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원아가 외출을 준비하는 것을 본 쌍둥이가 같이 가자며 떼를 썼다. 할아버지가 걱정되어 서두르던 원아는 시간이 없는 데다 마음까지 급해져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차가 A시 중앙 백화점 옆 상가건물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뒤쪽 카시트에 앉아 있던 원원이 원아를 불렀다. “엄마, 나 배가 아파요.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아무래도 어젯밤 엄마 말을 듣지 않고 멜론을 많이 먹은 탓에 배탈이 난 것 같았다. 얼굴을 찡그리며 울 것 같은 표정의 딸을 보자 원아는 운전기사인 민석에게 부탁해 차를 근처 주차장에 세웠다.
검은 차가 원아 모녀를 덮치는 것을 본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날카로운 비명이 공기를 가르고 울려 퍼졌다. 소리를 들은 원아는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차를 발견했다. 원아의 눈이 커졌다. 차가 너무 빨리 오고 있어 피할 겨를이 없었다. 순간, 원아는 원원을 세게 밀쳤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쾅!!!검은 차는 원아를 세게 들이받았다. 원아는 날개가 찢긴 나비처럼 바닥을 구르며 멀리 날아갔다. 원아는 필사적으로 아랫배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곧 아래쪽에서 피가 흘러
병원에서, 원아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공기가 불안정하게 흘렀다. 그때 수술실 문이 열리며 의사가 나왔다.민석과 쌍둥이는 급히 의사 앞으로 달려가 초조한 얼굴로 원아의 상태를 물었다.훈아는 더욱 작은 몸을 움츠린 채 숨을 죽이고 의사의 얼굴을 바라봤다. 중년 의사가 마스크를 벗고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환자의 보호자가 누구시죠? 지금 환자의 상태가 매우 위급합니다. 바로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 전에 보호자의 서명이 필요합니다.”“선생님, 환자분은 저희 사모님입니다. 저는 수술 동의
피비린내가 소독약 냄새와 섞여 콧속으로 들어왔다. 소남은 떨리는 손으로 원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작은 얼굴에 손을 가져갔지만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얀 얼굴에 검고 긴 속눈썹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소남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아이 유산, 다리 절단 수술…….소남이 주먹을 꽈악 쥐었다. 순간, 원아가 차에 치여 나뒹구는 장면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보물과도 같은 여자가 지금은 침대 위에 누워 죽어가고 있었다. 천천히 시들다 마침내 사라져버릴지도 몰랐다.그는 원아의 손
병원장은 소남의 말에 깜짝 놀라며 온몸에 식은땀을 흘렸다. “네, 알겠습니다, 문 대표님. 안심하세요. 저희가 반드시 최선을 다해 사모님의 생명을 구하겠습니다!”“나는 그런 모호한 대답을 싫어합니다. ‘최선’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합니다.”그의 눈빛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매섭게 뜬 두 눈에서 포악함마저 묻어났다. 병원장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네, 문…… 문 대표님…….”소남의 얼굴이 그제야 조금 풀어졌다.병원장은 도망치듯 안으로 들어갔다.‘상업계의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그는 한 번 화를
사윤의 뒤를 따라 나오던 이들은 그가 정말 명의라고 생각했다. 소남은 사윤을 믿었음에도 여전히 긴장되었다. “원아는 좀 어때?”사윤이 피곤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며 말했다. “걱정 마요. 제가 나서서 안 되는 일이 있던가요? 만약 형수가 죽음의 길로 올라섰다 해도 난 다시 데려올 수 있어요. 아기도 형수 다리도 모두 무사해요. 어때요? 결과에 만족하십니까?”“고맙다. 정말 고마워.” 소남이 진심을 다해 말했다. 평소에는 감정 표현을 안 해 다른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 한 번 한 적 없던 그가 몇 번이나 감사를 표하자 사윤은
동준은 쌍둥이를 집에 데려다 주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병실로 들어선 그는 대표님의 얼굴이 유난히 어두운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동준이 보기에 그는 한결같이 냉정하고 우아한 신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얼굴 가득 알 수 없는 슬픔이 서려 있었다.동준은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으나, 매서운 소남의 눈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최대한 빨리 사고를 낸 운전자를 찾아. 절대 놓치면 안 돼. 민석이 이미 조사하러 갔으니 넌 협조만 하면 돼."그의 목소리는 거칠었다. 한마디 한마디에 살기가 느껴졌다. 동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검사를 마친 병원장이 감탄하며 말했다. “문 대표님, 사모님의 다리는 구사일생으로 살렸습니다. 뱃속 아기의 상태도 괜찮고요. 다만, 이제부터 더 조심해야 합니다. 사모님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병원장이 ‘사모님’이라고 하는 말에 원아는 적응이 안 됐다. 소남과 결혼한 것도 아니고, 약혼식도 그렇게 끝나버렸기 때문에 이런 말을 듣는 것이 무척 난처했다. 하지만 소남이 아무 말이 없는 것을 보고는 가만히 있었다. “고맙습니다, 병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