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가 기억하기에, 지금까지의 통화 내용 이후로 별다른 실질적인 내용은 없었다.——아연아, 내게 잠시 시간을 줘. 늦어도 일주일 안에 돌아올게. 우리 돌아온 뒤에 이야기하자.그가 말을 마친 후 전화기 너머 시끌시끌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어서 그와 성빈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성빈이 그에게 진아연이 Y국으로 가는 걸 반대하는 것인지 물었다.그러고는 성빈이 Y국에는 자기 혼자 가도 된다며 그를 위로했다.하지만 박시준은 현이는 자기 딸이니, 본인이 가야 한다고 대답했다.이 통화 녹음만 들어서는, 똑같은 상황이 와도 그는 여전히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진아연은 통화상에서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전혀 없었다!그는 이 녹음 파일을 성빈에게도 들려주고 싶었다.그는 아무 이유 없이 진아연을 탓한 것이 아니었다.오해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그런데 무슨 근거로 그가 매몰차고 인정따윈 없는 사람이라고 몰아붙인단 말인가?그는 양손을 이마에 얹고는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면 좋을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B국.진아연이 한이의 일정에 맞춰 잠에서 깼다.그녀가 무사히 박사 과정에 합격할 수 있다면, 앞으로 한이와 함께 등하교를 할 수 있을 것이다.아침 식사를 하던 중, 마이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아연아, 나 B국에 도착했어. 난 잘 지내고 있어.""다행이다. 우리 집은 너무 오래 비워둬서, 아마 지금쯤 엉망일 것 같아. 지운 씨만 괜찮다면, 지운 씨네에서 지내면 어때?""쳇! 안 괜찮을게 어딨어! 난 지운 씨가 박시준의 앞잡이 노릇을 할 때도 참고 봐줬는데, 지운 씨가 무슨 낯으로 나를 내치겠어?""말이 너무 심하잖아, 지운 씨한테 한 대 얻어맞으면 어쩌려고 그래.""안 그래도 지금 내 옆에 있어! 그냥 가만히 듣고 있는데?" 마이크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진아연이 물었다: "라엘이는 어떻게 만나고 올 계획이야?""주말에 라엘이랑 밖에서 만나려고.""그럼, 지성이는 못
박시준이 이제 와서 두 사람에게 이번 일에 관해 물어볼 것이라고 진아연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그녀가 아는 것은 당시 전화로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걸 그에게 분명히 말했다는 사실 뿐이었다. 하지만 그날 박시준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이제 와서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두 사람에게 물어보다니.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인 걸까.하지만 이 모든 건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그녀의 눈은 이미 완전히 나았다.그러니 이제 와서 그가 정말로 모르고 있었는지,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인지 추궁할 필요도 없었다.게다가 그가 정말로 그녀의 병을 걱정하는 거라면, 그녀에게 곧바로 전화해서 물어보면 될 일 아닌가?지난번 라엘이가 일부러 시험을 망친 일로 그에게 전화하기 위해, 그녀는 박시준의 번호를 차단 해제했다.그가 그녀에게 전화했다면, 그녀가 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전화하지 않았다."준기 씨, 제가 그 사람이랑 이혼한 지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가요. 당시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었다고 해도, 지금은 이미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우린 다시 돌아갈 수 없어요." 그녀는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하준기에게 말했다. "거긴 지금 한밤중이잖아요. 일찍 쉬어요!"하준기는 안타까운 마음이 컸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진아연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두 사람이 이혼한 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데다, 진아연의 회사까지 처분해버린 마당에 이제 와서 상황을 좋게 바꾸기는 어려워 보였다.올해 첫눈이 내리던 날, 위정과 시은의 딸이 태어났다.이 아이는 위정과 많이 닮았다.아기가 무사히 태어나자, 누구보다 위정의 부모님이 특히 기뻐했다.이 아이는 위정과 시은의 유일한 아이이자, 두 사람의 유일한 손녀가 될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시은아, 아이 이름은 네가 지어 줘!" 위정이 말했다.시은이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 "아냐, 위정 씨가 지어 줘! 내가 지어준 이름이 별로면 어떡해.""네가 지은 이름이
"정했어. 아이 이름은 위소소야. 크고 작다 할 때 ‘작을 소’ 자를 썼지. 시은 씨가 지었어.""너무 예쁜 이름이네요. 소소는 누구를 닮았어요?"“나를 닮았어. 우리 어머니 말씀으론, 내 어릴 적 모습과 똑 닮았대.” 위정이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도 나랑 많이 닮은 것 같아.”위정의 말이 끝나자, 병실 안에서 기분 좋은 시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오빠, 우리 딸 너무 귀엽지. 내가 더 귀여운 이름을 지어줬어. 위소소라고 부르려고. 어떤 것 같아?" 시은이 박시준에게 팔짱을 끼며 한껏 들뜬 모습으로 물었다.위정은 그런 시은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진아연에게 난감한 듯 말을 이었다: "박시준 씨가 왔어. 넌 곤란하면 오지 않아도 괜찮아. 여기 오면 박시준 씨와 무조건 한번은 마주칠 거야.""알았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우리 소소를 보러 갈게요."통화는 여기서 끝이 났다.위정이 베란다에서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위정의 아버지가 눈치 없이 아들을 향해 물었다: "아연 씨는 올 수 있다니?"위정이 고개를 저었다.위정의 아버지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바쁘대? 해외에 있으면서 무슨 일로 그렇게 바쁜 거야?"눈치 없이 진아연에 관한 질문을 계속해서 늘어놓는 남편을 본 위정의 어머니가 곧바로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연 씨가 오지 못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요. 아연 씨 사생활인데.” 그들의 대화를 듣고 박시준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때문에 오지 않겠다는 거죠?"지금 그걸 뻔히 아는 사람이 일부러 묻는 건가?위정의 부모님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위정 역시 진아연이 오지 않는 이유는 물론 박사 과정 때문도 있지만, 아무래도 박시준과 마주치지 않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이유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위정은 박사 과정을 마쳤기 때문에, 박사 과정 중에는 방학도 있고, 휴가를 낼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병실 안의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박시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걸 본 위정의 어머니가 곧바로 위정과 시은에게 말했다: “아이는 우리가 보고 있을 테니, 시준이 데리고 식사라도 하고 오지 그러니!”그녀의 말에, 위정과 시은이 곧바로 박시준을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세 사람이 병실을 떠나자마자, 위정의 어머니가 남편을 나무랐다: "오늘 도대체 왜 그래요? 생각은 집에 두고 왔어요? 왜 이렇게 할 말, 못 할 말 구분을 못해요? 시준이가 온 걸 보고도 위정이한테 아연 씨가 올 수 있는지를 물어요? 그건 그렇다 치고, 갑자기 시준이한테 현이 얘기는 또 왜 꺼내요? 세상에... 내가 정말 당신 때문에 속 터져 죽겠어요!"위정의 어머니가 남편의 품에서 손녀를 안아 받으며 말했다.위정의 아버지 역시 방금 자기 행동이 상당히 이상했다는 걸 깨달았다.사실 조금이 아니라, 매우 이상했다.그는 평소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그게... 너무 기쁘고 들뜬 마음에 그랬나 봐. 그래서 내 자신이 주체가 안 되었던 것 같아." 위정의 아버지는 이 말을 하면서도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난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우리 아들은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낳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결혼해 아내도 있고 말이야. 그런 데다 이렇게 예쁘고 건강한 아이까지 우리 앞에 나타나다니. 정말 꿈만 같아!""그러니 그렇게 겁도 없이 행동했겠죠! 이게 다 꿈인 줄 알고 그랬어요? 시준이 표정은 보이지도 않았어요?" 위정의 어머니는 아까 박시준의 표정을 떠올리자 덜컥 겁이 났다."봤지! 그래서 지금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는걸! 그래도 시준이가 시은이를 무척 아끼니, 시은이를 봐서라도 날 용서해 줄 거야.""이보세요, 아저씨. 현이는 지금 반년째 행방불명이에요. 괜히 또 그 이야기를 꺼내서 상처를 건들지 말라고요." 위정의 어머니가 신신당부했다. "현이가 아직 살아있다면, 우리 아들이 몰랐을 리 없잖아요. 여태 아무 소식 없는 걸 보면, 아직 찾지 못한 게 분명해요. 그 어린 것이 부모도 없는 곳에서 얼마나 힘
라엘이는 한 달 반 동안 놀고 오겠다고 말했고, 박시준은 길어야 보름만 허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딸에게 소리치지 않고, 자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외출 시간을 조곤조곤 말했다. 그러자 딸은 큰 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박시준은 시은을 위정의 집까지 데려다준 다음,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도착했을 때, 눈은 이미 그친 뒤였다.마당 안에 쌓인 은백색의 눈이 칠흑 같은 밤에 밝은 빛을 드리웠다.——진아연은 눈사람을 만드는 걸 아주 좋아했다. 그녀가 있었다면 분명 그를 마당으로 끌고 나와 눈사람을 만들자고 했을 것이다.걷잡을 수 없이 갑자기 튀어나와 버린 생각에, 그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그는 별장으로 들어가 현관에 서서 슬리퍼로 갈아신었다.이모님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대표님, 라엘이는 이미 떠났어요. 한 시간 전에 세연 씨가 와서 데려갔어요.""경호원도 함께갔나요?""네, 맞아요." 이모님이 대답했다. "라엘 아가씨가 보름 동안 나가 있는 사이에 더 삐뚤어지기라도 할까 봐 너무 걱정이에요."라엘이는 목적지를 말하지 않고 떠났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라엘이가 진아연을 찾아 B국으로 가려고 한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박시준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앞당겨 걱정하고 싶지 않았다."지성이는요?" 그가 신발을 갈아신은 뒤 거실로 향했다."지성이는 잠들었어요. 라엘이와 세연 씨가 지성 도련님도 함께 데려가려던 걸 제가 말렸어요." 이모님이 말을 대답했다. "겨울이라 날이 많이 춥잖아요. 더구나 B국은 더 추울 텐데, 만에 하나 지성이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죠."박시준이 아이 방으로 걸어가 아들을 보았다."대표님, 한이 만나러 B국에 다녀오시는 게 어때요?" 이모님이 그의 뒤에 따라와 말했다. "한이가 먼저 대표님을 찾아오진 않을 거예요. 그러니 대표님께서 먼저 한이를 가시는 게 맞겠죠. 상황이 어떻든 한이는 대표님의 아들이기도 하고요...""한이는 저를 만나주지 않을 거예요." 박시준은 누구보다 자기 상황을
그녀는 정말로 생각해본 적 없었다.처음 박사 과정을 생각했던 건, 그저 한이와 등하교를 함께하기 위해서였다.지난 2년 동안 그녀는 아주 성실하면서도 피곤한 나날을 보냈다.그래서 그녀는 당분간은 좀 쉬고 싶었다."아연 언니, 언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2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은 유일한 사람이야! 정말 부럽다!" 누군가 잔을 들어 그녀에게 건배를 제안했다.그녀가 곧바로 잔을 들어 상대방과 잔을 부딫쳤다."너희들도 무사히 졸업하길 기도할게.""고마워!"…여름밤의 야외 레스토랑.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술 몇잔을 더하니, 술을 마시지 않고도 분위기에 절로 취하는 듯했다.밤 10시. 마이크가 차를 몰아 진아연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그녀는, 술 반병에 술주정을 부리기 시작했다."마이크... 해 떴어? 오늘... 아주 중요한 일이 있단 말이야..." 그녀는 고개를 들어 눈을 가늘게 뜬 채 물었다. 오늘이 몇월 몇일인지, 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되지 않은 지 오래였다."너희 지도 교수님 말씀으론 넌 겨우 반병만 마셨다고 하셨는데... 주량이 왜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지? 내 기억엔 예전 같았으면 한 병은 마셔야 이렇게 되었던 것 같은데." 마이크가 에어컨을 켜자, 차가운 공기가 순식간에 차 안을 가득 메웠다.진아연이 거칠게 호흡했다. 그녀가 손을 뻗어 연신 마른 세수하며, 술에서 깨려고 애썼다."나 안 취했어... 아직 더 마실 수도 있다구..." 그녀가 중얼거렸다. "술이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 예전엔 왜 몰랐지? 나 지금 너무 기분 좋아... 윽..."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그녀의 소리를 듣자마자, 마이크가 곧바로 길가에 차를 세웠다.차가 멈춰 서자마자 진아연은 곧바로 차 문을 열고 튀어나가 토하기 시작했다.마이크가 그녀를 따라 차에서 내려 물과 티슈를 가지고 그녀에게 갔다."이제 앞으로 술 마시지 마! 지금 네 꼴 좀 봐... 내가 찍어서 보내줄 테니 나중에 술 깨면 봐." 마이크가 휴대폰을 꺼내 녹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지만 한이는 걱정되지 않았다.한이가 방으로 돌아간 뒤, 마이크는 진아연에게 매실차를 마시고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진아연은 매실차를 마신 뒤, 훨씬 속이 편해졌다.그녀는 침대에 누웠고 몸이 물에 젖은 솜마냥 축 처져 움직일 수 없었다.됐어. 오늘은 그냥 씻지 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이야기하자.그렇게 생각하고 슬리퍼를 벗고 눈을 감았다.침대 옆 스탠드는 켜져 있었고 손을 뻗어 불을 끄고 싶었지만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 눈을 감는 순간 바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그냥 이대로 자자!그녀는 속으로 내내 이 문장을 말하며 잠에 들었다.한밤중에 그녀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 잠시 잠에서 깨어났다.그녀는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그리고 잠시 뒤, 침대로 돌아와 다시 누웠지만 약간의 편두통 때문에 눈을 다시 제대로 뜰 수 조차 없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뒤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오래 잠든 줄 알았지만 고작 새벽 2시 밖에 되지 않았다.휴대폰 알림바에 읽지 않은 메시지가 있어 무심코 열어보니 뉴스 하나가 보였다.뉴스의 헤드라인은 Neti 그룹이 메일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것이었다.Neti 메일은 그녀 역시 몇 년 전 자주 사용했던 메일 서비스였다. 하지만 서비스가 곧 종료가 될 거라니 그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이 일은 진아연에게 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그녀는 자신이 설립했던 회사가 떠올랐다. 열정 가득 했던 그 순간, 그녀는 오래오래 회사를 경영할 줄 알았는데. 결과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그녀는 Neti 그룹에서 공식 발표한 내용을 다시 살펴보았다.존경하는 Neti 메일 고객님, 사업 조정으로 인해 Neti 메일함이 일주일 뒤 서비스가 중단됨을 알려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고개님들의 Neti 메일에 있는 중요한 정보를 위해 1주일 간 백업 기간을 드립니다. 만약 로그인 정보를 잊어버리셨다면 여기를 탭하여 확인하실 수 있습
그 말을 듣자 마이크에 들린 휴대폰을 쾅-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트렸다."아... 제길!" 마이크는 재빨리 떨어진 휴대폰을 집어 들었고, 화면 속 패배라는 글자를 보며 욕지기가 올라왔다.그는 휴대폰을 소파 위로 던진 뒤 진아연을 바라보았다."정말로 돌아가고 싶은 거야? 갑자기 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마이크가 이렇게 놀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지난 2년 동안 그녀의 친구들이 모두 돌아오라고 했지만 그녀는 절대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런데 갑자기 지금 그녀는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던 것이다."매년 여름방학에만 라엘이를 볼 수 있었으니깐... 그리고 지성이도. 3년 동안 아이들을 보지 못했어. 영상 통화는 이제 지겨워." 진아연은 말을 하면서 숨이 턱하고 막혀오는 것 같았다. "돌아가면... 지성이를 꼭 만날 수 있을 거야.""아! 아이 때문이라는 거지?! 돌아가는 건 가는 거지만. 박시준이 지성이를 안 보여주면 어떻게 하려고? 박시준은 지금 너랑 지성이랑 만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은데. 그 역시 3년 동안 한이를 보지 못했으니깐." 마이크는 진아연이 다시 한번 박시준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진아연은 그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했다."박시준 씨가 내게 아이들을 보지 못하게 할 권리는 없어. 이혼할 때도 그런 말은 없었으니깐."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자레인지가 띵- 하고 울렸다.그녀는 전자레인지 앞으로 가 샌드위치를 꺼냈다."그래서 네 말은... 돌아가서 박시준 씨랑 먼저 만나보겠다는 거지?" 마이크는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니깐 지금... 네가 그렇게 증오하던 남자를 다시 보겠다? 그가 네게 화를 내면 어떻게 하려고?"진아연은 샌드위치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그를 찾으러 간다고 하진 않았어." 진아연은 마이크 옆에 앉아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라엘이를 매년 여름방학마다 이곳에 보내니깐... 내가 직접 간다면 지성이도 보여주지 않을까 해서.""함부로 그 사람에 대해서 추측하지마.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