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노골적인 말은 평생 처음으로 해봤다. 진정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차갑게 대답했다. “착각한 겁니다.” “...” 그는 뒤돌아 서서 수박을 잘랐다. 한 조각 한 조각, 마치 줄을 맞춰 대기하는 병사들처럼 가지런하게 접시에 올려놓았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그의 방을 다시 한번 엿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왜 안 먹고 있어? 보고만 있으면 배가 부르니?” 할머니가 다가와 나를 놀렸다. 이 할머니는 참 대단한 분이다. 욕할 때는 양손을 허리에 얹고, 남을 걱정할 때는 자상하며, 농담을 할 때는 능청스럽게 내뱉는 재치까지 갖추셨다. “할머니를 기다렸어요. 저를 위해 속 풀이해 주시느라 고생하셨잖아요.” 나는 장난스럽게 가장 큰 수박 조각을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할머니는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 한 입 베어 물었다. “달다. 하지만 나는 당뇨가 있어서 많이 먹으면 안 돼.” 나도 수박을 먹기 시작했지만 진정우는 방으로 돌아가더니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저녁 시간이 되자 그는 또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에게 저녁을 먹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는 너무 빨리 가버려서 입도 떼지 못했다. 할머니가 옆에서 코웃음을 쳤다. “정우는 원래 굉장히 차가운 사람이야. 너한테만 저렇게 특별히 신경 써.” ‘나한테 어떻게 특별히 신경을 쓴다는 거지?’ 나는 묻지 않았지만 그가 내 발을 주물러 준 것이 효과가 있기는 했다. 밤새 자고 일어났더니 발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조용히 눈을 떴다. 마당 안은 너무도 고요해서 마치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민소매 슬립 차림으로 문을 열고 나가다가, 돌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있는 두 사람과 눈이 딱 마주쳤다. 진정우는 내 모습을 몇 초 동안 바라보더니, 이내 급히 시선을 피했으며 귀마저 붉어졌다.나는 내 옷차림을 내려다보고,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서둘러 방으로 돌아가려 하자 할머니가 정겹게 나를 불렀다. “지원아,
며칠 동안 이곳에 머물렀지만 할머니의 자식들이 찾아오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묻지 않았다. 오히려 할머니는 나와 진정우를 자신의 자식처럼 여기고 계신 것 같았다. 저녁에 잠들기 전 안리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제 돌아올 거냐고 묻기에 나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작은 동네에 있는 동안 정말 행복했으니까. 부모님이 떠난 후로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휴가를 더 연장해서 이곳이 지겨워질 때까지 머물고 싶다고 말했다. “너 혹시 그 군인 오빠를 놓치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안리영이 장난스럽게 묻자 진정우와 몇 번의 짧은 만남 속에서 느낀 미묘한 설렘이 떠올랐다. “놓치기 싫다기보다는... 그 사람이랑 있을 때 심장이 활기차게 띠는 느낌이야.” “좋네, 우리 조 비서님의 회복력도 꽤 괜찮은데?” 안리영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안리영도 잠깐 침묵하더니 물었다. “강유형 그 나쁜 놈, 아직도 연락이 없어? 카톡도 하나 안 보냈어?” 나는 입술을 핥으며 조용히 대답했다. “.....응, 없어.” 안리영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 인간은 네가 평생 자기를 못 떠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 나는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창밖의 달빛을 바라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이번에는 강유형한테 보여줄 거야.” 안리영과 통화를 하며 잠들었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이었다. 전화는 끊어져 있었고 안리영이 남긴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이 세상에 누구도 누구 없이 살 수 없는 건 아니야.] 그렇다. 나는 강유형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거다. 며칠 동안 잘 먹고 잘 지냈으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고 다시 자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휴대폰에서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이 새벽에 누가 메시지를 보낸 걸까? 눈을 뜨고 화면을 확인하자 순간 멍해졌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강유형이었다.[이제 그만하고 돌아
큰 문제? 얼마나 큰 문제인데? 나는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물었다. “천천히 말해요, 무슨 일이에요?” 이소희는 상황을 설명해 주었는데, 대략 조명과 디자인 시안이 완전히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명 자체의 품질 문제가 있거나, 시공 설치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문제를 이미 알고 있으면 관련 책임자를 찾아 해결하면 되잖아요. 내가 돌아간다고 해도 결국 그 일을 할 거예요.” 나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언니, 언니 제발 돌아와요. 저 혼자서는 정말 감당이 안 돼요. 요즘 대표님께서 무슨 생각인지, 매일같이 놀이공원에 와서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때마다 골치 아픈 일들이 생겨요. 저 정말 미칠 것 같아요.” 이소희의 목소리는 거의 울먹일 지경이었다. 강유형이 나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떠올리며, 혹시 일부러 이소희를 곤란하게 만들어 나를 압박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마음이 약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걸 싫어한다는 걸 말이다. “소희 씨가 먼저 처리해봐요.” 나는 여전히 돌아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이소희를 일부러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성장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계속해서 배우고 책임을 지면서 발전하게 된다. 나는 사직할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녀에게는 승진의 기회가 올 것이다. 그러니 그에 따른 능력도 갖춰야 했다. “언니, 저 혼자선 이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어요. 조명이 놀이공원의 핵심이잖아요.” 이소희는 여전히 나를 설득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몇 초 동안 생각한 끝에 나는 말했다. “문제 보고서를 보내고 현장에서 나랑 영상 통화해요. 가능하면 밤에 조명을 다 켜고 내가 상황을 보고 나서 결정할게요.” 이소희는 내가 정말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언니, 대표님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거죠? 실은 저도 혼자 감당할 수 있다면 언니한테 이런 말을
확실히 그곳은 가장 높은 지점이었다. 나는 영상을 통해 조명 아래의 놀이공원을 내려다봤다.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았지만 설계도에 있던 조명의 기본 색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원래 디자인에서는 조명 바탕색이 파란색에서 점점 변하는 그라데이션으로,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바다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온통 짙은 파란색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라데이션은 없었다. 색깔 자체는 짙고 강렬했지만 그 속에서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언니, 전체 모습은 이래요. 시공 쪽 문제인지, 아니면 조명 제조사에서 문제가 생긴 건지 모르겠어요.” 이소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공 팀이랑 제조사랑 이야기는 해봤어요? 그 사람들은 뭐래요?” 내가 물었다. “시공 쪽은 자신들이 요청대로 시공했다고 하고, 제조사도 우리가 요청한 대로 조명을 납품했다고 주장해요. 서로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해서, 도대체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건지 모르겠어요.” 이소희는 몹시 난감해 보였다. “지원 언니, 이 문제는 진짜 해결이 안 돼요. 언니도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잖아요.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 언니도 원하지 않잖아요?” 이소희는 나를 다시 설득하려고 했다. “알았어요, 돌아갈게요.” 이번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바로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곧 이소희가 보내온 드론 촬영 영상을 받았는데,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나는 짐을 챙겼다. 아홉 시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지원아,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또 요가라도 하려고?” 할머니가 나를 보고 물었다. 며칠 동안 나는 시간이 나면 마당에서 요가를 하곤 했는데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내 팔, 다리, 허리가 다칠까 봐 조심하라고 당부하셨다. “아니에요.” 나는 할머니 앞에 다가가 말했다. “할머니, 저 이제 가봐야 해요.” 할머니는 놀라며 물었다. “아니, 아직 며칠 더 있기로 하지 않았니?” “회
당구장.강유형이 큐대를 휘둘렀지만 공은 모두 빗나갔다.한편에서 신지태는 큐대를 닦으며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윤지원이 아직도 너한테 답장 안 했어? 연락도 없고?”강유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신지태는 당구대에서 가장 까다로운 각도의 공을 겨냥해 큐대를 휘둘렀다. 쿵 소리와 함께 공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들어갔다.“보통 이러지 않잖아. 네가 그렇게 말했을 때도 별로 신경 안 쓴 것 같더니, 이번에는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지?” 신지태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강유형은 윤지원이 당구장에 와서 물어봤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 윤지원이 너한테 뭘 물었지?”신지태는 또 한 번 공을 넣더니, 멋지게 당구대에 걸터앉아 다른 공을 겨냥했다. 쿵 소리와 함께 이번에도 완벽하게 공이 들어갔다.“이미 말했잖아. 네가 조나연이나 임석진이랑 학교 다닐 때 뭔가 문제가 있었냐고 물었지. 난 없다고 했고, 그래서 윤지원이 떠난 건 나랑 전혀 상관없어.” 신지태는 책임을 깔끔하게 넘겼다.“내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불안해?” 강유형의 말투는 여전히 거칠었다.신지태는 마지막 남은 공을 바라보다가 강유형을 보며 말했다. “너 정말로 윤지원이 왜 떠났는지 모르는 거야? 왜 혼인 신고조차 안 하고 떠났는지?”“몰라, 그냥 삐진 거겠지. 그동안 내가 너무 오냐오냐 해줬으니까!” 강유형은 화가 난 듯 대답했다.혼인 신고를 하지 못한 것 때문에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도 그를 불편하게 대했고, 회사에서도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다. 심지어 바람을 피우다 걸렸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정말, 사람들은 아무 말이나 지어내기 일쑤다.“네가 오냐오냐 해줬다고?” 신지태는 웃었다. “유형아, 솔직히 말해서 난 네가 지원이를 오냐오냐 해줬다는 느낌을 전혀 못 받았어. 오히려 너는...”신지태는 잠시 멈췄다. “오히려 너는 윤지원이 항상 네 곁에 있을 거라 믿고, 네가 없으면 지원이가 못 살 거라 생각했던 거지. 그래서 지원이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을
오후 세 시.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짐도 풀지 않고 바로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이소희도 그곳에 있었고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나를 꼭 껴안았다. “언니, 드디어 돌아오셨네요.”나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일단 나랑 몇 군데만 가서 확인해 봐요.”어젯밤은 거의 한숨도 못 잤다.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을 계속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공사나 조명업체를 의심하고는 있지만 그들이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건 큰 프로젝트였으니까.만약 그들 탓으로 문제가 발생한다면 돈을 벌기는커녕 큰 손해를 볼 게 뻔했다.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다른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현장에 가서 직접 확인해야 했다.조명을 켰다 껐다 하며, 설계도와 비교해 가며 문제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일을 멈출 수 있었다. “지원 언니, 언니 이번 주는 완전 몰아서 일하는 거네요.” 지친 이소희가 나를 놀리듯 말했다. 정말로 일주일이나 지나버린 걸까? 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나는 이소희와 함께 회사로 가서 밤새 우리가 찾아낸 문제들을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다음 날 시공사와 조명업체에 연락해 논의하고 강유형에게 보고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강유형은 이미 이 문제에 대해 알고 있었고, 무척 화가 나 있었다고 이소희가 전해주었다. 그녀는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결국에는 둘 다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강유형은 나에 대한 감정은 별로 좋지 않지만, 일에서는 철저히 공과 사를 구분하며 매우 엄격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벌을 받더라도 해야 할 일은 완벽히 해내야지.” 나도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우리는 새벽 6시까지 일을 했고 결국 이소희는 지쳐 책상 위에 엎드려 잠들었다. 나도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왔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졸리지 않았다. 간단히 세면
강유형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검은색 정장에 흰 셔츠를 입고 별무늬가 박힌 넥타이를 맸다. 그 넥타이는 작년 그의 생일에 내가 선물한 것이었다. 그는 그 넥타이를 한 번도 맨 적이 없어서, 아마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리가 헤어지고 나서야 이 넥타이를 맨 걸 보니 아주 뜻밖이었다.강유형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고 그의 눈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빛은 날카롭고 위협적이었다. 그가 왜 화가 났는지 알고 있었지만 나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대표님,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요즘 어디 갔었어?” 그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연차 휴가를 보냈습니다.” 나는 딱히 답이 되지 않는 말을 했다.강유형은 책상 위에 얹어놓은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어디로 갔냐고 물었어.”“청평군에 다녀왔습니다.” 숨길 것도 없어서 솔직하게 지명을 말했다. 그가 더 깊게 찡그린 미간에 잠깐 당혹스러움이 스쳤다. 청평군이 어디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청평군은 작은 시골 마을이었고 그가 그런 곳을 알 리가 없었다.하지만 그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썼다면 이미 알았을 것이다. 나는 그곳이 내가 태어난 곳이며, 부모님이 나를 가장 데려가고 싶어 했던 곳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에게 나는 중요하지 않았기에 내가 했던 말은 그저 흘려들었을 뿐이다. “그런 곳에 여행이라도 갔다는 건가?” 강유형의 질문에 나는 웃음이 나왔고 결국 가볍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왜 휴대폰을 꺼놨어? 메시지도 확인 안 하고?” 그가 말할 때마다 나를 질책하는 듯했다. 나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제 자유입니다, 대표님.”그의 얼굴이 순간 더 어두워졌다. “그래, 그건 네 자유지. 하지만 회사 규정상, 어떤 경우에도 업무에 지장이 있어선 안 돼.”“제가 무슨 일을 방해했습니까?” 나는 차분하게 반문했다.강유형은 침을 꿀꺽 삼켰고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진정우가 내 코
강유형은 손을 들어 넥타이를 거칠게 풀었다. “윤지원,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왜 갑자기 혼인 신고를 안 하겠다고 한 거지? 그리고 왜 연락도 없이 사라져?”공적인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다시 사적인 문제로 대화를 돌렸다. 사실 이것이 그가 나를 부른 진짜 이유였다.“난 아무것도 안 했어.” 나는 이 한마디로 내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이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너 집안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 어머니께서 너무 화가 나서 병원에 입원하셨어.” 강유형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강유형 어머니가 입원했다는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그 일과 이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내가 강유형의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있어도 그가 나에게 준 상처를 지울 수는 없었다.“아주머니께 따로 찾아가 설명하고 사과할게.”“윤지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나는 왜 갑자기 혼인 신고를 안 하겠다는 건지 묻고 있어.” 강유형은 다시 한 번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잘못을 저지른 건 그인데 마치 나에게 배신당한 것처럼 굴었다.그렇다면 나는 그에게 누가 누구에게 상처를 준 건지 명확히 알려줄 생각이었다. 나는 살짝 시선을 내리고 그의 손목시계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나, 봉화타운 하우스에 갔었어.”내 말이 끝나자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강유형의 몸이 순간 굳어졌고 그의 얼굴은 빠르게 변해갔다. “내 말 좀 들어봐...” “듣고 싶지 않아. 어떤 설명을 하든, 조나연 씨가 그곳에 산다는 건 사실이잖아. 게다가...”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덧붙였다. “침구를 사러 갔을 때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샀더라고.”“나랑 나연이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강유형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지만, 나는 한 발 물러나며 그와의 거리를 유지했다. “강유형, 나는 추측하거나 상상하는 걸 싫어해. 하지만 내 눈으로 본 건 믿고 내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어.”“지원아...” 강유형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 집은 원래 너한
나는 용은서를 품에 안고 눈앞의 사람들을 훑어보았다.그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호시탐탐 나를 노려보았다. 곧이어 발자국 소리와 함께 애타는 외침이 들려왔다.“은서야, 두려워 마. 엄마가 왔어.”이 말을 듣고 나는 이 상황이 기가 막혔다. 함소은은 내 품에서 아이를 빼앗고 나를 밀쳐 버렸다.그녀는 연기를 정말 잘했다.함소은은 용은서를 안고 뽀뽀하며 달래더니 나를 노려보았다.“내가 지원 씨를 그렇게 믿고 은서랑 친구도 하게 해줬는데, 지원 씨는 어떻게 우리 모녀의 믿음과 사랑을 이용해 우리를 해쳐요?”“언니는 나를 해치지 않았어.”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용은서가 말했다.용은서의 말을 듣고 얼굴이 굳어진 함소은은 딸을 안고 울기 시작했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함소은이 용은서를 데려가기 위해 그들과 함께 연기하러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용은서의 이 납치극 함소은에 의해 끝났지만 나의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용진표가 나를 찾아왔다.“지원 씨는 내가 왜 찾아왔는지 알고 있을 거야.”용진표는 직접적으로 말했다.나는 그를 보며 함소은이 계획한 이 연극 같은 상황이 생각났다. 사람은 평생 총명하다가도 어리석을 때가 있다고 하더니 지금의 용진표가 그랬다.그는 자신의 여자에게 놀아났다.“용 대표님은 제가 왜 은서를 납치했는지 알고 싶으신 거예요?”나는 용진표에게 물었다.그는 사람을 시켜 나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나를 여기로 초대했다. 함소은의 예측대로 나에게 빚진 것이 있었기에 너그럽게 나를 대했다.그래도 그는 이유를 알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용 대표님은 모르시나요?”나는 웃으면서 말했다.그는 손으로 짐볼을 굴리면서 말했다.“지원 씨는 단순히 복수만 하고 싶은 것이 아닐 거야. 그리고 복수를 한다고 해도 어린아이한테 손댈 사람은 아니야.”‘잔인한 그가 나를 이렇게 떳떳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니!’“지원 씨는 나에게 원인을 말해주지 않아도 돼. 우리 앉아서 얘기 나누면서 지원 씨가 원하
“네, 장소를 알려주세요.”그녀는 흔쾌히 대답했다.나는 사방을 둘러보다 카페 이름을 말했다. 반 시간쯤 기다리자 캐주얼차림에 오토바이를 탄 멋지고 훤칠한 외모를 가진 용설아가 왔다.진정우와 용설아는 취향이 서로 같았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진정우가 오토바이를 타던 모습이 떠올랐다.심지어 나는 진정우가 먼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그의 옆에는 내가 아니라 용설아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죄송해요. 오래 기다렸죠?”용설아는 먼저 나에게 사과부터 했다.비록 그녀도 용씨 가문의 사람이었고 진정우와도 갈등이 있었지만 나는 그녀가 싫지 않았다.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제가 당돌했어요, 설아 씨 휴식 시간을 방해해서 죄송해요.”아까 그녀가 전화 받을 때 분명 자다 깬 목소리였다.“네, 요즘 잠을 못 자서 모처럼 오늘 좀 자고 있었는데 방해를 받았네요.”그녀는 직설적이었다.나는 그녀가 요즘 왜 잠을 못 잤는지 궁금했지만 그녀와 친하지 않아서 묻기가 어려웠기에 그녀에게 용건만 말했다.“오늘 설아 씨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 만나자고 했어요.”“정우 때문이에요?”용설아도 시치미를 떼지 않았다.“아니에요.”말을 마치고 나는 머뭇거리며 계속 말했다.“제 남자는 제가 알아 할게요.”“하하”용설아는 해맑게 웃었다.“나에게 이 말 해주려고 만나자고 한 거예요?”나도 웃었다.“저는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오늘 다른 부탁이 있어서 만나자고 했어요.”“뭔데요?”나는 몇 초간 고민하다 말했다.“용준호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용설아는 몇 초간 멈칫하더니 말했다.“약점을 손에 잡고 준호를 협박하려고요?”“네, 저는 준호 씨가 제 친구를 괴롭힐까 봐 걱정돼서요. 만약 그가 함부로 하지 않는다면 저도 이 수법을 쓰지 않을 거예요.”나는 용설아에게 설명했다.용설아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나의 조카인 준호를 배신하란 거예요?”“당신들의 관계를 알아요. 하지만 설아 씨도 준호 씨가 하는 짓
나는 용준호가 이 요구를 제시한 것이 하나도 놀랍지 않았다. 그리고 예전에 내가 살던 집 주소지로 안리영에게 택배를 보낸 것은 나를 끌어들이기 위함이다.정말 청춘어람이라고 그의 아버지 모습을 그대로 잘 이어받았다.“먼저 무슨 일이신지 말씀해 보세요.”나는 그가 마음대로 나의 약점을 가지고 나를 협박하지 못하게 했다.그가 나를 마음대로 협박하는 것도 나의 약점이 안리영이라는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나는 그를 눈치채게 하면 안 되었다.“지원 씨, 정우가 준 물건을 내놔.”용준호는 직접적으로 말했다.나는 웃으면서 말했다.“정우 씨가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면 믿으실 수 있어요?”용준호는 가볍게 비웃으며 말했다.“지원 씨, 이러면 재미가 없어.”나는 조롱 하며 말했다.“믿지 않으셔도 말할게요. 전에 휴링턴에 있을 때 정우 씨와 제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직접 두 눈으로 보셨죠? 그러다 정우 씨가 사고 난 후 그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용씨 가문 딸인 설아 씨가 화장해 버렸어요. 정우 씨를 접촉하지도 못했는데 나에게 준 것이 뭐가 있겠어요?”용준호는 턱을 어루만지며 나를 바라보았다.용준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하게 나도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정말 정우 씨에게 뭐가 있다고 생각되면 준호 씨의 고모를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정우 씨를 제일 마지막으로 접촉한 사람이 설아 씨에요.”나는 모든 것을 용씨 가문에 떠넘겼다. 용설아가 지금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그녀가 떠안는 것이 내가 떠안는 것보다 낫다.“지원 씨의 속내를 모를 줄 알아? 나의 고모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나 보지?”용준호도 바보는 아니었다.“그건 준호 씨와 고모 사이의 일이고요. 아무튼 정우 씨는 저에게 준 것이 없어요.만약 있다고 해도...”나는 일부러 머뭇거리며 말했다.“그건 바로 정우 씨가 저에게 남긴 상처뿐이죠.”나는 손으로 가슴을 찔렀다.“여기요, 칼로 한번 갈라 볼래요?”
그녀가 온라인 쇼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의 표정에서도 알 수 있었다.나는 하루 종일 수술만 한 안리영을 대신해 택배를 받아 받는 사람 이름을 확인했더니 확실히 그녀에게 온 택배였다.“설마 또 너를 애모하는 누군가가 보낸 거 아니야?”나는 택배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안리영은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책상 위의 커터 칼로 택배를 열어보았다.나도 그녀처럼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쳐다보았지만 택배의 외부 포장을 뜯어 내부 상자를 열자 그녀와 나는 동시에 돼지를 잡는듯한 비명을 질렀다.그리고 이 비명은 계속 되였다...밖에서 이 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달려 들어와 여기저기 기어다니는 뱀을 잡을 때까지 말이다.나와 안리영은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방금 택배를 여는 순간 뱀이 툭 튀어나왔고 심지어 그 뱀이 나와 안리영의 얼굴을 스쳐지났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와 안리영은 연체동물을 제일 무서워한다. 심지어 뱀뿐만 아니라 애벌레도 무서워한다.이는 분명히 일부러 안리영이 겁먹게 하려고 협박하는 것이다.송장에 있는 배송지를 확인해 보니 내가 전에 살던 동네였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철거된 상태이기에 협박 소포를 보낸 사람은 나를 아는 사람일 것이다.이 사람은 나를 알고 있고 지금 또 안리영도 협박한 걸 보니 나는 바로 무슨 의미인지 이해되었다.안리영이 피해를 본 여자들의 일을 조사하는 것을 도운 것이 발각된 것이다. 이는 그녀더러 더 이상 참견하지 말라는 경고이다.“리영아, 미안해. 결국엔 너도 이 일에 연루됐어.”새하얗게 질린 안리영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나는 그녀에게 사과했다.내가 제일 두려워하던 일이 결국엔 일어나고 말았다.“리영아, 이 일은 여기서 그만하자. 너는 더 이상 참견하지 마. 뱀을 보낸 것을 보면 그냥 너에게 참견하지 말라는 경고야. 앞으로 더 이상 너에게 허튼짓하지는 않을 거야.”나는 안리영에게 말했다.안리영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협박 같은 거 나는 두렵지 않아.”안리영은 고집이 센
그가 나에게 할 말이란 자신의 후사에 관한 일이었다.“삼촌, 이런 말씀 하실 필요 없어요. 삼촌은 괜찮으실 거예요.”나는 그를 위로했다.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자산과 부동산 그리고 세상 물정들을 나에게 당부했다.그는 유언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와 비록 감정이 깊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이별의 아픔을 느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슬퍼하는 나를 위로했다.“지원아, 누구나 다 죽게 돼 있어. 언젠가 그날이 온다면 슬퍼할 필요 없어, 나와 외숙모는 희연이와 재회하러 간 거야, 우리 가족이 다시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함께 살 수 있어.”이제야 그가 딸을 잃은 후 얼마나 슬프고 외로웠으며 그에게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게 되었다.그는 유희연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속 깊이 담아두고 있었고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삼촌한테는 제가 있잖아요, 이젠 저한테도 가족이 삼촌밖에 없어요.”나와 그는 혈연이 있으나 늦게 만난 탓에 정이 깊지 않았다.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를 보고 나는 그가 삶에 대한 욕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그의 가족이지만 친딸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그는 딸을 찾으러 가려는 것이다.지금까지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내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무사하길 원한다면 외숙모에게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리영아, 구 교수님을 만나면 나를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봐 줄 수 있어?”나는 안리영을 찾아 그녀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외숙모가 넘어져 이렇게 된 후 의사는 심근경색이라고 했다. 이 분야는 구안석전문이었다.“알았어, 마침 요 며칠 사이에 선배가 돌아올 거야.”안리영이 흔쾌히 대답해서 나는 그녀의 안색이 어둡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잘됐네.”나는 흥분해서 말했다.심장 분야 전문인 구안석이 진소영의 심장 이식도 성공했기에 외숙모의 일도 희망이 있을 것이다.안리영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용은서를 언급했다.“은서가 너무 불쌍해. 집으로 일찍
“아니에요, 저는 단지 은서가 나에게로 빨리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에요.”함소은의 얼굴은 수척해 보였다.하지만 나는 그녀가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다.“소은 씨, 며칠도 참았는데 사흘만 더 참으세요.”나의 말을 들은 함소은은 화를 냈다.“지원 씨, 지금 무슨 뜻이에요?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는 건 아니죠?”“전 소은 씨에게 이삼일만 더 기다려달라고 하는 거예요.”나는 그녀에게 설명했다.“왜 기다려야 하는데요? 뭘 하려고 그래요?”그녀는 머리가 좋았다.나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누군가 무사하게 돌아오기를 기다리려고요.”함소은은 나를 붙잡고 말했다.“은서로 성재 씨를 맞바꾸려고 그러는 거죠?”함소은도 배성재가 무엇을 하러 갔는지 알고 있다. 나도 대범하게 인정했다.“네.”“지원 씨!”함소은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어떻게 이렇게 비열할 수가 있어요, 은서는 아직 아이일 뿐이에요.”“네, 맞아요. 은서는 당신이 딸이기도 하죠. 그런데 당신도 은서를 도구로 이용하지 않았나요?”나는 그녀에게 거침없이 말했다.게다가 윤은서도 함소은이 직접 나한테 보내온 도구였기에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던 함소은은 몇 초 후 김빠진 공처럼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이 세상에는 믿을 사람이 오직 자신뿐이네요.”나는 그녀의 인생을 꿰뚫어 본 듯한 발언을 무시한 채 차분하게 말했다.“은서는 무사할 거예요, 며칠 소은 씨와 늦게 만날 뿐이에요.”함소은은 더 말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를 데려다준 후 함소은은 떠났다. 나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음식을 주문했다. 배불리 먹고 물건을 사서 유희연의 집으로 갔다.그곳에 갇혀있는 동안 나는 꿈에서 유희연을 보았다. 비록 꿈은 무의식적인 행동이지만 나는 그녀가 나에게 무언가를 암시해 주는 것이라고 느껴졌다.유희연이 세상에서 가족은 오직 부모뿐이었기에 나는 그녀의 걱정도 그들이라고 생각
“뭔데요?”그녀의 말을 들은 안리영은 놀라지 않았다.누구든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으면 나도 그에게 보답을 원한다. 이른바 오는 것이 있어야 가는 것이 있는 법이다.“지원 씨는 제 딸을 납치한 죄를 뒤집어써야 해요.”함소은의 말을 들은 안리영은 그녀의 뜻을 이해했다.“소은 씨는 지금 이 상황을 수습하기 힘들죠?”그녀의 마음을 간파한 안리영이 말했다.함소은도 숨기지 않고 말했다.“진표 그 개자식은 은서를 매우 사랑하는 것 같지만 이 상황이 되도록 그는 조급해하지 않아요.”그녀는 자신이 딸 용은서로 용진표에게서 돈을 바꾸고 싶었지만 그는 속지 않았다. 게다가 며칠 동안 갇혀 있던 딸은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 보러 가고 싶었으나 노출이 될 것이 두려웠고 그녀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그녀는 아무 이유 없이 납치당한 아이를 돌아오게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들은 바에 의하면 용진표는 누가 자신의 딸을 납치했는지 조사 하라고 시켰고 그녀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는 최대한 빨리 은서를 무사히 돌아오게 해야 했다, 그러면 용진표도 조사를 멈출 것이다.“그러나 지원이가 죄를 뒤집어쓴다면 용 대표님이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예요.”안리영이 말했다.“진표 씨는 지원 씨 부모님께 목숨값 두 개를 빚진 것이 있기에 지원 씨가 그의 딸을 납치했다고 해도 아무 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은서가 다치지 않았기에 진표 씨는 지원 씨를 난처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함소은의 분석이 매우 정확했다.안리영은 웃으면서 말했다.“소은 씨는 얼굴이 이쁠 뿐만 아니라 지능도 좋아요.”함소은은 조롱하듯 웃었다. 만약 용진표가 그녀의 외모에 반해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의 숨겨둔 애인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정태성과 함께 연수해서 회사원이나 성공적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모든 것을 용진표가 망가뜨렸다. 이쁜 얼굴이 싫었던 그녀는 누가 그녀를 이쁘다고 칭찬하면 화를 냈다.누군가는 아름다운 외모를 밑천으로 생각하지만 그녀에게는 모든 불행의 시작이
함소은은 안리영의 말을 확신하는 듯 그녀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만약 태성 씨를 만나고 싶으시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말을 마친 안리영은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저 말고 지원이가 도울 수 있어요.”안리영을 본 함소은은 첫눈에 그녀를 보낸 것이 윤지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윤지원의 상황을 생각한 함소은은 비웃으며 말했다.“지금 지원 씨 자신도 돌볼 수 없는 상황인데 나를 도울 수 있다고요?”“지원이 이 보살이 그곳에 들어가 나랏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기회를 만들어준 소은 씨에게 감사드려야죠.”안리영은 힌트를 주었다.함소은은 안리영의 눈길을 피해 다른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랑 뭔 상관이에요?”안리영은 직설적으로 말했다.“소은 씨, 여기까지 말했으면 더 이상 시치미를 떼지 마세요. 사실 은서는 소은 씨가 사람을 시켜 데려간 거죠?”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함소은은 화를 내며 소파를 내리쳤다.“무슨 헛소리에요? 제가 왜 제 딸을 납치해요. 저...”“소은 씨는 딸로 정태성을 맞바꾸려고 그러는 거잖아요.”안리영은 그녀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얼굴을 돌린 함소은은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아니에요.”“제가 용 대표님에게는 말하지 않을게요. 두려워 마세요.”안리영은 그녀를 안심시켰다.“그럼, 이 말을 저에게 한 이유가 뭐예요?”함소은은 직접적으로 안리영에게 물었다.안리영은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지원이가 저를 보낸 게 맞아요. 지원이는 지금 그곳에서 너무 불편해서 나오고 싶어 해요.”“나오고 싶으면 경찰을 찾으면 될 것을 저를 찾아 뭐 해요?”함소은은 콧방귀를 뀌었다.안리영은 가볍게 웃었다.“소은 씨가 지원이를 그곳에서 꺼내준다면 정태성을 만나게 도와줄 거예요.”안리영의 말을 들은 함소은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갑자기 웃음을 터뜨린 함소은의 모습을 본 안리영은 그녀의 마음을 가늠할 수 없었다.“지원 씨가 나오려고 하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많을 텐데, 왜 저를 찾아오신 거죠?”함소은은 웃으면서 안리영에게
‘위선적이야!’그냥 거절하면 될 것을 방금까지 그녀와 여자 친구가 없다고 부정하던 조시언은 지금 또 여자 친구가 있다고 말했다.“못 믿겠으면 물어봐요.”조시언은 안리영을 가리키며 말했다.안리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나랑 뭔 상관이야?’사실 이쯤 되면 여인은 조시언에게 거절을 당했기에 즉시 떠나는 것이 맞으나 여인은 대답을 요구하듯 안리영을 바라보았다.안리영은 그런 그녀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조시언을 노려봤다. 이어서 안리영이 대답하려는데 조시언이 먼저 말했다.“조금 전 여자 친구랑 산부인과에 갔던 일을 물어봤어요.”안리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놀란 여인은 얼굴이 빨개서 뒤돌아 도망갔다.“삼촌은 여인들의 고백을 거절하는 법도 다양하네요.”안리영은 조시언을 조롱하며 말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조시언이 말했다.“쌀국수 왔어.”조시언이 말을 마치자 복무원이 쌀국수를 들고 왔다. 조용하게 앉아서 쌀국수를 먹던 안리영은 열심히 먹는 조시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자신도 열심히 먹었다.역시 장사가 잘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쌀국수가 정말 맛있었다. 얼큰하게 먹었던 안리영은 코끝에 땀이 났다.반면 우아하고 차분한 조시언의 모습은 마치 프랑스 파스타를 먹는 것 같았다.쌀국수를 먹은 후 조시언이 그녀와 할 말 도 다 했기에 안리영은 그와 작별했다.“삼촌, 나 먼저 갈게, 다음에 봐.”“리영아.”조시언이 귀국 후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어릴 적 그는 그녀를 항상 이렇게 불렀기에 안리영은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조시언을 바라본 그녀는 그가 말하기를 기다렸다.“나중에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직접 물어봐, 스스로 추측하지 말고.”조시언의 말을 들은 안리영은 난감했다.다시는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기에 나중은 없을 것이다.조시언과 헤어진 후 함소은을 찾아온 안리영은 문전박대를 당했다. 안리영은 전혀 놀라지 않고 그녀를 거절한 사람에게 말했다.“태성 씨가 보냈다고 소은 씨에게 전해주세요.”이 말은 확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