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은 편지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더니 입술을 깨물었다.육예찬은 그녀의 편지를 받지 않고 그저 흘깃 본 후 떠났다.박시현은 여학생의 어깨를 두드린 후 말했다.“미안하게 됐어.”그들이 몇 걸음 걸었을 때 뒤에서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선배님, 민악과가 어때서요? 민악도 음악이에요.”육예찬이 발걸음을 멈추자 박시현과 도지석은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여학생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전...... 전 이해할 수 없어요. 제가 민악과 학생이라서 서양 음악과 선배님을 좋아하면 안 되는 거예요?”육예찬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저 내가 민악을 좋아하지 않는 거야. 여자친구를 사귄다 해도 민악과 여자는 아닐거야.”여학생은 제자리에 굳었다.육예찬이 몸을 돌려 떠나자 도지석은 웃으며 말했다.“예찬아, 모든 일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야.”그는 도지석을 흘깃 보았다.“그럴 리가 없어.”박시현은 도지석을 잡아당겼다. “연애를 하려고 해도 같은 취미가 있어야 하잖아. 예찬은 민악을 싫어하는 데 어떻게 민악과 여자친구를 찾을 수 있겠어?”도지석은 잠깐 생각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그래.”박시현은 하하 웃었다.“하지만 예찬은 음악밖에 모르는 바보잖아. 내 생각엔 평생 혼자 살 거 같아.”그와 도지석은 배를 끌어안고 웃었고 육예찬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그들을 본 후 계속 걸었다.며칠 후 서울 고등학교 교장이 직접 육예찬을 찾아와 육예찬 동아리를 초대했다. 음악 학원을 대표해 공연하면서 고등학생들의 기운을 북돋아 달라는 거였다.육예찬은 음악 학원을 대표하는 일이라 생각해 바로 응낙했다.서울 고등학교 공연에서 육예찬이 있는 동아리는 음악 학원을 대표해 개막식을 치렀다. 공연이 끝난 후 그들은 백스테이지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었다.박시현은 백스테이지에서 공연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고등학생들을 발견했다. 부랴부랴 화장을 하고 있는 학생, 긴장한 얼굴로 연습하고 있는 학생로 가득했다.“고등학생들은 정말 활력이 넘쳐.”육예찬은
소녀는 다가가 간식 봉지를 받았다.“역시 의리남이야. 마침 당 떨어졌는데.”조훈은 휴대폰을 그녀에게 건네주었고 그녀는 카메라를 들고 말했다.“기념사진 한 장 찍어야지.”포즈를 취하던 그녀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둘을 바라보았다.“같이 찍어.”강성연이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저었지만 그녀는 억지로 카메라를 들이밀었다.“빨리, 예쁜 얼굴을 왜 자꾸 감추는 거야, 조훈도 같이 찍어.”세 사람은 그렇게 백스테이지에서 사진을 찍었다.이때 박시현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뭐해? 지석이가 기다리고 있어, 얼른 가자.”육예찬은 고개를 끄덕인 후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한차례 공연이 끝난 후 민악과의 차례가 되었다. 박시현은 지루해 하며 말했다.“민악이네, 또 자장가 부르는 거 아니야?”그들은 음악 학원에서 일반적으로 민악과 공연을 보지 않았다. 너무 지루하고 식상했다.도지석은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괜찮아. 요즘 불면증 심했는데 자장가 불러주면 좋지. 난 좀 잘게, 끝나면 깨워줘.”육예찬은 휴대폰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스테이지 라이트는 어두워졌다가 중간에 고전 한복을 입은 소녀에게 집중되었다.육예찬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스테이지를 흘깃 보았다. 백스테이지에서 봤던 소녀였다.스포 라이트를 받은 소녀는 아까보다 더 빛나 보였다.소녀는 접선을 흔들더니 판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웅장하고 슬픈 음악이 공연장에 울려 퍼졌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가야금과 피리, 베이스와 드럼의 소리가 섞여있었다.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소녀의 판소리와 소년의 랩은 완벽하게 어우러졌다.고전 음악과 힙합의 만남은 정말 색다르고도 멋졌다.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리자 떠나갈 듯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육예찬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손뼉을 쳤고, 박수소리에 놀라서 깬 박시현과 도지석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육예찬은 민악과 공연을 보는 횟수가 적을뿐만 아니라 손뼉을 치는 일이 없었다.육예찬 스스로도 오늘 밤 서울 고등학교 공연에서 민악에 대한 생
육예찬은 서재를 지나칠 때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아영이가 어떻게 퇴학을 당해?”라민희는 탄식하며 말했다.“모르겠어. 학교 측에서는 아영이가...... 음악 학원에 들어가려고 친구를 계단에서 밀었다고 해.”연희정은 깜짝 놀랐다.“아영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나도 아니라는 걸 알아, 아영이는 내 조카잖아. 그런 짓을 할 애가 아니야. 하지만 이 일이 아영이한테 큰 충격을 준 것 같아서 걱정돼......”라민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희정은 잔을 내려놓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럼 그 피해자의 가족들은 뭐라고 해?”“피해자 아버지는 영황 엔터테인먼트 매니저라 인맥이 넓어. 예전에 한미영의 매니저이기도 하고. 지금 피해 학생은 식물인간이 되었고 학교 측에서는 아영이한테 책임을 묻고 있어. 증인으로 나서는 학생도 없고 말이야.”“지금 아영이는 법원으로 가는 걸 싫어하고 송인후는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덮었어.”육예찬은 밖에서 한참 들은 뒤에야 떠났다. 그의 어머니와 라민희는 친구였고 라민희는 송씨 가문의 사람이었다.그는 예전부터 “아영”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처럼 음악에 재능이 있는 여자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사실 그는 어머니가 항상 이야기하던 송씨 가문 아가씨와 만나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그의 가족들이 자주 “아영”이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에 그 이름이 기억에 남았다.가끔 송인후와 라민희는 육예찬 집에서 밥을 먹기도 했다. 송인후는 항상 딸에 대한 불평을 늘여놓았고 퇴학한 후 딸이 180도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집에 물건들을 모두 바꾼 후 악기에 손도 대지 않는다고 했다.예전 그들은 항상 “아영”이가 얼마나 생기발랄하고 재능이 많은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하지만 지금은 “아영”이를 말할 때마다 골치 아파했다. 반항기에 접어드는지 걸핏하면 가출한다고 했다.그때부터 육예찬은 그녀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는 “아영”에 대해 많이 들었으나 한 번도
처음 송아영을 보게 된 건 명승희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는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포장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고 소음이 싫어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그가 테이블에 놓인 잡지를 보고 있을 때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강미현, 너 뭐 하려는 거야? 여기는 레스토랑이라고, 미쳐도 곱게 미쳐. 다른 사람 식사하는 걸 방해하지 말고.”큰 소리에 육예찬은 좀 기분이 상했다.곧 웨이터의 말리는 소리가 들렸고 한 여자가 욕설을 퍼부었는데 아주 저속했다.그는 잡지를 테이블에 던진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쪽으로 다가갔을 때 한 여자가 맞은편에 앉은 여자한테 커피를 뿌렸다.“이모!” 선글라스를 쓴 남자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선글라스를 벗은 남자아이의 얼굴을 본 육예찬은 좀 놀랐다.음악 학원에서 본 아이잖아? 강시언이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그는 곧 남자아이의 행동에 놀랐다. 그는 테이블에 놓인 물을 맞은편 여자에게 뿌렸다.여자는 씩씩거리면서 일어서더니 손을 들었다.“이 빌어먹을 놈이......”강시언 곁에 있던 여자는 일어서서 앞을 가로막았다. 육예찬은 재빨리 다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은 후 이어폰을 뺏다. 그는 물을 맞고 메이크업이 엉망이 된 여자를 보며 말했다.“당신 어린애한테 뭐하려고 하는 거야?”강시언은 음악 학원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는 못 본척 할 수 없었다.또한 그는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땡땡이를 쳤다는 사실에 격분하고 있었다.육예찬은 고개를 돌려 커피를 닦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엄마가 어떻게 애가 땡땡이치는 걸 내버려 둬요?”여자가 고개를 든 순간 그는 왠지 익숙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여자는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저한테 말하는 거예요?”그는 여자를 흘깃 보며 대답했다.“귀머거리가 아니면 이해했을 거라 생각해요.”여자는 좀 화나 보였다.“뭐라는 거예요, 미친 사람인 건가?”육예찬은 처음으로 여자한테 욕을 먹었다.이때 강시언이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이모, 화내지 마요. 저 미슐
그의 기억 속 송아영은 서울 고등학교 공연 때에 머물러있었다. 그때 그녀의 무대는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었다.그는 레스토랑에서 강미현이 확실히 그런 짓을 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강미현의 실체를 아직 밝히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강미현을 너무 난처하게 할 수 없었다.“쌍방 모두 잘못이 있으니 개인적으로 처리하면 돼요. 이런 장소에서 다툴 필요는 없잖아요.”송아영은 그를 바라보았다.“저기요, 혹시 시력이 안 좋은 거 아니에요? 어떻게......”송인후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송아영, 한 마디만 더하면 집에 가서 아주 혼날 줄 알아!”강미현이 그에게 사과했지만 육예찬은 무시했다. 그는 송아영의 부어오른 볼을 보면서 왜서인지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반지훈과 강성연이 나타나자 송아영은 억울한 표정으로 강성연에게 애교를 부렸다.“성연아, 왔어?”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강미현에게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 마치 자신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왔다는 걸 과시라도 하는 듯이. 이에 육예찬은 참 멍청하면서도 귀여운 여자라고 생각했다.그 후로 송아영을 볼 때마다 그는 참지 못하고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를 화나게 하면 왠지 기분이 좋아졌고 꼬리털을 세우고 씩씩거리고 있는 고양이를 보는 것 같았다.그는 선보는 건 거절했지만 어머니가 송씨 가문과 약혼 약속을 한 건 거절하지 않았다.연희정은 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집에서 억지로 시키는 결혼은 싫다고 했잖아? 선은 거절하더니, 약혼은 괜찮아?”그는 책을 내려놓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낯선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낫잖아요.”당연히 그건 핑계에 불과했다.그는 송아영이 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이렇게 말했다.“약혼을 했으니 서로 알아가야겠어요.”연희정은 그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너희들 마음대로 해.”원래 빠른 속도로 송아영을 속여 결혼식을 치르려고 했으나 강성연의 일 때문에 결혼식이 3년이나 연기되었다.3년 동안 그는 강성연을 찾는다는 핑계로 송아영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는 밤 내내 자지 못했다. 조금만 신경 쓰지 않으면 송아영은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그렇게 육예찬은 그녀가 깨어날 때까지 지켰다.“깨어났어요?”그는 아주 피곤했지만 티 내지 않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아주 잘 자던데요.”“육예찬, 당신이 어떻게 우리 집에 있어요?”그녀는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당신이...... 옷을 갈아입혀준 거예요?”그녀의 경악한 표정을 본 그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부인하지 않았다.“당신한테 무슨 볼거리가 있다고 그래요?”“나쁜 놈!”그는 송아영이 던진 베개를 받았다.“어제 내 옷에 엄청 토했어요. 명의상 내 약혼녀가 아니었다면 길에 버렸을 거예요.”베개를 돌려준 육예찬은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렸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성연이는 어디 있어요?”송아영은 미간을 찌푸렸다.“그것 때문에 밤 내내 여기 있었던 거예요?”그는 답하지 않았다.그것 때문이 아니었기에.하지만 송아영이 고맙다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자 육예찬은 좀 불쾌했다. 역시 생각이 없는 여자야.옛 추억에서 정신을 차린 육예찬은 송아영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박시현과 도지석이 그녀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그녀는 깔깔 웃고 있었다.이때 박시현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예찬아, S국에 얼마나 있을 거야?”육예찬은 송아영을 바라보았다.“아영이가 있는 만큼.”박시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송아영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내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건가?송아영은 입술을 깨물었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렇게 말했다.“빨리 가야 결혼식 올리지.”멍해진 육예찬을 보며 송아영은 말을 이었다.“성연이랑 약속했단 말이야.”박시현과 도지석은 놀란 눈빛으로 물었다.“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어요?”송아영은 고개를 숙이고 어색하게 웃었다.“네.”육예찬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얼른 돌아가서 결혼식을 준비해야겠어.”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박시현과 도지석을 바라보았다.“너희 둘도 Z국에 가야겠는걸.
그녀는 깜짝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음식하고 있잖아요.”반지훈은 낮게 웃었다.“응, 위층에서 좋은 냄새를 맡았어.”“그렇죠. 내 요리 솜씨도 느는것 같아요.”강성연은 숟가락으로 맛본 후 그에게 건네주었다.“맛 좀 봐줘요.”반지훈은 그녀의 입술에 뽀뽀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정말 달콤해.”“당신......”강성연은 빨개진 얼굴로 그를 밀쳤다.“정말 변태라니까.”그는 웃으면서 강성연을 돌려세웠다.“이제야 내가 변태인 걸 안 거야?”그는 가스레인지 불을 끈 후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강성연은 또 그의 미색에 홀려 거절하지 못했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언젠가 당신의 손에 죽을 것 같아요.”반지훈은 낮게 웃으며 그녀에게 속삭였다.“죽어도 내가 먼저 죽어. 당신이 이렇게 섹시하니 말이야.”… 반지훈은 그녀를 의자에 앉히고 이마에 입을 밎췄다.“앉아있어. 내가 준비할게.”반지훈이 뜨거운 요리를 테이블에 올리자 많은 체력을 소모한 강성연은 조급하게 젓가락을 들었다.반지훈은 그녀에게 국 한 그릇을 떠주며 말했다.“국부터 마셔.”강성연은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세 살짜리 애인 줄 알아요?”그는 턱을 괴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내 앞에서는 그래도 돼.”테이블에 올려놓은 반지훈 휴대폰이 울렸다. 안지성의 전화였다.전화를 받은 반지훈은 안지성과 몇 마디 나눈 후 전화를 끊었다. 곧 강성연이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반지훈은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안지성 딸이 깨어났대.”강성연은 멍해졌다.11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지낸 사람이 진짜 깨어났다고?그녀는 웃으며 휴대폰을 꺼냈다.“얼른 이 좋은 소식을 아영이한테 알려줘야겠어요.”......서울 공항.송아영과 육예찬은 비행기에서 내리기 바쁘게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반지훈과 강성연이 복도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송아영이 헐떡거리면서 달려왔다.“정말 깨어난 거야?”강성연이 방 안을 보라는 눈짓을 했다.송아영이 방 안을 바라보니 안예지가 아버지
육예찬은 그녀의 어깨를 그러안았다.“먼저 갔어.”“그렇다면 우리는......”송아영이 눈을 깜박거리자 육예찬은 그녀를 안으면서 웃었다.“당연히 집에 돌아가 결혼 이야기나 해야지.”송아영은 그의 목을 그러안았다.“난 아주 로맨틱한 식을 올리고 싶어.”육예찬은 웃었다.“그다음에는?”송아영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그리고 화려한 마차도 있어야 해!”육예찬은 약속했다.송아영은 또 손가락을 꼽이면서 말했다.“결혼하면 날 괴롭히면 안 돼. 다퉈도 항상 양보해야 하고 다른 여자랑 눈도 마주치지 마.”그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언제 다른 여자랑 눈을 맞췄다고 그래?”송앙영은 멈칫하다가 그를 보며 말했다.“앞으로 말이야. 다들 남자는 결혼하면 마음이 바뀐다고 하잖아. 만약 내가 임신해서 살이 찌고 못생겨지면......”육예찬은 고개를 숙여 조잘거리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한참 후 그는 입술을 떼면서 말했다.“그래도 좋아. 이렇게 귀여운 딸을 내가 싫어할 리가 없잖아.”송아영은 이상함을 느꼈다.“귀여운 딸?”육예찬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웃자 송아영은 눈치채고 그를 때렸다.“누가 네 딸이라는 거야?”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딸처럼 예뻐해주잖아.”송아영은 깔깔 웃으면서 귓속말을 했다.“아빠.”“......”며칠 후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자 송씨 가문, 육씨 가문, 구씨 가문은 모두 결혼식을 위해 바삐 보내고 있었다. 당연히 반씨 가문도 분망했다.세 가문이 동시에 결혼식을 치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송아영은 탈의실에서 허리를 조르다가 하마터면 숨이 끊어질 뻔했다.“허리에 살 쪘어.”곁에서 화장하던 강성연은 그녀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오빠가 그동안 좋은 걸 많이 먹였나 봐.”“내가......윽, 살살, 살살 좀 해요.”숨을 크게 들이쉰 송아영은 드디어 드레스를 입고 거울을 비췄다.“왜 하필 허리에 살이 찌는 거야. 가슴에 살이 찌면 얼마나 좋을까?”강성연이 비웃자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