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당신한테 여러 번 말했어. 나랑 아연이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이혼으로 날 협박하지 마. 당신이 아무리 이혼을 들먹인다고 해도, 나는 절대 아연이를 해외로 보내지 않을 거야!” ‘똑같은 말을 또 하다니.’ ‘이제야 겨우 내가 진짜로 이혼하고 싶다는 걸 알았나 했더니, 결국 또 내 잘못이라고? 내가 이혼을 무기 삼아 협박하는 거라고?’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듣고 있자니, 나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참기 힘들었다. 나는 다시 한번, 아주 진지하게 심사언을 바라보았다. “심
심사언의 격앙된 반응에 나는 비웃음만 나왔다. “됐어. 너희 둘, 그날 룸에서 키스까지 할 뻔했으면서, 아직도 아무 사이 아니라는 소리가 나와?”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심사언, 사실 당신은 이혼을 원하지 않는 게 아니야. 내가 준 재산의 반을 나눠 갖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코웃음을 쳤다. “너무 욕심부리면 안 되지. 당신은 여자랑 돈을 둘 다 갖고 싶어서 이러는 거잖아?” “게다가 이 회사는 당신 혼자 만든 게 아니야. 우리 둘이 함께 키운 거라고. 아니, 애초에 처음에는 내가
“별거 아니야, 그냥 작은 상처야.” 심사언은 조용히 손을 빼고 소아연에게 선을 그었다. 소아연의 눈에 스치는 싸늘한 기운. 하지만 그건 한순간뿐이었다. 다시 심사언을 바라보는 소아연의 눈에는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걱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오빠, 우선 가서 손부터 치료해야겠어요.” “괜찮아. 널 먼저 송 교수님께 데려다줄게.” 내 부모님은 심사언이 소아연을 이렇게까지 챙기는 모습을 보고 묘한 감정이 스쳤다. 자신의 상처는 뒷전이고, 오직 소아연만 챙기는 모습. ‘하아... 그 일만 아니었으면, 사언이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할머니는 나를 품에 꼭 안고 볼에 연신 뽀뽀해 주셨다. 나도 할머니를 꼭 안았다. ‘부모님께 오만 정이 다 떨어졌어도 내가 자꾸 집에 오는 이유는... 할머니 때문이야.’ ‘할머니는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 주는 사람이니까.’ 체면을 구긴 오빠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지만, 그는 곧 다시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알죠, 알죠. 그냥 이설이 좀 놀려본 거예요.” “그런데 할머니, 너무 편애하시는 거 아니에요? 저는 이설이 친오빠라고요. 오빠가 좀 놀리는 것
밤이 깊어져 가면서 클럽은 점점 더 시끌벅적해졌다. 형형색색의 조명이 번쩍이고, 술과 음악이 난무하는 공간이었다.송주혁은 고객과 함께 VIP룸으로 향하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뒤에 따라오던 비서에게 동행한 고객을 먼저 룸으로 안내하라고 지시한 후, 옆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그는 심사언을 바라보며 물었다. “형, 오늘이 한민숙 어르신 칠순 아니었어?” ‘오늘 같은 날, 형님이 왜 생일연회에 안 가고 여기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거야?’ 심사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테이블 위
VIP룸 안에는 여전히 죽음 같은 침묵만이 감돌았다.송주혁은 심사언이 ‘이설 형수’ 때문에 화가 난 김에 결국 고씨 저택으로 가서 한민숙 어르신의 칠순 잔치에 참석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심사언이 다시 자리에 앉아 계속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며, 송주혁은 입을 떼려다 말았다.결국 몇 마디 더 가벼운 대화를 나눈 후, 송주혁은 먼저 자리를 떴다. 심사언은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있었지만, 실상은 술잔을 한 모금 들이켤 때마다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확인해도, 화면은 그대로였다. 그가 보고 싶은 부재중
나는 분명 죽을 만큼 괴로워하며, 심사언에게 미친 듯이 전화를 걸었을 터였다. 심사언이 와 주기만 한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어떤 말이든 들어주겠다고, 제발 와 달라고 애원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나는 미련 없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다행이야. 이제는 그런 내가 아니라서.’...“사모님, 오늘은 왜 심 대표님이 안 보이세요? 설마, 무릎 꿇고 빌어도 모셔 오지 못 한 건가요?” “아휴, 장 여사님도 참, 왜 그런 걸 꼭 집어서 물어봐요? 사모님은 이미 충분히 속상하실 텐데요.”
예전의 나는 심사언의 무관심과 냉대 때문에 점점 위축되고 소극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내가 저 사모님들의 터무니없는 말을 반박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여자가 왜 같은 여자를 힘들게 하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 걸음 물러선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돌아온 건 배려가 아니라, 끝없는 조롱과 모욕뿐이었다.‘그렇다면,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지. 좋아, 해보자고.’ 나는 저들의 공격을 참지 않고 반격하기로 결심했다.장 여사와 지 여사는 심사언의 이모와 같은 사교계 모임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이주현은 내 반
심사언은 원래 미안함과 부드러움이 섞인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내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굳어졌다.“당신, 또 일부러 묻는 거잖아.”‘내가 뭘 일부러 묻는 건데? 알았으면 묻지도 않았겠지?’‘내가 ‘남편’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얼마나 말을 섞고 싶지 않은지 정말 모르는 거야?’ 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차분히 말했다.“심사언,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난 정말로 절벽에서 떨어진 후 일부 기억을 잃었어.”심사언은 비웃듯이 헛웃음을 지었다.“이젠 기억상실 설정까지?”“다른 건 다 기억하면서 딱 한 가지만 잊었다
“심사언이 나를 악독하다고 생각하게 하고 싶다면, 네 몸을 희생하도록 해.”“하지만 나한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짓, 예를 들어 나를 밀어 물에 빠뜨리는 일 따위는 두 번 다시 하지 마.”“만약 그런 일이 또 발생하면, 참고만 있진 않을 거야. 이 영상을 바로 공개해서 네가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만들 테니까 두고 보라고.” 나는 소아연이 이혼을 빠르게 성사시키도록 돕게 하고 싶지만, 내 몸을 다쳐가면서까지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내 몸은 지금 너무나도 소중했다. 무엇을 위해서든, 더 이상 상처받아선 안 됐다.이 말을
왕여정은 화가 나서 나를 향해 거칠게 욕을 퍼부었다.“고이설, 이 천박한 것! 넌 머리가 다친 게 아니라 심보가 시커멓게 썩은 거야!”“너는 우리 오빠가 아연 언니랑 절대 사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거라고!”“세상에 너처럼 악독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어?!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고도 안 죽다니!”‘뭐? 내가 뭐가 악독하다는 거야? 난 분명 비운의 연인을 도와주려는 마음이었는데?’‘그리고 심사언이랑 소아연이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아니, 그럼 그날 VIP 룸에서 거의 입 맞추려던 건
뭔가 더 말하려던 심사언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그는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어리광 부리는 아이를 대하는 듯한, 무력하면서도 묵인하는 시선으로 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자리를 떴다.그 눈빛이 나는 극도로 역겨웠다.사람들이 모두 떠난 것을 확인하자, 소아연이 제일 먼저 손을 뻗으며 말했다.“보자.”그녀는 내가 정말 녹화했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나는 아주 대범하게 어젯밤의 영상을 틀어 보여주었다.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연회장에서 소아연을 그토록 난처하게 만들었으니, 그녀가
병실의 분위기가 미묘해질 즈음, 왕여정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소아연이 눈을 들어 왕여정을 바라봤다.단 한 번의 눈맞춤으로 왕여정은 즉시 상황을 파악하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아연 언니, 걱정하지 마! 내가 경찰에 신고했어!! 곧 경찰이 와서 고이설을 잡아갈 거야!”심사언이 얼굴을 찌푸리며 한층 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여정아, 또 무슨 짓이야? 누가 너한테 신고하라고 했어? 그리고 다시는 새언니 모욕하는 말 하지 마.”‘심사언도 참 이상하지. 나한테 그렇게 행동하면서, 때로는 나를 걱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잖아.’
아빠가 가장 먼저 그 일을 떠올리고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나에게 소아연을 위한 지분을 요구했다.‘그 10%의 지분이 수천억 원이 아니라 단돈 만 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가져가려 하네.’‘도대체 언제부터 내가 가진 돈을 쉽게 빼앗을 수 있다고 착각한 거지?’소아연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그녀의 손이 이불을 꽉 움켜쥐는 걸 놓치지 않았다.‘소아연이 단순히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나를 물에 밀어 빠뜨린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었어.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소아연은 처음부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표정으로 말했다.“나는 그저 동생 얼굴이 좋아 보여서 칭찬한 건데요?”“칭찬도 못 해요?”부모님은 내 태도에 더욱 격분했다.“양설아,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변한 거야!”“아연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하는데! 방금도 우리한테 신고하지 말라고, 너를 용서해달라고 부탁하더라. 그런데 너는 그런 동생을 이런 식으로 비꼬아야겠어?”“양심이라는 게 있긴 하니? 왜 그렇게 아연이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엄마는 화가 나서 그릇을 내려놓고 당장이라도 나를 때릴 기세였다.“너는 아연이를 위험에 빠뜨리고도 사
나는 심사언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그가 너무 손에 힘을 주고 있어서 함부로 뿌리칠 수 없었다. 그래서 차갑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놔. 난 사과 안 해.”심사언이 눈썹을 찌푸렸다.“사과하지 않겠다니? 감옥 갈 각오라도 한 거야?” 그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왕여정이 경찰을 부르겠다고 떠들어대는 걸 듣고는 내가 소아연을 물에 빠뜨렸다고 믿게 되었다.“당신이 이번에도 아연이를 거의 죽게 할 뻔한 거 알고 있어?”“내가 그렇게까지 당신한테 아연이와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약속했는데, 왜
“고이설, 이 천박한 X! 감히 네가 여기 나타나다니!”여자가 소리치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젠장!’나는 급히 몸을 피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한 커다란 몸이 나와 그녀 사이를 가로막으며 그녀의 공격을 대신 받아냈다.나를 구해준 사람은 구은호였다.그는 강한 충격에 눈살을 찌푸렸고, 그 모습을 본 내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감히 내 앞에서 사람을 때리다니?’나를 때리지 못한 여자, 왕여정은 더욱 화가 난 듯 구은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넌 누구야? 왜 고이설처럼 천박한 X을 감싸? 혹시 내연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