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 마마, 그 도사는 왜 왕비 마마를 그렇게 극진히 대하는 것입니까? 왕비 마마께서 진짜 그의 죽을 목숨을 살려주신 것입니까? 제가 보기에 그 도사는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지초가 궁금한 듯 묻자 낙청연은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너는 사람 보는 눈이 있구나. 내 아버지보다는 훨씬 나아. 피를 볼 운명이라 해도 꼭 목숨이 위태로운 것은 아니다. 그는 비록 나쁜 일을 한 적이 있지만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건 아니었으니 그렇게 참혹한 업보를 받을 필요는 없지. 하지만 그가 계속 사기를 치고 다닌다면 점점 더 재수가 없어지고 뭘 하든 일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 도사를 속여서 그가 정도를 걷게 된다면 공덕 하나를 쌓은 셈이지.”낙청연의 말에 지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존경심이 가득 담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왕비 마마께서는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승상께서는 그 사기꾼이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시지만, 그 사기꾼이 왕비 마마를 이토록 우러러본다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할 것입니다.”낙청연은 지초의 말에 저도 모르게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어두운 밤, 마차는 수도에서 점점 더 멀어졌다. 주위는 캄캄했고 오로지 밝게 빛나는 달빛만이 길을 비춰주고 있었다.지초는 처음에는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마차가 점점 더 외진 곳으로 향하자 두려워졌다. 길 양쪽은 우거진 숲이었고 가끔 새소리가 들렸는데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왕비 마마, 저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지초는 겁에 질린 얼굴로 낙청연의 옷소매를 붙잡으면서 물었다.“도착하면 알게 될 것이다.”낙청연은 전혀 두렵지 않은 얼굴로 평온하게 말했다. 깊은 어둠 속에서 그녀의 맑은 눈동자는 더없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왕비의 겁 없는 모습에 지초는 남몰래 자신을 격려했다. 그녀는 왕비를 도와주러 온 것이었기 때문에 왕비가 그녀를 쓸모없다고 여기지 않았으면 했다.지초는 가는 길 내내 끊임없이 자신을 격려했고 그러다 보니 정말 덜 무서워진 것 같았다.그러나 그곳에 도착했
텅 비어 있었다.지초는 손가락 틈 사이로 슬쩍 확인해 보고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어? 관이 비어있습니다.”믿을 수가 없었던 낙청연은 손에 등불을 든 채로 관 안으로 펄쩍 뛰어 들어가서는 쪼그리고 앉아 이곳저곳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관 내부를 만져보면서 아무런 장치나 숨겨진 공간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또 한 번 샅샅이 훑어봤으나 확실히 관은 비어있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저희 먼저 누가 관을 열어본 거 아닐까요?”지초가 의문 어린 표정으로 물었고 낙청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관 뚜껑은 아주 꽉 닫혀있었다. 만약 누군가 우리 먼저 관을 열어보았다면 흔적이 남아있었을 것이야.”“그렇다면…”지초는 미간을 구긴 채로 사색에 잠겼고 낙청연도 미간을 좁히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매장할 때부터 이 관은 비어있었던 거야.”어머니의 유품은 무슨, 어머니의 시체조차 들어있지 않았다.지초는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왕비 마마, 설마 왕비 마마의 모친께서 살아계시는 것 아닐까요?”낙청연도 그 생각이 들어 저도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모르겠구나.”만약 어머니가 살아있다면 왜 죽은 척한 것일까?만약 어떠한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죽은 척해야 했다면 낙해평은 왜 그녀가 어머니의 유물을 정리하는 것을 꺼렸을까? 이치대로라면 그는 그녀의 어머니가 죽은 사실을 감추는 것을 도와줘야 했고 만약 그렇다면 낙해평은 낙청연을 보호하고 사랑해줘야 했다.그러나 낙청연이 느낀 것이라고는 무정함뿐이었다.만약 그녀의 어머니가 진짜로 죽었다면 왜 관 안에 시체가 없는 것일까? 시체는 어디에 있는 걸까?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한가득했다.낙청연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낙청연 모친의 신분은 이대로 수수께끼로 남게 되었으니 말이다.“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지초의 질문에 낙청연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시 원래대로 돌려놔야지.”두 사람은 또 힘들게 관 뚜껑을 덮고 관을 땅에 묻었다.일을 마친 후 낙청연은 여전히 내키지 않는 기분이 들어 묘
“뭐라고? 자기 어머니의 무덤을 파헤쳤다고?”서방 안에서 놀란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남자는 탁자를 내리치며 일어섰다.소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 그런데 왕비 마마의 모친의 관이 비어있더군요.”그 말에 부진환은 더욱 놀랐다.“비어있다고?”그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심오한 눈빛으로 말했다.“낙청연이 모친의 유물을 찾으려고 하는 걸 낙해평이 그렇게 꺼렸던 이유가 있었군. 도사를 불러서 낙청연의 살을 풀더니, 아마도 낙해평이 무언가 남모르게 감추고 있는 비밀이 있나 보구나.”낙해평이 갑자기 사람을 불러서 살풀이한다고 하자 부진환은 의심이 들어 소서더러 승상부의 움직임을 항시 주시하고 있으라고 명을 내렸고 그러다가 진짜 비밀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소유는 저도 모르게 감탄하며 말했다.“큰아씨께서도 참 배짱이 크십니다. 자기 모친의 무덤마저 파헤치다니, 만약 이 일을 승상이 알게 된다면 아마 큰아씨를 때려죽이려 할 것 같습니다.”“그러게나 말입니다. 직접 제 눈으로 본 것이 아니었다면 저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렇게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소서도 감탄했다.그러나 부진환은 미간을 구기고 있었고 생각이 많아 보였다. 소유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왕야께서 찾고 있는 물건이 낙청연의 모친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부진환은 미간을 잔뜩 구기면서 주먹을 쥐고 탁자를 내리쳤다.“그건 중요치 않다. 낙해평은 현재 낙월영을 훨씬 더 아끼고 낙청연은 버린 패에 불과해. 그런데 낙청연이 계획을 비틀었으니 그 물건은 손에 넣기 어렵게 되었다.”소유 또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왕야께서 폐하께 사혼(賜婚)을 부탁드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왕야께 많이 의존하고 계시니 반드시 윤허하실 것입니다.”부진환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본왕이 승상부의 두 딸과 전부 혼인을 치른다면 목적이 너무 뚜렷해 보이지 않겠느냐? 낙해평이 바보도 아니고.”“하지만 왕야께서는
“아—”깊은 밤, 정적이 감돌던 승상부에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고 그 소리는 잠을 자고 있던 많은 사람을 깨웠다.낙월영도 눈을 번쩍 떴다. 무슨 소리지?그녀는 저도 모르게 아노를 부르려 했으나 오늘 밤 그들은 홀로 방 안에 있어야 하고 절대 나와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지켜야 했다. 그리고 아노는 정원에 있지도 않았기에 그녀를 부른다고 해도 듣지 못할 것이었다.주위는 어두컴컴했고 낙월영은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몸을 일으켜 촛불을 밝혔다. 어둡지 않으면 그렇게 두렵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녀가 촛불 앞에 서는 순간, 그림자 하나가 돌연 그녀의 방문 앞에 나타나더니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쾅쾅쾅—그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낙월영은 그 장면에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구석 쪽으로 가서 몸을 덜덜 떨었다.문 앞에 나타난 뚜렷한 그림자는 미친 듯이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낙월영은 극도로 무서워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아버지…”“아악—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내가 죽었어!”낙청연은 두 손을 번쩍 들고 실성한 듯이 문을 두드렸고 요란한 소음에 낙월영은 몸을 잔뜩 움츠리며 눈을 질끈 감고 감히 그곳을 쳐다보지 못했다.낙청연은 낙월영이 겁에 질려 있으리라 생각하고는 서서히 몸을 내리더니 조용히 사라졌다.더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낙월영은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사라진 건가?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고, 손을 덜덜 떨면서 초를 밝히려 했다.그런데 성냥을 들고 몸을 돌리는 순간 창밖에 누군가 서 있었다.그 순간 낙월영은 머리털이 쭈뼛 섰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더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창밖의 사람이 손가락을 내밀더니 조심스럽게 창호지에 구멍을 뚫은 것이었다.낙월영은 등허리가 오싹했다. 바깥의 달빛 때문에 그녀는 문밖에
“도사님, 어떻게 됐습니까? 그 요사스러운 물건을 퇴치하셨는지요?”사기꾼 도사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보통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승상부에서 내쫓기는 했으니 괜찮을 것입니다.”그 말에 낙해평은 안심했고 곧바로 낙청연의 방을 바라보며 말했다.“제 딸은 어떻게 됐습니까?”“어제 따님은 악령 때문에 많이 고단했을 것입니다. 이제 잠자리에 드신 것 같은데 깨어나면 괜찮을 겁니다.”그 말에 낙해평은 마음이 놓였다.“그럼 다행이군요. 도사님께서는 며칠 더 묵다 가시지요. 이 사특한 것이 다시 돌아오지 않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보상은 넉넉히 드리지요.”“알겠습니다.”도사는 넉넉히 챙겨주겠다는 말에도 평온한 표정을 해 보였고 그에 낙해평은 그가 능력이 대단하겠다고 생각했다.어차피 그 돈은 낙청연에게 줘야 하는 것으로 도사는 돈을 챙길 수가 없었다. 그는 다만 이번 일을 끝내고 난 뒤 낙청연이 그의 재앙을 해결해줬으면 했다. 아무리 돈이 중하다고 해도 목숨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낙청연은 밤새 자지 못했다. 조상님의 묘지에 찾아가 무덤을 파헤쳤고, 귀신에 씐 척하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해야 했으니 그녀는 극심한 피로로 인해 저녁까지 잤다.깨어나 보니 사기꾼 도사는 또 그녀에게 은표를 잔뜩 건네줬다.“이건 대사님의 부친께서 준 것입니다. 전 단 한 푼도 챙기지 않았습니다.”낙청연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돈을 건네받으며 물었다.“저택 안의 상황은 어떠했느냐? 우리 아버지가 또 뭐라고 하셨느냐?”“어젯밤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대사님의 부친께서는 하룻밤 사이에 흰 머리가 많이 자라셨고 둘째 아씨께서는 너무 놀란 탓에 앓아누우셔서 의원이 왔다 갔습니다.”그 말에 낙청연은 참지 못하고 웃어 보였다. 쌤통이었다.하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체력이 좋지 않아서 그 정도였지, 아니었으면 오늘 밤 하루 더 그들을 괴롭혀서 그들이 매일 편히 잠들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가법이라면서 받았던 처벌과 폭력에 비하면 그 정도 벌은 아무것도
어렴풋이 잠에서 깨어난 낙청연은 낙월영을 보자마자 경계했다.“무슨…”낙청연은 곧바로 흐느껴 울면서 입을 열었고 그녀의 말허리를 잘랐다.“동생아, 왜 이렇게 초췌해진 것이냐? 어젯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꼴이 됐느냐? 모두 이 언니 탓이다.”낙월영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정원에 서 있던 아노는 낙청연의 말을 듣고는 한시름 덜었다. 아노는 낙청연이 정말 귀신에 씌었었다고 믿었고 지금은 살풀이해서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낙청연은 약이 담긴 뜨거운 그릇을 만지더니 탕약을 한 숟가락 떠서 낙월영에게 먹이려 했다.“동생아, 얼른 약을 먹거라.”낙월영은 미간을 잔뜩 구긴 채로 낙청연을 노려보았고 아노를 부르려고 입을 달싹였다.그런데 낙청연이 미소 띤 얼굴로 뜨거운 탕약을 억지로 낙월영의 입안에 집어넣었다.“동생아, 얌전히 약을 먹어야지. 그래야 빨리 낫는단다.”뜨거운 탕약이 들어가자 낙월영의 입안에 곧바로 물집이 잡혔다. 낙월영은 힘겹게 허약한 몸을 지탱하며 아노를 부르려 했지만 입을 연 순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지초가 재빨리 반응하면서 낙월영을 제압한 것이었다.낙월영은 여러 차례 왕비를 해치려 했던 적이 있어 이 틈을 타서 복수할 생각이었다.낙청연은 칭찬하는 눈빛으로 지초를 한 번 바라보더니 계속해서 탕약을 떠 낙월영의 입안에 억지로 넣었다.낙월영은 저항하면서 소리를 지르려 했는데 돌연 낙청연이 목청을 높이면서 입을 열었다.“난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단다. 전혀 의식이 없는 상태였어. 내가 깨어나고 나서 그 도사가 어젯밤 얘기를 들려준 덕에 알게 되었단다. 내가 의식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널 놀라게 했으니 너무 날 탓하지 않았으면 한다. 네가 얼른 약을 먹고 일찍 나아야 내 마음이 편해질 것 같구나.”낙청연은 그 말과 함께 아주 뜨거운 탕약을 낙월영의 입안으로 계속 넣었다. 얼마나 뜨거운지 낙월영은 입가가 벌겋게 되어있었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억울하고 분하다는 듯이 낙청연을 노려보고 있었다. 살
지초는 화상에 바르는 약을 가져왔고 바늘을 들고 조심스레 물집을 터뜨리고는 약을 바르고 상처를 싸맸다.—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자 낙해평이 씩씩거리면서 찾아왔고 낙청연은 몸을 일으켜 그를 맞이했다.“아버지.”낙해평은 노여움이 가득해서 걸어오더니 손을 들어 낙청연의 뺨을 힘껏 때렸다.짝—매서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낙청연은 뺨을 맞고 입가가 터져서 피를 흘렸다.그 순간 낙청연의 차가운 눈동자에 살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눈을 감으면서 화를 가라앉혔다.그리고 고개를 드는 순간, 그녀는 더없이 맑은 눈빛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이, 또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아버지…”낙해평은 여전히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모른 척하지 말거라! 네 동생의 입안에 물집이 가득 잡혔던데 네가 한 짓이지? 월영이는 하마터면 목소리를 잃을 뻔했다. 알고 있느냐? 난 네가 귀신에 씌었다고 생각해 살풀이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사실 너는 음흉하고 악랄한 마음을 먹고 네 동생을 죽이려 했던 것이구나!”낙청연은 억울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눈물을 떨구면서 말했다.“아버지, 그전에 있었던 일들이 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제 설명을 들으려 하지도 않으시고 곧바로 저에게 손찌검하시다니요? 아버지께서는 절 가장 아끼지 않으셨습니까?”낙청연이 억울함을 토로하자 낙해평은 머리가 아팠고 또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그래. 너 또한 내 딸인데 내가 어찌 널 아끼지 않겠느냐? 하지만 지금은 예전이랑은 다르지 않느냐? 네가 이 꼴이 되어서 나는 내 동료들에게 비웃음을 당해야 했고 승상부는 체면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나 또한 마음이 아프지만 지금 나한테는 월영이 밖에 없어. 그러니 상황을 좀 파악하거라. 월영이를 그만 질투하라는 말이다.”낙해평은 공교롭다는 듯이 말했고 그의 목소리에는 원망도 조금 섞여 있었다.낙청연이 이 꼴이 된 것을 원망하고, 낙청연 때문에 체면이 깎인 것을 원망하고, 낙청연이 승상부를 승승장구하게 만들지 못한 것을 원망했다.
낙해평은 몸을 돌려 낙청연을 바라보면서 잠시 주춤했다.낙해평의 뜸을 들이는 모습에 낙청연은 알 수 있었다. 낙해평은 낙청연이 저택에서 살풀이해서 정상이 된 다음 섭정왕에게 왕비를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사실 그는 낙청연을 다시 섭정왕부로 보낼 생각이 없었다.“네가 어릴 때부터 섭정왕을 좋아했다는 걸 이 아비는 알고 있다. 하지만… 네가 지금 이 꼴이니 섭정왕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구나.”낙해평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가 월영이 대신에 시집간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었으니 난 월영이를 왕부로 보낼 생각이다.”낙청연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낙월영이 섭정왕비가 된다면 그녀는 부진환이 자신을 총애한다는 점을 이용해 섭정왕의 권세를 누리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낙청연은 어머니의 유물을 되찾는 건 물론 살아있는 것조차 힘들게 될 것이다.낙월영은 반드시 자신을 죽이려 할 것이다.낙청연은 고개를 숙이면서 억울한 듯 훌쩍이며 말했다.“아버지, 제가 승상부에 영광을 안겨드리라 장담합니다.”낙청연의 억지로 울음을 참는 모습에 낙해평은 마음이 잠깐 약해졌다.게다가 조금 전 자신이 오해하여 낙청연에게 손찌검했으니 후회도 됐기에 낙해평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답했다.“그래, 그럼 내일 사람을 보내 널 섭정왕부에 데려다주마.”낙청연이 얌전히 자신의 말을 따른다면 그녀가 섭정왕부에 시집가는 것이 아예 쓸모없는 일은 아니었다.월영은 외모도 출중하고 재능도 많았다. 예전에 한 고승이 말하길 황후가 될 상이라고 했었다. 월영이 섭정왕부에 시집가지 않는다면 어쩌면 황후가 될지도 몰랐고, 그렇게 되면 정말 더없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었다.“감사드립니다, 아버지.”낙청연은 감동했는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얌전히 내 말만 잘 듣는다면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게 해주마.”낙해평은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하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그리고 그 순간, 낙청연의 눈동자는 더없이 차가워졌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눈물을 닦았고 표정은 심드렁했다.지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