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깊은 밤, 정적이 감돌던 승상부에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고 그 소리는 잠을 자고 있던 많은 사람을 깨웠다.낙월영도 눈을 번쩍 떴다. 무슨 소리지?그녀는 저도 모르게 아노를 부르려 했으나 오늘 밤 그들은 홀로 방 안에 있어야 하고 절대 나와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지켜야 했다. 그리고 아노는 정원에 있지도 않았기에 그녀를 부른다고 해도 듣지 못할 것이었다.주위는 어두컴컴했고 낙월영은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몸을 일으켜 촛불을 밝혔다. 어둡지 않으면 그렇게 두렵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녀가 촛불 앞에 서는 순간, 그림자 하나가 돌연 그녀의 방문 앞에 나타나더니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쾅쾅쾅—그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낙월영은 그 장면에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구석 쪽으로 가서 몸을 덜덜 떨었다.문 앞에 나타난 뚜렷한 그림자는 미친 듯이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낙월영은 극도로 무서워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아버지…”“아악—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내가 죽었어!”낙청연은 두 손을 번쩍 들고 실성한 듯이 문을 두드렸고 요란한 소음에 낙월영은 몸을 잔뜩 움츠리며 눈을 질끈 감고 감히 그곳을 쳐다보지 못했다.낙청연은 낙월영이 겁에 질려 있으리라 생각하고는 서서히 몸을 내리더니 조용히 사라졌다.더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낙월영은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사라진 건가?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고, 손을 덜덜 떨면서 초를 밝히려 했다.그런데 성냥을 들고 몸을 돌리는 순간 창밖에 누군가 서 있었다.그 순간 낙월영은 머리털이 쭈뼛 섰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더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창밖의 사람이 손가락을 내밀더니 조심스럽게 창호지에 구멍을 뚫은 것이었다.낙월영은 등허리가 오싹했다. 바깥의 달빛 때문에 그녀는 문밖에
“도사님, 어떻게 됐습니까? 그 요사스러운 물건을 퇴치하셨는지요?”사기꾼 도사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보통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승상부에서 내쫓기는 했으니 괜찮을 것입니다.”그 말에 낙해평은 안심했고 곧바로 낙청연의 방을 바라보며 말했다.“제 딸은 어떻게 됐습니까?”“어제 따님은 악령 때문에 많이 고단했을 것입니다. 이제 잠자리에 드신 것 같은데 깨어나면 괜찮을 겁니다.”그 말에 낙해평은 마음이 놓였다.“그럼 다행이군요. 도사님께서는 며칠 더 묵다 가시지요. 이 사특한 것이 다시 돌아오지 않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보상은 넉넉히 드리지요.”“알겠습니다.”도사는 넉넉히 챙겨주겠다는 말에도 평온한 표정을 해 보였고 그에 낙해평은 그가 능력이 대단하겠다고 생각했다.어차피 그 돈은 낙청연에게 줘야 하는 것으로 도사는 돈을 챙길 수가 없었다. 그는 다만 이번 일을 끝내고 난 뒤 낙청연이 그의 재앙을 해결해줬으면 했다. 아무리 돈이 중하다고 해도 목숨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낙청연은 밤새 자지 못했다. 조상님의 묘지에 찾아가 무덤을 파헤쳤고, 귀신에 씐 척하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해야 했으니 그녀는 극심한 피로로 인해 저녁까지 잤다.깨어나 보니 사기꾼 도사는 또 그녀에게 은표를 잔뜩 건네줬다.“이건 대사님의 부친께서 준 것입니다. 전 단 한 푼도 챙기지 않았습니다.”낙청연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돈을 건네받으며 물었다.“저택 안의 상황은 어떠했느냐? 우리 아버지가 또 뭐라고 하셨느냐?”“어젯밤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대사님의 부친께서는 하룻밤 사이에 흰 머리가 많이 자라셨고 둘째 아씨께서는 너무 놀란 탓에 앓아누우셔서 의원이 왔다 갔습니다.”그 말에 낙청연은 참지 못하고 웃어 보였다. 쌤통이었다.하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체력이 좋지 않아서 그 정도였지, 아니었으면 오늘 밤 하루 더 그들을 괴롭혀서 그들이 매일 편히 잠들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가법이라면서 받았던 처벌과 폭력에 비하면 그 정도 벌은 아무것도
어렴풋이 잠에서 깨어난 낙청연은 낙월영을 보자마자 경계했다.“무슨…”낙청연은 곧바로 흐느껴 울면서 입을 열었고 그녀의 말허리를 잘랐다.“동생아, 왜 이렇게 초췌해진 것이냐? 어젯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꼴이 됐느냐? 모두 이 언니 탓이다.”낙월영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정원에 서 있던 아노는 낙청연의 말을 듣고는 한시름 덜었다. 아노는 낙청연이 정말 귀신에 씌었었다고 믿었고 지금은 살풀이해서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낙청연은 약이 담긴 뜨거운 그릇을 만지더니 탕약을 한 숟가락 떠서 낙월영에게 먹이려 했다.“동생아, 얼른 약을 먹거라.”낙월영은 미간을 잔뜩 구긴 채로 낙청연을 노려보았고 아노를 부르려고 입을 달싹였다.그런데 낙청연이 미소 띤 얼굴로 뜨거운 탕약을 억지로 낙월영의 입안에 집어넣었다.“동생아, 얌전히 약을 먹어야지. 그래야 빨리 낫는단다.”뜨거운 탕약이 들어가자 낙월영의 입안에 곧바로 물집이 잡혔다. 낙월영은 힘겹게 허약한 몸을 지탱하며 아노를 부르려 했지만 입을 연 순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지초가 재빨리 반응하면서 낙월영을 제압한 것이었다.낙월영은 여러 차례 왕비를 해치려 했던 적이 있어 이 틈을 타서 복수할 생각이었다.낙청연은 칭찬하는 눈빛으로 지초를 한 번 바라보더니 계속해서 탕약을 떠 낙월영의 입안에 억지로 넣었다.낙월영은 저항하면서 소리를 지르려 했는데 돌연 낙청연이 목청을 높이면서 입을 열었다.“난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단다. 전혀 의식이 없는 상태였어. 내가 깨어나고 나서 그 도사가 어젯밤 얘기를 들려준 덕에 알게 되었단다. 내가 의식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널 놀라게 했으니 너무 날 탓하지 않았으면 한다. 네가 얼른 약을 먹고 일찍 나아야 내 마음이 편해질 것 같구나.”낙청연은 그 말과 함께 아주 뜨거운 탕약을 낙월영의 입안으로 계속 넣었다. 얼마나 뜨거운지 낙월영은 입가가 벌겋게 되어있었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억울하고 분하다는 듯이 낙청연을 노려보고 있었다. 살
지초는 화상에 바르는 약을 가져왔고 바늘을 들고 조심스레 물집을 터뜨리고는 약을 바르고 상처를 싸맸다.—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자 낙해평이 씩씩거리면서 찾아왔고 낙청연은 몸을 일으켜 그를 맞이했다.“아버지.”낙해평은 노여움이 가득해서 걸어오더니 손을 들어 낙청연의 뺨을 힘껏 때렸다.짝—매서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낙청연은 뺨을 맞고 입가가 터져서 피를 흘렸다.그 순간 낙청연의 차가운 눈동자에 살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눈을 감으면서 화를 가라앉혔다.그리고 고개를 드는 순간, 그녀는 더없이 맑은 눈빛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이, 또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아버지…”낙해평은 여전히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모른 척하지 말거라! 네 동생의 입안에 물집이 가득 잡혔던데 네가 한 짓이지? 월영이는 하마터면 목소리를 잃을 뻔했다. 알고 있느냐? 난 네가 귀신에 씌었다고 생각해 살풀이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사실 너는 음흉하고 악랄한 마음을 먹고 네 동생을 죽이려 했던 것이구나!”낙청연은 억울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눈물을 떨구면서 말했다.“아버지, 그전에 있었던 일들이 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제 설명을 들으려 하지도 않으시고 곧바로 저에게 손찌검하시다니요? 아버지께서는 절 가장 아끼지 않으셨습니까?”낙청연이 억울함을 토로하자 낙해평은 머리가 아팠고 또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그래. 너 또한 내 딸인데 내가 어찌 널 아끼지 않겠느냐? 하지만 지금은 예전이랑은 다르지 않느냐? 네가 이 꼴이 되어서 나는 내 동료들에게 비웃음을 당해야 했고 승상부는 체면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나 또한 마음이 아프지만 지금 나한테는 월영이 밖에 없어. 그러니 상황을 좀 파악하거라. 월영이를 그만 질투하라는 말이다.”낙해평은 공교롭다는 듯이 말했고 그의 목소리에는 원망도 조금 섞여 있었다.낙청연이 이 꼴이 된 것을 원망하고, 낙청연 때문에 체면이 깎인 것을 원망하고, 낙청연이 승상부를 승승장구하게 만들지 못한 것을 원망했다.
낙해평은 몸을 돌려 낙청연을 바라보면서 잠시 주춤했다.낙해평의 뜸을 들이는 모습에 낙청연은 알 수 있었다. 낙해평은 낙청연이 저택에서 살풀이해서 정상이 된 다음 섭정왕에게 왕비를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사실 그는 낙청연을 다시 섭정왕부로 보낼 생각이 없었다.“네가 어릴 때부터 섭정왕을 좋아했다는 걸 이 아비는 알고 있다. 하지만… 네가 지금 이 꼴이니 섭정왕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구나.”낙해평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가 월영이 대신에 시집간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었으니 난 월영이를 왕부로 보낼 생각이다.”낙청연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낙월영이 섭정왕비가 된다면 그녀는 부진환이 자신을 총애한다는 점을 이용해 섭정왕의 권세를 누리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낙청연은 어머니의 유물을 되찾는 건 물론 살아있는 것조차 힘들게 될 것이다.낙월영은 반드시 자신을 죽이려 할 것이다.낙청연은 고개를 숙이면서 억울한 듯 훌쩍이며 말했다.“아버지, 제가 승상부에 영광을 안겨드리라 장담합니다.”낙청연의 억지로 울음을 참는 모습에 낙해평은 마음이 잠깐 약해졌다.게다가 조금 전 자신이 오해하여 낙청연에게 손찌검했으니 후회도 됐기에 낙해평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답했다.“그래, 그럼 내일 사람을 보내 널 섭정왕부에 데려다주마.”낙청연이 얌전히 자신의 말을 따른다면 그녀가 섭정왕부에 시집가는 것이 아예 쓸모없는 일은 아니었다.월영은 외모도 출중하고 재능도 많았다. 예전에 한 고승이 말하길 황후가 될 상이라고 했었다. 월영이 섭정왕부에 시집가지 않는다면 어쩌면 황후가 될지도 몰랐고, 그렇게 되면 정말 더없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었다.“감사드립니다, 아버지.”낙청연은 감동했는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얌전히 내 말만 잘 듣는다면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게 해주마.”낙해평은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하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그리고 그 순간, 낙청연의 눈동자는 더없이 차가워졌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눈물을 닦았고 표정은 심드렁했다.지초는
낙해평은 낙청연의 처소에서 나온 뒤 낙월영을 보러 갔고 낙청연이 그녀를 데이게 한 이유를 설명했다. 낙해평의 말을 들은 낙월영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낙해평의 팔을 붙잡고 세차게 고개를 저으면서 말하려 했으나 목이 아파서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낙해평은 낙월영의 손등을 토닥이면서 말했다.“네 억울한 심정은 나도 안다. 많이 아팠겠지만 청연이도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니 용서해주거라. 예전에 청연이가 허튼짓을 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전부 귀신에 씌어서 그런 것이었지. 지금은 다 나았으니 청연이를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그래도 네 언니가 아니더냐.”낙해평은 참을성 있게 위로하며 말했지만 낙월영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지금 당장 아버지에게 낙청연은 귀신에 씌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일부러 자신을 데이게 했다고 얘기하고 싶었다.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에 낙월영은 미칠 지경이었다.낙청연에게 이렇게 심하게 당했는데 아버지는 낙청연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녀에게 낙청연을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얘기하니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았다.“걱정하지 말거라. 네 목소리는 내가 꼭 낫게 해주마. 넌 그저 집에서 푹 쉬고 있으면 된다. 네가 이렇게 화내는 걸 보니 당장 내일 낙청연을 섭정왕부로 보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편하겠지.”그 말에 낙월영은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아버지는 낙청연을 섭정왕부로 보낼 생각이었다. 도대체 왜? 낙청연은 섭정왕을 속이고 자신을 대신해 섭정왕부로 시집간 것인데, 이렇게 추잡한 일을 했으면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맞아 죽어야 했다.“됐다, 그만 울 거라. 눈이 다 부었지 않느냐? 얼른 쉬거라.”낙해평은 몸을 일으키더니 방에서 나갔다.낙월영은 화가 나서 베개와 이불을 내던졌고 억울함에 밤새도록 울었다.—낙청연은 밤새 부적 몇 장을 적었고 이튿날 아침 일찍 사기꾼 도사에게 건네어 그가 큰 화를 모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부적을 받은 도사는 무척 기뻐했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난 오늘 섭정왕부로 돌아갈 것
마차는 섭정왕부의 문밖에 멈춰 섰고 계집종들이 무리 지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승상부의 마차가 도착했을 때 그들은 신난 얼굴로 말했다.“둘째 아씨께서 오셨어!”“빨리 움직여!”그들은 우르르 모여들면서 낙월영을 맞이하려 했다.그리고 낙청연이 마차에서 내릴 때 계집종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더니 뒤이어 그들의 얼굴에 실망과 혐오가 드러났다.“왜 큰아씨가 온 것이지?”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두 계집종이 속닥거리면서 싫은 티를 냈고 지초는 곧바로 반박해 나섰다.“왕비 마마께서 오셨는데 무슨 얘기를 하시는 것입니까?”몇몇 계집종은 지초를 흘겨보더니 계속해서 수군덕거렸다.“곧 죽는다고 하지 않았어? 다들 둘째 아씨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둘째 아씨야말로 명실상부한 왕비 마마시지.”“맞아. 저런 돼지는 왕야와 어울리지 않아.”계집종들은 불쾌한 마음에 거침없이 그들의 면전에 대고 욕을 했다. 비록 목소리가 작은 편이긴 했지만 낙청연은 그 얘기를 모두 들었다.짝—뺨을 때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고 섭정왕부 문 앞은 곧바로 조용해졌다. 그들 모두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뺨을 맞은 계집종은 고개를 들어 낙청연의 매서운 눈빛을 마주한 순간 몸을 움찔 떨었다.“너희 혓바닥을 잘 간수하고 싶다면 입을 다무는 게 좋을 것이다.”낙청연의 서늘한 눈빛과 냉기가 감도는 차가운 목소리에는 살기가 담겨있었다.계집종들은 순간 등허리가 오싹했고 다들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지초는 통쾌한 기분에 참지 못하고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낙청연을 부축했다.“왕비 마마, 저런 것들은 그냥 무시하시옵소서.”낙청연은 무감한 눈빛으로 계집종들을 훑어봤다. 그 모습은 위압적이면서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왕비 마마, 아까는 정말 속이 다 시원했습니다! 둘째 아씨는 겉모습만 예쁠 뿐이지 속은 시커멓지요. 저 사람들은 정말 눈을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그저께 부진환은 고 신의에게 그가 진단을 잘못 내린 것이 아닌지 물었다. 그러나 고 신의는 단호하게 낙청연이 죽을 것이라 했고, 설사 그녀가 가장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목숨을 부지한다고 해도 오장육부가 망가져서 최대한 이틀밖에 더 살지 못할 거라 했다.날짜를 계산해보면 이미 이틀이 지났고, 낙청연은 살아있었다.낙청연은 곧바로 부진환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으면서 지긋이 그를 바라봤다.“묘지에 갔던 그날, 사람을 시켜서 제 뒤를 밟으셨지요?”낙해평이 아니라면 부진환뿐이었다.그녀의 말을 들은 부진환의 눈동자에 놀란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낙청연을 주시했다. 낙청연은 뚱뚱한 몸을 가지고 있었고 몸이 날쌔지도 않았으며 무공도 전혀 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소서가 그녀의 뒤를 밟은 것을 안 것일까?소서의 무공 실력은 섭정왕부에서 거의 최고라 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의 뒤를 밟다가 들통이 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낙청연에게 그 정도의 실력이 있는 것일까?“절 미워하시는 건 압니다. 저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과 혼인을 치르지 못했으니 저를 원망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하지만 전 제가 겪은 일로 그 모든 것을 갚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하시지요.”낙청연은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보면서 무척 진지한 어조로 말했고 그 모습은 꽤 위압적이었다.그 모습에 부진환은 더욱더 놀랐다. 그는 눈썹을 까딱이면서 말했다.“그만하라고 했느냐?”그는 낙청연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그녀인데 그에게 그만하라고 요구하다니, 웃기는 일이었다.“저한테 흥정거리가 없었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겠죠.”’낙청연은 침착한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설마 인뇌진 하나로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제가 책임지고 말씀드리지요. 이 섭정왕부에는 취살대진(聚煞大陣)이 있습니다. 왕부 곳곳에 풍수지리에 영향 주는 물건들이 놓여 있더군요. 이것이 오래 지속되면 왕야의 몸에 문제가 생길 것이고 왕야의 운명도 영향받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