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하은철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생각이 나지 않아 아예 그의 옆에 앉았다.“다른 사람이 맸었나봐요.”그제야 긴장이 풀린 하지환은 무심코 대답했다.“응.”하은철은 맥주 한 모금을 더 마시더니 그제야 진정되었다.“참, 삼촌, 나갈거예요?”하지환은 화면속의 윤이서를 힐끗 보더니 이마에 손을 얹고 긁적이며 말했다.“아니야, 그냥 여기서 보는 게 더 재미있어.”하은철은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럼 먼저 나가겠습니다.”윤이서와 한 식탁에서 밥을 먹을 생각에 관자놀이가 아파났다.현재 이 시각, 윤이서는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두 사람을 본 다른 하 씨 가문의 사람은 눈치를 보면서 아첨을 떨었다.“이서 씨, 정말 어르신께 잘 하네요. 평소 어르신은 잘 웃지도 않는데 오늘은 이서 씨가 있어서 얼굴에 꽃이 폈네요.”비록 잘 보일려고 한 말이긴 하지만 이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윤이서는 웃기만 할뿐 뭐라고 대답하지 않았다.이때, 하은철은 이미 연회장에 도착을 했다. 윤이서에 대한 칭찬를 들은 하은철은 문득 둘째 삼촌이 떠올랐다. 윤이서와 몇번밖에 만나 본적 없는 삼촌은 그녀를 너무 보호해 주는 것 같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시선이 윤이서에게 쏠렸다.“은철이가 왔구나. 윤이서 옆에 앉거라.”말을 마치자 둘의 사이가 생각난 하도훈은 말을 바꿀려고 했지만 하은철은 이미 윤이서 옆에 앉아있었다.이것을 본 하도훈과 어르신은 순간 눈을 마주쳤고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요즘 하은철이 윤이서를 싫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것도 좋은 징조이다.다른 사람들도 서로 알고 있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자리에 앉는 하은철은 두통수가 시려났다. 하지만 뒤로 돌아보면 아무도 없었다.윤이서는 옆에 있는 하은철을 무시한 채 어르신에게 물었다.“할아버지, 둘째 삼촌은 언제 오시나요?” 연회가 곧 시작되는데 하지환이 보이지 않자 오늘 밤 또 못 만날까 봐 걱정했다.“둘째 삼촌? 벌써 도착했는데.”하은철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그제야 윤이
미친년!‘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은철이 오빠를 꼬셔? 정말 뻔뻔스럽구나!’하지만 윤이서가 곧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니 윤수정은 점차 평온해졌다.윤이서는 하은철한테서 시선을 거두고 몸을 가볍게 뒤로 젖히며 말했다.“도련님께서 말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그녀는 직원들에게 물어보면 분명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윤이서의 대수롭지 않은 태도는 하은철을 자극했다. 도대체 왜 자기한테만 차갑게 대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화내려는 순간 민예지가 와인을 들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하은철을 보고 미소를 짓더니 바로 윤이서에게 시선을 돌렸다. 입구에서 윤이서에게 기회를 뺏긴 것에 복수를 하고 싶었다. 윤이서가 준비한 선물이 고작 2억 정도 되는 서예라는 것을 알고 비웃으려고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시선이 느껴 진 윤이서는 너무 불편해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민예지는 술잔을 들고 어르신에게 인사를 했다.“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 아버지를 대신해 인사드리겠습니다. 만수무강 하십시오.”어르신은 흐뭇하게 웃으며 말한다.“그래, 고마워.”민예지는 입술을 오므작거리고 다시 윤이서에게 시선을 돌렸다.“할아버지께서 최근 골동품에 뺘졌다고 들었어요.”“맞아, 늙으니까 좋아하는 것들을 찾게 되더라.”“그럼 제가 드리는 선물이 마음에 들거예요.”“그래? 어떤 선물인데?”민예지는 직원을 시켜 선물을 가져오라고 했다. 어른신이 정교한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에메랄드로 만들어진 작은 코담배통이 들어있었다. 또한 좋은 뜻을 가진 물건이기도 하다.어르신은 선물을 손에 들고 이러저리 감상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건륭시기의 코담배통입니다. 이것을 찾기 위해 온데간데 돌아다녀 가까스로 찾았습니다.”“참 고맙네, 이게 비쌀 건데.”민예지는 웃으며 윤이서를 바라보았다.“아주 싸요. 겨우 100억 정도밖에 안됩니다.”100억이라, 너무 비쌌다. 그러나 어르신한테 잘 보여서 하지환와 결혼하게 된다면 이 돈은 아무것도 아니였다.가장
“그럼 가져와 봐.”민예지는 직원들에게 지시했다.하지만 직원들은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어르신을 쳐다보았다.“가져와, 나도 이서가 준비한 선물을 보고싶어.”직원들은 그제서야 가지러 갔고, 곧 두루마리를 들고 돌아왔다. 펼쳐보니 조지겸의 서예작품이 였다.이 사람은 업계에서 별로 유명하지 않다. 민예지가 홧김에 조지겸의 작품을 사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람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이것을 본 민예지는 순간 비꼬는 듯 입꼬리를 굽혔다.“윤이서, 이것이 바로 네가 준비한 선물이야? 이런 서예가 할아버지의 신분에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 동안 할아버지가 너를 얼마나 이뻐해 줬는데.”다른 사람들도 소곤대기 시작했다.“할아버지가 괜히 예뻐해줬네, 유명하지고 않는 작품을 선물해주다니.”“그러니 도련님이 널 안좋아하지, 말만 잘해서 뭐해, 일을 이 따위로 하는데.”“…….”평소라면 하은철은 분명 기뻐하겠지만 오늘은 왠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괴로웠다.그는 윤이서를 바라보았다.윤이서는 차분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서예 앞으로 다가왔다.“몇 억짜리 선물은 분명 할아버지의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저의 전재산이에요.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웅장한 글씨체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고 특별히 도서관에 가서 모든 서예가의 작품을 찾아보니 조지겸이 가장 어울렸습니다.”“조지겸은 비록 유명하지 않지만 그의 작품은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글씨체이기에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민예지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윤이서를 힐끗 쳐다보며 말을 하려는 순간 어르신이 떨며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조지겸, 정말 그의 작품이란 말인가!”세월에 날이 간 거친 손은 서예 위로 향했다가 멈췄다. 어르신은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이 모습에 다들 놀라 있었다. 필경 어르신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 였기때문이다.하도훈은 얼른 앞으로 나아가 어르신을 부축였다:“아버지, 괜찮으세요?”어르신은 눈을 감으며 손을 흔들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마음을 가라앉혔는지 입을 열었다.“50여년전,
집사는 소리없이 윤이서에게 다가가더니 어르신에게 물었다.“어르신, 이런 귀중한 관요는 바로 댁으로 운송하시죠?”어르신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지시했다. “그래, 지금 당장 사람을 불러 이것을 집으로 가져가게.”어른신이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아 그제야 한숨을 돌리게 된 윤이서는 감격스럽게 집사를 바라보았다. 집사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연회장을 나갔다.다른 사람들도 분분히 잔을 들고 어르신에게 축하하러 왔다.“어르신,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받은 것을 축하합니다. 정말 기쁘고 축하할 만한 일입니다.”“이서 씨는 정말 효심이 크네요.”“그래그래,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어르신한테 이처럼 지극정성이니, 어르신은 정말 복이 많으십니다.”“…….”여러 사람들의 칭찬에 어르신은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민예지는 이미 술을 권하러 온 사람들에 의해 구석진 곳으로 밀려났다. 사람들이 윤이서 곁에 모여 그녀를 칭찬하는 모습을 보고 민예지는 화가 치밀었가.지금 당장이라도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외모와 자질이 그녀보다 못라다 해도 돈에서 밀리는 것은 너무 화가 났다.민예지는 조심스럽게 이송되는 관요를 보더니 갑자기 눈빛이 더욱 음험해졌다.‘아니야! 윤이서가 무슨 수로 이렇게 귀한 관요를 살 수 있단 말인가? 분명 문데가 있을 것이다.’……술을 권하던 사람들이 모두 흩어지자 윤이서는 그제야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그녀는 다들 주의하지 않은 틈을 타서 연회장을 빠져나왔다.마침 홀 밖에 대기중인 집사를 만났다.“주 집사님.”집사의 성은 주 씨이고 할아버지 옆에서 일한 지가 거의 50여년이 더 되었다.“네, 아가씨.”“그 송대 관요 말인데요…….”주집사는 윤이서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이 웃으며 대답한다.“어르신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둘째 삼촌이요?”윤이서의 심금은 가볍게 울리기 시작했다.“네.”“지금 어디에 있어요?”“지금 휴게실에 있습니다. 만나시겠습니까?”“저를 도와주셨는데, 직접 가서 인사라도 하고 싶습니
그녀는 긴장해서 하지환의 옷깃을 붙잡고 두 눈에는 안개가 자욱했다.하지환의 동작은 잠시 멈췄고 마음속의 불쾌함을 억누르며 일어나 옷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갔다. 문밖에서 하은철과 30분 정도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멀어져 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윤이서는 이것이 하지환이 그녀를 위해 만들어 준 도망갈 기회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얼른 옷을 챙겨입고 몰래 문을 열었다. 복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는 재빨리 화장실로 걸어갔다.칸막이에 들어간 윤이서는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쳤다. 거울 속의 여인은 두 눈이 흐릿하고 볼이 붉게 물들어 봄빛에 젖은 장미처럼 요염하게 피어난 것 같았다.그녀의 볼은 약간 뜨거워졌고 귓가에는 아직도 하지환의 숨결이 스쳐 가는 것 같았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일어나서 밖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려던 참에 문밖에서 갑자기 성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수정아, 이 일은 다 너의 덕분이야. 너의 언니가 은철이 하고 결혼한다면 난 너를 푸대접하지 않을 거야.”“숙모, 감사합니다.”윤수정의 달콤한 목소리는 마치 쇠바늘처럼 윤이서의 심장 깊숙이 파고드는 것 같았다.그녀는 한사코 팔뚝의 살을 꼬집고 나서야 소리를 내지 않았다.밖에서 성지영의 말소리는 계속되었다.“내가 너의 언니한테 무대에 올라 결혼 발표하라고 재촉할 테니 얼른 화장을 고치고 와. 이 좋은 기회를 놓치면 안 되지.” “네, 알겠습니다.”화장실 안은 금방 조용해졌다. 그리고 휠체어가 미끄러져 가는 소리가 들렸다.윤이서는 팔을 꽉 부여잡았고 손등에는 핏줄이 솟았다.순간, 윤이서는 더 이상 참지를 못하고 쾅- 하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한창 화장을 고치고 있던 윤수정은 고래를 돌리자 걸어 나오는 윤이서를 보고 감짝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언니…….”윤이서는 재빨리 윤수정 앞으로 다가가 뺨을 때렸다.탁-그 소리는 쟁쟁하고 우렁찼다. 윤수정의 얼굴은 순식간에 부어올랐다. 그녀는 미친 듯이 휠체어에서 일어나 두
윤이서의 두 눈은 빨갛게 충혈되었고 윤수정을 무섭게 노려보았다.그 눈빛은 마치 윤수정을 생으로 삼킬 것만 같았다. 윤수정은 놀라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처음으로 대갓집 규수의 몸에서 무서운 살기를 느꼈다.“윤이서, 너 뭐 하는 짓이야?”윤이서는 차갑게 웃으며 잡고 있던 윤수정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풀었다.“좋아, 너는 내가 하은철과 결혼하기를 그렇게 바라는 거지? 그럼 오늘 내가 바로 발표해 줄게. 나는 네가 내 들러리가 되어서 다이아몬드 결혼반지를 고르는 것부터 결혼까지, 하 씨 가문의 작은 부인만이 이룰 수 있는 행복이 어떤 건 지 보여 줄 거야. 그리고 이러한 행복은 네가 평생 바래도 얻을 수 없는 것이야.”“너는 이미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맹세했으니 만약 네가 감히 하은철과 결혼한다면 할아버지께서 제일 먼저 승낙하지 않으실 것이야.”윤수정의 하얗게 질린 얼굴빛이 설상가상으로 더욱 하얗게 변했고 손가락은 매끄러운 바닥을 힘없이 긁으며 윤이서의 발목을 잡으려 했다. “윤이서, 너 이 독한 년!”윤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떠났다.화장실을 나와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 외진 곳에 서 있자 팽팽한 두 어깨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두 손은 허약하게 금빛 유리 거울을 누르고, 의기소침하게 고개를 들고 거울 속의 눈동자가 붉고 머리가 헝클어진 여인을 쳐다보았다.눈을 깜빡이자 눈앞의 거울은 안개가 낀 듯 흐미해져 왔다.거울에 반사된 불빛은 검은 먹구름이 되어 그녀를 향해 무겁게 내려왔다.윤이서의 세계는 여태껏 암담했다.부모님은 그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단지 하 씨 가문의 부인으로 되기를 발했다.하은철은 그녀를 혐오했다.윤수정은 그녀가 죽기를 원했다.그녀는…….이때,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백열등의 눈 부신 빛이 문틈으로 쏟아져 나왔다. 강한 빛에 윤이서는 고개를 들자 한 쌍의 간절한 눈동자와 부딪혔다.하지환도 윤이서를 알아보았고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고 심장이 멈추어 설 것만 같았다.“또
윤이서는 하지환의 이런 행동에 감염되어 천천히 봉투를 열자 그 안에는 붉은색 집 계약서가 들어 있었다. 첫 페이지의 집주인 란에는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그녀는 지체 없이 아래로 계속 읽었다.구계18도 B좌 103.구계18도는 바로 윤이서의 부모님께서 살고 계신 별장 구역이고 B동 103은 바로 그날 함께 보러 간 별장이었다.“당신 미쳤어요!”윤이서는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당신 정말 샀어요? 얼마 주고 샀어요? 당신 어디서 이렇게 많은 돈이 생겼어요?”하지환은 눈을 가늘게 뜨고 윤이서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당신 마음에 들어 했잖아요?”그의 당당함에 윤이서는 숨이 가슴속에 틀어박혔고 말투도 조금 전보다 부드러워졌다.“아무리 마음에 든다 해도 함부로 돈을 쓰면 안 돼요. 나중에 결혼해서 생활하려면 돈 쓸데가 얼마나 많은데요!”하지환은 웃기만 했다.“저랑 같이 살 거예요?”이 몇글자는 듣기만 해도 마음이 너무 편했다. 그날 윤이서가 한 ‘계약 결혼’만큼 귀에 거슬리지는 않았다.윤이서의 귀밑은 순간 빨개졌고 횡설수설했다.“저…… 그런 뜻이 아니에요…… 에이, 아무튼 당신 함부로 돈을 써서는 안 돼요.”하지환은 윤이서의 손을 잡고 있었고 손끝엔 은근 힘을 주었다. 그는 마음속으로는 기뻐했지만 말투는 오히려 담담했다.“얼마되지 않아요.”윤이서는 하지환이 없으면서 자기한테 잘 보이려고 어렵게 산 거라 생각했다.그녀는 마음속으로 엄청 감동을 받았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하지환 씨, 당신이 사 준 별장 정말 고마워요. 집 계약서에 제 이름까지 적어준 것도 그렇고요. 하지만 전 이 선물을 받을 수 없어요.”하지환의 얼굴색은 약간 변했고 말투도 딱딱해졌다.“왜요?”“왜냐면 이것은 당신이 힘들게 번 돈으로 산 것이기 때문이에요. 비록 당신이 어떻게 계약금을 모았는지는 모르지만 이 집 한 채 때문에 평생 은행을 위해 아득바득 일해야 하잖아요. 저는 당신이 집 한 채를 위해 남은 인생을 망치
안돼!마음 깊은 곳으로 부터 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는 곧 하은철과 결혼 발표를 하게 될 것이니 이같이 귀중한 선물을 받을 수 없었다.하지만…….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하지환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또 고개를 들어 하지환의 깊숙한 이목구비를 보고 마음이 더욱 복잡해졌다.눈동자에는 또 물안개가 끼기 시작했다.“왜 또 그래요?”하지환은 윤이서의 턱을 고이 받쳐 들고 애정이 어린 말투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무력함이 묻힌 목소리로 물었다.“당신은 왜 이렇게 잘 울어요. 정말 울보예요.”말을 마치자 하지환의 입술은 나비처럼 가볍게 윤이서의 눈꼬리에 내려앉았다. 소중히 여겨진 그 느낌은 마음 끝에 시든 작은 꽃이 새 가지를 내리게 한 것만 같았다.“그런 거 아니에요…….”윤이서는 하지환을 밀어내고 거리를 벌려 그에게 홀리지 않으려고 했다.“저는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요. 너무 오래 나와 있었어요. 할아버지께서 저를 찾으실 거예요.”하지환은 그녀의 다급한 걸음걸이와 버려진 집 계약서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서는 심란한 마음을 다잡으며 총총히 그 자리를 떠났다. 발걸음이 급해서 하마터면 마주 오는 하은철과 부딪칠 뻔했다.하은철은 몸을 피하며 비웃으며 말했다“왜 또 한 번 내 품에 안겨 보려고? 너의 작은 수작 누가 모를까 봐?”윤이서는 기분이 극도로 나빠졌다. 더 이상 하은철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하은철의 옆을 돌아서 갔다.그러나, 몇 걸음 못 가서 하은철에게 끌려갔다.“윤이서, 이제 그만 감정 갖고 장난쳐!”윤이서는 독사라도 만난 듯 하은철을 재빨리 따돌렸다. 윤이서는 차가운 눈빛으로 하은철을 바라보았다.“하은철, 너의 그 잘난 척하는 얼굴 좀 걷어치워. 옛날 너를 좋아했던 거는 사실이야. 하지만 내가 사랑했던 건 내 상상 속의 너였어. 세가자제, 학문도 있고 재능도 있고 상업 천재인 너 말이야.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어. 너는 내 남편 손끝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