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남은 원아가 불안해하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원아는 씁쓸히 웃었다.그녀는 발끝을 세우고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나와 아이들은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게요.”소남은 고개를 숙이고 원아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이윽고 소남은 차를 몰고 떠났다.원아는 이 층에 서서 그 벤틀리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슴이 시큰거렸다. 지금 소남과 영은의 만남에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모든 것이 연기인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이상했다.
영은은 청순하게 보이기 위해 하얀색 옷을 골라 입었다. 전에 어떤 여자가 하얀 치마를 입은 것을 보고 연꽃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했기에 자신도 그렇게 해 본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영은의 하얀 치마는 소창민에게 잡혀 더러워지고 말았다. 영은은 기분이 나빠 얼른 가까운 옷가게에 들어가 옷 한 벌을 새로 사 입었다. 영은이 옷을 갈아입고 약속한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문소남은 아직 오지 않았다.영은은 인테리어가 화려한 고급 레스토랑 창가에 앉아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가슴에 맺힌 원한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
영은은 황홀한 표정으로 소남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차가운 눈빛을 알아채지는 못했다. 그녀는 조금 수줍어하며 말했다.“당연하죠. 당신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여자는 없어요. 똑똑한 당신이 제 마음을 모를 리는 없겠죠? 사실, 저는 처음 봤을 때부터 당신을 좋아했어요.”소남은 비아냥거리고 싶은 마음을 감추고 말했다. “임영은 씨의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매우 송구스럽습니다.”말을 마친 소남은 손목의 시계를 봤다. 곧 여덟 시가 되어가는 것을 보자 마음이 급해졌다. “임영은 씨, 식사는 끝났습니까? 죄송합니다만, 일이 있어서
휴대전화가 ‘탁’하는 소리를 내며 원아의 손에서 떨어졌다. 카톡에서 이연은 원아와 음성 메시지를 주고받는 중이었다.[원아, 너 괜찮니? 왜 그렇게 시끄러워? 또 대표님과 갈등이 생긴 거 아니야?]소남은 이연의 목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통화를 종료했다. “놔줘요.” 원아는 소남에게 잡힌 채 몸을 비틀며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는 원아가 말을 듣지 않는 토끼처럼 계속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는 답답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힘껏 누르고 턱을 들어 올렸다.“또 성질을 부리는 거야, 응?”원아는 그의 발을 한 번 걷어찼다.“이렇게
원아는 굶주린 늑대와도 같은 소남의 얼굴을 보자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그녀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막상 불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자 마음이 약해졌다.남자만이 가진 애처로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우리 벌써 삼 개월이나 되었어. 의사도 이쯤 되면 괜찮다고 했잖아. 내가 조심할게. 응?”다른 사람에겐 냉정하고 금욕적으로 보이는 소남이 원아 앞에서는 굶주린 개처럼 변했다. 원아는 그가 지금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알기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고민했다.잠시 후, 그가 최근 몇 개월간 찬물로 목욕하는 것을
원아는 그가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 주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의 보살핌에 감동한 나머지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원아는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달콤한 바닐라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녀의 마음 또한 달콤해졌다.원아는 한 입 베어 먹은 케이크를 소남에게 내밀었다. “당신도 먹어봐요.”그는 사실 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아의 볼에 사랑스럽게 패인 보조개를 보고는 그녀가 아무렇게나 베어 문 케이크를 한 입 먹었다. “정말이네, 아주 달군.”소남은 원아를 가리켜 한 말
인숙은 영은의 표정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아직 원아의 임신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인숙은 자기의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다. 하필 지금,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다니!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 때문에 소남과 영은의 사이가 틀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그녀는 허둥지둥 영은의 손을 잡고 달래듯 말했다. “아이가 생긴 건 우리도 몰랐어. 그 애가 뻔뻔하게 혼전 임신 사실을 알려올 줄 누가 알았겠니?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문씨 집안은 재산이 많으니 아이 한 명쯤 키우는 건 일도 아니야. 아줌마랑 내가 돌보면
인숙은 서운한 얼굴로 영은을 바라봤다. 예전 같았으면, 영은은 틀림없이 소남이 올 때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아니에요, 어머님. 아무래도 소남 씨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건 무리일 것 같아요. 전 늦어서 이만 가볼게요.”“그래, 다음에 올 때는 미리 전화해. 운전사에게 데리러 가라고 할게.” 인숙은 영은이 준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환하게 웃었다.문 노인도 영은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문씨 고택에서 나온 영은은 차를 몰고 고속도로 위를 빠르게 달렸다. 그녀는 운전하면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