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아연은 갑자기 한이와 라엘도 지성이처럼 어릴 때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유치원과 아이들을 싫어했던 것이 떠올랐다.그때 그녀는 아이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많이 걱정했었다. 특히 한이는 말도 별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이모님은 진아연의 걱정을 눈치채고 웃으면서 위로했다. "지성이 나이 때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정상이에요. 지성이가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놀지 않는 것도 아니에요. 유치원에 친한 친구도 있는걸요. 다만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하는 것 뿐이죠. 가끔 지성이를 데리고 동네에서 놀고 있을 때 다른 아이들 부모님들이랑 이야기를 나눠보니 지성이보다 학교 가는 걸 더 거부하는 애들이 많더라고요.""제가 쓸데없는 생각이 많았나 봐요. 지성이는 사실 어디로 보나 활기차고 건강해요.""맞아요!" 이모님은 대답하다가 박시준이 떠올랐다. "대표님은 위험에서 벗어났어요? 앞으로 별일 없겠죠?""별일 없을 거예요." 진아연은 감히 단정 지을 수 없었다. "며칠 더 회복하고 자세한 검사를 다시 받을 거예요.""그래요. 아연 씨, 앞으로 다시는 사고 나지 말아요. 애들이 그 충격을 견딜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저 또한 두 사람 때문에 마음을 졸이느라 심장병이 걸릴 뻔했다니까요." 이모님이 말했다."앞으로 좀 더 신경 쓸 거예요. 이제 많은 경험을 얻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좀 주의해야죠.""그래요, 어서 가서 샤워하고 쉬세요. 제가 좀 있다 지성이를 데리고 잘게요." 이모님이 말했다."네."다음 날 아침. 진아연은 세 아이와 함께 박시준 보러 병원에 찾아갔다.예기치 않게 성빈과 조지운이 병실에 있었다."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진아연이 두 사람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이제 겨우 7시인데요.""성빈이 형이 어젯밤에 와서 밤새 병실을 지켰어요." 조지운이 말했다. "전 방금 왔고요.""그렇군요." 진아연은 침대에 누워 있는 박시준을 힐끗 보았다."저기... 성빈이 형, 아연 씨 왔으니 내가 바래다줄게." 조지운이 성빈이를 이끌고 황급히
"애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우리 일은 나중에 따로 얘기해요." 진아연은 조금 있다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그와 단둘이 얘기하려 했다.박시준은 이렇게 그냥 넘어갈 줄 알았는데 그녀의 이런 태도를 보니 좀 있다가 또 혼나야 할 것 같았다."한이야. 너 이번에는 며칠 더 놀다가 가." 박시준은 자상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한이는 초췌한 박시준의 모습을 바라보며 계속 그와 싸우기 싫었다."내 걱정은 하지 말고 본인이나 잘 챙기세요." 한이는 아빠에게 다정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퉁명스럽게 뱉은 말이지만 어투가 예전처럼 차갑거나 공격적이지는 않았다."그래, 아빠가 앞으로 자신을 잘 챙길게. 너희들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되지." 박시준이 자책하며 말했다."한이는 당신을 탓하는 게 아니에요." 진아연은 그가 아들을 오해할까 걱정했다. "당신을 보러 돌아왔으니 예전처럼 당신이 싫지 않다는 거예요."진아연의 말을 들은 지성이는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형을 바라보며 물었다. "형, 형은 왜 그렇게 아빠를 싫어해요?"한이: "..."진아연은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지성이를 안고 설명했다. "형은 아빠를 싫어하지 않아.""엄마가 방금 그랬잖아요. 형이 아빠를 싫어한다고요." 지성이가 눈빛을 반짝이며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주장했다."형이 예전에 아주 조금 아빠를 싫어하긴 했지만 그건 다 지나간 일이란다."진아연의 설명을 지성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지성이는 눈에 힘을 주고 형을 노려보았다."그만해. 아빠를 봤으니 이젠 학교 가야지. 형이 널 유치원에 데려다줄게." 한이가 지성이를 엄마 품에서 안고 병실을 나섰다.지성이가 울어대자걱정된 진아연은 따라 나가려 했다."엄마는 여기서 아빠를 돌봐주세요. 제가 동생을 달랠게요. 동생을 달래고 나서 학교 갈 거에요." 말을 마친 라엘이가 아빠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엄마 말을 잘 들어요. 저녁에 학교 끝나면 다시 올게요.""그래." 박시준은 딸이 병실을 나서는 걸 보며 마음
물론 박시준도 이걸 알고 있었지만진아연처럼 긴장하진 않았다.현이도 그의 친자식이었기에 현이를 찾는 도중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다만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뱉을 수 없었다. 말하고 나면 진아연이 화를 낼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안타깝군." 그는 마른침을 삼키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공들였는데 현이 소식을 못 찾았어.""예전에는 안 믿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소식이 없으니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박시준은 조용히 듣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시준 씨, 이젠 내려놓아요, 우리도 계속 살아가야 하잖아요." 진아연은 그를 힐끗 보고 나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다.그는 항상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냈었다.한 번도 어려움에 굴복한 적이 없는 사람이기에 현이를 찾는 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그래." 그는 빠르게 대답했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현이의 일로 계속 고통받게 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뭐 먹을래요?" 진아연은 아침밥을 갖고 왔다.이모님은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죽을 끓였는데 진아연이 아침에 병원에 갈 때 갖고 가서 박시준에게 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이모님도 함께 오려고 했는데 죽을 끓이느라 밤새 자지 못해서 못 왔어요. 약불에 끓여야 맛있다고 밤새워 끓였거든요. 너무 힘들어 보여서 쉬라고 했어요." 그녀가 보온 통을 열자 맛있는 냄새가 풍겨와박시준의 식욕을 자극했다.그녀는 침대 높이를 조절하고 그가 기대어 앉도록 했다.2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최은서와 여소정, 하준기가 박시준을 찾아왔다.그들은 병실 밖에 서 있는 조지운을 보고 어리둥절해졌다."아연 씨가 안에 있어요." 조지운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방해하기 미안해서요.""하지만 오빠가 깨어난 후 아직 못 봤어요." 최은서는 말을 뱉고 나서 병실 문을 열었다.박시준이 병상에 기대어 앉아 있고 진아연은 손에 면도기를 든 채 박시준에게 면도해 주고 있었다.최은서는 호
"사람의 생사는 하늘에 달린 거야. 걱정하지 마." 박시준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박시준 씨는 마음이 참 속편하시네요. 아연이가 박시준 씨 목숨을 구하느라 얼마나 마음고생했는지도 모르고." 여소정이 말했다. "애들보다 훨씬 속 썩이는 것 같네요. 라엘이도 착하고 지성이도 말을 잘 듣고, 한이는 말할 나위없죠. 한 번도 걱정시킨 적 없으니.""소정아, 그만해." 하준기가 아내에게 눈짓했다. "시준이 형이 계략에 당해서 그런 거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 지나간 일은 다시 언급하지 말자."진아연은 화장실에서 나와 보온 통을 열고 숟가락으로 죽 한 그릇을 담았다.그녀는 죽그릇을 들고 침대 옆에 앉아 박시준에게 떠먹여 주려 했다."사실 처음에 나 몰래 머릿속 장치를 꺼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화가 나 미칠 것 같았어. 만나면 어떤 욕을 할까 고민까지 했다니까? 욕만으로 화가 안 풀릴 것 같으니 흠씬 두들겨 팰 생각까지 했었어." 진아연은 잔잔한 어투로 독한 말을 내뱉었다.박시준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그는 방금 그녀가 그들의 앞에서 그를 한바탕 욕하고 때릴 줄 알았다."살아만 있다면 다른 건 다 사소한 일에 불과한 거지." 그녀는 죽 한 숟가락을 떠서 그의 입가에 갖다 댔다.그는 황급히 입을 벌리고 그녀가 건네오는 죽을 받아먹었다.죽은 간이 잘 돼 있어서 느끼하지 않고 아주 맛있었다."아연 씨 말이 맞아요, 시준이 형이 죽었다면 미워하고 욕해도 돼요. 그땐 나도 같이 욕할 거예요. 하지만 시준이 형은 안 죽었어요.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 좋은 일이잖아요. 그러니 화낼 필요 없어요." 하준기가 대답했다."준기 씨, 시준 씨가 죽으면 누구 들으라고 욕을 해요?" 진아연은 어이없었다."아연아, 너 지금 욕 안하다가 퇴원하고 나면 마음이 바뀔걸?" 여소정이 말을 보탰다. "지금은 너무 허약해 보여, 나였어도 불쌍해서 훈계하지 못했을 거야."하준기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아내가 말을 너무 가리지 않고 한다고 생각했다."소정아, 오늘 출근해
최은서는 여소정의 제안이 너무 좋았지만실제 행동에 옮기려면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지금은 그들 두 사람만 이 계획을 알고 있지만 하루 빨리 다른 사람에게 알려 다 같이 움직여야 했다."오늘 밤에 돌아가서 성빈 씨에게 말해봐야겠어요.""은서 씨, 성빈 씨 의견을 왜 물어요? 두 사람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닌데 무조건 은서 씨 말을 듣게 해야죠." 여소정은 선배의 자세로 그녀에게 경험을 전수했다. "남자는 독하게 다뤄야 해요. 아연이와 시준 씨가 좋은 예잖아요. 박시준이 예전에는 기고만장하더니 지금은 아연이한테 꽉 잡혀 살잖아요."최은서가 놀렸다. "아연 씨가 떠받들고 사는 것 같은데요? 아연이가 면도도 해주고 죽도 먹여줬잖아요. 만약 성빈 씨가 병상에 저렇게 누워 있더라도 전 못할 것 같은 걸요. 손가락이 부러진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쿨럭, 성빈 씨가 안 도와주면 어떻게 하죠?" 여소정이 계획이 물거품 될까 걱정되었다."도와줄걸요? 이건 아연 씨랑 오빠를 도와주는 거잖아요. 두 사람 지난번 결혼식이 실패했으니 내가 아연 씨였다면 마음에 한으로 남았을 거예요. 그 한도 풀 수 있고 직접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아연 씨가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최은서는 진아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이 결혼식을 추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잘 마무리할 수 있으면 기쁘겠지만 망치면 문제가 될 거예요. 그러니 우리 둘만의 힘으론 안 돼요. 저녁에 돌아가서 성빈 씨랑 의논해 봐요. 저도 제 남편이랑 의논해 볼게요."최은서가 놀렸다. "소정 언니, 언니도 남편이랑 의논해요? 소정 언니가 다 결정하지 않고요?"여소정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허리를 곧게 펴고 말했다. "우리 집 일은 당연히 제가 결정하죠. 전 돌아가서 하준기에게 무슨 일을 시킬지 의논하려는 거예요.""하하! 사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언니 남편이 언니 말을 잘 듣긴 해요. 하준기 씨가 자기주장이 별로 없어 보이기도 하고 언니가 똑똑해서 주장이 강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요.""은서 씨 사람을
그녀는 물을 마시면서 휴대폰을 힐끗 확인했다.전날 밤, 그녀는 마치 의학상 심사위원회 회장에게 박시준에 관한 일들을 알렸고 그한테 직접 나서서 대외적으로 설명할 것을 부탁했지만오늘 아침 외출할 때까지 이에 대한 답장을 받지 못했다.전날 그한테 메시지를 보낼 때 B국은 낮이었다.아직도 연락이 없는걸 보니 박시준에 관한 문제를 회피하고 있음이 분명했다.이에 진아연은 심각한 표정으로 보온병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계속 메시지를 보냈다. "만약 오늘 내로 답장하지 않으면 제가 직접 나서서 이 모든 것이 전부 거짓이라고 공개 발표할 겁니다!"약 5분 후, 진아연의 휴대폰이 울렸고그녀는 바로 의자에서 일어나 박시준에게 입을 열었다. "잠깐 전화받으러 갈게요."박시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가 병실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지켜봤고진아연은 휴대폰을 들고 병실에서 나와 비상계단 쪽으로 향했다.그녀가 전화를 받자, 위원회 회장의 목소리가 먼저 전해졌다."아연 씨, 죄송합니다. 낮에 휴대폰을 떨어뜨려 액정을 바꾸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방금 수리가 끝나 확인이 늦었네요." 상대방의 핑계는 지금까지 참고 있던 진아연의 화를 식혔다. "저한테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어요. 솔직히 충격도 충격이지만, 믿기지 않네요.""저도 믿을 수 없습니다. 저는 박시준 씨가 세상을 떠날 거라 생각했는데, 깨어날 줄 몰랐어요." 진아연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지만, 비꼬는 말투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그리고 깨어났을 뿐만 아니라 정신도 멀쩡하고 생활에 문제없어요. 아마 며칠 후, 퇴원할 수 있을 거예요.""아, 진짜 정말 축하드립니다." 위원회 회장은 축하하면서 진아연의 말에 따르는 척했다. "저 대신 남편분께 축하의 마음을 전했으면 합니다.""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런 마음 없어도 충분히 잘 지내고 있으니 말이죠." 진아연은 그의 말투에서 한 톨의 진심도 느껴지지 않아 바로 거절했다. "그럼 이미 수상한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할 생각입니까?""아연 씨, 그건 제가 해결할 수
진아연은 그의 말에 망설였다.박시준은 자존심이 매우 강하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이어서 만약 이런 과거가 공개되면 다른 사람의 의논 대상이 될 테니이런 일들이 남한테 알려지기를 절대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진 아가씨, 부탁이지만 다시 한번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위원회의 회원들과 다시 논의해 보고 더 좋은 해결 방법이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만 이에 대해 저희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회장은 그녀의 마음이 동요되자 바로 태도를 바꿨다."네. 그럼 잘 생각해 보시고 다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진아연은 잠시 망설였지만,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만약 계속 똑같은 생각이라면 선생님의 명예든, 박시준 씨의 체면이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네. 진아연 씨의 결정 충분히 이해했습니다."진아연은 전화를 마친 후, 다시 병실로 돌아갔고전까지 침대에 누워있던 박시준은 어디로 갔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박시준 씨!" 진아연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고이에 병실 밖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도 놀라 병실로 들어왔다."진 아가씨, 무슨 일이죠?" 경호원은 긴장 가득한 모습을 보이며 진아연에게 물었다."박시준 씨는 어디 갔어요?""대표님께서 병실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경호원은 계속해 병실을 지켰고 박시준이 나오지 않았음을 확신했다.진아연이 이런저런 생각 하고 있을 때, 화장실 문이 열리면서 박시준이 모습을 드러냈고진아연과 경호원은 그를 보자 어안이 벙벙했다.박시준은 일주일 전에 수술을 마쳤지만, 이틀 전에 정신이 회복되어 다들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판단했었고 스스로 화장실에 갈 수 있을 거라 예상 못 했었다.하지만 그의 상태를 보아하니 곧 퇴원해도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았다."아연아, 방금 누구와 통화했어?" 이때 박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녀의 통화 시간이 길지 않았다면 박시준도 굳이 움직일 생각 없었고아침에 진아연이 아이들과 함께 병문안 오기 전까지, 무력함뿐만 아
박시준은 그녀의 말에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혹시 실망한 거야?"진아연은 그의 질문을 듣더니 얼굴에 미소를 보였다. "조금요. 그래도 아이들이 언젠가 저희를 떠날 거라는 걸 알고 있어요.""너무 슬픈 생각하지 마. 아이들은 우리를 떠나는 게 아니라 각자 세상의 사명을 완수하러 가는 거 뿐이니까.""나중에 라엘이가 떠날 때 지금 같은 생각이기 바라요." 박시준은 진아연의 말을 듣자 방금까지 침착하던 표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저녁, 최은서는 낮에 수거한 전리품들을 들고 성빈의 저택으로 돌아갔다.최은서는 지금 성빈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물론 처음에는 부끄러워 그의 집에 가지 않았지만, 성빈이 B국에 갈 때 그의 부모님께서 최은서에게 함께 지내자고 부탁했기 때문에 최은서는 어쩔 수 없이 이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최은서한테 성빈과의 결혼에서 제일 걱정인 부분은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아닌 아이 문제였다.왜냐면 지금까지 지내면서 성빈의 부모님은 그녀를 끔찍이 아꼈다.물론 최은서가 박시준의 친동생인 이유도 있었지만성빈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기 일에 몰두해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성빈의 부모님은 성빈이 최은서를 놓치면 나중에 절대 이런 젊고 이쁘고 어울리는 아내를 찾지 못할 거라 생각해최은서를 자기 딸처럼 아끼고 이뻐했다."은서야, 성빈이가 함께 가지 않았어? 무거워서 힘들지 않았고?" 성빈의 어머니는 최은서를 보자 급히 다가가 손에 들고 있는 물건들을 받았다."오늘 소정 언니와 쇼핑하러 갔어요. 소정 언니가 남편과 함께 오지 않아서 성빈 씨를 부르지 않았어요." 최은서는 어르신들에게 사준 물건을 꺼내면서 물었다. "그나저나 성빈 씨는요?""돌아왔지. 지금 위에 있을 거야! 네가 돌아오면 같이 밥 먹으려고 했는데, 밖에서 밥 먹을 거라고 해서 기다리지 않았단다.""전 소정 언니와 밖에서 먹었어요. 그럼 저 먼저 올라갈게요." 최은서는 성빈에게 여소정과의 계획을 빨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었고그녀가 위층으로
3년 후.A국, 공항.현이는 둘째 오빠와 함께 공항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3년이야 3년! 남자친구라는 사람 드디어 너 찾으러 오는 거야!" 박지성은 현이를 놀리며 얘기했다. "설마 너랑 헤어지러 오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3년 동안 못 만났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현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둘째 오빠, 저 지금 저주하시는 거예요? 비록 3년 동안 못 만났지만 매일매일 영상통화 하면서 서로 얼굴 봤거든요!"박지성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사이버 연애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현이: "어쨌든 이번에 A국에 와서 정착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이제부터 다시는 떨어져 지내는 일 없을 거예요."박지성: "네 남자친구도 자존심이 너무 강해. 이따 아버지 만나고 얘기 얼마 나누지도 않고 다시 티켓 사고 도망치는 거 아니야?"현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현이는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았다——서은준이 캐리어를 끌며 출구에서 나오고 있었다.현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은준을 향해 달려가 서은준의 품에 안겼다.이때 박지성은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진아연이 물었다. "아직 못 만났어? 설마 안 오는 건 아니지?"박지성: "엄마,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에요. 금방 나왔어요, 지금 현이랑 껴안고 있어요! 우리 이제 곧 집에 갈 거니까 엄마랑 아빠도 마음의 준비 잘 하고 계세요."박 씨 저택.진아연은 통화를 마친 후 박시준에게 전달했다.박시준은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자신의 용모를 검사했다.진아연은 화장실 문 앞에서 지켜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거울 그만 비춰요, 충분히 멋있어요!"박시준: "여보, 좀이따 은준이한테 좀 엄격해야 할까?"진아연: "현이가 그렇게 좋다는데, 은준이도 현이 위해서 A국에 있겠다고 한데다 엄격하게 해서 뭐하려구요? 굳이 두 아이의 기분을 망쳐야겠어요? 은준이도 지금 어엿한
서 어르신은 진지한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꺼낼 줄 예상치 못했기에 차마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냐하면 진지한에게 돈을 달라고 할 계획이긴 했지만 얼마나 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어쨌든 진지한은 엄청난 부자였고, 적게 달라고 하니 왠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였고 많이 달라고 하자니 거절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서 어르신은 한동안 망설인 후 진지한에게 말했다. "진 대표님 집이 A국에서 엄청난 부자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가 적당한지는 대표님께서 정하시죠! 저와 우리 아들에게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진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배유정은 그것을 보고 바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금액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가 적당할지 가늠이 안 가네요. 굳이 저희더러 정하라면 돌아가서 저희 시아버님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네요."서 어르신: "혹시 박시준 씨 말하는 겁니까?"배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저희 시아버님 저희 남편보다 더 까다로울 겁니다. 입장 바꿔서 아버님이라도 따님을 평범한 남자한테 시집 보내진 않을 거잖아요?"서 어르신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해요. 그럼 그냥 우리끼리 얘기하죠!"배유정: "지금부터 고민해 보셔도 괜찮아요. 저희 요 이틀 동안은 여기 있을 거거든요."서 어르신: "알겠어요! 그럼 우선 연락처 먼저 교환하죠! 나중에 일이 있을 때도 서로 연락하기 편하잖아요."배유정은 진지한을 흘끗 보았고 그제서야 진지한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서 어르신과 연락처를 교환했다.병원.현이는 서은준의 곁에서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했다.서은준은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시신을 옮겨달라고 했다.현이가 서은준에게 물었다. "장례식 간단하게 치를 생각이에요?"서은준: "엄마 켠에도 친척들이 별로 없어."현이: "네. 그럼 어머니 계실 묘지부터 골라야죠?"서은준: "엄마가 전에 유골을 엄마 고향 연못에 뿌려달라고 했어."현이: "..."서은준: "엄마는 내
진지한: "그래요 그럼! 근처에 가까운 카페라도 갈까요."서 어르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요! 사실 우리 집이 바로 병원 근처에 있는데 한 번 가보실래요? 현이도 우리 집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었고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사이가 아주 좋았거든요."진지한은 배유정을 보며 말했다. "그럼 한 번 가볼래?"배유정: "좋아요!"서 어르신은 즉시 진지한과 배유정을 자신의 차로 안내하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서 어르신의 집에 도착한 후 서 어르신은 즉시 하인들을 분부하여 과일과 디저트를 올리라고 했다.서 어르신은 집사를 가리키며 진지한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집 집사입니다. 예전에 현이 할머니도 집사가 뽑고 집에 들였죠."진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서 어르신은 집사에게 말했다. "이 분은 수수 친 오빠야, 유명한 대기업의 대표 진지한 씨."집사: "진 대표님, 안녕하세요! 수수 정말 괜찮은 아이였어요, 그때 우리 모두 수수를 많이 좋아했답니다. 전에 수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많이 속상했는데 사실이 아니라니 참 다행이에요! 수수는 정말 철도 들고 씩씩한 아이였어요, 제가 봤던 아이들 중 가장 씩씩한 아이에요. 수수가 잘 지내고 있다니 정말 기쁘네요."진지한: "전에 우리 동생 잘 챙겨줘서 고마웠어요."집사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별 말씀을요! 수수는 정말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어요. 매번 적극적으로 맡아서 일도 잘하고 정말 괜찮은 아이에요. 우리는 그때부터 수수가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나면 꼭 잘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진지한은 집사의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서 어르신이 집사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내려가."집사는 즉시 물러났다.서 어르신은 진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현이가 우리 은준이랑 사이가 좋았다는 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현이를 은준이 곁에 안배했거든요, 그때 두 아이 나이가 비슷했기도 했고 서로 얘기도 잘 통할 거
현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빠, 은준 씨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저 요 며칠 동안 언니 오빠랑 놀러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진지한: "괜찮아. 은준이 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우리도 놀 기분 아니야. 은준이 어머님 장례식 참석하고 돌아갈게."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여긴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지?" 진지한을 물었다.서은준은 현이의 남자친구자 현이 또래기도 하니 현이의 오빠로서 왠지 모르게 서은준을 도와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현이: "국내랑 비슷해요. 돈 많은 사람들은 거창하게 치르고 보통 사람들은 그냥 간단하게 치르곤 해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장례식은 따로 안 치르고 직접 무덤에 묻기도 하구요."진지한: "좀 거하게 치르려면 어떻게 해야 해?"현이: "오빠, 은준 씨 어머님 장례식 치르는 거 도와줄려고요? 은준 씨 친척들도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거하게 안 치러도 돼요."진지한: "그래. 그럼 은준이랑 어떻게 할 건지 상의해 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현이: "고마워요, 오빠. 근데 안 도와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장례식 치르는데 돈 많이 들진 않을 거예요. 은준 씨도 저희가 자기 어머님 장례식 도와주겠다고 하면 받지 않을 거예요."진지한: "그래 그럼! 가서 은준이 옆에 있어줘!"현이: "오빠, 그럼 오빠랑 새언니는...""우리 걱정은 안해도 되. 나 너희 새언니랑 밖에 나가서 좀 걸을게,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알았어요, 오빠."현이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병동을 나섰다.서 어르신은 병원 건물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지한과 배유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진 대표님, 저희 아들이 저한테 깊은 오해가 있어 현이까지 절 싫어하나 보네요. 사실 저 예전에 현이한테 정말 잘해줬어요." 서 어르신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 현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저희 집에서 일했었거든요. 그때는 현이를 키우던 할머니와 같이 우리 집 주방에
전화를 끊은 후 서은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현이는 서은준의 곁에 서서 물었다. "은준 씨, 왜 그래요?"서은준: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대. 미안하지만 당신 혼자 형님이랑 시간 보내야 될 것 같아! 난 병원으로 가야 될 것 같아."현이: "같이 가요! 어머님 방금까지 멀쩡하셨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두 사람은 진지한과 배유정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차를 잡으러 길가로 향했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두 사람이 급하게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당황스러웠다.배유정: "여보, 우리도 병원에 가봐요! 은준 씨 어머님이 돌아가셨나봐요."진지한: "그래."두 사람은 택시 한 대를 세우고 서은준이 탄 차를 쫓았다.병원.빠른 속도로 병원에 도착한 서은준은 함께 서있는 의사 선생님과 서 어르신을 보았다.서 어르신은 아첨하는 말투로 말했다. "은준아, 원래는 너희 엄마 보러 병원에 온 건데 내가 왔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 너무 안타깝구나!"서은준: "당신이 오기 전에 사망한 거 확실해요? 저도 오늘 왔었어요, 제가 왔을 땐 분명 아주 멀쩡했다고요!"서 어르신: "물론 다 사실이지! 못 믿겠으면 의사한테 물어봐!""의사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요!" 서은준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간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우리 엄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저 사람 오기 전에 돌아가신 거예요, 아니면 오고 나서 돌아가신 거예요?"겁에 질려 있는 간호인들 부들부들 떨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서 어르신은 분노에 가득 찬 어조로 간호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묻고 있잖아요. 말해 보세요! 제가 여기 왔을 때 당신 어디 있는지 그림자도 못 봤는데 혹시 밖에서 놀고 있던 거 아니에요?"간호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오셨을 때 물 받으러 잠깐 병실에 없었어요. 아버님께서 언제 오셨는지 어머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이번 달 비용은 받지 않을게요!"간호인은 말
서 어르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당신 나 지금 무시하는 거야? 우리 서씨 집안이 지금 좀 상황이 안 좋긴 해도 T국에서 여전히 명망있는 가족 기업이라고! 은준이가 철이 없다고 당신까지 이렇게 무식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은준이 뒤에 내가 없었다면 박씨 집안에서 우리 은준이 거들떠 보기나 할 것 같아?"서은준의 어머니: "그 입 다무세요! 박씨 집안에는 당신처럼 속좁은 사람 없어요! 현이 가족들은 우리 은준이를 무시하지 않는다고요! 그니까 괜히 쓸데없이 그분들 귀찮게 하지 마세요!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괜한 짓 하지 말라고요!"서 어르신: "정말이야? 박씨 집안에서 정말 은준이를 반대 안 해? 어떻게 반대 안 할 수가 있지? 설마 은준이더러 A국에 가서 데릴사위라도 하라는 건가?"서은준의 어머니: "그러든 말든 당신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당신 여태껏 은준이 돌본 적 없잖아요. 이젠 은준이도 독립했으니 당신 도움 더 필요 없어요! 만약에 은준이 여자친구가 현이가 아니었다면, 현이가 박씨 집안 딸이 아니었다면 당신 이렇게 부지런히 저 찾아오지 않았을 거잖아요... 당신이 어떤 마음 품고 있는지 제가 모를 것 같아서 그래요?"서 어르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은준이 18살 때 당신이 내 곁으로 보냈잖아? 당신은 못 키우겠다고 나더러 키우라고 했잖아? 내 도움이 없었다면 은준이 저렇게 유학 다녀올 수 있었을 것 같아? 만약에 유학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능력있을 것 같아? 지금 저렇게 사업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덕분이라고!"서은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올라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은준이더러 대학 등록금 다 갚아주라고 할게요!"서 어르신: "이건 대학 등록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은준이 내 아들이야, 엄연한 내 피가 흐르고 있는 내 아들이라고!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은준이가 나중에 잘 지내던 못 지내던, 이 애비 떨쳐낼 생각은 꿈도 꾸지
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 지금은 안 가요. 저 신경쓰지 말고 당신 할 거 하면 되요."서은준: "여기 있어봤자 너한테 시간낭비일 뿐이야."현이: "저 그동안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회사생활도 열심히 했다고요, 잠깐 쉬겠다는데 뭐가 어때서요."잠시 후 진지한과 배유정은 호텔로 돌아왔고 네 사람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서은준의 어머니는 현이의 오빠와 새언니가 오는 것을 몰랐기에 그들이 온 것을 보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서은준의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으나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었다.현이는 전동으로 서은준 어머니의 병실 침대머리를 올려 주었다. "어머님, 저희 오빠랑 새언니 신혼여행 겸 여기 놀러 왔다 어머님이랑 은준 씨 보러 여기 들른 거예요."서은준의 어머니: "아이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현이를 알게 된 건 정말 우리 아들의 행운이에요..."배유정: "어머님,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은준 씨도 얼마나 훌륭한데요. 그렇지 않으면 현이도 은준이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서은준의 어머니: "듣기론 현이 집이 엄청난 부자라던데... 혹시 우리 은준이 반대하는 건 아니죠?"배유정: "어머님, 저희도 사람 됨됨이와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은준이랑 현이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두 아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라면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 거예요."서은준은 어머니: "네... 정말 고마워요! 유일하게 걱정되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게 바로 제 아들이에요. 현이네 집에서 우리 아들 너무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우리 아들이 자존심이 강하거든요..."진지한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서은준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를 포함한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어머님 아들 무시하는 일 없을 겁니다."현이는 오빠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깊은 감동을 받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서은준의 손을 꼭 잡았다.진지한은 병실에서 잠시 머물다 나갔다.현
현이는 긴장감에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서은준과 큰 오빠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얘기들을 다 꺼냈고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큰 오빠도 화를 내지 않았고 서은준 역시 화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사실상 이미 그녀의 걱정과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였다.하지만 현이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은준 씨, 좀이따 저희 남편이랑 병원에 가서 어머님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식사를 마친 후 배유정이 서은준에게 물었다.서은준: "좋아요."현이: "어머님께 미리 말씀 드릴까요?"서은준: "괜찮아. 이따 가서 직접 소개해 드리면 돼."서은준 어머니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고 휴대폰을 안쓴지 이미 오래 되었다.보통 간호인이 매일매일 서은준에게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보고하곤 하였다.배유정: "사업도 하느라 어머님도 챙기느라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무너졌을 텐데."서은준: "현이의 예전 생활은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어요. 현이도 무너지지 않고 씩씩하게 잘 버텼는데 저도 잘 이겨낼 겁니다."배유정: "하하! 둘 다 씩씩한 사람이라 좋네요. 지금이든 나중이든 어떠한 곤난도 두 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할 거예요."현이: "언니 정말 너무 좋아요! 언니는 정말 제가 봤던 사람들 중 저희 엄마 제외한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에요."배유정은 현이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졌다.진지한: "너희 언니가 이 말 들으면 서운했을 거야."현이: "언니는 당연히 다르죠! 제 마음속 언니는 부드러운 성격이 아닌 용감하고 씩씩한 슈퍼 히어로같은 존재니까요."배유정: "라엘이 성격에 슈퍼 히어로가 되는 걸 더 좋아할 거예요."현이: "아무튼 언니는 절대 저와 이런 걸로 다투지 않을 거예요."배유정: "당연하지. 다들 배 부르게 먹었어? 다 먹었으면 오빠한테 계산하라고 할게."이 말을 들은 진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때 서은준도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계산할게요."현이는 애원하듯
현이가 말을 마친 후 서은준도 입을 열었다. "우선 열심히 일하고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이 될 때 다시 책임지고 싶습니다."진지한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사업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 그럼 사업이 실패하면 어떡하려고? 혹은 계속 미지근하게 아무런 진전도 없으면?"서은준: "형님이 말하신 것처럼 사업에 실패하거나 아무런 성과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현이 고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진지한: "자기 분수는 잘 알고있네."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큰 오빠, 은준 씨 사업이 실패하거나 아무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다고 해도 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돈 때문에 은준 씨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배유정은 다시 한 번 진지한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의 말이 심했다고 일깨워 주었다.다른 사람에게 차갑고 날카롭게 공격적일 순 있어도 현이에게 이렇게 공격적이진 못했다.현이 역시 자신의 말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느꼈는지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큰 오빠, 전 그냥 돈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에요. 그리고 저희 집 이미 충분히 돈 많잖아요. 아무리 돈 많은 상대를 찾는다고 해도 저희 집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찾기 어려울 거예요. 어차피 우리 집보다 돈이 많은 게 아니라면 돈이 많은 사람을 찾든 좀 적은 사람을 찾든 다 똑같잖아요."배유정: "현이 말이 맞아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 됨됨이고 두 사람의 감정이에요. 만약에 상대방이 서은준 씨보다 돈이 더 많지만 현이한테 잘하지 않는다면 그런 남자에게 현이를 억지로 시집 보내는 건 아무 의미 없잖아요."진지한: "우리 집 조건만 봐도 현이한테 잘해주지 않을 남자는 없어."배유정은 할 말을 잃었다.진지한이 말한 것 역시 사실이였기 때문이다.현이가 누구에게 시집을 가든 함부로 현이를 건들지 못 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친정이 재력가인 힘이었다.현이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제게 잘해주는 이유가 저희 집안 때문이라면 서은준 씨는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