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항상 유희 씨 곁에 있을게요.” 표원식이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나한테 말해줘야 해요.” 원유희는 입술을 깨물며 눈을 떨구고 말을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후 원유희는 약간 멍해졌다. ‘표원식이 지금 내가 아이들의 일을 알고 있는지 떠보는 것 같아. 인터넷이 발달해서 소식을 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만약에 김명화가 원유희를 위로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참지 못하고 물어봤을 것이었다. 원유희는 서재로 돌아갔다. 서재의 책상 위에는 컴퓨터가 있었다. 그녀는 가지고 온 USB를 컴퓨터에 꽂고 안에 있는 동영상을 클릭하자 아이들의 부드럽고 작은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의 귀여운 소리를 들은 원유희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엄마 곁에 있을 때 그렇게 즐거워했는데, 난 그들을 포기하고 혼자 떠날 수밖에 없다니.’ 원유희의 마음은 칼로 찌르는 것같이 아팠다. 그녀는 어떻게 마음속의 아픔을 완화시켜야 하는지 몰라 그저 서재에 앉아 하염없이 동영상속의 세 아이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많이 저장해서 그녀는 보고 또 보았다. 원유희는 핸드폰을 멀리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핸드폰 홈페이지에 들어가 제성의 뉴스를 검색했다. 아이들을 찾았다는 뉴스에 원유희가 기뻐하기도 전에 다음 뉴스가 그녀의 마음을 바닥으로 가라앉게 했다. ‘아이들을 찾았지만……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목숨이 위태롭다고?’ 원유희는 놀라서 손을 계속 떨었다. 얼굴색이 창백하고 혈색이 없어 입술색깔마저 옅어졌다. ‘이…… 이것도 김신걸의 음모일까? 그런데 아무리 음모라고 해도 어떻게 아이들을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어? 나라면 정말이 아니라고 해도 이렇게 말 못 할 텐데. 혹시…… 이게 정말 아닐까?’ 이때 드론이 베란다로 날아들어와 붉은 불이 반짝이며 방과 원유희를 비추었다. “유희야.”원유희가 얼굴을 들어 보니 드론 한 대가 방에 나타났다.
원유희는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의 마음속엔 확실한 답이 생겼다. 그건 바로 무조건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네가 돌아간다고 해도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없어.” 김명화가 말했다. 원유희는 눈을 크게 뜨고 무언가가 생각난 듯 물었다. “그 말은…… 아이들이 정말로 사고가 났다는 말이에요?” “아직 확실하지 않은 일이니 더욱 진열이 흐트러져서는 안 돼.” 김명화의 목소리가 드론을 통해 차갑게 전해왔다. “김신걸이 너의 이런 심리를 아니까 그렇게 한 거야.” 원유희는 망연자실했다. “그…… 그럼 송욱을 찾아요! 그녀라면 알려줄 거예요. 이번에 도망갈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녀 덕분이에요.” “그건 좋은 생각인 것 같아.” “내가 전화할게요.” 원유희는 핸드폰을 들고 동작을 멈췄다. “내가 송욱의 전화번호를 기억 못 해서 교장선생님한테 물어봐야겠어요!” 원유희는 표원식에게 전화해서 전화번호를 물은 후 바로 송욱에게 전화를 했다. 송욱은 중환자실에서 세 쌍둥이에게 메스의 역할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세 쌍둥이는 작은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열심히 듣고 있었다. 잠시 후, 조한이 물었다. “우리에게 공부시키려고 여기에 자라고 한 거예요?” 그러자 유담도 물었다. “아직도 오래 배워야 해요?” 상우도 따라 물었다. “우린 엄마가 보고 싶은데, 엄마는 어디에 갔어요?” 그들은 엄마가 왜 계속 사라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송욱은 표정이 약간 변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빠가 너희한테 말 안 해줬어?” “아빠가 엄마 출장 갔대요.” 유담이 말했다. “하지만 왠지 이상한 것 같아요.” 송욱은 세 아이가 너무 총명해서 속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잘못 대답했다가는 세 아이의 의심을 살 것 같았다. “나는 단지 의사라서 사모님의 행방에 대해서는 몰라. 하지만 걱정하지 마, 사모님이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제일 먼저 알게 될 테니까. 내가 알게 되면 너희에게도 알려줄게.” 송욱은 아이들에게
지금 제성의 모든 언론에서 세 쌍둥이의 일을 보도하고 있어서 이미 국제뉴스로 변했다. 일이 커져갈수록 원유희를 도와줬던 송욱은 걱정되기 시작했다. ‘만약 김신걸에게 원유희를 도와줬다는 걸 들키게 된다면, 의료계에서 봉쇄당하는 건 둘째치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송욱은 애초에 한 일을 후회하며 원유희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약해져서 김신걸을 배신했는데 일이 점점 커지니 송욱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때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울렸다. 송욱은 낯선 번호를 보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송 선생님, 저예요.” 원유희의 다급한 목소리가 핸드폰으로 들려왔다. 송욱은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김신걸이 바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심지어 김신걸의 차가운 시선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순간 송욱은 가슴이 무너질 것 같았다. “어느 환자야?” 송욱은 재빨리 반응해서 물었다. 원유희는 송욱의 말을 듣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채고 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고 감히 숨도 쉬지 못했다. 왠지 숨만 쉬어도 김신걸에게 들킬 것 같았다. “알았어, 지금 갈게.” 송욱은 몇 초 동안 멈췄다가 말했다. 그리고는 전화를 끊고 돌아서서 평온한 표정으로 김신걸에게 말했다. “김 대표님, 저는 환자를 보러 이만 가볼게요.” 밖으로 나간 송욱은 그제야 긴장이 풀려 길게 숨을 내쉬면서 병실로 갔다. 환자를 보러 간다고 했으니 일이 없어도 한 번 가야 했다. 환자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송욱은 화장실에 들어가서 핸드폰을 꺼내 방금 전화 왔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송선생님, 방금…….” 원유희는 그 남자의 이름을 부르기도 두려웠다. “방금 김신걸이 옆에 있었어요.” “그가 병원에 있어요? 그럼…… 아이들이 정말로 사고가 난 건가요?” 원유희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전화한 것이었다. 김신걸도 병원에 있다는 말을 들은 원유희는 그 언론들이
‘김신걸은 왜 날 놓아주지 않는 걸까?’ “됐어요, 그만 얘기해요. 김 대표님이 아직 병원에 있어서 너무 오래 통화하면 의심받을 거예요.” “네.” 원유희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무기력하게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아이가 무사하다고 하니 그녀는 초조했던 마음을 놓았지만 송욱의 말이 그녀를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죽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니…….’ 그 말은 저주처럼 원유희의 마음을 조여와 숨이 막히게 했다. ‘왜 꼭 나여야만 하는 거야? 김신걸의 곁에는 윤설도 있잖아.’ 송욱이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들어온 사람은 윤설이었다. 그녀는 처음 찾아온 게 아니었다. 윤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송욱이 먼저 말했다. “윤설 씨, 아무리 찾아와도 난 당신을 중환자실에 데리고 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 날 찾아와도 소용없어요.” 윤설은 사 온 물건을 송욱의 책상 위에 놓고 말했다. “송 선생님이 오해하셨어요. 나는 단지 아이들에게 물건을 전달해 주러 온 거예요. 그들이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송욱은 책상 위에 놓인 영양품과 아이들이 놀기에 적합한 여러 가지 장난감을 보고 말했다. “물건은 전달해 줄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윤설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더 이상 귀찮게 굴지 않고 떠났다. 송욱이 중환자실로 갈 때 마침 김신걸이 나왔다. “김 대표님, 윤설 씨가 아이들의 선물을 가져왔는데 가지고 들어갈까요?” “버려.” 김신걸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바로 갔다. “네.” 윤설은 간다고 하고 주차장의 롤스로이스 옆에서 기다렸다. 김신걸의 그림자를 본 그녀는 슬픈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신걸 씨, 아이들은 괜찮아? 너무 걱정돼서 왔어. 하지만 중환자실은 병균을 데리고 들어갈까 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고 해서, 나한테 알려주면 안 돼? 알면 마음이라도 놓일 것 같은데.” “상태 안 좋아.” 김신걸은 차갑게 말했다.“아…….” 윤설이 놀라서 소리 지르더니 김신걸을 위로했다. “걱정
“윤설 아가씨, 감사합니다.” “그 약을 쓰기 잘했나 봐. 원유희를 죽이진 못했지만 어쨌든 여기에서 사라지게 했잖아.” 윤설은 말하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녀는 어전원의 공기가 다른 곳보다 맑고 고급진 것 같았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어전원의 내부환경을 여러 장 찍고 셀카도 한 장 찍었다. 그리고 잠깐 생각하더니 임민정보고 어전원을 배경으로 전신사진을 한 장 더 찍어달라고 했다. 임민정은 핸드폰을 들고 포즈를 취한 윤설을 찍으며 입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걸 찍어서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그래? 혼약 퇴짜 맞은 중고품 주제에, 김 대표님은 절대로 널 좋아할 리가 없다고.” 하지만 윤설은 당연히 이런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즐거운 표정으로 포즈를 취했다. 다 찍은 후에 핸드폰에 찍힌 사진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계략을 품었다. 윤설은 원유희가 도망가서 어전원에 새로운 여주인이 생겼다고, 그리고 아무도 그녀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또 거실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집에 돌아와서 그녀는 사진을 수정하여 결국 셀카 한 장만 자신의 계정에 올렸다. 고건은 권위가 제일 높은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업무를 보고한 뒤 윤설이 올린 사진을 말했다. 김신걸은 서리를 덮은 것 같이 차가운 얼굴을 한 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가 기대하는 건 원유희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결국, 아이들과 윤설은 모두 원유희를 나타나게 하지 못했다. 김신걸의 인내심은 매일 폭발하기 직전에 처해 있었다. 그는 갑자기 일어나 눈을 붉히며 마귀같이 책상 위의 물건을 전부 바닥에 쓸어버렸다. “지금 어디 있어?” 김신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화풀이를 하지 못해서 울부짖는 짐승같이 말했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을 거야.” 고건은 고개를 숙였다. 그는 김 대표님이 누구를 말하는 건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김 대표님에게 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원유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언론에서 일주일 가까이 보
바로 이때 책상 위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김신걸이 음산한 눈빛으로 화면의 번호를 보니 외국의 낯선 번호였다. 그의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는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받았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핸드폰을 잡고 있는 손에 핏줄이 곤두섰다. “김 대표님?” 여자의 목소리지만 원유희는 아니었다. 김신걸은 먹구름같이 음험한 눈빛으로 말했다. “당신이 나한테 전화할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으면 좋겠어.” “난 원유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이 이유는 어떤지?” 김신걸의 눈동자가 움츠러들더니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주소 대.” “하지만 나에겐 조건이 있어.” “말해.” “만약 내가 원유희의 거처를 알려준다면, 우리 표씨 가문, 특히 우리 아들 표원식을 용서해 줄 수 있어?” 나수빈이 물었다. “만약에 그럴 수 없다면 내가 전화 안 한 걸로 하지.” 김신걸의 눈빛은 흉악하게 변했다. “당신 지금 나와 조건을 얘기하는 거야?” “조건보다는 거래지.” 지금의 김신걸은 단지 원유희를 잡아오고 싶을 뿐 그 후에 일어날 일은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말해 봐, 하지만 내가 만족해야 해.” “내 아들이 원유희를 만나고 있어. 원유희가 도망갈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아들이 도와준 거야. 하지만 원유희가 울며불며 우리 아들에게 부탁을 해서 마음이 약해져 잘못 선택한 길이니 이 점 고려해 줬으면 해.” 나수빈은 모든 잘못을 원유희에게 덮어 씌웠다. “내 인내심이 많지 않으니까 쓸데없는 소리는 작작해!” 김신걸은 지금 주소를 알아내서 당장 사람을 잡아오고 싶었다. “다음에 표원식이 원유희를 만나러 가면 내가 당신 부하들 보고 따라가라고 할게.” “그는 어떻게 내 사람들을 따돌린 거야?”김신걸이 중점을 골라 물었다. “우리 아들 서재에 암실이 있어. 암실이 다른 거리로 통하기 때문에 당신 부하들이 발견을 못한 거야.” 김신걸은 실눈을 뜨고 숨을 내쉬었다. ‘그런 거였구나. 기발한 방법이긴 하네.’ “이제 됐어
그들은 수양이 있는 가정이라 모두 말을 하지 않고 식사할 때의 가벼운 동정만 들렸다. 표원식은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 온몸에 교양과 침착함이 배어 있었다. “원유희와는 어떻게 지내?” 나수빈이 물었다. 표원식은 부모님이 식탁에서 이런 화제를 꺼낼 줄은 생각지도 못해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부모님을 존중하는 마음에 대답했다. “괜찮아요.” “원유희도 너랑 함께 있기를 원해?” 나수빈이 계속 물었다. “그녀만 원하고, 김심걸을 완전히 잊을 수 있다면 나랑 네 아버지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건 아니야.” 표원식은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의 부모님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아버지가 동의한다고요?” “동의하지 않으면 어떡해?” 표원식의 아버지는 위엄 있는 말투로 말했다. “우리가 반대하면 네가 말을 듣긴 할 거니?” 부모님은 30세의 표원식을 마치 말을 듣지 않는 어린아이를 꾸중하듯 말했다. 그리고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다시는 김신걸 곁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나도 기사 봤어! 김신걸의 아이가 사고 났다며, 그런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 그런 여자는 받아들일 수 없어.” 표원식의 아버지는 엄숙하게 말했다. 나수빈은 표원식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손으로 표원식의 아버지를 살짝 밀어서 그에게 냉정하라고 일깨웠다. 왜냐하면 그들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유희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거지?” 나수빈이 물었다. “없어요. 그녀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제성을 떠난 거니까요.” 표원식이 말했다. “그럼 됐어.” 나수빈이 잠깐 멈칫하더니 계속 말했다. “하지만 김신걸의 통제에서 도망치다니, 그녀도 참 대단해. 너흰 그때 어떻게 연락하게 된 거야? 김신걸이 발견 못했어? 난 김신걸이 뭐라도 알아낼까 봐.” “알 수 없어요.”표원식이 말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 표원식의 아버지가 물었다. “네가 사실대로 말해야 우리가 부모로서 널 도와줄 수 있는 거야.”
“나는…….” 송욱이 모른다고 말하려고 할 때 김신걸이 냉혹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 “잘 생각하고 말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김신걸의 말을 들은 송욱은 감히 함부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원유희를 도와줬다는 걸 알아챈 건가? 만약 발견했는데 내가 거짓말을 한다면 그땐 정말로 죽을지도 몰라. 김신걸은 절대로 의미 없는 일은 하지 않으니까…….’ 송욱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말했다. “내가 연락하는 걸 도와줬어요…….” 말이 끝나자 김신걸은 일어나 책상 위의 유리겁을 들었다. 송욱이 놀라서 숨을 들이켤 때 유리컵이 펑하고 그녀의 머리에서 깨졌다. “아!” 송욱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넘어졌다. 그녀는 머리가 어지럽고 얼굴이 창백해져 기절할 것 같았다. 피가 머리에서 흘러내려 그녀의 얼굴로 해서 바닥에 떨어졌다. 송욱이 머리를 흔들자 구역질이 났다. 그녀는 바로 뇌진탕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김신걸은 송욱이 여자이고 자신의 개인 의사라는 걸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넌 나의 개인 의사로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 김신걸은 포악한 얼굴로 송욱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가 죽고 싶다면 내가 지금이라도 보내줄 게.” 송욱이 비록 뼈대가 있었지만 죽고 싶진 않았다. 특히 김신걸 앞에서는 억지로 버틸 필요가 없다. “김 대표님, 사모님이…… 너무 불쌍했습니다. 김 대표님께서 조금이라도 잘해줬다면, 매번 다치게만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마음이 약해지진 않았을 겁니다. 나는 사모님이 멀리 떠나서 냉정을 취하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있는 한 나중에 꼭 돌아올 거라고 믿었어요.” “네가 감히 내 일에 참견해?” 김신걸은 호흡이 걸칠고 눈이 빨개져서 물었다. “아니에요, 내가 어떻게 감히 김 대표님의 일에 참견하겠어요? 죄송합니다. 나도 내가 한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다만 사정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송욱은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