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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그날 밤 나는 깊게 잠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푹 자고 있었는데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이 깼다.

말하는 사람은 진정우가 아니었고, 지방 사투리가 섞인 여성의 목소리였다.

소리만 들어도 그 여자가 젊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린 소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청아하지만 중년 여성의 목소리는 대개 무겁고 거칠다.

나는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한 편이지만, 10년을 사랑했던 남자가 사실은 쓰레기였다는 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람을 잊는다는 건 더 이상 그를 떠올리지 않는 거라는데, 아직 나는 그게 안 된다.

강유형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원망 때문인지 자꾸 그가 생각난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귀를 기울여 밖의 소리를 들었다.

“할머니, 정우 씨는 어디 있어요?”

여자가 물었다.

“갔어. 아침 일찍 나갔지.”

할머니는 무언가를 씻고 있는 듯, 물소리가 흘러나왔다.

“갔군요. 아직 자고 있는 줄 알았어요.”

여자의 목소리엔 웃음이 섞여 있었다.

“오향설, 정우가 일어났는지 안 일어났는지 너랑 무슨 상관이야? 정우는 널 좋아하지 않으니 괜한 헛수고하지 마.”

할머니는 정말 직설적이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버티지 못했을 텐데 문밖의 그 과부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남자는 밀당을 좋아해요.”

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 여자 꽤 자신만만하네.’

“난 정우가 너를 낡은 헝겊처럼 내팽개쳤다는 것만 알아.”

할머니는 정말 한 치의 여유도 없었다.

“할머니, 나이 드시더니 뭘 모르시네요.”

오향설은 약간 화가 난 듯했다.

“난 부끄러움을 알고, 사람은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아.”

할머니의 말에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할머니, 우리 이웃끼리 왜 이러세요? 제가 그동안 할머니도 많이 도와드렸잖아요. 도와주지 못할 망정 왜 저를 몰아붙이세요?”

오향설은 도덕적 압박을 시도했다.

할머니는 그런 그녀에게도 전혀 개의치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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