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전히 온갖 듣기 싫은 말을 쏟아내며 성진의 인내심에 도전했다.차설아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하고 즉시 앞으로 나서 막았다.“성진, 그만해. 그래도 당신 큰어머니잖아. 이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야!”“흥, 이렇게 까칠한 큰어머니를 본 적 있어요? 나를 존중해주지 않은 큰어머니에게 내가 왜 예의를 지켜야죠?”성진은 소영금을 놓아주려는 뜻이 전혀 없었다. 그의 눈빛이 점점 독해지더니 수십 년 동안 쌓인 분노로 소영금의 손을 부러뜨릴 기세였다.“큰어머니는 내가 본 가장 오만하고 안하무인인 여자예요. 자기 두 아들만 잘났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쓰레기 보듯 하죠. 날 오랫동안 모욕했지만 한 번도 따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하필 이 시점에서 내 엄마를 모욕하다니... 지금은 나의 화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를 대신해 혼내주는 거예요!”“악, 손이 부러질 것 같아. 이 잡종 놈, 권력을 조금 얻었다고 복수하기 시작하는 거야? 나 소영금은 절대 널 가만두지 않아. 나... 아파 죽겠네!”소영금은 초딩처럼 욕을 하며 으르렁거렸다.차설아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이 두 사람 진짜 유치하기 짝이 없다니까!’그녀는 성진의 손등에 손을 얹으며 차갑게 말했다.“성진, 당장 그 손 놔. 만약 안 놓는다면...”차설아는 눈알을 굴리며, 어떤 말로 이 미친놈을 협박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그 손 안 놓으면 앞으로 너 상대하지 않아!”역시나 효과 있는 협박이었다.성진의 매서운 눈빛이 번쩍이더니 조금 놀란 표정으로 즉시 소영금을 놓아주었고,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그 말은 앞으로 날 상대하겠다는 뜻인가요?”차설아는 성진을 무시하고, 고개를 숙이고는 소영금의 손목을 비틀었다.“손목이 탈구된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바로 잡아드릴게요. 아플 수 도 있으니 조금만 참으세요.”소영금은 세 살배기 어린아이처럼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희대의 보물을 보는 표정으로 차설아를 바라보았다.“우리 며느리가... 접골까지 할 줄 안다고?”
차설아는 재빨리 별장을 떠났고, 성진과 소영금이 따라잡을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그녀의 눈에 두 사람은 피차일반으로, 미치기 시작하면 매우 무서웠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지 않기 위해 차설아가 먼저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차설아가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 두 아이는 벌써 쿨쿨 자고 있었다.민이 이모는 아직 잠들지 않았고, 두 아이를 대신해 내일 입학할 물품과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었다.바삐 움직이는 민이 이모를 보고 차설아는 너무 감동했다.“이모, 시간이 늦었어요. 얼른 들어가 쉬세요. 남은 건 제가 정리할게요.”민이 이모는 고개를 돌리고, 차설아를 향해 인자하게 웃었다.“아가씨도 참. 이 정도는 일도 아니죠. 아가씨야말로 늦게까지 일하느라 바쁘니 몸조심하셔야 해요. 너무 필사적으로 일하다가 쓰러지면, 두 아이는 어떡해요...”“걱정 마세요. 제가 잘 챙기고 있어요.”요 몇 년 동안, 그녀는 확실히 필사적으로 일했다. 밤을 새우는 것도 일상이었지만, 이번 계획만 성공한다면 앞으로 푹 쉴 수 있었다.민이 이모는 두 녀석의 책가방에 물티슈, 수건, 갈아입을 옷, 마스크 등을 챙겨 넣고 있었다.차설아는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 붓과 화반을 가져온 다음 민이 이모 손에 있는 가방을 가져갔다.“아가씨, 뭐 하려는 거예요?”민이 이모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가방이 좀 밋밋한 것 같아서요. 포인트를 주려고요.”차설아는 말하면서 책가방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그녀는 그림에 소질이 없었지만, 자그마한 포인트를 주니 원래 다소 단조롭고 무미건조하던 책가방이 귀엽게 변신했다.차설아는 두 아이의 책가방에 해바라기 섬을 그렸다. 푸른 바다, 하얀 모래사장, 해바라기 꽃밭, 그리고 그들이 모래 위를 달리는 모습...“아주 따뜻한 그림이네요. 역시 아가씨다워요. 내일 아이들이 일어나서 보면 분명 좋아할 거예요.”민이 이모는 책가방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인자하게 웃더니 또 약간 슬퍼하기 시작했다.“이 그림에 양기가 부족해서 문제죠. 남자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남자가 필요한 순간이 무조건 있어요. 예를 들어 방금 입학 서류를 작성하는데 안에 아버지 이름과 직업 칸이 있더라고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작성해야 하죠?”민이 이모가 또 ‘잔소리’를 하는 이유는 방금 입학 서류를 작성할 때 곤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차설아에게는 남편이, 두 아이에게는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그냥 없다고 작성하시면 되죠. 세상에 남편을 일찍 잃은 여자들도 많은데 저희라고 그런 상황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차설아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계속 붓으로 그림을 그렸다.애초에 성도윤과 이혼을 결심하고, 해안을 떠나 해바라기 섬으로 간 순간부터, 그녀는 이런 상황을 예상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건 안 되죠!”민이 이모는 약간 흥분하더니 말했다.“아가씨, 참 모든 걸 간단하게 생각하시네요. 유치원 선생님들도 모두 사람에 따라 행동하는 법이에요. 만약 달이와 원이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교육적인 면에서나 일상적인 생활면에서도 소홀할 거예요. 만약 반에 알려지면, 반 아이들도 비웃을 거고요. 이건 두 아이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일이에요. 그래서 이 칸은 무조건 채워야 해요. 아가씨가 싱글맘이라는 사실은 반드시 숨겨야 해요...”“일단 경수 도련님을 써넣을까요? 두 아이가 경수 도련님을 아빠라고 부르고, 도련님도 믿을만한 사람이잖아요. 만약 아가씨가 경수 도련님과 진지하게 만난다면 전 무조건 찬성이에요!”민이 이모의 마음속에 배경수는 차설아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고, 또 집안의 남자 주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되면 민이 이모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하지만 차설아는 난처해서 말했다.“경수는 더더욱 안 되죠. 이미 저랑 인연을 끊은 사이에요. 아마 죽을 때까지 왕래하지 않을 거예요.”“그게 무슨 소리예요?”민이 이모는 놀라서 두 눈을 부릅뜨고 믿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두 사람 혼인 신고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부부가 못되더라고 두 분은 평생 친구로 지
“네? 죽었다고요?”민이 이모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멀쩡한 사람이, 그것도 한없이 도도하고 완벽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죽었을까?“맞아요, 죽었어요. 아마 절 구하다가 죽었을 거예요.”차설아는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소영금은 자기 아들의 죽음이 라이벌의 소행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지만, 차설아도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었다.만약 그녀를 구하기 위해 다리를 다쳐 목숨이 위태롭지 않았다면, 그 라이벌도 손쉽게 기회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사실이에요?”민이 이모는 차설아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성도윤은 누구보다 매정한 사람이고 차설아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차설아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니, 분명 오해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저도 사실인지는 정확히 몰라요. 적어도 제가 아는 정보를 종합해볼 때, 저 때문에 죽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저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어요. 그래서... 좀 슬퍼요.”차설아는 고개를 숙이고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중얼거렸다.그렇다. 그녀는 아주 슬펐다.지금까지 남자의 죽음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듯 괜찮은 척했었다.하지만 깊은 밤 혼자 있을 때면 깊은 슬픔에 얽매이곤 했다.“죄책감에 슬픈 거예요? 아니면 아직 미련이 남아서 슬픈 거예요?”민이 이모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저도 제가 왜 슬픈지 잘 모르겠어요.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마음이 텅 비어버렸고 깊은 블랙홀이 나를 점점 삼키는 것 같았어요. 점점 나답지 않고, 비이성적으로 변하고 있어요...”차설아는 고통스럽게 몸을 웅크리고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으며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민이 이모는 차설아를 꼭 안아주며 어린 시절처럼 부드럽게 달랬다.“괜찮아요, 아가씨. 다 지나간 일이에요. 한동안 부부로 지냈을 뿐이지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어요. 그 사람이 살아있든 말든 우리랑 상관없어요.”“하지만 저를 구하다가 죽었어요. 그래서 너무 괴
민이 이모의 위로를 받은 차설아는 갑자기 밝아지더니 눈물을 닦고, 더 이상 우울하지 말고 정신을 차리리라 다짐했다.그녀는 최면, 피아노와 같은 어떤 외부의 힘도 빌리지 않고 편안히 잠을 잤다.깨어났을 때는 이미 아침 7시가 넘었다.오늘 그녀는 민이 이모와 함께 원이와 달이를 몬테리 유치원에 데려가기로 했다.입학 첫날이고, 두 아이 모두 편입생이니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해서, 차설아는 일찍 가기로 했다.차설아는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났고, 두 아이도 속속 일어났다.두 아이에게 어떤 영양가 있고 맛있는 아침 식사를 만들어 줄까 고민하던 중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문을 열고 보니 그날 심부름꾼이었다.“안녕하세요, 차설아 씨, 아침 식사 맛있게 하세요.”차설아가 더 묻기도 전에 심부름꾼은 바로 사라졌다.할 수 없이 그녀는 보온 통을 열고 안에 있는 아침 식사를 하나씩 꺼냈다.저번보다 아침 식사의 종류는 많이 줄었지만, 비주얼은 훨씬 정교하고 향긋한 냄새가 났다.“엄마, 아침 도착했어요?”게으름을 피우던 원이는 식탁 위의 아침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도착하기는 했는데 진짜 먹을 거야? 지난번의 고통을 벌써 잊은 건 아니지?”차설아는 지난번에 먹었던 음식 맛을 생각하니 아직도 헛구역질이 나는 것 같아 다시 시도할 용기가 없었다.“엄마, 뭐가 두려운 거예요? 그래도 해안에서 유명한 셰프라고요. 가끔 실수하는 것도 정상이죠. 이번에는 분명 맛있을 거예요. 이미 맛있는 냄새가 나잖아요. 안심하고 드세요.”원이는 미스터 Q에게 매우 높은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요 며칠 동안 요리 연습에 매진했으니 분명 크게 발전했을 것이다.“난 못 먹겠어. 원이 먼저 먹을래?”차설아는 위를 만지작거리며 지난번 맛을 떠올리자 하마터면 토할 뻔했다.“저도 못 먹겠어요...”원이는 어깨를 으쓱했다.비록 미스터 Q를 지지하지만, 마음속으로 지지하면 충분하다. 행동으로 지지할 용기는 아직 없었다.저번 미스터 Q의 솜씨 때문에 원이는 하마터면 아침 먹는 습관을 끊을
달이는 고양이처럼 천천히 씹더니 동그랗고 큰 눈이 순간 더 커졌다. 마치 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감격스러워하며 말했다.“와, 아주 맛있는 케이크네요. 달이가 먹어본 케이크 중에 가장 맛있어요!”“진짜?”차설아와 원이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트라우마에 짓눌려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원아, 네가 한 번... 먹어볼래?”원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엄마, 맛있는 건 엄마가 먼저 드셔야죠. 원이는 효자니까요.”차설아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맞네, 효성이 지극한 엄마의 착한 아들이지?”차설아는 느릿느릿 케이크를 하나 집어 들고 혀로 조심스럽게 핥아보았다.기억 속의 맛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맛있었다.차설아는 냉큼 한 개를 먹고 또 두 번째 케이크를 집었다.원이도 그 모습을 보고 하나를 집어 들어 맛보았다.“진짜 맛있네요. 공을 꽤 들인 모양이네요. 좋아요. 아주 좋아요.”원이는 먹으면서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터 Q에 대한 호감도가 또 10점이 많아졌다.차설아는 크림을 입 주위에 가득 묻히고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원이를 보며 물었다.“너 솔직히 말해. 네가 말하는 ‘해안의 유명한 셰프’가 도대체 누구야? 어떻게 알게 됐어? 엄마도 아는 사람이야?”“원이가 얼마 전에 사귄 친구예요.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소개해줄 거예요...”원이는 자신만만하게 말하고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신비롭게 말했다.“아주 훌륭한 친구인 것 같아요. 지금 당장 소개해주면 엄마가 단번에 빠져버리면 어떡해요. 아직 어떤 결점이 있는지도 모르니 좀 더 지켜봐야 해요. 엄마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시면 돼요. 제가 엄마에게 완벽한 사람을 골라줄 테니까요!”“나를 위해 골라준다고?”“맞아요. 원이가 엄마의 남편을 찾아준다고 했잖아요. 벌써 잊었어요?”“음...”차설아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원이가 진짜 자신의 남편감을 찾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그럼 우리 원이가 찾아준 남편은 어떤 사람인지 기대해볼까? 원이 마음에 들었다면
민이 이모도 사실 속으로는 두 아이가 잘 적응하지 못할까 봐, 아버지가 없다고 놀림을 받을까 봐 걱정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해야 했다.만약 민이 이모도 덩달아 걱정한다면, 차설아는 더욱 초조해할 것이다.“그래요, 전 이만 먼저 가볼게요. 오늘 확실히 중요한 일이 있어요.”차설아는 말을 마치고 민이 이모와 헤어졌다.그녀가 시계를 보니 성진이 말한 기자회견까지 아직 30분 남았다.30분 후, 해안은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아마 많은 거물이 참석할 것이니, 그녀도 당연히 이 특별한 순간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호텔 밖에는 경비가 삼엄하고, 고급 차량이 줄지어 있었다. 경계선 밖에는 기자들로 붐비고, 인기 있는 인플루언서들도 많이 있었다.차설아의 붉은 색 페라리는 유독 눈에 띄었다. 그녀가 차에서 내리자 순간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저 여자 좀 봐. 아주 예쁘게 생겼어. 전에 핫했던 동영상 속 그 여자 아니야?”“성대 그룹 대표의 조강지처였잖아. 아쉽게 내연녀 때문에 집에서 쫓겨났지만.”간 큰 남자 인플루언서가 휴대폰을 들고 생방송을 하면서 차설아를 향해 쫓아갔다.“여러분들 기다리세요. 성대 그룹의 전 대표 부인과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차설아 씨가 왜 성대 그룹에 나타났을까요?”“여신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잠깐 인터뷰해도 될까요?”차설아는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들고 말했다.“죄송합니다. 시간이 없어서요.”남자 인플루언서는 차설아를 가로막더니 뻔뻔하게 말을 이어갔다.“많은 시간을 빼앗지 않을 테니 팬들과 간단히 인사해 주세요!”“비켜요!”차설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온갖 짓을 하는 언론인이었으니, 당연히 좋은 태도를 보일 수 없었다.게다가 기자회견이 곧 시작되니 그녀는 확실히 시간이 촉박했다.남자 인플루언서는 일을 크게 만들수록 자신의 인기가 치솟는다는 것을 알고 즉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아이고, 대표
차설아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라 인플루언서들을 향해 소리쳤다.“시간 없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왜 하나같이 달라 붙어서 길을 막아? 당장 비켜! 계속 막고 있으면 나도 내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회의장 밖에 가로막힌 언론과 인플루언서들은 원래 익살스럽고 무례한 집단으로, 차설아가 폭발하는 것을 보고 더욱 흥분하더니 끊임없이 여자의 인내심을 자극했다.차설아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주먹을 불끈 쥐고 폭발하기 직전이었다.이때 마이바흐 한 대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양복을 곱게 차려입은 잘생긴 남자가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차에서 내렸다.“연약한 여자를 곤란하게 하는 건 무슨 경우죠? 의견이 있다면 저에게 따지시죠!”그는 바로 오늘 성대 그룹 기자회견의 주인공 성진이었다.“성진이다! 최근 비즈니스계에서 부상하고 있는 스타 성진이야!”“성대 그룹을 인수한다고 들었어. 이는 곧 성도윤을 대신해 해안의 새로운 왕이 되는 것을 암시하지!”“오늘 아마 성도윤의 사망 소식을 공식 발표하겠지. 완전 대박 뉴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으니 뉴스를 가장 먼저 뺏어오면 당장 은퇴하더라도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거야!”한 무리의 사람들은 즉시 목표를 돌려 성진을 겹겹이 에워쌌다.차설아에게 뺨을 맞은 남자 인플루언서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카메라를 향해 투덜거렸다.“연약한 여자라니요. 어떤 연약한 여자가 성인 남자를 뺨 한 대로 날려 보내요? 원더우먼이 따로 없구먼!”차설아는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 공기가 갑자기 맑아진 느낌이었다.그녀는 긴 머리를 정리하고, 무표정하고 도도한 모습으로 호텔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형수님, 왜 그렇게 빨리 가요! 같이 가요!”성진은 눈빛으로 경호원에게 기자들과 인플루언서들을 쫓아내라고 명령하고, 자신은 당당하게 차설아의 곁에 다가갔다.“오늘 올 줄 알았어요. 하지만 여기 온 목적이 저를 위해서인지, 죽은 형을 위해서인지는 모르겠네요.”남자는 웃는 듯 마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여자를 바라보며 둘만이 들을
박서영은 그녀를 믿지 못하겠는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정말 기꺼이 두 눈을 내놓을 생각이 있으신가요?”그녀는 세상에 이렇게 바보 같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분명 무슨 속셈을 꾸미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제가 성진한테 빚진 걸 갚는 거예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어요.”차설아가 말했다.“저를 못 믿겠다면 제가 무사하다는 것을 굳이 알릴 필요 없어요. 다만 그때 가서 일이 커지면 알아서 처리하세요.”거짓말할 마음도 없는 차설아는 진심으로 이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었다.항상 성진의 헌신 덕분에 남의 인생을 도둑질한 것처럼 느꼈고, 가끔 즐거울 때도 불안한 마음에 죄책감을 느꼈다.이 기간에 성진에게 연락하지 않았지만, 밤이 깊어질 때마다 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이 남자가 어떤 어둠 속에 처해있을지, 어떤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를 상상했다. 어쩌면 원수의 손에 잡혔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가능성이 마치 비수처럼 심장에 꽂혀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기만 했다.차설아는 더 이상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빚을 한 번에 갚고 싶어 했고, 그렇게 되면 그나마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럼 어떤 방법으로 무사하다고 전할 건데요?”박서영은 차설아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여전히 경계하는 어조로 물었다.“SNS에 올리면 되죠.”차설아가 웃으면서 말했다.“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위험에 처했을 때 SNS를 올릴 마음이 있겠어요? 제가 SNS를 올려버리면 적어도 제가 안전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SNS만 올리게요?”박서영은 나름대로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SNS면 충분해요.”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차성철도, 배경윤도, 선우 시원도 각자 바빴기 때문에 그녀를 신경쓸 새도 없었다.이럴 때 SNS를 올리면 최소한 무사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좋아요. SNS 올리는 것만은 허락해 줄게요.”박서영이 여러 번 고민
“하하. 성도윤 씨랑 데이트하고, 선우가문의 도련님과 애정 어린 농담을 주고받고, 배씨 가문 도련님과 술 마시는 시간은 있으면서 저희 도련님을 찾을 시간은 없었나 보죠? 저희 도련님을 잊어버릴 정도로 바빴나 봐요.”서영이 흥분한 나머지 차설아의 목을 직접 움켜잡으면서 말했다.“그거 알아요? 당신이 성도윤 씨랑 얽히고설켜 있을 때, 저희 도련님은 좌절감에 스스로 인생을 끝내려고 했어요. 손목에 상처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아무리 칼날을 숨겨봤자 어떻게든 찾더라고요. 그렇게 강하던 사람이 이제는 약해빠져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요. 알아요?”차설아는 저항하지도 않고 박서영이 자기 목을 조르는 대로 놔두었다. 애처롭게 바라보던 그녀의 두 눈에는 핏줄이 보이기 시작했다.“흥. 절대로 당신이 쉽게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박서영은 그제야 차설아를 놓아주며 차갑게 말했다.“당신한테 죗값을 치르게 하려고 이 저택으로 데려온 거예요.”“켁! 켁! 켁!”차설아는 잠깐의 질식 때문에 기침하면서 숨을 헐떡이며 박서영에게 물었다.“제가 어떻게 죗값을 치르기를 원해요?”“아주 간단해요. 저희 도련님의 시력을 돌려주면 돼요.”박서영은 앞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그동안 저는 도련님을 위해 거부반응이 없고 잘 맞는 한 쌍의 눈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지만, 아쉽게도 찾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설아 씨의 건강 검진 데이터를 우연히 얻게 되었는데 아주 특별한 두 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마침 저희 도련님한테 빚진 것도 있으니까, 설아 씨의 눈을 저희 도련님의 눈과 바꾸는 거 어렵지 않겠죠?”차설아는 박서영의 최종목적을 듣고 침묵하고 말았다.“제 눈이 정말 성진한테 맞나요?”그때 성도윤이 실명했을 때도 눈을 물색하고 다녔는데 오직 혈연관계가 있는 성진의 눈만 거부반응이 없었다.그때는 성도윤이 빨리 낫기를 바라면서 성진을 신경 쓰지도 못했다.하지만 마음의 빚 때문에 계속 숨이 안 쉬어졌다.만약 자기 눈으로 성진의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마음의 위로 때문이라
차설아는 다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커다란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온통 흰색 인테리어인 낯선 이곳은 영안실에 온 기분이었다.“드디어 깨셨군요, 약효가 너무 강해서 무려 사흘 동안 혼수상태였어요. 이러다 죽어버리는 줄 알았어요...”창가에서 한 여자의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에게는 생과 사가 그저 자거나 깨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경계 태세로 창가를 바라보던 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당신이었어요?”그날 밤 병원에서, 몰래 차설아의 병실로 들어간 그녀였다.“저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네요. 영광이에요.”박서영은 창가에 앉아 꽃다발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녀의 옆에 놓인 꽃병에는 이제 막 정원에서 따온 해바라기가 꽂혀있었다.박서영은 황금빛으로 만개한 해바라기 줄기를 비스듬히 잘라 하나씩 예쁘게 꽃병에 꽂아 넣었다.“저희 주인님께서는 설아 씨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해바라기라면서 정원에 해바라기를 심으라고 했어요. 이제는 만개했는데 볼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워요. 마치 다른 사람한테 보이지 않는 주인님의 마음처럼 말이에요.”이때 박서영은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꽃가지를 단단히 잘라버렸다.“주인님이라 하면 성진을 말씀하시는 거예요?”차설아는 사고가 날카로운 사람이라 바로 상대방을 추측해 냈다.그녀의 기억 속에서 일편단심이면서 실명한 사람은 성진뿐이었다.“도련님을 아직 기억하고 계셔서 다행이네요. 도련님 정성이 헛되지 않았네요.”박서영은 차설아가 성진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 그나마 그녀를 향한 증오가 줄어드는 듯했다.“정말 성진이에요?”차설아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려 했지만, 온몸이 무기력해 마치 마비된 것처럼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다.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박서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저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걱정하지 마세요. 그저 마취제 때문에 잠깐 의식을 잃고 침대에 누워있었을 뿐이니까요.”차설아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마에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리 일어나고 싶어
진찬영은 배경윤에게 핸드폰을 건네면서 이 둘의 말다툼을 중단시켰다.“고마워요. 찬영 오빠는 역시 최고예요.”배경윤은 배시시 웃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차설아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정말 제가 좋다면 이제는 찬영 오빠라고 부르지 마요...”진찬영은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찬영 씨라고 불러요.”“아, 그게...”배경윤은 진찬영의 갑작스러운 감정변화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심지어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찬영 오빠는 팬분들이 불러주는 호칭인데 저희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 이제부터는 찬영 씨라고 부르는 거 어때요?”“알았어요. 찬영 씨...”호칭을 바꿔 부른 배경윤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왜 이렇게 부끄럽지?’역시 호칭은 알게모르게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지 설명할 수 있었다.찬영 오빠라고 부를 때에는 팬이 연예인에 대한 애정으로 별로 부끄럽지 않았는데 찬영 씨라고 부르니 확 부끄러워지는 느낌이었다.옆에 있던 사도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 저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거예요?”지금 사도현이 비꼬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느낄수 있었다.“너랑 무슨 상관이야. 보기 싫으면 나가든가.”배경윤의 말을 비수처럼 심장에 박혔고, 사도현의 체면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흥! 누가 설아에 대해 나쁜 말을 하라고 했어?’배경윤은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해서 무응답 상태였다. 반복해서 네다섯 번을 걸었지만, 여전히 아무도 받지 않았다.“무슨 일이지?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지? 뭔가 잘못됐어.”비경윤은 불안한 예감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쯤 병원에 있어야 하는 설아는 원래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언제나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 왜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 걸까? 분명 무슨 일이 있어!’배경윤이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일어나려 한다.“제발 가만히 있어!”사도현이 다시 그녀를 침대에 눕히면서 말했다.“설아가 어린애야? 실력도 좋은데 무슨 일이 있겠어. 다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두세 시간 뒤에요.”진찬영이 대답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모든 독소를 제거하려면 세 시간 후에 전신 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물을 마시면 안 돼요.”“아직 시간이 많네요...”배경윤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제 핸드폰은 어디 있어요? 설아에게 안부를 전해야 하거든요.”사도현이 배경윤을 다시 침대에 눕히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이 어떤 때인데, 너나 잘 챙겨. 설아를 챙기는 사람은 많고도 많아.”“누군데? 설마 너의 그 쓰레기 같은 친구 성도윤은 아니지?”배경윤이 무례하게 반박했다.“난 그 자식이 방해할까 봐 걱정돼서 설아랑 계속 연락하려고 하는 거야.”사도현은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도윤이 형이 대체 너한테 뭘 잘못했다고 그래?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그 두 사람은 딱봐도 재능과 미모를 갖춘 천생연분인데, 그냥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을 뿐이잖아. 우리 도윤이 형을 바람둥이라고 단정 짓지는 말지?”“그 사람이 바람둥이 아니면 누가 바람둥이인데!”배경윤은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사도현과 따지려고 했다.“혼인 중에 바람을 피우고,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고, 겨우 설아 마음을 되돌리더니 또 다른 재벌 딸과 약혼하고. 이게 바람둥이가 아니면 뭔데?”“설아도 너의 오빠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잖아. 요즘에는 선우 가문 도련님과도 뜨겁게 보내더니. 그리고 도윤이 형은 왜 이렇게 되었는데! 어떻게 실명하고 기억을 잃게 되었는지 설아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거야?”“그건 그냥 사고일 뿐인데 설아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원망할 거면 하느님을 원망해. 누가 그런 악행을 많이 저지르라고 했어. 하느님도 노해서 가만두지 않은 거지.”“배경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나한테 막말은 해도 도윤이 형한테는 그러면 안 되지.”“내가 뭘 어쨌다고? 너도 방금 우리 설아한테 뭐라고 했잖아!”두 사람은 마치 싸움닭처럼 감정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이것은 두 사람이 계속 다투게 되는 주제라
진찬영은 사도현이 지금까지 만난 가장 자아도취적이고 오만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경윤 씨한테 물어봤어요? 당신과 저 사이에 도대체 누가 외부인인지.”사도현은 말을 끝내자마자 진찬영의 품에서 배경윤을 뺏어오려고 했다.이때 이미 힘이 풀린 배경윤이 입술이 약간 창백해져서 말했다.“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계속 싸웠다간 제가 죽을지도 몰라요. 빨리... 저 좀 병원에 데려다줘요!”배경윤은 눈앞이 어두워지면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근처 병원의 환자 침대에 누워있었다.병상 앞에는 사도현과 진찬영이 앉아있었고, 분위기는 쓰러지기 전과 같았다.하지만 다행히도, 아직은 죽은 목숨이 아니었다.“경윤아, 깼어? 목말라? 물 따라줄까?”배경윤이 눈을 뜨자, 진찬영은 두 눈이 반짝거렸다.“이틀 동안 혼수상태였는데, 목마르냐고 묻는 시간에 이미 다 마셨겠어요.”사도현이 이 말을 할 때, 진찬영은 이미 따뜻한 물을 배경윤한테 건넸다.배경윤은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오른손에 아무런 감각도 없어 전혀 힘을 쓸 수가 없었다.“내... 내 손...”그녀는 침을 삼키면서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손을 절단해야 하는 건가? 이제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걸까?’“걱정 안 해도 돼요. 괜찮아요. 독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마비된 느낌이 들 거예요.”진찬영은 부드럽게 그녀의 마음을 안심시켰다.“아... 깜짝 놀랐잖아요.”배경윤은 절단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도현은 배경윤에게 직접 물을 먹여주면서 대뜸 말했다.“24시간 이내에 독을 깨끗이 배출하지 못하면 신경이 마비되어 절단해야 할수도 있어.”“푸!”배경윤은 물을 다 마시기도 전에 뿜어내고 말았다.“뭐라고?”긴장한 채로 사도현을 쳐다보던 배경윤은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만약 손을 정말 절단해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아직도 이해 못 했어? 독이 말끔히 없어지기 전까진
야맹주를 확인한 배경윤은 신속히 잠수했다.“천천히 가!”사도현은 그녀가 걱정되어 조심하라고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호바다였지만 단면이 너무 높아 일부 산호는 쉽게 만졌다가 위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하지만 이때,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 배경윤은 마치 큰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면서 야맹주 위에 덮여 있던 산호초를 맨손으로 제거했다.그녀는 차설아가 평안 무사할수 있도록 이 야맹주를 선물하고 싶었다.“아!”배경윤이 야맹주에 손을 대려는 순간, 갑자기 산호초 틈새에서 은색 원형 물체가 튀어나와 그녀의 손등을 덥석 물었다.“바다뱀이야!”바다뱀이 배경윤을 물고 옆을 쓱 스쳐 자나가자 머릿속이 하얘진 사도현은 급히 잠수하여 그녀의 손을 잡았다.“봐봐...야맹주!”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배경윤은 그저 벌레에게 물렸다고 생각하면서 순진하게 사도현에게 야맹주를 자랑했다.“입 다물어!”사도현은 눈앞의 이 덜렁거리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녀는 과연 이런 바다뱀이 독성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진찬영은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긴 팔로 배경윤의 허리를 감싸고, 긴 다리를 쭉 뻗어 빠르게 수면으로 올라갔다.진찬영과 하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차례로 수면으로 떠올라 잠수 마스크를 벗었다.“여기 도와주세요! 보트를 준비해 주세요. 병원으로 가야겠어요!”사도현의 잘생긴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고, 잠긴 목소리로 육지에 있는 안전요원에게 외쳤다.“무슨 일이에요?”진찬영이 신속히 배경윤 곁으로 다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벌레에게 물렸을 뿐이에요...”배경윤은 뱀에게 물린 손등을 들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였고, 오히려 사도현이 너무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일반적으로 뱀에게 물리면 독이 체내에 바로 퍼지지 않아 아직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야맹주를 들어 올리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다들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진찬영은 이런 중요한 기회를 사도현을 놓칠 수가 없었다.“저는 저의 파트너로 하늘 씨를 선택하고 싶어요.”진찬영이 사도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안전요원에게 이렇게 말하자 사도현과 배경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 자식 뭐하는 거야. 포기라도 하는 거야?”사도현은 믿기지 않는지 진찬영을 째려보면서 말했다.“어떻게 하늘 씨를 선택할 수 있어요? 어쩌다 정면으로 승부를 겨룰 기회가 생겼는데 왜 포기하는 거예요?”진찬영이 사도현을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잠깐 경윤 씨를 도현 씨한테 맡길게요. 꼭 잘 지켜주셔야 해요.”사도현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잠수복을 입고 하늘과 함께 바다로 뛰어드는 진찬영을 쳐다보았다.“왜 저래?”제대로 한판 붙어볼 줄 알았는데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자기뿐이라 갑자기 김이 새는 느낌에 불쾌하기만 했다.“갑시다. 파트너님.”사도현은 더는 생각하기도 싫어 멍한 표정의 배경윤한테 터벅터벅 걸어갔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랑 짝이 된 거야.”배경윤은 싫증난 표정을 하고있었다.진찬영과 손잡고 바다 경치를 즐길 줄 알았는데 말이다.그런데 아무리 봐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도현한테 자기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아까 등산할 때까지만 해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이 타이밍에 진찬영이 뒤로 물러설 줄 몰랐다.“난 다이빙 챔피언까지 땄던 사람이야. 기다려 봐. 오늘 야맹주를 꼭 찾아줄게.”사도현의 오늘 주요 목적은 야맹주를 찾는 것이었다.비록 전설일 뿐이었지만 만약 정말 찾아서 배경윤한테 준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고 로맨틱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은 하나둘씩 바다에 뛰어들었다.하트섬은 물고기 떼, 가지각색의 산호초가 훤히 보일 정도로 수질이 좋았다. 더 깊이 내려가면 잭피시가 보이기도 했다.배경윤은 산소 호흡기를 꽉 깨물고 천천히 밑으로 향했다.파트너인 사도현은 그녀에게 무슨 사고라도 일어날까 봐 옆에 꼭 붙어있었다.진찬영은 몇 미터 밖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중이염을
이들은 어제저녁 약속한 대로 섬 근처에 있는 청정지역에서 스토클링하기로 했다.이때 감독 최빈이 말했다.“이 섬은 모양이 하트로 되어있어 하트섬이라고 불리는데 물이 맑아 산호초와 열대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들 오늘 운이 좋으면 하트섬 특유의 야맹주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밤이면 빛이 나는 그런 야맹주요.”“정말 야맹주가 있는 거예요?”배경윤이 이번 스노클링이 점점 더 기대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 하트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섬 중앙에는 고가의 진주가 들어있는 천연 조개가 많다고 했다. 최빈이 언급한 야맹주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전설 속에서는 야맹주를 찾은 사람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신난 배경윤은 야맹주를 찾아서 차설아한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호객행위인지 몰랐다.“당연히 있죠. 수년 전에 섬에서 살던 분들이 발견했대요. 찾을 확률은 낮지만, 없는건 아니에요.”최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그럼 뭘 기다려요. 저희 얼른 가요...”조급해 난 배경윤이 이때 대담하게 제의했다.“저희 스노클링하지 말고 아예 다이빙하는 거 어때요? 6미터 가까이 되는 그런 다이빙을 하면 야맹주를 찾을 수 있는 확율이 더욱 높지 않을까요?”“좋아요.”사도현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스노클링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이빙해야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죠.”“저도 좋아요.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물속에서 산소통이 없어도 몇 분씩이나 있을 수 있다고요.”하늘도 찬성의 의미도 손을 들었다.올림픽 금메달 수영선수로서 물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오직 진찬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영 씨는 스노클링하실 거예요? 아니면 다이빙하실 거예요?”최빈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진찬영에게 물었다.“저는 경윤 씨랑 같은 걸 할게요.”진찬영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전에 중이염 수술을 받은 적 있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너무 깊게는 내려가지 못했다. 5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