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은 박시준이 그녀 옆에 있을 걸 예상하지 못한 듯 한참 말이 없었다.진아연도 냉정해졌다. "당신이 강진의 사촌 동생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믿지?"강진의 사촌 동생: 나 강진 언니의 사촌 동생 맞거든! 내 이름은 장자영이야. 못 믿겠으면 강진 언니한테 전화해 봐! 번호는 있겠지?진아연: 없어. 번호 보내 봐.사실 진아연은 강진의 번호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상대방이 사기꾼인지 확인하려고 그렇게 말했다.강진의 사촌 동생이 일련의 숫자를 보내왔다.강진의 전화번호와 비교한 후 진아연은 상대방이 강진을 알고 있음을 확인했다.진아연의 마음이 갑자기 싸늘해졌다.그녀가 정말로 강진의 사촌 동생이라면, 그녀가 한 말도 사실인 걸까?현기증이 날 것 같더니 그녀는 관자놀이가 아파왔다!박시준은 매일 그녀와 아이들과 함께 있었고 강진과는 전혀 연락이 없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강진과 결혼할 수 있단 말인가?강진과 결혼할 거라면 지금 강진이 옆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강진... 강진은 얼굴이 망가지지 않았나?그건 둘째치고, 박시준이 강진에게 호감을 가지는 게 가능하긴 한가?여기까지 생각한 진아연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그녀는 강진이 자신을 얼마나 처참하게 만들었는지 잊을 수 없었으며, 강진이 소정이한테 얼마나 처참하게 해를 가했는지 더욱 잊을 수 없었다!만약에 박시준이 감히 강진과 결혼한다면 그녀는 박시준을 원수로 생각할 것이다!그에게 이성이 있는 한 그는 강진과 그녀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강진의 사촌 동생: 왜 아무 말 없어? 너무 쪽팔려? 여우 같은 년!진아연은 그녀가 보낸 메시지에 눈시울이 약간 시큼했고 타이핑하는 손도 조금 떨렸다. "박시준이 당신 사촌 언니와 결혼할 거라는데, 언제 생긴 일이야? 아무도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한 적 없거든. 내가 내연녀가 맞다 해도, 알면서 그런 거 아니야! 말 좀 가려서 해!"강진의 사촌 동생: 박시준이 아직 말하지 않았나 보네? 하! 쓰레기 같은 새끼! 강진 언니랑 곧 결혼할
신화 투자가 대기업인 건 맞지만, 그녀의 회사는 쓰레기 회사가 아니다!박시준이 이익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최근 몇 년 동안 그녀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그녀에게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더욱 없었다.그녀는 그가 마음만 먹으면 세계 최고의 여성 부자들을 만날 수 있고, 그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그러나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신화 투자를 위해 자신을 팔 필요가 없었다.이 일에 문제가 있다는 걸 직감한 그녀는 눈물을 닦고 낮에 박시준과 얘기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했다.다음 날 아침.박시준은 일어난 뒤 침대 옆에 서서 진아연의 잠자는 얼굴을 내려다보았다.그는 그녀를 깨우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그는 오늘 귀국할 것이다.강주승이 그에게 자신이 이미 결혼식을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계속 결혼 소식을 발표하지 않으면 자기가 발표할 것이라고 알렸다.그는 강씨 가문이 결혼 사실을 발표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진아연이 강씨 가문의 입을 통해 그의 결혼을 알게 된다면 그녀에게 얼마나 큰 타격이 될까.무언가가 통한 듯 진아연이 갑자기 눈을 떴다.눈이 마주치자 그는 그녀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그가 웃는 것을 보자 그녀도 웃었다.동시에 그녀는 새벽에 강진의 사촌 동생이 보낸 메시지가 생각났다.그녀는 그것이 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초조하게 휴대폰을 들고 카카오톡을 터치했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꿈이 아니었다. 모두 현실이었다. 새벽 3시, 그녀와 강진의 사촌 동생의 채팅 기록이 모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박시준 씨." 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일어나 앉으며 그것에 대해 얘기하려 했다."응?" 그는 겉옷을 들고 와 그녀에게 입히며 천천히 말했다. "아연아, 나 오늘 돌아가야 해.""그래요? 출근은 모레부터 하지 않나요? 하루라도 더 있지 그래요?" 그녀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하루 일찍 귀국하는 건 강진과
그녀의 고집스러운 얼굴을 본 그는 그녀가 자신과 강진의 일을 알게 됐다고 확신했다.어제 그들이 놀러 나갔을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 그녀가 어제 이 사실을 알았다면 신이 나서 그를 데리고 가족사진을 찍으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아마도 밤에 잠이 든 후 누군가가 그녀에게 뭐라 한 것 같았다."그럼 내일 갈게." 그는 그녀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녀의 뜻을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내일 떠날지언정 그녀에게 돌아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그의 손을 놓았지만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말투는 차가웠다. "박시준 씨, 강진과는 언제 그런 사이가 됐죠?"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강진을 못 본 지도 오래됐어."그 뜻인즉슨 그와 강진은 좋은 사이가 아니라는 것이다."그래요... 강진이 다친 후로 못 봤어요?""응." 그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녀의 눈빛은 그가 가장 가혹한 형벌을 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럼 강진을 좋아해요? 전이라든가 지금이라든가 좋아한 적 있어요? 대답해요!" 그녀는 손으로 이불을 꽉 움켜쥐었지만 몸이 조금씩 떨리는 걸 참지 못했다."없어."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호했다.그는 단 한 번도 강진을 좋아한 적 없었다. 진아연을 만나기 전에도 없었다.한순간이라도 강진을 좋아한 적이 있다면, 그는 강진을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박시준 씨, 말해봐요. 지금 내가 내연녀인가요?!" 그녀는 터놓고 그에게 날카롭게 물었다."아니야."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진아연, 난 내가 뭘 하는지 알고 있어. 내가 너에게 했던 모든 말을 난 마음속에 새겨두었어."그녀는 소리 내어 웃었지만 그녀의 눈시울은 젖어 있었다. "반지도 진짜고, 당신의 약속도 진짜라면, 당신이 돌아가서 강진이랑 결혼한다는 것도 진짜인가요?!"그는 그녀의 얼굴에 맺힌 눈물을 바라보며 얇은 입술을 오므렸다."박시준 씨, 이래도 내가 내연녀가 아니라고 할 건가요? 곧 다른 사
딸이 자기 아빠가 귀국하는 건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실망할까!그리고 한이가 이 일을 알게 된다면 분명히 그를 더욱 미워할 것이다.정말로 이익을 위해 그러는 걸까? 하지만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위해서일까?그는 이미 강진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답했다.돈이 사랑보다 중요하고 세 자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인가?그녀는 박시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히 그는 혼자서도 돈을 벌 수 있었다. 그것도 수없이 많은 돈을. 게다가 그녀의 회사도 계속 이윤을 창출하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야 그가 만족할 수 있는 걸까?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흘러 베개를 적셨다.문밖에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돌려 천장을 바라보며 조용히 울었다.아래층에서 박시준은 아침을 먹은 후 지성이를 안았다.지성은 크고 까만 눈으로 아빠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의 작은 머리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박시준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아들을 바라보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빠가 다음에 널 다시 안아줄 수 있는 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어.""대표님, 몇 시 항공편이죠? 제가 먼저 캐리어 싸드릴게요!" 장 이모가 말했다.박시준은 방에서 울고 있는 진아연이 생각나 바로 답했다. "괜찮아요. 그냥 옷 몇 벌일 뿐이에요. 그냥 여기 둘게요."장 이모는 더 밝게 웃었다. "맞네요. 여기 두고 다음에 오셔서 입으시면 되니까요."장 이모는 두 사람이 떼려야 뗄 수 없이 좋은 관계라고 생각했다.진아연은 방에서 한동안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울다가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일어났다.회피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박시준 없어도 그녀에게는 여전히 세 자녀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그녀는 어려움에 무너지면 안 되었다.세수를 하러 욕실에 들어간 그녀는 거울 속 초췌하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가득 찬 자신을 보며 문득 박시준은 자신에게 그냥 단순히 남자가 아님을 깨달았다.그녀는 그의
그녀는 운명을 믿지 않았다.하늘이 그녀를 막아도 그녀는 이대로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차 문을 열었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주저 없이 눈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그녀는 공항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그녀는 결과를 원했다. 그를 이대로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공항. VIP 대합실.박시준은 손목을 들어 시계의 시간을 보았다.그의 티켓은 오후 1시였다. 한 시간 뒤면 이륙하게 된다.거대한 유리창 앞에 서서 밖의 흩날리는 눈꽃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마음은 얼음처럼 차가웠다.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는 그녀와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일을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와 아이들에게 모진 것은 곧 자신에게 잔인한 것이다. 그는 그들보다 더 많은 상처를 입게 된다.강주승은 그의 약점을 잡고 그에게 강진과 결혼하도록 강요했다.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이 일에서 연기를 잘하지 못하면 앞으로의 아픔은 끝이 없을 것이다.그는 자신의 추문으로 인해 세 자녀가 손가락질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진아연이 그 일을 알게 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평판이 폭락하는 걸 받아들일 수 있었고, 모든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진아연이 신경 쓰였다.진아연과 아이가 없었다면 강주승이 그가 살인을 저지른 증거를 얻더라도 그는 끌려다니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여태껏 착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진아연과 아이들 때문에 소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그는 한 번도 겁쟁이였던 적이 없지만, 지금의 그는 진아연과 아이들이 이 일을 알게 된 후 그를 무서워하고 그를 멀리할까 두려웠다. 그는 도박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이기면 더 이상 위협을 받을 염려가 없게 된다.진아연은 공항 홀까지 달려갔다. 몸에 쌓인 눈을 털어낼 겨를도, 숨을 돌릴 시간도 없이 홀의 스크린에 뜬 A국으로 가는 항공편을 확인한 후 지정된 보안 검색대를 향해 달려갔다!그녀는 인파를 뚫고 보안 검색대 앞까지 왔다."박시준!".그녀는 군중 속
그녀가 말을 마친 후 보안 검사관이 다가와 박시준에게 서둘러 비행기에 탑승할 것을 알렸다."아연아, 돌아가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 제발 시간을 좀 줘...""안 돼요! 내가 시간을 주면 당신은 강진과 결혼할 거잖아요! 박시준, 난 당신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 여자가 강진이든 다른 사람이든 상관없어요! 신부가 내가 아니라면 다 안 돼요!" 그녀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오늘 가기만 해봐요. 다신 나와 아이들을 볼 생각 하지 마요!"그녀가 그에게 애원했어도 소용없었다. 남은 건 위협일 뿐이었다.만약 강주승이 무언가로 그를 위협하거나 유혹한 거라면 그녀도 그를 위협할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카드가 강주승의 카드보다 못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그는 눈이 빨개지고 눈가에 눈물이 고인 채 그녀를 고통스럽게 바라보았다.그녀는 그가 침착한 척 애쓰다가 한순간에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았다.그녀가 그를 울렸다.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그가 강진과 결혼하는 건 더욱 참을 수 없었다."박시준 씨, 지금 내가 다른 남자랑 결혼하러 간다고 생각해 봐요. 그러면 이렇게 모질지 않을 수 있겠어요? 지금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턱을 살짝 치켜올려 눈물이 흘리지 않게 했다. "기회는 이번 한 번뿐이에요. 나랑 집에 가든가, 아니면 우리 이대로 완전히 깨지든가!"그는 가슴이 너무 아파서 숨을 쉴 수 없었다.그녀는 그와 완전히 깨지려고 했다!그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그렇다고 그는 동의할 수 없었다. 강진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불가능했다.산다는 것은 때때로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지금의 그가 그런 심정이다.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울어 눈이 빨개진 채 눈앞에 서 있다. 그녀를 품에 꼭 안고 웃도록 달래주고 싶은데, 자신은 그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상처만 주고 있다!쓸모없는 새끼!그는 속으로 자신을 욕했다.그는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잡
진아연은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오늘은 날씨가 흐려 날이 일찍 어두워졌다.온몸이 젖은 채 넋이 나간 진아연의 모습을 본 이모님은 깜짝 놀랐다."아연 씨, 왜 그래요?" 이모님은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대표님이 가셔서 아쉬운 거예요? 이러지 말아요.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든 귀국할 수 있잖아요."진아연은 고개를 저으며 쉰 소리로 물었다. "아이들은요?""지성이는 자고 있고 라엘과 한이는 샤워하러 갔어요. 조금 전 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드느라 옷이 다 젖었거든요." 이모님이 말했다. "아연 씨, 아연 씨의 머리와 옷도 다 젖은 것 같은데 따뜻한 물로 샤워해요. 제가 도와드릴까요?"그녀가 고개를 젓고 나서 방으로 돌아가자걱정된 이모님이 그녀를 따라갔다."참, 앞으론 애들 앞에서 박시준을 언급하지 말아 주세요." 그녀가 발걸음을 멈추고 이모님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이랑 헤어졌어요. 이모님과 홍 아줌마는 박시준의 사람이니..."그녀는 더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그녀는 이모님과 홍 아줌마에게 박시준의 옆으로 돌아가라 말하고 싶었다.박시준과 헤어졌기 때문에 더는 그의 사람을 쓸 수 없었다.이모님은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아연 씨, 너무 갑작스럽네요. 전... 뭐라고 말해야 맞는지 모르겠지만 전 남아서 지성이를 돌보고 싶어요.""하지만 이모님은 박시준 씨의 사람이잖아요. 앞으로 전 그 사람과 엮일 일이 없을 거예요. 제가 아무리 이모님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모님 때문에 그 사람과 연락하는 건 싫어요." 그녀는 자기 생각을 솔직히 말했다.이모님은 눈시울이 촉촉해진 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그때 홍 아줌마가 다가와 아연에게 말했다. "아연 씨,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아쉽다고 생각해요. 전 박씨 가문에서 한평생 도우미로 있었으니 전 내일 떠날 거예요."진아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이모님에게 말했다. "이모님도 홍 아줌마와 함께 가세요."이모님은 참지 못하고 울면서 자리를 떴
그녀는 진아연의 방에 가서 박시준의 물건을 찾아 홍 아줌마에게 주려 했다.진아연이 박시준의 물건을 보고 싶지 않아 할 것인데 버리느니 홍 아줌마에게 부탁해 가져가도록 하려는 것이었다.이모님은 문을 두드린 후 방 안에 들어갔다."아연 씨, 전 이미 대표님에게 그만둔다고 얘기했어요." 이모님은 침대 옆에 다가갔다. 진아연이 눈을 뜨고 있는 걸 본 이모님이 말을 계속 이었다. "대표님의 물건을 챙겨 홍 아줌마에게 가져가라고 부탁하려고요."진아연은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단호한 어투로 대답했다. "이미 사직했으니 앞으로는 그 사람이랑 연락하지 말아요. 지성이의 사진도 보내지 말고요.""알았어요.""그 사람 물건은 이미 다 챙겨 놓았어요. 책상 옆에 있는 캐리어가 그 사람 거예요." 진아연은 어젯밤에 열이 나서 일어나 해열제를 먹다가 박시준의 캐리어를 발견했다. 그래서 그의 물건을 전부 캐리어에 주워 담았다."아연 씨, 기색이 별로 안 좋아요. 좀 더 자요." 이모님은 말을 하고 나서 캐리어를 끌고 다급히 밖으로 나갔다.홍 아줌마를 배웅하고 난 이모님은 고민 끝에 마이크에게 전화를 걸어 여소정에게 전화 한번 해보라고 했다.마이크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여소정은 왜요? 아연이한테 여소정의 전화번호가 있을 텐데요?"이모님: "휴!""무슨 일이예요? 그냥 물어본 거니 한숨 쉬지 말아요. 지금 여소정에게 전화해볼게요.""마이크 씨, 그냥 마이크 씨가 돌아와요." 이모님은 진아연이 두 눈이 벌겋게 된 채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던 모습이 떠올라 가슴 아파서 한마디 했다. "아연 씨가 대표님과 헤어졌대요. 대표님이 강진 씨와 결혼한다고 하던데 너무 갑작스러워 아무것도 묻지 못했어요.""젠장!" 마이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박시준이 강진과 결혼한다고요?""네, 마이크 씨가 여소정에게 전화해 아연 씨를 위로해주라고 부탁해주세요. " 이모님은 다른 할 말이 없어 전화를 끊었다.마이크는 휴대폰을 꼭 잡고 머릿속으로 이 일을 정리했다.조지운
3년 후.A국, 공항.현이는 둘째 오빠와 함께 공항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3년이야 3년! 남자친구라는 사람 드디어 너 찾으러 오는 거야!" 박지성은 현이를 놀리며 얘기했다. "설마 너랑 헤어지러 오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3년 동안 못 만났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현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둘째 오빠, 저 지금 저주하시는 거예요? 비록 3년 동안 못 만났지만 매일매일 영상통화 하면서 서로 얼굴 봤거든요!"박지성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사이버 연애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현이: "어쨌든 이번에 A국에 와서 정착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이제부터 다시는 떨어져 지내는 일 없을 거예요."박지성: "네 남자친구도 자존심이 너무 강해. 이따 아버지 만나고 얘기 얼마 나누지도 않고 다시 티켓 사고 도망치는 거 아니야?"현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현이는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았다——서은준이 캐리어를 끌며 출구에서 나오고 있었다.현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은준을 향해 달려가 서은준의 품에 안겼다.이때 박지성은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진아연이 물었다. "아직 못 만났어? 설마 안 오는 건 아니지?"박지성: "엄마,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에요. 금방 나왔어요, 지금 현이랑 껴안고 있어요! 우리 이제 곧 집에 갈 거니까 엄마랑 아빠도 마음의 준비 잘 하고 계세요."박 씨 저택.진아연은 통화를 마친 후 박시준에게 전달했다.박시준은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자신의 용모를 검사했다.진아연은 화장실 문 앞에서 지켜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거울 그만 비춰요, 충분히 멋있어요!"박시준: "여보, 좀이따 은준이한테 좀 엄격해야 할까?"진아연: "현이가 그렇게 좋다는데, 은준이도 현이 위해서 A국에 있겠다고 한데다 엄격하게 해서 뭐하려구요? 굳이 두 아이의 기분을 망쳐야겠어요? 은준이도 지금 어엿한
서 어르신은 진지한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꺼낼 줄 예상치 못했기에 차마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냐하면 진지한에게 돈을 달라고 할 계획이긴 했지만 얼마나 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어쨌든 진지한은 엄청난 부자였고, 적게 달라고 하니 왠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였고 많이 달라고 하자니 거절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서 어르신은 한동안 망설인 후 진지한에게 말했다. "진 대표님 집이 A국에서 엄청난 부자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가 적당한지는 대표님께서 정하시죠! 저와 우리 아들에게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진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배유정은 그것을 보고 바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금액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가 적당할지 가늠이 안 가네요. 굳이 저희더러 정하라면 돌아가서 저희 시아버님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네요."서 어르신: "혹시 박시준 씨 말하는 겁니까?"배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저희 시아버님 저희 남편보다 더 까다로울 겁니다. 입장 바꿔서 아버님이라도 따님을 평범한 남자한테 시집 보내진 않을 거잖아요?"서 어르신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해요. 그럼 그냥 우리끼리 얘기하죠!"배유정: "지금부터 고민해 보셔도 괜찮아요. 저희 요 이틀 동안은 여기 있을 거거든요."서 어르신: "알겠어요! 그럼 우선 연락처 먼저 교환하죠! 나중에 일이 있을 때도 서로 연락하기 편하잖아요."배유정은 진지한을 흘끗 보았고 그제서야 진지한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서 어르신과 연락처를 교환했다.병원.현이는 서은준의 곁에서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했다.서은준은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시신을 옮겨달라고 했다.현이가 서은준에게 물었다. "장례식 간단하게 치를 생각이에요?"서은준: "엄마 켠에도 친척들이 별로 없어."현이: "네. 그럼 어머니 계실 묘지부터 골라야죠?"서은준: "엄마가 전에 유골을 엄마 고향 연못에 뿌려달라고 했어."현이: "..."서은준: "엄마는 내
진지한: "그래요 그럼! 근처에 가까운 카페라도 갈까요."서 어르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요! 사실 우리 집이 바로 병원 근처에 있는데 한 번 가보실래요? 현이도 우리 집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었고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사이가 아주 좋았거든요."진지한은 배유정을 보며 말했다. "그럼 한 번 가볼래?"배유정: "좋아요!"서 어르신은 즉시 진지한과 배유정을 자신의 차로 안내하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서 어르신의 집에 도착한 후 서 어르신은 즉시 하인들을 분부하여 과일과 디저트를 올리라고 했다.서 어르신은 집사를 가리키며 진지한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집 집사입니다. 예전에 현이 할머니도 집사가 뽑고 집에 들였죠."진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서 어르신은 집사에게 말했다. "이 분은 수수 친 오빠야, 유명한 대기업의 대표 진지한 씨."집사: "진 대표님, 안녕하세요! 수수 정말 괜찮은 아이였어요, 그때 우리 모두 수수를 많이 좋아했답니다. 전에 수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많이 속상했는데 사실이 아니라니 참 다행이에요! 수수는 정말 철도 들고 씩씩한 아이였어요, 제가 봤던 아이들 중 가장 씩씩한 아이에요. 수수가 잘 지내고 있다니 정말 기쁘네요."진지한: "전에 우리 동생 잘 챙겨줘서 고마웠어요."집사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별 말씀을요! 수수는 정말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어요. 매번 적극적으로 맡아서 일도 잘하고 정말 괜찮은 아이에요. 우리는 그때부터 수수가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나면 꼭 잘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진지한은 집사의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서 어르신이 집사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내려가."집사는 즉시 물러났다.서 어르신은 진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현이가 우리 은준이랑 사이가 좋았다는 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현이를 은준이 곁에 안배했거든요, 그때 두 아이 나이가 비슷했기도 했고 서로 얘기도 잘 통할 거
현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빠, 은준 씨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저 요 며칠 동안 언니 오빠랑 놀러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진지한: "괜찮아. 은준이 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우리도 놀 기분 아니야. 은준이 어머님 장례식 참석하고 돌아갈게."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여긴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지?" 진지한을 물었다.서은준은 현이의 남자친구자 현이 또래기도 하니 현이의 오빠로서 왠지 모르게 서은준을 도와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현이: "국내랑 비슷해요. 돈 많은 사람들은 거창하게 치르고 보통 사람들은 그냥 간단하게 치르곤 해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장례식은 따로 안 치르고 직접 무덤에 묻기도 하구요."진지한: "좀 거하게 치르려면 어떻게 해야 해?"현이: "오빠, 은준 씨 어머님 장례식 치르는 거 도와줄려고요? 은준 씨 친척들도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거하게 안 치러도 돼요."진지한: "그래. 그럼 은준이랑 어떻게 할 건지 상의해 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현이: "고마워요, 오빠. 근데 안 도와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장례식 치르는데 돈 많이 들진 않을 거예요. 은준 씨도 저희가 자기 어머님 장례식 도와주겠다고 하면 받지 않을 거예요."진지한: "그래 그럼! 가서 은준이 옆에 있어줘!"현이: "오빠, 그럼 오빠랑 새언니는...""우리 걱정은 안해도 되. 나 너희 새언니랑 밖에 나가서 좀 걸을게,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알았어요, 오빠."현이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병동을 나섰다.서 어르신은 병원 건물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지한과 배유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진 대표님, 저희 아들이 저한테 깊은 오해가 있어 현이까지 절 싫어하나 보네요. 사실 저 예전에 현이한테 정말 잘해줬어요." 서 어르신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 현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저희 집에서 일했었거든요. 그때는 현이를 키우던 할머니와 같이 우리 집 주방에
전화를 끊은 후 서은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현이는 서은준의 곁에 서서 물었다. "은준 씨, 왜 그래요?"서은준: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대. 미안하지만 당신 혼자 형님이랑 시간 보내야 될 것 같아! 난 병원으로 가야 될 것 같아."현이: "같이 가요! 어머님 방금까지 멀쩡하셨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두 사람은 진지한과 배유정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차를 잡으러 길가로 향했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두 사람이 급하게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당황스러웠다.배유정: "여보, 우리도 병원에 가봐요! 은준 씨 어머님이 돌아가셨나봐요."진지한: "그래."두 사람은 택시 한 대를 세우고 서은준이 탄 차를 쫓았다.병원.빠른 속도로 병원에 도착한 서은준은 함께 서있는 의사 선생님과 서 어르신을 보았다.서 어르신은 아첨하는 말투로 말했다. "은준아, 원래는 너희 엄마 보러 병원에 온 건데 내가 왔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 너무 안타깝구나!"서은준: "당신이 오기 전에 사망한 거 확실해요? 저도 오늘 왔었어요, 제가 왔을 땐 분명 아주 멀쩡했다고요!"서 어르신: "물론 다 사실이지! 못 믿겠으면 의사한테 물어봐!""의사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요!" 서은준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간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우리 엄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저 사람 오기 전에 돌아가신 거예요, 아니면 오고 나서 돌아가신 거예요?"겁에 질려 있는 간호인들 부들부들 떨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서 어르신은 분노에 가득 찬 어조로 간호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묻고 있잖아요. 말해 보세요! 제가 여기 왔을 때 당신 어디 있는지 그림자도 못 봤는데 혹시 밖에서 놀고 있던 거 아니에요?"간호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오셨을 때 물 받으러 잠깐 병실에 없었어요. 아버님께서 언제 오셨는지 어머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이번 달 비용은 받지 않을게요!"간호인은 말
서 어르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당신 나 지금 무시하는 거야? 우리 서씨 집안이 지금 좀 상황이 안 좋긴 해도 T국에서 여전히 명망있는 가족 기업이라고! 은준이가 철이 없다고 당신까지 이렇게 무식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은준이 뒤에 내가 없었다면 박씨 집안에서 우리 은준이 거들떠 보기나 할 것 같아?"서은준의 어머니: "그 입 다무세요! 박씨 집안에는 당신처럼 속좁은 사람 없어요! 현이 가족들은 우리 은준이를 무시하지 않는다고요! 그니까 괜히 쓸데없이 그분들 귀찮게 하지 마세요!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괜한 짓 하지 말라고요!"서 어르신: "정말이야? 박씨 집안에서 정말 은준이를 반대 안 해? 어떻게 반대 안 할 수가 있지? 설마 은준이더러 A국에 가서 데릴사위라도 하라는 건가?"서은준의 어머니: "그러든 말든 당신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당신 여태껏 은준이 돌본 적 없잖아요. 이젠 은준이도 독립했으니 당신 도움 더 필요 없어요! 만약에 은준이 여자친구가 현이가 아니었다면, 현이가 박씨 집안 딸이 아니었다면 당신 이렇게 부지런히 저 찾아오지 않았을 거잖아요... 당신이 어떤 마음 품고 있는지 제가 모를 것 같아서 그래요?"서 어르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은준이 18살 때 당신이 내 곁으로 보냈잖아? 당신은 못 키우겠다고 나더러 키우라고 했잖아? 내 도움이 없었다면 은준이 저렇게 유학 다녀올 수 있었을 것 같아? 만약에 유학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능력있을 것 같아? 지금 저렇게 사업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덕분이라고!"서은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올라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은준이더러 대학 등록금 다 갚아주라고 할게요!"서 어르신: "이건 대학 등록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은준이 내 아들이야, 엄연한 내 피가 흐르고 있는 내 아들이라고!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은준이가 나중에 잘 지내던 못 지내던, 이 애비 떨쳐낼 생각은 꿈도 꾸지
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 지금은 안 가요. 저 신경쓰지 말고 당신 할 거 하면 되요."서은준: "여기 있어봤자 너한테 시간낭비일 뿐이야."현이: "저 그동안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회사생활도 열심히 했다고요, 잠깐 쉬겠다는데 뭐가 어때서요."잠시 후 진지한과 배유정은 호텔로 돌아왔고 네 사람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서은준의 어머니는 현이의 오빠와 새언니가 오는 것을 몰랐기에 그들이 온 것을 보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서은준의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으나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었다.현이는 전동으로 서은준 어머니의 병실 침대머리를 올려 주었다. "어머님, 저희 오빠랑 새언니 신혼여행 겸 여기 놀러 왔다 어머님이랑 은준 씨 보러 여기 들른 거예요."서은준의 어머니: "아이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현이를 알게 된 건 정말 우리 아들의 행운이에요..."배유정: "어머님,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은준 씨도 얼마나 훌륭한데요. 그렇지 않으면 현이도 은준이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서은준의 어머니: "듣기론 현이 집이 엄청난 부자라던데... 혹시 우리 은준이 반대하는 건 아니죠?"배유정: "어머님, 저희도 사람 됨됨이와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은준이랑 현이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두 아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라면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 거예요."서은준은 어머니: "네... 정말 고마워요! 유일하게 걱정되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게 바로 제 아들이에요. 현이네 집에서 우리 아들 너무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우리 아들이 자존심이 강하거든요..."진지한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서은준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를 포함한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어머님 아들 무시하는 일 없을 겁니다."현이는 오빠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깊은 감동을 받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서은준의 손을 꼭 잡았다.진지한은 병실에서 잠시 머물다 나갔다.현
현이는 긴장감에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서은준과 큰 오빠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얘기들을 다 꺼냈고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큰 오빠도 화를 내지 않았고 서은준 역시 화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사실상 이미 그녀의 걱정과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였다.하지만 현이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은준 씨, 좀이따 저희 남편이랑 병원에 가서 어머님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식사를 마친 후 배유정이 서은준에게 물었다.서은준: "좋아요."현이: "어머님께 미리 말씀 드릴까요?"서은준: "괜찮아. 이따 가서 직접 소개해 드리면 돼."서은준 어머니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고 휴대폰을 안쓴지 이미 오래 되었다.보통 간호인이 매일매일 서은준에게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보고하곤 하였다.배유정: "사업도 하느라 어머님도 챙기느라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무너졌을 텐데."서은준: "현이의 예전 생활은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어요. 현이도 무너지지 않고 씩씩하게 잘 버텼는데 저도 잘 이겨낼 겁니다."배유정: "하하! 둘 다 씩씩한 사람이라 좋네요. 지금이든 나중이든 어떠한 곤난도 두 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할 거예요."현이: "언니 정말 너무 좋아요! 언니는 정말 제가 봤던 사람들 중 저희 엄마 제외한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에요."배유정은 현이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졌다.진지한: "너희 언니가 이 말 들으면 서운했을 거야."현이: "언니는 당연히 다르죠! 제 마음속 언니는 부드러운 성격이 아닌 용감하고 씩씩한 슈퍼 히어로같은 존재니까요."배유정: "라엘이 성격에 슈퍼 히어로가 되는 걸 더 좋아할 거예요."현이: "아무튼 언니는 절대 저와 이런 걸로 다투지 않을 거예요."배유정: "당연하지. 다들 배 부르게 먹었어? 다 먹었으면 오빠한테 계산하라고 할게."이 말을 들은 진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때 서은준도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계산할게요."현이는 애원하듯
현이가 말을 마친 후 서은준도 입을 열었다. "우선 열심히 일하고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이 될 때 다시 책임지고 싶습니다."진지한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사업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 그럼 사업이 실패하면 어떡하려고? 혹은 계속 미지근하게 아무런 진전도 없으면?"서은준: "형님이 말하신 것처럼 사업에 실패하거나 아무런 성과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현이 고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진지한: "자기 분수는 잘 알고있네."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큰 오빠, 은준 씨 사업이 실패하거나 아무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다고 해도 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돈 때문에 은준 씨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배유정은 다시 한 번 진지한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의 말이 심했다고 일깨워 주었다.다른 사람에게 차갑고 날카롭게 공격적일 순 있어도 현이에게 이렇게 공격적이진 못했다.현이 역시 자신의 말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느꼈는지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큰 오빠, 전 그냥 돈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에요. 그리고 저희 집 이미 충분히 돈 많잖아요. 아무리 돈 많은 상대를 찾는다고 해도 저희 집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찾기 어려울 거예요. 어차피 우리 집보다 돈이 많은 게 아니라면 돈이 많은 사람을 찾든 좀 적은 사람을 찾든 다 똑같잖아요."배유정: "현이 말이 맞아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 됨됨이고 두 사람의 감정이에요. 만약에 상대방이 서은준 씨보다 돈이 더 많지만 현이한테 잘하지 않는다면 그런 남자에게 현이를 억지로 시집 보내는 건 아무 의미 없잖아요."진지한: "우리 집 조건만 봐도 현이한테 잘해주지 않을 남자는 없어."배유정은 할 말을 잃었다.진지한이 말한 것 역시 사실이였기 때문이다.현이가 누구에게 시집을 가든 함부로 현이를 건들지 못 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친정이 재력가인 힘이었다.현이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제게 잘해주는 이유가 저희 집안 때문이라면 서은준 씨는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