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있었던 일 때문에 성연과 무진은 엠파이어 하우스로 돌아가지 않고 고택에 남아 할머니 안금여와 고모 강운경 곁을 지켰다.젊은 자신들이야 문제없지만, 연로한 할머니 안금여 회장이 저들을 상대하며 마음 상한 것을 생각하니 속이 상한다.강명재와 강명기, 두 사람은 정말 양심이란 게 있는지 모르겠다.저녁 식사를 마치고 침실로 돌아간 성연과 무진.오늘 고택에서 벌어진 상황을 생각하자 성연은 분노가 치밀었다.“아니, 당숙 두 분 너무 무례하지 않아요? 자신들이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하나? 그래도 여기는 강씨 본가 고택인데, 여기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며 할머니를 몰아세우다니. 자기들도 체면 깍이는 건 싫어하면서!”저들이 위세를 부리던 모습이 떠오른 성연의 눈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만약 이 일로 할머니의 건강이 나빠지기라도 한다면 저들 목숨 몇으로도 배상하지 못할 것이다.무진이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둘째, 셋째 일가 사람들은 늘 그랬어. 저들에게 도덕이니 양심이니 이런 것들은 말해도 소용없어.”저들도 낯짝이 있다면, 작정한 듯이 저 많은 사람을 끌고 와서 본가를 곤란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다들 한 가족, 한 가족이라고 말들 하지만, 도대체 누가 누구와 한 가족이고 또 누가 누구와 적인지, 저들이 그걸 모른단 말인가.“앞으로 저들 때문에 할머니가 힘드시지 않도록 잘 지켜드려야 해요.” 할머니 안금여는 이미 연로한 나이이니 이런 일들은 자연히 손아래 젊은 세대인 자신들이 상대해야 하는 게 맞다.안금여 같은 노인이 걱정하게 할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그건 맞아. 하지만 우리 강씨 집안 일에 너까지 끌어들인 셈이야. 넌 우리 때문에 너까지 힘들어졌다는 생각은 안 들어?” 강씨 집안에서 벌어진 일로 성연이 이런 번거로운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한 무진이 성연에게 물었다.만약 성연이 강씨 집안에 오지 않았다면 이런 힘든 일들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어떻게 그래요?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어요. 할머니가 평소 저한테 얼마나 잘해 주
성연의 반응이 빨랐다. 얼른 안금여를 부축해서 자신의 침실로 모셨다.할머니 안금여를 침대에 눕힌 뒤에 이불을 꼼꼼히 덮어드렸다.이 모든 과정을 끝낸 후에 성연은 강운경에게 말했다.“고모, 할머니 몸을 좀 닦아드려야 할 텐데, 따뜻한 물 좀 받아 주실래요?”반대쪽에 서 있던 무진이 다급히 응급 콜을 불렀다.성연이 주위를 둘러보니 강운경과 무진 모두 바삐 움직이느라 성연 쪽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주머니에서 천천히 은침을 꺼낸 성연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안금여에게 시침했다.성연의 동작은 아주 가볍고 민첩했다. 맥을 짚은 후 증상을 살핀 후에 안금여의 혈 자리에 침을 찔러 넣었다.지금 침은 겨우 보조적인 작용을 할 뿐이지만 발작 상태의 안금여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침을 맞은 안금여의 몸이 서서히 이완되어 갔다.하지만 두 눈은 여전히 꼭 감긴 채였다.입에서도 더 이상 이상한 말을 뱉지 않았다.안금여의 상태를 지켜보던 성연이 눈살을 찡그렸다.조금 전 안금여가 보인 모습은 극도의 공포상태에서 대뇌가 혼란을 일으켰을 때 나타나는 증세였다. 제대로 버텨내지 못할 시에는 정신착란이나 발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그래서 성연은 일단 침을 놓아 할머니 안금여를 잠시 진정시킨 후에 잠을 재웠다.그렇지 않았으면 할머니의 증세는 곧 더 이상 통제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했을 터였다.할머니를 진정시키자 무진이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침대에 얌전히 누운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무진은 또 다시 가슴이 철렁했다.“할머니가 왜 갑자기 조용해지신 거지? 기절하신 건가?”성연이 침을 놓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무진은 할머니에게 또 다른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 앞섰다.“별일 없을 거예요. 잠이 드신 거예요.” 조금 전 맥을 짚어 본 성연은 안금여의 몸 상태가 그리 나쁜 편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견뎌 내실 거야.’그때 강운경이 따뜻한 물을 준비해 왔다.조금 전까지 흥분 상태였던 안금여의 이마는 온통 땀투성이였다.강운경이 따뜻한
한참이나 이어지던 침묵을 깨며 무진이 강운경에게 물었다.“고모, 어떻게 된 일일까요?”강운경은 조금 전 엄마 안금여의 모습을 보고 놀랐던 상황을 회상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할머니는 주무시다 꼭 일어나셔서 화장실에 가셔.”무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모 강운경의 말에서는 전혀 실마리를 얻을 수가 없었다.“고모, 여기 계시면서 혹시 뭐 듣거나 본 건 없으세요? 아니면 누군가 할머니를 해치려고 했다던지요.”이건 분명 할머니 안금여를 겨냥한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집 안 그 많은 사람 중에 굳이 안금여에게 손을 댄 까닭이 뭐란 말인가.설마 이 일의 배후에 있는 사람이 뭔가를 알고 있다는 말인가?현재 정신을 잃다시피 잠이 든 안금여의 상태는 여전히 불안정했다.할머니의 입을 통해 무언가를 듣는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사소한 것들 속에서 이 일의 내막과 농간을 부린 사람의 목적을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나도 좀 생각해 봐야겠다.” 강운경은 지금 혼란스러운 마음에 머리가 텅 비어 버린 듯했다.엄마 안금여가 바닥에 쓰러진 채 경련을 일으키던 장면만 떠올랐다.평소 늘 정숙하고 단아하던 안금여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 앞에서 낭패스런 모습을 드러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랬던 안금여의 갑작스런 돌변은 강운경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받아들이지 못 한다기 보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이 맞다.나이도 적지 않으신 분이 이제 와서 이런 일을 겪으시다니.가능하다면 엄마가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을 겪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그런데 이 배후의 인물은 한사코 자신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모, 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천천히 생각해 보신 다음에 기억나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 가능한 상세하게요.” 무진은 고모 강운경을 재촉하지 않았다.놀란 마음이 아직 진정되지 않은 강운경을 위해 무진이 시간을 주었다.할머니 안금여에 대해 자신 못지 않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고모를 무진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고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는 별일 없을 거예
침실에서 무진이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 듯한 성연이 강운경에게 신신당부를 했다.“고모, 할머니 보고 계세요.”성연이 혼자 나가는 게 불안했던 강운경은 나가지 말라고 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말을 하기도 전에 성연은 이미 무진을 쫓아 나갔다.무진을 쫓아가며 성연은 비서 손건호에게 연락했다.이전에 휴대폰에 번호를 저장해 두었더니 이럴 때 편했다.본래 고택 가까운 곳에서 대기 중이던 손건호는 성연의 연락을 받은 즉시 옆에 있는 수하들에게 신호를 보냈고, 수하들은 바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성연이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손 비서님, 사람들을 좀 데리고 오셔서 고택 주위를 살펴 주세요. 의심스러운 사람이 보이면 꼭 잡아야 해요.”“네, 작은 사모님.” 손건호가 즉시 대답했다.고택에 침입한 사람의 배후에는 분명 사주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이 귀신 소동을 벌인 사람을 잡는다면 오늘 밤 사건의 진상도 파악이 되겠지.손건호와의 전화를 끊은 후, 성연은 다시 무진이 간 방향을 따라 뛰어갔다.무진이 검은 그림자를 쫓고 있지만, 그림자의 동작이 정말 너무 빨랐다.또한 새카만 밤중에 전신에 검은 옷을 입은 그림자를 식별하기는 어려웠다.결국 그림자는 무진을 따돌리고 달아나버렸다.쫓기는 과정에서 상대방은 녹음기를 집어 던졌다.무진이 녹음기를 주워 들고 켜니 바로 강운경과 성연이 들었다는 그 괴이한 방울 소리가 흘러나왔다.무진의 뒤를 쫓아갔던 성연의 귀에도 자연히 이 방울 소리가 들렸다.쫓아온 성연을 돌아본 무진이 물었다.“너 왜 따라 나왔어?”성연이 대답했다.“무진 씨가 걱정되어서요.”“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다음에는 절대 따라오지 마.” 무진이 볼 때 성연은 겨우 어린 여고생일 뿐이다.만약 그 놈이 나쁜 마음을 먹었다든지 성연을 인질로 삼기라도 한다면, 저항할 능력이 전혀 없는 성연이 다칠 수밖에 없었다.그런 상황에 자기 혼자라면 괜찮겠지만 성연이라면 끝장이다.그러니 성연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세 사람이 침실에서 안금여를 지켜보고 있는 동안 구급차가 도착했다.안금여는 신속하게 병원으로 옮겨졌다.구급차에 많은 인원이 탈 수 없었기에 성연과 강운경을 차에 태운 무진이 직접 운전해서 구급차의 뒤를 따라 갔다.무진의 옆 조수석에 앉은 성연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걱정 안해도 될 거예요. 할머니는 아무 일 없으실 거예요. 그냥 조금 놀라신 것뿐, 괜찮으실 거예요.”“만약 정말 이 일이 둘째, 셋째 일가에서 벌인 짓이라면, 절대 저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강상철, 강상규가 감옥에 들어간 것은 자신들의 업보였다.만약 저들이 계속해서 WS 그룹을 자신들 뒷돈을 챙기는 수단으로 이용했다면 WS 그룹은 머지않아 저들의 손에 무너지고 말 터였다.그러나 저들은 끝까지 알지 못했다. 자신의 이익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스스로를!강명재와 강명기가 이번에 돌아온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본가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 많은 사람들을 고택으로 불러들였다.무진은 여태껏 그 사람들에게 양심 좀 가지라고 지나친 요구를 한 적도 없었다. 저들이 분수에 맞게 처신하기만 한다면 서로 조용히 지낼 수 있었다.그러나 저들이 또다시 자신의 마지노선을 건드린다면, 무진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지금은 아직 증거가 없어요. 두 당숙, 나쁜 마음을 품은 것 같으니 무진 씨도 조사할 때 조심해요.”성연이 옆에서 당부했다.무진의 두 당숙 강명재와 강명기는 저들의 아버지 강상철, 강상규보다 수단이 더 대단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강상철, 강상규는 나이가 많다 보니 죽을까 겁을 내었고. 또 무진의 할아버지와 친형제간이었다. 그렇기에 무진을 비롯해 본가를 상대할 때에 약간은 꺼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두 당숙은 꼭 그렇지는 않을 터였다.할아버지에 의해 쫓겨난 마당에 무슨 좋은 마음을 품고 있겠는가.그러니 저 두 당숙이 돌아왔으니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아니, 저들은 웃으며 인사하고서 뒤에서는 심리전을 펼치며 가장 심약한 쪽을 공략한 게 분명했다.
병원.무진과 성연, 그리고 강운경이 병실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여기는 강운경의 남편 조승호의 병원이다. 최근 병원 일이 바빠지자 원장인 조승호는 직접 병원을 진두지휘해야 했다.며칠 내내 이어진 수술로 집에 돌아가지도 못했다.그렇지 않았다면 집에서 강운경과 함께 있었을 것이다.병실은 무진과 성연이 지키면 되니, 조승호를 귀찮게 할 사람은 없었다.두 시간 후에 안금여가 깨어났다.담당의는 가족들에게 검사 결과를 설명했다.“회장님이 많이 놀라신 듯합니다. 며칠 쉬시면 좋아지실 겁니다.”“선생님, 감사합니다.” 성연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의사를 배웅했다.무진과 강운경 또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 안금여는 안정을 찾았고 별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텐데. 다행히 어쨌든 깨어난 것이다.강상문은 최근 북성에 머물고 있었다.그러나 자신의 일 때문에 고택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지냈다.어머니 안금여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은 강상문이 즉시 달려왔다.창백한 얼굴로 병상에 누운 안금여를 본 강상문이 가슴을 움켜쥔 채 안금여를 불렀다.“엄마, 괜찮아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괜찮아.” 안금여가 힘없이 옆으로 고개를 저었다.안금여를 보고 또 살펴보던 강상문은 얼굴에 핏기가 없는 것을 빼면 다치거나 아픈 곳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마음을 놓았다.안금여가 드디어 깨어나 정신이 돌아오자 무진이 물었다.“할머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갑자기 왜 그러신 겁니까?”“할머니, 그때 할머니 모습에 다들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하마터면 우리 전부 놀라서 넘어갈 뻔했어요.” 당시 안금여의 모습을 떠올리던 성연은 이제서야 겁이 났다.당시의 안금여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아마 할머니 당신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놀라서 이성을 잃은 상태였으니까.“그래요, 엄마, 멀쩡하게 화장실에 가셨던 엄마가 어쩌다 그렇게 되신 거예요?” 강운경도 걱정스러운
아들과 딸, 손자와 손부 모두가 애타는 마음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안금여가 당시 있었던 일들을 기억나는 대로 말하기 시작하자, 모두 집중해서 들었다.당시 야뇨증이 있던 안금여는 원래 자다가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가 이상한 종 소리를 들었다.귀에 익은 듯하다 싶었는데 소리에 이어서 화장실 창문에 창백한 얼굴의 그림자가 보였다.당시 장면을 떠올리던 안금여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그림자만 보인 게 아니라 그 그림자가 네 할아버지의 음성으로 계속 나한테 화를 내며 꾸짖었어.”“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떻게 할머니를 비난할 수 있어요?” 무진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안금여에게 물었다.무진의 기억에 두 분은 늘 사이가 좋으셨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할머니가 하자는 대로 따르셨고,할머니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신 적이 없었다.할머니에게 화를 낸다, 꾸짖는다 하는 이런 단어가 할아버지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맞아요, 엄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버지가 엄마한테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 강운경은 마음속으로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원망했다.엄마 안금여는 자식들과 손자를 키워냈을 뿐 아니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후에는 강씨 집안을 지켜 내신 분이다.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몰인정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버지가 엄마를 욕하실 리가 없다.아이들이 자신을 생각하는 말을 듣고 안금여가 불현듯 웃으며 말했다.“오래 전 일이야. 당시 동남아의 일부 사업 경쟁자들이 귀신 소동을 벌였어. 당시 나는 너무 놀라서 뱃속의 아이를 지키지 못하고 네 아버지와 크게 싸웠지. 그 일로 몇 년이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 나중에 다시 임신을 했고. 그 이후 그 기억을 떠올릴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밤 누가 일부러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한 거야.”안금여도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분명히 아주 오래 전의 일인데다 동남아시아에서 있었던 일이었다.누가 이곳에서 귀신을 가장한 연극을 벌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이전에 그 일이 있었을 때에 그 사실
안금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른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본 그림자는 아기 모습이었어. 아주 요사스럽고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어. 하지만 괜찮다. 지금은 하나 겁나지 않아.”당시에 봤던 그 장면은 확실히 공포스러웠다.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던 안금여는 마음이 놓였다.나중에 아이가 둘이나 생겼다. 그런 귀신 소동을 겪었는데도 말이다.그 일을 벌였던 자들이 짊어진 죄악은 더 무거울 것이다.저들 스스로 부끄러움도 못 느끼는데 자신이 무서워할 게 뭐가 있겠는가?성연이 할머니 안금여의 어깨를 토닥였다.“할머니, 겁내실 거 없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할머니 곁에 있을 거예요.”“그래, 너희가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아니면 이 늙은이는 오래 버티지도 못할 게야.”안금여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한평생 덕을 쌓고 선을 베푼 것은 바로 이날을 위해서였지 싶다.하느님이 이 효심 지극한 자손들을 자신에게 주신 것이다.이 생에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이미 족하다는 생각을 하는 안금여.‘더 이상 바랄 게 없어.’“할머니, 이건 모두 할머니의 공덕이지 저희들이 한 게 아니예요.”성연이 안금여를 따라 웃으며 말했다.‘맞아, 모두 할머니 당신이 강인하게 견디신 거야.’다른 노인들이 똑같이 이런 일을 겪었다면 할머니 안금여처럼 담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안금여도 평지풍파를 겪은 사람인지라, 어떤 일도 쉬이 놀라게 할 수 없었다.‘아니, 할머니는 이제 곧 좋아지실 거야.’“무진아, 성연아, 너희들 앞으로 시간 나는 대로 할머니 곁에 있어드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니?” 옆에 있던 강상문이 두 사람에게 당부했다.자신은 밖에 일이 있어서 시시때때로 어머니 안금여 옆을 지킬 수가 없었다.강운경 또한 자신의 가정을 가지고 있었다.남은 두 사람, 무진과 성연에게 달렸다.두 사람이 번갈아 오면 된다. 어차피 안금여의 곁에는 반드시 누군가 지키고 있어야 하니까.고택에 고용인이 많은 것
“비서는... 그러니까 신경 쓸 필요도 없잖아요! 안 되면 바꾸면 돼죠, 그렇죠, 연 회장님?” 무진은 조롱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웃었다.이 말에 연계진은 전혀 논박할 수가 없었다.‘결국 진혜선도 아직 있어.’‘만약 내가 조수경과 특별한 관계라는 걸 인정한다면, 진씨 가문에서는 이 기회를 틈타서 혼약을 뒤엎을 수 있어.’그렇게 되면 연계진은 조수경을 위해 얼굴을 내밀 수가 없게 된다.눈 깜짝할 사이에 성연은 조수경에게 다가갔다. 조수경은 뒤로 두 걸음 물러나면서 두려운 눈빛이었다.“송성연, 뭘 하려는 거야? 다가오지 마!”“내가 시킨 게 아니야, 그 종업원이 나를 모함하고 있어. 저 종웝원 말 한마디로 나한테 복수하겠다는 거야? 네가 뭔데? 너는 경찰도 아니잖아! 감히 나를 때린다면, 반드시 경찰에 신고하겠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증인이야!”조수경이 횡설수설하자 성연의 손에서 은침이 갑자기 나타났다.‘나는 당연히 난폭한 방식으로 조수경에게 복수하지 않겠어. 그렇게 복수하면 확실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돼.’‘하지만 이 은침은 훨씬 은밀하지!’“조수경 씨,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자기가 잘못한 걸 인정하고 사과하면 돼요. 맞다, 그리고 혜선 언니한테도요!”말을 하면서 천천히 손을 든 성연은 무심코 조수경의 허벅지를 건드렸다.순간, 조수경은 비명을 질렀다. 바로 감각이 없어진 오른쪽 다리가 시큰시큰하고 저려서 전혀 지탱할 수가 없었고, 바로 털썩 한쪽 무릎을 꿇었다.조수경이 성연을 향해 무릎을 꿇은 것이다!모두들 놀라서 멍해졌다.조수경이 은침을 사용해서 조수경의 혈을 찔렀다는 걸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모두가 단지 놀란 조수경이 바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모습만 봤을 뿐이다.완전히 멍해졌던 조수경이 두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면서 일어나려고 발버둥쳤다. 그러나 다리에는 아무런 힘도 없었고, 움직일수록 신경을 자극해서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사방을 훑어본 조수경은 주위 사람들의 눈빛을 보자, 그야말로 감정이
연계진은 음험한 눈빛으로 무진을 힐끗 쳐다보았다.“종업원이 철이 없어서 제가 대신 손을 좀 봤습니다만, 강 대표께서 또 어떻게 처리하실 지 모르겠군요.”연계진은 강호의 습관대로 어깨를 으쓱거렸다.몸을 돌린 무진이 성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어디 다친 데 없어?”“나는 괜찮지만 이렇게 넘어갈 수는 없어요.”옆의 테이블에서 물티슈를 꺼내 그 종업원에게 던져 준 성연은 곧 평온한 표정으로 물었다.“지혈하도록 해요!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렇게 하라고 시켰는지 지목해봐요! 봐요, 연 회장은 당신을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아요. 당신 머리를 깨고 싶다고 바로 머리를 깼잖아요!”순간 연계진의 표정은 아주 난감해졌다.‘이건 내가 주관하는 파티인데, 결국 파티에서 내가 술잔으로 잘못을 저지른 종업원 머리를 때린 거잖아?’순간 자신의 행동이 주변 사람들의 눈에는 양아치처럼 보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연계진이 사방을 둘러보니, 확실히 사람들의 눈빛에는 이질감이 가득했다.무진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일면서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우리 마누라님은 정말 대단해!’20여년전, 연씨 가문은 몰락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밑바닥에서 발버둥치던 연계진은 가까스로 역습을 실현할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밑바닥의 생활이 오래 지속되면서, 연계진의 야만적인 습관은 쉽게 고칠 수 없었다.멍한 표정이 된 종업원은 성연이 자신이 피를 흘리는 것까지 고려해 주자 감히 믿을 수가 없었다.암담한 눈빛으로 물티슈를 손에 들고 있던 종업원은 결국 주머니에서 돈다발을 꺼낸 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조수경을 바라보았다.조수경은 순식간에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바로 저 여자가 제게 준 돈입니다. 일부러 당신들에게 술을 뿌리라고 하면서요!” 종업원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증거가 뚜렷하게 나오자 순식간에 주위의 눈길이 조수경에게 쏠렸다.얼굴을 들 수 없게 된 연계진이 다시 종업원에게 다가가서 큰 소리로 화를 냈다.“네가 죽고 싶은 거지? 무슨 헛소리야!”연계진이 막 주먹을 휘
결혼한 뒤 성연은 자신의 행동과 습관을 조정했다.지금 이렇게 억울한 손해를 입었으니 참을 수 없었다.“혜선 언니, 이건 조수경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분명하네요!”성연이 진혜선에게 일깨워주자, 진혜선도 조수경의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보았다.재빨리 사람들을 가로질러서 무진이 성연의 앞에 도착했다. 성연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상세하게 살펴보면서 물었다.“성연아, 괜찮아? 유리잔에 다친 데는 없어?”고개를 저은 성연은 무진을 보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 옷이 젖었을 뿐이에요.”무진은 한바탕 놀랐지만 눈에는 여전히 분노가 가득했다. 몸을 돌려 온몸의 기세를 폭발하면서 그 종업원을 바라보았다.이때 종업원은 완전히 당황했다. 그는 성연의 신분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 강씨 가문 큰도련님의 신분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정신이 나간 것처럼 순간 털썩 주저앉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강 대표님, 제가 실수로 술잔을 넘어뜨렸습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제가 배상할 테니 용서해 주세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그 공포에 질린 표정에 주위의 손님들은 모두 진짜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성연은 이를 악물고 바로 차갑게 쏘아붙였다.“어디서 연기하고 있어. 고의로 그런 게 분명해!”“무진아. 성연이가 이 종업원이 조수경과 접촉한 걸 봤다고 했어. 조수경에게 사례비를 받고 일부러 우리 둘을 난처하게 한 것 같아.”진혜선도 따라서 말했다.무진이 갑자기 화가 난 표정으로 몸을 숙였다. 두 눈의 포악한 기운은 마치 모든 것을 찢어 발길 것만 같았다.완전히 놀란 그 종업원은 온몸에 맥이 풀리면서 더욱 놀란 표정으로 다시 한바탕 사과하며 용서를 빌었다.이때 종업원의 곁으로 다가간 연계진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갑자기 손에 든 술잔으로 종업원의 머리를 호되게 내리쳤다.이 뜻밖의 사태에 모든 사람이 어찌 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성연과 진혜선은 일제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연계진이 이렇게 야만적이고 난폭한 행동을 할 줄은 전혀 생각
무진이 이 연회에 참가한 목적은 달성했다. 원래 WS그룹과 협력하다가 지금 잇달아 등을 돌린 중소 가문 사람들은 모두 무진이 오자 어색하고 괴로웠다.연계진에게 간 무진은 작별 인사를 잘하고 싶었다.“연 회장님, 당신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인원 수가 여전히 좀 적은 것 같군요. 다음에 시간이 있으면 우리 그룹에 오셔서 좀 떠들썩하게 보내세요!”무진의 편안하고 무관심한 듯한 표정은 이 배신자들을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는 듯했다.연계진의 표정이 순간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 말 속의 비꼬는 뜻은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기에. 작은 눈을 가늘게 뜬 연계진은 억지로 웃는 척하면서 대답했다.“기회가 되면 반드시 참석하겠습니다. 필경 WS그룹과 강씨 가문이야말로 운성에서 가장 큰 기업인 데다가 남쪽에서 가장 강한 가문이니까요.”“과찬이십니다!” 무진은 부인하지 않았다. 결국 상대방의 말이 사실이기에.무진이 성연에게 다가갔을 때, 성연은 여전히 진혜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밤 파티에 참석한 가문들의 수준은 대충 파악했다.‘아무리 들어봐도 그리 강하지 않은 것 같고, WS그룹에도 별 손해가 없는 것 같아.’‘심지어 이들 가문이 연운그룹에 몸을 의탁하는 건 WS그룹에 오히려 도움이 돼. 이들 가문에서 운영하는 기업의 수준도 높지 않고 기술력도 좋지 않기 때문에, 조만간 도태될 범주에 처해 있었어.’조수경은 줄곧 성연과 진혜선을 주시하고 있었다. 현장에 있던 많은 남자들의 눈빛이 모두 두 여자에게 쏠려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질투가 난 조수경은 미칠 것 같아서 마음속에서 욕설을 퍼부었다. ‘두 천한 X들이 분명히 남자들을 유혹하려고 이렇게 요염하게 옷을 입은 거야.’무수한 생각들이 조수경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렇게 두 X들이 위세를 떨치고 그냥 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반드시 망신을 당하게 해야 돼!’눈을 가늘게 뜬 조수경은 옆에 있는 종업원의 귓가에 작은 소리로 당부했다.표정이
“아저씨, 아저씨는 이제 시간을 끌기만 하면 돼요. 나머지 일은 제가 해결할게요. 아저씨도 기꺼이 상철이 형이 WS그룹에서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일하도록 하셨죠. 저는 당연히 아저씨를 믿어요. 게다가 혜선이는 연계진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 혼인도 이렇게 마음대로 결정해선 안 돼요!”진양산과 한참 이야기를 나눈 무진은 마지막에 달래는 말을 했다.무진은 진교철이 결국 이렇게 지나친 행동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진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을 변칙적으로 가택연금 시켰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외출할 때는 모두 암암리에 미행하면서 진양산과 외부의 교류를 단절시켰다.협박하는 방식은 더욱 치욕스러웠다.진양산이 일찍이 해외에서 사업을 할 때 그다지 영광스럽지 못한 일들이 있었다. 국내였다면 그 일들은 결국 운성시에 도움이 되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국외의 일부 부문에 있어서는 아마도 타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진교철은 큰아버지가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으면 해외로 잡아가서 감옥에 보내겠다고 협박했다.물론 진양산 본인은 두렵지 않았다. 진양산이 걱정하는 것은 진교철이 이것을 가지고 진상철과 진혜선 남매를 위협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두 남매는 사촌 동생의 뜻대로 파견을 나가야 할 것이다.그래서 그는 아예 자신이 이 협박을 끌어안기로 작정했다. 진씨 가문이 WS그룹을 벗어나 연운그룹과 함께 하기로 구두로 동의한 것이다.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자, 무진은 마음속에 진교철을 철저하게 유념하게 되었다.그리고 진양산의 입을 통해서 진교철이 지금 마침 유럽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돌아가면 곧바로 샤넬 가문에 연락해서, 그들 쪽에서 진교철을 체포할 방법을 강구하게 해야겠어.’무진이 진양산의 곁을 떠나자마자 연계진이 다가와서 음산한 표정으로 말했다.“지금 강씨 가문과 접촉하는 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알아들으셨어요? 그렇지 않으면 진교철 씨 쪽에서 아주 불쾌하게 생각할 겁니다.”연계진이 온화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경고의 냄새가 짙었다.
당연히 성연을 본 조수경도 두 눈을 크게 뜨고 포악한 기색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저 천한 X이 파티에는 왜 왔어?’‘게다가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저렇게 요염하게 입은 거야? 결혼한 다음에 오히려 이 길로 나서겠다는 거야?’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조수경에게 뜻밖에도 성연이 먼저 다가갔다.‘이 여자는 할머니와 고모를 속였을 뿐만 아니라 무진 씨도 배신했지! 애초에 모질게 마음먹고 관대하게 놓아주지 말았어야 했어.’ 성연은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조수경 씨, 오랜만이에요! 듣자니 지금 연운그룹의 임원이라고 하던데? 당신이 어떻게 임원이 될 수 있었는지 모르겠군요? WS그룹의 내부 자료하고 자리를 바꾼 거 아닌가요?”조수경은 성연이 이렇게 달변으로 변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성연이 사실을 콕 집어내자, 어색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억지로 침착한 척했다.“송성연 씨, 결혼 전과 결혼 후가 그야말로 완전히 딴판이네요! 이제 결혼도 했는데 굳이 왜 이렇게 예쁘게 차려 입었는지 나도 궁금하군요.”“칭찬해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잘못 생각한 모양이네요. 난 뭘 입어서 예쁜 게 아니라 줄곧 예뻤어요!”성연의 말에 조수경은 말문이 막혔다. 원래 조롱하려던 말이 목에 걸리면서 표정은 더욱 좋지 않았다.“송성연 씨, 오늘 저녁 연회의 호스트인 제가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겠지요. 당신이 나를 찾았는데 무슨 필요한 게 있나요?”기세를 지키기로 작정한 조수경이 턱을 치켜들고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오늘 밤, 우리 연운그룹의 연회를 봤어요? 운성의 이렇게 많은 여러 가문들을 초청했어요. 다음에는 당신네 WS그룹과 정식으로 경쟁 관계가 되겠지요. 송성연 씨, 당신이 당신 남편을 잘 내조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성연은 말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건 아직도 자신이 잘 적응하지 못했다고 느꼈다. 그래도 여전히 앞서의 태도대로 행동하면서 눈동자에는 혐오감을 드러냈다.“조수경 씨, 당신이 WS그룹을 배신하고 할머니와 고모를 속인 일은 조
연계진의 환하게 웃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무진이 정말 참석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일부러 도발하기 위해서 초청장을 보냈는데, 무진이 와도 망신만 당할 뿐이라는 걸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그러나 무진의 표정에 드러난 자신감과 얼굴에서 발산되는 담담함, 그리고 시선이 지나가는 곳마다 크고 작은 가문의 자제들이 잇달아 머리를 숙이는 장면들.의심의 여지없이 연계진에게 진정한 제왕 앞에서 매수와 포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말하고 있었다.시선도 마주치지 못 하는 것이 바로 무진의 강력한 억지력이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가슴 속에 응어리가 지자, 연계진의 눈빛이 굳어졌다.바로 무진의 앞으로 걸어가자 두 사람의 눈빛이 부딪쳤다. 그러나 무진의 깊은 눈빛 속에는 짙은 경멸이 스쳐 지나갔다.연계진은 화가 났지만,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강 대표께서 와 주셔서 정말 오늘 밤 이 파티를 영광스럽게 해 주셨군요!”“연계진 씨, 당신이 초청장을 보냈으니 제가 반드시 와야지요. 만약 오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당신을 무서워하는 줄 알겠지요!”무진은 연계진에게 어떤 체면치레도 시켜주지 않고 바로 연계진의 이름을 언급했다.“하하, 강 대표께서 중시해 주셔서 저 연계진도 좀 긍지를 느낄 수 있겠습니다.”연계진의 무진의 시선이 계속 충돌하자, 주위의 모든 손님들은 호기심 가득히 주목했다.두 사람의 강한 카리스마 때문에 실내 공기마저 올라가는 듯했다.그러나 은인자중하는 연계전은 무진의 날카로운 눈빛에 계속 맞설 수 없었다.무진의 눈빛이 압박하자, 불편해진 연계진이 시선을 옮기려고 했다.“연계진 씨, 지금은 당신도 꽤 성과를 거둔 편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사업을 잘 관리해야지요. 운성에서는 위세를 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이 말은 경고의 의미가 짙었다.기세에서 패배한 연계진의 안색이 변했지만, 눈빛을 깜빡이더니 곧 웃는 표정을 지었다.웃는 얼굴로 무진의 차가운 시선을 마주했다.이 순간, 연계진도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다.
진양산과 진혜선의 출현은 일시에 다른 참석자들의 시선을 끌었다.연운그룹에 의탁하기로 결정했지만 강씨 가문에의 미움을 살까 봐 걱정하던 사람들은, 진씨 가문 사람들이 등장하자 일시에 의구심을 떨쳐버렸다.‘진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 진혜선 양이 연계진 씨와 결혼한다는 게 사실인 모양이야.’‘이렇게 되면 연씨 가문의 세력은 틀림없이 더욱 공고해질 거야. 어쩌면 정말 WS그룹에 도전할 수 있을 지도 몰라.’여러 손님들이 술잔을 권하며 안부를 묻자, 진양산은 속으로는 거북했지만 그래도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진혜선은 재벌 2세들과 교류하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한쪽에 앉아 있었다.“진혜선 씨, 안녕하세요. 저는 연 회장님의 비서 조수경입니다!”진혜선의 앞에 간 조수경은 술잔을 들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진혜선 씨와 한 잔 할 수 있을까요?”미소를 지으면서 진혜선이 재빨리 거절했다.“미안합니다. 제 주량이 좋지 않아서 마시지 않겠어요. 조 비서님은 아주 우수한 분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저를 놀리시는 거죠. 제가 회사 운영에 대한 지식은 조금 알고 있습니다만, 진혜선 씨야말로 정말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셨잖아요. 하지만 과연 진씨 가문이에요. 사람들이 그렇게 뛰어나도 모두 당신처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아니랍니다.”조수경이 웃으면서 하는 말 속에 조롱이 담겨 있다는 걸 진혜선도 알아차리지 못했다.술을 마실 기회조차 주지 않자 조수경은 차갑게 경멸할 뿐이다. ‘세상에는 진혜선이 속세의 음식을 먹지 않는 것처럼 소문이 자자하던데 정말 그렇네.’‘이런 여자는 연계진이 좋아하지 않을 거야.’“진혜선 씨, 오늘은 우리 연운그룹에서 한턱내는 날입니다. 만약 필요하신 게 있으면 사양하지 마시고 언제든지 저를 찾으세요.”조수경은 인사치레로 말한 뒤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조수경 씨는 정말 유능하세요! 사실 저도 조수경 씨야말로 연 회장님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혼약은 정말 제 본의가 아니니까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니버설 호텔 8층의 연회장.오늘 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운성 전체의 상류층으로 모두 상장회사의 CEO급이다.파티의 주최자인 연계진은 이런 화려한 느낌에 대단히 만족했다. 끊임없이 각 가문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샴페인잔을 부딪치면서 미래의 협력에 대해 이야기했다.이런 모습은 연계진 자신의 손에 의해서 연씨 가문의 과거 영광이 다시 돌아왔다고 느낄 정도였다.검은색 원피스 차림의 조수경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붉은 입술과 요염한 눈빛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마치 이미 연계진의 부인인 것처럼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가능한 한 모든 손님들과 접촉하면서 손님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인상을 새기기를 원했다.‘그런 인상이 확고해져야 연계진이 진혜선과 결혼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나를 연계진의 진정한 여자라고 인정하게 될 거야.’강한 여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조수경의 마음은 즐거웠다.이때 진씨 가문의 현재 가주인 진양산이 성큼성큼 연회장으로 들어섰다.그 뒤로 투 톤의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탁월한 몸매의 진혜선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청년들의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진혜선은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순간 조수경은 사람들이 자신을 진혜선과 비교했다는 걸 알아차렸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진혜선을 흘겨보았다.‘괜찮아, 연계진은 단지 이익 때문에 저 여자와 혼인할 뿐이지, 정말 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 게다가 진혜선이 좋아하는 남자는 강무진이 맞아. 진혜선이야말로 송성연의 경쟁 상대야.’조수경은 마음속으로 진혜선도 마찬가지로 성연을 적으로 간주한다면, 자신과 진혜선이 함께 협력해서 성연을 대처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수경아, 내가 가서 좀 접대할게.” 연계진의 눈빛에는 부드러움이 어려 있었다.“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조수경은 마음 놓고 연계진의 손목을 놓았다. 결국 진씨 가문 사람이 왔으니 조수경은 잠시 억울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진양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