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사실 꽤나 난처한 상황이었다. 한 여자가 두 남자 사이에 끼어 있다니 말이다.나는 이 어색함을 깰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와 강진혁은 절대 불가능했다. 만약 두 사람 중 한 명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진정우를 선택할 것이다.어찌 됐든 나와 강유형은 거의 혼인 신고를 할 뻔한 사이다. 그와 끝을 내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형과 얽힐 수는 없었다.“오빠, 저 피곤해요.”오빠라는 말은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강진혁은 결국 내 손을 먼저 놓았다.진정우는 나를 잡고 호텔에 들어갔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서도 강진혁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내 마음이 어지러워서인지, 나는 호텔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뎌버렸다. 순간 몸이 가벼워지며 진정우가 나를 안아 들었다.“이거 놔요.”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진정우의 옷을 꽉 붙잡았다.“저 사람 때문에 난감한 거 아니었어요? 빨리 벗어나고 싶으면 가만히 있어요.”진정우는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강진혁이 한 말을 떠올리며 나는 조용히 안긴 채 움직이지 않았다.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강진혁과는 절대 엮여서 안 된다. 나는 정말 그를 친오빠로 생각했기 때문이다.나는 한 번도 그를 다른 시선으로 본 적 없었다. 그리고 이 관계는 나에게 아주 소중했다. 망가지게 두고 싶지 않았다.강진혁은 내성적인 사람이다. 그는 쉽게 고백하지 않았고 집착하지도 않는다.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오해한다면 무조건 물러날 것이다.결국 나는 진정우의 품에 안긴 채 호텔 로비에 들어섰다. 그는 나를 방 앞까지 안아서 데려다줬다.나는 강진혁의 마음을 알아챈 것처럼 진정우의 마음도 알아챘다. 오늘 강진혁과의 관계를 정리한 참에 그와의 관계도 확실히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그가 나를 내려놓은 다음에도 나는 그의 옷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가슴팍을 응시하며 솔직하게 말했다.“정우 씨는 되게 잘생겼어요.”“네.”내 말에
“네.”진정우가 단호하게 대답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저도 통제할 수가 없어요. 자꾸 팀장님한테 다가가고 싶고, 잘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 유혹이라는 것도...”사랑이란 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라면 인생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입을 다물었다. 진정우는 조용히 나를 놓아주었다.“들어가서 물 많이 마셔요. 필요한 게 있으면 전화하고요.”그는 말을 마치고 내 가방을 가리켰다.“카드 이리 줘요. 문 열어줄게요.”“아니에요.”나는 정신을 차리며 그와 거리를 벌렸다.“제가 할게요.”급히 카드를 꺼내 안으로 들어간 나는 문에 기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잠시 후 이소희가 돌아왔을 때, 나는 이미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내가 깰까 봐 조심스레 움직였다.나도 눈을 뜨지 않았다. 말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혼자서도 잘 자고 있었네.”이 말을 듣고 나는 이불 속에서 주먹을 쥐었다. 아무래도 진정우가 이소희에게 나를 부탁한 모양이다.‘진정우...’나는 도대체 어쩌다 그와 얽히게 된 걸까?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또 꿈을 꿨다.꿈은 혼란스러웠다. 나는 꿈속에서 부모님을 보았다. 그들이 사고를 당했던 장면을 말이다.비록 사고 현장을 본 적은 없지만, 나중에 경찰서에서 몰래 사건 파일을 뒤져서 사진을 본 적 있다. 그 끔찍한 장면은 내 기억 속에 깊이 새겨져 악몽이 되었다.나는 강씨 가문에 간 초반에 악몽을 자주 꿨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거의 꿈을 꾸지 않았다. 그런 꿈을 오늘 다시 꾼 것이다.일어나 보니 해는 아직 뜨지 않았다. 현재 시각은 새벽 5시였다.최근 들어 항상 이 시간에 일어났다. 아무리 늦게 자더라도 말이다.어제 술을 많이 마셨지만 다행히 머리도 아프지 않고 정신이 말끔했다. 핸드폰에 부재중 통화와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전화가 무음으로 되어 있어 몰랐던 것이다.안리영에게서 두 번의 전화
김희연은 전화가 통하자마자 집에 돌아와서 밥 먹으라고 했다. 밥은 핑계고 나한테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아주머니가 만들어주신 만두 잘 먹었어요. 요즘 집에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놀이공원 쪽 일이 바빠서 쉬는 시간도 없어요. 언제 여유가 생기면 돌아갈게요.”나는 완곡하게 거절했다.“유형이도 참, 왜 너한테 급한 일을 맡겼다니? 내가 단단히 혼내주마.”김희연은 화난 척 말했다.“유형이 탓 아니에요. 이미 정해진 일이었어요.”그래도 강유형은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개인적인 원한으로 나를 힘들게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그래, 알았다. 일이 더 중요하지.”김희연은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정말 일이 바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 바쁘다고 해도 이제 그곳에 돌아갈 명분은 없었다.김희연도 자주 실망하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별이 전제되어 있기 마련이다. 마치 나와 부모님, 그리고 나와 강유형처럼 말이다.나와 이소희는 조식을 먹으러 갔다. 그때도 진정우는 보이지 않았다.“진 기사님 저희랑 같이 출근하는 거 아니었어요? 왜 또 먼저 갔죠?”이소희가 투덜댔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내 어깨를 톡톡 치면서 말했다.“근데 진 기사님 언니한테 특별한 것 같아요. 어제도 저한테 언니 취한 것 같으니까 잘 부탁한다고 했거든요. 두 사람 어제같이 술 마셨어요?”“아니요!”“그럼 진 기사님은 어떻게 알았어요?”이소희는 참 궁금한 게 많았다.“만났어요, 호텔 아래에서.”“아, 그렇구나.”이소희는 여전히 의심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그렇게 보지 마요. 저랑 진 기사님 그런 사이 아니에요.”나는 이소희가 미처 묻지 못한 질문에 답을 해줬다. 그러자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그런 사이라고 해도 괜찮아요. 제가 비록 진 기사님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냥 단순히 얼굴을 좋아하는 느낌이랄까요? 연예인 좋아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요.”“저희같이 연예인
“네, 전등에 문제가 생겨서요.”내가 설명할 때 김희연은 이미 진정우가 일하고 있는 사다리 아래로 갔다.“안전장치도 없이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안전이 제일이에요, 기사님.”역시 사모님다운 순간이었다. 김희연은 한눈에 문제점을 찾아냈다.사실 진정우는 계속 안전장치를 하고 있었다. 조금 전 내려왔다가 잠깐만 올라간다고 지금은 안 한 모양이다.“제가 주의시킬게요.”나는 곧 진정우에게 말했다.“왜 안전장치 없이 올라갔어요. 빨리 내려와요.”진정우는 순순히 내려와서 말했다.“앞으로 조심할게요. 죄송합니다.”잘못을 인정하는 초등학생과 같은 모습이었다. 순간 내가 너무 거칠게 말했나 싶었다.김희연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기사님을 보호하자고 있는 안전장치예요. 먼저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사랑하죠.”직장인이 아니라고 해도 재벌가 사모님은 사모님이었다. 하는 말의 기세가 남달랐다.하지만 나는 어딘가 의미심장한 느낌이 들었다.“네, 사모님.”진정우가 대답했다.“오전 내내 힘들었죠. 제가 식사를 가져왔으니 얼른 드세요.”김희연은 다시 부드러운 태도로 말했다. 진정우는 인사를 하고 나서 밥 먹으러 갔다. 김희연은 그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몸 튼튼하니 일 잘하게 생겼네.”나는 김희연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강유형과 똑같이 진정우를 얕보고 있었다.오늘 김희연이 찾아온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강유형에게서 진정우에 관해 전해 들은 모양이다.“저희 엔지니어예요. 전등을 담당한.”내가 설명을 보탰다.김희연은 재벌가 사모님이다. 대단한 사람이라면 수없이 만났기에, 지금도 그냥 싱긋 웃기만 했다.“배고프지? 사무실에 가서 밥 먹자. 우리 밤 먹으면서 얘기해.”나에게는 다시 부드러운 태도로 돌아왔다. 나도 거절하지 않고 따라갔다.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기사는 이미 음식을 펼쳐 놓았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음식들은 전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먹는 것과 이소희 등이
김희연은 잠깐 멈칫하다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유형이 이 자식 때문에 남자라면 지긋지긋해진 거니? 세상에 나쁜 남자도 있겠지만, 좋은 남자가 훨씬 많아.”김희연은 성격이 좋고 말도 잘했다. 50대가 됐는데도 젊은 사람들이 하는 말을 쓸 줄 알았다.나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좋은 남자라고 해도 아직은 생각 없어요. 조금은 숨을 돌리고 나서 다시 생각하려고요.”김희연이 소개해 주는 걸 막기 위해 한 말이었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서로 어색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하긴.”이 두 글자를 듣고 나는 시름을 놓았다. 하지만 곧이어 반전이 찾아왔다.“그래도 연애는 빨리해야지. 안 그러면 좋은 남자 다 뺏긴다?”나는 피식 웃었다. 김희연도 따라 웃었다.“우리 지원이처럼 착하고 예쁜 애를 누가 만날까? 웬만한 복으로는 안 될 거야.”김희연이 또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칭찬만 들으면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도 이제는 받아 치는 방법이 생겼다.“아주머니 말대로 최고의 남자랑 만날 거예요. 최고라는 생각이 안 들면 차라리 기다릴래요.”“맞아, 그 말은 나도 동의해. 아무나 대충 만나는 건 절대 안 돼. 상처받았다고 해서 이상한 사람이랑 어울리며 복수하는 것도 안 되지.”이상한 사람이란 곧 진정우일 것이다.나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안 그래요. 제가 누군가 만난다고 해도 최고라고 생각해서 만난 걸 거예요.”나는 신중하게 선택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려고 한 말이다. 강유형을 포기한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김희연은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그녀와 10년의 세월을 함께 보냈다. 내가 커가는 것을 곁에서 본 사람이 나의 성격을 모를 리가 없었다.“그러면 다행이고.”이 말을 마지막으로 화제는 끝났다.나는 조용히 밥을 먹었다. 거의 다 먹어갈 때 김희연이 갑자기 물었다.“너 얼마 전 본가에 돌아갔다며?”나는 고개를 들어서 그녀를 바라봤다.“유형이한테서 들었어. 유형이가 그래도 널 걱
나는 일단 알겠다고 하고 김희연을 보낸 다음에야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현장에 돌아갔을 때 이소희만 보이고 진정우는 보이지 않았다.“진 기사님은요?”“김 기사님이 불러서 잠깐 그쪽에 갔어요. 근데 언니 시어머님이 직접 오신 걸 보면 혹시...”“저 유형이랑 헤어졌어요. 누가 와도 소용없어요. 이상한 생각하지 마요.”나는 단호하게 입장을 밝혔다. 이소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 집안 뭐든 다 좋은데 딱 남자주인공만 별로네요.”이소희의 말이 정확했다. 그 집안은 뭐든 다 좋았다. 그러나 내 남편은 집안이 아닌 강유형이었다. 강유형이 별로이면 집안이 아무리 좋아도 소용없었다.나와 이소희는 진정우를 거의 반 시간 동안 기다렸다. 그래도 돌아오지 않자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챙겨가지 않은 핸드폰은 휴식 구역에 놓여 있었다.“진 기사님은 여자친구가 없는 게 분명해요. 핸드폰도 놓고 다니는 걸 봐요. 여자친구가 있었다면 24시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을 거예요.”이소희가 나름 전문적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나는 말하지 않고 시간을 확인했다.“제가 김 기사님한테 가서 확인해 볼게요.”근처에 도착하자마자 진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제가 가면 일이 보름, 어쩌면 그 이상으로 밀릴 거예요.”나는 순간 멈칫했다. 진정우가 간다니 말이다.‘이게 무슨 말이지?’내가 들어가려고 할 때 고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늦어진다고 해도 저희 측 책임입니다. 기사님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대표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상황을 파악한 나는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제가 허락 못 해요.”나를 발견한 고준석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했다.“팀장님, 이건 대표님 뜻입니다.”“대표님 뜻이라고 해도 안 돼요. 이쪽 책임자는 저예요. 대표님이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죠?”나는 패기 넘치게 받아쳤다.고준석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저 말을 전하는 사람에 불과했다.그렇다고 해도 나는 물러설 수 없었다.“돌아가서 대표님한테 전하세요. 제
강유형의 말투는 아주 사나웠다. 나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였다.하지만 나는 겁먹지 않았다. 마침 나도 그에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곧바로 진정우의 손을 놓았다.그 순간 진정우가 내 손을 되잡았다.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고, 그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 속에서 나는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청평에서 오향설이 나에게 못되게 굴 때, 그는 딱 이런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를 보호하려는 눈빛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의 손을 밀어내면서 말했다.“괜찮아. 강유형 사람 안 잡아먹어.”진정우는 더 이상 나를 막지 않았고, 나는 강유형의 뒤를 따라갔다.고준석도 당연히 따라가려고 했다. 그러자 강유형이 멈춰 서며 네 일이 아니라고 호통쳤다. 겁에 질린 고준석은 바로 멈춰 서서 나를 바라봤다.강유형은 계속해서 걸었다. 나는 그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서 일단 불러 세웠다.“충분히 멀리 온 것 같은데, 그냥 지금 말하면 안 돼?”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멈춰서 그의 등을 바라보며 말했다.“여기서 말하라고. 나 아직 할 일 있어. 업무 시간에 방해하지 마.”그제야 강유형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내가 다가가자 그는 바로 손을 들어서 내 팔을 꽉 붙잡았다.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것도 잠시 그가 나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의 차가운 숨결과 10년간 사랑했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의 콧날은 거의 내 코에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너 이제 날 협박할 줄도 알아?”내 등이 벽에 짓눌려 아팠다.강유형은 이렇듯 충동적이고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나는 항상 조심스럽게 맞춰 가면서 지냈다.그러나 이제는 이런 그가 역겹게만 느껴졌다. 나는 두려움 없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너 때문에 공사 기간이 영향받지 않길 바랄 뿐이야.”강유형은 내 말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너 정말 그 진정우라는 사람이랑 만나는 거야?”“아니.”
“솔직히 말해봐, 너 윤지원이랑 해봤어?”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와 막 들어가려던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문틈 사이로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강유형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지원이가 먼저 다가왔지만 난 관심 없었어.”“강유형, 그렇게 사람 깎아내리지 마. 윤지원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 미인이야. 꽤 많은 사람들이 윤지원을 노리고 있다고.”말하는 사람은 강유형의 친구 신지태였다. 그는 나와 강유형의 10년 감정을 지켜본 증인이기도 했다.“너무 익숙해서 그래.” 강유형이 눈썹을 찌푸렸다.내가 14살 때 강씨 집안으로 보내졌고 그때 처음으로 강유형을 만났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앞으로 강유형과 결혼할 거라고.그 후로 우리는 함께 살았고 어느새 10년이 흘렀다.“그렇지. 너희 둘은 낮에는 한 회사에서 일하면서 얼굴 보고 밤에는 집에 와서 같은 식탁에서 밥 먹고. 아마 상대방이 하루에 몇 번 화장실 가는지까지 다 알겠어.”신지태가 농담을 던지고는 혀를 찼다. “지금은 오래 보면 정든다는 시대가 아니야. 남녀 사이엔 그래도 신선함이 있어야 하지.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그런 느낌, 그래야 감정이 생기고 자극적인 법이야.”강유형은 침묵했고 신지태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듯했다.“그래서 너 윤지원과 결혼할 거야?” 신지태의 질문에 내 숨이 멎는 것 같았다.강유형의 부모님은 우리에게 혼인신고를 하라고 하셨다. 그는 좋다고도, 싫다고도 하지 않았고 나도 그에게 묻지 않았다. 그러니 신지태가 나 대신 물어본 셈이다.강유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신지태가 웃었다. “결혼하기 싫어?”“...그건 아니야.”“그럼 결혼은 하고 싶은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는 거지?” 신지태와 강유형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사이라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았다.“지태야, 이런 말 들어봤어?” 강유형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뭔데?”“먹자니 맛없고 버리자니 아깝고.” 강유형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