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아연은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오늘은 날씨가 흐려 날이 일찍 어두워졌다.온몸이 젖은 채 넋이 나간 진아연의 모습을 본 이모님은 깜짝 놀랐다."아연 씨, 왜 그래요?" 이모님은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대표님이 가셔서 아쉬운 거예요? 이러지 말아요.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든 귀국할 수 있잖아요."진아연은 고개를 저으며 쉰 소리로 물었다. "아이들은요?""지성이는 자고 있고 라엘과 한이는 샤워하러 갔어요. 조금 전 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드느라 옷이 다 젖었거든요." 이모님이 말했다. "아연 씨, 아연 씨의 머리와 옷도 다 젖은 것 같은데 따뜻한 물로 샤워해요. 제가 도와드릴까요?"그녀가 고개를 젓고 나서 방으로 돌아가자걱정된 이모님이 그녀를 따라갔다."참, 앞으론 애들 앞에서 박시준을 언급하지 말아 주세요." 그녀가 발걸음을 멈추고 이모님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이랑 헤어졌어요. 이모님과 홍 아줌마는 박시준의 사람이니..."그녀는 더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그녀는 이모님과 홍 아줌마에게 박시준의 옆으로 돌아가라 말하고 싶었다.박시준과 헤어졌기 때문에 더는 그의 사람을 쓸 수 없었다.이모님은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아연 씨, 너무 갑작스럽네요. 전... 뭐라고 말해야 맞는지 모르겠지만 전 남아서 지성이를 돌보고 싶어요.""하지만 이모님은 박시준 씨의 사람이잖아요. 앞으로 전 그 사람과 엮일 일이 없을 거예요. 제가 아무리 이모님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모님 때문에 그 사람과 연락하는 건 싫어요." 그녀는 자기 생각을 솔직히 말했다.이모님은 눈시울이 촉촉해진 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그때 홍 아줌마가 다가와 아연에게 말했다. "아연 씨,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아쉽다고 생각해요. 전 박씨 가문에서 한평생 도우미로 있었으니 전 내일 떠날 거예요."진아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이모님에게 말했다. "이모님도 홍 아줌마와 함께 가세요."이모님은 참지 못하고 울면서 자리를 떴
그녀는 진아연의 방에 가서 박시준의 물건을 찾아 홍 아줌마에게 주려 했다.진아연이 박시준의 물건을 보고 싶지 않아 할 것인데 버리느니 홍 아줌마에게 부탁해 가져가도록 하려는 것이었다.이모님은 문을 두드린 후 방 안에 들어갔다."아연 씨, 전 이미 대표님에게 그만둔다고 얘기했어요." 이모님은 침대 옆에 다가갔다. 진아연이 눈을 뜨고 있는 걸 본 이모님이 말을 계속 이었다. "대표님의 물건을 챙겨 홍 아줌마에게 가져가라고 부탁하려고요."진아연은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단호한 어투로 대답했다. "이미 사직했으니 앞으로는 그 사람이랑 연락하지 말아요. 지성이의 사진도 보내지 말고요.""알았어요.""그 사람 물건은 이미 다 챙겨 놓았어요. 책상 옆에 있는 캐리어가 그 사람 거예요." 진아연은 어젯밤에 열이 나서 일어나 해열제를 먹다가 박시준의 캐리어를 발견했다. 그래서 그의 물건을 전부 캐리어에 주워 담았다."아연 씨, 기색이 별로 안 좋아요. 좀 더 자요." 이모님은 말을 하고 나서 캐리어를 끌고 다급히 밖으로 나갔다.홍 아줌마를 배웅하고 난 이모님은 고민 끝에 마이크에게 전화를 걸어 여소정에게 전화 한번 해보라고 했다.마이크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여소정은 왜요? 아연이한테 여소정의 전화번호가 있을 텐데요?"이모님: "휴!""무슨 일이예요? 그냥 물어본 거니 한숨 쉬지 말아요. 지금 여소정에게 전화해볼게요.""마이크 씨, 그냥 마이크 씨가 돌아와요." 이모님은 진아연이 두 눈이 벌겋게 된 채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던 모습이 떠올라 가슴 아파서 한마디 했다. "아연 씨가 대표님과 헤어졌대요. 대표님이 강진 씨와 결혼한다고 하던데 너무 갑작스러워 아무것도 묻지 못했어요.""젠장!" 마이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박시준이 강진과 결혼한다고요?""네, 마이크 씨가 여소정에게 전화해 아연 씨를 위로해주라고 부탁해주세요. " 이모님은 다른 할 말이 없어 전화를 끊었다.마이크는 휴대폰을 꼭 잡고 머릿속으로 이 일을 정리했다.조지운
"그녀를 만났어?" 박시준은 담배 하나를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만났어." 성빈은 그가 화를 내지 않자 마음속의 분노가 조금 줄었다.심지어 그에게 라이터가 없는 걸 보고 불까지 붙여주었다."그녀가 날 찾아왔었어." 성빈은 그의 옆자리에 앉아 탁자 위에서 담배 한 대를 주워 불을 붙였다. "무슨 약점을 잡힌 거 아니야?"박시준은 눈을 살짝 내리깔고 씁쓸하게 말했다. "강진이 아니야.""그래? 강씨 가문에게 약점을 잡힌 거야? 어쩐지, 내가 아는 강진은 지금의 모습으로 절대 사람들 앞에 나설 사람이 아니거든. 정말 너랑 결혼한다고 해도 절대 성대한 결혼식을 원하진 않을 거야."박시준이 성빈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 모습인데?""설명하기 어려워. 지금 머릿속으로 강진 씨의 얼굴을 생각만 해도 섬찟해." 성빈은 이를 갈며 말했다. 그러면서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를 부러뜨렀다. "지난날의 사랑이나 증오나 모두 무색해졌어. 난 지금 그녀에 대한 느낌은 오로지 무섭다는 거야. 동정도 조금 있고."박시준은 담뱃재를 재떨이에 털고 나서 말했다. "내일 가봐야겠어.""내일 그녀를 보면 생각이 바뀔지도 몰라." 성빈이 소파에 기대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강진이 어떻게 변했던 난 그녀와 결혼할 수밖에 없어." 박시준은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나서 연기를 내뿜었다. "난 이미 진아연과 아이에게 상처를 줬으니 다른 선택이 없어.""몇 년 전에 이미 결정했던 거야?" 성빈은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따져 물었다. "그럼 B국엔 왜 갔는데 ? 그리고 왜 그녀와 발렌타인데이는 보냈고 가족사진도 찍은 건데? 너 제정신이야?""맞아. 나 제정신 아니야." 그는 솔직히 말했다. "꿈에서도 그녀와 함께 있길 원해. 그래서 그녀가 날 불렀을 때 잠시 이성을 잃었었어.""이게 아연 씨에게 얼마나 큰 상처인 줄 알면서 좀 억제하지 그랬어? 아연 씨와 아이는 어떻게 해? 너 혹시 아연 씨에게 협박당하고 있다는 거 얘기하지 않았어? 넌 분명 말하지 않았을 거야!" 성빈은 그를
어쨌거나 이번에는 대표님의 잘못이 확실했다.대표님에게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다고 해도 진아연은 잘못한 것이 없지 않는가?마이크는 조수석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고 나서야 이모님의 부탁이 떠올랐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여소정에게 전화를 걸었다.B국.여소정은 마이크의 전화를 받고 나서 곧 차를 몰고 진아연의 집으로 향했다.진아연은 어젯밤 열이 나서 해열제를 먹었지만, 일시적으로만 열이 내렸다가 아침이 되자 또다시 열이 났다.그녀는 아침에 일어난 뒤 자신과 박시준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고 두 아이에게 알려주려 했다.하지만 열이 아직 내리지 않아 감기가 아이들에게 옮길까 걱정되어 계속 누워 쉬고 있었다.여소정은 침실에 들어선 뒤 문을 닫았다.진아연은 누군가의 움직임을 듣고 눈을 떴다."아연아. 어디 아파?" 여소정이 침대 옆에 다가가 손을 이마에 갖다 댔다. "열이 조금 있네. 약은 먹었어?""응." 그녀는 여소정을 바라보며 가까스로 대답했다. "누가 불렀어?""마이크가 전화했어." 여소정은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곧 흐느끼기 시작했다.진아연은 멍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아연아. 난 내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네가 더 비참해... 우린 왜 이렇게 비참한 걸까? 너무 힘들어. 매일 울고 싶은데 다른 사람 앞이라 울지도 못해. 다른 사람이 비웃을까 두렵거든. 남자 하나 때문에, 세상에 남자가 이렇게 많은데 또 하나 찾으면 되는데 말이야... 하지만 내가 앞으로 누굴 만나든지 그 사람이 하준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죽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아파."진아연은 그녀의 하소연을 듣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아연아, 나 괜찮아. 누워있어." 여소정이 그녀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인생의 절반을 너무 순조롭게 살았나 봐. 그래서 지금 조금만 힘들어도 하늘이 무너지는 거라 생각하는 걸 거야. 넌 나보다 훨씬 용감해. 난 네가 늘 부러웠어.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애들도 잘 키우고 있잖아. 난 나 자신조차 돌
여소정은 자신이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진아연이 나은 뒤 아이들에게 말해도 되는데그녀는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게 마음에 걸렸다."소정 이모, 오빠가 아침에 저한테 말해줬어요." 라엘은 입을 열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시는 아빠를 믿지 않을 거예요. 아빤 나쁜 사람이에요!"여소정은 라엘을 품에 안고 달랬다. "라엘아, 울지 마. 아빠가 없어도 너에겐 엄마랑 오빠가 있잖아. 그리고 나도 있고. 우린 영원히 널 사랑할 거야.""제가 화난 건 아빠가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는 거예요." 라엘은 눈을 비비며 말했다. "그리고 엄마를 슬프게 한 것도 화나요. 난 울면 안 돼요... 내가 울면 엄마가 더 슬플 거예요."라엘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눈물을 똑똑 떨구고 있었다."흑흑... 작은 소리로 울 거예요..."여소정은 가슴이 아팠다. "괜찮아. 우리 잠시만 울고 다시는 울지 말자. 쓰레기 같은 남자를 위해 눈물을 흘릴 필요 없어. 지금 국내에서 혼자 잘 먹고 잘살 텐데."배신감을 느낀 라엘은 입을 삐죽 내밀고 투덜댔다. "나한테 분명 잘해줬어요. 함께 놀러 갔을 때 내가 힘들다고 안고 다녔단 말이에요.""엄마한테도 잘해줬어요." 여소정은 진아연이 며칠 전에 올린 인스타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두 사람은 꿀이 떨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다른 여자랑 결혼할 거야. 어른들의 세상은 좀 복잡해. 넌 지금 잘 모르겠지만 너랑 오빠는 잘 커 주기만 하면 돼. 다른 일에 신경 쓰지 말고."라엘은 입을 삐죽 내밀고 괴로워했다."라엘아, 이모가 너랑 오빠 데리고 놀러 가는 건 어때?" 여소정은 두 아이를 데리고 바람 쐬러 나가려 했다.라엘은 화가 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놀고 싶지 않아요. 집에 있을 거예요. 엄마가 아픈데 다 나아야 안심할 수 있어요.""라엘아, 넌 참 착해.""오빠만큼은 아니에요. 오빤 예전부터 아빠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어요."A국.밤새 쉬고 난 박시준은 강진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한 시간 후 강진
"그래.""시준아, 내가 너랑 결혼하려는 거 아니야." 강진이 생각에 잠기다가 그에게 사실대로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강주승이 날 이용해 당신을 모욕하려는 거야. 난 결혼하고 싶지 않아. 결혼식도 하고 싶지 않고.""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그는 심드렁하게 말했다.그녀는 잠시 멍해 있다가 그의 차가운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진아연은...""강진, 당신은 나에게 약속한 일만 제대로 하면 돼. 내 사적인 일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내가 대신 설명해 줄 수도 있잖아." 강진이 친절하게 말했다."필요 없어!" 박시준이 버럭 화를 냈다. "그 여자를 건드리지 마!"그는 진아연이 지금 어떤 마음일지 잘 알고 있었다.누군가 지금 그녀의 앞에서 그를 언급하면 그녀는 아마 화를 낼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강진이라면 더 크게 화를 낼 것이다.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그녀를 그냥 두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문제가 해결되면 직접 그녀를 찾아가 용서를 빌 생각이었다.2시간 후, 인터넷에 기사 하나가 떴다.-- ST그룹의 대표 박시준이 거금을 들여 신화 투자의 딸 강진과 결혼한다는 내용이었다.이 기사는 강주승의 지시에 따라 발표한 것이었다.강주승은 박시준이 강진과 결혼할 것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려 했다.결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금을 들여 결혼식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이다.기사에서는 박시준이 1조를 예물로 보내 강진에 대한 사랑을 보여줬다고 했다.그리고 강진이 화재로 인해 얼굴이 망가졌지만 박시준은 여전히 그녀의 곁을 지키며 그녀에게 성대한 결혼식을 선물한다고 했다.물론 이 1조는 강진의 손을 거치지 않고 강주승의 계좌에 들어갔다.강주승은 이 결혼식을 핑계로 박시준에게서 정당하게 한방 먹였고 박시준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도록 했다.기사에는 이미 얼굴이 망가진 강진의 사진도 공개했다.이 기사는 A국에서 거대한 파문을 일으켜 전례 없던 이슈가 되었다.—— 박시준과 강진? 내 기억이 잘못된 거야? 난 왜 박시준의 여자친구가 진아연이라
"아연아, 며칠 동안 휴대폰을 보지 마." 여소정이 귀띔했다. "박시준이 B국에서 기사 일면을 산 것 같은데 보기 역겨워."진아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비록 열이 내리긴 했지만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배가 너무 고팠다. 그뿐만 아니라 목이 너무 말라 목소리가 잘 나오지도 않았다."아연아, 뭐 좀 먹고 있어. 난 마이크 마중하러 공항에 가야 할 것 같아. 곧 도착할 테니 지금 바로 공항에 가야 해."이모님이 죽 한 그릇을 진아연의 앞에 놓았다.죽 한 그릇을 먹은 진아연은 체력이 조금 회복되는 것 같았다."라엘아, 한이야, 왜 그렇게 날 빤히 보는 거야?" 진아연이 웃으면서 말했다. "엄만 그저 감기 걸렸을 뿐이니까 곧 괜찮아질 거야.""엄마, 몰래 울었어요?" 라엘이는 엄마의 두 눈이 벌겋게 부은 것을 보고 입을 삐죽하며 말했다. "속상해하지 말아요. 엄마에게는 나랑 오빠도 있고 동생도 있잖아요. 우린 영원히 엄마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엄마도 알아. 그래서 엄마의 병이 나았고 기분도 좋아졌어." 진아연은 딸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이때 한이가 다가와 아무 말 없이 엄마를 안았다.아이들을 꼭 껴안은 그녀는 에너지가 몸속으로 끊임없이 주입되는 것 같았다."엄만 예전에 너희들에게 온전한 가정을 주고 싶었어. 하지만 지금 세상에 온전하다는 건 없다는 걸 발견했어. 행복하게 잘 살기만 하면 그게 온전하다고 할 수 있어. 그러니 엄마 걱정은 안 해도 돼. 너희들이 엄마 옆에 있으면 엄만 너무 행복하거든.""엄마, 저 앞으로 다시는 말썽 피우지 않을게요. 엄마랑 오빠 말 꼭 잘 들을게요." 라엘은 타격을 받고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엄마, 제가 동생을 잘 돌볼게요. 앞으로 엄마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 돼요.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요." 한이가 어른스럽게 말했다.진아연은 감동이 밀려와 크게 숨을 들이쉬며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참아냈다.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면 그녀는 이번 생에 아무런 여한이 없을 것이
"그럼 돌아가서 재밌는 구경거리를 봐야겠어. 강진은 얼굴이 망가졌다고 했지? 그럼 놀라운 모습일 텐데 박시준이 결혼을 고집하는 걸 보니 정말 사랑하나 보지. 국내엔 이미 큰 이슈가 되었을 거야. 도대체 왜 꼭 강진과 결혼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내가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일이잖아."잠시 후, 차가 별장 앞에 멈춰 섰고 마이크는 차에서 내려 성큼성큼 거실에 들어섰다.진아연은 한창 라엘이와 블록을 쌓고 있었다. 마이크는 성큼성큼 그녀의 옆에 다가가 얼굴을 유심히 살펴봤다."뭐 하는 거야?" 진아연은 그를 밀쳤다. "일을 시작할 거라고 하더니 왜 온 거야?"마이크가 혀를 차며 말했다. "내가 오고 싶으면 오는 거지. 내가 없으면 회사가 일을 못 한대? 내가 그렇게 중요한 존재였다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여소정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연아, 마이크 씨한테 뭐라고 하지 마. 잠옷을 입고 있는 걸 봐. 외투를 입을 겨를도 없이 왔으니 얼마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알 수 있잖아."이 말을 들은 진아연은 마이크를 힐끗 보더니 심드렁하게 말했다. "내가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오버하는 거야?"마이크: "네가 이렇게 나오니 마음이 한결 놓여."그녀가 지나치게 힘들어하면 다른 사람에게 뭐라 할 힘이 없을 것이다.저녁.밤이 깊어졌고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진아연은 잠이 오지 않아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설도 다 지나갔고 그녀는 일을 시작하려 했다.하늘이 무너지지 않고, 그녀가 아직 살아있는 한 인생은 원래 궤도를 따라 계속 나가야 했다.그녀는 가능한 한 빨리 마음을 바로잡아야 했다. 곧 최운석의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이건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며칠 전 잠에서 깼을 때 책상 앞에 서 있던 박시준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그때 그는 그녀의 책상 앞에 서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그녀가 그를 부르자 그는 다급히 무언가를 서류 박스에 집에 넣었던 게 떠올랐다.그녀는 서
3년 후.A국, 공항.현이는 둘째 오빠와 함께 공항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3년이야 3년! 남자친구라는 사람 드디어 너 찾으러 오는 거야!" 박지성은 현이를 놀리며 얘기했다. "설마 너랑 헤어지러 오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3년 동안 못 만났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현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둘째 오빠, 저 지금 저주하시는 거예요? 비록 3년 동안 못 만났지만 매일매일 영상통화 하면서 서로 얼굴 봤거든요!"박지성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사이버 연애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현이: "어쨌든 이번에 A국에 와서 정착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이제부터 다시는 떨어져 지내는 일 없을 거예요."박지성: "네 남자친구도 자존심이 너무 강해. 이따 아버지 만나고 얘기 얼마 나누지도 않고 다시 티켓 사고 도망치는 거 아니야?"현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현이는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았다——서은준이 캐리어를 끌며 출구에서 나오고 있었다.현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은준을 향해 달려가 서은준의 품에 안겼다.이때 박지성은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진아연이 물었다. "아직 못 만났어? 설마 안 오는 건 아니지?"박지성: "엄마,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에요. 금방 나왔어요, 지금 현이랑 껴안고 있어요! 우리 이제 곧 집에 갈 거니까 엄마랑 아빠도 마음의 준비 잘 하고 계세요."박 씨 저택.진아연은 통화를 마친 후 박시준에게 전달했다.박시준은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자신의 용모를 검사했다.진아연은 화장실 문 앞에서 지켜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거울 그만 비춰요, 충분히 멋있어요!"박시준: "여보, 좀이따 은준이한테 좀 엄격해야 할까?"진아연: "현이가 그렇게 좋다는데, 은준이도 현이 위해서 A국에 있겠다고 한데다 엄격하게 해서 뭐하려구요? 굳이 두 아이의 기분을 망쳐야겠어요? 은준이도 지금 어엿한
서 어르신은 진지한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꺼낼 줄 예상치 못했기에 차마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냐하면 진지한에게 돈을 달라고 할 계획이긴 했지만 얼마나 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어쨌든 진지한은 엄청난 부자였고, 적게 달라고 하니 왠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였고 많이 달라고 하자니 거절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서 어르신은 한동안 망설인 후 진지한에게 말했다. "진 대표님 집이 A국에서 엄청난 부자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가 적당한지는 대표님께서 정하시죠! 저와 우리 아들에게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진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배유정은 그것을 보고 바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금액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가 적당할지 가늠이 안 가네요. 굳이 저희더러 정하라면 돌아가서 저희 시아버님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네요."서 어르신: "혹시 박시준 씨 말하는 겁니까?"배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저희 시아버님 저희 남편보다 더 까다로울 겁니다. 입장 바꿔서 아버님이라도 따님을 평범한 남자한테 시집 보내진 않을 거잖아요?"서 어르신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해요. 그럼 그냥 우리끼리 얘기하죠!"배유정: "지금부터 고민해 보셔도 괜찮아요. 저희 요 이틀 동안은 여기 있을 거거든요."서 어르신: "알겠어요! 그럼 우선 연락처 먼저 교환하죠! 나중에 일이 있을 때도 서로 연락하기 편하잖아요."배유정은 진지한을 흘끗 보았고 그제서야 진지한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서 어르신과 연락처를 교환했다.병원.현이는 서은준의 곁에서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했다.서은준은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시신을 옮겨달라고 했다.현이가 서은준에게 물었다. "장례식 간단하게 치를 생각이에요?"서은준: "엄마 켠에도 친척들이 별로 없어."현이: "네. 그럼 어머니 계실 묘지부터 골라야죠?"서은준: "엄마가 전에 유골을 엄마 고향 연못에 뿌려달라고 했어."현이: "..."서은준: "엄마는 내
진지한: "그래요 그럼! 근처에 가까운 카페라도 갈까요."서 어르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요! 사실 우리 집이 바로 병원 근처에 있는데 한 번 가보실래요? 현이도 우리 집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었고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사이가 아주 좋았거든요."진지한은 배유정을 보며 말했다. "그럼 한 번 가볼래?"배유정: "좋아요!"서 어르신은 즉시 진지한과 배유정을 자신의 차로 안내하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서 어르신의 집에 도착한 후 서 어르신은 즉시 하인들을 분부하여 과일과 디저트를 올리라고 했다.서 어르신은 집사를 가리키며 진지한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집 집사입니다. 예전에 현이 할머니도 집사가 뽑고 집에 들였죠."진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서 어르신은 집사에게 말했다. "이 분은 수수 친 오빠야, 유명한 대기업의 대표 진지한 씨."집사: "진 대표님, 안녕하세요! 수수 정말 괜찮은 아이였어요, 그때 우리 모두 수수를 많이 좋아했답니다. 전에 수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많이 속상했는데 사실이 아니라니 참 다행이에요! 수수는 정말 철도 들고 씩씩한 아이였어요, 제가 봤던 아이들 중 가장 씩씩한 아이에요. 수수가 잘 지내고 있다니 정말 기쁘네요."진지한: "전에 우리 동생 잘 챙겨줘서 고마웠어요."집사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별 말씀을요! 수수는 정말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어요. 매번 적극적으로 맡아서 일도 잘하고 정말 괜찮은 아이에요. 우리는 그때부터 수수가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나면 꼭 잘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진지한은 집사의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서 어르신이 집사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내려가."집사는 즉시 물러났다.서 어르신은 진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현이가 우리 은준이랑 사이가 좋았다는 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현이를 은준이 곁에 안배했거든요, 그때 두 아이 나이가 비슷했기도 했고 서로 얘기도 잘 통할 거
현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빠, 은준 씨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저 요 며칠 동안 언니 오빠랑 놀러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진지한: "괜찮아. 은준이 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우리도 놀 기분 아니야. 은준이 어머님 장례식 참석하고 돌아갈게."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여긴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지?" 진지한을 물었다.서은준은 현이의 남자친구자 현이 또래기도 하니 현이의 오빠로서 왠지 모르게 서은준을 도와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현이: "국내랑 비슷해요. 돈 많은 사람들은 거창하게 치르고 보통 사람들은 그냥 간단하게 치르곤 해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장례식은 따로 안 치르고 직접 무덤에 묻기도 하구요."진지한: "좀 거하게 치르려면 어떻게 해야 해?"현이: "오빠, 은준 씨 어머님 장례식 치르는 거 도와줄려고요? 은준 씨 친척들도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거하게 안 치러도 돼요."진지한: "그래. 그럼 은준이랑 어떻게 할 건지 상의해 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현이: "고마워요, 오빠. 근데 안 도와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장례식 치르는데 돈 많이 들진 않을 거예요. 은준 씨도 저희가 자기 어머님 장례식 도와주겠다고 하면 받지 않을 거예요."진지한: "그래 그럼! 가서 은준이 옆에 있어줘!"현이: "오빠, 그럼 오빠랑 새언니는...""우리 걱정은 안해도 되. 나 너희 새언니랑 밖에 나가서 좀 걸을게,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알았어요, 오빠."현이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병동을 나섰다.서 어르신은 병원 건물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지한과 배유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진 대표님, 저희 아들이 저한테 깊은 오해가 있어 현이까지 절 싫어하나 보네요. 사실 저 예전에 현이한테 정말 잘해줬어요." 서 어르신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 현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저희 집에서 일했었거든요. 그때는 현이를 키우던 할머니와 같이 우리 집 주방에
전화를 끊은 후 서은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현이는 서은준의 곁에 서서 물었다. "은준 씨, 왜 그래요?"서은준: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대. 미안하지만 당신 혼자 형님이랑 시간 보내야 될 것 같아! 난 병원으로 가야 될 것 같아."현이: "같이 가요! 어머님 방금까지 멀쩡하셨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두 사람은 진지한과 배유정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차를 잡으러 길가로 향했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두 사람이 급하게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당황스러웠다.배유정: "여보, 우리도 병원에 가봐요! 은준 씨 어머님이 돌아가셨나봐요."진지한: "그래."두 사람은 택시 한 대를 세우고 서은준이 탄 차를 쫓았다.병원.빠른 속도로 병원에 도착한 서은준은 함께 서있는 의사 선생님과 서 어르신을 보았다.서 어르신은 아첨하는 말투로 말했다. "은준아, 원래는 너희 엄마 보러 병원에 온 건데 내가 왔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 너무 안타깝구나!"서은준: "당신이 오기 전에 사망한 거 확실해요? 저도 오늘 왔었어요, 제가 왔을 땐 분명 아주 멀쩡했다고요!"서 어르신: "물론 다 사실이지! 못 믿겠으면 의사한테 물어봐!""의사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요!" 서은준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간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우리 엄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저 사람 오기 전에 돌아가신 거예요, 아니면 오고 나서 돌아가신 거예요?"겁에 질려 있는 간호인들 부들부들 떨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서 어르신은 분노에 가득 찬 어조로 간호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묻고 있잖아요. 말해 보세요! 제가 여기 왔을 때 당신 어디 있는지 그림자도 못 봤는데 혹시 밖에서 놀고 있던 거 아니에요?"간호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오셨을 때 물 받으러 잠깐 병실에 없었어요. 아버님께서 언제 오셨는지 어머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이번 달 비용은 받지 않을게요!"간호인은 말
서 어르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당신 나 지금 무시하는 거야? 우리 서씨 집안이 지금 좀 상황이 안 좋긴 해도 T국에서 여전히 명망있는 가족 기업이라고! 은준이가 철이 없다고 당신까지 이렇게 무식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은준이 뒤에 내가 없었다면 박씨 집안에서 우리 은준이 거들떠 보기나 할 것 같아?"서은준의 어머니: "그 입 다무세요! 박씨 집안에는 당신처럼 속좁은 사람 없어요! 현이 가족들은 우리 은준이를 무시하지 않는다고요! 그니까 괜히 쓸데없이 그분들 귀찮게 하지 마세요!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괜한 짓 하지 말라고요!"서 어르신: "정말이야? 박씨 집안에서 정말 은준이를 반대 안 해? 어떻게 반대 안 할 수가 있지? 설마 은준이더러 A국에 가서 데릴사위라도 하라는 건가?"서은준의 어머니: "그러든 말든 당신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당신 여태껏 은준이 돌본 적 없잖아요. 이젠 은준이도 독립했으니 당신 도움 더 필요 없어요! 만약에 은준이 여자친구가 현이가 아니었다면, 현이가 박씨 집안 딸이 아니었다면 당신 이렇게 부지런히 저 찾아오지 않았을 거잖아요... 당신이 어떤 마음 품고 있는지 제가 모를 것 같아서 그래요?"서 어르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은준이 18살 때 당신이 내 곁으로 보냈잖아? 당신은 못 키우겠다고 나더러 키우라고 했잖아? 내 도움이 없었다면 은준이 저렇게 유학 다녀올 수 있었을 것 같아? 만약에 유학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능력있을 것 같아? 지금 저렇게 사업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덕분이라고!"서은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올라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은준이더러 대학 등록금 다 갚아주라고 할게요!"서 어르신: "이건 대학 등록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은준이 내 아들이야, 엄연한 내 피가 흐르고 있는 내 아들이라고!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은준이가 나중에 잘 지내던 못 지내던, 이 애비 떨쳐낼 생각은 꿈도 꾸지
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 지금은 안 가요. 저 신경쓰지 말고 당신 할 거 하면 되요."서은준: "여기 있어봤자 너한테 시간낭비일 뿐이야."현이: "저 그동안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회사생활도 열심히 했다고요, 잠깐 쉬겠다는데 뭐가 어때서요."잠시 후 진지한과 배유정은 호텔로 돌아왔고 네 사람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서은준의 어머니는 현이의 오빠와 새언니가 오는 것을 몰랐기에 그들이 온 것을 보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서은준의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으나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었다.현이는 전동으로 서은준 어머니의 병실 침대머리를 올려 주었다. "어머님, 저희 오빠랑 새언니 신혼여행 겸 여기 놀러 왔다 어머님이랑 은준 씨 보러 여기 들른 거예요."서은준의 어머니: "아이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현이를 알게 된 건 정말 우리 아들의 행운이에요..."배유정: "어머님,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은준 씨도 얼마나 훌륭한데요. 그렇지 않으면 현이도 은준이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서은준의 어머니: "듣기론 현이 집이 엄청난 부자라던데... 혹시 우리 은준이 반대하는 건 아니죠?"배유정: "어머님, 저희도 사람 됨됨이와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은준이랑 현이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두 아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라면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 거예요."서은준은 어머니: "네... 정말 고마워요! 유일하게 걱정되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게 바로 제 아들이에요. 현이네 집에서 우리 아들 너무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우리 아들이 자존심이 강하거든요..."진지한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서은준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를 포함한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어머님 아들 무시하는 일 없을 겁니다."현이는 오빠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깊은 감동을 받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서은준의 손을 꼭 잡았다.진지한은 병실에서 잠시 머물다 나갔다.현
현이는 긴장감에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서은준과 큰 오빠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얘기들을 다 꺼냈고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큰 오빠도 화를 내지 않았고 서은준 역시 화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사실상 이미 그녀의 걱정과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였다.하지만 현이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은준 씨, 좀이따 저희 남편이랑 병원에 가서 어머님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식사를 마친 후 배유정이 서은준에게 물었다.서은준: "좋아요."현이: "어머님께 미리 말씀 드릴까요?"서은준: "괜찮아. 이따 가서 직접 소개해 드리면 돼."서은준 어머니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고 휴대폰을 안쓴지 이미 오래 되었다.보통 간호인이 매일매일 서은준에게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보고하곤 하였다.배유정: "사업도 하느라 어머님도 챙기느라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무너졌을 텐데."서은준: "현이의 예전 생활은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어요. 현이도 무너지지 않고 씩씩하게 잘 버텼는데 저도 잘 이겨낼 겁니다."배유정: "하하! 둘 다 씩씩한 사람이라 좋네요. 지금이든 나중이든 어떠한 곤난도 두 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할 거예요."현이: "언니 정말 너무 좋아요! 언니는 정말 제가 봤던 사람들 중 저희 엄마 제외한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에요."배유정은 현이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졌다.진지한: "너희 언니가 이 말 들으면 서운했을 거야."현이: "언니는 당연히 다르죠! 제 마음속 언니는 부드러운 성격이 아닌 용감하고 씩씩한 슈퍼 히어로같은 존재니까요."배유정: "라엘이 성격에 슈퍼 히어로가 되는 걸 더 좋아할 거예요."현이: "아무튼 언니는 절대 저와 이런 걸로 다투지 않을 거예요."배유정: "당연하지. 다들 배 부르게 먹었어? 다 먹었으면 오빠한테 계산하라고 할게."이 말을 들은 진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때 서은준도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계산할게요."현이는 애원하듯
현이가 말을 마친 후 서은준도 입을 열었다. "우선 열심히 일하고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이 될 때 다시 책임지고 싶습니다."진지한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사업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 그럼 사업이 실패하면 어떡하려고? 혹은 계속 미지근하게 아무런 진전도 없으면?"서은준: "형님이 말하신 것처럼 사업에 실패하거나 아무런 성과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현이 고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진지한: "자기 분수는 잘 알고있네."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큰 오빠, 은준 씨 사업이 실패하거나 아무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다고 해도 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돈 때문에 은준 씨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배유정은 다시 한 번 진지한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의 말이 심했다고 일깨워 주었다.다른 사람에게 차갑고 날카롭게 공격적일 순 있어도 현이에게 이렇게 공격적이진 못했다.현이 역시 자신의 말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느꼈는지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큰 오빠, 전 그냥 돈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에요. 그리고 저희 집 이미 충분히 돈 많잖아요. 아무리 돈 많은 상대를 찾는다고 해도 저희 집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찾기 어려울 거예요. 어차피 우리 집보다 돈이 많은 게 아니라면 돈이 많은 사람을 찾든 좀 적은 사람을 찾든 다 똑같잖아요."배유정: "현이 말이 맞아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 됨됨이고 두 사람의 감정이에요. 만약에 상대방이 서은준 씨보다 돈이 더 많지만 현이한테 잘하지 않는다면 그런 남자에게 현이를 억지로 시집 보내는 건 아무 의미 없잖아요."진지한: "우리 집 조건만 봐도 현이한테 잘해주지 않을 남자는 없어."배유정은 할 말을 잃었다.진지한이 말한 것 역시 사실이였기 때문이다.현이가 누구에게 시집을 가든 함부로 현이를 건들지 못 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친정이 재력가인 힘이었다.현이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제게 잘해주는 이유가 저희 집안 때문이라면 서은준 씨는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