소 누그러들었다.“꼭 가셔야겠어요? 우리 팀... 아니, 동료들이 이미 그쪽으로 갔으니 H선생님은 틀림없이 무사할 겁니다.”“저도 갈래요. 그 사람이 무사한 걸 봐야 안심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부탁해요, 저 좀 데려다주세요요.”그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어서 가시죠.” 이서는 감격해서 말했다.“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가는 길에 두 사람은 어떤 대화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지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한 시간 여 지났을 때 깍두기 머리 사내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스피커 폰으로 돌렸다.“형님, 보스... 아니, H선생님은 어떻게 되셨습니까?”[괜찮아, 병원으로 모셨어.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여기 도착했을 때 아무도 없더라. 이상하지?]하지호의 부하들과 한바탕 격전을 버릴 생각으로 현장에 도착한 김겸은 현장에 개미 한 마리 안 보이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환의 몸에서도 상처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사진 속 얼굴의 피는 지환이 다쳤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쇼였다.“어느 병원으로 모셨어요? 아가씨가 H선생님을 뵙고 싶어 해서요...”깍두기 머리 사내는 긴장한 듯 김겸에게 이서가 같이 있다고 슬쩍 언질 줬다.김겸은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입을 뗐다.[아니 뭘 귀찮게... 응? 아가씨랑 같이 있다고?]“네.” 이서는 그를 따라 김겸을 불렀다.“저기... 안녕하세요, H선생님이 어느 병원에 계시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아, 그건...]“제발 알려주세요, 그분이 무사한 걸 제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이 될 거 같아요...”김겸은 이서의 상황을 십분 이해한 듯 잠깐 고민 후 대답했다.[그럼...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보고 말씀드릴게요.]김겸은 말을 마치고는 곧 전화를 끊었다.
같은 시각, 하이먼 스웨이의 집에 머물고 있는 배미희는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깜깜 모른 채 하이먼 스웨이와 함께 이서의 글을 보고 있었다.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배미희는 독자로서 소설에 푹 빠져 있었다. 뒷이야기가 궁금해 좀처럼 손을 놓을 수 없었다.“너무 재밌네요. 그런데 왜 이서의 글속에서 스웨이 여사의 문필이 보이는 거 같죠? 설마 이서에게 특별 과외라도 해준 거예요?”이미 한 번 다 읽었지만, 배미희는 아쉬운 듯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이 원고를 처음 봤을 때, 나도 같은 생각이었어요.”“처음 봤을 때라니요? 이 원고 본 적 있는 거예요?”“네, 이서가 전에 썼던 내용이에요.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이서가 옛날 기억을 잊고 다시 한 번 이 원고를 쓴 것 같아요.”배미희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똑 같은 내용인가요?”“네.”하이먼 스웨이가 한숨을 내쉬었다.“이야기 줄거리를 마음속 깊이 새겨놨었나 보네요.”배미희도 따라서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게요, 얼마나 좋아했으면... 기억 잃은 게 아쉬울 따름이예요. 안 그랬으면 아마도 스웨이 여사처럼 작가의 길을 걸었을 텐데.”맞장구를 치려던 하이먼 스웨이는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했다.“아, 저는 다음 달에 열릴 세계적인 대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잖아. 이서에게 공모전에 참가해보라고 하는 건 어때요?”“그래요, 아무래도 재능을 썩히기는 너무 아깝죠. 알겠어요, 내가 집에 가서 얘기해 볼게요. 아마 좋아할 거예요.”하이먼 스웨이의 얼굴에 서글픈 웃음기가 돌았다.“난 이서에게 미안한 게 많아요...”“네? 그게 무슨 말이예요?”“이서를 처음 만났을 때 나랑 마음이 참 잘 맞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수양딸로 삼았던거고요. 그런데 가은이를 찾고 난 뒤, 그녀가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서와 인연을 끊다시피 했어요. 그래서 이서를 생각할 때마다 늘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배미희는 솔직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내가 보기에 스웨이 여
윤이서는 결혼했다.그러나 결혼 상대는 그녀가 8년 넘게 사랑을 했던 약혼자인 하은철이 아닌 만난 지 5분도 안 된, 기본적인 정보만 대충 아는 남자였다.“후회되시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사무소 대기실에서 남자는 조금 귀찮다는 눈빛으로 윤이서를 흘겨보았다.윤이서는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머릿속은 하은철의 차갑고 매정한 얼굴이 떠올랐다.3일전, 줄곧 윤이서를 피했던 하은철이 직접 그녀를 저녁식사에 초대를 했고, 전화를 받은 그녀는 순간 지난 8년간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정성껏 꾸미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약속장소에서 도착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은철뿐만이 아니라 그와 손을 깍지를 낀 채 휠체어에 앉아 달콤한 미소를 짓고 있는 윤수정도 함께 있었다.--그녀의 사촌 여동생!그녀가 아직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르고 있을 때, 하은철은 갑자기 폭탄발언을 했다.“네 신장을 수정이에게 주면 너와 결혼할게.”윤이서는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몸이 굳어지며 믿을 수 없단 듯이 하은철을 바라보았다.맞은편 남자의 눈빛은 시종 차갑고 증오로 가득 찼다. 마치 자신을 8년 동안 정성껏 뒷바라지 한 약혼녀가 아닌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도 보는 것 같았다.그녀는 마치 갈 곳을 잃어 절벽에서 추락하는 것 같았다.하은철과 어릴 때 약혼한 사이였고, 16살 되던 해 귀국한 후, 하은철을 걷잡을 수 없이 사랑하게 되었다.이 8년 동안 그를 뒷바라지 하기 위해 그녀는 빨래와 밥하는 것을 배웠고, 또 그에게 걸맞는 아내가 되기 위해 피아노, 그림 등을 배웠으며 심지어 그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오직 그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와 결혼해주기 꿈꾸며.그러나 현실은 그녀에게 매몰찼다. 하은철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촌 여동생을 사랑하고 있었다.심지어 그의 애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전혀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도
“무슨 문제 있나요?” 하지환은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윤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벌리고 있다가 또 하지환이 오해할까 봐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아니요, 가요.”어차피 언젠가 마주해야 할 문제였다.도중에 윤이서는 하은철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스크린이 끊임없이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윤이서는 마치 지난 8년 동안 비굴했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전에는 모두 그녀가 먼저 하은철에게 전화를 걸며 그의 관심을 끌려했다.그러나 하은철은 단 한 번도 먼저 그녀에게 전화를 지 않았다.설령 그녀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한다 하더라도 그는 한 마디 관심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윤수정을 위해 그는 몇 번이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두 사람 사이의 차이는 정말 컸다.“안 받아요?” 조수석에서 눈을 감고 쉬고 있던 하지환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윤이서는 남자의 완벽한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록 그의 표정을 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왠지 모르게 그가 짜증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잠시 망설이다가 그녀는 수신 버튼을 눌렀다.입을 열기도 전에 맞은편 하은철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윤이서! 너 당장 병원으로 오지 못해! 지금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너 기다리고 있는지 알아? 수정이는 얼마나 괴로운지 아냐고? 너 어떻게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어? 나는 이미 너와 결혼하는 것에 동의했는데, 넌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거야?!”윤이서의 입가에는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비록 하은철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하은철의 마음속에 있는 자신이 그렇게 형편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이왕 이렇게 된 이상…….“내가 원하는 게 뭔지 잘 알잖아?” 윤이서의 눈빛은 차가워졌다.“난 너의 사랑을 원하는데, 너는 줄 수 있어?”“뻔뻔한 년!”하은철은 그녀를 비꼬았다.“나는 절대로 너 같은 여자 사랑하지 않을 거야! 윤이서, 너 지금 오면 아직 하씨 집안 아
윤이서의 가슴은 놀라움에 줄곧 두근거렸다.마치 바다에서 떠 있다 마침내 부목을 잡은 것 같았다.고개를 들자 그녀는 마침 하지환의 눈빛과 부딪쳤다.그의 눈빛은 더 이상 장난기가 없었고, 오히려 무척 다정했다. 그 순간, 윤이서마저 하마터면 그에게 속아 넘어갈 뻔했다.그녀는 황급히 윤재하와 성지영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놀라서 소파에 주저앉았다.한참 뒤, 윤재하는 먼저 반응하여 고개를 들어 윤이서에게 물었다.“이서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윤이서는 막 입을 열려고 했지만 하지환은 그녀를 자신의 뒤로 감쌌다.이런 전 없었던, 누군가에 의해 보호받는 느낌은 그녀의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고 이때 귓가에서 하지환의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렸다.“오늘 금방 혼인 신고를 했는데, 정말 너무 바빠서 두 분께 미처 알리지 못했네요.”윤재하는 화를 참으며 이성을 유지했다.“이서야!”윤이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말했다.“네, 저 사람 말이 모두 사실이에요. 난 결혼했고, 그 이유는 바로 하은철과 결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지영이 달려와 윤이서의 두 어깨를 쥐고 말했다.“이서야, 너 왜 그래? 너 줄곧 은철을 좋아했잖아, 지금 은철이 마침내 너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너 어떻게…….”그녀는 갑자기 경계하며 하지환을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너 솔직히 말해봐, 누가 널 협박한 거 아니야?”성지영이 하지환을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고 윤이서는 얼른 설명했다.“엄마, 아무도 나를 협박하지 않았어요. 나는 그냥 날 전혀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그녀는 지쳤다.그리고 더 이상 그에게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성지영의 손톱은 윤이서의 살에 깊이 파고들었다.“이서야, 너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니? 네가 은철과 혼약을 맺었을 때부터 우리는 널 그의 미래의 아내로 키웠고, 네가 시집가는 것은 윤씨 가문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지, 그 따위 사랑을 위한 것이 아니야!”윤이서는 통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