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을 잠그지 않았다는 말에 동준은 뭔가 생각 난 것 같았다.동준이 눈동자를 반짝이며 물었다.“퇴근 후에 혹시 가방에 넣어 집에 가져간 건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원아는 곰곰이 어제 일을 회상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딱 잘라 말했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이동건은 손목에 차고 있는 명품 시계를 보더니,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만 해요! 변명 따윈 듣고 싶지 않습니다! 잠깐 시간을 줄 테니 어리석은 실수를 해결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협력팀에서 탈퇴하십시오. 내 밑에 쓸모없는 사람을 둘 수는 없습니다.”이동건의 호통을
‘너무 자신만만한데?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줄은 아는 걸까?’‘많은 사람이 정성껏 회의를 준비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생겨. 그런데 즉석으로 발표하겠다고!’의심 가득한 눈빛들이 원아를 향했고, 원아의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했다.원아는 두꺼운 서류 묶음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이것은 조금 전 설계부서로 달려가 허둥지둥 자료를 찾을 때, 서류함에서 찾은 건축 설계 원고의 일부였다.물론 이 원고들은 추상적인 평면설계도도 아니고 소프트웨어로 만든 3D 효과도도 아니었다. 한가한 때 연필과 색연필로 그려낸 건축 효과도였다.원아
비록 조금 조잡하긴 했지만, 스크린에 비친 자료는 원아의 회화 실력과 건축 설계 실력을 한 번에 드러냈다. 알록달록한 건물 외관과 불규칙한 다층 공간의 건물들은 독립된 듯하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원아는 또 건축 설계에 많은 유행 요소들을 추가했는데, 열린 공간, 생태 경관, 공중 오락 시설, 편리한 교통수단 등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예상하게 하는 상가의 모습을 기획했다.원아의 건축 자료가 놀라울 만큼 뛰어나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문소남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원아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에 담았다.지금 그
이번 구도심 상권 개발에는 수백억 원의 자금이 투입됐다. T그룹과 VIVI그룹이 손을 잡은 것은 단순히 거대한 자금줄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단독으로는 이 황금 부지를 모두 따 내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시장경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A 시 입장에서는 맛있는 케이크 하나를 하나의 회사에 몽땅 몰아주는 것은 불가능했다.설령 어떤 한 회사가 그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수백억 원의 자금이 걸린 합작에서 상대방이 얻는 이윤이 자기보다 일 퍼센트라도 더 많다면, 그것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원아 역시 마음이 급해졌다. 문소남이 이번 합작을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 원아는 너무나 잘 알았다.도시 건설 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었다. 그랬던 그가 무슨 이유로 갑자기 태도를 바꾸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때 문소남이 침착함을 유지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그는 급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는 VIVI 그룹 직원들의 모습을 쳐다보며 한껏 여유를 부리며 상대방을 더욱 자극했다.‘너무 어이없네. 아니 형님은 VIVI 그룹은 안중에도 없는 듯 행동하고 있잖아?’자리에 앉아 있던 문예성이 형
이동건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지금 문소남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 말고도 합작할 수 있는 곳이 여럿 있었단 말이야?’이동건은 문소남의 넓은 인맥과 깊은 관계성을 생각하며 망설였다.만약 이번 합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문소남은 정말 다른 곳과 계약을 맺을지도 몰랐다.무엇보다 문소남이 언급한 회사들은 모두 실력 면에서나 권력 면에서나 뒤떨어지는 곳이 없었다.결국, 이동건은 가슴을 쥐어뜯는 심정으로 무기력한 표정을 하고는 말문을 열었다.“문 대표님, 우리 그룹 임원들과 상의하고 다시 결정할 수 있도록 시간을
깎은 듯한 정교한 턱에 수염이 많이 자라난 것을 본 원아는 마음이 아파 그의 턱을 부드럽게 문질렀다.깨끗하고 단정한 것을 좋아하는 소남은 합작을 성공시키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니느라 수염 깎을 겨를도 없었다.그가 계약을 맺지 않은 진짜 이유가 결코 이윤 때문이 아님을 원아는 알고 있었다.문소남은 눈앞의 요염한 여인에게 가볍게 키스하며 아무 말 없이 안고 있고 싶었다. 그녀가 품에 있으면 아무리 힘든 마음이라도 가벼워질 것 같았다.임신한 원아는 여전히 날씬해 보였지만 얼굴에 살이 좀 붙었다. 껴안으면 확실히 예전보다 약간 풍
하지윤은 원래 대표실에 와서 문소남에게 왜 중간에 협상이 바뀌었는지 물어보려고 했다.분명히 회의 시작 전에 이미 약속한 내용이었고, 그랬다면 오늘 VIVI 그룹과 계약이 성사되었을 것이었다.문 대표의 뜻을 물으러 왔다가 뜻하지 않게 지윤은 자신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하지윤은 목구멍이 무언가에 막힌 듯 답답하고 괴로웠다. 가슴은 불에 타는 것처럼 점점 더 아파졌다.문소남을 처음 보았을 때 하지윤은 이미 그에 대한 정이 깊은 상태였다.국제 유명 설계 및 다자인 대학을 졸업한 재능이 넘쳤던 하지윤은 많은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