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십칠은 시뻘건 두 눈으로 급히 달려갔다.방안에서, 기옥의 옷은 거의 모두 찢겨 얼마 남지 않았으며 발에 묶였던 밧줄은 벌써 풀어졌다.기옥의 발목에는 밧줄에 묶여 생긴 핏자국으로 가득했다.우림은 손이 하나밖에 없어 기옥을 제압하지 못해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기옥의 옷은 거의 다 찢겼다.우림이 분노하던 그때, 밖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우림은 급히 몸을 돌려 일어섰다.그러고는 바닥에 있던 검을 들어 기옥의 목에 갖다 댔다.구십칠이 달려오며 손을 쓰려던 순간, 우림의 이 행동에 깜짝 놀라 제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묶여 있는 기옥의 옷이 거의 모두 찢긴 모습을 보자 구십칠은 순간 두 눈이 시뻘게지고 이마에 핏줄이 곤두섰다.“우림! 지금 그만두면 목숨은 살려주겠다!”구십칠은 이를 꽉 깨문 채 분노로 가득 찼다.기옥은 눈물을 글썽이며 치욕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우림은 긴장한 듯 검을 기옥의 목에 겨누었다. 너무 힘을 쓴 나머지 기옥의 목이 베어 상처가 났다.우림은 서늘한 어투로 말했다.“돈은?!”“돈을 가져오면 풀어주겠다!”운주성의 제가가 무너졌고, 우림의 집도 없어졌으며 팔까지 잃었으니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었다.백만 냥 은전 정도는 낙청연이 충분히 꺼낼 수 있는 돈이었다.“돈은 곧 도착한다! 우선 사람을 풀어줘라!” 구십칠은 검을 꽉 잡으며 기회를 노렸다.그러나 이를 발견한 우림은 협박하며 말했다.“검부터 버려라!”구십칠은 이를 꽉 깨물었다.“검을 버려라! 아니면 지금 당장 죽여버리겠다! 내가 살아서 도망칠 수 있어야 살려줄 것이다!”“아니면 죽더라도 같이 죽어야겠다!”구십칠은 기옥 목에 새어 나온 핏자국을 보며 검을 던져버렸다.우림은 발을 들어 검을 멀리 차버렸다.“좋다. 이제 돈을 받으면 사람을 풀어주겠다!”곧바로 우홍이 돈 상자와 함께 사람들을 데리고 달려와 우림에게 보여주었다.“이건 백만 냥 은표다.”“은전을 줘도 못 들고 내려가지 않느냐.”우림은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좋다! 이제 모
구십칠은 방안에 쳐들어가 기옥을 묶은 밧줄을 풀어주었다.그러고는 급히 겉옷을 벗어 기옥에게 걸쳐주고 부축하며 불 난 집에서 도망쳤다.순간, 기옥은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오라버니…”구십칠은 가슴 아파하며 기옥을 바라보았다. 그는 멀리 도망친 우림을 보며 마음속에 분노가 타올랐다.구십칠은 우홍이 남겨둔 화살을 들고 기옥을 안은 채 경공으로 따라갔다.그러고는 곧바로 화살을 들고 기옥의 손을 잡아 우림이 있는 방향으로 쐈다.화살은 공기를 가르며 우림을 향해 날아갔다.앞쪽에 있던 우림은 곧바로 바닥에 쓰러졌다.기옥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기옥은 구십칠의 분노가 느껴졌고, 함께 화살을 쏘는 순간의 매서운 기세도 느껴졌다.구십칠의 도움으로 기옥이 직접 복수를 한 셈이기도 했다.“기다리거라.”말을 마친 구십칠은 기옥을 놓아주고 곧바로 달려가 검으로 우림을 찔렀다.그러고는 돈 상자를 들고 기옥의 옆으로 돌아왔다.기옥은 옷을 꽉 여미며 구십칠을 바라보았다. 순간, 구십칠이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곳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돈 상자를 가져온 구십칠은 다정하게 기옥을 바라보며 말했다.“하산하자꾸나.”기옥은 고개를 끄덕였다.우홍 일행은 산 중턱에서 기다리며 무사히 돌아온 두 사람을 발견하자 곧바로 철수했다.구십칠은 기옥을 품에 앉은 채 말에 타 대오와 함께 암시장으로 돌아갔다.길에서 구십칠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우림이 죽었으니 널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기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오라버니, 돌아가신 거 아니었습니까? 어찌 이렇게 빨리 저를 구하러 오신 겁니까?”구십칠은 멈칫하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기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오라버니도 저를 걱정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렇게 빨리 구하러 오신 거 아닙니까?”구십칠은 기옥의 뜻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그러나 기옥의 이런 감정에 응답해 줄 수 없었다.한참을 침묵하다 구십칠은 입을 열었다.“넌 운주 성주의 천금 소
밤새 길을 재촉하며 기옥을 암시장으로 돌려보낸 후 구십칠은 곧바로 도성으로 출발했다.-이틀 후, 낙청연의 마차가 도성에 도착했다.마차에서 내리자, 호위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며 낙청연 일행을 에워쌌다.진익은 천천히 말을 타고 오며 낙청연을 내려다보았다.낙청연은 매서운 눈빛으로 고개를 들고 진익을 바라보았다.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낙청연의 기세는 더욱 강해진 것 같았다.침서는 마차에서 내려 뒷짐을 지고 적의 가득한 눈빛으로 진익을 바라보았다.“대황자께서는 무엇을 하려는 것이오?”진익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부황께서 낙 낭자를 궁으로 불러 이곳에서 기다렸소.”“가자고, 낙 낭자.”침서의 소식은 틀린 게 아니었다.낙청연이 발걸음을 옮기자, 침서도 무심코 따라갔다.그러자 진익은 검을 휘두르며 침서 앞을 막아섰다.“부황께서는 낙청연만 부르셨소. 장군까지 따라올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말이오?”침서는 차갑게 입꼬리를 올리며 두 손가락으로 검을 튕겨냈다.그러고는 건방진 어투로 입을 열었다.“황상께서 부르지 않았지만, 내가 황상을 뵙고 싶소.”“황상께 군의 상황을 보고드릴 건데, 대황자께서 막아설 수 있을 것 같소?”침서는 도발적인 눈빛으로 경멸하듯 진익을 흘겨보며 걸음을 옮겼다.진익은 이를 꽉 깨물었다. 화가 났지만 반박할 수 있는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낙청연이 대전에 들어서자, 온심동도 곧바로 들어왔다. 낙청연이 잘 알고 있는 랑심과 함께 말이다.황제는 위엄있게 용좌에 앉아 낙청연에게 시선을 돌렸다.“네가 만족의 왕 낙청연이냐?”황제의 말에는 강한 위압이 섞여 있었으며, 위험한 기운이 물씬 풍겼다.온심동은 이 일을 일러바친 것이었다.낙청연은 의아스러워 저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대제사장께서 하신 말씀입니까?”바로 그때, 온심동이 입을 열었다.“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변명을 하는 것이냐! 내가 사람까지 데리고 왔으니 네가 만족의 왕이라는 건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네가 여국에 온 건 여국의 정보를 갈취하고
낙청연의 평온한 말투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긴장도 섞여 있지 않았다.그의 말은 대전에 서서히 울려 퍼졌으며, 오히려 위엄과 협박이 섞여 있었다.온심동과 랑심은 모두 깜짝 놀랐다.온심동은 분하다 못해 이를 갈았다. 낙청연의 약점을 잡았으니 두려워해야 하는 게 분명했다!어찌 이 기회를 빌려 황상과 같은 대접을 받으려 하는 것일까?!온심동은 크게 호통쳤다.“무엄하다! 만족의 왕이라면 어떠하냐! 여국 황궁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건방지다니!”“황상! 낙청연은 여국의 기운에 영향을 주고 여국에 재난을 불러올 게 분명합니다!”“부디 지금 당장 명을 내려 처형해 주십시오!”곧 있으면 제사 의례이니, 낙청연은 이 기회로 온심동을 상대할 게 분명했다. 침서의 도움까지 있으니 온심동은 이길 방법이 없었다.그러니 반드시 제사 의례 전에 낙청연을 처리해야 한다!낙청연이 만족의 왕이라는 사실이 바로 낙청연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이 말을 들은 낙청연은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대제사장의 추측이 정확하진 않은 것 같구나.”“내가 여국에 재난을 불러와 지금 당장 처형해 버리면, 만족이 곧바로 침공해 올 것이다. 그러면 여국에 재난이 닥치지 않는 것이냐?”“대제사장은 이를 빌미로 나를 죽이고 황상을 이용하려는 게 아니냐?”황상도 둔하지 않은 이상 당연히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었다.온심동이 또다시 반박하려는 순간, 황상이 차가운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여봐라! 자리를 내려주어라!”온심동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랑심도 분하다 못해 이를 갈았다.랑심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낙청연이 기세등등하게 의자에 앉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낙청연은 경멸이 섞인 눈빛으로 랑심을 바라보며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듯 보였다.랑심은 분노했지만 어쩔 수 가 없었다.낙청연이 자리에 앉자 황상이 말을 이어갔다.“그럼 짐이 묻겠다. 여국에 와서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낙청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황상께서 노하실 수도 있습니다.”황상은 미간을 찌푸리더
줄곧 말이 없던 침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폐하, 신이 목숨으로 장담할 수 있습니다. 낙청연은 여국을 위협하지 않을 겁니다.”확신에 차서 자신만만하게 내뱉은 침서의 말에 온심동은 순간 압박을 느꼈다.침서는 목숨을 걸고 장담했지만 온심동은 그럴 수 없었다.황제는 미간을 구긴 채로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그렇다면 이 일은 일단 그냥 놔두겠다.”온심동은 순간 긴장돼서 초조하게 말했다.“폐하, 낙청연에게 벌을 내리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낙청연은 분명 여국의 기운에 영향을 줍니다. 적어도 제례 때는 낙청연이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됩니다.”낙청연은 의아한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온심동은 그녀에게 벌을 내리는 것 대신 그녀를 제례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다.낙청연은 고개를 돌려 온심동을 보았다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랑심을 보았다.“그러면 이자는? 이자는 만족인데 앞으로 대제사장의 곁에 있을 사람인가?”“대제사장은 어찌 그녀의 말을 그리 믿는 것이지?”“설마 제사를 지낼 때 이자는 참석할 수 있단 말인가?”온심동은 차가운 눈빛으로 낙청연을 바라보며 확신에 차서 말했다.“랑심은 현재 내 부하다. 이미 여국인이 되었지.”“그녀는 더 이상 만족인이 아니다!”“제례에도 당연히 참석할 것이다! 난 랑심이 과거를 청산하고 완전히 여국인이 되게 할 것이다!”낙청연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이제 하령은 없고 온심동은 무공이 뛰어나지 않으니 옆에 무공이 강한 사람이 그녀를 지켜줘야 했다.그리고 랑심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랑심과 낙청연은 원한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온심동은 자신을 향한 랑심의 충심을 의심하지 않았다.만족인의 실력이 어떤지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고 랑심의 실력은 더더욱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낙청연은 우스운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렸다.“참으로 우습군. 대제사장은 내가 여국의 기운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는데 대제사장이 잘못 안 것 같군.”“이 랑심이야말로 여국을 불길하게 만드는 자다!”
온심동은 안색이 흐려졌다. 그녀는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더니 랑심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낙청연은 떠나가는 랑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온심동은 랑심과 그녀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듯했다.그렇게 낙청연과 침서도 곧 떠났다.돌아가는 길에 침서가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이 있느냐? 조금 전에 폐하에게 했던 말을 들어 보니 네게 이미 계획이 있는 것 같더구나.”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온심동은 랑심과 협력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저희는 지금부터 아무것도 할 필요 없습니다.”침서는 살짝 의아한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확신하느냐?”“제례는 일 년에 한 번뿐이다. 이번 기회에 온심동의 명성을 망가뜨리지 않는다면 다음 제례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온심동을 그 위치에서 더욱 빨리 끌어내릴 기회지.”“이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내가 도와줄 일이 있다면 얘기하거라. 내가 도와주마.”낙청연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온심동은 제가 만족의 왕이라는 약점을 폐하에게 알렸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제례를 망치려 한다는 걸 온심동이 알고 있기 때문이었지요.”“그래서 그전에 절 처리하려고 한 겁니다.”“이번에 온심동은 분명 저와 당신을 경계할 겁니다. 지금 이때 뭘 하든 성공하지 못할 겁니다.”“온심동에게 잡힌다면 오히려 그 기회를 틈타 저희가 그녀를 해치려고 했다고 폐하에게 알릴 수도 있지요.”“차라리 아무것도 안 해서 온심동이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는 편이 낫습니다.”그 말에 침서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낙요는 항상 나보다 총명했지. 그러면 네 말대로 하겠다.”오늘 낙요가 본인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는 생각에 침서는 내심 기뻤다.“그러면 전 이만 쉬러 가겠습니다. 이만 돌아가시지요.”침서는 살짝 놀랐다.“오늘 밤 궁에서 묵을 것이냐?”“앞으로 당분간은 궁에서 지낼 겁니다.”낙청연은 말을 마친 뒤 갈림길로
“예전에 친구를 도와 환명대진(換命大陣)을 써서 그녀가 빼앗겼던 운명을 다시 찾아주고 남의 것을 바꾼 적이 있다.”“운명을 바꾼 사람이 부작용을 겪거나 진법을 만든 사람이 부작용을 겪는데 난 당연히 내가 견뎠지.”낙랑랑의 생활은 어렵사리 다시 원래 궤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원래 그녀의 것이었다.그런데 어떻게 그녀가 부작용을 겪게 하겠는가?우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내가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네가 원했다면 이미 그 방법을 썼겠지. 이렇게 오랜 시간 홀로 그것을 견디지는 않았을 텐데.”우유는 화제를 돌렸다.“며칠 뒤면 제례인데 뭐 안 할 거냐?”낙청연은 간식을 먹으며 창가에 기대어 밖을 바라봤다. 그녀는 느긋하게 말했다.“급하지 않다.”“참, 온심동 곁의 랑심이라는 자를 아느냐? 두 사람은 언제 알게 된 것이냐?”우유가 대답했다.“며칠 됐을 것이다. 랑심이라는 자가 먼저 온심동을 찾은 듯했다.”“그자는 도성에서 많은 사람에게 도전장을 내밀어 명성을 얻었다.”“온심동은 그자의 실력을 보고 그자를 곁에 남겼다.”낙청연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구나.”랑심은 이번에 뭘 할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도성에서 몇 달 동안 숨어있다가 지금 이때 갑자기 튀어나오다니.“네가 나 대신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혹시 랑심이 홀로 있을 때가 있다면 그녀를 데리고 날 만나러 오거라. 온심동에게 발각되지 않게 조심하고.”우유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다.”우유는 말하면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제례처럼 큰 자리에서 네가 반드시 손을 쓸 줄 난 알고 있었다.”“제사 일족은 현재 탁장동을 제외하고 온심동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도성의 권력가나 귀족들은 말할 것도 없지. 그들과 온심동 사이에는 이익이 없다.”“그리고 8대 가문에서 제일가는 해씨 집안과 꼴찌인 모씨 집안도 온심동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이번 제례에서 일이 생긴다면 온심동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위엄을 철저히 잃게 될
주위에 아무도 없자 우유는 랑심을 엄호해 몰래 낙청연의 방으로 향했다.방문을 닫은 뒤 우유는 마당 밖을 어슬렁거리며 망을 봤다.랑심은 안절부절못하며 방으로 들어갔다.낙청연은 의자에 앉아 한가하게 차를 마시면서 대수롭지 않은 듯 입을 열었다.“역시나 왔구나.”랑심은 분노와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봤다.“온심동을 찾으면 그녀와 연합하여 날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냐? 아니면 온심동이 네가 조종당하는 일을 해결해 줄 거라 생각한 것이냐?”“내가 알려주마. 온심동은 네가 무엇에 조종당하는지조차 모른다.”“만약 네가 나에게 조종당한다는 걸 온심동이 알게 된다면 그녀는 당장 널 죽일 것이다.”랑심은 주먹을 꽉 쥐었다.그것은 그녀의 목적이 맞았다. 낙청연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전부 맞춘 것이다.“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날 여기로 부른 것이냐?”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네게 살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나 대신 일을 하나 해준다면 일이 끝난 뒤 네게 해독약을 주겠다. 그러면 넌 자유를 되찾게 되겠지. 하지만 앞으로 절대 여국에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한다!”“널 조종하는 그 약물은 내가 독자적으로 만든 것이라 나 말고는 아무도 널 구할 수 없다.”그 말에 랑심은 심장이 철렁했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낙청연을 바라봤다.“내게 자유를 주겠다고?”랑심은 낙청연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낙청연은 웃음을 터뜨렸다.“믿을지 말지는 네가 결정하거라.”“어차피 네게는 다른 선택이 없을 테니 말이다.”낙청연의 무심한 말투와 덤덤한 눈빛을 보니 랑심을 괴롭히는 것에 흥미를 잃은 듯했다.어쩌면 랑심이 안중에도 없기 때문에 해독약을 주려는 걸지도 몰랐다.랑심은 더욱더 굴욕감을 느꼈다.하지만 이러한 상황이기에 낙청연의 말이 더욱 믿음직스러웠다.“내가 뭘 했으면 하는 것이냐?”낙청연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녀는 랑심이 동의할 줄 알았다.“가까이 와보거라.”랑심은 두 걸음 나아가서 허리를 굽혔다.낙청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