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반사적으로 대답해 버린 수수는 대답을 마치자마자 뺨이 화끈거렸다.나중에 또 물건을 빼앗겼을 때, 그에게 전화하면 그가 정말로 그녀를 도와줄까?수수는 책가방을 메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서은준은 쓰레기통 안의 쓰레기를 바라보며, 수수를 다시 불러야 할지 망설였다.몇 초 동안 망설임 끝에 고개를 들어보니, 수수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집에 돌아온 수수는 샤워하고 침대 위에 올라가, 침대 협탁 위의 액자를 집어 들었다.액자 속에는 수수와 할머니가 함께 찍은 사진이 들어있었다.그 사진은 수수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 할머니의 손을 붙들고 사진관에 가서 찍은 것이었다.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익숙하지 못한 탓에, 사진 속의 할머니는 어색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할머니, 할머니의 팔찌를 빼앗겼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그 사람들의 돈을 갚아, 팔찌를 되찾아 올 거예요." 수수가 사진 속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잣말했다. "할머니, 전 요즘 잘 지내고 있어요.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도련님은 좋은 사람이에요. 도련님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에요. 앞으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T 대학에 갈 거예요. 할머니,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죠? 제가 T 대학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앞으로는 걱정할 일이 없을 거라고요. 걱정 없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거예요."A국.라엘이 세 차례나 만나자고 한 끝에, 마침내 김세연이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예전 모습 그대로시네요!" 라엘이가 김세연의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혀 나이 들지 않으신 것 같아요.""예전에 비하면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지." 김세연이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요즘 콘서트 때문에 바빴어. 정말 바빴어. 거짓말 아니야. 은퇴를 준비하고 있거든."물을 마시던 라엘이는 그의 말에 사레가 들렸다.김세연이 그녀에게 티슈를 건넸다: "아버지께서 연세가 많이 드셔서,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해.""세연 아저씨, 정말로 은퇴하실 거예
김세연이 흘끗 라엘이를 쳐다보았다.사실 라엘이의 이목구비는 십 대 때와 비슷했다. 단지 지금 조금 더 성숙해졌을 뿐이었다.하지만 라엘이의 내면은 그다지 성숙하지 않다는 걸, 김세연은 알고 있었다.왜냐하면 라엘이는 내내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항상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자란 응석받이 공주님이자 온실 속의 화초이기 때문이다.이런 사람은 비교적 순수한 성격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좌절을 견디는 능력이 보통 사람보다 조금 뒤떨어진다."부모님이 재촉하셔?" 김세연이 물었다. "너희 아빠가 너를 재촉할 리 없을 텐데?"라고 물었다."아빤 제가 평생 외롭게 살길 바라시나 봐요." 라엘이가 이죽거렸다.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아저씨도 잘 모르실걸요. 아빤 이 세상의 좋은 남자는 다 우리 집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밖에 있는 남자는 모두 별로라고 생각하시고요. 그래서 제가 연애하지 않길 바라세요. 결혼은 더더욱 원하지 않으시고요. 제가 남자한테 상처받을 것 같으시대요."김세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너희 아빠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지. 너처럼 귀여운 딸이 있었다면, 나도 내 딸이 너무 일찍 결혼하는 건 바라지 않았을 거야.""그렇지만 전 이제 곧 스물다섯 살인걸요! 어린아이 티를 벗은 지 오래예요. 제 동생도 벌써 성인이 되었다고요!" 라엘이가 빨대를 들고 주스를 마셨다. "아저씨 주변에 괜찮은 남자 없어요? 저한테 소개 좀 해주세요!"김세연이 엷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 엄마 아빠한테 소개해 달라고 해. 너희 부모님의 성에 차지 못할까 봐 다른 사람은 엄두도 내기 힘들어.""엄만 그 정도로 간섭하지 않으세요. 아빠는 제게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하시지만, 엄만 남자친구를 만나 연애도 하라고 하셨거든요. 전 당연히 엄마 말씀을 따를 거예요!"웨이터가 음식을 가지고 오자, 라엘이는 곧바로 주스 잔을 옆으로 치웠다."점심을 조금밖에 안 먹었더니 배고파 죽겠어요." 라엘이가 젓가락을 집어 들며 김세연에게 말했다. "이제 곧 은퇴하시니, 마음 편히 드실
"전 아저씨와 같은 업계에 있지 않지만, 우린 서로 잘 맞는 것 같은데요!"김세연: "..."라엘: "은퇴 후에는 여자친구를 만드실 거예요? 부모님께서 엄청나게 조급해하시죠?"김세연: "그럭저럭. 이제 조급해하실 단계는 지났어."라엘: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혹시 비혼주의세요?"김세연: "그건 생각해 보지 않았어. 은퇴한 후에 고민해 봐야지."라엘이가 '그렇구나.'라고 말했다: "그럼 아저씨는 비혼주의는 아닌 거네요. 비혼주의자들은 생각이 확고하거든요."그때, 김세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매니저의 전화였다."난 이만 가봐야겠다, 라엘아." 김세연이 전화를 끊고 라엘이에게 말했다. "내가 좀 여유로워지면, 너희 엄마도 불러서 함께 식사하자.""좋아요! 어서 가보세요! 마스크 잘 쓰시고요. 건강 조심하세요!" 그를 배웅하려고 라엘이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마저 식사해! 나오지 말고." 김세연이 마스크를 쓰고는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식당을 떠났다.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본 뒤에야 라엘이는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김세연은 이미 마흔이 다 되었지만, 그는 외모와 체형을 아주 잘 유지해, 보통의 마흔 살 남자와 완전히 달랐다.라엘이는 공부와 일 때문에 오랫동안 김세연을 만나지 못했다.이번 만남에, 라엘이는 그를 향한 존경심과 호감이 모두 다시 생겨났다.라엘이가 대학 시절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인 서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서아야, 내 친구 중에 자기 삼촌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애가 있어. 아무래도 좀 이상하지? 서아: 삼촌 같은 사람? 혈연관계란 말이야?라엘: 풉! 당연히 혈연관계는 아니야!서아: 혈연관계가 아니면 상관없지! 그분이 나이가 많아? 만약 그분이 6,70살이면, 네 친구는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끌리는 타입일지도 몰라.라엘: 그 정도로 나이가 많은 건 아니야! 겨우 마흔 살이야!서아: 세상에! 마흔 살이라니! 그렇게 나이 많은 사람을! 라엘아, 사실대로 말해. 네가 말하는 그 친구가 바로 너 맞지? 너한테 나
라엘이는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인터넷에서 김세연의 사진을 찾아 복사한 다음 서아에게 보냈다.김세연의 사진을 본 서아가 곧바로 물음표를 연발했다: 김세연의 사진은 왜 보냈어? 그 삼촌 같다는 어르신의 사진을 보내라니까!라엘이는 메시지를 입력하던 손이 조금 저렸다: 그가 바로 내가 말한 사람이야!서아: 대박!!! 말도 안 돼...라엘: 그게 무슨 반응이야?서아: 가능하지! 완전 가능해! 난 오케이야!라엘: 서아야, 왜 이래!서아: 남자친구가 김세연이라면! 난 완전 오케이야! 이렇게 잘생겼는데, 50살이라 해도 난 오케이야!라엘: ... 빼앗아 갈 생각 하지 마!서아: 둘이 사귀기로 한 거야? 김세연도 너를 좋아한대? 도대체 지금 둘이 어떤 상황인 거야? 너 지금 통화 가능해? 우리 전화로 얘기하자!...T국.서씨 가문."수수야, 월급은 들어왔니? 사모님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말씀드렸더니, 네가 의지할 곳이 없다는 걸 아시고는 사모님께서 아주 마음아파하셨어. 그래서 지난달에 만근 처리를 해주셨단다." 집사가 수수를 한 편으로 부르더니 웃으며 말했다.수수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계좌를 확인했다."집사 아저씨, 감사합니다! 월급이 들어왔어요." 수수가 고마워하며 말했다. "제가 아저씨께 빌린 돈은...""서두를 것 없단다. 넌 밖에서 빌린 돈도 있고, 학교도 다녀야 하잖니. 꼭 갚아야겠다면, 나중에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정식으로 일을 시작한 뒤에 갚으렴!" 집사가 말했다. "수수야, 넌 얼굴이 그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분명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아이였을 거야.""감사합니다, 집사 아저씨.""아휴, 그렇게 예의 차릴 것 없어. 이건 서씨 가문에서 네게 준 월급이야. 정말 고맙다면 은준 도련님을 잘 보살펴 드리렴." 집사가 재차 당부했다. "은준 도련님이 대학에 가신 후에도 네가 서씨 가문에 남아 일을 하길 원한다면, 내가 사모님께 너를 다시 주방으로 보내달라고 말씀드리마...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네가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의
"그게... 갑자기 도련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아서, 도련님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수수가 고개를 숙인 채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핑계를 댔다."매일 같이 도련님, 도련님 하며 나를 그렇게 친근하게 불러대면서,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단 말이야?""도련님, 제가 거짓말을 했어요. 도련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어요. 갑자기 도련님이 참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에요." 수수가 고개를 들고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잘생긴 걸 오늘에서야 알았단 말이야?" 서은준이 하던 일을 멈추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도련님의 코에 멍이 들고 얼굴까지 퉁퉁 부어서 잘 몰랐어요." 여기까지 말한 뒤, 수수가 말 돌리기를 시도했다. "제가 사다 드린 약, 안 바르셨죠? 제가 약국에 가져가서 환불해 올까요?""지금 줬다 뺏으려는 거야?" 서은준은 수수보다 한 수 위였다. "너 정말 뻔뻔하구나?"수수는 뺨이 화끈거렸다: "돈은 환불받는 대로 돌려드릴게요. 도련님의 돈은 원하지 않아요.""내가 그 돈이 모자랄까 봐서? 도대체 네 머릿속엔 뭐가 든 거야?" 서은준이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시했다. "가서 내 방이나 청소해. 내 개인 소지품에는 손대지 말고.""네, 알았어요."저녁.수수의 끈질긴 설득 끝에, 서은준은 결국 별채 문밖으로 발을 내디뎠다.서은준은 수수가 그에게 사다 준 패딩을 입었다.패딩을 입으니 바깥이 그다지 춥지 않다고 느껴졌다."아파트 단지를 나가서 버스를 타면 시내 중심부에 갈 수 있어요." 수수가 말을 하며 책가방에서 동전 두 개를 찾아 그중 하나를 서은준에게 건넸다."뭐 먹으러 갈 건데?" 서은준은 조금 배가 고팠다."뭐 먹고 싶어요?" 수수가 물었다.서은준은 가로등 아래에 있는 수수의 얼굴을 보고는, 그녀가 갚아야 하는 빚이 있다는 것이 떠올라 말했다: "아무거나! 배만 채울 수 있으면 돼.""정말 친절하시네요, 도련님. 제게 갚아야 하는 빚이 있다는 걸 알고 돈을 쓰지 못하게 하시는 거죠?
서은준: "아니거든."수수: "얼굴이 빨개졌다니까요. 진짜예요.""난 너를 친구라고 생각한 적 없어." 서은준이 눈앞에 펼쳐진 긴 밤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같은 사람과 친구 해서 좋은 것 없어.""친구는 상대방의 좋은 점만 보고 하는 게 아니에요. 서로 자기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 상대방에게 힘든 일이 있을 때 힘이 되어주는 게 친구라고 생각해요. 도련님, 도련님 같은 사람도 친구를 가질 자격이 있어요. 저 같은 사람도 친구를 가질 자격이 있고요. 전 어릴 때 절친이 한 명 있었어요. 나중에 이별하게 되었지만요." 사실 수수는 자기와 수현이가 어릴 때 함께 했던 세세한 것들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수현이가 가장 친한 친구였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그런 아름다운 기분은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버스가 천천히 다가와 그들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례로 차에 올랐다.대략 20분이 지난 후, 차가 시내 중심부의 정거장에 멈췄다.두 사람이 차에서 내린 후, 수수가 아무 생각 없이 서은준의 팔을 잡았다."도련님, 시내에는 사람이 많으니 떨어지면 안 돼요."서은준: "내 번호 없어?"수수가 곧바로 손을 떼며 말했다: "아참, 깜빡할 뻔했네요.""그런 머리로 어떻게 T 대학에 가겠다는 거야?" 서은준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저번에 먹었던 양고기 전은 어디서 산 거야?""그 가게는 시내에 있지 않아요. 제 오피스텔 근처에 있어요." 수수가 수줍게 대답했다. "양고기 전이 먹고 싶다고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요?""됐어,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가서 먹자!" 서은준이 앞을 향해 무작정 걸어갔다.수수는 그런 그의 뒤를 바짝 따랐다.수수가 실내장식이 잘 되어있고, 손님이 많은 한 가게를 골랐다."도련님, 여기로 가요!" 손님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한 사람당 드는 돈도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고 수수는 생각했다.두 사람은 가게에 들어와 구석에 있는 2인석에 앉았다.수수가 서은준에게 메뉴판을 건네고는 그에게 주문을 맡겼
그 외에 그가 거부감을 느끼는 또 하나의 이유는, 김세연이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박시준은 몇 년 전, 김세연이 진아연에게 호감을 표시했던 것을 잊을 수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김세연과 결혼하고 싶다는 골치 아픈 말을 했던 것은 더욱 잊을 수 없었다.하지만 그는 김세연의 콘서트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말에도, 진아연과 라엘이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김세연 씨가 표를 몇 장 줬어?" 박시준이 물었다."아직 표를 주진 않았어요! 라엘이에게 줄 건가 봐요! 세연 씨가 라엘이와 이야기를 나누었거든요." 진아연이 관련 기사를 훑어보았다. "인터넷에 보니, 다들 세연 씨의 콘서트 표를 구하기 어렵다고 난리예요.""그게 다 헝거 마케팅이야!" 박시준이 덤덤하게 말했다."가기 싫으면 억지로 갈 필요 없어요. 괜히 따라가서 분위기 망치지 말아요." 진아연이 말했다. "세연 씨를 왜 아직도 이렇게까지 싫어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때 당신이 세연 씨에게 라엘이와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해서, 세연 씨는 두 번 다시 우리와 연락하지 않았어요.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세연 씨와 난 다섯 번도 채 만나지 못했어요. 라엘이가 세연 씨와 만난 횟수는 더 적을 거고요."박시준: "내가 세연 씨를 그렇게 싫어하는 것처럼 보여?""네! 세연 씨가 잘생기고 업무 능력도 뛰어나니, 여자들의 시선을 독차지한다는 것 알아요. 당신은 그 점이 못마땅한 거겠죠...""나도 두 사람과 함께 갈게. 김세연 씨가 지금은 얼마나 잘생겼고 업무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리고 얼마나 여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지 가서 봐야겠어." 박시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래요! 그럼, 세연 씨에게 콘서트 표 세 장을 챙겨달라고 얘기할게요.""세 장은 부족하지. 콘서트장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몰릴 텐데, 경호원 한 명은 데리고 들어가야 해.""시준 씨, 콘서트장에 가면, 현장에서 보안 검사를 철저히 할 거예요.""김세연 씨에게 얘기하기 미안해서 그런 거면
라엘이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그의 답장을 바라보았다.라엘이는 김세연이 얼마나 자신을 애지중지하는지 느껴졌다.하지만 라엘이는 자기의 감정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김세연이 그녀에게 어떤 남자를 소개해 주든, 그녀의 눈에 차지 않을 것이다.라엘이가 마음을 진정시키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라엘이는 욕실에 들어가 헤어드라이기를 들고 머리카락을 말리기 시작했다.머리카락을 말리다 보니, 라엘이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김세연에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현한 다음 김세연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것이다.그는 지금 은퇴를 앞두고 있다. 그가 은퇴하고 나면 그 역시 평범한 일반인이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그가 원한다면 누구든 만나 연애할 수 있을 것이다.머리카락을 다 말리고 난 뒤에도 라엘이는 여전히 머리가 화끈거렸다.라엘이는 헤어드라이어를 정리한 다음, 침실로 걸어가 다시 휴대폰을 들어 김세연에게 “제 남자 친구 될래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메시지를 보낸 후, 라엘이는 손가락이 저릿해, 휴대폰을 침대에 던진 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메시지를 본 김세연이 무슨 반응을 보일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김세연이 어떤 답장을 보낼지는 더더욱 추측하기 어려웠다. "아! 진짜 모르겠어! 아저씨가 다시는 나를 만나주지 않으면 어떡해!" 라엘이가 마구 헝클어진 머리로 방안을 이리저리 서성였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머리에 열이 올라 화끈거렸다.라엘이가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은 다음, 조심스럽게 침대로 걸어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라엘이가 눈을 꼭 감은 채 깊게 심호흡하고는 휴대폰을 켰다.김세연은 그녀의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았다.라엘이는 얼어붙었다.김세연이 답장을 보내지 않은 건 무슨 의미일까?라엘이가 홍당무처럼 빨개진 얼굴로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냈다: 저 진지해요. 아저씨도 여자친구가 없고, 저도 남자친구가 없으니, 시도해 볼 만하잖아요!라엘이는 김세연에게만 이렇게 직설적인 것은 아니었다. 라엘이는 어려서부터 누구에게나 이렇게 직설적인 편이었다.
3년 후.A국, 공항.현이는 둘째 오빠와 함께 공항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3년이야 3년! 남자친구라는 사람 드디어 너 찾으러 오는 거야!" 박지성은 현이를 놀리며 얘기했다. "설마 너랑 헤어지러 오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3년 동안 못 만났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현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둘째 오빠, 저 지금 저주하시는 거예요? 비록 3년 동안 못 만났지만 매일매일 영상통화 하면서 서로 얼굴 봤거든요!"박지성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사이버 연애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현이: "어쨌든 이번에 A국에 와서 정착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이제부터 다시는 떨어져 지내는 일 없을 거예요."박지성: "네 남자친구도 자존심이 너무 강해. 이따 아버지 만나고 얘기 얼마 나누지도 않고 다시 티켓 사고 도망치는 거 아니야?"현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현이는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았다——서은준이 캐리어를 끌며 출구에서 나오고 있었다.현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은준을 향해 달려가 서은준의 품에 안겼다.이때 박지성은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진아연이 물었다. "아직 못 만났어? 설마 안 오는 건 아니지?"박지성: "엄마,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에요. 금방 나왔어요, 지금 현이랑 껴안고 있어요! 우리 이제 곧 집에 갈 거니까 엄마랑 아빠도 마음의 준비 잘 하고 계세요."박 씨 저택.진아연은 통화를 마친 후 박시준에게 전달했다.박시준은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자신의 용모를 검사했다.진아연은 화장실 문 앞에서 지켜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거울 그만 비춰요, 충분히 멋있어요!"박시준: "여보, 좀이따 은준이한테 좀 엄격해야 할까?"진아연: "현이가 그렇게 좋다는데, 은준이도 현이 위해서 A국에 있겠다고 한데다 엄격하게 해서 뭐하려구요? 굳이 두 아이의 기분을 망쳐야겠어요? 은준이도 지금 어엿한
서 어르신은 진지한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꺼낼 줄 예상치 못했기에 차마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냐하면 진지한에게 돈을 달라고 할 계획이긴 했지만 얼마나 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어쨌든 진지한은 엄청난 부자였고, 적게 달라고 하니 왠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였고 많이 달라고 하자니 거절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서 어르신은 한동안 망설인 후 진지한에게 말했다. "진 대표님 집이 A국에서 엄청난 부자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가 적당한지는 대표님께서 정하시죠! 저와 우리 아들에게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진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배유정은 그것을 보고 바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금액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가 적당할지 가늠이 안 가네요. 굳이 저희더러 정하라면 돌아가서 저희 시아버님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네요."서 어르신: "혹시 박시준 씨 말하는 겁니까?"배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저희 시아버님 저희 남편보다 더 까다로울 겁니다. 입장 바꿔서 아버님이라도 따님을 평범한 남자한테 시집 보내진 않을 거잖아요?"서 어르신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해요. 그럼 그냥 우리끼리 얘기하죠!"배유정: "지금부터 고민해 보셔도 괜찮아요. 저희 요 이틀 동안은 여기 있을 거거든요."서 어르신: "알겠어요! 그럼 우선 연락처 먼저 교환하죠! 나중에 일이 있을 때도 서로 연락하기 편하잖아요."배유정은 진지한을 흘끗 보았고 그제서야 진지한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서 어르신과 연락처를 교환했다.병원.현이는 서은준의 곁에서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했다.서은준은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시신을 옮겨달라고 했다.현이가 서은준에게 물었다. "장례식 간단하게 치를 생각이에요?"서은준: "엄마 켠에도 친척들이 별로 없어."현이: "네. 그럼 어머니 계실 묘지부터 골라야죠?"서은준: "엄마가 전에 유골을 엄마 고향 연못에 뿌려달라고 했어."현이: "..."서은준: "엄마는 내
진지한: "그래요 그럼! 근처에 가까운 카페라도 갈까요."서 어르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요! 사실 우리 집이 바로 병원 근처에 있는데 한 번 가보실래요? 현이도 우리 집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었고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사이가 아주 좋았거든요."진지한은 배유정을 보며 말했다. "그럼 한 번 가볼래?"배유정: "좋아요!"서 어르신은 즉시 진지한과 배유정을 자신의 차로 안내하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서 어르신의 집에 도착한 후 서 어르신은 즉시 하인들을 분부하여 과일과 디저트를 올리라고 했다.서 어르신은 집사를 가리키며 진지한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집 집사입니다. 예전에 현이 할머니도 집사가 뽑고 집에 들였죠."진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서 어르신은 집사에게 말했다. "이 분은 수수 친 오빠야, 유명한 대기업의 대표 진지한 씨."집사: "진 대표님, 안녕하세요! 수수 정말 괜찮은 아이였어요, 그때 우리 모두 수수를 많이 좋아했답니다. 전에 수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많이 속상했는데 사실이 아니라니 참 다행이에요! 수수는 정말 철도 들고 씩씩한 아이였어요, 제가 봤던 아이들 중 가장 씩씩한 아이에요. 수수가 잘 지내고 있다니 정말 기쁘네요."진지한: "전에 우리 동생 잘 챙겨줘서 고마웠어요."집사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별 말씀을요! 수수는 정말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어요. 매번 적극적으로 맡아서 일도 잘하고 정말 괜찮은 아이에요. 우리는 그때부터 수수가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나면 꼭 잘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진지한은 집사의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서 어르신이 집사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내려가."집사는 즉시 물러났다.서 어르신은 진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현이가 우리 은준이랑 사이가 좋았다는 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현이를 은준이 곁에 안배했거든요, 그때 두 아이 나이가 비슷했기도 했고 서로 얘기도 잘 통할 거
현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빠, 은준 씨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저 요 며칠 동안 언니 오빠랑 놀러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진지한: "괜찮아. 은준이 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우리도 놀 기분 아니야. 은준이 어머님 장례식 참석하고 돌아갈게."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여긴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지?" 진지한을 물었다.서은준은 현이의 남자친구자 현이 또래기도 하니 현이의 오빠로서 왠지 모르게 서은준을 도와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현이: "국내랑 비슷해요. 돈 많은 사람들은 거창하게 치르고 보통 사람들은 그냥 간단하게 치르곤 해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장례식은 따로 안 치르고 직접 무덤에 묻기도 하구요."진지한: "좀 거하게 치르려면 어떻게 해야 해?"현이: "오빠, 은준 씨 어머님 장례식 치르는 거 도와줄려고요? 은준 씨 친척들도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거하게 안 치러도 돼요."진지한: "그래. 그럼 은준이랑 어떻게 할 건지 상의해 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현이: "고마워요, 오빠. 근데 안 도와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장례식 치르는데 돈 많이 들진 않을 거예요. 은준 씨도 저희가 자기 어머님 장례식 도와주겠다고 하면 받지 않을 거예요."진지한: "그래 그럼! 가서 은준이 옆에 있어줘!"현이: "오빠, 그럼 오빠랑 새언니는...""우리 걱정은 안해도 되. 나 너희 새언니랑 밖에 나가서 좀 걸을게,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알았어요, 오빠."현이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병동을 나섰다.서 어르신은 병원 건물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지한과 배유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진 대표님, 저희 아들이 저한테 깊은 오해가 있어 현이까지 절 싫어하나 보네요. 사실 저 예전에 현이한테 정말 잘해줬어요." 서 어르신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 현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저희 집에서 일했었거든요. 그때는 현이를 키우던 할머니와 같이 우리 집 주방에
전화를 끊은 후 서은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현이는 서은준의 곁에 서서 물었다. "은준 씨, 왜 그래요?"서은준: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대. 미안하지만 당신 혼자 형님이랑 시간 보내야 될 것 같아! 난 병원으로 가야 될 것 같아."현이: "같이 가요! 어머님 방금까지 멀쩡하셨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두 사람은 진지한과 배유정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차를 잡으러 길가로 향했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두 사람이 급하게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당황스러웠다.배유정: "여보, 우리도 병원에 가봐요! 은준 씨 어머님이 돌아가셨나봐요."진지한: "그래."두 사람은 택시 한 대를 세우고 서은준이 탄 차를 쫓았다.병원.빠른 속도로 병원에 도착한 서은준은 함께 서있는 의사 선생님과 서 어르신을 보았다.서 어르신은 아첨하는 말투로 말했다. "은준아, 원래는 너희 엄마 보러 병원에 온 건데 내가 왔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 너무 안타깝구나!"서은준: "당신이 오기 전에 사망한 거 확실해요? 저도 오늘 왔었어요, 제가 왔을 땐 분명 아주 멀쩡했다고요!"서 어르신: "물론 다 사실이지! 못 믿겠으면 의사한테 물어봐!""의사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요!" 서은준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간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우리 엄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저 사람 오기 전에 돌아가신 거예요, 아니면 오고 나서 돌아가신 거예요?"겁에 질려 있는 간호인들 부들부들 떨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서 어르신은 분노에 가득 찬 어조로 간호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묻고 있잖아요. 말해 보세요! 제가 여기 왔을 때 당신 어디 있는지 그림자도 못 봤는데 혹시 밖에서 놀고 있던 거 아니에요?"간호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오셨을 때 물 받으러 잠깐 병실에 없었어요. 아버님께서 언제 오셨는지 어머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이번 달 비용은 받지 않을게요!"간호인은 말
서 어르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당신 나 지금 무시하는 거야? 우리 서씨 집안이 지금 좀 상황이 안 좋긴 해도 T국에서 여전히 명망있는 가족 기업이라고! 은준이가 철이 없다고 당신까지 이렇게 무식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은준이 뒤에 내가 없었다면 박씨 집안에서 우리 은준이 거들떠 보기나 할 것 같아?"서은준의 어머니: "그 입 다무세요! 박씨 집안에는 당신처럼 속좁은 사람 없어요! 현이 가족들은 우리 은준이를 무시하지 않는다고요! 그니까 괜히 쓸데없이 그분들 귀찮게 하지 마세요!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괜한 짓 하지 말라고요!"서 어르신: "정말이야? 박씨 집안에서 정말 은준이를 반대 안 해? 어떻게 반대 안 할 수가 있지? 설마 은준이더러 A국에 가서 데릴사위라도 하라는 건가?"서은준의 어머니: "그러든 말든 당신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당신 여태껏 은준이 돌본 적 없잖아요. 이젠 은준이도 독립했으니 당신 도움 더 필요 없어요! 만약에 은준이 여자친구가 현이가 아니었다면, 현이가 박씨 집안 딸이 아니었다면 당신 이렇게 부지런히 저 찾아오지 않았을 거잖아요... 당신이 어떤 마음 품고 있는지 제가 모를 것 같아서 그래요?"서 어르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은준이 18살 때 당신이 내 곁으로 보냈잖아? 당신은 못 키우겠다고 나더러 키우라고 했잖아? 내 도움이 없었다면 은준이 저렇게 유학 다녀올 수 있었을 것 같아? 만약에 유학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능력있을 것 같아? 지금 저렇게 사업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덕분이라고!"서은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올라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은준이더러 대학 등록금 다 갚아주라고 할게요!"서 어르신: "이건 대학 등록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은준이 내 아들이야, 엄연한 내 피가 흐르고 있는 내 아들이라고!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은준이가 나중에 잘 지내던 못 지내던, 이 애비 떨쳐낼 생각은 꿈도 꾸지
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 지금은 안 가요. 저 신경쓰지 말고 당신 할 거 하면 되요."서은준: "여기 있어봤자 너한테 시간낭비일 뿐이야."현이: "저 그동안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회사생활도 열심히 했다고요, 잠깐 쉬겠다는데 뭐가 어때서요."잠시 후 진지한과 배유정은 호텔로 돌아왔고 네 사람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서은준의 어머니는 현이의 오빠와 새언니가 오는 것을 몰랐기에 그들이 온 것을 보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서은준의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으나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었다.현이는 전동으로 서은준 어머니의 병실 침대머리를 올려 주었다. "어머님, 저희 오빠랑 새언니 신혼여행 겸 여기 놀러 왔다 어머님이랑 은준 씨 보러 여기 들른 거예요."서은준의 어머니: "아이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현이를 알게 된 건 정말 우리 아들의 행운이에요..."배유정: "어머님,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은준 씨도 얼마나 훌륭한데요. 그렇지 않으면 현이도 은준이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서은준의 어머니: "듣기론 현이 집이 엄청난 부자라던데... 혹시 우리 은준이 반대하는 건 아니죠?"배유정: "어머님, 저희도 사람 됨됨이와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은준이랑 현이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두 아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라면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 거예요."서은준은 어머니: "네... 정말 고마워요! 유일하게 걱정되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게 바로 제 아들이에요. 현이네 집에서 우리 아들 너무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우리 아들이 자존심이 강하거든요..."진지한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서은준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를 포함한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어머님 아들 무시하는 일 없을 겁니다."현이는 오빠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깊은 감동을 받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서은준의 손을 꼭 잡았다.진지한은 병실에서 잠시 머물다 나갔다.현
현이는 긴장감에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서은준과 큰 오빠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얘기들을 다 꺼냈고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큰 오빠도 화를 내지 않았고 서은준 역시 화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사실상 이미 그녀의 걱정과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였다.하지만 현이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은준 씨, 좀이따 저희 남편이랑 병원에 가서 어머님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식사를 마친 후 배유정이 서은준에게 물었다.서은준: "좋아요."현이: "어머님께 미리 말씀 드릴까요?"서은준: "괜찮아. 이따 가서 직접 소개해 드리면 돼."서은준 어머니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고 휴대폰을 안쓴지 이미 오래 되었다.보통 간호인이 매일매일 서은준에게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보고하곤 하였다.배유정: "사업도 하느라 어머님도 챙기느라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무너졌을 텐데."서은준: "현이의 예전 생활은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어요. 현이도 무너지지 않고 씩씩하게 잘 버텼는데 저도 잘 이겨낼 겁니다."배유정: "하하! 둘 다 씩씩한 사람이라 좋네요. 지금이든 나중이든 어떠한 곤난도 두 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할 거예요."현이: "언니 정말 너무 좋아요! 언니는 정말 제가 봤던 사람들 중 저희 엄마 제외한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에요."배유정은 현이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졌다.진지한: "너희 언니가 이 말 들으면 서운했을 거야."현이: "언니는 당연히 다르죠! 제 마음속 언니는 부드러운 성격이 아닌 용감하고 씩씩한 슈퍼 히어로같은 존재니까요."배유정: "라엘이 성격에 슈퍼 히어로가 되는 걸 더 좋아할 거예요."현이: "아무튼 언니는 절대 저와 이런 걸로 다투지 않을 거예요."배유정: "당연하지. 다들 배 부르게 먹었어? 다 먹었으면 오빠한테 계산하라고 할게."이 말을 들은 진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때 서은준도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계산할게요."현이는 애원하듯
현이가 말을 마친 후 서은준도 입을 열었다. "우선 열심히 일하고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이 될 때 다시 책임지고 싶습니다."진지한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사업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 그럼 사업이 실패하면 어떡하려고? 혹은 계속 미지근하게 아무런 진전도 없으면?"서은준: "형님이 말하신 것처럼 사업에 실패하거나 아무런 성과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현이 고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진지한: "자기 분수는 잘 알고있네."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큰 오빠, 은준 씨 사업이 실패하거나 아무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다고 해도 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돈 때문에 은준 씨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배유정은 다시 한 번 진지한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의 말이 심했다고 일깨워 주었다.다른 사람에게 차갑고 날카롭게 공격적일 순 있어도 현이에게 이렇게 공격적이진 못했다.현이 역시 자신의 말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느꼈는지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큰 오빠, 전 그냥 돈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에요. 그리고 저희 집 이미 충분히 돈 많잖아요. 아무리 돈 많은 상대를 찾는다고 해도 저희 집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찾기 어려울 거예요. 어차피 우리 집보다 돈이 많은 게 아니라면 돈이 많은 사람을 찾든 좀 적은 사람을 찾든 다 똑같잖아요."배유정: "현이 말이 맞아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 됨됨이고 두 사람의 감정이에요. 만약에 상대방이 서은준 씨보다 돈이 더 많지만 현이한테 잘하지 않는다면 그런 남자에게 현이를 억지로 시집 보내는 건 아무 의미 없잖아요."진지한: "우리 집 조건만 봐도 현이한테 잘해주지 않을 남자는 없어."배유정은 할 말을 잃었다.진지한이 말한 것 역시 사실이였기 때문이다.현이가 누구에게 시집을 가든 함부로 현이를 건들지 못 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친정이 재력가인 힘이었다.현이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제게 잘해주는 이유가 저희 집안 때문이라면 서은준 씨는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