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이고 있는 순간, 해 영감이 분노하며 소매를 펄럭였다.“됐소!”“대제사장에게 바라지 못하겠소!”해 영감은 즉시 분부를 내렸다.“지금 당장 공시를 내걸어라. 우리 해가의 골칫거리를 해결하는 자는 해가의 귀한 손님이 될 것이며, 어떤 조건이든 요구든 모두 들어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응할 것이다!”해가는 팔 대 가문에서도 버금가는 가문으로 도성에서의 지위가 아주 높아 재력이든 세력이든 모두 막강했다.그런 해 영감이 이런 약조를 내거니 유혹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이런 조건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도 없었다.낙청연은 해 영감이 이런 말을 내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낙청연은 웃으며 말했다.“공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영감님 부의 일은,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이 말을 들은 해 영감은 두 눈을 반짝이더니 낙청연을 찬찬히 훑어보았다.“정녕 해결할 수 있겠소?”“해보면 알게 되겠지요. 제가 해결하지 못하면 공시를 내걸어도 되지 않습니까.”말을 마친 낙청연은 수풀로 성큼성큼 걸어가 팔뚝만 한 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모든 사람들이 뒤로 물러섰지만, 낙청연은 뱀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온심동은 멀리 서서 가까이 오지도, 보지도 못했다.해 영감은 불안한 어투로 말했다.“낭자, 저 뱀은 딱 봐도 맹독이 가득할 것으로 보이니 힘도 셀 것이오. 조심히 다가가는 게 좋을 것이오.”낙청연은 웃으며 답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낙청연은 곧바로 앞으로 다가가 깔끔하게 뱀을 손으로 잡았다.낙청연은 한 손으로 뱀의 머리를 꽉 잡았고, 긴 뱀의 꼬리는 낙청연의 팔에 걸려 있었다.낙청연이 몸을 돌리자 온심동은 깜짝 놀랐고, 해 영감도 충격에 빠졌다.“어찌… 어찌 물지 않는 것이오?” 해 영감은 뱀을 보기만 해도 무서웠다.낙청연은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이 뱀은 낙청연이 직접 잡아 온 것이니 낙청연의 냄새에 익숙해져 당연히 물지 않았다.낙청연은 뱀을 잡고 온심동 앞으로 걸어오며 물었다.“대제사장, 한번 잡아보겠느냐?”온심동은 창백한 얼굴
해 영감의 말은 아주 예리했다.이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제사장의 체면을 구긴 것이었다.온심동은 어두운 안색으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더 많은 건 증오였다. 낙청연에 대한 증오.낙청연은 도발하는 눈빛으로 온심동을 바라보다 곧바로 입을 열었다.“해 영감,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일은 제가 완전하게 처리해 드리겠습니다.”해 영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부탁하겠소.”해 영감은 곧바로 사람을 시켜 낙청연에게 방을 마련해 밤이 되기까지 기다리자고 했다.낙청연은 뱀이 담긴 주머니를 가지고 먼저 해가를 나섰다.온심동은 지기 싫어 해 영감에게 말을 걸었지만, 낙청연이 뒤를 돌아보자 해 영감은 어두운 안색으로 온심동을 쳐다보지도 않았다.낙청연은 차갑게 웃으며 등을 돌려 떠났다.현실은 잔혹한 것이다.지고한 지위에 올랐다 해도, 실력이 있어야 주위의 사람들도 알아주는 법이다.해 영감은 그만한 권세가 있으니 체면도 봐주지 않고 막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다른 사람들은 해 영감처럼 면전에 대고 얘기할 순 없지만, 사적으로 온심동에게 대제사장 자리는 과분하다고 의논할 것이다.이런 말이 많아지면, 온심동의 자리는 점점 흔들릴 것이다.여국에 이런 대제사장은 필요 없다.온심동의 실력으로 왜 대제사장의 자리를 차지하려 들고, 자신마저 잔인하게 살해했는지 낙청연은 이해할 수 없었다.오랫동안 맺은 사매의 정을 생각하면 낙청연은 가슴이 답답했다.낙청연은 우선 그 뱀이 담긴 주머니를 가져갔다.그리고 밤이 돼서야 다시 해가로 발길을 옮겼다.해 영감은 오랫동안 기다린 모양이었다.“낭자, 언제 시작하는 것이오?”해 영감이 물었다.그러자 낙청연이 분부했다.“저녁을 먹은 후에는 모두 방으로 돌아가고, 절대 나오지 마십시오.”그러면서 낙청연은 부적을 꺼내 해 영감에게 건넸다.“이걸 모든 사람의 방문에 붙여놓고, 자시가 지난 후에는 더더욱 밖으로 나오면 안 됩니다. 일어나서 둘러보는 것도 안 됩니다.”“해가 뜨면, 밖으로 나오십시오.”해 영감
낙청연은 홍해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홍해가 모습을 드러내자, 낙청연은 곧바로 쫓아갔고 홍해는 고개를 돌려 도망쳤다.두 사람은 부에서 서로를 쫓아다니며 부 전체를 돌고 또 돌았다.달리다가 힘들면 반 시진 정도 쉬었다가 다시 달렸다.그렇게 새벽이 돼서야 둘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고, 낙청연은 홍해를 병에 넣어두었다.날이 밝고, 해가 떴다.해 영감은 제일 먼저 방에서 나오며 계단에서 쉬고 있는 낙청연을 급히 찾아왔다.“낭자, 상황은 어떠하오?”“안색이 어두워 보이는구먼.”해 영감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낙청연을 바라보았다.“해결했습니다.”낙청연이 대답하며 병을 꺼내 해 영감에게 보여주었다.해 영감은 검은 기운을 보고 굳게 믿으며 대답했다.“해결했으면 됐소.”“낭자, 이게 또 찾아오지는 않소?”낙청연이 답했다.“이건 한번 수복되면 다시 찾아오진 않습니다.”“하지만 다른 게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누군가가 영감님을 노리고 있다면 말입니다.”이 말을 들은 해 영감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어찌하면 좋겠소?”낙청연은 서서히 몸을 일으키더니 입을 열었다.“금일 제가 부의 배치를 바꾸겠습니다. 누군가가 건드리지 않는 이상, 잡것들은 절대 해가에 들어오지 못할 겁니다.”해 영감은 그제야 시름이 놓이는 듯 대답했다.“좋소.”“그럼 부탁하겠소.”“괜찮습니다. 저는 물건을 준비하고 저녁에 다시 오겠습니다.”해 영감은 고개를 끄덕이며 낙청연이 피곤한 안색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믿음이 생겼다.이 낭자는 믿을 만해 보였다.곧바로 해 영감은 사람을 불러왔다.“여봐라.”“낙청연에 대해 알아오거라.”“아주 상세하게 말이다.”낙청연이 물건을 준비하고 돌아오자, 해 영감은 또 다른 눈빛으로 낙청연을 바라보며 달갑게 말했다.“낙 낭자, 밥을 드시오. 우리 집 일에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데 내가 소홀히 했소. 어서 식사를 하시오.”낙청연은 흠칫했다. 잠깐 떠난 사이에 이렇게 달가운 태도로 변하다니.낙청연은 정청으로 따
온심동은 원한 가득한 눈빛으로 낙청연을 노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온심동은 온갖 방법을 생각해 귀비를 만나 뵙고 지원을 얻으려 했다.심지어 대제사장이라는 신분도 내려놓고 해가에 잘 보이려고 하며 귀비를 만날 기회를 얻으려고 했다.온심동이 어렵게 얻은 기회인데.해 영감은 적극적으로 낙청연을 초대했다.왜 낙청연은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일까! 대체 왜!“좋소. 낙 낭자가 승낙했으니 자리를 마련하겠소. 시간은… 사흘 후가 어떻소?”해 영감이 달갑게 물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좋습니다.”해 영감은 아주 흡족한 모습이었다.온심동은 결과를 보러 왔지만, 이 모습을 보니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해 영감의 태도가 저렇게나 달갑다니, 대제사장인 온심동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이번에는 무조건 해 귀비의 지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낙청연이 모든 걸 망쳐버렸다.온심동은 이를 꽉 깨물며 등을 돌려 떠났다.낙청연이 마침 밥을 다 먹고 떠나려던 순간, 해 영감이 낙청연을 붙잡으며 물었다.“낙 낭자, 지금 거처가 어디요? 소소한 보답을 준비해 낭자께 보내드리려 하오.”이 말을 들은 낙청연은 잠깐 고민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춘풍객잔으로 보내시면 됩니다.”“알겠소.”이 돈으로 귀도의 다리를 고칠 수 있으니, 구십칠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낙청연은 곧바로 부를 나섰다.멀지 않은 곳에서 낙청연은 온심동의 모습을 보았다. 온심동은 작은 골목에서 어떤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곧바로 온심동은 그 수상한 사내를 따라갔다.낙청연은 곧바로 쫓아가 조심스럽게 미행했다.몇 골목을 지나서야 온심동은 걸음을 멈췄다.낙청연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온심동의 앞에는 검은 망토 차림에 가면을 쓴 사내여서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온심동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뱀을 풀라고는 하지 않았다!”“너희 천궁도는 이렇게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이냐?!”앞의 사내는 차갑게 웃으며 답했다.“대제사장과
“우리 일족의 수치입니다!”온심동이 이렇게 변할 줄 알았더라면 낙청연은 어떻게 해서든 사부님이 온심동을 데려오는 걸 막았을 것이다.온심동은 불같이 화를 냈다.“당신이 누구라고,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합니까?”말을 끝맺자마자 온심동은 곧바로 낙청연의 뺨을 때리려 했다.낙청연은 몸을 비키며 피했고 두 사람은 길고 좁은 골목길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하령이 없는 온심동은 실력이 대단하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격렬히 싸우다가 온심동이 물러섰다.바로 그때, 누군가 위에서 뛰어내려 착지했다.“또 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오? 저번에 내가 제대로 혼쭐내지 못한 모양이군!”침서는 매서운 어조로 말했다. 그의 말에서 살기마저 느껴졌다.온심동은 안색이 확 달라지더니 곧바로 몸을 날려 도망쳤다.낙청연은 벽에 힘 없이 기댄 채로 가슴팍을 눌렀다.침서는 살짝 놀라더니 이내 낙청연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왜 그러는 것이냐? 어디 불편하냐?”“나랑 같이 돌아가자꾸나.”침서는 말하면서 낙청연을 안아 들려고 했지만 낙청연이 그를 밀어냈다.“전 다른 볼일이 있어서 당신과 함께 돌아갈 수 없습니다.”“그리고 전 당신의 저택에서 지내고 싶지 않습니다.”침서는 살짝 몸이 굳으면서 실망스러운 듯 주먹을 쥐었다.“낙요야.”그는 곧바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낙청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그래. 낙요의 말대로 해야지.”-낙청연은 객잔으로 돌아갔다.그곳에 도착했을 때, 객잔 전체에 물건이 가득 들어차 있어 객잔에서는 장사를 할 수 없었다.구십칠은 아예 돈을 써서 객잔을 전부 빌렸다.“이건... 해 영감이 사람을 시켜 보낸 것이냐?”바닥에 빼곡히 들어찬 상자들을 열어 보니 안에 금은보화가 잔뜩 들어있었다.해 영감은 통이 컸다.낙청연은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뱀은 원래 그녀가 풀어놓은 것이었기에 진짜 해씨 일가를 도운 건 아니었다.구십칠이 대답했다.“그렇습니다. 위층 방 안에도 상자가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 낙 낭자가 입궁하는 것이 내 부탁이오.”“내 딸은 귀비지만 오랫동안 임신하지 못했소.”“사적으로 의원에게 병을 보인 적도 있지만 알아내지 못했소. 그래서 혹시나 사악한 것이 있는 건 아닐지 낙 낭자가 봐줬으면 좋겠소.”낙청연은 그 말을 듣고 살짝 놀랐다.해 귀비는 황자를 낳지 못했다.하지만 그 이유는 그녀가 황후의 대체품이었기 때문이다.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때 황후는 황제에게 벌을 받아 냉궁에 갇혔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황후가 냉궁에 있을 때 황제는 해씨 일가의 딸과 만났다.그녀의 용모는 황후와 비슷한 점이 있었고 그로 인해 그녀는 황제의 은총을 받아 귀비의 자리에 올랐다.하지만 황제와 황후가 화해하면서 귀비는 예전처럼 총애받지 못했다.아마 많은 사람이 이 일을 알고 있을 것이다.해 귀비가 지금까지 아이를 가지지 못한 건 황제가 그녀를 찾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낙청연은 처음으로 사악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다.“대제사장을 찾아가 보지 않았습니까?”해 영감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해씨 일가가 대제사장을 찾아 집안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의심을 사지 않겠지만 만약 대제사장이 내 딸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후궁과 관련되는 일이니 성질이 달라지오.”“난 이 일을 대놓고 떠벌리고 싶지 않소.”“그래서 낙 낭자는 대제사장보다 더욱 나은 선택이오.”예전에 그녀가 대제사장이었을 때 해씨 일가는 낙청연을 찾은 적이 없었다.신분이 특별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여러 가지 추측을 하기 때문이다.“그래요. 그러면 제가 입궁해서 찾아가 보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해 영감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소. 내 목적이 바로 그 이유를 아는 것이오.”잠시 뒤, 궁에서 마차가 도착했다.해 영감은 낙청연을 마차에 태웠고 마차는 궁으로 향했다.동행한 사람은 귀비 곁에 있는 조 어멈(曹嬤嬤)이었다.조 어멈은 정중하게 자신을 소
해 귀비는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말했지만 강렬한 노여움과 불만이 느껴졌다.낙청연은 웃으며 말했다.“예전에 귀비 마마께서 오만한 분이라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오늘 보니 확실히 그런 듯하군요.”“그래서 사람을 시켜 모원원을 암살한 것입니까? 모원원이 용모가 수려하고 또 입궁해서 비가 될 자라 귀비 마마께서 큰 위협을 느끼셨나 봅니다.”그 말에 해 귀비의 안색이 달라졌다.그녀는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눈썹을 치켜올리며 웃었다.“모원원을 대신해 불평하는 것이냐?”“네가 대제사장과 모씨 일가로 간 적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모원원은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하던데 제홍과 함께 성을 떠난 것이냐? 둘이 함께 도망쳤다면 내게 고마워해야지.”“내가 일부러 그 소식을 제홍에게 흘리지 않았다면 제홍이 모원원을 데리고 떠날 수 있었겠느냐? 내 도움 덕분에 서로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하게 되었지. 그런데 넌 내가 모원원의 용모를 질투해 그녀를 죽이려 했다고 하는구나.”해 귀비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낙청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가느다란 손가락이 낙청연의 어깨를 살짝 찔렀다.낙청연은 뒤로 한 발 물러섰다.“너처럼 연약한 모습으로는 내 지위를 위협할 수 없다.”“넌 입궁하더라도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이 궁에 짐승 같은 놈들이 나 하나뿐이겠느냐?”낙청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귀비 마마께서 모원원을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일부러 제홍에게 흘린 것입니까?”해 귀비는 다시 연탑에 앉아 천천히 다리를 꼬았다.“그렇지 않으면?”“내가 정말로 모원원을 죽이려고 했다면 제홍이 그걸 알 수 있었을까?”낙청연은 이해할 수 없었다.“그렇다면 왜 모원원이 입궁하는 것을 막으려 한 것입니까?”“좋은 마음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이루어 준 것은 아니겠지요.”해 귀비는 가볍게 웃음을 흘리더니 손을 들어 벽을 가리켰다.“저 그림을 치우거라.”낙청연은 그녀의 말에 따라 그림을 치웠고 그 아래 그림 한 폭이 더 있는 걸 발견했다.거기에는 앳된
“말해보거라.”해 귀비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낙청연은 서서히 입을 열었다.“폐하께서 귀비 마마의 처소를 자주 찾으십니까?”그 말에 해 귀비는 놀란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그걸 정말 묻다니.”“내가 주제 파악을 못 한다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폐하가 이곳에 찾아온 적이 없는데 내가 어찌 아이를 가진다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해 귀비는 눈앞의 낙청연에게 점점 관심이 생겼다.그녀는 이렇게 배짱 좋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낙청연이 솔직한 말을 할 배짱이 있는 사람이라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쯤 그 이유 알 수 있을지 몰랐다.낙청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렇게 얘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해 귀비가 말을 이어갔다.“폐하께서는 매달 며칠씩 오신다.”“황후께서 월사가 있을 때 말이다.”해 귀비는 덤덤하게 말했지만 낙청연은 그녀의 말에서 씁쓸함을 느낄 수 있었다.해 귀비는 자신이 황후의 대체품이라는 걸 똑똑히 알고 있는 듯했다.“미모에 기대기에는 나도 언젠가는 늙는 날이 오겠지. 슬하에 아들이나 딸이 있어야 내 자리를 지킬 수 있다.”“귀비인데 어찌 자식이 없을 수 있단 말이냐?”“나도 내가 황후를 이기지 못할 거란 걸 알고 있다.”해 귀비의 눈동자에 처량함과 슬픔이 더해졌다.낙청연은 오만한 해 귀비에 대한 인상이 조금 달라졌다.다른 사람의 대체품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슬픈 일이었다.해 귀비는 예전에 진심으로 황제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낙청연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제가 맥을 짚어드리겠습니다.”“그동안 의원에게 병을 보였을 때 의원들은 어떻게 얘기했습니까? 약을 먹고 몸조리를 하셨습니까?”해 귀비는 손을 뻗으며 덤덤히 말했다.“다들 똑같은 말만 했다. 내 몸이 허약하고 차가우며, 예전에 추위 때문에 병이 난 적이 있어 오랫동안 몸조리를 해야 한다고.”“몸조리하는 약을 처방해 줘서 매일 마셨는데 효과가 없었다.”“똑같이 몸이
묵계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뱀독이 확산하여 썩어가는 송천초의 피부를 보니, 그녀는 못내 싫어졌다.시간이 흐르면 뱀독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다 오장육부를 다치면 이 몸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묵계는 갑자기 방법이 떠올랐다.“좋다. 진법을 거두거라. 나오겠다.”묵계도 조금 조급해졌다.“약속하거라. 너에게 다른 몸을 찾아줄 테니 절대 다른 짓 하지 말거라.”낙요가 말했다.“그래. 어서!”두 사람은 드디어 의견이 맞았다.낙요가 진법을 없애자, 묵계도 순순히 송천초의 몸에서 나왔다.낙요는 특별히 두 가닥의 혼이 모두 나왔는지 확인했다.낙요는 얼른 부적을 송천초의 몸에 붙였고 묵계는 다시 송천초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하지만 묵계는 낙요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낙요가 가까이 오자 바로 낙요의 미간을 파고들었다.그녀는 순식간에 낙요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낙요는 심한 충격을 입은 듯 휘청이며 뒤로 물러서서 의자를 붙잡고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그녀의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다른 몸을 찾을 필요 없다. 네 몸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혼을 빼앗는 것에 난 도가 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를 대신하여 여국의 여제가 될 것이다.”낙요는 안정을 찾고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동하국에 너무 오래 있어, 바깥세상을 본 적 없는 모양이구나.”“아무나 너에게 혼과 몸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제사장족의 대제사장들을 들어본 적 있느냐?”묵계는 낙요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제사장족? 동하국 사람한테서 들은 적 있다. 그때 나를 공격한 젊은이들도 제사장족 사람들이었다.”“그들이 쓰는 진법은 네 진법과 다를 것이 없다. 보아하니 너도 제사장족이구나.”“잘됐구나. 네가 강할수록 너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묵계는 아직도 기뻐하고 있었다.낙요가 난감한 듯 웃었다.“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너처럼 순진한 요괴는 처음 보
백서는 바로 방에서 물러나 방문을 닫았다.조영궁 밖이 조용해지자, 병풍 뒤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초경이었다.그는 쓰러져 있는 송천초를 품에 안고 있었다.낙요는 안색을 굳히고 다급히 앞으로 걸어갔다.“어찌 된 일입니까?”초경은 송천초를 연탑에 눕히고 설명했다.“동하국에서 괴물을 만났습니다...”초경은 사건의 경과를 간단히 설명했고 묵계의 신분도 알려주었다.그의 말을 듣고 낙요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렇습니까?”“방법이 있습니까? 그 괴물은 천초의 몸을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독을 없애서 깨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천초가 위험할 것입니다!”초경은 몹시 조급했다.낙요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급해하지 마십시오. 방법이 있습니다.”“천초 몸 안에 있는 묵계의 혼을 뽑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밖을 지키고 있으세요.”초경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낙요는 여국에서 제일 강한 대제사장이었으니,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천초는 괜찮을 것이다!“예. 밖에 있겠습니다.”초경은 바로 방에서 나가 정원을 지키고 있었다.낙요는 피로 진을 그려 송천초의 몸을 뒤덮었다.그리고 송천초 몸 안의 혼을 빼내기 시작했다.물론 묵계가 그녀의 몸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아, 과정이 쉽지 않았다.손을 세게 쓰면 송천초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약하게 하면 묵계를 꺼낼 수 없었다.“넌 누구냐? 감히 나를 상대하려는 것이냐?”묵계의 낮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국과 오랫동안 싸웠는데, 여국의 여제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낙요는 가소롭다는 듯 답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깜짝 놀랐다.“여국 여제? 평범한 사람을 위해 이 진까지 쓰는 것이냐?”“이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난 너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나와 손을 잡지 않겠느냐?”낙요가 가볍게 웃었다.“보아하니 넌 사람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사랑도 모르고 우정도 모른다.”“네가 몸을 원한다면 더 좋은 몸을 찾아주겠다. 얌전히 송천
“대체 뭘 하려는 거냐!”초경이 매섭게 물었다.“나는 살고 싶다. 나를 풀어주면 안전한 곳에 가서 이 여자를 풀어주마.”그 말을 듣고 초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너를 풀어주면 천초를 놓아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묵계가 담담하게 웃었다.“비록 웅황주가 나를 몰아냈지만, 이미 이 여인의 몸에 혼을 한 가닥 남겼다. 지금 두 가닥의 혼이 몸에 들어있으니, 7일 후 혼을 잃고 나의 몸이 될 것이다.”“이 몸은 이제 내 것이다.”“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얘기할 자격도 없다. 내 말대로 해야 이 여자는 살 기회가 있다!”“나를 놓아주거라!”묵계의 위협에 초경은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억눌렀다.“가거라.”“3일 후, 반드시 천초를 만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널 찾아 죽일 것이다.”묵계가 입꼬리를 올렸다.“좋다!”말을 마치고 묵계는 약사의 몸을 끌고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낙현책이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정말 이렇게 풀어주는 것입니까? 천초 고모를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초경은 묵계가 떠난 방향을 빤히 보며 말했다.“괜찮다.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낙현책은 살짝 놀랐다.이내 다들 그녀를 따라갔다.그들은 바닷가 암초에서 묵계를 따라잡았고 그녀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유생은 그녀가 중독된 것을 알아차렸다. 발목을 보니, 어느새 뱀에게 물려 있었다.유생이 고개를 돌려 초경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초경이 한 일인 것 같았다.초경은 놀라지 않고 마음 아픈 표정으로 송천초를 안았다.“천초를 데리고 먼저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부 태사를 돕거라.”“예!”이내 초경은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다들 부 태사를 도우러 갔다.부진환은 병사를 이끌고 동하국을 공격했다. 비록 동하국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방어에 강한 성벽과 무기가 없었고 선박뿐이었다.여국 병사들이 끊임없이 섬에 오르고 있으니, 동하국이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초경은 송천초를 안고 청주로 돌아와 묵계의 혼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했지만, 줄곧 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금색 진법이 나타나 묵계를 진법 안으로 가두었다. 귀를 뚫을 듯한 그 노랫소리는 진법 속에 가로막혔다.흰옷을 입은 제사장족 제자 수십 명이 하늘에서 나타났다.그들은 복숭아나무 위에 가볍게 서서 열 손가락으로 진법을 그렸고 손끝에는 금빛 부문이 흐르고 있었다.묵계는 깜짝 놀란 후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깜짝 놀라 송천초를 바라보았다.“너구나!”송천초가 차갑게 웃었다.“설마 내가 혼자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묵계는 굳은 표정으로 분노에 찬 듯 말했다.“괘씸하구나! 너에게 속다니!”그때, 밖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송천초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가 사람을 데리고 동하국을 공격했으니, 당신은 도망가지 못할 것입니다.”“차라리 순순히 잡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그녀는 어젯밤 묵계를 만난 후 막사로 돌아가 바로 이 일을 부진환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했다.부진환은 그 여자가 동하국 약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초경도 분명 그 여자의 손에 있을 테니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웠다.그녀가 혼자 묵계를 만나러 간 것도 다른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기관선을 이용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묵계가 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송천초는 웅황을 가득 챙겨 몸을 지키려 했다.묵계는 진법 속에서 절망하여 초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너와 나도 동족이라 할 수 있다. 나한테 한 짓을 다시 너한테도 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믿어선 안 된다!”“정말 저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냐?”“초경. 난 너를 죽이려 한 적 없다!”초경은 한숨을 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의 처지가 안쓰럽지만, 우린 동족이 아니다.”“우린 다르니, 같다고 하지 말거라.”“너의 딱한 처지를 보아, 솔직히 말하마. 동하국은 곧 멸망할 것이니, 너도 원수를 갚은 셈이다. 마음 놓고 떠나거라.”그 말을 듣고 묵계는 넋을 잃고 그들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죽으려면 함께 죽겠다!”묵계는 하늘을 향해 소
“그는 감금되었다. 우리는 그를 구할 수 없다. 그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너의 몸과 나의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기회가 있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입니까?”묵계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느냐? 그를 구할 수도 있고 그와 같은 수명을 가질 수도 있다.”“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하지만 대가로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할 수 있느냐?”송천초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겨 대답하지 않았다.묵계가 말을 이었다.“이곳은 동하국이다. 그들이 설치한 함정에 나는 들어갈 수 없고 평범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들어가도 그를 구할 수 있겠느냐?”“우리가 힘을 합치면 할 수 있다! 잠시 힘을 합쳐 그를 구하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 떨어지는 것이 어떠냐?”묵계가 한참 말을 한 뒤에야 송천초는 그녀의 말을 허락했다.“좋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기쁠 따름이었다. 송천초가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다.만약 이 몸을 빼앗는다면 초경에게 청신요를 쓰지 않아도 된다.“좋다. 바로 자리를 옮겨서 시작하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계를 따라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갔다.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복숭아나무였고 다른 것은 없었다.송천초는 묵계의 말에 따라 다리를 꼬고 앉았다.묵계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와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었다.“시작할 것이다. 조금 불편할 테니 참거라.”묵계는 말을 마치자마자 시작했다.송천초는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온몸의 기운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복숭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밀실에서 독을 없애려 애쓰고 있던 초경은 순간 송천초의 존재를 느꼈다.그는 번뜩 눈을 뜨고 송천초가 주위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위험하다!초경은 마음이 초조했다. 그는 송천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독을 없애기도 전에 다급히 밀실 문을 부수고 뛰쳐나갔다.묵계의 혼이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분명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송천초를 향해 걸어오는 도중 옷과 머리카락이 말랐다.송천초는 위험을 감지하고 바로 사람을 부르려 했다.그녀가 있던 곳에 마침 암초가 있어 그 여자의 모습을 막았다. 옆에 바로 청주군의 막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대담하게 이곳으로 오다니!송천초가 사람을 부르려는 그때, 여자가 입을 열고 그녀를 저지했다.“나는 적의가 없다. 그저 너를 찾으러 왔다.”“저요?”송천초는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송천초라 하느냐?”묵계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본 기억 속의 그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어떻게 아는 것입니까?”묵계가 웃으며 말했다.“나는 묵계라고 한다. 초경이 위험에 처해 있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송천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졸이며 저도 몰래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무슨 일입니까?”“당신은 대체 무슨 사람입니까? 어찌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묵계 뒤에서 뱀 꼬리가 나타났다.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나는 그와 동족이다. 그가 너를 찾아오라 한 것이다.”“만약 그를 구하고 싶다면 오늘 밤 홀로 이곳에 오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너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겠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물었다.“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동하국입니까?”“그곳 말고 더 있느냐?”“오직 너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거라. 초경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내가 시킨 대로 하거라.”말을 마치고 묵계는 경계하며 막사를 힐긋 보고 몸을 돌려 바다로 사라졌다.송천초가 추궁하기도 전에 묵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가 무슨 사람인지 말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종일 불안했던 것을 생각하면, 초경에게 정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병사가 상황을 보러 왔다.“방금 이쪽에서 인기척이 있길래 보러 왔습니다. 무슨 일 없는 것입니까?”송천초는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그 노랫소리는 그의 의식을 흐릿하게 했다. 그는 애써 소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자꾸 귀를 파고들었다.초경은 한참 몸부림치다가 결국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바닥에 쓰러졌다.묵계는 그 모습을 보고, 그제야 그에게 다가갔다.“너를 상대하기가 참 어렵구나. 하지만 나를 너무 얕본 것 같구나. 인어족의 청신요는 죽어가던 사람도 깨울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해 행동을 조종할 수도 있다. 쉬이 사용하지 않던 방법인데 이렇게 너에게 쓰게 됐구나.”묵계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 손을 뻗어 초경의 얼굴을 스쳤다.“청신요로 너의 기억을 바꾸면 오늘부터 나의 명을 따르며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거부하지 말거라. 자칫 잘못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묵계는 웃으며 말을 마치고 손을 초경의 머리 위에 얹은 후 청신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맑은 소리가 주문처럼 초경의 귓가에 맴돌면서 바늘처럼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묵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애먹였다.그녀는 의지력이 이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 없었다.묵계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봐야겠구나!”그녀의 손끝이 초경의 미간에 가볍게 닿자, 그녀는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그의 기억 속에는 온통 다른 여자뿐이다.그것도 평범한 여자였다.청신요의 통제를 받지 않고 기억을 지우지도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니.묵계는 내키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자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원인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고작 수십 년의 수명만 갖고 있어 결국 늙어 죽기에 그들과는 다르다.감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육체가 다치지 않았다면 청신요를 쓰는 것도 애먹을 리 없었을 것이다.보아하니 이 방법으로는 그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럼...묵계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묵계는 초경을 업고 돌아가 밀실에 가두었다.묵계는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묵계는 이 남자를 죽이기 아까웠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나긴 수명을 갖고 있어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이런 사람을 또 찾기 어려울 것이다.초경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그럼, 너는 진정한 약사가 아니냐?”묵계가 콧방귀를 뀌었다.“물론이다. 그 여자는 이미 죽었다. 나의 몸을 망가트렸으니, 그녀가 바다로 들어간 기회를 틈타 그녀를 죽이고 몸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뱀의 기운은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그동안 약사의 신분으로 동하국에서 지내며 바다에서 보물을 발견하여 일반인과 다른 힘을 얻었다고 그들을 속이고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찾게 했다.”“이로써 그들의 내전을 일으켜 영원히 평화로이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나의 한을 풀었다!”초경은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여국 바다에 있는 진도 네가 깬 것 같구나.”초경은 부진환에게서 여국과 동하국의 전쟁에 관해 많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다들 대진이 깨지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하국 사람은 여국 땅으로 침입할 수 없다.하지만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은 할 수 있었다.역시나 묵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물론 나다.”“내가 아니었다면 동하국 사람은 평생 여국 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초경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복수를 하고 싶지만, 동하국 사람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살생을 저질러 화를 입고 싶지 않은 것이구나.”“그래서 대진을 파괴하고, 동하국 내전을 일으키고 그들을 선동하여 여국을 공격한 것이냐? 그들이 전쟁으로 죽게 만들려는 것이냐?”“아주 완벽한 계획이구나. 하지만 전쟁을 일으켰으니, 결국 운명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묵계가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나의 계획을 알아차리다니 정말 똑똑하구나.”“그들이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대진이 사라졌다 해도 여국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나와 상관없다.”“내가 화를 입는다 해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말을 마치고
그는 이내 약사를 찾으러 갔다.그러나 도림을 벗어나기도 전에 초경은 앞에 길이 없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사방을 관찰하다 이곳이 미로라는 깨달았다. 그는 손바닥을 들었지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자세히 맡아보니, 바람 속에 복숭아 꽃향기와 옅은 약재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독이 있다!뒤에서 여유로운 발소리와 묵계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왜 앞으로 가지 않습니까?”초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묵계는 무서운 표정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초경은 가슴이 떨려왔고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네가 바로 약사냐?”묵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먼 곳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약사라는 이름만 알고 계십니까? 제 이름도 모르는 것입니까?”“다들 저를 자릉약사라 부릅니다.”“이곳에 온 순간부터 알아차렸습니다. 비록 신분을 모르지만, 홀로 이곳에 온다는 건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겠지요. 그래서 도림에 손을 조금 썼습니다.”“도림에 들어선 후부터 이미 중독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독은 더욱 세질 것입니다.”“그리고 이 독은 사족을 겨냥한 독입니다.”묵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초경을 바라보았다.초경은 슬쩍 내공을 써봤지만, 사지가 무기력했다. 무언가가 갑자기 그의 경맥을 막은 것처럼 내공이 안정을 잃고 통제하기 어려웠다.그는 손을 움켜쥐고 불편함을 참으며 내색하지 않았다.“사족? 나를 무서워하지 않은 것이냐? 넌 대체 누구냐?”초경은 의아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이상할 것 없이 평범한 사람 같았다.묵계가 가볍게 웃자, 뒤에 환영이 나타났고 그녀의 꼬리가 보였다.하지만 재빨리 사라져 버려서 초경은 뱀 꼬리인지 아닌지를 똑똑히 보지 못했다.“공자, 우린 같습니다.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묵계는 흥미진진하게 초경을 훑어보았고 눈빛에는 탐욕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초경의 강한 수위를 탐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