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의 사람들은 미처 임미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또 하나의 흉보를 맞이했다.차수현도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 그 사람들과 함께 비틀거리며 달려갔다.다행히 온은수가 배치한 사람은 비록 매우 슬프고 이 사실을 믿기 힘들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사명을 기억하고 차수현을 부축하며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보호했다.일행이 공장 앞에 도착하자, 활활 타오르는 불길만 보였고, 자욱한 검은 연기는 온 하늘을 칠흑같이 어두컴컴하게 물들였다.차수현은 이 모든 것을 보고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온은수가 이미 불 속에 타 죽었거나 폭사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수백 수천 번이나 이 남자를 미워했지만, 그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을 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첫 번째 생각은 그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온은수, 당신은 죽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내 뱃속의 아이가 당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을 들어야 한다고 했잖아요…….”차수현은 중얼중얼 말하면서 말투에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띠었다.그녀는 온은수를 찾으러 들어가려 했지만 사람에게 붙잡혔다.“아갔;, 저희가 도련님을 찾으러 들어갈 거예요. 아가씨는 안의 연기를 들이킬 수 없어요. 아이에게 영향을 줄 거예요.”“나더러 이렇게 지켜보고 있으라고요?” 차수현은 멍하니 말했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쓸모가 없다고 느꼈다. 이럴 때 그들이 일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도련님은 아가씨의 뱃속의 아이의 안전을 가장 중시했으니 만약 아가씨에게 무슨 일 생긴다면 저희도 죽음으로 사죄할 거예요.”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막자, 차수현은 한쪽에 서서 그들이 들어가서 기적을 찾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은 여기에 있어!”공장 앞은 잡초로 뒤덮여 사람들의 시야를 가렸기 때문에, 그들은 한참을 찾고서야 그곳에 누워 이미 혼수상태에 빠진 온은수를 발견했다.온은수를 찾은 사람은 그에게 아직 호
십여 분의 노정은 차수현에게 있어 마치 한 세기가 지난 것 같았다.마침내 병원에 도착하자 문앞에는 이미 들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문이 열리자 온은수는 들것에 실려 직접 수술실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았다.차수현도 따라가서 수술실 입구를 지켰다.……수술실 밖, 어르신도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다만, 온은수의 상황을 물어볼 겨를도 없이 임미자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그는 벼락을 맞은 듯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어르신은 자신의 귀를 믿지 않으려 했지만, 임미자의 시체를 보러 갈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어르신은 망연히 따라갔고, 임미자의 산산조각난 시체를 보고 그는 마침내 믿었다. 줄곧 얼굴에 감정을 나타내지 않는 남자가 목놓아 울었고, 원래 반쯤 하얀 머리카락은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그는 하루 만에 자신과 삐진 아내가 아무런 생기도 없는 시체가 되어 영원히 자신에게서 떠날 줄은 도무지 생각하지 못했다.“사모님은 유담 도련님을 구하시기 위해…….”어떤 사람이 사건의 경위를 어르신에게 말했고, 모든 것을 알게 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가슴은 아파서 숨을 쉴 수 없었지만, 그는 생명의 마지막 순간, 임미자는 틀림없이 만족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충분했다.“미자야, 안심해라. 은수의 아이는 반드시 건강하고 평안하게 자랄 거야. 당신이 한 모든 것은, 그들이 줄곧 기억할 거야…….”……수술실 밖에서 차수현은 오랫동안 기다렸고, 그녀가 자신의 몸이 무감각해졌다고 느꼈을 때, 그 수술 중이란 등불은 마침내 꺼졌다.온은수는 의사에게 밀려나왔고, 차수현은 즉시 앞으로 다가가서 상황을 물었다.“의사 선생님, 그 이는 어떻게 됐나요!”“생명의 위험은 없지만…….”“뭔데요?”“도련님의 다리는 총상을 입은데다 또 심각한 골절을 입어, 회복하더라도 전처럼 돌아갈 수 없을 거예요.”“…….”차수현은 침묵하다가 잠시 후에야 메마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알았어요.”그녀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또 어쩔 수 없이
차수현은 반박하지 않고 계속 고개를 숙이고 온은수를 바라보았다.그리고 어르신은 떠났다.잠시 후 온혜정과 유민도 왔는데, 그들은 무사히 돌아와 약간의 찰과상만 입은 유담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또 그를 품에 안고 한참을 울었다.그리고 나서야 그곳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고, 온혜정은 들은 다음 마음이 복잡해졌다.그녀는 임미자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 되면 그녀도 더 이상 임미자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병실에 들어서자, 온혜정은 차수현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온은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수현아.” 온혜정은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차수현은 고개를 돌렸다.“엄마, 그는 괜찮아요.”“괜찮으면 됐어.”온혜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수현 옆에 앉아 그녀의 손등을 두드렸다.“피곤하면 돌아가서 쉬어. 여긴 우리가 있잖아.”차수현은 뒤를 돌아보니 온은서도 온 것을 발견했다.비록 전에 온은수와 불쾌한 일이 많았지만, 이럴 때 그는 오히려 온은수가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나도 알아요…….”차수현은 대답했다. 그녀는 이럴 때 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탱하며 그녀가 쓰러지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겼다.……또 일주일이 지났고, 온은수는 마침내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요 며칠, 차수현은 다른 사람들과 번갈아 그를 돌보았는데, 차수현이 머문 시간이 가장 많았다. 매일 이 남자를 돌보는 것 외에 그녀는 또 그의 손을 잡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생존 의식을 불태워야 했다.온은수가 깨어났을 때, 그는 차수현이 자신의 침대에 엎드려 잠든 것을 보았고 남자는 손을 내밀어 어렵게 그녀의 머리를 만졌다. 차수현은 순식간에 깨어났다.온은수가 깨어난 것을 보고 그녀는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남자를 안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그가 정말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서둘러 의사를 불러 온은수에게 검사를 진행했다.검사 결과, 모든 것이 정상이었고, 온은수는 한동안 휴양하면 퇴원할 수 있었다.한 무리
깊은 밤.차수현은 자신의 담당구역 객실을 열심히 청소했다.엄마 병이 위독해지고 낮에 출근해서 저녁까지 청소를 하며 병원비를 겨우 마련했다.그녀는 청소를 거의 다 마쳤다. 스위트룸 하나만 남겨놓은 차수현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방안이 어두컴컴해서 불을 켜려던 참에 누군가 그녀를 팔로 힘껏 눌렀다.놀란 차수현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녀가 소리 치려는 순간 남자가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조용히 해.”차수현은 겁에 질린 듯눈을 커다랗게 떴다. 이 사람 누구지, 지금 무슨말을 하고 있는거지? 수현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설마 변태? 그게 아니면 사이코패스?머리는 복잡해 졌고살기위해 힘껏 발버둥 쳤지만 건장한 남자 앞에선 아무 소용이 없었다.그도 뭔가 찝찝함을 느꼈다.누군가 자신에게 약을 탄 걸 알았고 비서실장에게 여자 한 명 들여보내라고 했을 뿐인데 지금 이 여자는...벗어나려는 그녀의 몸 짓과 눈 빛이 그의 마음을 흥분 시켰다.……다음 날 아침.차수현은 놀라며 눈을 뜨고 자신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걸 발견했다.시트에 묻은 검붉은 색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고 몸은 움직일 때마다 부서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그녀는 결국... 모르는 낯선 남자에게 가장 소중한 걸 뺏기고 말았다.차수현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괴로움이 북받쳤다. 이때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놓인 손목시계를 발견했는데 그 남자가 놓고 간 물건이였다.아래에 깔린 메모지에 짤막한 두 글자만 적혀 있었다.“보상.”‘지금 날 몸 파는 여자로 생각한 거야?’차수현은 이런 굴욕을 당해본 적이 없어 시계를 바닥에 내팽개치곤 얼굴을 가리고 대성통곡했다.한참 울고 난 뒤 그녀는 서서히 마음을 가라앉혔다.‘지금 이렇게 울 때가 아니야. 절대 여기서 무너질 수 없어. 병원에 계신 엄마를 보살펴야 한단 말이야.’생각을 정리한 차수현은 침대에서 내려와 힘겹게 옷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 악몽 같은 이 방을 빨리 벋어나고 싶었다.호텔에
한 달 후.차수현은 병실 문 앞에 앉아 손에 쥔 병원 비를 확인하며 멍하니 넋 놓고 말았다.그날 호텔에서 끔찍했던 일 때문에 다시는 출근하지 않았다. 그날 밤의 악몽이 그녀에겐 트라우마로 남았다.그 일로 갑자기 수입이 끊기자 안 그래도 힘들었던 생활이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다.차수현은 잠시 넋 놓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지금 넋 놓을 시간이 없었다. 얼른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한다.병원 입구까지 걸어갔을 때 낯익은 실루엣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다름 아닌 그녀의 아빠 차한명이었다.차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꽉 쥐었다. 엄마가 아플 때 차수현은 아빠를 찾아가 애원해봤지만 정작 아빠라는 사람은 그녀를 집에서 내쫓아버렸다.그때 차한명의 매정한 모습이 아직도 차수현의 머릿속에 생생했다. 그는 오늘 절대 아내와 딸이 걱정되어 온 게 아니었다.“여긴 어쩐 일이시죠, 차한명 씨?”차수현은 앞으로 나서며 차한명을 가로막았다. 지금 엄마의 건강이 좋지 않아 불필요한 사람이 방해하는 걸 원치 않았다.차수현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 차한명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는 오늘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화를 꾹 참았다.“수현아, 아빠가 좋은 소식 가져왔어. 네 선 자리를 하나 알아봤는데 상대는 온씨 집안의 아들이야. 그 집안 재벌 가문이잖아. 게다가 셋째 아들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대…….”차한명은 과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한편 차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말을 아예 안 믿었다.“과연 그렇게 좋은 혼사가 나한테 생길까요?”그녀는 다른 건 몰라도 제 처지만큼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런 혼사가 그녀에게 생길 리는 없었다.차한명도 살짝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온씨 일가의 아들은 워낙 출중하여 많은 여자들의 로망이었다. 단지 이 모든 건 그가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의 일이었다.보름 전 온은수는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여 목숨을 겨우 건졌지만 식물인간이 돼버렸다.의사는 그가 설사 깨어난다 해도 평생 시체처럼 침대에 누워있을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는 창백한 얼굴에 두 눈을 꼭 감고 있었지만 잘생긴 외모엔 전혀 지장이 없었다.그는 정신을 잃은 게 아니라 동화 속 왕자님이 깊은 잠에 빠진 것만 같았다.차수현은 비록 잘생긴 얼굴에 쉽게 빠져들지 않지만 그런 그녀도 온은수를 몇 번 이고 몰래 훔쳐봤다. 그러던 중 온은수의 창백한 손등에 수많은 바늘 자국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이 상처들을 보며 그녀는 문득 수년간 고통에 시달려온 엄마가 생각났다.온은수처럼 완벽한 남자는 사고만 아니였다면 모든 여자의 로망이자 가질 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 되지만 않았다면집에서 내쫓긴 차수현에게 좋은 혼사가 이뤄질 리 없었다.두 사람은 동병상련의 가여운 처지였다.이렇게 생각한 차수현은 온은수가 가엽게 느껴져 점차 부드러운 표정으로 변했다.온회장은 그녀의 표정 변화를 물끄러미 지켜봤다. 그녀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도 진실된 표정을 보기 위해서였다.그녀가 만약 온은수를 귀찮게 여겼다면 그 순간 표정도 절대 숨겨질 리가 없다.온회장은 차수현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우리 은수에 관한 일은 너도 이미 들었을 거야. 이 결혼을 원치 않으면 지금이라도 얘기해. 널 강요하진 않을 테니까. 다만 결혼하겠다고 결심한 이상 나중에 후회 해서는 않됀다.”차수현은 고개 돌려 온회장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저는 이미 결정했어요, 온회장님. 후회 같은 거 절대 안 해요. 앞으로 은수 씨의 아내로서 열심히 보살필 거예요.”그날 갑작스럽게 첫 경험을 빼앗긴 후 차수현은 사랑에 대한 로망이 없어졌다. 하여 그럴 바엔 이곳에 남아 온은수를 보살피기로 했다.적어도 이렇게 하면 엄마가 최상의 치료를 받을 테니까.온회장은 그녀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진심 어린 그녀의 눈빛에 온회장도 드디어 경계심을 풀었다.“네가 원한다면 됐어. 이제부터 넌 은수의 아내로서 일상생활을 모두 책임져야 해. 이따가 상세하게 가르쳐줄 사람이 올 거야.”말을 마친 온회장은 자리를 떠났다.곧이어 온회장의 분부대로 두
말을 마친 도우미는 자리를 떠났다.차수현은 침대에 누운 온은수를 바라보며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쑥스러운 마음을 뒤로한 채 그의 옷을 천천히 벗겼다.온은수는 비록 혼수상태에 빠져있지만 그의 몸매는 여전히 완벽했다. 교통사고 때 남은 상처 외엔 근육 라인도 완벽하고 몸매도 늘씬하여 거의 조각상 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차수현은 수건을 적시고 그의 피부를 구석구석 닦아주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속옷을 벗기려 하니 차마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녀의 머릿속엔 좀 전에 도우미가 했던 말만 맴돌았다. 만약 온은수가 끝까지 깨어나지 못하면 그녀는 온씨 일가를 상속받을 후계자를 낳아야 한다.“그런데... 어떻게 낳으란 거지? 아니 비록 다부진 몸매에 근육도 완벽하다 지만...”차수현은 나지막이 중얼거리다가 마치 어린 소녀라도 된것 것처럼 부끄러워 줄행랑을 쳤다.그녀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온은수가 주먹을 꽉 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화장실로 달려간 차수현은 찬물로 세수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만 얼굴을 씻으면서도 좀 전의 이상했던 그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방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아까 못다한 일을 도저히 마무리할 수 없어 얼른 온은수의 옷을 입혔다.곧 밤이 깊어졌다.종일 바삐 보낸 차수현도 피곤함이 몰려와 몸을 움츠린 채 침대에 누웠다.그녀는 새벽에 조금 추워 온은수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따뜻한 온기를 느낀 그녀는 서서히 잠이 들었다.……온은수는 마치 꿈을 꾼 것만 같았다. 꿈속에서 그는 또다시 불타올랐던 그 날 밤으로 돌아갔다.품에 안긴 여자는 여전히 수줍음이 많았고 아름다운 모습이 그를 미치게 했다...차수현은 새벽에 숨이 막혀 잠에서 깼다. 눈을 뜨고 보니 한 남자의 품에 꼭 안겨 있었고 언제부터인지 옷도 풀어 헤쳐져 가슴이 훤히 드러났다.차수현은 소스라치게 깜짝 놀랐다..설마 누군가 온은수가 식물인간이 된 걸 알고 몰래 들어와 그녀를 겁탈한 걸까?그날 밤 괴로웠던 기억이 또다시 그녀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차수현은 그
목소리를 들은 온회장도 흠칫 놀라며 온은수의 방을 쳐다봤다. 그는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고개를 돌린 차수현은 온은수가 떡하니 서 있는 걸 발견했다. 그는 심지어 직접 밖으로 걸어 나왔다.아까 그녀에게 몹쓸 짓을 한 사람이 온은수였다는 말인가?차수현은 그 자리에서 넋을 놓고 말았다. 온은수가 이렇게 빨리 깨어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온은수는 그녀를 힐긋 바라보다가 어안이 벙벙해진 아버지께 시선을 돌리며 자상하게 말했다.“저 깨어났어요, 아빠. 그 동안 많이 걱정하셨죠?”온회장은 그제야 꿈에서 깬 듯 휘청이며 달려와 온은수의 몸을 어루만졌다. 아들이 무탈하게 깨어난 걸 확인한 그는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드디어 깼네! 드디어 깼어!”온은수는 얼른 온회장을 부축했다.“아빠, 너무 흥분하시면 안 돼요.”말을 마친 그는 옆에서 어쩔 바를 모르는 차수현을 힐긋 쳐다봤다.“이 여잔 누구예요? 왜 내 방에 들어온 거죠?”그는 낯선 사람을 절대 방에 들이지 않는다. 여자는 더욱 금기 대상이다.온은수는 좀 전에 일이 썩 기분이 내키지 않은 듯싶었다. 하여 그의 말투도 유난히 냉정했다.온회장은 차수현을 보면서 조금 전 그녀의 말을 오해했다는 걸 알았다.“말하자면 길어. 서재로 가서 이야기 해주마. 수현이는 먼저 방에 가 있어.”온회장이 차수현에게 친절하게 말하자 온은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그의 따가운 시선에 차수현은 왠지 싸늘함을 느꼈다. 온은수는 그녀를 향한 적의가 매우 커 보였다.하지만 일이 이 지경으로 된 이상 그녀도 더는 좌지우지할 수 없었다. 차수현은 결국 온은수의 차가운 눈빛을 감당하며 방으로 쪼르르 달려갔다.온은수는 그녀의 가녀린 그림자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온회장을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온회장은 요 며칠 일어났던 일들을 간략하게 말하며 맨 마지막에 차수현을 언급했다.“은수야, 수현이는 내가 널 위해 맞이한 네 아내란다.”온은수의 담담했던 표정이 이 한마디로 변화를 일으켰다.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