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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작가: 배시아
“에취!”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포장마차에서 차설아는 연달아 재채기하더니 귀까지 후끈거릴 지경이었다.

“뭐지? 감기가 다 나았을 텐데 왜 자꾸 재채기해?”

차설아는 코를 훌쩍이며 감기약을 더 먹어야 하나 고민했다.

“누군가 언니 얘기만 하는데 당연한 거 아니겠어?”

배경윤은 차설아 앞에 ‘해안신문’을 내려놓으며 싱글벙글 말했다.

“언니 지금 큰일 났어. 곧 전 남편이 될 분이 2천억을 내걸고 언니를 공개수배한대.”

배경수의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으로서 배경윤도 차설아와 생사를 같이 한 사이였다.

다만 차설아에게 간이고 쓸개고 빼줄 듯한 배경수와 달리 그녀는 차설아의 가장 친한 친구에 가까웠다. 둘은 모이기만 한다면 티격태격하는데 그것조차 즐거웠다.

차설아는 신문을 빠르게 훑어보더니 피식 비웃었다.

“지금처럼 허세 부릴 시간이 있으면 얼른 버그를 수정할 방법이나 찾지. 벌써 몇 년째인데 성대 그룹 내부 시스템이 이렇게 물러터져서 쓰겠어? 공격 한 번에 바로 다운되다니, 전혀 도전할 맛이 안 나잖아.”

“간지 작렬이네.”

배경윤은 저도 모르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언니라서 이런 얘기할 자격이 있겠지? 해킹계의 신, 그 유명한 ‘스파크’가 바로 언니이잖아. 성도윤 그 만년설 같은 자식이 얼굴만 반반한 했지 머리에 똥만 찼나 봐. 언니처럼 숨겨진 보물을 내팽개치고 불륜을 저지르는 것도 모자라 임신까지 시켜? 정말 최악이야! 그동안 언니가 암암리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줬는지도 모르고, 성대 그룹의 허술한 시스템을 공격하려는 해커를 몰래 방어해 준 언니가 없었더라면 벌써 몇 번이나 다운되고 말았을 텐데,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라고, 이번에 쌤통이야.”

배경윤은 성도윤과 차설아 커플의 덕후로서 둘이 결혼하고 사랑이 싹트면서 날이 갈수록 사이가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결국 사랑이 싹트기도 전에 갑자기 튀어나온 내연녀와 아이 때문에 바로 탈덕했다.

젠장!

차설아보다 화가 더 난 듯한 그녀는 지금 당장 성대 그룹에 쳐들어가 쓰레기 같은 놈을 패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이때, 포장마차 주인이 꼬치구이와 맥주를 들고 왔다.

배경윤은 마치 생수처럼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차설아는 지글지글 익어가는 꼬치구이와 향긋한 맥주를 바라만 봤을 뿐, 가만히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언니, 왜 가만히 앉아 있어? 얼른 마셔. 이제 이혼하고 나면 완전 자유라고. 오늘 어디 한번 코 삐뚤어지게 마셔볼까?”

차설아는 입술을 깨물더니 포장마차 주인을 향해 외쳤다.

“여기요, 두유 한 병과 호박죽 한 그릇 주세요.”

“쿨럭!”

배경윤은 맥주를 뿜으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차설아를 바라보았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설마 이혼한다는 사람이 아직도 착하고 단아한 재벌가 며느리인 척 술도 함부로 못 마시고 꼬치구이를 입에 대지도 않는 건 아니겠지?”

“오늘... 날이 아니야.”

차설아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녀는 배경윤에게 임신 사실을 알릴 생각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왜냐하면 어젯밤에 이미 개인 병원에 예약해서 모레 아침 일찍 유도 수술을 받고 아이를 지울 생각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도 왜 이러는지 몰랐다. 아이를 지우기로 했는데도 술을 마시고 꼬치구이를 먹으면 아이의 건강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이 드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알았어, 그날이야?”

배경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설아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

“괜찮아. 따뜻한 물 많이 마시고, 술은 나만 마시면 되니까.”

“고마워, 경윤아.”

물을 건네받은 차설아는 마음마저 따뜻해졌다.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간 그녀가 했던 일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 배경수, 배경윤 남매를 구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은 그녀의 믿음을 한 몸에 받는 존재가 되었다.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보다 더 소중했다.

“이게 누군가? 집에만 틀어박혀 지낸다는 우아하고 단아한 성씨 가문 둘째 며느리 아닌가?”

이때, 등 뒤에서 잔뜩 비아냥거리는 거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댓글 (1)
goodnovel comment avatar
김소리
제발, 수술 꼭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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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 이혼, 후 집착   제1457화

    그 말을 들은 서은아는 소영금을 안은 채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를 건넸다.“아주머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이거 어차피 위험한 수술이었잖아요, 안 하게 된 게 오히려 더 좋은 거 아니에요? 하늘도 우릴 도우신 거예요.”“나는 괜찮은데 수술 시작 전에 갑자기 사고가 난 게 우연이 아닌 것 같아서 좀 찝찝하네.”한숨을 쉬던 소영금은 수술실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도윤이가 알면 화낼 텐데, 쟤 성격에 꼭 끝까지 알아내려 들 거야.”“아...”그 말에 서은아는 긴장한 듯 침을 삼켜내고 있었는데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은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런 그녀를 살펴보던 진무열이 입을 열었다.“서은아 씨는 아까까지만 해도 수술 못 시킨다면서 큰소리치더니 왜 지금은 또 이렇게 아쉬워하는 거예요? 대표님이 수술받길 원하시는 건 맞아요?”“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서은아는 이를 악문 채 진무열을 노려보며 말했다.“수술에 관해서는 별생각 없었어요. 저는 도윤이만 좋아질 수 있다면 무조건 그 사람 선택 존중하니까요.”“그래요? 본인이 뱉은 말이니까 갑자기 말을 바꾸거나 하진 않겠죠?”서은아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들은 진무열은 이상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당연하죠, 제가 직접 한 말인데.”모든 조치가 끝난 뒤라 믿는 구석이 있었던 그녀는 이제 와서 배려심 깊은 모습을 연출하며 진무열과 소영금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그런데 아까부터 입꼬리를 씰룩이던 진무열이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해대기 시작했다.“대표님도 아가씨 말 들으면 마음이 한결 놓이시겠어요. 역시 서씨 집안 아가씨는 인품도 남다르네요.”진무열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고 수화기 너머의 사람을 향해 말했다.“교수님, 여기 준비 끝났으니까 바로 수술 진행해주세요.”그 말을 들은 서은아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언성을 높여 물었다.“진 비서님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수술을 진행한다니요?”“박 교수님이죠 당연히, 그분이 오늘 뇌수술 집도의이신데 그분한테 연락해야겠죠?”“박 교수님은

  • 선 이혼, 후 집착   제1456화

    “그런데 박 교수는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수술 삼십 분 밖에 안 남았는데 어떻게 전화 한 통이 없어.”소영금은 시계를 보며 아직도 오지 않는 박성훈에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쳤다.성대 그룹 후계자라는 지위와 신분은 국가 간부급인데 그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가 수술 시작 30분 전에도 모습을 비추지 않으니 자연스레 교수의 실력에 대한 의심도 생기기 시작했다.“조금만 더 기다려보시죠. 성격이 워낙 그런 분이시라 항상 시간 딱 맞춰오세요. 그리고 원래 이런 수술도 잘 안 맡는데 대표님이랑 친분이 있으셔서 특별히 해주시는 거예요.”“뭐 얼마나 잘난 사람인지 얼굴이나 봐야겠네. 수술 잘하면 다행이지만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내가 절대 가만 안 둘 거야.”진무열의 말에 소영금은 성격을 죽이며 복도에 가만히 앉아있었다.한편, 수술실 밖으로 나온 서은아는 눈물을 닦아내고 눈을 번뜩이며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내 생각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렇다면 나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예정대로 일 진행해, 나머지는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그 뒤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 수술 시작 시간이 되자 소영금은 초조해하며 물었다.“약속한 시간 다 됐는데 이 의사는 왜 안 와?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코빼기도 안 비치는 거야?”“혹시...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죠?”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진무열은 바로 박성훈의 비서에게 연락을 해봤는데 무슨 말을 전해 들었는지 벙찐 상태로 돌아왔다.소영금은 그런 진무열의 모습을 보고 놀라며 다급히 묻기 시작했다.“왜 그래 진 비서? 어디까지 왔대?”진무열은 낯빛이 창백해진 채로 소영금을 멍하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박 교수님 비서랑 연락이 됐는데... 교통사고가 나서 교수님이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크게 다치셨대요.”“뭐라고?!”“어떻게 수술 앞두고 마침 그런 사고가 나? 오기 싫어서 거짓말하는 건 아니고?”“그건 아닌 것 같아요.”반신반의하는 소영금에 진무열은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 선 이혼, 후 집착   제1455화

    “내가 결정한 게 아니라 도윤이가 이미 결정을 내린 거지. 어차피 쟤 인생인데 나도 쟤 뜻 존중해주기로 했어.”소영금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대답했다.사실 예전의 소영금은 사사건건 아들을 속박하려 들며 성도윤의 결혼까지 간섭했었다.그래서 차설아와 함께 살 때도 둘 사이에 자꾸 끼어들며 둘의 감정에까지 안 좋은 영향을 미쳤었다.지금 생각해보면 제 아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여자인데 그냥 내버려 뒀으면 임채원 같은 여자가 꼬일 일도 없을 것 같아 소영금은 그 일이 늘 후회스러웠다.그래서 이번에는 아들의 선택을 전적으로 존중해주기로 한 것이다.“그럼 제 생각은 안 하시는 거예요? 도윤이한테 무슨 일이 생기든 기억을 회복하든 저는 어차피 다 상처받는 거잖아요.”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것들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낀 서은아는 허무한 마음에 소영금을 보며 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아주머니도 아시잖아요, 제가 도윤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도윤이 때문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다 아시면서 어떻게 이래요? 쟤가 실명해서 성대 그룹 이사들한테 공격받을 때도 모든 자원, 인맥 동원해서 도윤이 일으켜 세운 것도 저예요. 그런데 이제 와서 저더러 모든 걸 포기하라고요?”“은아야, 일단 흥분하지 말고 진정 좀 해.”소영금은 그런 서은아를 달래며 말했다.“그냥 뇌수술하는 것뿐이지 죽는 것도 아니고 너랑 있었던 일을 다 잊는 것도 아니야. 네가 한 희생 도윤이도 알고 나도 알아, 쟤가 배은망덕한 사람도 아니잖니.”“저는 안 잊겠지만 바로 차설아를 찾아가겠죠. 그러면 저는 바로 버려지는 거잖아요, 아니에요?”“그럴 리가 없잖아. 도윤이랑 설아는 이미 지나간 인연이야.”“누가 그래요! 도윤이는 그냥 차설아를 잠시 잊어서 저를 그 여자로 생각하고 곁에 두는 거예요. 지금 나한테 다정했던 만큼 기억만 돌아오면 바로 매정해질 거라고요! 그리고 모든 사랑은 또 차설아한테 퍼주겠죠.”“그럴 수도 있지만...”엉엉 우는 서은아를 보며 측은지심이 생겨난 소영금은 그녀를 다독이

  • 선 이혼, 후 집착   제1454화

    “유감일 것도 없어요. 내어준 게 아니라 갚은 거니까.”차설아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애써 태연한 척했다.“나 위해서 말해 주는 건 고마운데 내가 손해 볼 건 없는 거래에요.”“알겠어요... 설아 씨가 비밀로 해주길 원하신다면 저희도 당연히 말은 안 하죠. 떠나고 싶으실 때 저한테 알려주시면 제가 서영 언니한테 물어볼게요. 하지만 언니도 별말 없이 보내줄 거에요.”“아직은 급하지 않아요.”차설아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진이 아직 안 깨어났다면서요, 일어나서 눈은 제대로 보이는지 확인한 뒤에 기회 봐서 나갈게요. 만약 수술이 성공적이지 않아서 내가 도울 일이 있다면 내가 여기서 지내는 게 더 효율적이긴 하잖아요.”“설아 씨는 어쩜 이렇게 착해요? 우리 도련님을 이렇게 다 생각해주시고, 설아 씨는 우리 도련님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아요.”차설아의 말에 제대로 감동받은 현이는 순진한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도련님도 설아 씨한테만큼은 진심이니까 아무 걱정 마세요. 회복 마치고 나면 성대 그룹 주권도 성도윤 손에서 빼앗아 오실 거에요. 그때는 도련님이 성도윤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을 테니 설아 씨한테도 꼭 제대로 보상해주실 거예요.”“그런 생각까진 안 해봤는데...”차설아도 자신의 행동이 성대 그룹의 내전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눈이 보이지 않아 잠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긴 했지만 성진은 그리 쉽게 타협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동안 필시 성도윤에 대응할 방도를 마련했을 것이다.그런 성진과 맞서려면 성도윤도 한동안 바빠질 것 같았다.하지만 차설아는 그래도 멀어버린 눈 덕분에 그 꼴사나운 모습들을 보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이렇게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사고회로를 돌리는 게 바로 차설아였다.---그 시각, 성도윤의 뇌수술도 한창 준비 중이었다.이미 수술복으로 환복을 마친 성도윤은 수술실에 들어가 있었고 문밖에는 소영금, 서은아, 진무열 등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아주머니, 아직 시간

  • 선 이혼, 후 집착   제1453화

    “아, 아니야!”똑똑한 원이가 눈치라도 채면 집요하게 캐물을 걸 알기에 차설아는 당황하며 다급히 부인했다.“엄마 아무 일도 없이 잘 있어. 엄마한테 언제 무슨 일 생기는 거 봤어? 걱정 말고 동생 잘 챙기고 민이 이모 말씀 잘 듣고 있어.”말을 마친 차설아는 바로 전화를 끊으려고 했지만 원이는 그렇게 놔두질 않았다.“엄마한테 생긴 일이 적진 않죠. 이런저런 귀찮은 일들이 얼마나 많이 생겼는데요, 지금도 무슨 일이 있으니까 영상통화 못 하는 거잖아요. 1초만 켜요, 아무 일 없다는 거 내 눈으로 확인하면 믿어줄게요.”“그게...”원이를 속이지 못한다는 걸 알아챈 차설아는 핸드폰을 멀리 놓고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원아, 뭐라는지 잘 안 들리네? 엄마 지금 친구랑 등산 하고 있어서 신호가 안 좋아. 나중에 통화하자!”말을 마친 차설아가 통화를 끝내자 옆에서 보고 있던 현이가 감탄하며 말했다.“설아 씨는 정말 행복하겠어요. 아들딸 다 저렇게 귀엽고 똑똑한데 엄마도 엄청 사랑하는 게 눈에 보여요!”“나는 행복한데 애들은 행복하지 않아요...”“나 따라다니면서 겁도 많아졌고 힘든 일도 많이 겪었어요. 나는 좋은 엄마는 아니에요.”“그런 말씀 마세요. 애들한테 설아 씨처럼 착하고 대단한 엄마가 있어서 행복할 거예요. 설아 씨는 애들이 설아 씨랑 살면서 고생 많이 했다고 생각해도 애들은 엄마랑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을 거예요.”아직 어리지만 아이는 무척이나 좋아하는 현이는 아들딸을 모두 둔 차설아가 부러웠다.그렇게 아름다운 가정인데 엄마가 시각장애인이 돼버렸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가슴 아플지 눈에 선해 현이는 또 가슴이 먹먹해졌다.“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집에... 모셔다드릴까요?”동정심이 차오른 현이는 차설아에게 앞으로의 생각을 물었다.“나 나갈 수 있어요?”그에 차설아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당연하죠, 설아 씨는 도련님한테 빛을 보게 해준 은인인데 하늘의 별을 따달라 해도 다 드려야죠. 자유를 원하시면 두말없이 보내드릴

  • 선 이혼, 후 집착   제1452화

    상대방이 악의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한숨 돌린 차설아가 말했다.“수술은 다 끝난 거죠? 잘 됐어요? 진이는 어때요? 이제 보인대요?”“언니가 그러는데 수술은 잘 끝났고 일주일 뒤에 실 빼면 도련님은 볼 수 있대요. 그런데 설아 씨는...”현이는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은 창백한 얼굴의 차설아를 보며 가슴 아파했다.“설아 씨는 앞으로 어떡해요...”“난 괜찮아요. 눈만 잃었지 죽은 것도 아니잖아요. 어떻게든 살아지겠죠. 세상에 시각장애인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 사람들도 잘살고 있잖아요.”자신의 상황이 더 고통스러울 텐데 차설아는 이 와중에도 현이를 위로해주고 있었다.그래서 현이는 그런 차설아를 보는 게 더 마음이 아팠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처음인 것 같았다.“요 며칠은 제가 잘 보살펴드릴게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드릴게요.”착하고 긍정적인 차설아를 보며 현이는 아까부터 마음속으로 수십 번도 넘게 감탄하고 있었다.이런 좋은 사람에게 가혹한 일이 생긴 게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그럼 나 부탁하나 있는데 좀 도와줄래요?”현이가 착한 사람이라는 걸 보아낸 차설아는 사양하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내 핸드폰으로 민이 이모한테 전화 좀 해줄래요? 며칠 동안 연락을 안 해서 아마 걱정하고 있을 거예요.”“알겠어요.”침대 머리맡에서 핸드폰을 찾아낸 현이는 차설아의 말대로 핸드폰 잠금을 풀고 ‘민이 이모’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자 상대방은 신호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아가씨, 왜 이제야 전화하세요! 어디 가셨던 거에요 그동안? 갈 만한 데는 다 찾아봐도 없어서 원이랑 달이가 얼마나 놀랐는데요.”민이 이모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목소리로 어제는 경찰서에 신고까지 했다고 말했다.“저 친구 집에서 놀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잘 지내고 있어요. 원이랑 달이는 잘 있어요? 통화라도 하고 싶은데.”“방금 일어난 것 같아요. 진짜 하루종일 아가씨 얘기만

  • 선 이혼, 후 집착   제1451화

    이틀 뒤, 차설아는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성진과 함께 별장의 무균 수술실로 들어갔다.“두 분은 수술대에 누워주세요.”안과 교수는 둘을 데리고 간단한 검사를 진행한 뒤 마취 테스트를 마치고는 간호사더러 그들을 수술대에 눕히게 했다.차설아는 검사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모자만 푹 눌러쓰고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수술대에 멍하니 누워있었다.엄청 큰 수술대 위에는 환한 전등이 아주 많이 달려있었는데 그것들이 하도 눈부셔서 차설아는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광환이 감긴 눈앞을 스쳐 지나가자 차설아는 그제야 자신이 지옥문 앞에 와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후회돼요?”그때 옆에서 성진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후회되면 지금이라도 가요.”“후회 안 해요.”하지만 차설아는 태연하게 웃으며 답했다.“눈 하나로 그렇게 많은 돈을 얻는데 제가 왜 후회하겠어요.”“그래요. 절대 손해 본다고 느끼지 않게 내가 달라는 거 다 줄게요.”성진이 확신에 찬 약속을 하자 마취제 배합을 마친 의사가 차설아와 성진을 향해 말했다.“이제 마취 시작할 건데 전신 마취라서 두 분 다 의식을 잃으실 거예요. 깨어나는 시간은 체질에 따라 다른데 일반적으로 3시간에서 6시간 사이로 의식 차리실 겁니다.”“네.”“시작해주세요.”“시작하시죠.”의사의 말에 차설아와 성진 모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자신의 등을 통해 약물이 주입되는 걸 느끼던 차설아는 빠르게 의식을 잃었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차설아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 알 수 있는 건 자신의 세상이 비로소 어두워졌다는 것이다.“거... 거기 누구 있어요?”처음 겪어보는 암흑에 심연에 빠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며 몸을 떨던 차설아는 허공에 대고 손을 저어보았다.“깨어났어요? 어때요, 눈은 안 아파요? 의사 선생님이 적어도 일주일은 있어야 상처가 다 낫는다고 하셨어요. 엄청 아프죠...”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박서영이 아님을 알아챈 차설아는 잔

  • 선 이혼, 후 집착   제1450화

    대단한 집안 아가씨가 평생 숨겨야 할 남자들에게 강간당한 일을 이렇게 수면 위로 꺼낸 건 다 진무열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였다.성도윤의 최측근이 진무열이 자신을 믿고 도와준다면 성도윤과의 관계발전도 아주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었다.“아가씨가 대표님을 그 정도로 사랑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어요...”모든 얘기를 들은 진무열의 마음에는 거센 파동이 일었다.성도윤을 향한 차설아의 사랑은 달빛처럼 부드럽고 깨끗하기만 하다면 서은아의 사랑은 뜨거운 태양처럼, 영원히 빛을 낼 것처럼 정열적이었다.둘 중에 어떤 사랑이 성도윤한테 더 맞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뜨거운 편이 나은 것 같았다.“서은아 씨랑 대표님 감정은 아직도 전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걱정은 마세요. 대표님이 요즘 바빠서 그렇지 서은아 씨 생각은 항상 하고 계세요. 바쁜 일만 다 처리하면 예전처럼 더 좋아질 거예요.”상태가 안 좋은 저를 위로하기 위한 말임을 눈치챈 서은아는 진무열을 노려보며 말했다.“지금 어린 애 달래요?”“도윤이가 누굴 생각하는지는 진 비서님이 더 잘 알잖아요. 그냥 잠깐 나를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뿐이고 나중에 기억 돌아오면 또 차설아한테 가버릴 건데... 그럼 나는 비서님 말대로 그저 해프닝, 변수가 되어버리겠죠!”“수술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만약 대표님이 기억해낸 게 서은아 씨와 보냈던 행복한 일상이면 서은아 씨를 선택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그럴 리가요. 도윤이랑 그 여자가 얼마나 깊이 얽혔는데 기억만 돌아온다면 내 자리는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그럼 서은아 씨는 뭘 원하는 거예요?”진무열은 울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서은아를 슬쩍 떠보듯 물었다.“도윤이 아직 다 나은 것도 아니고 뇌가 다친 적도 있으니까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일단은 그냥 놔두는 게 어떠냐는 말을 하는 거예요. 그냥... 이 수술 하지 말고 계속 기억 안 나는 채로 살아도 되는 거잖아요. 내가 진짜 잘할게요!”한시가 급했던 서은아는 이 수술을 원하지 않

  • 선 이혼, 후 집착   제1449화

    그 말을 들은 서은아는 표정을 굳히며 오만한 태도로 진무열을 바라보았다.“무슨 뜻이에요? 지금 도윤이에 대한 내 마음을 의심하는 거예요?”“아니요, 마음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정확히 말하면 대표님을 위해서 어떤 희생까지 할 수 있는지가 궁금한 거죠.”이기적이고 강압적인 보스라 할지라도 감정에서는 많은 시련을 겪었었기에 진무열은 서은아가 성도윤에게 정말 어울리는 짝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차설아 때문에 죽을 뻔했는데 만약 서은아도 이상한 마음을 품는다면 성도윤이 또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진무열이 걱정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도윤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나는. 목숨까지도 내어줄 거에요.”진무열의 말에 서은아는 입술을 깨문 채 힘들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그때 그 여자 오빠가 미친 사람처럼 도윤이 납치해갔을 때 내가 도윤이 구하려고 무슨 짓까지 했는지 진 비서님은 모르죠?”이 얘기는 처음 듣는 진무열은 호기심에 차 물었다.“무... 무슨 일을 겪었는데요?”“차설아 씨 오빠가 도윤이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비서님도 알죠?”“대표님과 자정 살인마가 오랫동안 싸우기는 했죠.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지나간 일은 다 잊고 잘 지내는 걸로 알고 있어요.”두 사람의 원한에는 깊은 관여를 하지 않고 가끔 조언을 해준 게 전부였기에 진무열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래도 둘 다 원한을 내려놓고 화해하는 게 서로에게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었다.성대 그룹의 고위 간부들은 이 기회에 자정 살인마를 제대로 눌러놔야 한다며 성도윤을 부추겼지만 성도윤은 결국 박성훈을 보내 차성철을 구해주며 그와의 화해를 선택했다.타인에게 장미를 건네면 내 손엔 그 잔향이 남는다고 그 인연으로 성도윤도 이번에 박성훈에게 수술받아 기억을 되찾을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이렇게 보니 마음을 곱게 쓰는 사람은 하늘도 굽어살펴 주는 것 같았다.“둘은 화해했지만 나는... 내가 받은 상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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