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영감의 말은 아주 예리했다.이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제사장의 체면을 구긴 것이었다.온심동은 어두운 안색으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더 많은 건 증오였다. 낙청연에 대한 증오.낙청연은 도발하는 눈빛으로 온심동을 바라보다 곧바로 입을 열었다.“해 영감,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일은 제가 완전하게 처리해 드리겠습니다.”해 영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부탁하겠소.”해 영감은 곧바로 사람을 시켜 낙청연에게 방을 마련해 밤이 되기까지 기다리자고 했다.낙청연은 뱀이 담긴 주머니를 가지고 먼저 해가를 나섰다.온심동은 지기 싫어 해 영감에게 말을 걸었지만, 낙청연이 뒤를 돌아보자 해 영감은 어두운 안색으로 온심동을 쳐다보지도 않았다.낙청연은 차갑게 웃으며 등을 돌려 떠났다.현실은 잔혹한 것이다.지고한 지위에 올랐다 해도, 실력이 있어야 주위의 사람들도 알아주는 법이다.해 영감은 그만한 권세가 있으니 체면도 봐주지 않고 막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다른 사람들은 해 영감처럼 면전에 대고 얘기할 순 없지만, 사적으로 온심동에게 대제사장 자리는 과분하다고 의논할 것이다.이런 말이 많아지면, 온심동의 자리는 점점 흔들릴 것이다.여국에 이런 대제사장은 필요 없다.온심동의 실력으로 왜 대제사장의 자리를 차지하려 들고, 자신마저 잔인하게 살해했는지 낙청연은 이해할 수 없었다.오랫동안 맺은 사매의 정을 생각하면 낙청연은 가슴이 답답했다.낙청연은 우선 그 뱀이 담긴 주머니를 가져갔다.그리고 밤이 돼서야 다시 해가로 발길을 옮겼다.해 영감은 오랫동안 기다린 모양이었다.“낭자, 언제 시작하는 것이오?”해 영감이 물었다.그러자 낙청연이 분부했다.“저녁을 먹은 후에는 모두 방으로 돌아가고, 절대 나오지 마십시오.”그러면서 낙청연은 부적을 꺼내 해 영감에게 건넸다.“이걸 모든 사람의 방문에 붙여놓고, 자시가 지난 후에는 더더욱 밖으로 나오면 안 됩니다. 일어나서 둘러보는 것도 안 됩니다.”“해가 뜨면, 밖으로 나오십시오.”해 영감
낙청연은 홍해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홍해가 모습을 드러내자, 낙청연은 곧바로 쫓아갔고 홍해는 고개를 돌려 도망쳤다.두 사람은 부에서 서로를 쫓아다니며 부 전체를 돌고 또 돌았다.달리다가 힘들면 반 시진 정도 쉬었다가 다시 달렸다.그렇게 새벽이 돼서야 둘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고, 낙청연은 홍해를 병에 넣어두었다.날이 밝고, 해가 떴다.해 영감은 제일 먼저 방에서 나오며 계단에서 쉬고 있는 낙청연을 급히 찾아왔다.“낭자, 상황은 어떠하오?”“안색이 어두워 보이는구먼.”해 영감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낙청연을 바라보았다.“해결했습니다.”낙청연이 대답하며 병을 꺼내 해 영감에게 보여주었다.해 영감은 검은 기운을 보고 굳게 믿으며 대답했다.“해결했으면 됐소.”“낭자, 이게 또 찾아오지는 않소?”낙청연이 답했다.“이건 한번 수복되면 다시 찾아오진 않습니다.”“하지만 다른 게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누군가가 영감님을 노리고 있다면 말입니다.”이 말을 들은 해 영감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어찌하면 좋겠소?”낙청연은 서서히 몸을 일으키더니 입을 열었다.“금일 제가 부의 배치를 바꾸겠습니다. 누군가가 건드리지 않는 이상, 잡것들은 절대 해가에 들어오지 못할 겁니다.”해 영감은 그제야 시름이 놓이는 듯 대답했다.“좋소.”“그럼 부탁하겠소.”“괜찮습니다. 저는 물건을 준비하고 저녁에 다시 오겠습니다.”해 영감은 고개를 끄덕이며 낙청연이 피곤한 안색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믿음이 생겼다.이 낭자는 믿을 만해 보였다.곧바로 해 영감은 사람을 불러왔다.“여봐라.”“낙청연에 대해 알아오거라.”“아주 상세하게 말이다.”낙청연이 물건을 준비하고 돌아오자, 해 영감은 또 다른 눈빛으로 낙청연을 바라보며 달갑게 말했다.“낙 낭자, 밥을 드시오. 우리 집 일에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데 내가 소홀히 했소. 어서 식사를 하시오.”낙청연은 흠칫했다. 잠깐 떠난 사이에 이렇게 달가운 태도로 변하다니.낙청연은 정청으로 따
온심동은 원한 가득한 눈빛으로 낙청연을 노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온심동은 온갖 방법을 생각해 귀비를 만나 뵙고 지원을 얻으려 했다.심지어 대제사장이라는 신분도 내려놓고 해가에 잘 보이려고 하며 귀비를 만날 기회를 얻으려고 했다.온심동이 어렵게 얻은 기회인데.해 영감은 적극적으로 낙청연을 초대했다.왜 낙청연은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일까! 대체 왜!“좋소. 낙 낭자가 승낙했으니 자리를 마련하겠소. 시간은… 사흘 후가 어떻소?”해 영감이 달갑게 물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좋습니다.”해 영감은 아주 흡족한 모습이었다.온심동은 결과를 보러 왔지만, 이 모습을 보니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해 영감의 태도가 저렇게나 달갑다니, 대제사장인 온심동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이번에는 무조건 해 귀비의 지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낙청연이 모든 걸 망쳐버렸다.온심동은 이를 꽉 깨물며 등을 돌려 떠났다.낙청연이 마침 밥을 다 먹고 떠나려던 순간, 해 영감이 낙청연을 붙잡으며 물었다.“낙 낭자, 지금 거처가 어디요? 소소한 보답을 준비해 낭자께 보내드리려 하오.”이 말을 들은 낙청연은 잠깐 고민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춘풍객잔으로 보내시면 됩니다.”“알겠소.”이 돈으로 귀도의 다리를 고칠 수 있으니, 구십칠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낙청연은 곧바로 부를 나섰다.멀지 않은 곳에서 낙청연은 온심동의 모습을 보았다. 온심동은 작은 골목에서 어떤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곧바로 온심동은 그 수상한 사내를 따라갔다.낙청연은 곧바로 쫓아가 조심스럽게 미행했다.몇 골목을 지나서야 온심동은 걸음을 멈췄다.낙청연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온심동의 앞에는 검은 망토 차림에 가면을 쓴 사내여서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온심동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뱀을 풀라고는 하지 않았다!”“너희 천궁도는 이렇게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이냐?!”앞의 사내는 차갑게 웃으며 답했다.“대제사장과
“우리 일족의 수치입니다!”온심동이 이렇게 변할 줄 알았더라면 낙청연은 어떻게 해서든 사부님이 온심동을 데려오는 걸 막았을 것이다.온심동은 불같이 화를 냈다.“당신이 누구라고,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합니까?”말을 끝맺자마자 온심동은 곧바로 낙청연의 뺨을 때리려 했다.낙청연은 몸을 비키며 피했고 두 사람은 길고 좁은 골목길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하령이 없는 온심동은 실력이 대단하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격렬히 싸우다가 온심동이 물러섰다.바로 그때, 누군가 위에서 뛰어내려 착지했다.“또 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오? 저번에 내가 제대로 혼쭐내지 못한 모양이군!”침서는 매서운 어조로 말했다. 그의 말에서 살기마저 느껴졌다.온심동은 안색이 확 달라지더니 곧바로 몸을 날려 도망쳤다.낙청연은 벽에 힘 없이 기댄 채로 가슴팍을 눌렀다.침서는 살짝 놀라더니 이내 낙청연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왜 그러는 것이냐? 어디 불편하냐?”“나랑 같이 돌아가자꾸나.”침서는 말하면서 낙청연을 안아 들려고 했지만 낙청연이 그를 밀어냈다.“전 다른 볼일이 있어서 당신과 함께 돌아갈 수 없습니다.”“그리고 전 당신의 저택에서 지내고 싶지 않습니다.”침서는 살짝 몸이 굳으면서 실망스러운 듯 주먹을 쥐었다.“낙요야.”그는 곧바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낙청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그래. 낙요의 말대로 해야지.”-낙청연은 객잔으로 돌아갔다.그곳에 도착했을 때, 객잔 전체에 물건이 가득 들어차 있어 객잔에서는 장사를 할 수 없었다.구십칠은 아예 돈을 써서 객잔을 전부 빌렸다.“이건... 해 영감이 사람을 시켜 보낸 것이냐?”바닥에 빼곡히 들어찬 상자들을 열어 보니 안에 금은보화가 잔뜩 들어있었다.해 영감은 통이 컸다.낙청연은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뱀은 원래 그녀가 풀어놓은 것이었기에 진짜 해씨 일가를 도운 건 아니었다.구십칠이 대답했다.“그렇습니다. 위층 방 안에도 상자가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 낙 낭자가 입궁하는 것이 내 부탁이오.”“내 딸은 귀비지만 오랫동안 임신하지 못했소.”“사적으로 의원에게 병을 보인 적도 있지만 알아내지 못했소. 그래서 혹시나 사악한 것이 있는 건 아닐지 낙 낭자가 봐줬으면 좋겠소.”낙청연은 그 말을 듣고 살짝 놀랐다.해 귀비는 황자를 낳지 못했다.하지만 그 이유는 그녀가 황후의 대체품이었기 때문이다.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때 황후는 황제에게 벌을 받아 냉궁에 갇혔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황후가 냉궁에 있을 때 황제는 해씨 일가의 딸과 만났다.그녀의 용모는 황후와 비슷한 점이 있었고 그로 인해 그녀는 황제의 은총을 받아 귀비의 자리에 올랐다.하지만 황제와 황후가 화해하면서 귀비는 예전처럼 총애받지 못했다.아마 많은 사람이 이 일을 알고 있을 것이다.해 귀비가 지금까지 아이를 가지지 못한 건 황제가 그녀를 찾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낙청연은 처음으로 사악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다.“대제사장을 찾아가 보지 않았습니까?”해 영감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해씨 일가가 대제사장을 찾아 집안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의심을 사지 않겠지만 만약 대제사장이 내 딸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후궁과 관련되는 일이니 성질이 달라지오.”“난 이 일을 대놓고 떠벌리고 싶지 않소.”“그래서 낙 낭자는 대제사장보다 더욱 나은 선택이오.”예전에 그녀가 대제사장이었을 때 해씨 일가는 낙청연을 찾은 적이 없었다.신분이 특별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여러 가지 추측을 하기 때문이다.“그래요. 그러면 제가 입궁해서 찾아가 보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해 영감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소. 내 목적이 바로 그 이유를 아는 것이오.”잠시 뒤, 궁에서 마차가 도착했다.해 영감은 낙청연을 마차에 태웠고 마차는 궁으로 향했다.동행한 사람은 귀비 곁에 있는 조 어멈(曹嬤嬤)이었다.조 어멈은 정중하게 자신을 소
해 귀비는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말했지만 강렬한 노여움과 불만이 느껴졌다.낙청연은 웃으며 말했다.“예전에 귀비 마마께서 오만한 분이라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오늘 보니 확실히 그런 듯하군요.”“그래서 사람을 시켜 모원원을 암살한 것입니까? 모원원이 용모가 수려하고 또 입궁해서 비가 될 자라 귀비 마마께서 큰 위협을 느끼셨나 봅니다.”그 말에 해 귀비의 안색이 달라졌다.그녀는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눈썹을 치켜올리며 웃었다.“모원원을 대신해 불평하는 것이냐?”“네가 대제사장과 모씨 일가로 간 적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모원원은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하던데 제홍과 함께 성을 떠난 것이냐? 둘이 함께 도망쳤다면 내게 고마워해야지.”“내가 일부러 그 소식을 제홍에게 흘리지 않았다면 제홍이 모원원을 데리고 떠날 수 있었겠느냐? 내 도움 덕분에 서로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하게 되었지. 그런데 넌 내가 모원원의 용모를 질투해 그녀를 죽이려 했다고 하는구나.”해 귀비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낙청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가느다란 손가락이 낙청연의 어깨를 살짝 찔렀다.낙청연은 뒤로 한 발 물러섰다.“너처럼 연약한 모습으로는 내 지위를 위협할 수 없다.”“넌 입궁하더라도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이 궁에 짐승 같은 놈들이 나 하나뿐이겠느냐?”낙청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귀비 마마께서 모원원을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일부러 제홍에게 흘린 것입니까?”해 귀비는 다시 연탑에 앉아 천천히 다리를 꼬았다.“그렇지 않으면?”“내가 정말로 모원원을 죽이려고 했다면 제홍이 그걸 알 수 있었을까?”낙청연은 이해할 수 없었다.“그렇다면 왜 모원원이 입궁하는 것을 막으려 한 것입니까?”“좋은 마음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이루어 준 것은 아니겠지요.”해 귀비는 가볍게 웃음을 흘리더니 손을 들어 벽을 가리켰다.“저 그림을 치우거라.”낙청연은 그녀의 말에 따라 그림을 치웠고 그 아래 그림 한 폭이 더 있는 걸 발견했다.거기에는 앳된
“말해보거라.”해 귀비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낙청연은 서서히 입을 열었다.“폐하께서 귀비 마마의 처소를 자주 찾으십니까?”그 말에 해 귀비는 놀란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그걸 정말 묻다니.”“내가 주제 파악을 못 한다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폐하가 이곳에 찾아온 적이 없는데 내가 어찌 아이를 가진다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해 귀비는 눈앞의 낙청연에게 점점 관심이 생겼다.그녀는 이렇게 배짱 좋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낙청연이 솔직한 말을 할 배짱이 있는 사람이라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쯤 그 이유 알 수 있을지 몰랐다.낙청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렇게 얘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해 귀비가 말을 이어갔다.“폐하께서는 매달 며칠씩 오신다.”“황후께서 월사가 있을 때 말이다.”해 귀비는 덤덤하게 말했지만 낙청연은 그녀의 말에서 씁쓸함을 느낄 수 있었다.해 귀비는 자신이 황후의 대체품이라는 걸 똑똑히 알고 있는 듯했다.“미모에 기대기에는 나도 언젠가는 늙는 날이 오겠지. 슬하에 아들이나 딸이 있어야 내 자리를 지킬 수 있다.”“귀비인데 어찌 자식이 없을 수 있단 말이냐?”“나도 내가 황후를 이기지 못할 거란 걸 알고 있다.”해 귀비의 눈동자에 처량함과 슬픔이 더해졌다.낙청연은 오만한 해 귀비에 대한 인상이 조금 달라졌다.다른 사람의 대체품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슬픈 일이었다.해 귀비는 예전에 진심으로 황제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낙청연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제가 맥을 짚어드리겠습니다.”“그동안 의원에게 병을 보였을 때 의원들은 어떻게 얘기했습니까? 약을 먹고 몸조리를 하셨습니까?”해 귀비는 손을 뻗으며 덤덤히 말했다.“다들 똑같은 말만 했다. 내 몸이 허약하고 차가우며, 예전에 추위 때문에 병이 난 적이 있어 오랫동안 몸조리를 해야 한다고.”“몸조리하는 약을 처방해 줘서 매일 마셨는데 효과가 없었다.”“똑같이 몸이
“이상하군요. 귀비 마마에게는 자녀 운이 있습니다.”“심지어 자식도 많고 복도 많을 상입니다.”“슬하에 자식이 없을 리가 없는데...”그 말에 해 귀비는 깜짝 놀랐다.“뭐라고?”해 귀비는 옷자락을 틀어쥐었다.“그건 무슨 뜻이냐? 누군가 날 해쳤다는 말이냐?”해 귀비는 긴장한 어조로 말했다.“마마, 일단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어쩌면 늦게 찾아올 인연일 수도 있으니 아직 누군가 마마를 해치려고 했다고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릅니다.”낙청연은 해 귀비가 스물셋 전에 황자를 얻을 거라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해 귀비는 이미 스물다섯인데도 아이를 낳지 못했으니 분명 문제가 있었다.하지만 이걸 당장 해 귀비에게 알려줄 수는 없었다.후궁의 상황은 복잡했고 일단 누가 손을 쓴 건지, 어떤 방법을 쓴 건지 확실히 알아내야 했다.그렇지 않으면 괜히 섣불리 움직여 일을 그르칠 수도 있었다.해 귀비는 그제야 평정심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낙청연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물었다.“귀비 마마께서는 평소에 뭘 드십니까? 혹시 목록을 만들어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해 귀비는 조 어멈을 불러들였고 조 어멈은 아주 큰 책자를 내밀었다.“지난 2년간, 귀비 마마께서 드신 음식은 전부 기록해 두었습니다.”“한 입 먹은 음식도 전부 기록했습니다.”두꺼운 책자를 건네받았을 때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이걸 언제 다 본단 말인가?“이걸 가지고 돌아가 천천히 봐도 되겠습니까?”낙청연의 질문에 해 귀비는 싱긋 웃었다.“당연히 그래도 된다.”해 귀비의 미소를 본 순간, 낙청연은 자신이 깊은 구덩이에 빠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그렇게 낙청연은 두꺼운 책자를 들고 궁을 나섰고 날이 어둡기 전에 객잔으로 돌아갔다.때마침 구십칠도 돌아와 두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었다.차를 우린 뒤 낙청연은 책자를 꺼내 펼쳐 보았다.구십칠이 옆에서 보고했다.“그 돈은 전부 귀도로 옮겼습니다.”“정 아저씨가 말하길 그 정도 돈이면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그리고 귀도에서 보물 두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