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있었던 일 때문에 성연과 무진은 엠파이어 하우스로 돌아가지 않고 고택에 남아 할머니 안금여와 고모 강운경 곁을 지켰다.젊은 자신들이야 문제없지만, 연로한 할머니 안금여 회장이 저들을 상대하며 마음 상한 것을 생각하니 속이 상한다.강명재와 강명기, 두 사람은 정말 양심이란 게 있는지 모르겠다.저녁 식사를 마치고 침실로 돌아간 성연과 무진.오늘 고택에서 벌어진 상황을 생각하자 성연은 분노가 치밀었다.“아니, 당숙 두 분 너무 무례하지 않아요? 자신들이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하나? 그래도 여기는 강씨 본가 고택인데, 여기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며 할머니를 몰아세우다니. 자기들도 체면 깍이는 건 싫어하면서!”저들이 위세를 부리던 모습이 떠오른 성연의 눈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만약 이 일로 할머니의 건강이 나빠지기라도 한다면 저들 목숨 몇으로도 배상하지 못할 것이다.무진이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둘째, 셋째 일가 사람들은 늘 그랬어. 저들에게 도덕이니 양심이니 이런 것들은 말해도 소용없어.”저들도 낯짝이 있다면, 작정한 듯이 저 많은 사람을 끌고 와서 본가를 곤란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다들 한 가족, 한 가족이라고 말들 하지만, 도대체 누가 누구와 한 가족이고 또 누가 누구와 적인지, 저들이 그걸 모른단 말인가.“앞으로 저들 때문에 할머니가 힘드시지 않도록 잘 지켜드려야 해요.” 할머니 안금여는 이미 연로한 나이이니 이런 일들은 자연히 손아래 젊은 세대인 자신들이 상대해야 하는 게 맞다.안금여 같은 노인이 걱정하게 할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그건 맞아. 하지만 우리 강씨 집안 일에 너까지 끌어들인 셈이야. 넌 우리 때문에 너까지 힘들어졌다는 생각은 안 들어?” 강씨 집안에서 벌어진 일로 성연이 이런 번거로운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한 무진이 성연에게 물었다.만약 성연이 강씨 집안에 오지 않았다면 이런 힘든 일들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어떻게 그래요?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어요. 할머니가 평소 저한테 얼마나 잘해 주
성연의 반응이 빨랐다. 얼른 안금여를 부축해서 자신의 침실로 모셨다.할머니 안금여를 침대에 눕힌 뒤에 이불을 꼼꼼히 덮어드렸다.이 모든 과정을 끝낸 후에 성연은 강운경에게 말했다.“고모, 할머니 몸을 좀 닦아드려야 할 텐데, 따뜻한 물 좀 받아 주실래요?”반대쪽에 서 있던 무진이 다급히 응급 콜을 불렀다.성연이 주위를 둘러보니 강운경과 무진 모두 바삐 움직이느라 성연 쪽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주머니에서 천천히 은침을 꺼낸 성연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안금여에게 시침했다.성연의 동작은 아주 가볍고 민첩했다. 맥을 짚은 후 증상을 살핀 후에 안금여의 혈 자리에 침을 찔러 넣었다.지금 침은 겨우 보조적인 작용을 할 뿐이지만 발작 상태의 안금여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침을 맞은 안금여의 몸이 서서히 이완되어 갔다.하지만 두 눈은 여전히 꼭 감긴 채였다.입에서도 더 이상 이상한 말을 뱉지 않았다.안금여의 상태를 지켜보던 성연이 눈살을 찡그렸다.조금 전 안금여가 보인 모습은 극도의 공포상태에서 대뇌가 혼란을 일으켰을 때 나타나는 증세였다. 제대로 버텨내지 못할 시에는 정신착란이나 발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그래서 성연은 일단 침을 놓아 할머니 안금여를 잠시 진정시킨 후에 잠을 재웠다.그렇지 않았으면 할머니의 증세는 곧 더 이상 통제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했을 터였다.할머니를 진정시키자 무진이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침대에 얌전히 누운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무진은 또 다시 가슴이 철렁했다.“할머니가 왜 갑자기 조용해지신 거지? 기절하신 건가?”성연이 침을 놓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무진은 할머니에게 또 다른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 앞섰다.“별일 없을 거예요. 잠이 드신 거예요.” 조금 전 맥을 짚어 본 성연은 안금여의 몸 상태가 그리 나쁜 편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견뎌 내실 거야.’그때 강운경이 따뜻한 물을 준비해 왔다.조금 전까지 흥분 상태였던 안금여의 이마는 온통 땀투성이였다.강운경이 따뜻한
한참이나 이어지던 침묵을 깨며 무진이 강운경에게 물었다.“고모, 어떻게 된 일일까요?”강운경은 조금 전 엄마 안금여의 모습을 보고 놀랐던 상황을 회상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할머니는 주무시다 꼭 일어나셔서 화장실에 가셔.”무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모 강운경의 말에서는 전혀 실마리를 얻을 수가 없었다.“고모, 여기 계시면서 혹시 뭐 듣거나 본 건 없으세요? 아니면 누군가 할머니를 해치려고 했다던지요.”이건 분명 할머니 안금여를 겨냥한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집 안 그 많은 사람 중에 굳이 안금여에게 손을 댄 까닭이 뭐란 말인가.설마 이 일의 배후에 있는 사람이 뭔가를 알고 있다는 말인가?현재 정신을 잃다시피 잠이 든 안금여의 상태는 여전히 불안정했다.할머니의 입을 통해 무언가를 듣는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사소한 것들 속에서 이 일의 내막과 농간을 부린 사람의 목적을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나도 좀 생각해 봐야겠다.” 강운경은 지금 혼란스러운 마음에 머리가 텅 비어 버린 듯했다.엄마 안금여가 바닥에 쓰러진 채 경련을 일으키던 장면만 떠올랐다.평소 늘 정숙하고 단아하던 안금여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 앞에서 낭패스런 모습을 드러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랬던 안금여의 갑작스런 돌변은 강운경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받아들이지 못 한다기 보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이 맞다.나이도 적지 않으신 분이 이제 와서 이런 일을 겪으시다니.가능하다면 엄마가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을 겪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그런데 이 배후의 인물은 한사코 자신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모, 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천천히 생각해 보신 다음에 기억나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 가능한 상세하게요.” 무진은 고모 강운경을 재촉하지 않았다.놀란 마음이 아직 진정되지 않은 강운경을 위해 무진이 시간을 주었다.할머니 안금여에 대해 자신 못지 않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고모를 무진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고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는 별일 없을 거예
침실에서 무진이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 듯한 성연이 강운경에게 신신당부를 했다.“고모, 할머니 보고 계세요.”성연이 혼자 나가는 게 불안했던 강운경은 나가지 말라고 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말을 하기도 전에 성연은 이미 무진을 쫓아 나갔다.무진을 쫓아가며 성연은 비서 손건호에게 연락했다.이전에 휴대폰에 번호를 저장해 두었더니 이럴 때 편했다.본래 고택 가까운 곳에서 대기 중이던 손건호는 성연의 연락을 받은 즉시 옆에 있는 수하들에게 신호를 보냈고, 수하들은 바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성연이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손 비서님, 사람들을 좀 데리고 오셔서 고택 주위를 살펴 주세요. 의심스러운 사람이 보이면 꼭 잡아야 해요.”“네, 작은 사모님.” 손건호가 즉시 대답했다.고택에 침입한 사람의 배후에는 분명 사주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이 귀신 소동을 벌인 사람을 잡는다면 오늘 밤 사건의 진상도 파악이 되겠지.손건호와의 전화를 끊은 후, 성연은 다시 무진이 간 방향을 따라 뛰어갔다.무진이 검은 그림자를 쫓고 있지만, 그림자의 동작이 정말 너무 빨랐다.또한 새카만 밤중에 전신에 검은 옷을 입은 그림자를 식별하기는 어려웠다.결국 그림자는 무진을 따돌리고 달아나버렸다.쫓기는 과정에서 상대방은 녹음기를 집어 던졌다.무진이 녹음기를 주워 들고 켜니 바로 강운경과 성연이 들었다는 그 괴이한 방울 소리가 흘러나왔다.무진의 뒤를 쫓아갔던 성연의 귀에도 자연히 이 방울 소리가 들렸다.쫓아온 성연을 돌아본 무진이 물었다.“너 왜 따라 나왔어?”성연이 대답했다.“무진 씨가 걱정되어서요.”“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다음에는 절대 따라오지 마.” 무진이 볼 때 성연은 겨우 어린 여고생일 뿐이다.만약 그 놈이 나쁜 마음을 먹었다든지 성연을 인질로 삼기라도 한다면, 저항할 능력이 전혀 없는 성연이 다칠 수밖에 없었다.그런 상황에 자기 혼자라면 괜찮겠지만 성연이라면 끝장이다.그러니 성연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세 사람이 침실에서 안금여를 지켜보고 있는 동안 구급차가 도착했다.안금여는 신속하게 병원으로 옮겨졌다.구급차에 많은 인원이 탈 수 없었기에 성연과 강운경을 차에 태운 무진이 직접 운전해서 구급차의 뒤를 따라 갔다.무진의 옆 조수석에 앉은 성연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걱정 안해도 될 거예요. 할머니는 아무 일 없으실 거예요. 그냥 조금 놀라신 것뿐, 괜찮으실 거예요.”“만약 정말 이 일이 둘째, 셋째 일가에서 벌인 짓이라면, 절대 저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강상철, 강상규가 감옥에 들어간 것은 자신들의 업보였다.만약 저들이 계속해서 WS 그룹을 자신들 뒷돈을 챙기는 수단으로 이용했다면 WS 그룹은 머지않아 저들의 손에 무너지고 말 터였다.그러나 저들은 끝까지 알지 못했다. 자신의 이익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스스로를!강명재와 강명기가 이번에 돌아온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본가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 많은 사람들을 고택으로 불러들였다.무진은 여태껏 그 사람들에게 양심 좀 가지라고 지나친 요구를 한 적도 없었다. 저들이 분수에 맞게 처신하기만 한다면 서로 조용히 지낼 수 있었다.그러나 저들이 또다시 자신의 마지노선을 건드린다면, 무진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지금은 아직 증거가 없어요. 두 당숙, 나쁜 마음을 품은 것 같으니 무진 씨도 조사할 때 조심해요.”성연이 옆에서 당부했다.무진의 두 당숙 강명재와 강명기는 저들의 아버지 강상철, 강상규보다 수단이 더 대단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강상철, 강상규는 나이가 많다 보니 죽을까 겁을 내었고. 또 무진의 할아버지와 친형제간이었다. 그렇기에 무진을 비롯해 본가를 상대할 때에 약간은 꺼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두 당숙은 꼭 그렇지는 않을 터였다.할아버지에 의해 쫓겨난 마당에 무슨 좋은 마음을 품고 있겠는가.그러니 저 두 당숙이 돌아왔으니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아니, 저들은 웃으며 인사하고서 뒤에서는 심리전을 펼치며 가장 심약한 쪽을 공략한 게 분명했다.
병원.무진과 성연, 그리고 강운경이 병실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여기는 강운경의 남편 조승호의 병원이다. 최근 병원 일이 바빠지자 원장인 조승호는 직접 병원을 진두지휘해야 했다.며칠 내내 이어진 수술로 집에 돌아가지도 못했다.그렇지 않았다면 집에서 강운경과 함께 있었을 것이다.병실은 무진과 성연이 지키면 되니, 조승호를 귀찮게 할 사람은 없었다.두 시간 후에 안금여가 깨어났다.담당의는 가족들에게 검사 결과를 설명했다.“회장님이 많이 놀라신 듯합니다. 며칠 쉬시면 좋아지실 겁니다.”“선생님, 감사합니다.” 성연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의사를 배웅했다.무진과 강운경 또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 안금여는 안정을 찾았고 별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텐데. 다행히 어쨌든 깨어난 것이다.강상문은 최근 북성에 머물고 있었다.그러나 자신의 일 때문에 고택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지냈다.어머니 안금여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은 강상문이 즉시 달려왔다.창백한 얼굴로 병상에 누운 안금여를 본 강상문이 가슴을 움켜쥔 채 안금여를 불렀다.“엄마, 괜찮아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괜찮아.” 안금여가 힘없이 옆으로 고개를 저었다.안금여를 보고 또 살펴보던 강상문은 얼굴에 핏기가 없는 것을 빼면 다치거나 아픈 곳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마음을 놓았다.안금여가 드디어 깨어나 정신이 돌아오자 무진이 물었다.“할머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갑자기 왜 그러신 겁니까?”“할머니, 그때 할머니 모습에 다들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하마터면 우리 전부 놀라서 넘어갈 뻔했어요.” 당시 안금여의 모습을 떠올리던 성연은 이제서야 겁이 났다.당시의 안금여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아마 할머니 당신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놀라서 이성을 잃은 상태였으니까.“그래요, 엄마, 멀쩡하게 화장실에 가셨던 엄마가 어쩌다 그렇게 되신 거예요?” 강운경도 걱정스러운
아들과 딸, 손자와 손부 모두가 애타는 마음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안금여가 당시 있었던 일들을 기억나는 대로 말하기 시작하자, 모두 집중해서 들었다.당시 야뇨증이 있던 안금여는 원래 자다가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가 이상한 종 소리를 들었다.귀에 익은 듯하다 싶었는데 소리에 이어서 화장실 창문에 창백한 얼굴의 그림자가 보였다.당시 장면을 떠올리던 안금여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그림자만 보인 게 아니라 그 그림자가 네 할아버지의 음성으로 계속 나한테 화를 내며 꾸짖었어.”“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떻게 할머니를 비난할 수 있어요?” 무진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안금여에게 물었다.무진의 기억에 두 분은 늘 사이가 좋으셨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할머니가 하자는 대로 따르셨고,할머니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신 적이 없었다.할머니에게 화를 낸다, 꾸짖는다 하는 이런 단어가 할아버지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맞아요, 엄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버지가 엄마한테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 강운경은 마음속으로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원망했다.엄마 안금여는 자식들과 손자를 키워냈을 뿐 아니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후에는 강씨 집안을 지켜 내신 분이다.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몰인정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버지가 엄마를 욕하실 리가 없다.아이들이 자신을 생각하는 말을 듣고 안금여가 불현듯 웃으며 말했다.“오래 전 일이야. 당시 동남아의 일부 사업 경쟁자들이 귀신 소동을 벌였어. 당시 나는 너무 놀라서 뱃속의 아이를 지키지 못하고 네 아버지와 크게 싸웠지. 그 일로 몇 년이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 나중에 다시 임신을 했고. 그 이후 그 기억을 떠올릴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밤 누가 일부러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한 거야.”안금여도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분명히 아주 오래 전의 일인데다 동남아시아에서 있었던 일이었다.누가 이곳에서 귀신을 가장한 연극을 벌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이전에 그 일이 있었을 때에 그 사실
안금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른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본 그림자는 아기 모습이었어. 아주 요사스럽고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어. 하지만 괜찮다. 지금은 하나 겁나지 않아.”당시에 봤던 그 장면은 확실히 공포스러웠다.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던 안금여는 마음이 놓였다.나중에 아이가 둘이나 생겼다. 그런 귀신 소동을 겪었는데도 말이다.그 일을 벌였던 자들이 짊어진 죄악은 더 무거울 것이다.저들 스스로 부끄러움도 못 느끼는데 자신이 무서워할 게 뭐가 있겠는가?성연이 할머니 안금여의 어깨를 토닥였다.“할머니, 겁내실 거 없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할머니 곁에 있을 거예요.”“그래, 너희가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아니면 이 늙은이는 오래 버티지도 못할 게야.”안금여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한평생 덕을 쌓고 선을 베푼 것은 바로 이날을 위해서였지 싶다.하느님이 이 효심 지극한 자손들을 자신에게 주신 것이다.이 생에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이미 족하다는 생각을 하는 안금여.‘더 이상 바랄 게 없어.’“할머니, 이건 모두 할머니의 공덕이지 저희들이 한 게 아니예요.”성연이 안금여를 따라 웃으며 말했다.‘맞아, 모두 할머니 당신이 강인하게 견디신 거야.’다른 노인들이 똑같이 이런 일을 겪었다면 할머니 안금여처럼 담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안금여도 평지풍파를 겪은 사람인지라, 어떤 일도 쉬이 놀라게 할 수 없었다.‘아니, 할머니는 이제 곧 좋아지실 거야.’“무진아, 성연아, 너희들 앞으로 시간 나는 대로 할머니 곁에 있어드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니?” 옆에 있던 강상문이 두 사람에게 당부했다.자신은 밖에 일이 있어서 시시때때로 어머니 안금여 옆을 지킬 수가 없었다.강운경 또한 자신의 가정을 가지고 있었다.남은 두 사람, 무진과 성연에게 달렸다.두 사람이 번갈아 오면 된다. 어차피 안금여의 곁에는 반드시 누군가 지키고 있어야 하니까.고택에 고용인이 많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