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점심이 되었다.가정부가 며칠 휴가를 냈기 때문에, 점심밥은 원민지와 원아가 한다.그녀들은 슈퍼마켓에서 야채를 큰 봉지로 두 봉지나 샀다.할아버지와 문소남이 모두 보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원아는 갈비와 오계를 사서 보신탕을 끓일 계획이다.주방에서 원민지는 야채를 씻으면서 원아을 교육했다."원아, 비록 네가 지금 소남이랑 애가 둘이 있지만 그래도 계속 이렇게 명분 없이 지내는 건 아니야. 고모도 다 겪어봐서 아는데 남자가 너를 사랑할 땐 너를 보배로 여기면서 목숨까지 줄 수 있어. 근데 사랑하지 않는 날에는 네
점심은 가정식이지만 매우 풍성했다. 닭, 오리, 생선, 고기 골고루 있었다.각종 생채 무침에 따뜻한 요리들까지 차려져 있었다. 그중에는 원 노인이 즐겨 마시는 술도 있었다.원 노인이 좋아하는 술은 문소남이 이불러 원아한테서 알아본 것이다. 그래서 멀리 가서 이 술을 사들고 왔다.원아는 마지막 요리 갈비탕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서야 문소남의 곁에 앉았다.할아버지께 국을 떠주면서 원아는 말했다."할아버지, 이 음식들은 모두 제가 얼마 전에 레시피를 보면서 배운 거예요. 드셔 보세요. 할아버지께서 좋아하셨으면 좋겠어요."식탁 위
남자의 입술은 살짝 올리며 말투를 부드럽게 했다."할아버지, 여기 오기 전에 저는 고객들이랑 몇 잔 마셨어요. 오늘 이 술은 도수가 너무 높아서 제가 벌써 좀 취한 것 같네요. 다음에 할아버지랑 더 마시면 안 될까요? 맞다, 그리고, 저희 할아버지한테는 각종 약재로 백 년 묵은 약주가 몇 병 있어요. 그 술은 맛도 좋고 향기도 좋고 몸도 보신할 수 있어서 할아버지의 몸에도 좋으실 것 같아요. 그런 술은 할아버지께서 한 병 드셔도 괜찮아요. 오늘 너무 급하게 오느라 아쉽게도 깜빡하고 못 가져왔네요. 다음에 제가 그 약주를 가져다드릴
물론 문소남의 가족은 그에게 돈 봉투를 준 적이 없었다.어렸을 때도 없었다.할아버지는 그에게 엄하고 가혹했다. 채은서는 그에게 적의가 가득했다. 낳아 주신 어머니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녀는 자기 아들에게 돈을 달라는 말밖에 없었다.지금 문소남의 손에는 원 노인이 자신에게 준 돈 봉투를 쥐고 마음속엔 감개무량하였다.돈 봉투는 가벼운데 그는 오히려 무겁다고 느껴졌으며 그의 손목마저 약간 떨렸다. 문소남은 늙은 노인의 돈을 받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 돈 봉투의 의미가 다르다.그는 반드시 받아야 한다."소남아, 할아버
사실, 이 22만원의 돈 봉투가 바닥에 떨어져도 문소남은 허리를 굽혀 주우러 가기 귀찮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돈을 주운 사이 이돈의 백배의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돈 봉투는 손녀사위인 그에 대한 할아버지의 축복과 긍정이다. 그래서 그는 무겁다고 느꼈다."우리 원아는 복 많아. 이 손녀사위의 인품은 말할 것도 없지만, 명문가의 며느리 하기가 어렵지! 너처럼, 애초에 일본 그 부잣집에 시집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렸는데 듣지도 않고, 지금 봐, 아이고...... ."유일한 딸을 얘기하면 그녀의 불행한 결혼이 먼저 떠
T그룹 광고부.아름답게 꾸며진 실내 촬영 세트장에는 생동감이 넘쳤다. 스태프들은 제 할 일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이번에 촬영할 향수는 T그룹이 새로 개발한 프리미엄 ‘퀸’ 시리즈의 하나로 여성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상징하는 매력적인 향을 지녔다. T그룹에서 거창하게 출시한 상품이었다.이번 향수 광고의 주제는 ‘러쉬'였다.촬영장의 사람들은 모두 질서정연하게 맡은 바 일을 잘 해내고 있었다.원아는 짙은 스모키 화장을 하고 스팽글이 잔뜩 달린 시스루 차림을 한 영은을 발견했다.영은은 컨셉에 맞춘 섹시한 옷차림을 하고
“저 배우는 예쁘기는 하지만 영혼이 없어. 표현력도 형편없고. 더군다나 이 향수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 똑똑하고 안목도 좋은 문 대표가 어쩌다 이런 배우를 골랐지?”……촬영장에는 많은 사람이 영은을 둘러싸고 있었다. 마치, 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달을 감싸 안은 것 같은 모양이었다.직원 하나가 영은에게 물병을 건넸다. 영은이 웃으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요제프 감독을 증오하고 있었다.대부분 사람은 영은의 사회적 위치를 의식해 환심을 사기 위해 애썼을 뿐, 누구 하나 감히 그녀의 연기를 비판
영은은 디자이너인 원아를 자기 매니저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차를 따르도록 한다거나 대본 연습 상대로 삼았다. 심지어 밖에 나사 커피를 사 오라고 시키기까지 했다.영은은 원아를 잠시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원아에게 일을 시킬 때, 영은의 목소리는 나긋나긋 부드러웠고, 말투 역시 애교 섞인 공손한 말투여서 한치의 흠도 잡을 수 없게 했다.광고부 직원들조차 영은과 같은 재벌 집안의 딸이 어떻게 이리 진실하고 사랑스러울 수 있는지 놀라는 눈치였다. 나중에는 모두가 원아의 매니저 역할을 당연하게 여길 정도였다.일반인이 톱스타를 가까이서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