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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차수현은 맑은 눈빛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비록 이 계약서가 마음이 들지않지만 온은수가 자신의 몸을 함부로 대하는게 싫었다..

온은수는 말문이 턱 막혔다. 그는 한참 동안 침묵한 후 눈을 가늘게 뜨고 대답했다.

“그건 걱정 마. 너 같은 여자는 나한테 애원해도 만지고 싶지 않으니까.”

차수현은 그의 거친 표현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꼭 그러길 바랄게요.”

그녀는 방금 한 말을 열심히 계약서에 적고 사인을 마친 후 온은수에게 건넸다.

온은수는 그녀의 서명을 힐긋 쳐다봤는데 돈만 밝히는 이미지와는 달리 글씨체가 생각보다 단정했다.

수려하고 깔끔한 필체에서 열심히 글씨 연습을 한 흔적이 묻어났다.

온은수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녀의 서명 옆에 사인을 마친 후 계약서를 내려놨다.

그는 블랙카드 한 장 그녀에게 건넸다.

“이 카드 사용해. 한도 제한 없어.”

차수현은 이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담담하게 카드를 건네 받았다.

“걱정 말아요. 돈만 들어오면 은수 씨 요구대로 전부 다 맞춰드릴게요.”

온은수는 코웃음 치고 더는 그녀를 쳐다 보지 않았다.

그는 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새벽에 깨어나 한바탕 소란을 피웠는데 날이 밝아오기까지 아직 몇 시간 더 있었다.

줄곧 병상에 누워있다가 이제 막 정신이 든 온은수는 피곤함이 몰려와 그녀에게 말했다.

“난 이만 쉬어야겠어. 어디서 잘지는 알아서 결정해. 가족들의 의심만 안 사면 돼.”

말을 마친 그는 서슴없이 방안의 큰 침대를 차지하고 털썩 누웠다.

차수현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돈을 받는 처지라 그가 갑이라는 걸 인정한 그녀였다.

방안에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불이 꺼지고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그녀가 잠잘 곳을 구해달라고 부탁할 줄 알았는데 아무 말도 없었다. 온은수는 살며시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수현은 어디서 이부자리를 찾아냈는지 그새 바닥에 깔았다.

그녀는 자리를 아주 조금 차지한 채 가녀린 몸을 움츠리고 누웠다. 너무 조용해 있는듯 없는듯 방안은 고요했다.

온은수는 살짝 의아했다. 그녀가 스킨십을 원하지 않은건 그를 유혹하기 위한 것인 줄 알았는데 정말 진심인 듯했다.

그녀의 행동이 그를 점점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온은수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피식 웃었다.

그녀가 무슨 속셈인지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그날 그 여자만 찾으면 차수현은 떨어져 나갈 테니까.

……

그렇게 아무 일 없이 하룻밤이 지났다.

다음 날 아침.

눈 부신 햇살이 방안에 쏟아졌다. 온은수가 비스듬히 눈을 떴을 때 차수현은 멀지 않은 곳에 앉아 독서를 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일어난 지 한참이 지났다. 호텔에서 일할 때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 일찍 첫차 타고 병원에 가서 엄마한테 아침밥을 챙겨드렸었다.

다만 이젠 온씨 집안에 있으니 혹여나 다른 사람들이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할까 봐 잠자코 책을 읽었다.

몇 해 동안 그녀는 엄마의 병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겨를이 없었다. 하여 그녀는 짬짬이 관련 서적을 읽으며 엄마의 병이 다 나은 후 다시 꿈을 이루기로 했다.

그녀는 열심히 책을 읽었고 온은수는 그런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아침 햇살이 그녀의 몸에 드리워 한결 부드럽고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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