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고집스러운 얼굴을 본 그는 그녀가 자신과 강진의 일을 알게 됐다고 확신했다.어제 그들이 놀러 나갔을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 그녀가 어제 이 사실을 알았다면 신이 나서 그를 데리고 가족사진을 찍으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아마도 밤에 잠이 든 후 누군가가 그녀에게 뭐라 한 것 같았다."그럼 내일 갈게." 그는 그녀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녀의 뜻을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내일 떠날지언정 그녀에게 돌아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그의 손을 놓았지만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말투는 차가웠다. "박시준 씨, 강진과는 언제 그런 사이가 됐죠?"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강진을 못 본 지도 오래됐어."그 뜻인즉슨 그와 강진은 좋은 사이가 아니라는 것이다."그래요... 강진이 다친 후로 못 봤어요?""응." 그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녀의 눈빛은 그가 가장 가혹한 형벌을 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럼 강진을 좋아해요? 전이라든가 지금이라든가 좋아한 적 있어요? 대답해요!" 그녀는 손으로 이불을 꽉 움켜쥐었지만 몸이 조금씩 떨리는 걸 참지 못했다."없어."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호했다.그는 단 한 번도 강진을 좋아한 적 없었다. 진아연을 만나기 전에도 없었다.한순간이라도 강진을 좋아한 적이 있다면, 그는 강진을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박시준 씨, 말해봐요. 지금 내가 내연녀인가요?!" 그녀는 터놓고 그에게 날카롭게 물었다."아니야."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진아연, 난 내가 뭘 하는지 알고 있어. 내가 너에게 했던 모든 말을 난 마음속에 새겨두었어."그녀는 소리 내어 웃었지만 그녀의 눈시울은 젖어 있었다. "반지도 진짜고, 당신의 약속도 진짜라면, 당신이 돌아가서 강진이랑 결혼한다는 것도 진짜인가요?!"그는 그녀의 얼굴에 맺힌 눈물을 바라보며 얇은 입술을 오므렸다."박시준 씨, 이래도 내가 내연녀가 아니라고 할 건가요? 곧 다른 사
딸이 자기 아빠가 귀국하는 건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실망할까!그리고 한이가 이 일을 알게 된다면 분명히 그를 더욱 미워할 것이다.정말로 이익을 위해 그러는 걸까? 하지만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위해서일까?그는 이미 강진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답했다.돈이 사랑보다 중요하고 세 자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인가?그녀는 박시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히 그는 혼자서도 돈을 벌 수 있었다. 그것도 수없이 많은 돈을. 게다가 그녀의 회사도 계속 이윤을 창출하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야 그가 만족할 수 있는 걸까?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흘러 베개를 적셨다.문밖에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돌려 천장을 바라보며 조용히 울었다.아래층에서 박시준은 아침을 먹은 후 지성이를 안았다.지성은 크고 까만 눈으로 아빠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의 작은 머리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박시준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아들을 바라보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빠가 다음에 널 다시 안아줄 수 있는 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어.""대표님, 몇 시 항공편이죠? 제가 먼저 캐리어 싸드릴게요!" 장 이모가 말했다.박시준은 방에서 울고 있는 진아연이 생각나 바로 답했다. "괜찮아요. 그냥 옷 몇 벌일 뿐이에요. 그냥 여기 둘게요."장 이모는 더 밝게 웃었다. "맞네요. 여기 두고 다음에 오셔서 입으시면 되니까요."장 이모는 두 사람이 떼려야 뗄 수 없이 좋은 관계라고 생각했다.진아연은 방에서 한동안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울다가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일어났다.회피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박시준 없어도 그녀에게는 여전히 세 자녀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그녀는 어려움에 무너지면 안 되었다.세수를 하러 욕실에 들어간 그녀는 거울 속 초췌하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가득 찬 자신을 보며 문득 박시준은 자신에게 그냥 단순히 남자가 아님을 깨달았다.그녀는 그의
그녀는 운명을 믿지 않았다.하늘이 그녀를 막아도 그녀는 이대로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차 문을 열었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주저 없이 눈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그녀는 공항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그녀는 결과를 원했다. 그를 이대로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공항. VIP 대합실.박시준은 손목을 들어 시계의 시간을 보았다.그의 티켓은 오후 1시였다. 한 시간 뒤면 이륙하게 된다.거대한 유리창 앞에 서서 밖의 흩날리는 눈꽃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마음은 얼음처럼 차가웠다.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는 그녀와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일을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와 아이들에게 모진 것은 곧 자신에게 잔인한 것이다. 그는 그들보다 더 많은 상처를 입게 된다.강주승은 그의 약점을 잡고 그에게 강진과 결혼하도록 강요했다.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이 일에서 연기를 잘하지 못하면 앞으로의 아픔은 끝이 없을 것이다.그는 자신의 추문으로 인해 세 자녀가 손가락질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진아연이 그 일을 알게 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평판이 폭락하는 걸 받아들일 수 있었고, 모든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진아연이 신경 쓰였다.진아연과 아이가 없었다면 강주승이 그가 살인을 저지른 증거를 얻더라도 그는 끌려다니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여태껏 착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진아연과 아이들 때문에 소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그는 한 번도 겁쟁이였던 적이 없지만, 지금의 그는 진아연과 아이들이 이 일을 알게 된 후 그를 무서워하고 그를 멀리할까 두려웠다. 그는 도박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이기면 더 이상 위협을 받을 염려가 없게 된다.진아연은 공항 홀까지 달려갔다. 몸에 쌓인 눈을 털어낼 겨를도, 숨을 돌릴 시간도 없이 홀의 스크린에 뜬 A국으로 가는 항공편을 확인한 후 지정된 보안 검색대를 향해 달려갔다!그녀는 인파를 뚫고 보안 검색대 앞까지 왔다."박시준!".그녀는 군중 속
그녀가 말을 마친 후 보안 검사관이 다가와 박시준에게 서둘러 비행기에 탑승할 것을 알렸다."아연아, 돌아가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 제발 시간을 좀 줘...""안 돼요! 내가 시간을 주면 당신은 강진과 결혼할 거잖아요! 박시준, 난 당신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 여자가 강진이든 다른 사람이든 상관없어요! 신부가 내가 아니라면 다 안 돼요!" 그녀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오늘 가기만 해봐요. 다신 나와 아이들을 볼 생각 하지 마요!"그녀가 그에게 애원했어도 소용없었다. 남은 건 위협일 뿐이었다.만약 강주승이 무언가로 그를 위협하거나 유혹한 거라면 그녀도 그를 위협할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카드가 강주승의 카드보다 못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그는 눈이 빨개지고 눈가에 눈물이 고인 채 그녀를 고통스럽게 바라보았다.그녀는 그가 침착한 척 애쓰다가 한순간에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았다.그녀가 그를 울렸다.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그가 강진과 결혼하는 건 더욱 참을 수 없었다."박시준 씨, 지금 내가 다른 남자랑 결혼하러 간다고 생각해 봐요. 그러면 이렇게 모질지 않을 수 있겠어요? 지금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턱을 살짝 치켜올려 눈물이 흘리지 않게 했다. "기회는 이번 한 번뿐이에요. 나랑 집에 가든가, 아니면 우리 이대로 완전히 깨지든가!"그는 가슴이 너무 아파서 숨을 쉴 수 없었다.그녀는 그와 완전히 깨지려고 했다!그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그렇다고 그는 동의할 수 없었다. 강진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불가능했다.산다는 것은 때때로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지금의 그가 그런 심정이다.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울어 눈이 빨개진 채 눈앞에 서 있다. 그녀를 품에 꼭 안고 웃도록 달래주고 싶은데, 자신은 그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상처만 주고 있다!쓸모없는 새끼!그는 속으로 자신을 욕했다.그는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잡
진아연은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오늘은 날씨가 흐려 날이 일찍 어두워졌다.온몸이 젖은 채 넋이 나간 진아연의 모습을 본 이모님은 깜짝 놀랐다."아연 씨, 왜 그래요?" 이모님은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대표님이 가셔서 아쉬운 거예요? 이러지 말아요.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든 귀국할 수 있잖아요."진아연은 고개를 저으며 쉰 소리로 물었다. "아이들은요?""지성이는 자고 있고 라엘과 한이는 샤워하러 갔어요. 조금 전 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드느라 옷이 다 젖었거든요." 이모님이 말했다. "아연 씨, 아연 씨의 머리와 옷도 다 젖은 것 같은데 따뜻한 물로 샤워해요. 제가 도와드릴까요?"그녀가 고개를 젓고 나서 방으로 돌아가자걱정된 이모님이 그녀를 따라갔다."참, 앞으론 애들 앞에서 박시준을 언급하지 말아 주세요." 그녀가 발걸음을 멈추고 이모님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이랑 헤어졌어요. 이모님과 홍 아줌마는 박시준의 사람이니..."그녀는 더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그녀는 이모님과 홍 아줌마에게 박시준의 옆으로 돌아가라 말하고 싶었다.박시준과 헤어졌기 때문에 더는 그의 사람을 쓸 수 없었다.이모님은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아연 씨, 너무 갑작스럽네요. 전... 뭐라고 말해야 맞는지 모르겠지만 전 남아서 지성이를 돌보고 싶어요.""하지만 이모님은 박시준 씨의 사람이잖아요. 앞으로 전 그 사람과 엮일 일이 없을 거예요. 제가 아무리 이모님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모님 때문에 그 사람과 연락하는 건 싫어요." 그녀는 자기 생각을 솔직히 말했다.이모님은 눈시울이 촉촉해진 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그때 홍 아줌마가 다가와 아연에게 말했다. "아연 씨,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아쉽다고 생각해요. 전 박씨 가문에서 한평생 도우미로 있었으니 전 내일 떠날 거예요."진아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이모님에게 말했다. "이모님도 홍 아줌마와 함께 가세요."이모님은 참지 못하고 울면서 자리를 떴
그녀는 진아연의 방에 가서 박시준의 물건을 찾아 홍 아줌마에게 주려 했다.진아연이 박시준의 물건을 보고 싶지 않아 할 것인데 버리느니 홍 아줌마에게 부탁해 가져가도록 하려는 것이었다.이모님은 문을 두드린 후 방 안에 들어갔다."아연 씨, 전 이미 대표님에게 그만둔다고 얘기했어요." 이모님은 침대 옆에 다가갔다. 진아연이 눈을 뜨고 있는 걸 본 이모님이 말을 계속 이었다. "대표님의 물건을 챙겨 홍 아줌마에게 가져가라고 부탁하려고요."진아연은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단호한 어투로 대답했다. "이미 사직했으니 앞으로는 그 사람이랑 연락하지 말아요. 지성이의 사진도 보내지 말고요.""알았어요.""그 사람 물건은 이미 다 챙겨 놓았어요. 책상 옆에 있는 캐리어가 그 사람 거예요." 진아연은 어젯밤에 열이 나서 일어나 해열제를 먹다가 박시준의 캐리어를 발견했다. 그래서 그의 물건을 전부 캐리어에 주워 담았다."아연 씨, 기색이 별로 안 좋아요. 좀 더 자요." 이모님은 말을 하고 나서 캐리어를 끌고 다급히 밖으로 나갔다.홍 아줌마를 배웅하고 난 이모님은 고민 끝에 마이크에게 전화를 걸어 여소정에게 전화 한번 해보라고 했다.마이크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여소정은 왜요? 아연이한테 여소정의 전화번호가 있을 텐데요?"이모님: "휴!""무슨 일이예요? 그냥 물어본 거니 한숨 쉬지 말아요. 지금 여소정에게 전화해볼게요.""마이크 씨, 그냥 마이크 씨가 돌아와요." 이모님은 진아연이 두 눈이 벌겋게 된 채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던 모습이 떠올라 가슴 아파서 한마디 했다. "아연 씨가 대표님과 헤어졌대요. 대표님이 강진 씨와 결혼한다고 하던데 너무 갑작스러워 아무것도 묻지 못했어요.""젠장!" 마이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박시준이 강진과 결혼한다고요?""네, 마이크 씨가 여소정에게 전화해 아연 씨를 위로해주라고 부탁해주세요. " 이모님은 다른 할 말이 없어 전화를 끊었다.마이크는 휴대폰을 꼭 잡고 머릿속으로 이 일을 정리했다.조지운
"그녀를 만났어?" 박시준은 담배 하나를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만났어." 성빈은 그가 화를 내지 않자 마음속의 분노가 조금 줄었다.심지어 그에게 라이터가 없는 걸 보고 불까지 붙여주었다."그녀가 날 찾아왔었어." 성빈은 그의 옆자리에 앉아 탁자 위에서 담배 한 대를 주워 불을 붙였다. "무슨 약점을 잡힌 거 아니야?"박시준은 눈을 살짝 내리깔고 씁쓸하게 말했다. "강진이 아니야.""그래? 강씨 가문에게 약점을 잡힌 거야? 어쩐지, 내가 아는 강진은 지금의 모습으로 절대 사람들 앞에 나설 사람이 아니거든. 정말 너랑 결혼한다고 해도 절대 성대한 결혼식을 원하진 않을 거야."박시준이 성빈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 모습인데?""설명하기 어려워. 지금 머릿속으로 강진 씨의 얼굴을 생각만 해도 섬찟해." 성빈은 이를 갈며 말했다. 그러면서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를 부러뜨렀다. "지난날의 사랑이나 증오나 모두 무색해졌어. 난 지금 그녀에 대한 느낌은 오로지 무섭다는 거야. 동정도 조금 있고."박시준은 담뱃재를 재떨이에 털고 나서 말했다. "내일 가봐야겠어.""내일 그녀를 보면 생각이 바뀔지도 몰라." 성빈이 소파에 기대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강진이 어떻게 변했던 난 그녀와 결혼할 수밖에 없어." 박시준은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나서 연기를 내뿜었다. "난 이미 진아연과 아이에게 상처를 줬으니 다른 선택이 없어.""몇 년 전에 이미 결정했던 거야?" 성빈은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따져 물었다. "그럼 B국엔 왜 갔는데 ? 그리고 왜 그녀와 발렌타인데이는 보냈고 가족사진도 찍은 건데? 너 제정신이야?""맞아. 나 제정신 아니야." 그는 솔직히 말했다. "꿈에서도 그녀와 함께 있길 원해. 그래서 그녀가 날 불렀을 때 잠시 이성을 잃었었어.""이게 아연 씨에게 얼마나 큰 상처인 줄 알면서 좀 억제하지 그랬어? 아연 씨와 아이는 어떻게 해? 너 혹시 아연 씨에게 협박당하고 있다는 거 얘기하지 않았어? 넌 분명 말하지 않았을 거야!" 성빈은 그를
어쨌거나 이번에는 대표님의 잘못이 확실했다.대표님에게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다고 해도 진아연은 잘못한 것이 없지 않는가?마이크는 조수석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고 나서야 이모님의 부탁이 떠올랐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여소정에게 전화를 걸었다.B국.여소정은 마이크의 전화를 받고 나서 곧 차를 몰고 진아연의 집으로 향했다.진아연은 어젯밤 열이 나서 해열제를 먹었지만, 일시적으로만 열이 내렸다가 아침이 되자 또다시 열이 났다.그녀는 아침에 일어난 뒤 자신과 박시준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고 두 아이에게 알려주려 했다.하지만 열이 아직 내리지 않아 감기가 아이들에게 옮길까 걱정되어 계속 누워 쉬고 있었다.여소정은 침실에 들어선 뒤 문을 닫았다.진아연은 누군가의 움직임을 듣고 눈을 떴다."아연아. 어디 아파?" 여소정이 침대 옆에 다가가 손을 이마에 갖다 댔다. "열이 조금 있네. 약은 먹었어?""응." 그녀는 여소정을 바라보며 가까스로 대답했다. "누가 불렀어?""마이크가 전화했어." 여소정은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곧 흐느끼기 시작했다.진아연은 멍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아연아. 난 내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네가 더 비참해... 우린 왜 이렇게 비참한 걸까? 너무 힘들어. 매일 울고 싶은데 다른 사람 앞이라 울지도 못해. 다른 사람이 비웃을까 두렵거든. 남자 하나 때문에, 세상에 남자가 이렇게 많은데 또 하나 찾으면 되는데 말이야... 하지만 내가 앞으로 누굴 만나든지 그 사람이 하준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죽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아파."진아연은 그녀의 하소연을 듣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아연아, 나 괜찮아. 누워있어." 여소정이 그녀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인생의 절반을 너무 순조롭게 살았나 봐. 그래서 지금 조금만 힘들어도 하늘이 무너지는 거라 생각하는 걸 거야. 넌 나보다 훨씬 용감해. 난 네가 늘 부러웠어.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애들도 잘 키우고 있잖아. 난 나 자신조차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