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은 청순하게 보이기 위해 하얀색 옷을 골라 입었다. 전에 어떤 여자가 하얀 치마를 입은 것을 보고 연꽃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했기에 자신도 그렇게 해 본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영은의 하얀 치마는 소창민에게 잡혀 더러워지고 말았다. 영은은 기분이 나빠 얼른 가까운 옷가게에 들어가 옷 한 벌을 새로 사 입었다. 영은이 옷을 갈아입고 약속한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문소남은 아직 오지 않았다.영은은 인테리어가 화려한 고급 레스토랑 창가에 앉아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가슴에 맺힌 원한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
영은은 황홀한 표정으로 소남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차가운 눈빛을 알아채지는 못했다. 그녀는 조금 수줍어하며 말했다.“당연하죠. 당신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여자는 없어요. 똑똑한 당신이 제 마음을 모를 리는 없겠죠? 사실, 저는 처음 봤을 때부터 당신을 좋아했어요.”소남은 비아냥거리고 싶은 마음을 감추고 말했다. “임영은 씨의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매우 송구스럽습니다.”말을 마친 소남은 손목의 시계를 봤다. 곧 여덟 시가 되어가는 것을 보자 마음이 급해졌다. “임영은 씨, 식사는 끝났습니까? 죄송합니다만, 일이 있어서
휴대전화가 ‘탁’하는 소리를 내며 원아의 손에서 떨어졌다. 카톡에서 이연은 원아와 음성 메시지를 주고받는 중이었다.[원아, 너 괜찮니? 왜 그렇게 시끄러워? 또 대표님과 갈등이 생긴 거 아니야?]소남은 이연의 목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통화를 종료했다. “놔줘요.” 원아는 소남에게 잡힌 채 몸을 비틀며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는 원아가 말을 듣지 않는 토끼처럼 계속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는 답답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힘껏 누르고 턱을 들어 올렸다.“또 성질을 부리는 거야, 응?”원아는 그의 발을 한 번 걷어찼다.“이렇게
원아는 굶주린 늑대와도 같은 소남의 얼굴을 보자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그녀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막상 불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자 마음이 약해졌다.남자만이 가진 애처로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우리 벌써 삼 개월이나 되었어. 의사도 이쯤 되면 괜찮다고 했잖아. 내가 조심할게. 응?”다른 사람에겐 냉정하고 금욕적으로 보이는 소남이 원아 앞에서는 굶주린 개처럼 변했다. 원아는 그가 지금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알기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고민했다.잠시 후, 그가 최근 몇 개월간 찬물로 목욕하는 것을
원아는 그가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 주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의 보살핌에 감동한 나머지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원아는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달콤한 바닐라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녀의 마음 또한 달콤해졌다.원아는 한 입 베어 먹은 케이크를 소남에게 내밀었다. “당신도 먹어봐요.”그는 사실 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아의 볼에 사랑스럽게 패인 보조개를 보고는 그녀가 아무렇게나 베어 문 케이크를 한 입 먹었다. “정말이네, 아주 달군.”소남은 원아를 가리켜 한 말
인숙은 영은의 표정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아직 원아의 임신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인숙은 자기의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다. 하필 지금,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다니!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 때문에 소남과 영은의 사이가 틀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그녀는 허둥지둥 영은의 손을 잡고 달래듯 말했다. “아이가 생긴 건 우리도 몰랐어. 그 애가 뻔뻔하게 혼전 임신 사실을 알려올 줄 누가 알았겠니?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문씨 집안은 재산이 많으니 아이 한 명쯤 키우는 건 일도 아니야. 아줌마랑 내가 돌보면
인숙은 서운한 얼굴로 영은을 바라봤다. 예전 같았으면, 영은은 틀림없이 소남이 올 때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아니에요, 어머님. 아무래도 소남 씨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건 무리일 것 같아요. 전 늦어서 이만 가볼게요.”“그래, 다음에 올 때는 미리 전화해. 운전사에게 데리러 가라고 할게.” 인숙은 영은이 준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환하게 웃었다.문 노인도 영은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문씨 고택에서 나온 영은은 차를 몰고 고속도로 위를 빠르게 달렸다. 그녀는 운전하면
주말에 원아가 외출을 준비하는 것을 본 쌍둥이가 같이 가자며 떼를 썼다. 할아버지가 걱정되어 서두르던 원아는 시간이 없는 데다 마음까지 급해져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차가 A시 중앙 백화점 옆 상가건물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뒤쪽 카시트에 앉아 있던 원원이 원아를 불렀다. “엄마, 나 배가 아파요.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아무래도 어젯밤 엄마 말을 듣지 않고 멜론을 많이 먹은 탓에 배탈이 난 것 같았다. 얼굴을 찡그리며 울 것 같은 표정의 딸을 보자 원아는 운전기사인 민석에게 부탁해 차를 근처 주차장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