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용은 방에서 나오더니, 낙청연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얼굴은 한층 더 어두웠고 무거운 어투로 말했다: “방으로 가서 얘기하자.”--방에 들어가서 방문을 닫고 그녀들은 앉았다. 낙용은 그제야 말했다: “네가 많은 의혹들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왕야께서 말씀하신 이궁의난은 너에게 말해줄 수 없다.”“그 일은 전체 황궁에 이어 전체 경도의 금기 사항이다. 절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 너도 바깥에서는 절대로 이궁이란 두 글자를 입에 올리지 말거라.”비록 고모는 그녀를 위해서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낙청연은 알고 있었지만 여기까지 듣고 나니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아마도 부진환이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에 그녀는 더 말해주지 않는 것 같다. 그녀를 위한다는 핑계로 경계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낙청연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예! 그럼 더 이상 여쭤보지 않겠습니다.”“그런데, 배후의 주모자가 누구인지 상의해 보셨습니까? 이번에 이 큰 계획이 실패했으니,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일입니다.”낙용은 무거운 어투로 말했다: “보다시피 네 할아버지의 위망(威望)은 아주 높아. 우리 가족은 누구한테 미움을 산적이 없다. 비록 네 아버지와 사이가 별로 안 좋지만 그래도 그건 그저 집안일일 뿐이다.”말하더니, 또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목적은 섭정왕부인 것 같구나! 이 일이 지나고 나면, 집안이 다시 평안해지기를 바라야지!”낙청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목적이 부진환이라고? 그럼 여러 해 동안이나 계획을 준비할 것까지 없는데!필경 화상 사건은 이미 몇 년 전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낙용이 자신에게 감추는 게 있다고 생각했다.다만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아마 이는 매우 큰 사건과 연관되어있기에 그녀에게 말하지 않는 것 같았다.물론, 부진환이 말하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다.“좀 이따 제가 태부부 전체를 샅샅이 검사해보겠습니다.태부부에
등 어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긴장하고 당황한 표정을 보고 낙청연은 이미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녀는 쏜살같이 방에서 뛰쳐나갔다.부진환의 정원은 경계가 삼엄하였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연이어 발에 차여서 쫓겨나왔다. 싸우는 소리와 방안에서 여인의 울음소리가 섞여서 들렸왔다.낙청연이 도착했을 때, 소소가 마침 부진환의 발에 차여서 쫓겨났다.그는 아주 세게 바닥에 넘어졌다.“왕비 마마 지금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소유는 즉시 낙청연을 가로막았다. 지금 왕야는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감히 낙청연을 접근하게 놔둘 수 없었다.“어서 비키거라!” 낙청연은 미간을 찡그리더니 바로 소유를 밀치고 방안으로 뛰쳐들어갔다.“왕비!” 소유는 쫓아갔지만 낙청연은 이미 문을 닫아버렸고 문 고리까지 걸어버렸다.지금 부진환의 눈에는 짙은 살기가 들끓었고 미간에는 한 줄기의 새빨간 살기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거의 미쳐 있었고 혼탁한 눈빛에서는 거의 맑은 빛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강렬하고 위험한 숨결을 내뿜고 있었다.부진환은 그녀를 보는 순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미친 듯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낙청연은 경각심을 높여 재빨리 피했다. 그녀는 손에 은 침을 쥐고 부진환이 어쩔 새 없이 그의 뒷목에 바로 침 한 방을 놓았다. 침을 맞은 부진환은 비틀거리더니 바닥에 쓰러졌다.그제야 떨렸던 낙청연은 한시름 놓았다. 그녀는 무력으로 부진환을 이길 수 없었다. 게다가 이성까지 잃은 부진환은 더욱 상대하기 어려웠다.그녀는 그제야 벽 모퉁이에 웅크리고 앉아서 울고 있는 낙월영을 보았다. 그녀의 첩지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소매가 찢어진 흔적은 아주 자세하게 방금 일어난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었다.낙월영은 아주 슬프게 울고 있었다. 정말로 억울해서 속상해하고 있었다.낙청연은 담담하게 그녀를 슬쩍 쳐다보았다. 원래는 소유더러 왕야를 침상으로 옮기라고 할 생각이었다.하지만 갑자기 그녀의 눈에 청색의 빛이 들어왔다.그녀의 눈은 휘둥그레졌다!그 땅 위에 있는 건,
그녀는 곧 죽게 되었다!낙월영의 눈빛은 점점 불타올랐고 심지어 약간의 광기까지 띄고 있었다.그러나 낙월영이 한창 기대하고 있을 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절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왕야! 멈추십시오!”소유와 소소 그리고 고 신의가 뛰쳐들어왔다. 두 사람은 급히 부진환의 팔을 잡았고 고 신의는 부진환의 몇 곳 혈 자리에 침을 놔 부진환을 온전히 기절시켰다.부진환의 몸이 나른해지는 그 순간,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그 강력한 힘은 끝내 사라졌다. 낙청연은 드디어 풀려났고 마치 다시 생명을 얻은 사람처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녀는 크게 숨을 내쉬면서 아픈 자신의 목을 만져 보았다. 그리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침상에 옮겨지는 부진환을 쳐다보았다.부진환은 한 달 동안 왕부를 떠나 요양하러 갔었다. 그는 태부의 생신인 전날에야 돌아왔다. 하지만 한 달 동안 그의 병은 아무런 호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심해져 돌아왔다.부진환의 병증은 이대로 나아간다면 그는 다른 사람의 조종을 받고 걸어 다니는 송장이 될 것이고 최후는 스스로 죽음을 자초할 것이다.배후의 주모자는 부진환이 태부부에서 이처럼 발광할 것을 바랐지만 낙청연에 의해 그 계획이 실패한 것이다.또한 낙청연도 부진환이 오늘 저녁에 다시 재발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신의는 부진환의 증상을 관찰한 후 급히 말했다: “어서 빨리 약을 달이고, 목욕물을 받아주세요! 왕야를 얼른 목욕시켜야 합니다!”소유는 즉시 사람을 불러 준비시켰다.당분간은 왕야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 소유는 앞으로 다가와서 낙청연을 부축했다. “왕비, 괜찮으십니까?”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있었다.고 신의가 다가와서 낙청연의 목에 난 상처를 보더니 말했다: “좀 이따 제가 고약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매일 발라주십시오.”“왕비, 비록 의술을 조금 아신다고는 하시지만, 다음에는 절대 이렇게 무모하게 뛰어들면 안 됩니다. 너무 위험했습니다.” 고 신의는 신신당부했다.전혀 두려움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고 신의는 언제부터 그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던 거지?방금 그녀가 소유와 한 말들을 그가 다 들었을까?낙청연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네가 봤느냐? 왕야의 증세가 그전에 왕부의 하인들이 발광하던 모습과 흡사하지 않느냐?”“지금 왕야는 곳곳마다 나를 경계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왕야의 일은 내가 끼어들지 않는 편이 좋겠구나, 그저 좋은 마음으로 귀띔해주는 게다.”듣더니, 소유는 온몸이 굳어버리는 것 같았고 마음속으로부터 한기가 올라왔다.그래 맞다. 왕비는 그날 밤 일을 말씀하신다. 오늘 밤 증상은 참으로 그날 밤과 비슷했다. 혹시 정말 어떤 사악한 기운이 들린 건가?“예, 왕비의 말씀, 감사드립니다.’낙청연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자신의 정원으로 걸어갔다.그녀는 소유가 떠나는 발걸음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그 음산한 시선은 아직도 느낄 수 있었다.고 신의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섭정왕부와 태부부가 뜻밖에도 엮여서 관련이 있게 되었으니, 이 일의 배후에 있는 주모자는 수완이 뛰어날 것이다. 이 고 신의도 분명 그들의 사람일 것이다.하지만 그녀의 지금 실력으로는 그 배후의 세력들과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다. 보아하니 요즘은 조심하는 편이 좋겠다.그녀는 생각하면서, 정원으로 돌아왔다.“왕비, 왕야의 그곳……” 등 어멈은 걱정스럽게 물었다.낙청연은 머리를 흔들더니 말했다: “괜찮다, 걱정 안 해도 된다.”하지만 등 어멈은 그녀의 목에 난 상처를 보았다. “하지만 왕비 마마의 목이……”낙청연은 아직도 아파오는 목을 만지면서 방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괜찮다.”등 어멈은 그녀를 부축해서 방으로 들어가서 그녀의 시중을 들면서 말했다: “제가 알아보았는데, 낙가의 둘째 소저가 상처 때문에 불만이 대단하답니다. 왕야에게 약을 구해 달라고 계속 조르고 있답니다.”“왕야는 낙가의 둘째 소저를 한 달 동안이나 피해있었는데 지금 기회를 다시 찾았으니, 왕야를 들볶지 않겠습니까? 오늘 밤도 왕야의 방에서 울음
“그렇다면 오황자의 치수도 재어 옷을 두어 벌 만들지요.”부진환의 차가워진 눈빛에 낙청연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왕야께서는 그리 옹졸한 분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이 저택의 모든 이와 이 저택의 사람이 아닌 낙월영도 새 옷이 있는데 왕야의 친동생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낙청연은 드물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으나 그 내용은 그리 듣기 좋은 것이 아니었다.부진환은 낙청연의 말에 표정이 어두워졌고 말투도 싸늘해졌다.“내 다섯째 동생에게 관심이 참 많구나.”낙청연은 눈썹을 까딱이면서 비아냥댔다.“왕야를 보고 배워서 그렇지요.”부진환의 안색은 무척 어두웠고 낙청연은 냉담하게 몸을 돌려 사람을 데리고 떠났다.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소유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는 얼른 왕야를 부축하며 말했다.“왕야, 화를 내면 안 된다는 고 신의 말씀을 잊으셨습니까? 화를 참으셔야 합니다.”부진환은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는 차가운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고 신의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낙청연을 내쫓으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지도 모르지.”낙청연이 시집온 뒤로 왕부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쉬이 성을 내게 된 것도 낙청연 때문이었다.그러나 소유는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그러나 어젯밤은 둘째 아씨 때문에 왕야께서…”그 말에 부진환은 고개를 들어 날 선 눈빛으로 소유를 쏘아봤다.“지금 낙청연의 편을 드는 것이냐?”소유는 고개를 숙였다.“그럴 리가요. 전 다만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소인은 왕비 마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둘째 아씨는 좋은 점이라고는 없죠. 왕야께서 이렇게까지 둘째 아씨를 감싸고 돌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둘째 아씨가 진정 이해심이 깊고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자였다면 계속 왕야를 귀찮게 해서는 안 되지요.”소유는 누구의 편을 들어주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왕야만을 생각했다.—부진환의 정원에서 나온 뒤 낙청연은 남각으로 향했다.마르고 병약한 몸이 뒷짐을 진
낙청연은 조금 놀랐다. 산명 대사?사실 낙청연은 부운주에게 얘기해주고 싶었다. 그의 몸에는 깨끗하지 못한 것이 들러붙어 있지 않으니 산명 대사를 찾는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오황자, 요즘 세상에는 사기꾼들이 많습니다. 혹시라도 금전을 사기당하지 않게 조심하세요.”낙청연은 이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부운주는 어쩌면 그녀보다도 더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은냥은 아주 중요했고 그것을 사기꾼한테 사기당한다면 아까운 일이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사기꾼이 아닙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아주 유명한 산명 대사였습니다. 매일 딱 한 시진만 점을 쳐주는데 나오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분께 점을 본 사람들은 골치 아픈 일들을 전부 해결했다고 들었습니다. 저 또한 제 운에 맡겨보려고요. 어쩌면 진짜 될지도 모르지요.”부운주는 그 말을 할 때 눈을 반짝이고 있었고 낙청연은 그 모습에 마음이 아렸다.낙청연은 그가 거기에 가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굳이 찬물을 끼얹지는 않았다.낙청연이 물었다.“어디에 계시는 분이시랍니까? 제가 먼저 가보겠습니다. 정말 소문대로 용하신 분이라면 제가 가본 다음에 가보시지요.”부운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에게 주소를 주었다.치수를 다 재고 나서 낙청연은 이내 사람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등 어멈이 겨울옷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배분하러 가려고 하자 낙청연은 등 어멈에게 가는 길에 그 산명 대사에 대해 알아 오라고 시켰다.낙청연은 그 산명 대사를 사기꾼이라고 여겼는데 저녁에 등 어멈이 가지고 온 소식은 놀라웠다.“왕비 마마, 그 산명 대사 실력이 대단한 듯싶사옵니다. 창북길(昌北街)에 있은 지 좀 됐다는데 다들 용하다고 했사옵니다. 이 소식이 권세가에게도 알려져 아이를 낳고 싶은 부인들이 그 대사님을 여러 차례 모셨다는 얘기도 들었사옵니다. 하지만 그분은 자신이 직접 가서 점을 보거나 풍수를 보지는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만 고객을 받는다더군요.
낙청연은 그 여인의 관상을 봤다.확실히 산명 대사의 말대로 그 여인은 부부의 연이 조금 부족한 편이었으나 전체적인 관상을 보니 홀로 고독하게 살 관상은 아니었기에 인연이 조금 늦게 찾아올 듯했다.“감사합니다, 대사님!”그 여인은 은냥을 내려놓고는 몸을 일으켜 떠났다.낙청연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산명 대사는 그녀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큰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상관하지 않고 열심히 점을 보고 있었고 한참을 관찰하던 낙청연은 그 산명 대사가 점을 꽤 잘 본다는 걸 발견했다.반 시진도 되지 않아 탁자 앞에 부스러기 은전이 가득 쌓였고 지초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왕비 마마, 오래 지켜보셨는데 혹 보아내신 게 있습니까?”낙청연은 한숨을 쉬었다.“진짜 잘 버는구나…”지초는 얼이 빠졌다.“네?”가득 쌓인 부스러기 은전은 대충 계산해봐도 백 냥은 거뜬할 것 같았다. 어쩐지 하루에 한 시진만 점을 본다 했는데, 한 시진만 봐도 백 냥 넘게 벌 수 있는 탓이었다.왕비는 무슨, 일찍 나와서 점이나 봐야 했는데.왕비보다 훨씬 더 돈이 되는 직업이었다.한 시진이 지나자 산명 대사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물건을 정리하고 은전을 챙겨 떠나려 했다.“여러분, 내일은 일찍 오세요.”말을 마치고 그는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낙청연은 산명 대사가 길을 걸을 때 오른발이 불편하다는 걸 발견했다.곧 있으면 자신의 차례가 올 뻔했던 사람들은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 늦게 왔으니 어쩔 수 없이 오늘은 돌아가야 했고 내일 일찍 오는 수밖에 없었다.지초는 저도 모르게 감탄하며 말했다.“대단하네요. 그냥 이렇게 정리하고 돌아갈 줄은 몰랐습니다.”낙청연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지초야, 찻집에 들어가서 날 기다리고 있거라. 난 대사님을 찾아가 점을 쳐봐야겠다.”말을 마치고 낙청연은 발걸음을 옮겨 골목길로 향했다.같은 시각, 산명 대사는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왔는데 흰옷을 입은 사내가 정원에 서 있는 걸 보고는 깜짝 놀랐다.“누
여긴 무슨 일로 온 걸까?산명 대사는 약간 놀랐다. 위에서 자신에게 낚으라고 했던 사람이 미끼를 문 것이다.방 안은 삽시에 고요해졌고 낙청연은 계속해 울면서 말했다.“저는 매일 집안에서 부군의 학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중 몇 번은 목숨까지 잃을 뻔했지요. 게다가 제 친가에는 절 도와줄 사람이 없고 휴처를 바랄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제발 절 가엽게 여기시고 절 도와주세요.”그 말을 듣는 순간, 부진환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부군의 학대를 당하고 몇 차례 목숨을 잃을 뻔했다니? 헛소리!낙청연은 왕부에 있을 때 자신과 여러 차례 부딪쳤었고, 다른 이들에게 손찌검할 때도 기세등등했었는데 지금은 불쌍한 척을 하고 있었다.산명 대사는 살짝 굳은 표정으로 슬쩍 부진환을 쳐다봤다. 그녀를 학대했다는 부군이 마침 자신의 앞에 앉아있었다.“그렇다면 들어오시지요.”산명 대사의 대답에 부진환의 안색이 어두워졌고, 그의 눈동자에 순간 당황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그럼 전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부진환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고 산명 대사는 손을 뻗어 그를 만류했다.“먼저 오셨는데 어찌 가십니까? 괜찮습니다. 두 분 다 볼일이 많으신 건 아니니 아주 빨리 처리해 드릴 수 있습니다.”부진환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고 낙청연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대사님.”낙청연이 입을 열려던 순간, 그녀는 부진환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부진환?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그럼 아까 문밖에서 한 얘기들도 전부 들은 것일까?부진환의 어두운 안색을 보니 아마도 들은 것 같았다.하지만 낙청연은 잠깐 당황했을 뿐 그녀는 다시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태연자약하게 말했다.“이곳에 또 손님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때를 잘못 찾아온 것 같네요.”산명 대사가 말했다.“당신과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해결하러 온 분이십니다.”어려움을 해결한다고?낙청연은 저도 모르게 부진환을 힐끗댔다. 부진환의 안색이 더 어두워진 것을 확인한 그녀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의미심장
부소는 깜짝 놀라 다급히 부원뢰를 업으려 했다.“아버지를 데리고 도성에 가서 의술이 더 뛰어난 의원을 찾겠습니다!”“분명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부원뢰는 부소의 손을 잡아당겼다.“콜록... 내 몸은 내가 잘 알고 있다. 난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사람은 결국 죽을 테니, 그렇게 걱정하지 말거라.”부원뢰는 힘없이 말하며 그를 위로하려 억지 미소를 지으며 부소의 손등을 두드렸다.“어떻게 이럴 수가...”부소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부원뢰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나도 생각지 못했다.”“네가 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는 것도 보지 못했는데, 아쉬움을 품고 가야 할 것 같구나.”말을 마치고 그는 옆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옥교를 보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가씨, 하나만 묻겠네. 부소가 마음에 드느냐?”옥교는 멈칫하다 저도 몰래 고개를 돌려 부소를 바라보았다.부원뢰가 말했다.“너에게 물은 것이니, 부소를 보지 말거라.”“내가 곧 죽는다고 해서 듣기 좋은 말로 위로하려 하지 말거라. 난 그저 사실을 듣고 싶을 뿐이다.”옥교는 조금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부원뢰는 그녀의 손을 잡고 품에서 피로 물든 옥팔찌 하나를 꺼내 꼼꼼히 닦은 후 옥교에게 건네주었다.“이 팔찌는 부소 어머니의 혼수다. 이번에 이곳으로 온 것도 부소 어머니의 임무를 받고 온 것이다. 네가 참 마음에 드는구나. 앞으로 두 사람이 함께 있든 아니든 이 팔찌를 받기를 바란다.”“내 소원을 들어준다고 생각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도 부소 어머니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될 것이다.”옥교는 그 말을 듣고 놀라기도 했고 난처하기도 했다.그녀는 부소의 마음도 모르는데 어떻게 며느리의 신분을 의미하는 받을 수 있겠는가.게다가 이 옥팔찌는 너무도 귀하다.부소도 그녀가 난처한 것을 알고 말했다.“그냥 받으시오.”옥교는 그제야 팔찌를 받았다.그녀는 나중에 부소에게 돌려주기로 생각했다. 그녀는 부소가 아버지의 아쉬움을 달래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송천초의 모습을 보며 초경은 마음이 아프면서도 못내 기뻤다.그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뽀뽀했다.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가치가 있다고 하면 가치가 있는 것이오!”초경은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로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그의 확고한 눈빛에 송천초는 저도 몰래 팔을 들어 그의 목을 휘감고 더욱 적극적인 대답을 했다....송천초는 날이 밝자마자 깨어났다.그녀는 옆에 누워 있는 초경을 보고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려 하지 않았다.“뭘 그렇게 보는 것이오? 그렇게 좋소?”갑자기 눈을 뜬 초경이 입꼬리를 올렸다.“깨어나셨습니까?”“본디 잠이 많지 않소.”초경은 말하면서 얼굴을 쓰다듬고 있던 송천초의 손을 잡고 잡아당겼다.“왜 그러시오? 아침부터 왜 그리 걱정이 많은 것이오?”“다음 생에 당신처럼 잘해 주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송천초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다음 생에 꼭 일찍 저를 찾아오십시오.”“다음 생이 지나도 마찬가지입니다.”초경은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좋소. 다음 생에도 앞으로도 꼭 일찍 찾아 지켜줄 것이오.”“평생 지켜줄 것이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수명도 아껴야지 않겠습니까? 수명이 줄면 어찌 저를 평생 지켜줄 수 있습니까?”초경은 멈칫하다 마음이 따뜻해져 그녀를 꼭 안았다.“좋소. 자네의 말을 듣고 소중히 아끼겠소.”“하지만 동하국을 없애는 일은 이미 부진환에게 승낙했으니, 약속을 어길 순 없지 않소?”“걱정하지 마시오. 이 일은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오.”“앞으로 뭐든 자네의 말을 듣고 수명을 소중히 여기며 평생 당신을 지켜줄 것이오.”송천초도 그를 꼭 껴안았다.“좋습니다.”-며칠 후, 이한도 쪽에서 고강해를 미끼로 삼아 그를 구하려는 사람을 몇 명 잡았다.심문하자, 그들은 모두 왕자를 구하러
막사로 돌아간 후 부진환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는 고강해를 미끼로 삼으려고 이한도로 데려갔다.그리고 동하국에 소식을 전해 투항을 권했다.3일도 지나지 않아 동하국 선박이 이한도 부근에 와서 고강해가 정말 이한도에 있는지 알아보려 했다.그와 동시에 송천초와 초경도 청주를 찾아왔다.부진환은 소식을 듣고 직접 맞이하러 가서 열정적으로 접대했다.세 사람은 정원에 술과 안주를 준비했다.부진환은 술을 따르고 말했다.“여제께서 두 사람이 올 것이라 편지를 보냈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소. 왜 며칠 더 놀다 오지 않은 것이오?”송천초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이젠 여제라 부르는 것입니까? 괜히 낯설어 보이십니다.”부진환은 멈칫하다 웃으며 답했다.“보는 눈도 많은데 마음대로 여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예의가 아니지 않소. 이미 여제라 부르는 것이 익숙하오.”“하긴 여국의 부 태사시니, 여제께 무례를 범하며 안 되시지요. 이렇게 빨리 여국으로 오실 줄 몰랐습니다. 부 태사 같은 분은 정말 흔치 않습니다.”“자, 제가 한 잔 드리지요!”송천초는 술잔을 들고 단숨에 다 마셨고 부진환도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두 사람은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초경이 마음이 급한 듯 먼저 입을 열었다.“동하국과의 전쟁은 어떻게 되었소?”“동하국 위치는 알아낸 것이오? 내가 가서 그들을 죽일 것이오.”“절대 늦어서는 안 되오.”부진환은 살짝 당황했다.“그리 조급해하는 것이오?”초경은 천천히 음식을 먹으며 물었다.“빨리 없애는 것이 좋지 않소?”“일찍 끝내야 천초가 매일 같이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오.”부진환이 웃으며 답했다.“동하국의 위치는 이미 사람을 보내 알아보고 있소. 아마 곧 소식이 있을 것이오.”“하지만 자네는 이제 보통 사람이 아니오. 나라 사이의 전쟁에 끼어들면 수위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소?”사실 이 일은 초경이 나설 일이 아니다.평소 송천초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몇 명 죽이는 것은 괜찮지만, 나라 사이의 전쟁은 결코
고강해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열쇠요.”“하지만 다들 열쇠가 가짜라는 것을 모르고 있소.”부진환은 곰곰이 생각하다 또 좋은 계획이 떠올랐다.그가 물었다.“당신을 대신한 형제들과 고옥서 남매를 제외하고 몇 명의 성인 형제자매가 있는 것이오?”고강해는 생각하다 답했다.“아홉 명이 더 있소.”이 숫자에 부진환은 살짝 놀랐다.동하국 왕의 자식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아홉 명 전부 동하국에 있는 것이오? 왜 나타나지 않는 것이오?”고강해가 답했다.“우리는 서로 싸우는 사이라 아무도 서로 굴복하고 지휘받는 것을 원하지 않소.”“그래서 따로 병사를 통솔하고 있소. 그래야 공로를 세워도 다른 사람과 나눌 필요가 없소.”“내가 잡히자, 고옥서가 오지 않았는가?”부진환은 그 말을 듣고 가볍게 웃었다.“그렇게 서로 싸우면서 뿔뿔이 흩어져 어찌 여국을 상대하려는 것이오?”고강해가 말했다.“우리에게는 약사가 있소.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지 자네는 모르오.”“여국의 풍수사가 강하다고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 하나에도 비길 수 없소.”그 말을 듣고 부진환이 물었다.“전쟁을 오랫동안 했는데, 그 대단하다는 약사는 왜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오?”“정말 궁지에 몰리지 않은 이상 약사는 동하국을 떠나지 않을 것이오.”“약사는 스무살에 동하국으로 왔고 이미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소. 하지만 약사는 아직도 스무살 때의 얼굴을 유지하고 있소. 어찌 비긴다는 말이오?”“약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여국을 평정할 수 있소.”비록 부진환은 이런 허풍을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적을 얕볼 순 없다.“약사가 그렇게 대단하면 어찌 이렇게 많은 동하국 사람의 희생이 필요하오? 어차피 약사는 동하국 사람이 아니니, 동하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을 것이오.”부진환이 단번에 중점을 꼬집어 말하자 고강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부진환이 말을 이었다.“게다가 당신이 잡혀도 아무도 구하지 않을 것이오.”“형제자매들은 자네가 죽기를
“왜 계속 당신을 남겨두었는지 알고 있소?”부진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고강해는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동하국 왕자이기 때문에 남겨 두면 반드시 쓸모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소.”“하지만 동하국 사람이 당신을 죽이려 할 줄은 생각지 못했소.”고강해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오?”“자네는 이젠 아무런 가치가 없소.”고강해는 자신의 처지를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고 답했다.“사실 난 잡힌 순간부터 아무런 가치도 없었소.”“동하국에는 황자가 많으니, 나 하나 없다고 문제 될 것 없소.”“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나를 죽이려 할 줄은 몰랐소. 도망가는 와중에도 나를 쏘려고 했소.”“하지만 우리는 형제 사이의 정이 없었소. 그저 경쟁과 싸움뿐이었소.”부진환은 그가 많은 말을 하자, 계속 물었다.“그저 싸우는 사이라면 어찌 자네를 그렇게 미워하는 것이오? 구하지 않는 것도 망정이지, 왜 죽이려 하는 것이오?”고강해가 답했다.“그들은 나한테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오.”“만약 그것을 얻는다면 새로운 왕자가 될 수 있소.”부진환은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옥서가 고옥언을 구할 때, 그는 옆 방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고 고강해 시체에서 뭔가를 갖고 가겠다는 것을 들었다.“그게 무엇이오?”고강해는 대답하지 않고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우리 동하국에는 존경받는 약사가 있소.”“하지만 과거 그녀는 동하국의 제압을 받던 일반 의원이었소. 독을 만들 줄 알기에 우리의 핍박을 받고 독을 만들었소.”“그녀는 여국인이지만 진법으로 인해 밖으로 나와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소. 그렇게 떠돌다 그녀는 동하국으로 왔고 늘 여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소.”“그녀의 계획은 줄곧 실패했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홀로 바다에 갔소. 그날 그녀는 파도 때문에 배가 뒤집혔지만, 마침 바다 밑에서 보물을 발견했소.”“오래된 침몰선이 해저에서 거대한 궁전이 된 듯한 모습이었고, 그녀는 그 안에서 많은 보물을 얻었고 특
고강해는 절망에 휩싸여 눈을 감고 죽음을 맞이했다.하지만 이때, 옆에서 화살이 날아가 정확히 고옥서가 쏜 화살을 떨구었다.고옥서는 그 모습을 보고 화를 내며 활을 내던지고 재빨리 마차를 이끌고 그곳을 떠났다.이내 그 마차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났다.병사들도 신속히 그들의 뒤를 쫓았고 성문에 걸린 고강해도 내려져 감옥으로 데려갔다.고옥서와 고옥언은 바닷가로 도망쳐 작은 배를 찾아 먼저 숨을 곳을 찾기로 했다.하지만 너무 빨리 쫓아온 병사들 때문에 두 사람은 숨을 곳 없이 훤히 모습을 드러냈다.두 사람은 힘껏 노를 저어 떠나려 했다.바다에서 힘에 부쳐 곧 쫓기려는 그때, 눈앞에 동하국의 배 한 척이 나타났다.그리고 배 위에는 동하국 깃발이 달려 있었다. 고옥서는 미리 계획한 배가 마침 인근에 왔다고 추측했다.두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본 듯이 배 위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했고 곧 배에 올랐다.“어서 돌아가거라! 병사가 쫓아왔다!”고옥서가 다급히 명을 내렸다.하지만 배는 바다에 멈춰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옥서는 눈살을 찌푸리고 배 위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무엇들 하는 게냐? 귀가 먹은 것이냐?”비록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동하국 병사였지만 이상하게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그녀의 말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옥서는 병사들이 곧 쫓아올 것 같아 조바심을 내며 그들에게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으며 배도 움직이지 않았다.고옥서는 어딘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고 고옥언을 끌고 배에서 뛰어내리려 했다.하지만 그때, 선실에서 청주군 병사들이 뛰어나와 단번에 그들을 포위했다.배에서 뛰어 내리려 해도 이젠 뛸 수 없었다.그리고 추격하던 병사들도 가까이 도착해 그들의 배를 겹겹이 에워쌌다. 그리고 배 위에는 부소가 서 있었다!그녀는 놀란 나머지 절망스러웠다. 고옥서는 화를 내며 동하국 사람을 붙잡았다.“적들을 도와 우리에게 함정을 파놓은 것이냐?”상대는 울먹이는 말
결국 다들 시선을 부소에게로 옮겼다.부소는 멍하니 자기를 가리키며 물었다.“나한테 가라는 것이오?”“그것도 아니지 않소?”부진환이 말했다.“주락과 계진 둘 다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미인계에 넘어가게 생겼소?”“자네의 연기가 비슷할 것 같소.”부소가 다급히 말했다.“다른 사람을 찾으면 되지 않소?”“다른 사람은 마음이 놓이지 않소.”부소는 한참 고민하다 잔에 담긴 차를 단숨에 다 마셨다.“가면 될 것 아니오!”“좋은 소식 기다리시오!”부소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부진환이 그를 불러 세웠다.“오늘 이미 심문을 받았으니, 지금 가는 것은 너무 티가 날 것이오. 급할 것 없이, 내일 다시 가시오.”-다음 날 저녁.부소는 부진환이 말한 대로 고옥서를 심문하러 갔다.부 태사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고옥서는 전쟁 때문에 그가 오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역시 부진환의 추측대로 고옥서의 계략 중 하나가 바로 미인계였다.부 태사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부소는 다르다.한바탕 유혹하고 난 후, 고옥서는 기회를 잡아 부소와 단둘이 있게 되었다. 그녀는 고옥언이 갇힌 위치를 알아내고 부소가 방심한 틈을 타서 독 가루를 뿌려 그를 쓰러트렸고 감옥 문 열쇠를 훔쳐냈다.그리고 그녀는 독으로 감옥을 지키고 있던 옥졸을 쓰러트리고 고옥언이 갇힏 곳을 찾아 고옥언을 구출했다.“누나!”고옥언은 감격에 겨웠다.“어찌 온 것입니까? 동하국이 청주성을 뚫은 것입니까?”고옥서는 사방을 경계하며 말했다.“아니다. 홀로 너를 구하려 들어온 것이다.”“일단 이곳을 떠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두 사람은 조용히 감옥을 떠나려 했다. 하지만 감옥 끝에 있는 철문을 보고 고옥언이 발걸음을 멈추었다.“누나. 고강해가 저곳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데리고 가실 겁니까?”고옥서는 바로 거절했다.“안 된다. 너무 위험한 상황이라, 우리도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누나. 저는 그저 고강해가 지니고 있는 열쇠를 말한 것입니다.”그 말을 듣고
“정말인 것이냐? 동하국에는 나를 거절할 수 있는 남자가 없다.”그 말을 듣고 부진환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동하국 사람들이 워낙 적으니, 그럴만하다.”고옥서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정말 단호하구나.”말을 마치고 고옥서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옷을 입었다.부 태사에게 미인계가 통하지 않을 줄 생각지도 못했다.“인내심이 없으니,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거라.”부진환이 천천히 몸을 돌려 불쾌한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고옥서는 어쩔 수 없이 답했다.“내 동생을 구하러 왔다.”“동하국 왕자, 고강해.”“너에게 잡힌 지 오래되었는데, 아직 살아 있는 것이냐?”부진환은 놀라지 않았다.“얼마 전에 그를 구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다들 실패했는데, 너라고 성공할 거라 생각한 것이냐?”고옥서가 가볍게 웃었다.“확신이 없다면 어찌 왔겠느냐? 청주성에서 순찰하는 청주군도 많지 않은 듯한데, 다들 바닷가로 갔나 보구나.”“동하국의 배가 부담을 준 것이냐?”부진환이 담담하게 그녀를 힐긋 보고 답했다.“쓸데없는 걱정이구나.”말을 마치고 부진환은 몸을 돌려 떠났다.부진환의 반응을 본 고옥서는 전쟁의 상황이 부 태사에게 큰 부담이 되었고 막사마저 사라졌을 것이라 추측했다.그렇지 않으면 부 태사가 어찌 안색을 바꾸었겠는가?그렇게 생각한 고옥서는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으며 철문을 바라보았다.감옥에서 나간 부진환은 눈살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부소가 와서 그를 부른 것도 듣지 못할 정도였다.부소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왜 그리 넋을 놓고 있소? 여러 번 불러도 도통 반응이 없었소.”“심문하러 간 동하국 여인은 어떻게 되었소? 안색이 좋지 않소.”부진환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청주성에 들어와 동하국 왕자이자 그녀의 동생 고강해를 구하러 왔다고 순순히 말했소.”부소가 깜짝 놀랐다.“고강해 말이오?”“그런 뜻으로 말했소. 하지만 고옥서라는 이름을 들으니, 고옥언과의 관계가 궁금해졌소.”“나이를 보니
“모든 것이 예전처럼 회복될 것입니다.”차강남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황량한 이한도의 모습을 바라보며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다 잘될 것이다.”그는 이한도를 예전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이 시간문제일 것이라 믿는다.마음만 먹으면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다.-저녁이 되자 바닷가의 막사는 고요함을 되찾았다. 전쟁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깨끗이 청소되었다.옥에 갇힌 고옥서는 아직도 동하국의 병사들이 매복을 당해 전쟁에서 지고 도망친 것을 모르고 있다.그녀는 옥에 끌려간 후 동생의 모습을 보고 싶어 두리번거렸지만 계속 그를 찾지 못했다.지하 감옥의 가장 깊은 곳에는 철문이 하나 있었다. 엄격하게 지키는 것으로 보아 중요한 죄수를 수감하는 곳 같았다.그녀는 철문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옥에 갇혀 있었다.위치가 적합하니, 기회만 생기면 동생을 구출할 수 있을 것이다.그녀는 늦게까지 누군가 오기를 기다렸다.하지만 감옥에 온 사람은 부진환이었다.고옥서는 입꼬리를 올렸다.“부 태사?”부진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네가 바로 동하국의 공주구나.”“몇 번 교전할 때, 네가 지휘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용기에 비해 계략이 부족하더구나.”“홀로 청주성에 들어오다니. 정말 청주군의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고옥서는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 문 앞까지 걸어가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는 역시 대단하구먼.”“중독된 사람들과 달리 아직도 멀쩡하게 기운이 남아도는구먼.”“바깥 상황은 어떠하냐? 부 태사의 막사는 지켜낸 것이냐?”고옥서는 일부러 그를 비웃으려 득의양양하게 비꼬았다.하지만 부진환은 표정 변화 없이 그냥 싸늘하게 그녀를 보고 있었다.하지만 고옥서는 그의 뜻을 지키지 못했다고 이해했다.하지만 청주성은 아직 뚫리지 않은듯하다.“이름이 무엇이냐? 동하국에 내세울 사람이 없는 것이냐? 어찌 여인을 보내 전쟁을 지휘하게 하는 것이냐?”부진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고옥서는 입꼬리를 올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