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십칠은 고개를 끄덕였고 낙청연은 곧바로 준비하러 갔다.밤이 깊어지고 그들은 길에 올랐다.다들 위험천만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낙청연을 선택했고 그녀를 위해 불구덩이에도 뛰어들 수 있었다.자신을 위해, 그리고 노예곡의 가족, 친구들을 위해.그들 일행은 말을 채찍질해 달렸고 밤낮없이 길을 재촉했다.삼 일째가 되는 날, 그들은 귀도의 산기슭에 도착했다.사람들은 말에서 내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숲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발 디딘 적 없는 것처럼 비밀스러워 보임과 동시에 미지의 두려움도 생겼다.낙청연은 며칠 동안 길을 재촉하다 보니 안색이 살짝 창백했다. 구십칠이 그녀를 부축해 말에서 내려오게 했다.“오늘 밤에는 산기슭에서 하룻밤 쉬고 내일 다시 산에 오르시지요. 기운을 차려야 합니다.”“알겠다.”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쉬기로 결정했고 불을 피웠다.그들은 음식을 꺼내 나눠서 먹었다.홍해가 웃으며 말했다.“그동안 내가 가본 적 없는 곳이 없었지. 노예영도 한 두 번 간 게 아니야.”“그런데 귀도는 아직 가본 적이 없어. 이번에 한 번 제대로 둘러봐야겠어. 결과가 어떻든 이 강호에 우리 10대 악인의 이름을 남겨야지.”사람들은 홍해의 말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낙청연은 나무에 기대어 앉았고 구십칠은 주전자를 건넸다.“내일 산중에서는 물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니 일단 마셔두세요. 물은 또 길어 오겠습니다.”낙청연은 흠칫하더니 저도 모르게 추억을 떠올렸다.그녀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고맙다.”물을 길어 온 뒤 구십칠은 그녀의 옆에 앉았다.“혼자 오랫동안 계산하던데 무슨 계획을 한 것이냐?”낙청연이 궁금한 듯 물었고 구십칠은 웃음을 터뜨렸다.“도성이든 이 강호든, 귀도 산에 관한 상세한 소문은 없습니다.”“아무리 계획하려고 해도 계획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결국에는 사람들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지요.”그 말에 낙청연은 살짝 놀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내가 점
낙청연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심지어 꿈속인 줄 알았다.낙청연은 몇 번이나 자신을 꼬집었고 꿈이 아님을 확신했다.눈앞의 모든 건 진짜였다!모든 이들이 다 사라지고 낙청연 혼자 남았다.다른 사람들은?불더미는 오래전 불이 꺼진 듯했다. 심지어 바닥에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아 아무것도 보아낼 수 없었다.자리에서 일어난 낙청연은 자신이 구십칠의 옷을 덮고 있음을 발견했다.“구십칠!”“홍해!”낙청연은 주위를 둘러보며 그들을 찾았지만 돌아온 건 고요뿐이었다.그들은 위험에 처해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 분명 무슨 사고를 당한 것이 분명했다!그런데 왜 그녀는 멀쩡한 걸까?낙청연은 그 자리에서 잠시 기다렸다. 날이 밝기 시작했지만 구십칠 등 사람들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낙청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짙은 안개로 둘러싸인 산을 바라보았다.귀도.그러고 보면 발밑의 땅은 이미 귀도의 구역이었다.그래서 10대 악인이 사고를 당한 걸까?낙청연은 혼자였지만 곧바로 산을 올랐다.산에 오를 때 낙청연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기 위해 약 한 알을 먹었다.산에 안개가 짙은 걸 보면 분명 장기가 있는 듯했다.산행은 그런대로 순조로웠다.비록 길이 험하기는 했지만 약재들이 꽤 많았다.낙청연은 약재를 채집하며 산을 올랐다.그런데 갑자기 앞에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낙청연은 살짝 놀라며 경계했다.소리를 따라가 보니 바로 앞에 누군가 바닥에 누워있었다.임신한 부인이었는데 아픈지 배를 끌어안고 일어나지도 못했다. 도움의 손길이 간절해 보였다.낙청연은 미간을 구겼다. 귀도의 산에 임신한 부인이 있다니?“낭자... 낭자... 구해주시오...”낙청연을 발견한 부인은 손을 뻗어 도움을 청했고, 낙청연은 이를 악물고 다가갔다.허리를 숙여 부인을 진맥한 그녀는 살짝 놀랐다. 태아가 위험한 상태였다.“낭자, 낭자는 약을 구하기 위해 산에 올라온 것이오?”부인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고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약을 구한다고?”“약을 구하러 오신 것이오?”부
“같이 가겠소? 낭자 혼자 산길을 걷는 건 힘들 텐데 같이 가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 안전할 것이오.”열 명 남짓?다들 일행인 걸까?아니면 다들 이 마을에 모인 걸까?구십칠 그들도 그곳에 있는 건 아닐까?그런 생각이 들자 낙청연은 곧바로 승낙했다.“좋소. 함께 가지. 가는 김에 내가 바래다주겠소.”소향의 배를 보니 7, 8달은 된 듯했다. 이렇게 배가 부른 상태로 산을 오르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낙청연은 그녀를 설득하고 싶었다. 이 산은 절대 보통 사람이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하지만 낙청연은 이내 생각을 바꿨다.귀도가 귀도라 불리는 이유는 산을 오른 뒤 만나게 되는 사람이 사람인지 아니면 귀신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게다가 기괴한 일도 연달아 발생하기에 많은 사람이 두려움에 떨었다.하지만 최근 귀도 산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꽤 많았다. 그래서 산을 오르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누군가는 약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는 돈을 구하기 위해.각자 바라는 게 있었다.낙청연은 약재를 가져와 소향에게 주었고 돌아가서 약을 달여 먹으면 태아에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소향은 무척 감격했고 낙청연을 데리고 그 마을로 향했다.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아주 볼품없었다.집은 전부 초가집이라 바람과 추위를 겨우 막는 정도였다. 십여 개의 초가집이 한데 모여 작은 마을을 이루었다.그곳에 모인 사람 중에는 사내도, 여인도 있었고 차림새도 제각각이라 일행은 아닌 듯했다.“어머, 또 산에 오른 사람이 있네.”“이 산에는 별거 없으니 일찌감치 하산하는 게 좋을 것이다.”말끔한 차림의 여인이 낙청연을 훑어보며 말했다.그녀의 눈빛에서 질투와 위협이 느껴졌다.낙청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소향은 웃었다.“이 낭자는 조금 전 날 구해줬소. 그래서 데려온 것이오. 어차피 우리 마을에 묵을 곳도 있지 않소?”웃통을 벗은 사내 한 명이 낙청연을 힐끗 보고 말했다.“그러면 남으시오.”“한 명이라도 많으면 서로 챙겨줄 수
소향은 웃었다.“뭘 넋 놓고 있소? 얼른 먹소.”“우리 여기는 음식이 귀하니 낭비하지 마시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지금은 배고프지 않으니 배가 고프면 먹겠소. 아껴 먹을 생각이오.”소향은 낙청연의 경계심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웃으며 대답했다.“알겠소. 밤에는 일찍 쉬시오.”“절대 밤에 마을 밖으로 나가면 안 되오!”소향은 거리를 좁히며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고 낙청연은 살짝 놀랐다.“무엇 때문이오?”“묻지 마시오. 내 말대로 하면 되오. 절대 밤에 나가면 안 되오. 마을 밖으로 나가지도 말고!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오!”말을 마친 뒤 소향은 창밖을 바라봤다. 꽤 늦은 시간이란 걸 인지한 건지 그녀는 다급히 낙청연에게 인사를 한 뒤 부랴부랴 떠났다.낙청연은 창가에 서서 소향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재빨리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걸 지켜보았다.달빛 아래 선 그녀에게는 그림자가 있었다.분명 산 사람이었다.그런데 쪽지에서는 왜 그녀가 사람이 아니라고 한 걸까?설마 쪽지 위에 적힌 내용에 다른 의미가 있는 걸까?바로 그때, 방문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다가가 방문을 열었다. 눈앞의 사람은 다름 아닌 낮에 보았던 그 여인이었다.하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위협이 없었다.“무슨 일이지?”여인은 입꼬리를 당겼다.“내 이름은 제설미다. 낮에 만난 적 있다.”낙청연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제설미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밖을 힐끗 바라보더니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자.”방에 들어선 뒤 제설미는 곧바로 문을 닫았다.그녀는 탁자 위 음식들을 보고 물었다.“먹지 않았겠지?”낙청연은 다소 의아했다.“그 쪽지는 네가 쓴 것이냐?”제설미는 숨기지 않고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난 널 구한 것이다.”“이 마을에는 문제가 있다. 자시가 되기 전에 어서 떠나거라.”“그렇지 않으면 떠나지 못한다.”제설미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소향이 뭘 하려는 건지 보고 싶었다.이 마을에는 대체 어떤 존재가 있는 걸까?이 음식을 먹는 것보다 마을 밖으로 나가는 것이 더욱 위험할지도 몰랐다.음식을 먹은 뒤 낙청연은 잠기운이 쏟아졌고 탁자에 엎드린 채로 잠을 잤다.하지만 그녀에게는 약효가 강한 편이 아니라 완전히 기절하지는 않았다.자시가 지나고 밖에서 비명이 들리자 낙청연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그녀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고 약간의 틈을 만들어 밖을 내다봤다.어둠에 휩싸인 마을은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고 바람 소리는 마치 웃음소리처럼 들렸다.앞마당에는 건장한 체구에 키가 작은 사내가 있었다. 그는 두 눈이 움푹 들어가 해골처럼 보였고 눈언저리가 검어 눈알이 유독 커 보였다.게다가 얼굴이 해쓱해서 더욱 기괴해 보였다.그의 맞은편에는 바닥에 쓰러진 소향이 있었다.사내는 조금 전 소향의 뺨을 때렸고, 소향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당신에게는 제설미가 있지 않습니까?”건장한 사내는 눈을 부라리며 소향을 바라보았다.“오늘 새로운 맛을 보고 싶다.”사내는 말하면서 입술을 핥은 뒤 소향의 옷을 힘껏 찢었다.소향은 무척이나 당황했다.“싫습니다. 싫습니다! 전 임신했습니다!”그런 장면을 봤는데 낙청연이 가만히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그녀는 곧바로 방을 뛰쳐나갔다.“멈추시오!”낙청연은 곧바로 소향의 앞에 서서 손바닥으로 사내를 밀어냈다.소향은 황급히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왜 나왔소? 내가 절대 나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사내는 낙청연의 아름다운 용모를 보고 군침을 흘렸다. 그의 탐욕스러운 눈빛에 낙청연은 구역질이 났다.“여인을 데리고 왔으면서 내게 숨긴 것이냐?”“이 미인이 있으니 오늘은 널 봐주겠다!”사내는 서서히 낙청연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눌렀고, 낙청연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주먹을 뻗었다.낙청연의 손바닥은 순식간에 철추를 빨아들였다. 검은 기운이 감돌자 낙청연이 뻗은 주먹에 사나운 권풍이 더해졌다.그렇게 낙청연은
낙청연은 초조한 마음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그녀가 목숨을 걸고 공격하려 마음먹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공중에서 날아 바닥에 착지하며 복맹을 떼어냈고 낙청연의 앞을 막아섰다.달빛 아래, 그가 쓴 가면에서 빛이 번쩍이자 낙청연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그였다!그가 귀도에 온 것이다!많은 사람이 낙청연과 복맹의 싸움을 구경하려고 모여들었고 구경꾼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복맹의 눈동자에 살기가 번뜩였다.“안 그래도 자꾸 사람이 많아지고 음식이 줄어들어 근심이었는데 네가 죽으려고 날 직접 찾아온 것 같으니 내가 도와주마!”바로 그때, 제설미가 팔짱을 두른 채로 문가에 기대어 서서 말했다.“벙어리, 당신은 쓸데없는 일에 관여하지 마시지요.”“그 여인은 용모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순서가 있지 않습니까?”제설미는 차가운 눈빛으로 득의양양하게 낙청연을 바라봤다. 낙청연은 미간을 구겼다. 그녀는 제설미가 왜 자신에게 이렇게 적대적인 건지 알지 못했다.가면을 쓴 사내는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그는 몸이 너무 말라서 건장해 보이지 않았지만 기세가 대단했고 물러설 생각도 없어 보였다.낙청연은 매우 곤혹스러웠다. 이 사내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그는 이미 세 차례 그녀를 도와주었다.복맹이 천참검을 쥐고 공격해 오자 낙청연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내가 음식을 찾겠소!”복맹은 냉소를 흘렸다.“그보다는 너희 둘을 먹는 게 낫겠다!”그는 멈추지 않았고 가면을 쓴 사내는 곧바로 복맹과 싸우기 시작했다.그러나 가면을 쓴 사내는 열 수도 채 버티지 못하고 복맹에게 당했다.그는 낙청연의 옆에 세게 넘어졌다.복맹은 냉소를 흘렸다.“이런 쓸모없는 자식, 너 따위가 감히 영웅 노릇을 하려 해?”복맹은 다시금 낙청연을 향해 서서히 걸어갔다.낙청연은 마음속으로 철추의 이름을 부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벌겋게 된 그녀의 두 눈동자에 살기가 일었다.낙청연이 손을 쓰려던 순간, 소향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도명!”“우리에게는 의원이 필요합니다! 이
“고맙소.”가면을 쓴 사내의 손은 허공에 잠깐 멈춰 있었다. 그는 잠시 뒤에야 당황한 듯 손을 거두어들였다.소향이 다급히 다가가 낙청연을 방으로 데려갔다.낙청연은 고개를 돌려 사내를 보았다.사내는 손짓을 하면서 자신의 발아래 지면을 가리켰다. 내일 아침 이곳에서 기다리겠다는 뜻인 듯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방 안으로 들어간 뒤 소향은 다급히 방문을 닫았다.자리에 앉자 소향은 긴장한 얼굴로 배를 어루만지며 고통스러워했다.낙청연은 다급히 그녀의 맥을 짚었다.“왜 그러시오?”소향은 손을 저었다.“별것 아니오. 너무 긴장해서 그렇소. 조금 아프긴 한데 괜찮소.”낙청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그대는 임신한 몸이오. 산에 올라서는 안 됐소. 너무 위험하오.”소향은 웃었다.“그러면 낭자는? 낭자처럼 연약한 여인이 산에는 무슨 일로 왔소?”낙청연은 침묵했다.사실 그녀에게는 여덟 명의 동료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우리 모두 각자의 목적이 있소.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그렇소.”“누구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우리는 이곳에 갇혀 더 높이 올라갈 수 없소. 음식도 점점 줄어들고 있소.”낙청연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들의 먹을거리는 나물 같은 걸 제외하면 주로 사냥을 통해 구하는 듯했다.하지만 산속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으니 이 주위에 있는 먹잇감은 전부 다 사냥했을 터였다.그래서 음식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하루 만에 사흘 치 식량을 구해야 한다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내가 미리 알려주지 않은 탓이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쓸모가 있소.”“도맹과 복맹은 사냥을 잘하고 제설미는 여기서 몸으로 음식을 얻고 있소.”“난 요리를 담당하고 있소.”낙청연은 그 말을 듣고 물었다.“그러면 음식에 약을 쓴 것이 당신이오?”소향은 살짝 놀라며 대답했다.“복맹이 낭자를 발견할까 봐 걱정돼서 약을 탔소. 낭자가 죽은 듯이 자야 밖에 나오지 않을 테니 말이오.”“복맹은 보
곧이어 제설미는 방에서 나갔다.낙청연은 침상에 앉아 옷깃을 헤치고 어깨의 상처를 드러낸 뒤 약초를 꺼내 그 위에 올려두어 지혈했다.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다.바로 그때, 차가운 시선을 느낀 낙청연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어느샌가 창문에 틈 하나가 생겼고 그 사이로 눈동자 하나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낙청연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곧바로 옷깃을 여미면서 경계하듯 창문을 바라봤다.그자는 다름 아닌 복맹이었다!들켰음에도 불구하고 복맹은 숨기는커녕 오히려 뻔뻔하게 창문을 열었다.그는 음흉하게 웃으며 엉큼한 눈빛으로 낙청연을 훑어보았다.낙청연은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복맹은 한참 동안 낙청연을 그런 눈길로 쳐다봤다. 비록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과 미소가 모든 걸 말해줬다.그는 낙청연을 반드시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복맹이 떠난 뒤 낙청연은 곧바로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침상 위에 누운 낙청연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고 이따금 문가와 창문을 바라봤다.몰래 숨어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복맹을 떠올리니 헛구역질이 났다.그래서 낙청연은 몸을 일으켜 자신이 채집한 약재를 정리했다. 그 벙어리도 복맹의 검에 다쳤는데 상처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낙청연은 가지고 있던 약초로 알약과 외상을 치료하는 데 쓰는 연고를 만들었다.그녀는 약을 챙겼다.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응급 상황에 목숨을 지킬 수는 있었다.다른 약은 구십칠 일행에게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지금 구십칠 일행이 어디에 있는지,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은지도 알 수 없었다.내일 마을을 떠난다면 제대로 찾아볼 생각이었다.그렇게 낙청연은 날이 밝을 때까지 깨어있었다.아침이 되고 새벽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창문에 또 눈동자가 나타났다. 무척이나 섬뜩했다.낙청연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참지 못하고 주먹을 움켜쥐었다.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창문 밖에 있던 복맹이 떠났다.낙청연은 다가가 방문을 열었고 벙어리를 보았다.그녀의 시야
묵계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뱀독이 확산하여 썩어가는 송천초의 피부를 보니, 그녀는 못내 싫어졌다.시간이 흐르면 뱀독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다 오장육부를 다치면 이 몸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묵계는 갑자기 방법이 떠올랐다.“좋다. 진법을 거두거라. 나오겠다.”묵계도 조금 조급해졌다.“약속하거라. 너에게 다른 몸을 찾아줄 테니 절대 다른 짓 하지 말거라.”낙요가 말했다.“그래. 어서!”두 사람은 드디어 의견이 맞았다.낙요가 진법을 없애자, 묵계도 순순히 송천초의 몸에서 나왔다.낙요는 특별히 두 가닥의 혼이 모두 나왔는지 확인했다.낙요는 얼른 부적을 송천초의 몸에 붙였고 묵계는 다시 송천초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하지만 묵계는 낙요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낙요가 가까이 오자 바로 낙요의 미간을 파고들었다.그녀는 순식간에 낙요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낙요는 심한 충격을 입은 듯 휘청이며 뒤로 물러서서 의자를 붙잡고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그녀의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다른 몸을 찾을 필요 없다. 네 몸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혼을 빼앗는 것에 난 도가 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를 대신하여 여국의 여제가 될 것이다.”낙요는 안정을 찾고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동하국에 너무 오래 있어, 바깥세상을 본 적 없는 모양이구나.”“아무나 너에게 혼과 몸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제사장족의 대제사장들을 들어본 적 있느냐?”묵계는 낙요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제사장족? 동하국 사람한테서 들은 적 있다. 그때 나를 공격한 젊은이들도 제사장족 사람들이었다.”“그들이 쓰는 진법은 네 진법과 다를 것이 없다. 보아하니 너도 제사장족이구나.”“잘됐구나. 네가 강할수록 너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묵계는 아직도 기뻐하고 있었다.낙요가 난감한 듯 웃었다.“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너처럼 순진한 요괴는 처음 보
백서는 바로 방에서 물러나 방문을 닫았다.조영궁 밖이 조용해지자, 병풍 뒤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초경이었다.그는 쓰러져 있는 송천초를 품에 안고 있었다.낙요는 안색을 굳히고 다급히 앞으로 걸어갔다.“어찌 된 일입니까?”초경은 송천초를 연탑에 눕히고 설명했다.“동하국에서 괴물을 만났습니다...”초경은 사건의 경과를 간단히 설명했고 묵계의 신분도 알려주었다.그의 말을 듣고 낙요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렇습니까?”“방법이 있습니까? 그 괴물은 천초의 몸을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독을 없애서 깨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천초가 위험할 것입니다!”초경은 몹시 조급했다.낙요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급해하지 마십시오. 방법이 있습니다.”“천초 몸 안에 있는 묵계의 혼을 뽑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밖을 지키고 있으세요.”초경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낙요는 여국에서 제일 강한 대제사장이었으니,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천초는 괜찮을 것이다!“예. 밖에 있겠습니다.”초경은 바로 방에서 나가 정원을 지키고 있었다.낙요는 피로 진을 그려 송천초의 몸을 뒤덮었다.그리고 송천초 몸 안의 혼을 빼내기 시작했다.물론 묵계가 그녀의 몸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아, 과정이 쉽지 않았다.손을 세게 쓰면 송천초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약하게 하면 묵계를 꺼낼 수 없었다.“넌 누구냐? 감히 나를 상대하려는 것이냐?”묵계의 낮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국과 오랫동안 싸웠는데, 여국의 여제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낙요는 가소롭다는 듯 답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깜짝 놀랐다.“여국 여제? 평범한 사람을 위해 이 진까지 쓰는 것이냐?”“이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난 너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나와 손을 잡지 않겠느냐?”낙요가 가볍게 웃었다.“보아하니 넌 사람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사랑도 모르고 우정도 모른다.”“네가 몸을 원한다면 더 좋은 몸을 찾아주겠다. 얌전히 송천
“대체 뭘 하려는 거냐!”초경이 매섭게 물었다.“나는 살고 싶다. 나를 풀어주면 안전한 곳에 가서 이 여자를 풀어주마.”그 말을 듣고 초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너를 풀어주면 천초를 놓아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묵계가 담담하게 웃었다.“비록 웅황주가 나를 몰아냈지만, 이미 이 여인의 몸에 혼을 한 가닥 남겼다. 지금 두 가닥의 혼이 몸에 들어있으니, 7일 후 혼을 잃고 나의 몸이 될 것이다.”“이 몸은 이제 내 것이다.”“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얘기할 자격도 없다. 내 말대로 해야 이 여자는 살 기회가 있다!”“나를 놓아주거라!”묵계의 위협에 초경은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억눌렀다.“가거라.”“3일 후, 반드시 천초를 만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널 찾아 죽일 것이다.”묵계가 입꼬리를 올렸다.“좋다!”말을 마치고 묵계는 약사의 몸을 끌고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낙현책이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정말 이렇게 풀어주는 것입니까? 천초 고모를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초경은 묵계가 떠난 방향을 빤히 보며 말했다.“괜찮다.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낙현책은 살짝 놀랐다.이내 다들 그녀를 따라갔다.그들은 바닷가 암초에서 묵계를 따라잡았고 그녀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유생은 그녀가 중독된 것을 알아차렸다. 발목을 보니, 어느새 뱀에게 물려 있었다.유생이 고개를 돌려 초경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초경이 한 일인 것 같았다.초경은 놀라지 않고 마음 아픈 표정으로 송천초를 안았다.“천초를 데리고 먼저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부 태사를 돕거라.”“예!”이내 초경은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다들 부 태사를 도우러 갔다.부진환은 병사를 이끌고 동하국을 공격했다. 비록 동하국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방어에 강한 성벽과 무기가 없었고 선박뿐이었다.여국 병사들이 끊임없이 섬에 오르고 있으니, 동하국이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초경은 송천초를 안고 청주로 돌아와 묵계의 혼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했지만, 줄곧 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금색 진법이 나타나 묵계를 진법 안으로 가두었다. 귀를 뚫을 듯한 그 노랫소리는 진법 속에 가로막혔다.흰옷을 입은 제사장족 제자 수십 명이 하늘에서 나타났다.그들은 복숭아나무 위에 가볍게 서서 열 손가락으로 진법을 그렸고 손끝에는 금빛 부문이 흐르고 있었다.묵계는 깜짝 놀란 후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깜짝 놀라 송천초를 바라보았다.“너구나!”송천초가 차갑게 웃었다.“설마 내가 혼자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묵계는 굳은 표정으로 분노에 찬 듯 말했다.“괘씸하구나! 너에게 속다니!”그때, 밖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송천초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가 사람을 데리고 동하국을 공격했으니, 당신은 도망가지 못할 것입니다.”“차라리 순순히 잡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그녀는 어젯밤 묵계를 만난 후 막사로 돌아가 바로 이 일을 부진환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했다.부진환은 그 여자가 동하국 약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초경도 분명 그 여자의 손에 있을 테니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웠다.그녀가 혼자 묵계를 만나러 간 것도 다른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기관선을 이용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묵계가 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송천초는 웅황을 가득 챙겨 몸을 지키려 했다.묵계는 진법 속에서 절망하여 초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너와 나도 동족이라 할 수 있다. 나한테 한 짓을 다시 너한테도 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믿어선 안 된다!”“정말 저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냐?”“초경. 난 너를 죽이려 한 적 없다!”초경은 한숨을 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의 처지가 안쓰럽지만, 우린 동족이 아니다.”“우린 다르니, 같다고 하지 말거라.”“너의 딱한 처지를 보아, 솔직히 말하마. 동하국은 곧 멸망할 것이니, 너도 원수를 갚은 셈이다. 마음 놓고 떠나거라.”그 말을 듣고 묵계는 넋을 잃고 그들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죽으려면 함께 죽겠다!”묵계는 하늘을 향해 소
“그는 감금되었다. 우리는 그를 구할 수 없다. 그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너의 몸과 나의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기회가 있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입니까?”묵계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느냐? 그를 구할 수도 있고 그와 같은 수명을 가질 수도 있다.”“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하지만 대가로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할 수 있느냐?”송천초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겨 대답하지 않았다.묵계가 말을 이었다.“이곳은 동하국이다. 그들이 설치한 함정에 나는 들어갈 수 없고 평범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들어가도 그를 구할 수 있겠느냐?”“우리가 힘을 합치면 할 수 있다! 잠시 힘을 합쳐 그를 구하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 떨어지는 것이 어떠냐?”묵계가 한참 말을 한 뒤에야 송천초는 그녀의 말을 허락했다.“좋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기쁠 따름이었다. 송천초가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다.만약 이 몸을 빼앗는다면 초경에게 청신요를 쓰지 않아도 된다.“좋다. 바로 자리를 옮겨서 시작하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계를 따라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갔다.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복숭아나무였고 다른 것은 없었다.송천초는 묵계의 말에 따라 다리를 꼬고 앉았다.묵계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와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었다.“시작할 것이다. 조금 불편할 테니 참거라.”묵계는 말을 마치자마자 시작했다.송천초는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온몸의 기운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복숭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밀실에서 독을 없애려 애쓰고 있던 초경은 순간 송천초의 존재를 느꼈다.그는 번뜩 눈을 뜨고 송천초가 주위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위험하다!초경은 마음이 초조했다. 그는 송천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독을 없애기도 전에 다급히 밀실 문을 부수고 뛰쳐나갔다.묵계의 혼이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분명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송천초를 향해 걸어오는 도중 옷과 머리카락이 말랐다.송천초는 위험을 감지하고 바로 사람을 부르려 했다.그녀가 있던 곳에 마침 암초가 있어 그 여자의 모습을 막았다. 옆에 바로 청주군의 막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대담하게 이곳으로 오다니!송천초가 사람을 부르려는 그때, 여자가 입을 열고 그녀를 저지했다.“나는 적의가 없다. 그저 너를 찾으러 왔다.”“저요?”송천초는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송천초라 하느냐?”묵계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본 기억 속의 그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어떻게 아는 것입니까?”묵계가 웃으며 말했다.“나는 묵계라고 한다. 초경이 위험에 처해 있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송천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졸이며 저도 몰래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무슨 일입니까?”“당신은 대체 무슨 사람입니까? 어찌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묵계 뒤에서 뱀 꼬리가 나타났다.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나는 그와 동족이다. 그가 너를 찾아오라 한 것이다.”“만약 그를 구하고 싶다면 오늘 밤 홀로 이곳에 오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너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겠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물었다.“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동하국입니까?”“그곳 말고 더 있느냐?”“오직 너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거라. 초경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내가 시킨 대로 하거라.”말을 마치고 묵계는 경계하며 막사를 힐긋 보고 몸을 돌려 바다로 사라졌다.송천초가 추궁하기도 전에 묵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가 무슨 사람인지 말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종일 불안했던 것을 생각하면, 초경에게 정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병사가 상황을 보러 왔다.“방금 이쪽에서 인기척이 있길래 보러 왔습니다. 무슨 일 없는 것입니까?”송천초는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그 노랫소리는 그의 의식을 흐릿하게 했다. 그는 애써 소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자꾸 귀를 파고들었다.초경은 한참 몸부림치다가 결국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바닥에 쓰러졌다.묵계는 그 모습을 보고, 그제야 그에게 다가갔다.“너를 상대하기가 참 어렵구나. 하지만 나를 너무 얕본 것 같구나. 인어족의 청신요는 죽어가던 사람도 깨울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해 행동을 조종할 수도 있다. 쉬이 사용하지 않던 방법인데 이렇게 너에게 쓰게 됐구나.”묵계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 손을 뻗어 초경의 얼굴을 스쳤다.“청신요로 너의 기억을 바꾸면 오늘부터 나의 명을 따르며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거부하지 말거라. 자칫 잘못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묵계는 웃으며 말을 마치고 손을 초경의 머리 위에 얹은 후 청신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맑은 소리가 주문처럼 초경의 귓가에 맴돌면서 바늘처럼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묵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애먹였다.그녀는 의지력이 이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 없었다.묵계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봐야겠구나!”그녀의 손끝이 초경의 미간에 가볍게 닿자, 그녀는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그의 기억 속에는 온통 다른 여자뿐이다.그것도 평범한 여자였다.청신요의 통제를 받지 않고 기억을 지우지도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니.묵계는 내키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자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원인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고작 수십 년의 수명만 갖고 있어 결국 늙어 죽기에 그들과는 다르다.감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육체가 다치지 않았다면 청신요를 쓰는 것도 애먹을 리 없었을 것이다.보아하니 이 방법으로는 그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럼...묵계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묵계는 초경을 업고 돌아가 밀실에 가두었다.묵계는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묵계는 이 남자를 죽이기 아까웠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나긴 수명을 갖고 있어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이런 사람을 또 찾기 어려울 것이다.초경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그럼, 너는 진정한 약사가 아니냐?”묵계가 콧방귀를 뀌었다.“물론이다. 그 여자는 이미 죽었다. 나의 몸을 망가트렸으니, 그녀가 바다로 들어간 기회를 틈타 그녀를 죽이고 몸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뱀의 기운은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그동안 약사의 신분으로 동하국에서 지내며 바다에서 보물을 발견하여 일반인과 다른 힘을 얻었다고 그들을 속이고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찾게 했다.”“이로써 그들의 내전을 일으켜 영원히 평화로이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나의 한을 풀었다!”초경은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여국 바다에 있는 진도 네가 깬 것 같구나.”초경은 부진환에게서 여국과 동하국의 전쟁에 관해 많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다들 대진이 깨지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하국 사람은 여국 땅으로 침입할 수 없다.하지만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은 할 수 있었다.역시나 묵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물론 나다.”“내가 아니었다면 동하국 사람은 평생 여국 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초경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복수를 하고 싶지만, 동하국 사람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살생을 저질러 화를 입고 싶지 않은 것이구나.”“그래서 대진을 파괴하고, 동하국 내전을 일으키고 그들을 선동하여 여국을 공격한 것이냐? 그들이 전쟁으로 죽게 만들려는 것이냐?”“아주 완벽한 계획이구나. 하지만 전쟁을 일으켰으니, 결국 운명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묵계가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나의 계획을 알아차리다니 정말 똑똑하구나.”“그들이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대진이 사라졌다 해도 여국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나와 상관없다.”“내가 화를 입는다 해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말을 마치고
그는 이내 약사를 찾으러 갔다.그러나 도림을 벗어나기도 전에 초경은 앞에 길이 없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사방을 관찰하다 이곳이 미로라는 깨달았다. 그는 손바닥을 들었지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자세히 맡아보니, 바람 속에 복숭아 꽃향기와 옅은 약재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독이 있다!뒤에서 여유로운 발소리와 묵계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왜 앞으로 가지 않습니까?”초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묵계는 무서운 표정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초경은 가슴이 떨려왔고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네가 바로 약사냐?”묵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먼 곳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약사라는 이름만 알고 계십니까? 제 이름도 모르는 것입니까?”“다들 저를 자릉약사라 부릅니다.”“이곳에 온 순간부터 알아차렸습니다. 비록 신분을 모르지만, 홀로 이곳에 온다는 건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겠지요. 그래서 도림에 손을 조금 썼습니다.”“도림에 들어선 후부터 이미 중독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독은 더욱 세질 것입니다.”“그리고 이 독은 사족을 겨냥한 독입니다.”묵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초경을 바라보았다.초경은 슬쩍 내공을 써봤지만, 사지가 무기력했다. 무언가가 갑자기 그의 경맥을 막은 것처럼 내공이 안정을 잃고 통제하기 어려웠다.그는 손을 움켜쥐고 불편함을 참으며 내색하지 않았다.“사족? 나를 무서워하지 않은 것이냐? 넌 대체 누구냐?”초경은 의아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이상할 것 없이 평범한 사람 같았다.묵계가 가볍게 웃자, 뒤에 환영이 나타났고 그녀의 꼬리가 보였다.하지만 재빨리 사라져 버려서 초경은 뱀 꼬리인지 아닌지를 똑똑히 보지 못했다.“공자, 우린 같습니다.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묵계는 흥미진진하게 초경을 훑어보았고 눈빛에는 탐욕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초경의 강한 수위를 탐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