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아는 주희진의 눈빛이 자신의 아랫배를 향하는 것을 보고는 얼른 손을 깁스한 다리 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옆에 있는 이불을 잡아당겨 몸을 덮었다. “아무리 봄이 왔다고 해도 요즘 날씨는 좀 변덕스러운 것 같아요. 가끔 여기 있다 보면 추울 때도 있고요……. 아주머니도 옷을 따뜻하게 입으세요. 이런 날씨가 감기 걸리기 제일 쉬워요.”주희진은 놀란 내색 없이 웃으면서 말했다.“나는 원아 씨도 힘들다는 것을 알아요. 주변에 가까운 사람이 없을 테니 말예요. 그래서 더 의지할 사람을 찾고 싶겠지만, 당신은 문소남과 정말 어울리지 않는
임영은은 집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얼굴에 드러나는 피곤함을 숨길 수 없었다. 오늘 온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영은의 신분 때문에 감독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불만으로 찌푸린 미간은 마치 뜨거운 바늘처럼 그녀를 찔러댔다. 그녀에게 오늘은 막막한 무력감을 느끼는 하루였다.그녀는 문소남에게 도움을 청하고 애교도 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과 사귀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가 그 정도로 친밀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그를 귀찮게 할 수 없었다.영은은 하이힐을 신은 채 거실로 곧장 들어갔
석양이 비추는 오후였다. 짙푸른 호수는 노을빛에 싸여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소남은 원아가 탄 휠체어를 밀고 호수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아름답게 날갯짓하는 백조를 바라보는 원아의 눈에 부러움이 묻어났다.언제쯤 자신도 백조처럼 건강을 회복하고 훨훨 날 수 있을까?이곳은 정말 아름다웠다. 마치 동화에 나오는 성 같았다. 소남과 함께 살고 있고, 두 아이도 자주 만났다. 하지만, 원아는 온종일 이곳에 머물며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받았다.백조의 날갯짓을 보면서 휠체어에 앉은 자신의 모습이 비교됐다. 그녀의 눈에 자유에 대한 갈망
영은은 원아의 다리가 지켜졌다는 말을 듣자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렇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는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영은은 여전히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였다. “그 여자 배 속에 있는 아기가 죽은 게 확실해?”요염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당연하지. 확실해! 병원 산부인과 과장이 나랑 사이가 좋거든. 그녀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어. 그럴 배짱도 없고. 걱정하지 마. 원아의 아이는 완전히 사라졌어.”“임산부의 체질은 원래 보통 사람보다 더 못한 법이야. 잘못 넘어지기만 해도 아이가 잘못될 수 있는데, 하물며
남자가 계속 의식을 차리지 못하자 이연은 차로 돌아와 급히 119에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곧바로 남자의 곁으로 되돌아왔다.“선생님, 정신 차리세요. 무슨 말이라도 해 보시겠어요?” 그녀는 다시 남자의 숨을 확인했다.손가락이 코에 닿기도 전에 남자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때마침 번개가 번쩍이며 남자의 눈도 함께 번뜩였다. 이연은 깜짝 놀라 기절할 뻔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부들부들 떨었다.“너…… 너…… 너는 사람이야, 귀신이야?”사윤은 차가운 시선으로 이연을 쏘아보았다.“멍청한 여자, 당신이
안익준은 명품 정장을 입고 성숙한 얼굴로 밝게 웃고 있었다. 고매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양반가의 도련님 모습이었다. 그는 진보라의 손을 꽉 쥐고 있었는데, 애틋함이 가득해 보였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눈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익준을 마주할 때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두려움, 절망, 그리고 혐오 같은 감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안성택을 바라볼 때 그녀의 시선은 한없이 부드러웠다.성택은 작은 몸에 군복을 입고, 머리에는 녹색 베레모를 쓰고 발에는 군화를 신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잘생기고 귀여운 얼굴이 더욱 돋보였다.
성택은 훈아가 원원을 끔찍하게 아끼고 보호하는 것을 생각하자 가슴이 답답해졌다.자신이 원원과 놀고 싶거나 장난치고 싶을 때마다 훈아가 나타나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성택은 나중에 보라 이모가 예쁜 여동생을 낳아주면 훈아에게 시집보내야겠다 다짐했다. 그때가 돼서도 그가 계속 자신을 업신여기면 동생에게 도움을 청해 함께 싸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성택은 이런 생각을 해낸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보라 이모 배 속에 여동생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 만약 남동생이면 어떻게 할 거야?”원아가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이
시간이 지나면서, 원아의 다리도 점차 회복되고 있었다. 의사의 세심한 돌봄으로 이제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땅을 걸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그녀는 집에서 회복하는 기간에도 꾸준히 설계도를 그렸고, 동시에 건축사자격시험을 위해 공부를 했다.가끔 한가할 때면 유화를 그리기도 하며 나름 만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반면, 소남은 날이 갈수록 바빠져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고, 항상 피곤한 표정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원아는 마음이 아팠다. 대신 일 처리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소남은 이 기간만 끝나면 괜찮아질 거라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