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남은 늘 원아에게서 신선하면서도 달큼한 수밀도 같은 감각을 느낀다. 독특한 그의 취향에도 무척 잘 맞다. 이런 느낌은 어떤 여자도 대신할 수 없을 거다.그는 자신이 두 사람의 대등한 관계를 위해 이미 많은 노력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아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망설이기만 해서, 그는 괴롭지만 어찌할 수도 없었다.문소남의 말에 원아는 마음이 시큰해졌다.맞다. 그녀는 자신이 이 남자의 마음에서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는 알 수 없는 열등감도 여전히 숨어 있었다.가슴 속에 봉인된 듯한 그
우리 사이에 그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나는 항상 믿고 있습니다. 당신과 내가 함께 싸우면 아무리 많은 방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요. 나는 다만 여태 생각지 못했습니다. 당신을 붙잡고 앞으로 나가려고 할 때, 당신은 계속 망설이며 물러나려 한다는 것을요.”여기까지 말하던 문소남이 한 쪽 눈을 살짝 치켜 올렸다. 이때 그의 손가락들 역시 살짝 떨고 있는 듯했다.숨을 깊이 내쉰 그는 검은 먹 같은 눈동자로 줄곧 새까만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큰 결심을 한 듯이 자신의 진심을 토해냈다.그녀가 자신의 눈에 담긴 열등감을
다음날.T그룹.“팀장님, 요구하셨던 설계도입니다.”원아는 출력한 설계도를 팀장에게 건네 준 뒤, 이어서 말했다.“설계 출력본의 디지털 파일은 이미 팀장님 업무 메일함으로 발송했습니다.”의심스럽다는 듯이 받아 든 팀장은 설계도면 상의 아름다운 견본 설계를 보았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란 팀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원아씨, 이 설계도, 당신이 그린 것 맞아요?”원아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예쁜 얼굴에 차분하고 담담한 표정이 걸려있었다.팀장은 원아의 설계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았다.그녀가 손에
원아가 설계 자료를 살펴보고 있을 때, 그녀 책상 위의 내선 전화가 울렸다.원아가 전화를 받자, 문소남의 지시가 들려왔다.“A606 회의실로 잠시 오세요.”“예, 대표님!” 원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즐거운 듯한 마음으로 대회의실로 갔다.회의실 안에는 이미 각 부서의 엘리트 디자이너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다국적 기업인 T그룹의 설계 부서는 여러가지 파트로 나뉜다. 건축, 보석, 패션, 정원, 환경, 공업, 그래픽, 실내디자인 등을 포함해서 아주 세분화되어 있었다.A606 대회의실은 88층에 있었다.천장이 아주 높게 설계된
회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문소남은 블랙 슈트 차림으로 상석에 앉아 있었다. 위로 꼿꼿하게 세운 그의 탄탄한 체격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단연코 눈에 띄었다.그의 눈은 깊고 검은 바다 같았고, 입술은 옅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보이지 않게 묵직한 위압감을 더하였다. 그는 먼저 회의 시작에 대해 짧은 멘트를 한 후 조용히 경청했다. 각 설계 부서의 책임자들이 지난달 실적을 보고했다.이어서 회의는 “디자인 생산성”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모든 디자이너들이 이 분야의 흐름과 동향에 대해 다같이 토론했다. 또 창의적인
슬라이드의 설계 견본은 별빛으로 가득한 하늘 아래 우뚝 솟아 있는 초고층 빌딩의 모습이다.웅장함을 뽐내는 그 화려한 디자인은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 나올 법한 빌딩이었다.빌딩 전체 디자인이 신비스러우면서도 세련되었다. 빌딩 위에 부조된 디테일한 문양의 반복 패턴이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관건은 이 빌딩이 이동, 회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유리 패널로 뒤덮인 빌딩 외벽은 도시 전체의 윤곽을 거꾸로 비고 있어, 정교하게 만들어진 아름다운 예술품 같았다.디자이너들 몸 속에서 뜨거운 피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참신하고 혁신적인
그러나 그녀는 문소남의 눈에 담긴 격려와 신뢰의 눈빛을 읽었다.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뛰어 대던 그녀의 심장이 저도 모르게 점차 차분해지기 시작했다.원아는 설계도를 바라보며 천천히, 조리 정연하게 말했다.“이 설계는 디지털화, 매개 변수화, MAD의 기술을 사용했기 때문에, 대표님이 설계하신 이 유기적 건축물이 이런 인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봅니다.동시에 이미징 원리를 접합시켰습니다. 외벽의 유리 패널을 거울로 반사되게 해서 바깥의 번화한 경관을 거꾸로 비추게 되면, 일종의 시각적인 향연을 주게 됩니다. 빌딩 내부에서도 유리 패
문소남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원아는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그가 설계했던 이 작품은 표면상으로는 결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디자인 공력이 깊은 사람은 이것이 반 하자품이라는 것을 알아볼 것이다. 그의 실력이라면, 이런 결함은 아예 처음부터 피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는 일부러 이런 결함들을 남겨 두었다.원아의 말이 맞다. 이 작품의 흠은 너무 완벽하다는 것이다.그는 현실의 요소들을 이 작품에서 무한히 과장했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말해, 이 설계는 현실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현재 인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