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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당연하죠, 누님께서 부탁한 일인데 제가 어찌 감히 소홀히 대할 수 있겠습니까?”

배경수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우고 두툼한 자료 뭉치를 예의 바르게 건넸다.

자료를 건네받은 차설아는 고열에 시달려 불편한 몸을 억지로 일으키고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

곧이어 그녀의 뽀얗고 여린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차츰 떠올랐다.

“역시 평범한 변호사들이 아니었어. 가치를 따지면 800억 현금과 아파트 펜트하우스는 아무것도 아니야.”

“쳇, 성도윤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겠어요?”

배경수는 늘씬한 다리를 꼬고 침대 난간에 몸을 기대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이 사람들보다 더 잘나가는 변호사를 알고 있거든요? 만약 필요하다면 당장 소개해줄게요.”

“아니야, 난 이 사람들이 필요해.”

차설아는 서류를 정리하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이혼 따위 전혀 영향받지 않은 듯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누님, 지금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거예요? 내 레이더망에 음모가 탐지되었는걸요?”

배경수는 급 관심이 생겼다.

드디어 4년 만에 사업의 여신이 다시금 부활하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얼른 얘기해 봐요!”

차설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됐어, 곧 알게 될 테니까.”

차설아의 성격을 잘 아는 배경수는 굳이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물어봤자 알려줄 사람도 아니었고,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또 차단당하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다만...”

배경수는 똑바로 일어서서 조심스럽게 차설아를 떠보았다.

“진짜 그 사람을 포기할 수 있어요?”

그는 차설아가 성도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어찌 쉽게 잊겠는가?

“내가 붙잡는다고 해서 될 일인가?”

차설아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무심하게 말했다.

“성도윤의 와이프로 산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이야. 애초에 손해 보는 장사라서 이제 진짜 차설아로 살아가고 싶어.”

...

성가네 별장.

성명원과 소영금은 배가 나온 임채원을 보고 서로 다른 표정을 지었다.

소영금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며 임채원을 끌어당겨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집 아이를 가져서 참 다행이야! 그거 알아? 우리 큰아들이 3개월 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이후로 눈물의 나날을 보내다 보니 눈이 퉁퉁 부을 지경이었어. 가끔 죽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는데, 이 아이는 하늘이 날 구원하기 위해 보낸 천사가 틀림없어! 어쩌면 도현이가 환생했을지도 모르니까 잘 보살펴서 무사히 낳아야 해, 알겠어?”

반면, 성명원은 어두운 안색으로 이맛살을 잔뜩 찌푸린 채 못마땅하게 성도윤을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놈,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설아랑 이혼도 안 하고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면 설아는 어떡하라고? 사람이 어떻게 은혜도 모르냐? 만약 그때 설아 할아버지가 네 할아버지를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우리 집안은 진작에 망했을 거야. 4년 전에 나랑 네 할아버지는 설아 할아버지한테 설아를 꼭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했는데, 이게 대체 뭐니... 네 할아버지한테는 뭐라고 설명해 드리고, 이미 돌아가신 설아 할아버지한테는 또 무슨 변명을 해야 한단 말이냐!”

성명원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듯 성도윤을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네 이놈! 죽여버리겠어!”

이를 본 임채원은 성도윤과 성명원 사이를 잽싸게 가로막으며 울먹거렸다.

“아버님, 진정하세요. 이게 다 제 탓이에요. 제가 괜히 임신해서... 만약 낳지 말아야 할 상황이라면 내일 가서 당장 지울게요!”

“안 돼! 절대 안 돼! 우리 집안의 혈육인데, 무슨 일이 있어도 낳아야 해.”

소영금은 임채원을 뒤로 끌어당기며 성명원을 향해 외쳤다.

“당신은 왜 항상 차설아의 편만 들어 주는 거예요? 만약 그 애가 우리 도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아이를 벌써 낳고도 남았지, 언제 다른 여자한테 기회를 줄 틈이라도 있겠어요? 몰락한 집안의 여식 주제에 능력도 없고, 도윤의 발목을 잡는 것 말고는 과연 우리 집에 눈곱만큼이라도 도움이 되는 게 있냐는 생각은 해봤어요? 무려 4년 동안이나 우리 집에서 먹고 자고 했는데, 더 이상 어떻게 챙겨줘요? 대체 뭐가 그리 억울하다는 거예요? 지금은 21세기라고요, 결혼은 자유잖아요. 누구를 선택하든 도윤이가 알아서 결정하겠죠. 당신이 뭔데 감 놔라 배 놔라 해요?”

소영금은 말을 마친 뒤 침묵으로 일관하는 성도윤을 바라보았다.

“아들, 뭐라도 얘기해 봐, 이제 어떡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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