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제사를 마치고 나니 황후의 차례가 되었다.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그로 인해 황제는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모두 제사를 지냈으니 제례 또한 끝났다.그 자리에 있던 해 영감이 입을 열었다.“오늘 일은 대제사장과 관련이 있는 듯 하군요.”“대제사장의 실력은 전대 대제사장과 차이가 너무 큽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스승의 시험도 통과하지 못했지요.”“이러한 실력으로는 대제사장의 자리를 얻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해 영감의 말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의논하기 시작했다.온심동의 실력에 의문을 품은 건 해 영감뿐이 아니었다.온심동은 바짝 긴장해서 불안에 떨었다.황제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이 일은 다음에 얘기하지.”“오늘은 일단 제례를 순조롭게 끝내야 한다!”말을 마친 뒤 황제는 온심동을 바라봤다.“대제사장, 성수를 하사할 시간이다. 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겠지?”온심동은 다급히 앞으로 나섰다.“네! 절대 문제없을 겁니다!”곧이어 성수를 얻기 위해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고 성지로 진입했다.낙청연은 참여하지 않았다.그녀는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대제사장의 자리는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제례에 문제가 생기면 대제사장은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그렇게 여러 번 문제가 생기다 보면 온심동은 대제사장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성수를 하사하는 과정은 매우 순조로웠다.성수를 얻은 사람들은 다들 들떴고 황제와 황후에게 감격했다.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복이었다.그러나 오직 낙청연만이 그것이 독약보다 더 독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이 낙청연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아토!그는 오늘 가면을 바꿨지만 낙청연은 단번에 그를 알아봤다.아토가 성수를 마시려 한다고?그럴 순 없었다!대열은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고 아토도 곧 성지로 들어갔다.낙청연은 보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그의 팔을 잡았다.그녀는 벙어리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물러나라고 눈치를 줬다.그런데 고묘
낙청연은 꿈쩍하지 않았다.고묘묘는 낙청연을 차갑게 바라보다가 목청을 높였다.“무릎 꿇으시오!”낙청연이 고묘묘에게 무릎을 꿇을 리가 없었다.낙청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성수를 하사받는 건 여국이 날 받아들인다는 의미인데 공주가 이렇게 거만하게 내게 무릎 꿇으라고 하니 오히려 성수를 받고 싶지 않아졌소,”낙청연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헛숨을 들이켰다.감히 공주에게 저런 말을 하다니, 낙청연은 배짱이 두둑했다. 온심동은 황제와 황후가 가장 아끼는 공주였고, 대제사장 온심동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한 지위를 가졌기 때문이다.고묘묘는 적개심 가득한 눈빛으로 낙청연을 노려봤다.“낙청연, 당신이 성수를 원한다고 해서 내가 하사하는 건데 받지 않겠다니? 지금 장난하는 것이오?”“정말 건방지군!”그녀의 호통 소리에 사람들은 움찔했다.하지만 낙청연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반박했다.“공주는 내게 성수를 하사하려는 것이오? 아니면 이 기회를 빌려 날 무릎 꿇게 할 생각이오?”“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다들 알 수 있겠지!”“난 성수를 받을 생각이지 무릎 꿇을 생각은 전혀 없소!”고묘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호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여봐라! 이자를 누르거라!”“오늘 당신은 이 성수를 마셔야 하오. 무릎 꿇고 싶지 않아도 꿇어야 하지!”호위 몇 명이 와서 낙청연의 어깨를 누르며 그녀를 무릎 꿇리려 했다.온심동은 옆에서 의기양양하게 구경을 했다.낙청연은 저항하면서 무릎을 꿇으려 하지 않았다.호위 몇 명이 낙청연의 어깨를 눌렀지만 그녀를 무릎 꿇릴 수는 없었다.“오늘은 제례지. 공주라는 신분이 존귀하다고는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다가 신들의 노여움을 살까 두렵지 않소?”낙청연이 매서운 어조로 위협했다.바로 그때 황제가 호통을 쳤다.“묘묘! 그만하거라!”“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서둘러 끝내자꾸나.”사람들은 성수를 하사받은 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사함을 표시하기 위해 무릎을 꿇으며 은혜에 감사
낙청연은 하마터면 그곳으로 돌진할 뻔했지만 참았다.낙청연은 벙어리를 신경 쓴다는 걸 들킬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고묘묘가 분명 벙어리를 난처하게 만들 테니 말이다.그러니 갈 수 없었다.낙청연은 참고 또 참았다. 그러나 고묘묘가 벙어리를 희롱하는 게 보였다.고묘묘는 손을 뻗어 벙어리의 팔을 주물럭대며 일부러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왜? 낙청연은 만질 수 있는데 난 만지면 안 되느냐?”“내가 무슨 짐승이냐? 왜 그렇게 날 두려워하는 것이냐?”벙어리가 또 한 번 뒷걸음 쳤지만 고묘묘는 더욱 거리를 좁혔다.“벙어리면서 참으로 건방지구나. 감히 날 거절하는 것이냐?”“이리 오너라!”벙어리는 꿈쩍하지 않았다.“내가 이리 오라고 하지 않았느냐?”고묘묘는 거만한 자태로 도도하게 명령을 내렸다.“내 오라버니의 명령에만 따르는 것이냐? 이따가 오라버니에게 널 내어달라고 하겠다!”“오늘부터 넌 내 사람이다. 네가 또 피할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그 말에 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했고 긴장 때문에 손에 땀이 났다.아토는 벙어리고 융통성도 없으며 무뚝뚝했기에 고묘묘의 손에 들어간다면 절대 편히 지내지 못할 것이었다.낙청연은 기회를 잡아 진익에게서 벙어리를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벙어리는 고묘묘 때문에 연신 뒷걸음질 쳤다.의식이 끝난 뒤 황제는 연회를 시작한다고 선포했고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황제는 고묘묘를 불렀고 고묘묘는 그제야 벙어리를 놓아주었다.낙청연은 몰래 안도했다.사람들은 그곳을 떠나 화원으로 향했다.침서가 미소 띤 얼굴로 다가와 말했다.“아요야, 참 대단하구나.”“이번에는 또 어떤 수단을 쓴 것이냐? 어떻게 한 것이냐?”낙청연은 그의 말에 긴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그녀는 엄숙한 표정으로 침서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런 장소에서는 절 아요라 부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침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었다.“걱정하지 말거라. 아무도 없을 때만 부르니 말이다.”“뭘 그리 긴장하는 것이냐? 가자꾸나.”다행히 사람들이
침서는 낙청연이 맞은편을 보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의미심장하게 그녀를 바라봤다.“왜? 마음이 아프냐?”낙청연은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옮겼다.연회가 시작되자 화원에서 음악이 울려 퍼졌다. 노래와 춤이 더해지자 아주 떠들썩해졌다.하지만 연회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은 제례에서 있었던 일을 잊지 않았고 사석에서 그 일을 의논했다.노래와 춤의 영향을 받아 의논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온심동은 그 소리를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의자에 앉은 온심동은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이 연회가 빨리 끝나길 간절히 바랐다.그러나 오늘의 연회는 유난히 길었다.참지 못한 황후는 팔을 다쳐서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돌아가서 쉬려 했고, 황제가 그녀를 만류했다.“황후, 오늘 준비된 가무는 아주 훌륭하오. 짐이 황후에게 한 잔 올리겠소!”황후는 덤덤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신첩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 술을 마시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다음에 시간이 나면 폐하와 함께 한잔하겠습니다.”“신첩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황후는 궁녀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떴다.낙청연은 홀로 남겨진 황제가 아직 술잔을 내려놓지 않은 걸 발견했다.황후가 떠나자 황제는 그제야 천천히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감히 황제를 이렇게 대하는 건 황후뿐일 것이다.황후는 황제의 총애를 받는다는 이유로 제멋대로 굴었다.황후가 떠난 뒤 고묘묘도 자리를 떴고 떠나기 전에 벙어리를 희롱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고묘묘가 떠나자 낙청연은 안도했다.잠시 뒤 황제도 떠나려고 준비했다.황제가 몸을 일으켰는데 둥근 무대 위로 누군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녀는 매혹적인 붉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검은 머리카락은 어깨 위로 드리워져 있었으며 가느다란 허리와 발목을 드러내놓고 있었다.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은방울이 울렸다.순간 넋을 놓은 황제는 다시 자리에 앉아 흥미진진하게 감상하기 시작했다.낙청연 또한 시선을 사로잡혔다. 그 여인은 해 귀비
황제도 공무를 처리해야 한다며 떠났다.해 귀비의 시선은 낙청연에게 닿았다.“나와 함께 옷을 갈아입으러 가자꾸나.”“너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낙청연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나 해 귀비를 뒤따랐다.해 귀비의 침궁에 도착하자 해 귀비는 낙청연 한 사람만 곁에 두었고 낙청연은 그녀가 옷을 갈아입는 걸 도와줬다.해 귀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제례는 네가 꾸민 일이겠지?”“네.”낙청연은 부인하지 않았고 해 귀비는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궁금할 뿐이었다.“온심동이 네가 만족의 왕이라는 약점을 알고 황제에게 널 일러바쳤다는 건 알고 있다.”“안 그래도 널 걱정했는데 능력이 좋더구나. 대전에서 폐하가 너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만들지 않았느냐?”해 귀비는 흐뭇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낙청연은 해 귀비의 허리띠를 해준 뒤 해 귀비와 함께 병풍 뒤에서 나왔다.해 귀비는 느긋하게 연탑 위에 앉았다. 그녀는 연탑에 비스듬히 기댄 채로 물었다.“온심동은 줄곧 널 경계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손을 쓴 것이냐?”“난 천벌 같은 건 믿지 않는다.”“온심동이 정말 인정을 받지 못했다면 작년 제례에서 이미 일이 터졌겠지.”낙청연은 옆에 앉아 여유롭게 차 두 잔을 따르며 설명했다.“온심동의 곁에 있는 랑심입니다.”해 귀비는 깜짝 놀랐다.“랑심이 네 사람이냐?”“온심동을 가지고 논 것이냐?”낙청연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낙청연이 부인하지 않자 해 귀비는 웃으며 말했다.“정말 대단하구나.”“온심동은 네 상대가 되지 않는구나.”“오늘 일은 그냥 지나갔지만 아무도 이 일을 잊지 않겠지. 넌 대제사장의 명예에 큰 흠집을 냈다.”“얼마 안 있으면 널 대제사장이라고 불러야겠구나!”해 귀비의 눈에서 미처 감추지 못한 웃음기가 보였다.그녀는 이번에 정말로 좋은 맹우를 찾았다.낙청연도 웃으며 말했다.“귀비께서도 오늘 시기를 잘 잡으셨더군요.”“황후가 폐하의 체면을 깎자마자 폐하를 위해 춤을 추셨으니 말입
그 말에 해 귀비는 놀란 표정으로 낙청연을 바라봤다.“뭐라고?”“네가 춤을 출 줄 안다는 말이냐?”낙청연은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먼저 귀비 마마께 제 춤을 보여드리겠습니다.”“이 춤을 배워서 폐하께 보여드리고 싶으시다면 제가 귀비 마마께 가르쳐 드리겠습니다.”해 귀비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좋다, 좋아!”낙청연은 전각 안에서 설신무를 췄고 해 귀비는 넋을 놓고 바라봤다.그녀는 참지 못하고 직접 고금을 연주했다. 그녀는 낙청연의 춤사위에 맞춰 한 곡 연주했다.춤이 끝난 뒤 해 귀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낙청연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더욱 뜨거워졌다.“청연아, 내가 사내였다면 너에게 홀렸을 것이다.”“네가 입궁했다면 내 자리에 쉽게 앉았을 것이다.”그녀의 말에는 질투가 없고 오로지 흔상과 감탄만 있었다.그녀는 진심으로 낙청연에게 감탄했다.“또 뭘 할 줄 아느냐? 내가 모르는 것이 또 있느냐?”낙청연은 웃었다.“다 조금씩 알지만 능통한 건 없습니다.”“겸손하구나. 난 믿지 않는다.”“마마, 배우시겠습니까?”해 귀비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배워야지! 지금 당장 배우겠다!”낙청연은 놀라워했다.“지금이요?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배울 수 있겠습니까?”“날 얕보는 것이냐?”해 귀비는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뒤꿈치를 들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낙청연은 경악했다. 해 귀비는 설신무를 추고 있었다!한 번 본 것뿐인데 모든 동작을 외운 것이다.낙청연은 문득 의심이 들었다.“마마, 혹시 원래 출 줄 아는데 일부러 절 놀리신 겁니까?”해 귀비는 입을 가리며 작게 웃었다.“난 이 춤을 처음 본 것이 맞다. 난 널 속이지 않았다.”“다만 아까 조금 배웠을 뿐이다.”“하지만 대략만 기억했으니 자세한 것은 네가 가르쳐야 한다.”그래서 낙청연도 진지해졌다. 그녀는 해 귀비가 오늘 설신무를 다 배울 수 있다는 걸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해 귀비는 세 시진만에 설신무를 다 배웠다.남은 것은 해 귀비 스스로 연습하면 됐다.낙청연
랑심은 두 사람이 몰래 마차를 쫓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성을 떠난 뒤 그들은 너무 외져 사람이 없는 곳에 도착했고 낙청연은 그제야 마차를 멈춰 세웠다.곧장 마차에서 내린 랑심은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 낙청연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내 해독약은?”낙청연은 그녀에게 해독약을 던져 주었다.그녀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랑심을 힐끗 봤다.“해독약을 줬으니 오늘 멀리 떠나거라.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거라!”랑심은 약병을 열어 냄새를 맡았고 독이 없는 걸 확인한 뒤 과감히 해독약을 마셨다.낙청연은 밧줄을 풀어 말을 타고 떠날 생각이었다.그런데 바로 그 순간, 랑심은 눈빛이 싸늘하게 돌변하더니 비수를 꺼내 낙청연을 향해 달려들었다.“낙청연! 죽어!”낙청연의 눈빛도 차가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랑심의 매서운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랑심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허공에서 누군가 그녀를 습격했다.날카로운 장검이 공기를 갈랐고 번뜩이는 검광과 함께 검이 랑심을 향해 날아들었다.낙청연은 느긋하게 몸을 돌렸다.주락과 구십칠이 장검을 들고 랑심을 포위하여 공격했다.랑심은 비수 한 자루만 들고 있었고 실력도 주락에게 미치지 못했다.특히 오늘 주락은 만방검을 들고 있었기에 전보다 실력이 훨씬 더 강해졌다.구십칠과 주락의 협공 하에 랑심은 멀리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고 피를 왈칵 토했다.비수가 바닥에 떨어지자 구십칠은 곧바로 그것을 멀리 차버렸다.랑심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낙청연을 바라봤다.“미리 준비했었구나!”낙청연은 말에서 내려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그렇지 않으면?”“내가 정말 널 놓아줄 거라고 생각한 것이냐?”“랑심, 어쩌다가 이렇게 멍청해진 것이냐?”랑심은 그 말을 듣고 대경실색했다. 그녀는 두 눈이 벌게져 눈을 부릅떴다.“그러면 내 해독약은...”낙청연은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해독약은 없다.”“날 속였구나!”랑심은 분노하며 고함을 질렀다.낙청연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
낙청연은 애석하다는 듯이 탄식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감정이라는 것은 너 스스로 알고 있으면 된다!”“가서 주락을 돕거라.”구십칠은 고개를 끄덕인 뒤 떠났다.낙청연은 먼저 말을 타고 도성으로 돌아왔고 날이 어두운 틈을 타 한 가지 할 일이 더 남아있었다.그녀는 진익을 찾아가 아토를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침전 안,진익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부진환을 바라보고 있었다.“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당신의 계획은 아직 성과를 보지 못했소.”“설마 내 옆에 있으면서 날 위해 일할 생각은 전혀 없고 그냥 낙청연을 보호하고 도와줄 생각이오?”진익은 화가 났다.부진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난 당신보다 낙청연을 더 잘 알고 있소.”“직접적으로 한다면 낙청연에게 소용이 없을 것이오.”“차근차근 천천히 해야 그녀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소.”하지만 진익은 그의 설명이 믿음직스럽지 않았다.“그 말은 이미 들어봤소.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결과요!”“그런데 지금 난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소!”“난 이제 당신의 말을 믿을 수 없소.”진익은 초조해졌다. 그는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당신이 벙어리의 신분으로도 낙청연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걸 내게 증명해 보이시오! 낙청연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희생할 수 있는지, 당신이 낙청연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오!”“그것이 내가 보고 싶은 것이오.”“당신이 매일 낙청연을 돕고 그녀와 함께 생사를 같이하는 걸 보고 싶은 게 아니라!”“당신은 내 호위요!”부진환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런 일들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녀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단 말이오?”“황자에게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군.”“좋아하는 사람도 없었소?”진익은 순간 핵심을 찔린 건지 안색이 나빠졌다.그는 부진환에게 자신의 안색이 바뀐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아 돌아앉았다.그동안 그는 아무런 재능이 없다는 말 때문에 항상 다른 사람들의 경멸과 멸시를 받아야 했고 그를 사모하는 여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