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요는 놀란 듯 물었다. “잠리가 정말 설삼을 좋아합니까?”그녀는 곧 모든 게 이해되었다.부경한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비록 그들은 형제처럼 스스럼없이 지내지만, 잠리의 충성심은 올곧았고 잠리는 부경한을 지키려는 마음뿐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자기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상대의 마음을 받아줄 수도 없을 것이다.“좋아하오. 저 녀석은 설삼을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눈을 떼지 못했소.”“천궐국을 떠나면 의지할 사람이 생기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만 혼자구려.”부경한은 푸념을 늘어놓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잠리를 찾으러 갔다.낙요도 그들과 할 말이 있었기에 부경환의 뒤를 따랐다.잠리를 따라잡은 부경한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설삼을 좋아하면 대담하게 남자답게 말해. 여인을 속상하게 만드는 건 남자가 할 일이 못 돼.”잠리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부경한이 재빨리 그의 말을 끊었다. “변명은 하지 마.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아.”“하지만 우리 둘이 늙을 때까지 한평생 같이 지낼 작정이냐?”“최근 몇 년 간, 내 칼 솜씨도 발전했다. 스스로 보호하는 건 문제 없어.”“날 오랫동안 보호했으니 그거로 충분하다. 더는 네 신세를 질 수 없어.”“내 말을 들어. 설삼을 찾아가 네 마음을 분명하게 전해. 두 사람이 같이 작은 장사나 하면서 오붓하게 살면 얼마나 좋니?”잠리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럼 나리는 어떡합니까?”부경한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난... 난 아무 일이나 찾아서 할 것이다.”“안 됩니다!” 잠리는 고민도 하지 않고 거절했다.그는 안심되지 않았다.두 사람은 옥신각신 말싸움하며 누구도 먼저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친형제처럼 보였다.결국 참다못한 낙요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나중의 일까지 생각하지 마십시오.”“남은 생을 어떻게 살지 고민된다면 그 문제는 제가 해결해 드리죠.”“두 분이 얼마나 오랜 기간 동고동락했는지 압니다. 가정을 이룬다고 헤어질 필요가 있겠습니까?” “다 같이 도성으
이 금광이 아주 은밀하든가 혹은 거리가 비교적 멀 든가, 아니면 금광이 크지 않거나 원동력이 강하지 않다.산은 범위가 매우 넓었기 때문에 그녀는 잠리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두 사람은 절벽곡에 도착했다.이곳은 이 이름처럼 산 한 채의 가운데를 쪼갠 것처럼 가운데가 깎아지른 듯 가파르게 펼쳐져 있었다.유일하게 갈 수 있는 길은 가파른 암벽 산의 잔도였다.이 잔도가 언제 건설되었는지 모르지만, 이 잔도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다고 잠리가 말했다.하지만 근처에 이 잔도를 건너가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왜냐면 보기만 해도 위험해 보였고 단단한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낙요는 벼랑 끝에 섰다.바람은 매우 강했고 귓가를 휙휙 스쳐 지나갔고 마치 포효하는 맹수 같았다.여기서 떨어지면 분명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다.“조심하세요!” 잠리가 말했다.낙요는 뒤로 물러났다.그녀는 느꼈다!곧바로 나침반을 꺼내고 부적 한 장을 날렸다.나침반은 한바탕 빠르게 돌아가더니 멈추었다.부적은 바람 속에서 몇 번 빙빙 돌더니, 결국 오른쪽 방향에서 타버렸다.이번에 낙요는 더욱 강한 원동력을 더 선명하게 느꼈다.“바로 그 아래요.”“내려가야 하오.”잠리는 살짝 놀랐다. “지금? 지금 우리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고 잔도가 단단한지도 모르니, 일단 돌아가서 밧줄이라도 좀 가져오는 게 어떻소?”“그것도 좋소.”그리하여 두 사람은 되돌아가 밧줄을 가져올 생각이었다.하지만 중도에서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누가 오는 거 같소!”두 사람은 즉시 숨었다.지금은 해가 지고 숲속에는 한 가닥의 노을빛만 남아 있었고 비교적 어두웠다.그 사람들은 낙요와 잠리를 발견하지 못했다.전방에서 걸어오는 사람은 바로 서진한이었다!그의 뒤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따라오고 있었고 하나같이 매우 굵은 밧줄을 어깨에 메고 대나무 광주리를 메고 있었으며 그 안의 철기가 끊임없이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기세를 보아하니 금광을 캐러 가는 것 같았다.낙요는 고개를
잠리가 물었다. “들어가 보겠소?”낙요는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소.”두 사람은 밖에서 지키고 있었다.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나침반의 반응은 더욱 커져갔다.그 숨결, 낙요는 낯설지 않았다.안에서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자, 낙요와 잠리는 이전에 들어왔던 잔도를 통해 절벽곡을 떠났다.그들은 곧바로 산에서 내려갔다.잠리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이제 무엇을 하면 되오?”낙요는 담담하게 말했다. “서진한을 지켜보면 되오.”“서진한이 금광을 옮기려 한다면 막을 필요 없소.”낙요의 이번 목적은 금광의 위치를 알아내는 거였다.서진한이 금광을 조금이라도 몰래 삼킬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거다.그가 힘들게 금광을 옮기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잠리는 고개을 끄덕이었다.그 후 며칠 동안 낙요는 곡유진에 머물렀다.잠리는 매일 서진한을 지키러 갔고 매일 밤 서진한의 일과를 낙요에게 보고했다.며칠째, 서진한은 금광을 나르고 있었다.그는 금광을 도주성 밖의 비교적 외진 곳의 별원에 숨겨 두었다.대략 7일 후.서진한은 50여 명이 되는 대오를 꾸렸고, 모두 군대의 고수들이었다.그들은 그 금광을 들고 도주성을 떠났다.낙요는 서진한의 계획을 알 수 없었기에 직접 따라갔다.하지만 서진한은 역참에 도착하자마자, 밀보를 써서 급히 도성으로 보냈다.낙요는 중도에서 서신을 가로챘다.서신을 열어 본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서신은 황상에게 보내는 것이었고, 금광을 발견했으니, 황상더러 병사를 보내 마중 오라는 내용이었다.낙요는 깜짝 놀랐다.서신한이 금광을 보고하다니, 몰래 삼킬 생각이 없었다고?낙요는 서진한의 이 행동은 눈속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또 몰래 따라갔다.매번 역참에 도착하면 서진한은 황상에게 서신으로 여정을 보고했다.매우 신중해 보였고 전혀 사심이 없었다.그래서 낙요는 아신을 통해 서신 한 봉을 우유에게 보냈다.우유더러 제사일족 제자들을 보내 서진한을 맞이하라고 하고 낙요는 더 이상 따라가지 않았다.일단 도주로
부소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더할 나위 없소.”그래서 낙요는 부소를 데리고 곡유진으로 와서 잠시 머물기로 했다.도주는 매우 컸기 때문에 사람을 찾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그래서 낙요는 밤에 나침반으로 위치를 점쳐보았다.대략적인 방향과 위치를 알아냈다.부소가 낙요의 친구라는 것을 알고 잠리와 부경한도 많이 도와줬다.다음 날, 그들은 할아버지를 찾으러 출발했다.일행은 도주성 밖의 황량한 들판으로 찾아왔다.잠리가 입을 열었다. “서진한의 별원이 이 근처 아니요?”“어디에 있을까?”낙요는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 “이 근처에는 그 저택 하나뿐인 것 같았소. 돌아보자고.”서진한은 이전에 금광을 이곳에 숨겼다.지금 서진한이 금광을 들고 도주성으로 갔으니, 지금 별원에는 사람이 없어야 맞다.하지만 그들이 별원에 잠입한 후 누군가 여전히 불을 피우고 밥을 하는 것을 보았다.별원에는 계집종들과 사내종들만 있었다.낙요는 미혼향으로 그들을 혼절시킨 후 별원으로 들어가 수색하기 시작했다.모든 방을 놓치지 않았다.낙요가 매우 외진 곳의 조용한 정원을 찾았을 때, 그녀는 정자에 앉아 있는 부창을 한눈에 알아보았다.낙요의 안색이 확 변했다. “부창 할아버지!”낙요는 다급히 밖을 향해 부소를 불렀다.그리고 급히 정원으로 들어가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부창 한 사람뿐이었다.부창은 천천히 눈을 떴다.눈빛은 약간 흐렸고 낙요를 보더니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멀뚱히 바라만 보았다.낯선 사람을 보는 듯한 그 눈빛에 낙요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할아버지! 할아버지!” 부소는 감격에 겨워 다급히 달려왔다.하지만 부소가 달려가 부창을 와락 끌어안았지만, 부창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표정에 변화도 없었으며 눈빛은 흐리멍덩했다.보고 또 보고 나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순간 부소는 굳어 버렸다.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부창을 쳐다보며 말했다. “할아버지, 저입니다! 부소입니다!”“저를 모르겠습니까?”부창은 미간을 찌푸
낙요는 잠깐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반만 풀면, 혹시 할아버지의 기억을 조금 되돌릴 수 있소.”“비록 기억이 완전하지 않고, 또한 다시 기억을 잃을 수도 있지만, 목숨을 잃는 것보다 낫소.”이 말을 들은 부소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이렇게 하는 수밖에!”“그럼, 대제사장께 부탁하오.”낙요는 나침반을 꺼냈다. “그럼, 당신은 정원 밖으로 가서 지켜주시오.”정원에 그녀와 부창 두 사람이 남자 낙요는 혈봉술을 풀기 시작했다.부소는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며 서성거렸다.향 한 대가 다 타고 나서야 낙요는 그를 불렀다.낙요는 부창의 상태를 관찰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부창은 또다시 서서히 눈을 뜨더니, 여전히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하지만 눈빛은 곧 맑아졌다.얼굴에 한줄기 희색을 띠며 말했다. “부소!”부소는 몹시 격동되었다. “할아버지!”“저를 알아보시는 겁니까?”부창은 웃으며 고개를 들더니 낙요를 쳐다보며 말했다. “대제사장도 계시는구먼.”낙요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보아하니 이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부소가 다급히 물었다. “할아버지, 그동안 어디 가셨던 겁니까? 누가 할아버지를 여기에 잡아 온 겁니까? 누가 혈봉술을 할아버지에게 쓴 겁니까?”이 말을 들은 부창의 눈빛은 또 망연해졌다.그는 한참 생각한 후에야 기억했다.“서진한이다.”“서진한이 나더러… 무슨 봉인을 풀어달라고 한 것 같은데… “부창은 미간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했지만,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하지만 낙요는 깜짝 놀랐다. “봉인을 풀어달라고 했다고요?”낙요는 몸을 웅크리고 앉아 진지하게 물었다. “할아버지, 혹시 절벽곡의 금광과 관련이 있습니까?”그곳에 대진이 있었다.그날 서진한이 금광을 파헤친 후, 진법의 힘이 솟구쳐 나오려는 것을 그녀는 느꼈다.또한 서진한이 금광을 몰래 삼키지 않은 것을 보면, 서진한은 처음부터 금광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뜻하며, 그가 원하는 건 금광 뒤의 물건이다.이 또한 부창더러 봉인을 풀라는 목적이다.그녀의
부소가 물었다. “양행주는 언제 돌아오는 거요? 할아버지는 이미 이 지경이 되었으니, 그에게 할아버지는 더 이상 필요 없겠죠?”부소는 당연히 할아버지가 살아 있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그때 할아버지 혼자 천궁도에 남아 있기로 결심한 건 바로 과거에 한 일에 대해 목숨으로 속죄하려는 것이었다는 것을.“양행주는 지금 천궐국에 있소.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오. 당신은 일단 할아버지를 모시고 산으로 돌아가시오.”“8개의 진안, 이미 6개를 풀었소. 양행주가 없어도 그를 대신해 이 임무를 완수하는 사람이 있다니!”부소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물었다. “그럼, 다음 계획은 무엇이오?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주시오!”“알겠소.”오후에 낙요와 잠리는 또다시 절벽곡의 금광으로 갔다.깊이 걸어 들어가서야 낙요는 이 금광은 일찍이 사람들이 캐갔다는 것을 발견했다.통로는 매우 깊었다.그리고 통로 끝의 지면 위 진법은 이미 완전히 파괴되었다.낙요는 이곳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나침반을 꺼냈다.이 진안을 통해 다른 진안의 위치를 찾을 생각이었다.잠리는 옆에서 낙요의 안전을 지키고 있었다.이렇게 하룻밤을 지냈고 다음 날 저녁 무렵에야 낙요는 마침내 나머지 두 개의 진안 위치를 파악했다.낙요는 돌멩이로 땅 위에 지도를 그렸다.나머지 두 개 진안의 원동력은 하나는 강하고 하나는 약했다.강한 건 아마도 중심 진안일 것이다.지도를 꺼내 땅 위의 지도와 비교한 후, 낙요는 나머지 진안의 위치를 확정했다.그녀는 저도 몰래 깜짝 놀랐다.중심 진안이 강화진에 있다니!낙요는 문득 그때 강화진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그 산에 금광이 있었다!초목이 왕성하고 활기차게 흐르는 강물, 오행의 힘은 모두 극히 강했다.그때 그녀는 하마터면 그 안의 봉인을 풀 뻔했다.그때 매우 험난하게 몸을 뺄 수 있었다.알고 보니 그곳에 진압된 것이 바로 동초 대제사장이었다!알고 보니, 그녀는 진작에 동초 대제사장을 만났고 또한 그와 맞붙어 보기도 했다.
섭정왕부(攝政王府).동상방(東廂房) 내 꽃무늬가 새겨진 침상 주위에 옷들이 널브러져 있었다.낙청연(洛清淵)은 몸을 일으켜 앉더니 침상 위의 난잡한 흔적을 확인하고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햇빛이 빨간색의 흔적을 또렷이 비추고 있었다. 어젯밤 신방(新房)에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쳐들어왔던 기억을 떠올리니 다시 한번 수치심과 모욕감이 울컥 치밀어올라 돌연 그녀를 견딜 수 없었고 굴욕으로 인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왜 우는 것이냐? 드디어 네 바람대로 섭정왕부에 시집왔으니 기뻐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서늘하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낙청연은 등골이 오싹했다.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려보니 의자 위에 정좌로 앉은 남자가 보였다. 그는 위엄 있으면서도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의 차가우면서도 냉담한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을 때 낙청연은 그의 시선이 칼이 되어 살을 에이는 것 같았고 온몸이 피 칠갑이 된 것 같았다.낙청연은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이내 가슴 부근이 꽉 막힌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다.“왕야(王爺)… 줄곧 여기 계셨습니까?”남자는 덤덤한 어투로 말했다.“너와 내가 혼인을 올린 날인데 본왕이 여기 있지 않으면 어디에 있어야 하느냐?”그 순간, 낙청연은 마치 벼락을 맞은 것 같았고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어젯밤 신방에 쳐들어왔던 남자들과 도처에 남겨진 어지러운 흔적들에 그녀는 수치스러웠고 분했는데 그녀와 함께 첫날밤을 보내야 했던 남자는 그 방 안에서 밤사이 그 남자들이 어떻게 그녀의 옷을 찢어발겼는지를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왜입니까? 제가 그렇게나 미우십니까?”정신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낙청연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분통을 터뜨렸다.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는 첫날밤 하인들더러 그녀의 순결을 빼앗게 했고 그녀의 몸과 마음을 더럽혔다.낙청연은 심장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그를 경모했었고 당시 태황태후(太皇太后)는 두 사람이 금동옥
촤악.차가운 물이 얼굴을 향해 날아왔고 낙청연은 힘겹게 눈꺼풀을 들었다. ‘난 죽었는데? 왜 아픔이 느껴지는 것이지?’어멈처럼 보이는 하인이 대야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화가 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울고불고 소란 피울 생각은 마시옵소서. 왕야께서는 그런 수작에 넘어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제 주제를 알아야지, 감히 동생을 대신해서 혼인을 치르러 하다니요? 섭정왕부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닙니다!”등 어멈(邓嬤嬤)은 얼굴에는 노여움이 가득했다. 그녀는 원래 집으로 돌아가 늙은 어미를 모시려 했으나 염치를 모르는 왕비가 자결 시도를 하는 바람에 다시 돌아와 그녀의 시중을 들게 되었다.“승상부의 아씨로서 살 것이지 이런 추접한 일이나 벌리다니, 차라리 죽어버리지.”머리 위로 욕설과 불평이 끊임없이 쏟아졌고 낙청연은 이 모든 게 낯설었다. 그녀의 것이 아닌 기억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어젯밤은 섭정왕과 낙월영의 혼인날이었다. 그러나 낙청원은 사랑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신부로 위장하고는 방 안에 미정향(迷情香)을 피워놓고 섭정왕의 아이를 가질 생각이었다.그런데 부진환이 결정적인 시각에 정신을 되찾았고 화가 나서 사람들을 대여섯 명 불러들였으며 낙청연은 깨어난 뒤 굴욕을 참지 못하고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벽에 머리를 찧어 죽으려 했다.몸의 원래 주인은 그를 미치도록 사랑했었고 그녀의 몸에서 그녀의 괴로움과 마지못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여국(黎國)의 대제사장(大祭司)으로서 그녀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영혼이 흩어지지 않았고 천궐국(天闕國) 승상의 딸의 몸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는데 난폭한 하인이 그녀를 바닥으로 밀어서 넘어뜨렸고 그 바람에 그녀는 침대 가장자리에 머리를 찧게 되었다. 뒤이어 극심한 고통이 느껴지자 낙청연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키면서 손을 뻗어 머리를 만져봤고 피가 흥건했다.“돼지처럼 무거운데 누가 아씨를 옮기겠습니까? 눈치 좀 챙기세요. 섭정왕부로 시집왔다고 해서 정말 안주인이라도 된 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