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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6 화

Author: 찹쌀몽
나에게 뭔가 더 모진 말을 말하려던 엄마는, 내 말을 들은 순간 놀라 입을 다물었다.

내가 이렇게 엄마의 이야기를 순순히 받아들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엄마와 함께 나에게 벌컥 화를 내려던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의 나였다면 때려죽인다 해도 절대 이혼하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을 것이었다.

나의 뜻밖의 반응에 놀라 충격에 빠진 부모님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직은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아서 움직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굳이 병원으로 가서 사과하라는 말씀은 사양할게요. 심사언이 이혼 서류를 준비하는 대로, 변호사 통해서 저한테 보내주면 될 테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온몸이 땀에 젖어 축축해진 이불은 답답하고 무거웠다.

숨이 턱 막혀오는 기분이 들 정도로.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지금부터 이어질 부모님의 기뻐하는 표정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

내 부모님은 내가 어떤 아이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내 태도가 장난이 아니라는 걸 금세 파악했다.

심사언과 이혼하겠다는 내 생각은 이번만큼은 진짜였다.

상황 판단이 끝난 순간, 부모님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고 다정해졌다.

“그래, 우리 딸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이제 푹 쉬어. 움직이기 싫으면 가만히 누워 있어도 돼. 엄마가 주미 아주머니를 불러서 너를 잘 돌보라고 할게. 우리 딸은 그냥 쉬기만 하면 돼.”

아빠는 나지막이 웃으며, 내 머리맡에 카드를 내려놓았다.

“이 카드에 돈 천만 원이 들어 있단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마음껏 써도 좋아. 부족하면 언제든 아빠한테 말하고. 우리 딸, 아직 젊잖아. 몸부터 잘 회복하면, 너에게 좋은 날은 그때부터 시작될 거야.”

부모님은 몇 마디를 더 덧붙이고는 내가 다른 소리를 할까 봐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부모님의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진 걸 확인한 뒤, 나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그래, 예전에도 그랬어.’

‘항상 소아연한테 내 모든 걸 양보하고 나면, 엄마 아빠는 늘 나한테 다정하게 했었어.’

‘어쩌면, 지금 당장 소아연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러 가고 싶었겠지.’

‘...’

나는 침대 머리를 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방 안은 따뜻한 히터 바람으로 가득했지만, 나는 찬물을 두 바가지나 뒤집어 쓰고 완전히 젖어버린 상태로 어쩔 수 없이 추위에 떨고 있었다.

내 몸을 녹이려면 따뜻한 물로 씻어야 했다.

하지만, 몸을 일으켜 욕실로 걸어가는 것도 힘들었다.

예전에는 샤워를 마친 내 모습을 거울로 보는 것이 제일 좋았다.

내가 봐도 내 얼굴은 너무 예뻤으니까.

피부도 뽀얗고, 매끄럽고, 부드러워서 때로는 내가 나를 보고 깨물어주고 싶은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내 모습은 차마 거울로 비춰볼 자신이 없었다.

실은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폭격 맞은 폐허’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내 모습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였다.

...

청산빌라 101동.

무표정한 심사언은 거실 소파에 앉아 넥타이를 당겨 헐겁게 했다.

남자의 날카로운 이목구비 위로 피로가 가득 서려 있었다.

소아연은 원래부터 몸이 약해서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밤새 숙면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를 돌보느라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심사언은, 어젯밤도 꼬박 새운 탓에 두통이 밀려왔다.

게다가 어젯밤, 그는 술집에서 술만 잔뜩 마셨을 뿐,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해 속이 점점 쓰렸다.

미간을 찌푸린 그는 익숙한 듯 말했다.

“고이설, 위장약 어디 있어? 가져와.”

“그리고... 속에 부담 안 가게 죽 좀 끓여 줘. 위가 아파.”

예전 같았으면, 심사언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가장 먼저 달려가 남편의 넥타이를 풀어주고, 따뜻한 물이 담긴 잔을 건네고, 그의 컨디션을 살폈을 것이었다.

남편이 귀찮다는 듯 나를 밀어낼 때까지, 남편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하지만 오늘은, 심사언이 말을 꺼낸 후에도 집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이상해...’

심사언의 미간이 더 깊게 좁혀졌다.

기다려도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는 한층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다시 불렀다.

“고이설?”

그러나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마침 주방에서 가사도우미 왕자현이 걸어 나왔다.

심사언은 왕자현을 보자 곧장 물었다.

“집사람은요? 집에 없어요?”

왕자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모님이 집을 나간 지가 벌써 석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저런 질문을 던지다니... 대표님은 도대체 언제쯤이면 자기 아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실까?’

그러다 결국, 왕자현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모님은 석 달째 집에 안 들어오고 계십니다.”

심사언의 손끝이 미묘하게 움찔했다.

‘고이설이 퇴원하고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석 달 내내 연락도 없이?’

그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관자놀이를 눌렀다.

어젯밤, 내가 심사언과 소아연의 앞날을 축복해 주고, 그토록 강하게 이혼을 고집했던 장면이 떠오르자 심사언은 순간 머리가 더 지끈거렸다.

‘고이설, 정말 이혼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네.’

‘마치, 더 이상 미련이 남지 않았다는 듯이. ‘

심사언은 코웃음을 쳤다.

‘웃기시네.’

‘이혼? 고이설은 그럴 리가 없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뚜-

뚜-

그러나,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이상해. 연락을 피하는 건가?’

이번엔 심사언이 나한테 톡을 보냈다.

[고이설, 전화 받아.]

하지만, ‘1’ 표시가 사라지지 않았다.

메시지가 읽히지 않았다.

순간, 심사언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는 다시 한번 메시지를 보냈다.

다시 봐도 여전히 ‘1’은 그대로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고이설... 톡에서 나를 차단한 거야?!’

옆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왕자현이 한참을 고민한 끝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모님께서는 아무리 늦어도 항상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석 달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셨죠.”

“혹시, 사모님께 너무 큰 상처를 주신 건 아닙니까?”

심사언은 말이 없었다.

왕자현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사모님은요... 대표님을 정말 많이 사랑하셨어요.”

“사모님이 기다리시던 모습을 저는 늘 지켜봤고요.”

“대표님이 한 번이라도 돌아봐 주시길, 한 번이라도 자신을 선택해 주시길 바라셨어요.”

“그런데요... 여자의 마음이란 한 번 완전히 부서지면, 그땐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거예요.”

그녀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라도 사모님을 붙잡아야 해요. 안 그러면... 정말, 다시는 안 돌아오실지도 모릅니다.”

왕자현은 내가 견뎌온 시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사모님은, 정말이지... 너무, 너무 안쓰러운 사람이었어요.”

심사언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투를 집어 들고는 곧장 밖으로 향했다.

그의 움직임을 본 왕자현은 반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대표님, 혹시 사모님을 모시러 가시는 건가요?

“밖에서 식사하실 생각이 아니라면, 제가 로맨틱한 프렌치 디너를 준비해 드릴까요?”

하지만 심사언은 비웃듯 짧게 대꾸했다.

“내가 그 사람을 데리러 간다고요?”

“네, 네! 사모님 모시러 가시는 거죠?”

왕자현이 맞장구치려던 찰나, 심사언의 차가운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럴 시간 없어요.”

‘고이설이 설마 평생 집에 안 돌아오기야 하겠어?’

‘어차피, 충분히 시간을 끌고 나면, 본인이 알아서 돌아올 거야.’

‘그만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면,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고.’

...

나는 부모님의 조급한 모습, 심사언과 소아연의 다정한 관계까지 고려해서, 이혼 서류가 금방이라도 도착할 줄 알았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심사언에게서 이혼 서류는 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변호사를 불러 직접 이혼 서류를 작성했다.

심사언의 연락처를 차단 해제한 후, 서류를 심사언에게 보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내일까지 이혼할 의향이 있다면, 조건 협의는 가능해. 당신이 원하는 거, 내가 일부는 양보할 수도 있다는 뜻이야.]

이혼을 빨리 끝낼 수만 있다면, 재산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 정도야 당연히 감수할 수 있었다.

한 주 내내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간신히 자리에 앉아 쉴 수 있었던 심사언은, 나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는 메시지를 열어보기 전,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야 정신 차리고 돌아올 생각인 건가?”

“결국, 용서받고 싶어졌나 보군.”

그렇게 생각하며 메시지를 열었는데, 그의 표정이 단숨에 어두워졌다.

이혼 서류였다.

내가 직접 작성한, 굉장히 상세하고 신중하게 정리된 이혼 서류였다.

“고이설, 진심이야?”

그는 불쾌하게 혀를 찼다.

“이혼에 이렇게까지 진심이었다고?”

심사언은 차마 인정할 수 없었다.

‘네가 감히, 진짜로 나를 떠날 생각을 했다고?’

‘내가 이걸 보고도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 옆에서 송주혁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심사언의 핸드폰 화면을 힐끗 보았다.

“이혼 서류?”

송주혁은 살짝 당황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심사언은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치우며 짧게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심사언의 손끝은 은근히 흔들리고 있었다.

‘고이설, 이번엔 좀 심한데?’

‘너무 오래 끌었고, 너무 과했어.’

그걸 느낀 송주혁은 잠시 고민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형, 여자한테는 어느 정도 명분이 필요한 거야.”

“형수님이 원하는 건 그냥 형이 먼저 손 내미는 것뿐일 수도 있어.”

“형, 부상훈 알지? 걔 옆에 한동안 붙어 있던 조용한 애 있었잖아. 부상훈이 시키면 뭐든 다 하고, 어떻게 대하든 절대 떠나지 않았던 애.”

“그래서 부상훈도 당연히 그 여자가 떠날 리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말이야, 얼마 전 그 여자가 다른 남자랑 결혼해 버렸다고 하더라.”

“부상훈은, 결혼식장까지 가서 눈이 퉁퉁 붓도록 펑펑 울었는데도, 그 여자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대.”

“형, 여자는 말이야. 한 번 완전히 지쳐버리면, 그땐 진짜 돌아오지 않아.”

그 말에, 심사언은 왕자현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여자의 마음이 한 번 완전히 부서지면, 그땐 정말로 돌이킬 수가 없다는 그 말을.

순간, 그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듯 한 잔, 또 한 잔...

폭탄주를 더 연거푸 들이켰다.

술이 점점 그의 의식을 마비시킬 즈음, 심사언은 문득 송주혁의 말이 조금은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 여자는 가끔 남자가 내미는 손을 기다리기도 해.’

‘고이설도 그렇겠지... 그럴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술기운을 빌려 내 집으로 향했다.

사실, 심사언은 내가 퇴원한 후,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단지 내가 스스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뿐이었다.

...

심사언에게 이혼 서류를 보내고 난 후, 나는 핸드폰을 손에 쥔 채 그의 답장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마치 깊은 바닷속으로 던져진 돌처럼, 그 어떤 회신도 없이 그대로 가라앉아 버린 것 같았다.

‘대체 뭐야?’

나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더 이상 그 남자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끝내고 싶었다. 이러다간 내가 먼저 심사언에게 전화를 걸어버릴 것 같았다.

덜컥-

그 순간, 누군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취해서 비틀거리는 심사언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순간 굳어졌다.

‘분명 비밀번호를 바꿨는데...? 저 사람이 어떻게 알고 들어온 거지?’

‘그리고, 우리는 곧 이혼할 사이인데, 왜 자기 집으로 안 가고, 여기로 온 거지? 대체 뭘 하러?’

내가 심사언에게 연락하려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취해서 정신없는 개처럼 내 집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다.

지금 내 현재 상태는 이 사람을 그냥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

그리고 이 사람이 나간 뒤, 집 안을 소독제로 싹 청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더 짜증이 났다.

‘내가 왜 이딴 걸 신경 써야 해?’

그때, 구명인이 나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형수, 뭐 해? 형이 이렇게 취했는데, 당연히 와서 부축해야지!”

이런 말투는 마치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라도 되는 듯했다.

그리고 비웃듯 덧붙였다.

“이래서 형이 형수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그렇게 오랫동안 붙어 있으면서, 결국 형 마음을 못 얻은 이유가 뭐겠어?”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이제 형을 챙기는 것도 안 하면, 살아서 뭐 해?”

‘뭐라고?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선 넘네!’

예전의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함부로 대할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구명인을 바라봤다.

그리고 낮게 읊조렸다.

“내가 살아서 뭐 하냐고?”

그 순간, 구명인의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졌다.

“형수, 지금 뭐라고 했어?”

나는 코웃음을 쳤다.

“내가 사는 이유? 너의 그 개 같은 목숨쯤은 손쉽게 날릴 수 있다는 자신감?”

구명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내가 이런 식으로 대꾸할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가 황급히 되물었다.

“형수, 내가 누군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감히 나한테 그렇게...”

나는 구명인의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더 차갑게 웃으며 쏘아붙였다.

“네 아버지 구명산, 그 사람이 나를 보면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잔 들고 비굴하게 인사하는 걸 모르는 모양이네?”

“그런데 네가 뭐라고 나한테 그 따위 말을 해?”

“넌 집안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생아일 뿐이잖아.”

“내가 왜 너 따위를 겁내야 하지?”

구명인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

바로 ‘사생아’였다.

나는 구명인의 가장 큰 약점을 대놓고 들춰냈다.

“형... 형수...”

구명인은 더듬거렸다.

“나는 형의 가장 친한 친구야!”

“형, 형수가 이렇게 나오면, 형이 진짜로 형수 버릴지도 몰라!”

‘우습지도 않아.’

나는 피식 비웃듯 한숨을 쉬었다.

“심사언? 그딴 놈은 이미 내 안중에 없어.”

“그 개 같은 놈이든, 그 개 같은 놈 옆에 붙어 있는 놈들이든.”

“다 필요 없어. 그러니, 당장 내 집에서 꺼져!”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1분 줄게. 그 취한 개자식 데리고 내 집에서 나가.”

“안 나가면 경찰 부를 거야. 불법 침입으로 신고해 버릴 거라고.”

내 말에, 방 안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구명인은 나를 노려봤다.

“고이설, 진짜 미쳤...”

“그만해.”

그 순간, 송주혁이 나섰다.

그는 한숨을 쉬며 구명인의 팔을 잡았다.

“명인아, 너도 취했으니까 그만하고 가자.”

그 후, 나를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형수님, 명인이가 오늘 술을 좀 많이 마셨어요. 방금 한 말은 그냥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형은 저희가 여기까지 잘 모셔다드렸으니까, 이제는 형수님께서 형을 좀 챙겨주세요.”

그리고, 그는 단호하게 구명인을 끌고 나갔다.

나는 송주혁이 재빠르게 자리를 정리하는 걸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역시 눈치 하나는 빠르네.’

하지만, 떠나는 녀석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어둠 속에 남겨진 심사언이었다.

나는 불쾌한 얼굴로 잔뜩 눈을 찌푸렸다.

‘이 사람, 진짜 경찰을 불러서 쫓아내 버릴까?’

‘아냐, 아직 이혼 문제 논의가 끝나지 않았잖아.’

‘만약 지금 당장 이 사람을 경찰에 넘기면, 이혼 협의가 더 복잡해질 게 뻔해...’

나는 심사언을 하루만 더 두기로 했다.

그리고 내일 아침, 그가 술에서 깨는 대로 깨끗하게 정리할 생각이었다.

‘하... 더럽게 찝찝하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남자가 갑자기 번쩍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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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언이 나를 악독하다고 생각하게 하고 싶다면, 네 몸을 희생하도록 해.”“하지만 나한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짓, 예를 들어 나를 밀어 물에 빠뜨리는 일 따위는 두 번 다시 하지 마.”“만약 그런 일이 또 발생하면, 참고만 있진 않을 거야. 이 영상을 바로 공개해서 네가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만들 테니까 두고 보라고.” 나는 소아연이 이혼을 빠르게 성사시키도록 돕게 하고 싶지만, 내 몸을 다쳐가면서까지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내 몸은 지금 너무나도 소중했다. 무엇을 위해서든, 더 이상 상처받아선 안 됐다.이 말을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0039 화

    왕여정은 화가 나서 나를 향해 거칠게 욕을 퍼부었다.“고이설, 이 천박한 것! 넌 머리가 다친 게 아니라 심보가 시커멓게 썩은 거야!”“너는 우리 오빠가 아연 언니랑 절대 사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거라고!”“세상에 너처럼 악독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어?!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고도 안 죽다니!”‘뭐? 내가 뭐가 악독하다는 거야? 난 분명 비운의 연인을 도와주려는 마음이었는데?’‘그리고 심사언이랑 소아연이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아니, 그럼 그날 VIP 룸에서 거의 입 맞추려던 건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0038 화

    뭔가 더 말하려던 심사언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그는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어리광 부리는 아이를 대하는 듯한, 무력하면서도 묵인하는 시선으로 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자리를 떴다.그 눈빛이 나는 극도로 역겨웠다.사람들이 모두 떠난 것을 확인하자, 소아연이 제일 먼저 손을 뻗으며 말했다.“보자.”그녀는 내가 정말 녹화했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나는 아주 대범하게 어젯밤의 영상을 틀어 보여주었다.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연회장에서 소아연을 그토록 난처하게 만들었으니, 그녀가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0037 화

    병실의 분위기가 미묘해질 즈음, 왕여정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소아연이 눈을 들어 왕여정을 바라봤다.단 한 번의 눈맞춤으로 왕여정은 즉시 상황을 파악하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아연 언니, 걱정하지 마! 내가 경찰에 신고했어!! 곧 경찰이 와서 고이설을 잡아갈 거야!”심사언이 얼굴을 찌푸리며 한층 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여정아, 또 무슨 짓이야? 누가 너한테 신고하라고 했어? 그리고 다시는 새언니 모욕하는 말 하지 마.”‘심사언도 참 이상하지. 나한테 그렇게 행동하면서, 때로는 나를 걱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잖아.’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0036 화

    아빠가 가장 먼저 그 일을 떠올리고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나에게 소아연을 위한 지분을 요구했다.‘그 10%의 지분이 수천억 원이 아니라 단돈 만 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가져가려 하네.’‘도대체 언제부터 내가 가진 돈을 쉽게 빼앗을 수 있다고 착각한 거지?’소아연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그녀의 손이 이불을 꽉 움켜쥐는 걸 놓치지 않았다.‘소아연이 단순히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나를 물에 밀어 빠뜨린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었어.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소아연은 처음부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0035 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표정으로 말했다.“나는 그저 동생 얼굴이 좋아 보여서 칭찬한 건데요?”“칭찬도 못 해요?”부모님은 내 태도에 더욱 격분했다.“양설아,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변한 거야!”“아연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하는데! 방금도 우리한테 신고하지 말라고, 너를 용서해달라고 부탁하더라. 그런데 너는 그런 동생을 이런 식으로 비꼬아야겠어?”“양심이라는 게 있긴 하니? 왜 그렇게 아연이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엄마는 화가 나서 그릇을 내려놓고 당장이라도 나를 때릴 기세였다.“너는 아연이를 위험에 빠뜨리고도 사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0034 화

    나는 심사언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그가 너무 손에 힘을 주고 있어서 함부로 뿌리칠 수 없었다. 그래서 차갑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놔. 난 사과 안 해.”심사언이 눈썹을 찌푸렸다.“사과하지 않겠다니? 감옥 갈 각오라도 한 거야?” 그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왕여정이 경찰을 부르겠다고 떠들어대는 걸 듣고는 내가 소아연을 물에 빠뜨렸다고 믿게 되었다.“당신이 이번에도 아연이를 거의 죽게 할 뻔한 거 알고 있어?”“내가 그렇게까지 당신한테 아연이와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약속했는데, 왜

  • 쌍둥이의 백일, 전남편은 눈이 붉어졌다   0033 화

    “고이설, 이 천박한 X! 감히 네가 여기 나타나다니!”여자가 소리치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젠장!’나는 급히 몸을 피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한 커다란 몸이 나와 그녀 사이를 가로막으며 그녀의 공격을 대신 받아냈다.나를 구해준 사람은 구은호였다.그는 강한 충격에 눈살을 찌푸렸고, 그 모습을 본 내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감히 내 앞에서 사람을 때리다니?’나를 때리지 못한 여자, 왕여정은 더욱 화가 난 듯 구은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넌 누구야? 왜 고이설처럼 천박한 X을 감싸? 혹시 내연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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