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 케이스요?”차설아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의사 선생님을 쳐다보았다.“배 속의 아이는 HCG 수치로 볼 때 쌍둥이인 것이 틀림없어요. 게다가 남아 한 명, 여아 한 명일 가능성이 가장 높네요...”의사는 긴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유전 요소를 배제하고 자연임신을 할 경우, 쌍둥이일 확률은 0.5% 밖에 안 되고 아들·딸 이란성 쌍둥이일 확률은 0.01% 밖에 안 됩니다. 그 말은 즉, 환자분의 아이들은 0.01%의 확률로 생긴 소중한 생명이란 말입니다. 정말 수술을 강행하실 건가요?”“아... 아들·딸 이란성 쌍둥이요?”차설아는 검사 보고서를 보며 착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그리고 환자분은 쉽게 임신이 잘 안될 체질이시기 때문에 이 아이들을 지우시면 다시 임신하기 매우 어렵다는 게 제 소견입니다. 다시 한번 심사숙고해 보는 게 어떠실까요?”의사가 말을 마치고 문밖을 보며 말했다.“다음 환자 들여보내 주세요.”간호사가 차설아 앞으로 다가와 절차대로 물었다.“수술하기로 하셨으면 저를 따라 옷을 갈아입으러 가셔야 합니다.”한참 후, 차설아는 수술복을 입고 멍한 표정으로 수술대에 누워있었고 수술대 위에 설치된 무영등은 밝게 켜져 있었다....밤공기가 매우 쌀쌀했다. 차설아는 병원에서 돌아온 후, 어제 배경윤과 한잔했던 포장마차에 다시 왔다. 그녀는 답답한 마음을 술로 달래고 싶었지만, 툭 던진 것은 역시 그 말뿐이었다“사장님, 두유 한 잔과 호박죽 한 그릇 주세요.”그녀는 끝내 아이를 지우지 못했다. 한 아이의 생명인 줄 알았을 때도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다. 하지만 이제 두 아이의 생명이라고 하니, 그녀는 도저히 독하게 마음을 먹을 수 없었다.수술을 시작하려던 순간, 그녀는 비틀거리며 수술대에서 뛰어내려 허둥지둥 도망쳤다.“아가들아, 하늘에서 엄마, 아빠를 고를 때, 잠깐 딴짓이라도 한 거야? 딱해서 어떡해, 내 새끼들... 이 한 잔은 너희들의 아빠 없는 인생을 위하여!”차설아는 아이들을 몰래 낳기로
‘뭐지...’차설아는 갑자기 나타난 남자의 든든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어떻게 이런 곳에 그것도 정확한 타이밍에 나타난 거지, 설마 몰래 미행했던 건 아니겠지?’십여 명의 건달들은 성도윤의 타고난 강한 기세에 겁을 먹고 잔뜩 경계하는 자세를 취하며 전전긍긍했다.“너... 너 누구야, 죽고 싶지 않으면 쓸데없이 참견하지 마!”“내가 누구냐를 따질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너희가 먼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으니 대가를 치러!”성도윤의 목소리는 위엄이 넘쳤다.“또 한 명의 무법자가 나타났구나!”김상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나 김상철이 이 구역에서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건방을 떠는 것이냐? 다들 뭐 하는 것이냐, 죽여!”김상철의 말이 떨어지자, 열댓 명의 건달이 쇠 파이프를 휘두르며 흉악한 얼굴을 하고 성도윤과 차설아를 향해 달려들었다.주변에서 식사 중이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머리를 감싸 쥐며 사방으로 도망쳤다.성도윤은 경계하며 차설아를 자기 몸 뒤로 잡아당기며 말했다.“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눈 감고 있어봐, 금방 끝내줄게.”말하면서 그는 기습하려고 타이밍을 노리던 망나니 한 명을 아주 멀리까지 걷어찼다.‘어쭈, 대단하네!’차설아는 무서운 척하며 얌전히 성도윤의 뒤로 숨었다. 평소에 쌀쌀맞기만 하고 점잖은 척만 하던 성도윤이 의외로 다부진 몸을 갖고 있었다. 격투기 선수들 사이 끼어 있어도 전혀 밀리지 않을 피지컬과 실력이었다.이상해할 것도 없었다. 해안시 8대 명문가의 톱인 성씨 집안에서 귀한 도련님 신분으로 자란 성도윤은 어릴 때부터 승마, 바둑, 격투기 등을 배웠기에, 아주 자연스럽게 모두 수준급 이상의 실력을 갖게 되었다.“아!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얼마 지나지 않아 십여 명의 건달들이 모두 굴복하고 엎드렸고 아수라장이 된 현장엔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오늘 교훈을 명심하고, 앞으로 이 여자에게서 멀리 떨어져!”성도윤은
성도윤이 깨어났을 때, 그는 머리에 흰 거즈를 두른 채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했다.차설아는 줄곧 초조한 마음으로 병상 곁을 지키다가 성도윤이 눈을 뜨는 것을 보고 나서야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녀는 냉담하게 한마디 툭 던졌다.“깨어난 것까지 확인했으니까 이만 가볼게.”그녀는 지금까지 초조한 마음으로 성도윤의 상태를 살폈지만 절대로 그가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됐다.차설아가 떠나려고 하자, 성도윤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물었다.“넌 어때, 괜찮아? 다치진 않았어?”성도윤은 아직도 머리가 띵하고 눈앞이 몽롱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성도윤은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떠나려는 차설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차설아는 코웃음을 지었다.“도윤 씨가 내 걱정을 다 해주다니, 당신 몸이나 먼저 걱정하는 게 어때? 난 전혀 문제없어!”그녀는 성도윤을 4년 동안 사랑했었다. 한때 그녀가 꿈에서라도 받고 싶었던 관심이었지만 더 이상은 필요가 없었다...성도윤은 차설아의 냉랭한 반응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그 건달들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을 텐데, 너 같은 연약한 여자가 어떻게 그들에서 도망친 거야?”“그게 말이야...”차설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직접 주먹으로 한 명씩 때려눕혀 그들을 무릎 꿇고 용서 빌게 만들고 나서 성공적으로 빠져나왔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대답하기 어려운 거라도 있어?”성도윤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그녀가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에 답하는 것도 아닌데 꾸물거리며 대답을 못 하는 차설아를 이해할 수 없었다.차설아는 성도윤과 눈을 마주쳤고 엑스레이처럼 쏘아대는 성도윤의 눈빛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물었다.“성씨 가문 둘째 도련님의 이름을 댈 수밖에 없었어. 해안시 제일 명문가 성씨 집안의 후계자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무릎 꿇고 빌던데...”그 이유는 상
“뭐야, 눈 똑바로 뜨고 다녀!”소영금은 부딪혀 아픈 이마를 문지르며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다. 이어서 차설아인 것을 확인한 후에는 더욱 펄쩍 뛰었다.“이 재수 없는 년이 왜 여기 있는 거야? 너를 만난 뒤로 우리 도윤이가 아주 되는 일이 없잖아!”차설아는 냉랭하게 웃으며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정말 죄송하네요, 눈꼴 시려도 20일만 더 참아주세요.”“무슨 뜻이야?”소영금은 거만하게 머리를 쳐들고 시큰둥하게 물었다.“너를 믿으라고? 20일 후에 어디 하늘나라라도 가려는 거야?”“하늘나라로 갈 재주는 없습니다만...”차설아는 계속해서 예의를 잃지 않고 도도한 미소를 지었다.“20일 뒤에 이혼서류를 접수하면 당신 아들이 무릎 꿇고 사정해도 성씨 집안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겁니다. 어머님 눈앞에 알짱거릴 일은 없을 거예요.”“너, 너 이년..."소영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차설아를 쳐다보았다.어찌 된 일인지, 그녀의 손아귀에 잡혀 매사에 고분고분하던 며느리는 온데간데없어지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난 것 같았다.“감히 이런 태도로 나한테 꼬박꼬박 말대꾸하다니?”“못할 건 또 뭐예요?”소영금의 태도에 차설아는 이미 적응된 지 오래였다. 예전에는 성도윤의 어머니이자 자기에게도 시어머니이니, 매사에 참고 넘어갔지만 이제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어머님이 이런 태도로 저한테 말씀하시면 저도 똑같은 태도로 답하려고요. 그러니 어머님 태도부터 돌아보세요.”“난리 났네, 난리 났어!”소영금은 화가 극에 달해 손을 치켜들면 차설아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성도윤은 소리 없이 침대에서 내려와 소영금의 팔을 움켜쥐고 차갑게 말했다.“엄마, 그만 좀 해요.”소영금은 그제야 애지중지하는 아들의 머리에 칭칭 감겨있는 흰 거즈에 아직도 선홍색의 핏자국이 배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이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도윤아, 어떻게 된 일이야? 피만 보면 어지럽고 구토하는 애가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거야? 네 형이 간 지 얼마나 됐다고 너
차설아는 병원에서 리버 뷰 아파트 대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노트북을 꺼냈다.그녀가 ‘타닥타닥’하고 잠깐 노트북을 두드리자, 며칠째 성대 그룹을 공격했던 바이러스 프로그램이 종료됐고 성대 그룹 고객 시스템도 정상으로 복구되었다.SNS에서 끊임없이 퍼지고 있던 부정적인 여론이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갈팡질팡하던 성대 그룹의 주가도 점차 안정되었다.“보스, 어떻게 된 일이죠? 이제 좀 재미를 보려던 참이었데, 말도 없이 끝내버리는 법이 어디 있어요?”배경수가 즉시로 전화를 걸어왔고 잔뜩 가시가 돋친 말투로 따져 물었다.“성대 그룹의 등골을 빨아먹기로 약속했던 거 아닌가요? 설마 성도윤한테 미련 남아서 마음이 약해진 건 아니겠죠?”요 며칠 동안 성대 그룹은 고객 시스템이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고객 정보가 계속 유출되는 이슈에 직면했다. 몇몇 협력업체들은 화가 나서 성대 그룹과의 협력을 취소하고 새로운 회사와 계약을 맺었다.그들이 협력하기로 한 새로운 회사는 배경수가 바지 사장으로 있었지만 실제로는 차설아가 전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현재로서 이 회사는 이미 일정한 규모를 갖춘 상태였다.이렇게 빨대를 꽂다가 말게 된 상황에 이르자, 배경수는 단번에 눈치챘다. 그는 분명히 마음 약한 차설아가 성도윤에게 또 한 번 자비를 베풀려는 것임을 알아챘다!차설아는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흔들며 창밖의 리버 뷰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원하던 걸 이미 달성했으니 계속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미련이 남았다고 해요, 핑계 대지 말고요!”배경수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4년 동안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남자를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차설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칼에 잘라낼 수 있을 만큼 무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성도윤이 그녀를 지키기 위해 맥주병에 머리를 맞은 그 순간, 그녀는 또 한 번 마음이 약해졌다.“마음이 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
차설아는 입술을 일자로 앙다물며 담담하게 말했다.“당황할 것 없어요.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어떤 장면이 펼쳐지든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턱을 들어 올리고 우아한 백조처럼 성도윤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역시나 집무실에는 임채원이 와있었다.임채원은 성도윤의 품에서 애교를 부리다가 차설아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설아 씨, 오해하는 거 아니지? 방금 나랑 도윤이는 단지..."“해명할 필요 없어.”차설아는 개의치 않다는 듯이 손을 휘저으며 임채원의 옆에 앉아있는 성도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짜고짜 본론을 말했다.“도윤 씨, 데이트 중인 것 같은데, 방해해서 미안해. 이혼 합의서를 받으러 온 거야. 어서 줘, 바로 갈 거니까.”성도윤은 무심한 척 책상에 기대며 다리를 꼬고 태연하게 물었다.“아... 급해?”“뭐라고?”‘말이야? 방귀야?’차설아는 당장 달려가 발차기를 날리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그럼 안 급하겠어?”“20일 정도 남았잖아. 천천히 해도 되는 거 아닌가?”성도윤이 진지하게 물었다.“뭐라고?”차설아는 주먹을 불끈 쥐고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릴 기세였다.‘맥주병에 머리를 맞더니 제정신이 아닌 거 아니야? 이혼 합의서를 내밀며 그날 밤으로 집에서 나가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급하냐고?’“도윤 씨, 언제부터 이렇게 유머러스했어?”차설아는 임채원의 볼록한 배를 짚으며 비꼬듯이 말했다.“채원 씨의 배 좀 봐. 당신은 급할 것 없을지 몰라도 채원 씨는 순간마다 급할 거야. 얼른 서명하고 끝내면 모두가 맘 편히 지낼 수 있지 않겠어?”성도윤도 지지 않고 그녀를 비꼬며 말했다.“어머, 내 전처가 이렇게나 이해심이 깊은 사람인지 이제야 알았네, 좋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되니 오히려 놓아주기가 아쉬운걸?”성도윤의 말은 차설아와 임채원을 동시에 당황하게 했다.차설아는 주먹을 꽉 쥐더니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 질렀다.“성도윤, 너 대체 뭐 하자는 거야!”애초
결혼한 지 4년이 지났지만 그들이 이렇게 가까이에서 서로를 마주한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뜨거워졌다.차설아의 볼은 약간 발그레해졌고 그녀는 숨이 가빠졌다.“맞아. 도윤 씨가 축복해 줬으며 좋겠어, 내가 그랬듯이.”성도윤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누군데? 배경수? 내 기억엔 너보다 세 살이나 어렸던 것 같은데?”그의 말에 차설아는 기분이 언짢아졌다.‘그래서 뭐? 지금 나를 나이 많은 아줌마라고 돌려 까는 거야? 남자는 자기보다 열댓 살 어린 여자를 만나도 아무 말 하지 않으면서 여자는 한두 살 어린 남자를 만나면 지적받아야 되는 거야?’“세 살 어린 게 뭐가 대수라고, 연상연하 커플이 대세인 거 몰라? 누나라고 부를 때마다 심장이 떨린다니까.”“연하를 만나는 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니잖아, 배경수는 안돼.”성도윤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남자를 만나도 여기저기 알아보고 만나, 배경수가 밖에서 방탕한 도련님으로 소문난 거 몰라? 너처럼 순진한 여자는 감당할 수 없어.”“뭐라고?”차설아는 성도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곧 이혼할 사이에 그녀가 누구를 만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도도한 성도윤이 갑자기 시장 아줌마처럼 오지랖이 넓네...’“감당이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난 카사노바가 끌려! 얼마나 섹시해?”차설아는 성도윤과 더이상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았다.“바쁘신 몸인데, 시간 그만 끌고 얼른 서명해서 줘. 이혼 합의서가 사라진 거면 지금 출력해올게.”차설아는 휴대폰을 꺼내 다시 출력해올 기세를 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다급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성도윤은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났다.물론 그들 사이에 사랑 같은 감정이 없었다지만, 어쨌든 4년 동안 부부로 지내온 세월이 있었기 때문에 성도윤은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그녀를 빼앗기는 느낌이 들어 다소 기분이 언짢아졌다.“내가 서명 못 해주겠다고 한다면?”성도윤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서
“여보, 어쨌든 우린 4년 동안 살을 부대끼며 살아온 부부잖아, 당신이 바람을 피웠다고 해도 나는 당신을 탓하지 않을 거야. 난 당신을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사랑했기 때문이야. 단지 부탁 하나 했을 뿐인데, 이렇게 매몰차게 나를 내치지 말아 줘... 내가 과한 것을 바란 것도 아니잖아. 당신 명의로 된 것들 중에서 가장 값어치 없는 한 법률사무소 하나 달라고 했을 뿐이야. 내가 길거리에 나앉아 구걸하다가 굶어 죽는 꼴이라도 보려는 거야? 당신을 사랑해서 놓아주는 거야. 내가 당신과 상간녀 사이에서 이만 물러나고 묵묵히 떠나 멀리서나마 축복해 줄게!”차설아는 불꽃 연기를 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녀는 억울하게 버림받은 현모양처를 연기하여 지켜보던 사람들의 연민을 자아냈다.라이브 방송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감정도 덩달아 격해졌고 순식간에 많은 실시간 댓글이 달렸다.“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네, 성도윤은 역시 소문 그대로였어!”“이런 쓰레기는 마땅히 끌고 나가 총살해버려야 해. 위자료로 법률사무소 하나 달라고 했다니, 너무 쉽게 놔주는 거 아닌가!”“쓰레기 같은 한 쌍이네, 상간녀는 지옥 불에 떨어져라!”“오늘 당장 팬클럽 탈퇴할 거야! 성도윤이 이처럼 추악한 마음을 가졌다니, 조각 같은 얼굴이 아깝네!”성도윤은 얼굴빛이 어두워졌다.그는 차설아가 무슨 수로 성대 그룹 공식 계정에 로그인했는지 따져 물을 겨를이 없었고 그저 빨리 이 모든 상황을 종료하고 싶었다.“당장 꺼!”성도윤이 이를 악물고 명령했다. 궁지에 몰린 차설아가 고분고분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휴대전화 카메라를 성도윤에게 겨누며 시청자들에게 하소연했다.“여보,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나를 원망하지 마. 나도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이런 식으로 담판 지으려는 거야! 부모님 모두 돌아가신 마당에 난 아무런 권력도 힘도 없어. 당신들 성씨 집안의 상대가 안 된다는 말이야.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정의로운 네티즌들의 도움을 청할 수밖에...”그녀의 뜻은 성도윤이 이혼
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서씨 가문 서은아였다. 서은아는 그동안 차설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설아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성철이 있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사에게 돈을 쥐여주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수술을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차성철은 살짝 다쳐도 부서질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서은아는 병실 침대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작은 물건을 차성철 베개 옆에 올려놓고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해.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당신 여동생도 기가 죽어서 나대지 못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박성훈이 와서 당신을 살렸지 뭐야? 성도윤이 박성훈한테 부탁한 거라면서? 정말 어이가 없더라. 보나 마나 차설아가 성도윤한테 부탁한 거겠지. 뻔뻔스러운 년이...”서은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날 탓하지 마. 탓하려면 그 못난 여동생을 탓해. 차설아는 내가 성도윤과 약혼한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성도윤한테 달라붙으면서 날 괴롭혔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오빠인 당신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서은아는 말을 마친 뒤, 감시 카메라를 피해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앉아 있던 차설아는 바람이 포장한 음식을 보면서도 어쩐지 불안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이야. 다른 식당에서 하는 건 눅눅해서 맛없지만 이 식당에서 하는 건 바삭하잖아. 바람 씨가 널 위해서 사 온 건데, 한 입이라도 먹어 봐.”배경윤은 불안해하는 차설아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바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이 식당에 줄을 서려고 아침 일찍 깨어났어. 하지만 스파크가 좋아하는 거라면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사러 가야지.”바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피식 웃었다. 그동안 차설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쯧쯧. 바람 씨한테 설아를 맡겼다가는 뚱보가 되겠어. 한 달 안에 10킬로 찐다는 것에 내 머리카락을 걸겠어.”“스파크는 살이 쪄도 예뻐서 괜찮아. 지금처럼 귀여울 거
배경윤은 박성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박성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데려온 의사라는 말에 성도윤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경계했다.“경윤아, 그러지 마. 박 선생님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분이야.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씨 가문의 은인이 될 분이거든.”차설아는 다시 일어나더니 박성훈한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박 선생님, 죄송해요. 경윤이는 늘 저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는 예민하게 굴거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병원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만나본 보호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반응이거든요. 저는 이해해요.”박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 말고 성 대표님께 고맙다고 해야죠. 저는 수술할 생각이 없었는데 성 대표님이 간절하게 부탁했고 제가 좋아하는 바다낚시까지 같이 해주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바다낚시 내기에서도 졌으니 성 대표님 말대로 수술해야 했어요.”“성도윤이 어렵게 모신 분인 건 알고 있었어요. 나중에 오빠가 깨어나면 인사하려고요.”“잘 생각했어요.”박성훈이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이었다.“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힘들 거예요. 사실 생각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으니 마음 편안하게 먹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박성훈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오후 4시라서 박성훈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배경윤은 차설아가 또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밥부터 먹자.”“괜찮아. 난 배고프지 않아.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오빠가 일어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차설아는 병실 밖에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차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그 나쁜 놈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차설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래도 도움받았잖아.”“아...”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머뭇거렸다. 차설아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고는 목적, 증언, 사건 발생 시간으로 보았을 때 성도윤이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성도윤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꺼냈다가 차설아와 성도윤이 싸우게 된다면 손해 보는 건 차설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성도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설아야, 그저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성도윤을 너무 믿지 마. 성도윤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진심을 드러내지 말고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지?”배경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나도 알아. 지금까지 성도윤을 용서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빠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성도윤이 떠올라서 화가 솟구쳐 오르거든... 성도윤이랑 잘 해볼 생각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의사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수술실을 바라보면서 말했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눈에 핏줄이 가득 서렸지만 차성철이 나올 때까지 쉴 수 없었다. 성도윤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설아의 마음이 아팠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애매모호한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더 이상 그 사람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알지만 항상 경계해야 해. 그 사람이 얼마나...”“알겠어. 곧 수술이 끝날 테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자.”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었다.“그래. 같이 기다려보자.”배경윤은 슬픔이 가득 서려 있는 차
사도현은 턱을 쳐들더니 거만하게 말했다.“내가 바로 배경윤 남자 친구예요.”사도현의 말에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회사 대표가 당당하게 공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뭐?”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 사도현이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예상 못했는지 사도현을 향해 부르짖었다.“사도현, 너 정말 미친 거야?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영 오빠 앞에서 공개하다니... 정말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내 미래의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알려주려고 작정한 거야!’“내 말이 틀렸어? 우리 사귀는 사이 맞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온 첫 번째 날에 어떻게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잤겠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사도현이 피식 웃더니 부르짖는 배경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제야 자신의 것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 그건...”배경윤은 말문이 막혔다. 설명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것 같아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진찬영이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두 사람이 한방에 들어가는 것이 사귄다는 증거라면, 사도현 씨는 배경윤 씨가 아니라 윤설 씨의 남자 친구인 것 같은데요? 윤설 씨 곁을 떠난 적이 없잖아요. 도대체 두 분 중에서 누구의 남자 친구인지 헷갈리네요. 아니면 두 분을 속여서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닐까 싶어요.”진찬영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그러고는 도덕적인 면에서 사도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맞아요! 같은 방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날에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외양간에서 자기 싫었거든요. 그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윤설 씨랑 사도현 씨 사이는 각별했어요. 정성을 다해서 보살핀 여자랑 사귀는 것 같은데 왜 나를 언급하고 난리야! 난 너처럼 미친놈이랑 사귈 바
그 말을 들은 장윤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윤태가 다급히 뜯어말렸다.“집에 갈 정도로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죠! 그런 설정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찬영이도 커플 설정을 원하지 않을 테니 강요할 수 없었거든요. 다들 장난치는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장윤태는 게스트들이 말하는 커플 중 한 쌍이 진찬영과 배경윤임을 확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진찬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장 감독님,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배경윤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개인적인 일로 해안시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 프로그램 촬영하는 동안 정말 재밌었어요. 게다가 찬영 오빠랑 커플로 촬영할 수 있다고 하면 더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해요.”“잘생긴 남자라면 다 좋아하나 보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혼자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장윤태는 배경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재빨리 다른 제안을 했다.“급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곧 연애 예능 촬영이 있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우리 찬영이랑 같이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을래요?”“좋아요!”배경윤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진찬영과 함께 촬영할 수 있다면 무슨 프로그램이든지 무조건 출연할 것이다. 진찬영과 떨어지려니 아쉬웠지만 돌아가서 차설아의 곁을 지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작별 인사를 했다.“배경윤 씨랑 같이 출연한다면 저도 좋아요.”진찬영은 배경윤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진찬영은 배경윤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 마을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배경윤이 있는 곳에 꼭 따라갈 것이다.“그럼 두 사람이 사인한 계약서 말고 다른 계약서를 준비할 테니 이제 만나서 얘기해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으면 이 프로그램 계약서대로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장윤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술을 마시면서 껄껄 웃었다.“안 돼요.”사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배경윤은 너무 바빠서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배경윤
사도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누가 진찬영을 밀어주든지 상관없이 배경윤에게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재벌가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윤설 씨가 사도현 씨한테 빌붙어서 드라마 여주인공 역만 맡는 것처럼요?”진찬영이 말을 이었다.“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사도현 씨랑 같은 줄 알고 섣불리 판단할 수밖에 없겠죠. 더 이상 의미 없는 대화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진찬영이 가마뚜껑을 열어보자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추어탕 안에 청양고추를 넣으니 배경윤이 좋아하는 매콤한 추어탕이 완성되었다. 사도현이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할 때, 진찬영이 추어탕을 옮겨 담고는 주방을 나섰다. 사도현은 불을 피우면서 흘러나오는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두 남자의 대결은 사도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여러분, 오늘 메뉴는 추어탕이에요! 어서 드셔보세요!”진찬영은 환하게 웃으면서 쉬고 있던 게스트들을 불렀다. 배경윤은 터벅터벅 걸어 나와서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진찬영이 해준 밥을 먹어서 기쁘긴 했지만 웃을 힘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진찬영은 직접 국을 떠주면서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고 다시 생각해요. 배경윤 씨를 위해 만든 건데, 한 입도 먹지 않으면 좀 속상할 것 같거든요.”“아, 죄송해요. 생각할 게 많아서 신경 쓰지 못했어요.”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추어탕을 먹기 시작했다.“먹어봤던 추어탕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당연히 그렇겠죠. 추어탕에 진찬영 씨의 사랑이 가득 들어갔으니 맛없을 리가 없잖아요. 우리 같은 구경꾼들은 배경윤 씨가 부러워 죽겠다니까요!”“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직접 미꾸라지를 손질했다니깐요. 보통 정성이 아니에요! 그 여자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맛있는 추어탕을 먹어보네요.”추어탕을 맛보던 게스트들이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진찬영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들으면서 배
윤설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나는 그렇다고 한 적 없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더 알려줄 것도 없고요. 정말 궁금하다면 의심 가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세요.”배경윤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미 배후가 밝혀진 마당에 더 캐묻는 건 멍청한 사람이나 할 짓이었다. “그리고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요. 도현 씨랑 성도윤은 생사를 함께 겪은 형제이니 도현 씨를 멀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도현 씨는 성도윤 편을 들 테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차성철이 수술했다는 것을 성도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게다가 성형외과 의사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윤설은 배경윤의 반응을 지켜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성도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성도윤이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 연관된 일이긴 하지만 그게 결국 성도윤의 일이 되는 거지. 난 사실만 말했으니 아무 잘못도 없어. 배경윤, 이제는 도현 씨 곁에서 떨어져!’“난 성도윤이 그런 일을 벌일 줄 알았어요!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라고...”윤설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모든 것이 성도윤과 연관된 일이라고 확신했고 사도현이 성도윤을 도와주었다고 여겼다. ‘계속 여기에 남아있어서는 안 돼. 얼른 해안시로 돌아가서 설아한테 알려줘야지. 그놈 때문에 또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어! 설아야, 조금만 기다려줘!’주방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은 두 남자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진찬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올린 채 두부를 썰었다. 집중하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있어서 여자든 남자든 진찬영에게 반하고 말 것이다.하지만 부뚜막 앞에 앉아 불을 피우고 있는 사도현은 진찬영을 노려보기에 바빴다. 사도현은 장작을 진찬영의 팔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토막으로 끊이고 불 속에 집어넣더니 차갑게 말했다.“우리 둘밖에 없으니 솔직하게 말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예요? 돈 때문이라면 원하는 만큼 줄 테니 말해봐요. 얼마면 되
배경윤은 윤설이 단둘이 얘기하자는 말에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하지만 이 일은 차설아 친오빠의 목숨과 연관된 일이었기에 윤설의 의도를 알면서도 함정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내 방으로 가서 단둘이 얘기해요.”배경윤은 앞장서서 사도현과 지냈던 방으로 들어갔다. 박지영은 윤설을 방까지 부축한 뒤, 재빨리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윤설은 울퉁불퉁한 방바닥, 구멍이 난 천장과 낡아서 당장이라도 망가질 것 같은 침대를 보면서 말문이 막혔다.윤설은 미묘한 감정이 들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도현 씨랑 이런 방에서 같이 지낸 거예요?”“네. 침대도 푹신하고 공기가 좋아서 잘 잤어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배경윤은 윤설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이런 말을 먼저 꺼낼 줄 몰랐다. 사도현은 배경윤과 같은 침대에서 잤지만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윤설 곁을 지켰다.‘이런 것까지 질투하는 건가?’“쓰레기 소각장 같은 곳에서 도현 씨가 지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요. 도현 씨는 결벽증 때문에 이런 곳에서 자지 못했을 거라고요.”“쓰레기 소각장이라고요?”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렸다.“이 방이 아니면 외양간에서 소랑 같이 자야 하거든요. 이 정도면 꽤 좋은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윤설 씨가 결벽증인 것 같아요.”“도현 씨가 배경윤 씨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맞네요. 배경윤 씨를 위해서 이런 누추한 방에서 자고 더러운 진흙으로 들어가 배경윤 씨를 안아 들다니... 내가 배경윤 씨를 얕잡아 봤네요.”윤설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배경윤은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입을 열었다.“본론만 얘기하세요. 배후가 누구기에 성형외과 의사한테 전화하게 된 거죠?”“말해도 배경윤 씨가 할 수 있는 건 없을걸요?”윤설은 차갑게 웃더니 거만한 눈빛을 하고서 배경윤을 훑어보았다. 배경윤이 목을 치려고 하는 배후는 손을 뻗을 수도 없을 만큼 높은 곳에 있었다.“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 하더라도 알 건 알아야겠어요. 더 휘말리고 싶지 않다면 배후가 누구인
게스트들은 사도현의 표정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불을 피우러 가는 게 아니라 사람을 죽이러 가는 것 같은데요?”옆에서 듣고 있던 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네가 불을 피운다고?”그러고는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너처럼 귀하게 자란 도련님들은 장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잖아. 그런데 불을 피우다니, 네가 듣기에도 웃기지 않아?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주방에서 나오는 게 도움이 되겠어.”배경윤은 불을 피우고 진찬영이 요리할 때 옆에서 도와주려고 했다. 그런데 사도현이 갑자기 끼어들어서 몹시 당황했다.‘사도현은 왜 자꾸 끼어들려고 하는 거야! 찬영 오빠랑 같이 경운기를 타려고 할 때, 찬영 오빠랑 미꾸라지를 잡을 때, 찬영 오빠랑 같이 요리하려고 할 때 계속 방해만 하잖아. 명색이 엔터테인먼트 대표라는 놈이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 거야?’“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불 피우는 건 다 거기서 거기 아니야? 아니면 여자가 옆에 있어야 요리할 수 있다는 건가? 세상에 그런 바보가 있을 리가 없잖아.”사도현은 팔짱을 낀 채 진찬영을 쳐다보면서 배경윤한테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사도현의 의도가 무엇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사도현은 일부러 진찬영을 저격했다.“너 자꾸 함부로 말할 거야?”배경윤은 화가 나서 사도현을 노려보았다. 팬으로서 누군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여우 같은 놈, 여자가 없으면 요리를 못하는 놈이라고 욕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괜찮아요.”진찬영이 피식 웃더니 배경윤의 팔목을 잡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는 배경윤 씨가 옆에서 보고 있어야 안심이 되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그럴 능력도 없으면서 혼자 하겠다고 설치다가 일을 망치던데요?”진찬영은 사도현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래도 사도현 씨께서 불을 잘 피울 수 있다고 하셨으니 믿어야죠. 다들 쉬고 계세요. 다 되면 알려드릴게요.”진찬영과 사도현은 주방으로 들어가서 아무 말 없이 각자 할 일을 했다. 마당에 앉아 있던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