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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Author: 배시아
성대 그룹.

우뚝 솟은 건물 내부에 감도는 저기압 때문에 사람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꼬박 이틀이 지났는데, 어떻게 아직 범인이 누구인지 단서를 못 찾는단 말입니까? IT팀 직원들은 밥만 축내는 사람이에요?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고작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됩니까? 고객 정보가 지금도 외부로 유출되고 있는데, 얼른 이 사태를 수습하지 않으면 성대 그룹은 해안시의 웃음거리가 될지도 몰라요. 그때가 되면 다들 가차 없이 잘릴 줄 알아요!”

진무열의 호통에 하늘 높이 뻗은 건물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그는 성도윤의 믿음을 한 몸에 받는 비서로서 회사의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했다.

이틀 전 성대 그룹 업무 시스템이 알 수 없는 바이러스 프로그램의 공격을 받은 이후로 그는 100명에 가까운 IT팀 직원들과 여태껏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실장님, 말은 바른대로 하자면 저희가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넘사벽이라서 그래요. 범인의 IP 주소가 랜덤으로 계속 바뀌는데 세계 각국이라서 당최 추적할 방법이 없습니다.”

IT팀 팀장 강민호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계속해서 총대를 메고 말했다.

“실장님도 아시다시피 성대 그룹 IT팀은 해안시 IT업계 거물이 전부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요. 저희마저 속수무책이면 해결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이때, 구석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사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린 사람들은 검은 테 안경을 쓴 청년을 발견했다.

“무슨 방법인지 얼른 얘기하지 않고 뭐 해요?”

진무열이 조급한 듯 얼른 말을 보탰다.

청년은 검은 테 안경을 고쳐 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해결 방법인즉슨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예요. 3일만 더 기다리면 바이러스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제거될 테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죠?”

진무열은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IT팀 별종들을 혼내려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계속해요.”

회의실 상석에서 성도윤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볼펜을 돌리고 있었다.

불같이 화내는 진무열과 달리 남자의 무심한 모습은 마치 폭풍전야처럼 압박감이 몰려왔다. 그가 있는 곳이라면 사람들은 감히 찍소리도 못했다.

청년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제 분석에 따르면 이 코드는 저의 우상, 즉 해킹계의 지존인 ‘스파크’의 스타일과 흡사하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IT팀 직원들은 두 눈을 반짝이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서로 의논하기 바빴다.

“스파크 장난 아니잖아요. 그가 만들어 낸 바이러스 프로그램은 아무도 제거할 수 없죠. 게다가 깊이 파고들수록 버그가 더 많이 생겨요. 하지만 뚜렷한 특징이 있는데, 바로 5일 동안만 실행하고 자동으로 종료한다는 점이죠.”

“그리고 스파크에 대한 소문도 무성해요. 천재 소년이라는 말도 있고, 50~60대 아저씨라는 말도 있지만 아무도 그의 실체를 모르죠.”

“그런데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지 않았어요? 왜 갑자기 나타났대요? 게다가 성대 그룹을 노리다니? 너무 재수 없는 거 아니에요?”

‘재수?’

성도윤은 그날 병원에서 차설아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이 여자가 신내림이라도 받았나? 귀신같이 맞출 줄이야.

대충 짐작하건대 이번에 성대 그룹은 적어도 6천억 정도의 손실이 났으니 재수 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스파크?”

성도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술을 달싹였다.

이때, 갑자기 승부욕이 화르르 타올랐다.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싸늘하게 말했다.

“무열아, ‘스파크’라는 사람을 찾아내면 상금 2천억을 주겠다고 소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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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윤의 반응에 차설아는 깜짝 놀랐다. 그녀도 자신의 말이 지나쳤다는 걸 깨달았다.“미안해요. 저는 그냥 도윤 씨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았으면 해서...”차설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아는 성도윤은 아주 대단한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먹이 사슬의 최고점에 서 있는 존재였다. 그런 그가 사소한 감정에 휘둘려 무너져 버리면 그녀는 가슴이 너무 아플 것 같았다.무엇보다도 성도윤이 가장 후회할 거라는 것을 아는 차설아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녀는 그 순간을 보고 싶지 않았다.“후회할지 말지는 내 선택이야. 나는 이제 어른이고 나한테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잘 알아.”성도윤은 불만을 억누르려 애쓰며 크고 따뜻한 손으로 차설아의 손을 덮었다.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우리의 관계는 진짜 유리 조각인 것 같아. 햇빛 아래에서 보면 맑고 아름답지만 쉽게 깨지는... 그래서 우리 둘이 함께 지켜나가야 해. 나는 우리가 힘들게 찾은 이 행복이 산산조각 나는 걸 원하지 않아. 그러니까 날 믿어주면 안 돼?”“더 이상 뭐라 하지 않을게요. 무슨 일이 생기든 함께 맞서면 되니까요.”차설아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성도윤을 다독이는 듯했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다.사실 가장 힘든 건 성도윤이 아니라 차설아였다. 만약 예전처럼 멀쩡한 두 눈을 가지고 있었다면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도윤이 큰 위기에 처하더라도 자기가 든든한 버팀목으로 되어주면 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하지만 지금 차설아는 성도윤에게 그저 짐일 뿐이었다. 그를 도와줄 힘도 없으면서 부담만 늘려 가는 것 같아서 그녀는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 자꾸 포기하고 싶어졌던 것이다.“네가 뭘 두려워하는지 알지만 걱정하지 마. 그런 날이 오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니까.”성도윤은 차설아를 품에 안으며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그렇게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그러다가 성도윤은 깊은숨을 내쉬고 차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뭔데

  • 선 이혼, 후 집착   제1533화

    차설아는 테이블 위에 놓인 꽃다발을 안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이거 장미예요? 향이 정말 좋아요. 분명 아주 생생하고 예쁠 거예요.”“지나가다가 너랑 참 잘 어울리는 장미가 보여서 샀어. 예쁘잖아.”성도윤은 아낌없이 달콤한 말을 건넸다.“도윤 씨 너무 많이 변한 거 아니에요? 열 마디 중 아홉 마디가 사랑 고백인데요? 예전 같았으면 이런 말은 일 년에 한 번도 안 했을걸요?”차설아는 부끄러운 듯 장난을 치면서 그를 놀렸다.성도윤은 전형적인 철벽남이었다. 잘 웃지도 않고 말수도 적었다. 달달한 말은커녕 대화도 하기 힘들 정도였다.지금까지 함께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두 사람 모두 참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차설아는 그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더없이 소중하게 여겼다.그녀가 스테이크 자르는 걸 불편해하자 성도윤은 아무 말 없이 고기를 작은 조각으로 잘라 그녀의 접시에 놓아 주었다.차설아는 고개를 숙이고 스테이크를 먹으며 무심한 듯 그에게 물었다.“오늘 회의 어땠어요? 많이 힘들었어요?”성도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대표 자리에 있으면 편한 날이 없지. 익숙해.”“사람들이 도윤 씨를 곤란하게 했죠? 뉴스에도 나왔던데...”성대 그룹이 뭘 하든 기자들은 항상 과장해서 말했고 모두 기사로 보도되었다. 일부러 찾아보지 않은 차설아도 알게 될 정도였다.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큰 문제에 부딪혔다는 걸 말이다. 깊이 분석할 필요도 없었다.그런데도 성도윤은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고 모든 걸 혼자 감당하면서 그녀를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그런 그의 마음이 차설아는 너무도 감동적이었다.“내가 누군데? 성대 그룹의 대표야. 그래서 주주들에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어. 요즘 회사 실적이 좋지 않으니 견제를 당하는 것도 당연한 거지.”“너무 걱정하지는 마. 최악이라고 해도 내가 대표 자리에서 내려오면 그만이야. 어차피 돈은 넘쳐나니까. 너랑 아이들한테 쓸 돈은 충분해. 게다가 우리 아내도 한 재력

  • 선 이혼, 후 집착   제1532화

    회의가 끝나자마자 성도윤은 마치 도망치듯 발걸음을 재촉하며 차설아네 집으로 돌아갔다.예전에는 밤늦게까지 일만 하고 야근도 밥 먹듯이 하던 워커홀릭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변해버렸다. 1분도 그녀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성도윤의 이런 태도는 직원들에게도 영향을 줬다. 그를 따라 항상 야근을 하던 회사 직원들도 야근을 줄이기 시작했고 덕분에 회사 분위기는 한층 더 좋아졌다.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꽃 한 다발 스테이크를 샀다. 오늘 저녁은 차설아와 함께 촛불을 켜고 오붓한 저녁 식사를 할 계획이었다.비록 반나절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그 시간이 성도윤에게는 몇 주일 같이 느껴졌다.게다가 달이와 원이도 이틀 동안 캠프에 참가하게 되는 바람에 집에는 차설아와 그녀를 돌봐주는 가정부 현이만이 남아 있었다.“대표님, 돌아오셨어요?”현이는 시급을 받는 가정부였기에 성도윤이 집에 돌아오자 짐을 챙겨 퇴근할 준비를 했다. 그는 거실과 집 안을 둘러보았지만 차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성도윤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설아는 어디 있어?”“설아 씨는 좀 피곤하다고 하셔서 지금 침실에서 쉬고 계세요. 깨워드릴까요?”“아니, 그냥 퇴근해. 오늘 수고했어.”성도윤은 부드럽게 말했다.“그럼 대표님,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일 다시 올게요.”현이는 인사를 남기고 집을 나섰다.넓은 저택에는 성도윤과 차설아, 단둘만이 남았다. 그는 차설아를 깨우지 않았고 꽃을 내려놓은 후 바로 주방으로 가서 스테이크를 굽기 시작했다.오랜만에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순간이었기에 그는 그녀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팬 위에서 스테이크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가 났다. 스테이크가 적당하게 익자 성도윤은 그 위에 후추 가루를 솔솔 뿌렸다. 그리고 최상급 레드와인을 꺼냈다.그때,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늘 왜 이렇게 로맨틱하게 구는 거죠?”그가 뒤를 돌아보자 차설아가 잠옷 차림으로 주방 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왜 내려왔어? 아직 준비도 안 됐는데.

  • 선 이혼, 후 집착   제1531화

    성진은 격양된 목소리로 다그쳤다.분명 이 싸움에서 이긴 건 그였지만 이상하게도 철저하게 패배한 기분이었다.성도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책상을 정리하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는 순간, 그의 표정이 한층 부드러워졌다.“설아야, 오늘 어땠어?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퇴근하고 가서 만들어 줄게.”전화 너머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성도윤은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전화를 끊을 때까지도 달달한 그 분위기는 옆에서 듣는 사람한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성진은 아무 말 없이 그의 곁에 서서 두 사람이 통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너무 우스워 보였다.성도윤이 사무실을 떠나려 하자 성진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형, 설아랑 다시 잘 지낸다며? 다 잊어버린 거 아니었어? 근데 이렇게 빨리 화해했다고? 설마 또 한 번 상처 주려고 그러는 거야?”성진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최악으로 끝난 사이인 줄 알았으니 말이다. 완전히 남남이 되어 다시는 엮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겨우 한두 달 만에 원래 사이로 돌아간 데다가 오히려 예전보다 더 서로를 소중하게 여겼다.눈동자까지 희생해 가면서 이루고 싶었던 삶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는 사실에 성진은 절망스러웠다. 성도윤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쉽게 그 모든 걸 손에 넣었다는 생각에 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인정할 수 없었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 이상 성도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할 수 없었다.“내가 설아랑 어떻게 지내는지 너한테 보고해야 돼?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성도윤은 담담하게 말했다.“부러우면 너도 마음에 드는 여자 찾아서 결혼하면 되잖아. 따뜻한 가정을 꾸려서 행복을 누리면 되잖아. 다만...”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회의실을 둘러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지금 너한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 이런 사소한 일에 마음을 빼앗길 여유가 있을까?”성도윤의 말투는 누가

  • 선 이혼, 후 집착   제1530화

    성진의 말에 성도윤은 할 말을 잃었다.그는 나중에야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성진 덕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었다. 그에게 놓고 말하면 성진이 생명의 은인인 것이나 다름없었다.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말싸움을 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었다.“그렇다면 일단 부대표님 뜻대로 진행하죠. 일단 한 분기를 기준으로 삼아서 시도해 보세요. 지켜보겠습니다.”성도윤의 냉정한 목소리에는 위엄이 있었고 이는 곧 성대 그룹의 미래를 결정짓는 말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모든 주주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 아무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역시 형은 마음이 넓은 사람이야. 회사를 위해서 헌신할 줄 아는...”성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내 방식대로 진행해 보고 나서 성대 그룹의 이익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면 어떡할 건데?”“넌 내가 어떤 결정을 했으면 좋겠어?”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는 듯했다. 성도윤을 지지하는 세력과 성진을 지지하는 세력 사이에서도 말이다.그때, 오준현이 입을 열었다.“성 대표님은 항상 회사를 위해서 생각해 주시는 분입니다. 만약 부대표님께서 정말 그룹에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면 성 대표님도 기꺼이 자리를 양보하시겠죠, 그렇지 않습니까?”그러자 박지훈이 책상을 쾅 하고 내리치며 오준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오준현 씨, 회사의 대표 자리는 인간성과 능력을 겸비한 사람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회사에 수천 명의 직원이 있어도 성 대표님 외에는 아무도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습니다.”“인간성이요? 그게 수익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주주인 저희의 관심사는 오직 이익뿐이라고요. 누가 우리에게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느냐, 그게 바로 우리가 대표를 선택하는 기준입니다.”두 파벌은 서로 다른 의견을 두고 대립해서 싸우기 시작했다.보다 못한 성도윤이 손을 들어 올리며 차가운 목소

  • 선 이혼, 후 집착   제1529화

    “제 비서 뜻이 곧 제 뜻입니다. 지금은 성대 그룹을 안정시키는 게 최우선이에요. 확장은 신중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성도윤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성 대표님, 언제 이렇게 변하셨습니까? 너무 보수적인 거 아닙니까? 이 작은 규모만 지키려다가 무너지고 싶으세요?”장기준이 가감 없이 성도윤에게 의문을 제기했다.“다들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저는 형이 왜 이렇게 보수적으로 변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성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희 형은 지난 반년 동안 큰 충격을 겪었어요. 건강도 많이 나빠졌죠. 그로 인해서 성격까지 바뀐 겁니다. 좀 더 신중해진 거죠.”“그리고 여러분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더 있어요. 형은 뇌 수술을 두 차례나 받았거든요. 그 충격이 얼마나 클지 짐작 가세요? 석현아, 주주님들께 보여 드려.”“네, 부대표님.”석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리 준비해 둔 성도윤의 건강 검진 보고서를 주주들에게 하나씩 전달했다. 그러자 진무열이 분노하며 성진에게 소리쳤다.“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성 대표님의 건강 검진 결과는 개인 정보예요! 함부로 유포해도 된다고 생각해요?”“진 비서님, 진정하세요. 형을 생각해서라면 건강 검진 결과는 당연히 비밀로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지금 형은 성대 그룹의 대표님이잖아요. 이 회사를 이끄는 사람이에요. 형의 건강 상태도 곧 성대 그룹의 미래와 이어진다는 겁니다. 다들 성대 그룹의 수익이 감소한 원인을 찾고 있지 않나요? 전 이 검진 결과가 그 원인을 충분히 설명해 줄 거라 생각해요.”성진은 미소를 지으며 느긋한 태도로 말했다. 오늘을 위해 철저히 준비해 온 듯했다.주주들은 검진 결과를 확인한 후, 믿기 어렵다는 듯 표정을 굳혔다.“이럴 수가! 성 대표님의 건강이 이렇게 악화되었을 줄은...”“뇌를 다친 데다가 기억 상실증까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경영 방식이 전과 너무 다르더라니... 그 원인이 여기 있었군요.”“성대 그룹이 갑자기 변한 건 대표님

  • 선 이혼, 후 집착   제1528화

    모든 주주들이 일제히 성진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충격이 서려 있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부대표님께서 실명했다고 하지 않았어?”“전에는 몸 상태도 많이 약해서 부대표님 자리까지 내려놓았는데 지금 보니 아주 생기가 넘치잖아?”“돌아왔다니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이제 성대 그룹도 다시 살아날 수 있겠어!”주주들은 성진의 복귀를 환영해 주었다. 그들은 성진이 성도윤을 대신해 성대 그룹을 위기에서 구해주기를 기대하며 중얼거렸다.성진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곧장 성도윤의 곁으로 다가갔다.“형, 미안해. 그동안 형 혼자 성대 그룹을 관리하느라 정말 힘들었을 텐데... 이젠 나도 회복했으니 형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성도윤은 싸늘한 눈빛으로 성진을 응시했다.그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성도윤은 심장이 순간적으로 옥죄어 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성도윤은 그 생각을 깊이 파고들고 싶지는 않았다.“회복했다니 다행이네. 앞으로 잘해보자. 우린 같은 배를 탄 사람이니까. 정말로 성대 그룹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만 있다면 나도 네가 돌아온 걸 환영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성도윤은 마음속의 불안을 접어두고 형식적인 말로 대응했다.“역시 형은 큰 그림을 보는 사람이야. 걱정 마,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내가 형의 자리를 대신해 성대 그룹을 구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성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속에는 권력을 향한 욕망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었다.순간, 주주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지는 못했다.“좋아, 그럴 실력이 있다면 말이지.”성도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성진은 의자를 당겨서 자리에 앉았고 그의 비서인 석현이 나서서 주주들에게 새로운 전략과 방안을 설명했다.주주들은 숨죽이며 그의 말을 들었고 그들의 표정은 점점 열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해외 지사를 맡아왔던 만큼 확실히 사고방식이 개방적이네. 만약 이 계

  • 선 이혼, 후 집착   제1527화

    “성 대표님, 지금 하셔야 할 말은 따로 있는 것 같은데요? 저희는 지금 주주총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모인 겁니다. 저희에게는 지금 수많은 경쟁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회사 내부에서도 심각한 분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능력 있는 인재들조차 불안함을 느껴 대거 이탈하는 상황이죠. 이대로 가다간 회사가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장기준이 말했다. 직접적으로 성도윤에게 대표직에서 물러나라는 말은 하지 못했지만 그의 의도는 뻔히 보였다.성도윤은 미소를 지으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럼 어떤 해결책이 가장 좋다고 보십니까?”“그건 저도 모르죠. 제가 뭘 알겠습니까...”성도윤과 눈이 마주친 순간, 장기준은 순간적으로 주춤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오준현이 나섰다.“간단합니다.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거죠. 그리고 성대 그룹의 대표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도록 해요.”이 말이 떨어지자 회의실에 있던 수십 명의 주주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각자의 속셈을 감추듯 아무도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도 성도윤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장기준 씨,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아뇨, 저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성대 그룹을 위해서, 또 성 대표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장기준은 손을 내저으며 황급히 해명했다.“그럼 그 깊은 배려에 감사드려야겠군요.”성도윤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섬뜩할 정도로 서늘했다.그때, 한 주주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장기준 씨의 의견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성 대표님을 대신할 만한 사람이 있느냐는 것이죠. 괜히 대표 자리를 바꿨다가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건 아닐까요?”그러자 오준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그건 여러분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 선 이혼, 후 집착   제1526화

    한편, 성대 그룹에서.성도윤의 지각은 이미 그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주요 주주들의 감정을 더욱 악화시켰다.비서가 연간 그룹의 매출과 주요 프로젝트 성과를 보고했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회의실은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였다.“성 대표님, 보시다시피 올해 성대 그룹의 전체 이익이 계속 하락하고 있습니다. 관련 주가 역시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고 있어요. 지금의 성대 그룹은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회사를 이끄는 책임자로서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실질적인 해결책이 있습니까?”7대 주주 중 한 명인 오준현이 말했다.그는 평소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매년 주주총회에서만 나타났다. 그리고 나타날 때마다 날카롭게 비판을 던졌는데 항상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성도윤을 깎아내렸다.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성씨 가문 사람들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그러자 그와 반대편에 서 있는 박지훈이 나섰다.“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이익을 볼 때도 있고 손해를 볼 때도 있는 법입니다. 성 대표님께서 성대 그룹을 맡은 후로 회사는 점점 성장해 왔습니다. 주가가 조금 하락했다고 이러시는 건가요?”“다들 아시다시피, 최근 몇 년간 특수 상황 때문에 대다수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성대 그룹은 그나마 하락폭이 적은 편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성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이미 파산했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 아닌가요?”박지훈은 성도윤을 강하게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가진 지분은 많지 않았지만 성도윤과의 친분 덕분에 회사 안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다.그러나 오준현은 코웃음을 쳤다.“그럼 성대 그룹이 몇 달째 내리막길을 걷는 것도 성 대표님 덕분이란 말이잖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성 대표님께 상을 하나 드려야겠네요?”그의 냉소적인 말투가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오준현만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능력 있는 사람을 따르기 마련이었다. 그는 단순히 배경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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