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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Author: 배시아
늘씬한 몸매를 가진 성도윤은 특유의 카리스마를 뿜어냈고, 마치 이 막장 싸움과 무관한 사람 같았다.

그는 살짝 튀어나온 임채원의 배로 천천히 시선을 돌리더니 무덤덤하게 말했다.

“보시다시피 채원은 임신한 지 3개월이 되었죠. 아이는 우리 성씨 집안의 혈육인지라 떳떳한 신분이 필요해요. 전 이미 차설아와 이혼을 신청했고, 혼인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고 나면 채원이랑 결혼할 겁니다.”

그의 말에 소영금과 임채원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성명원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 불효자 녀석을 당장이라도 때려죽이고 싶었다.

“이 자식아, 진심이야? 밖에서 얻은 여자는 갖고 놀면 그만이지, 지금 내연녀를 집에 들이려고 와이프까지 내팽개칠 정도로 어리석은 거야? 정신 나갔어? 설아 할아버지께서 알게 된다면 저승에서 쫓아올지도 몰라. 왕년에 얼마나 용맹한 장군이었는지 알기나 해? 수십만 명의 대군을 이끄는 모습은 정말 위풍당당했는데, 설아 할아버지가 널 해코지하는 게 두렵지도 않냐?”

“말도 마세요.”

소영금은 팔짱을 끼고 잔뜩 경멸하는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그렇게 대단하다는 사람이 결국에는 한순간에 몰락했잖아요. 그동안 우리가 차씨 집안 하나뿐인 손녀딸을 거둬주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대가 끊겼을 거예요. 당시 차씨 집안과 원수를 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잊었어요? 그런 압박까지 무릅쓰고 차설아와 결혼하면서 본의 아니게 적을 만들게 되었는데, 아무리 은혜를 갚는다고 해도 할 만큼 하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그때 노인네가 직접 둘이 결혼 생활을 4년 동안만 이어가면 된다고 정했잖아요. 4년이 지나도 여전히 정이 없으면 좋게 헤어지는 거라고 했는데, 딱히 우리 도윤의 잘못도 아니잖아요?”

당장이라도 말다툼을 벌일 것 같은 부모님을 보자, 성도윤은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두 분이 싸우고 싶으면 다른 데 가서 싸우세요.”

“됐다, 됐어!”

성명원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탄식했다.

“넌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워낙 유별나고 제멋대로였으니 한 번 마음 먹은 이상 네 형을 제외한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도 않았잖아. 도현이가 아직 살아있다면 널 설득이라도 했을 텐데.”

순간 분위기가 무거워지더니 다들 슬픔에 잠겼다.

3개월 전 성도현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성씨 집안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가뜩이나 차갑고 거만하던 성도윤은 마음의 문까지 닫고 매사에 시니컬한 태도로 일관했다.

“정녕 이 여자와 결혼하겠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만, 딱 한 가지만 약속해 줘. 아니면 널 집에서 쫓아낼 테니까.”

“뭔데요?”

성도윤은 무심한 눈빛으로 자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준수한 외모와 달리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은 당최 무슨 생각하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네 할아버지한테는 꼭 비밀로 해줘. 최근에 심장이 급격히 안 좋아져서 곧 심장이식 수술을 받으실 텐데 괜히 자극해봤자 좋은 점이 없어. 네 할아버지가 설아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지? 거의 친손녀 대하듯이 예뻐하는데, 고작 내연녀와 결혼하기 위해 설아와 이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화딱지가 날지도 몰라.”

성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성명원 부부는 그제야 별장을 떠났다.

집을 나서기 전에 소영금은 임채원의 손을 잡고 태교를 잘해야 한다며 신신당부했는데, 누가 봐도 이미 그녀를 예비 며느리로 삼은 모습이었다.

차설아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성명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임채원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결국 임채원은 밤새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어쨌거나 성명원과 소영금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보다 성도윤의 마음이 더욱 중요했다.

왜냐하면 성씨 집안 심지어 해안시를 통틀어 가장 발언권이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성도윤이기 때문이다.

한편, 성도윤은 2층 창가에 서서 정원을 가득 메운 해바라기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별장에 자주 오는 편은 아니라서 정원에 벌써 이렇게 많은 해바라기꽃이 피었는지 전혀 몰랐는데 장관이 따로 없었다.

해바라기꽃이라...

차설아가 좋아하는 꽃이 해바라기라는 것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갖은 역경에도 오로지 햇빛만 보고 자라나는 꽃.

그래서 차설아는 지금 역경을 벗어나겠다는 건가? 아니면 그의 아내로 산다는 자체가 역경이라는 건가?

“도윤아.”

임채원은 성도윤에게 다가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미안해, 나랑 아이가 너한테 짐만 되었네. 아니면... 그냥 지울까?”

성도윤이 뒤돌아섰다. 밤하늘처럼 새까만 눈동자 속에는 알 수 없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그는 울컥하는 심정을 애써 억누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 우리 형의 마지막 소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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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는 볼일 있다고 나갔는데 민이 이모가 오빠 걱정된다고 아까 찾으러 나갔어요.”제 오빠가 집 밖을 나가는 건 자주 있는 일이라 달이는 차분하게 엄마의 질문에 답했다.달이한테 오빠는 자신이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천재였기에 그녀는 오빠가 매일 같이 나가도 한 번도 걱정한 적이 없었다.“뭐? 또 어디 간 거야?”하지만 엄마인 차설아는 잠깐이라도 한눈만 팔면 그 틈을 타 밖으로 나가버리는 원이 때문에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하지만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이 상황에 나가서 아이를 찾을 수도 없었기에 초조해하고 있는데 그때 김정민이 집으로 들어왔다.“아가씨, 오셨어요? 원이 도련님이 또 집을 나가셨어요! 어떡해요? 동네를 한 바퀴 다 돌았는데 어딨는지도 모르겠고...”밥을 하는 사이에 나가버린 원이 때문에 김정민은 아직도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원이가 나가기 전에 무슨 이상한 말을 했다거나 요즘 이상한 행동을 했다거나 한 적은 없었어요?”“별말은 하지 않고 그냥 몰래 나간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아가씨가 영상통화 안 해준다고 아가씨한테 무슨 일이 난 것 같다면서 구하러 가겠다는 말을 한 적은 있어요. 저는 그냥 애니메이션 보고하는 말인 줄 알고 별로 신경을 안 썼었고요.”미간을 찌푸리며 묻는 차설아 김정민은 한숨을 앞세우며 답했다.“다 제 불찰이에요. 원이 도련님은 지능이 남달라서 보통 아이처럼 대하면 안 됐던 건데... 구하러 간다는 말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아마 그때부터 계획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손을 휘적이며 김정민에게로 다가간 차설아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이모 잘못 아니니까 자책하지 마세요. 따지면 제 잘못이죠. 제가 제대로 설명을 안 해서 모두를 걱정시켰어요.”차설아의 반응이 자신의 예상과 달라 이상하다고 느낀 김정민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자세히 보며 물었다.“아가씨, 이 밤에... 왜 선글라스를 끼고 계세요?”“그냥 산 타다가 눈을 좀 다쳐서 시력이 안 좋아졌어요. 병원 가봤는데

  • 선 이혼, 후 집착   제1464화

    “어릴 때부터 지내던 곳이라 이곳 구조는 이미 몸에 익었어요.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니까 걱정 마요.”자신이 정말 갈 수 있는 길이기도 했고 또 현이를 걱정시키고 싶지도 않았기에 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그, 그럼 조심하세요.”“네, 이제 그만 가봐요.”현이를 향해 손을 저어주던 차설아는 그녀가 떠났음을 확인하고서야 난간을 더듬으며 현관문을 찾아 비밀번호를 입력했다.전부터 감지력과 관찰력이 뛰어났던 차설아는 현이에게 한 말대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집안으로 정확히 걸어가 문을 열고 오랜만에 익숙한 아이들의 이름을 소리높이 외쳐봤다.“원아, 달아!”“엄마!”차설아의 부름에 2층에 있던 달이는 서둘러 1층으로 뛰어가 그녀의 품에 폭 안겼다.“엄마! 왜 이제야 왔어요! 너무 보고 싶었다고요.”자신에게 애교를 부려오는 예쁜 딸의 머리를 쓰다듬던 차설아는 웃으며 물었다.“엄마 없을 때 떼 안 쓰고 잘 있었어?”“당연하죠. 나 이제 은하수 어떻게 그리는지도 아는데, 얼른 가요! 내가 보여줄게요!”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인 달이는 엄마의 이상함도 눈치채지 못하고 신나서 방방 뛰며 차설아의 팔을 잡고 계단을 올랐다.차설아는 몇 번이나 턱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서도 달이를 놀래키지 않으려 힘겹게 아이의 방까지 걸어갔다.발 빠르게 며칠 전에 그렸던 그림들을 꺼내온 달이는 칭찬을 바라는듯한 얼굴로 환히 웃어 보였다.“엄마, 이거 내가 그린 은하수예요. 반고흐 할아버지 거랑 비슷하죠? 오빠는 내가 그린 게 더 예쁘다고도 했어요!”“예쁘지, 너무 예쁘다. 우리 달이는 진짜 그림 천잰가 봐.”아무것도 볼 수 없던 차설아는 선글라스를 낀 채로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도, 아이들이 그린 거, 만든 거 그 어느 것 하나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점차 저릿해졌다.“엄마는 저녁에 왜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요? 내가 여기에 색깔도 여러 개 섞어놨는데, 선글라스 끼고 있으면 잘 안 보이지 않아요?”천진난만

  • 선 이혼, 후 집착   제1463화

    박서영의 말에 별 의심 없이 약을 받아 마신 성진은 눈이 아픔에도 박서영이 전화를 거는 모습을 보려고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그렇게 점차 의식이 흐려져 가던 성진이 쓰러질 때, 박서영은 수화기 너머의 현이를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현아, 빨리 차설아 씨 모셔와!”의사가 처방해준 약은 눈을 푹 쉬게 하라는 의미에서 수면제의 효과도 같이 내는 약이었는데 그래서 잠시 기절한 것뿐이었다.떠나기 전 성진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던 차설아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박서영이 때마침 성진에게 약을 건넨 것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현이와 함께 방으로 들어온 차설아가 박서영을 향해 물었다.“어때요? 시력은 회복한 거예요? 배척반응은 없고요?”상처가 아직 다 아물지 않아 선글라스를 낀 탓인지 차설아는 전보다도 더 도도해 보여 전혀 실명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그녀가 강인해 보이려고 애쓸수록 현이와 박서영은 점점 더 마음이 아팠고 그들의 죄책감도 깊어져 갔다.“회복은 잘 됐는데 오랜만에 눈을 뜨는 거라 눈이 아플 수는 있대요...”침대에 기절한 채 누워있는 성진을 보던 박서영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문제가 하나 생기긴 했는데... 도련님이 워낙 똑똑하셔서 눈만 보고도 차설아 씨 눈이란 걸 알아차리신 것 같아요. 저한테 당장 대학생 찾아오라고 하셔서 급한 대로 일단 약부터 먹인 거예요. 이 약 아니었으면 오늘 진짜 경을 쳤을 거예요.”“그건 내가 미리 대처하라고 했었잖아요. 나랑 눈 비슷한 대학생 찾아두라고. 아직 못 찾은 거예요?”“아니요, 찾긴 찾았는데... 그러면 또 수많은 거짓말을 해야 하니까... 그럴 거면 아예...”박서영은 자신이 내뱉는 말이 터무니없다는 걸 알면서도 입술을 깨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도련님한테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앞으로 도련님더러 차설아 씨를 보살피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절대 안 돼요!”차설아는 역시나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진이 성격은 서영 씨가 나보다도 더 잘 알잖아요. 내가 눈을 준 걸 알게 되

  • 선 이혼, 후 집착   제1462화

    하지만 성진은 차분하고도 사연 있어 보이는 이 두 눈이 자신의 평소 성격과는 너무나도 달라 적응이 되지 않은 건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너 아빠가 말하는데 대답도 안 하고 뭐 하니? 귀까지 이식해줘야겠어?”“금방 깨어난 애한테 그만 좀 해요. 애가 죽을 때까지 몰아붙이기만 할 거예요?”그때 아들이라면 끔찍이 아끼던 단사란이 성진을 나무라는 성주원을 말리며 아들의 상태를 살폈다.갓 깨어난 아들과 몇 마디 나누던 그녀는 성진이 쉴 수 있게 사람들을 데리고 이내 밖으로 나가 버렸다.마침내 조용해진 주위에 박서영은 조심스레 성진에게로 다가가 말했다.“도련님, 괜찮으세요? 눈은 안 아프세요? 힘드시면 얼른 누워서 쉬세요.”“거울 줘.”“네?”“거울 달라고.”한층 어두워진 표정에 무거운 말투까지 더해지자 박서영은 잔뜩 긴장한 채로 큰 거울 하나를 성진에게 건넸다.거울을 받아든 성진은 빠르게 자신의 눈동자를 바라봤는데 그걸 보자마자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이 눈...”자신이 출구도 찾지 못하고 빠져서 허우적대던 너무나도 익숙한 그녀의 눈이 제 얼굴에 박혀있는 모습은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도련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세요? 오랜만에 본인 모습을 보는 거라 익숙하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선생님이 그건 다 정상적인 반응이라고...”한숨을 쉬던 성진은 박서영의 말을 자르며 차갑게 물었다.“나한테 눈 기증해줬다던 그 여대생 어딨어, 내가 지금 봐야겠어.”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두 눈이 그녀의 눈과 너무나도 닮아있어서 성진은 제 생각인지 사실인지 아니면 그저 착각일 뿐인지 당장 확인해보고 싶었다.성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서영은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도련님, 그 여대생은 이미 해안시를 떠나서 지금 찾는 건 좀 힘들 것 같아요...”“뭐가 힘든데.”“지금 어딨는지만 알아내. 여기까지 오는 게 힘들다면 내가 가면 되니까. 바로 차 준비하라고 이르고.”“그... 그게...”강압적인 성진의 태도에 박서영은 어찌할 줄 몰라 식은땀만 흘리고 있었

  • 선 이혼, 후 집착   제1461화

    이튿날, 성진이 다시 눈을 뜨는 역사적인 순간을 보기 위해 그의 부모님과 박서영을 비롯한 성대 그룹의 이사진들이 그의 방안에 빼곡히 둘러서 있었다.“이제 붕대 풀 건데 준비되셨어요?”“네.”하얀 가운을 걸친 의사가 진지하게 묻자 침대 끝에 걸터앉은 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는 주먹을 말아쥐었다.그에게 있어서 눈을 뜬다는 건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았기에 지금 그는 이 자리에 선 그 누구보다도 더 흥분하고 있었다.성진의 동의를 구하고 붕대를 풀던 의사는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덧붙었다.“오랜만에 빛을 보는 거라 처음에는 눈이 아프고 시야도 모호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건 다 정상적인 현상이니까 너무 당황하지는 마세요. 강한 빛은 막아주는 안경을 따로 맞춰뒀으니까 계속 끼고 계시면 도움 될 거에요.”의사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마지막 한 겹 남았던 붕대가 아래로 흘러내렸고 마침내 성진은 제 부모님과 다른 사람들의 인영을 볼 수 있게 되었다.“진아, 어때? 우리 보여?”“네, 엄마. 엄마가 보여요 이제.”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봐서 그런가, 그쪽으로 시선을 옮기던 성진은 자신이 전보다 더 부드럽고 온화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오만방자한 게 디폴트 값이었는데 이상하게 지금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제 아들의 변화를 눈치챈 성주원은 의사를 보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내 아들이 눈을 뜬 것뿐인데 왜 성격도 바뀐 것 같죠? 다 큰 성인이 엄마를 보고 울리기나 하고, 전혀 남자답지 않잖아요 지금은!”“이것도 정상입니다...”미간을 찌푸리며 말하는 성주원에 의사는 난처한 기색을 드러내며 공손한 태도로 설명을 해주었다.“도련님이 기증받으신 게 여성분의 눈이라서 여성 특유의 세포나 DNA가 묻어있어요. 그래서 쉽게 공감하시는 걸 겁니다.”“어쩐지 저 눈은 우리 아들 눈빛이 아닌 것 같더라니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기증자를 좀 더 골라볼 걸, 성도윤 그 자식이랑 경영권 싸움을 해야 하는 사내자식 눈이 저래서 어떡해. 웃음거리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

  • 선 이혼, 후 집착   제1460화

    “나도 너 이해하니까 이 일은 그냥 묻어두고 싶어. 그러니까 너도 나랑 도윤이 좀 이해해줘.”소영금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서은아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눈물을 떨어트리며 말했다.“대체 뭘 원하시는 거예요? 제가 어떻게 이해하길 바라시는 거냐고요.”“흥분하지 말고...”서은아를 위로하는 듯한 말투였지만 소영금의 표정은 엄숙하기 그지없었다.“내 아들 옆에서 떠나라는 말은 안 할게. 걔가 널 선택하든 다른 사람을 선택하든 나는 걔 선택을 존중할 거야. 하지만 내가 너한테 딱 하나 바라는 게 있어. 도윤이가 회복을 마칠 동안에만 그 앞에 나타나지 말아줘.”“네?”소영금이 이토록 단번에 저를 내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던 서은아가 두 주먹을 말아쥔 채 원망 어린 눈길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아주머니는 제가 도윤이를 위해 무슨 짓까지 했는지 다 아시잖아요. 이제 쓸모없어졌으니 떨어져라 이거에요? 진짜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저한테는 도윤이를 볼 자격조차 없는 거예요?”서씨 집안의 유일한 적통인 서은아는 아빠가 밖에서 낳아온 자식들을 집에 들이기 전까지는 무남독녀였기에 온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해왔었다.그랬던 그녀에게 이런 홀대는 너무나 감당하기 버거운 것이었다.“너의 극단적인 선택이 내 믿음을 깬 거야. 나도 내 아들을 지켜야 하는데 걔한테 위험한 너를 가까이할 수는 없지 않겠니?”수술을 막기 위해 사고까지 낸 서은아가 제 아들 옆에 계속 붙어 있는다면 성도윤의 기억이 돌아오는 걸 막으려고 또 무슨 짓이든 저지를 것 같아 소영금은 그녀의 원망 섞인 말을 들으면서도 매정해질 수밖에 없었다.성도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서은아를 떼어놓는 게 가장 급선무였기에 소영금은 그녀를 진무열에게 맡겨버렸다.“진 비서가 은아 좀 봐줘.”그 뒤로 며칠의 시간이 더 흐르자 차설아는 이미 빛이 없는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게 되었다.어차피 눈이 보이지 않으니 지하실에 있든 다른 곳에 있든 그녀에게는 다 똑같은 장소처럼 느껴졌다.앞이 캄캄한 그 날들을 보

  • 선 이혼, 후 집착   제1459화

    박성훈을 본 그들은 빠르게 달려가 물었다.“교수님, 제 아들은 괜찮은 거죠?”“수술은 잘 됐으니까 걱정 마세요. 며칠 푹 쉬면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장시간의 수술을 진행한 탓에 피곤했던 박성훈은 흥분한 채로 달려오는 소영금을 진정시키기 위해 짤막하게 환자의 상태에 대해 알려주고는 바로 탈의실로 들어가 버렸다.성도윤의 뇌 수술에 대해서는 궁금한 게 아주 많았기에 박성훈은 그것도 성도윤의 깨어난 뒤에 다시 차근차근 물어볼 생각이었다.“무사하다니 다행이네.”아들이 무사한 게 가장 중요했던 소영금은 마침내 한 시름 놓으며 주저앉았다.“...”하지만 한쪽에 서 있던 서은아는 한껏 어두워진 얼굴을 하고 아무 말도 못 한 채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성도윤의 수술이 잘 끝났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성도윤이 일어나면 자신부터 내칠까 봐 걱정돼서 근심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아가씨, 괜찮으세요?”“아, 네. 괜찮아요.”그때 진무열이 평소답지 않은 서은아의 상태를 눈치채고 다가가자 당황한 서은아는 그의 눈을 피하며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아가씨 표정은 전혀 괜찮지 않아 보이는데요? 혹시 대표님 수술이 잘 끝난 게 싫으신 거예요?”“그럴 리가요. 그냥...”“도윤이가 눈만 뜨면 나랑은 이제 끝이니까 그게 서운해서 그러죠. 내가 도윤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진 비서님도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죠.”“진짜 그 이유뿐이에요?”미간을 찌푸린 진무열은 서은아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며 물었다.손을 가만히 못 두고 눈을 피하는 그녀의 모습은 실망이라기보다는 초조함에 가까웠다.꼭 무언가를 들킬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 같아서 진무열은 그녀가 성도윤에게 말 못 할 큰일을 저지른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하지만 우선은 성도윤의 회복이 먼저였기에 그가 깨어날 때까지 자신의 의심은 잠시 덮어두기로 했다.한편 흥분을 가라앉힌 소영금은 차가운 얼굴을 하고 서은아를 보며 물었다.“은아야,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말해. 박 교수

  • 선 이혼, 후 집착   제1458화

    “됐어, 사람 안 다쳤다니까 수술은 제대로 할 수 있겠네. 교수는 지금 어딨는 거야?”“아, 교수님이요?”소영금의 질문에 진무열은 수술실 쪽을 보며 답했다.“아까 직원 통로로 들어가셨으니까 지금쯤 수술하고 계실 거에요.”“뭐? 이미 시작했다고?”진무열의 대답에 소영금의 심장은 갑자기 뛰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그녀는 다급히 두 손을 모아 하늘에 대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하느님, 제가 이렇게 빌 테니 제 아들 무사하게만 해주세요... 그리고 제 아들이 무사할 수만 있다면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차설아랑은 못 만나게 할게요.”그녀의 기도를 듣던 진무열은 이상한 문구에 참지 못하고 물었다.“대표님 수술도 다 동의하셨으면서 왜 차설아 씨랑은 자꾸 갈라놓으려고 하세요? 아까는 더 이상 대표님 선택에 관여 안 하신다면서요?”“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내가 우리 도윤이 사주를 봤는데 도윤이랑 설아는 서로 상극이래. 같이 있으면 둘 중 하나는 다치기 마련이라는데 그런 애들을 어떻게 붙여놔? 둘을 위해서라도 내가 악역 자처해야지.”자신이 아무리 훼방을 놓는다 해도 둘의 마음이 간절하기만 하다면 어떤 곤란도 함께 이겨낼 것이었기에 소영금은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해보기로 했다.“사모님, 전에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신다면서요? 언제부터 그런 미신을 다 믿기 시작하셨어요?”소영금의 대답을 들은 진무열은 어이가 없어 웃음을 흘렸다.젊었을 때의 소영금이 유명했던 건 그녀가 남긴 대단한 업적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차설아와 성도윤을 뛰어넘는 역경을 이겨낸 사랑 스토리도 그녀의 이름을 알리는데 한몫했었다.그때 소영금의 좌우명은 ‘사람의 의지는 하늘도 이긴다.’였는데 그랬던 사람이 나이가 들고나니 하느님에게 저렇게 기도를 하며 사주를 철석같이 믿는 게 당황스러울 뿐이었다.만약 소영금이 저 이유를 내세우며 차설아와 성도윤의 사이를 계속 방해한다면 어떤 대책을 내세워 여야 할지도 벌써부터 막막했다.하지만 서은아는 이때다 싶어 성도윤과 차설아가 잘되는

  • 선 이혼, 후 집착   제1457화

    그 말을 들은 서은아는 소영금을 안은 채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를 건넸다.“아주머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이거 어차피 위험한 수술이었잖아요, 안 하게 된 게 오히려 더 좋은 거 아니에요? 하늘도 우릴 도우신 거예요.”“나는 괜찮은데 수술 시작 전에 갑자기 사고가 난 게 우연이 아닌 것 같아서 좀 찝찝하네.”한숨을 쉬던 소영금은 수술실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도윤이가 알면 화낼 텐데, 쟤 성격에 꼭 끝까지 알아내려 들 거야.”“아...”그 말에 서은아는 긴장한 듯 침을 삼켜내고 있었는데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은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런 그녀를 살펴보던 진무열이 입을 열었다.“서은아 씨는 아까까지만 해도 수술 못 시킨다면서 큰소리치더니 왜 지금은 또 이렇게 아쉬워하는 거예요? 대표님이 수술받길 원하시는 건 맞아요?”“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서은아는 이를 악문 채 진무열을 노려보며 말했다.“수술에 관해서는 별생각 없었어요. 저는 도윤이만 좋아질 수 있다면 무조건 그 사람 선택 존중하니까요.”“그래요? 본인이 뱉은 말이니까 갑자기 말을 바꾸거나 하진 않겠죠?”서은아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들은 진무열은 이상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당연하죠, 제가 직접 한 말인데.”모든 조치가 끝난 뒤라 믿는 구석이 있었던 그녀는 이제 와서 배려심 깊은 모습을 연출하며 진무열과 소영금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그런데 아까부터 입꼬리를 씰룩이던 진무열이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해대기 시작했다.“대표님도 아가씨 말 들으면 마음이 한결 놓이시겠어요. 역시 서씨 집안 아가씨는 인품도 남다르네요.”진무열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고 수화기 너머의 사람을 향해 말했다.“교수님, 여기 준비 끝났으니까 바로 수술 진행해주세요.”그 말을 들은 서은아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언성을 높여 물었다.“진 비서님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수술을 진행한다니요?”“박 교수님이죠 당연히, 그분이 오늘 뇌수술 집도의이신데 그분한테 연락해야겠죠?”“박 교수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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