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맞는지 아닌지는 우리도 잘 몰라, 유일한 목격자가 도윤이었거든. 도윤이가 사고라면 사고인 거지... 이미 죽은 사람을 두고 그렇게 많이 따지고 싶지 않아.”성주혁의 의미심장한 말에 차설아는 머리가 복잡했다.“그럼 혹시 사건 현장에 목격자인 도윤 씨를 제외하고 이 모든 걸 담은 CCTV 영상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 CCTV 영상은 도윤 씨에게 소거되었어요. 이 일이 이상하지 않으세요?”성주혁은 이미 이 일을 알고 있다는 듯이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지. 두 형제가 어려서부터 워낙 친하게 지냈어. 특히 도윤이는 자기 형을 좋아해서 형의 꼬리처럼 어딜 가나 따라갔거든. 자기 형을 아주 신처럼 생각한 모양이야.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이 비참한 방식으로 죽었으니 도윤이에겐 그 영상은 아주 고통스러운 존재였을 거야. 자기 형의 신성한 이미지를 파괴하는 영상을 남겨두는 건 도현이에게 굴욕을 안겨줄 거라고 생각했기에 도윤이는 그 영상을 소거했겠지. 뭐가 이상해?”성주혁의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지만 차설아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그때 성대 그룹의 후계자가 도현 오빠였다면서요? 그런데 하필 그 자리를 이어받으려고 귀국할 때 사고가 생겼고, 그 후계자 자리는 자연스럽게 유일한 목격자인 도윤 씨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죠. 두 사건 사이에 정말 수상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차설아는 격분해서 말했다.이 일의 진실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중요했기 때문이다.차설아는 자기가 미친 듯이 사랑했던 남자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자기 친형까지 죽이는 쓰레기가 아니길 바랐다.“수상한 점?”성주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설마 도현이의 죽음이 도윤이와 연관 있다는 거야? 아니면 도현이가 도윤이에게 살해되었다는 말이야?”“...”차설아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푹 숙였다.한 번의 우연이면 몰라도 많은 우연이 겹치게 되니 차설아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성도윤을 오해하기 싫
“흥, 너야말로 어리석은 거 같은데?”성주혁이 분노의 목소리로 말했다.“설아는 이미 널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 그런데 이제 와서 죽는 척을 한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두 사람 점점 멀어지더니 이제 와서 이 사달을 내고. 이제 어떻게 설아의 마음을 되돌릴지 지켜보겠어.”성도윤이 말했다.“제가 알아서 잘 합니다. 어차피 제가 살아 있어도 차설아는 나를 극도로 싫어했어요. 차라리 다른 신분으로 옆에서 지켜주며 마음을 얻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말만 번지르르하게 해.”성주혁은 화난 나머지 가슴팍을 움켜쥐며 다시 성도윤을 혼냈다.“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이미 죽은 마당에 설아가 너를 위해 과부를 자처하겠어? 네가 무슨 계획을 하고 있든 빨리 설아에게 솔직하게 말해. 아니면 일이 점점 커질수록 수습하기 어려워질 거야. 만약 설아가 너한테 완전히 마음이 식고 다른 남자한테 덜컥 시집 가버리면 어떻게 해? 그때 가서 후회해도 늦었을 거라고!”성도윤의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단호하게 말했다.“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성도윤이 죽은 척 연기를 한 건 성대 그룹의 ‘암흑’ 세력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서이다.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고, 이제 손을 쓸 타이밍만 기다리면 되었는데 방금 성주혁과 차설아의 말을 들으니 성도윤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 났다.이대로 계속하다가는 그와 차설아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 다시는 원래처럼 되돌아올 가능성이 없어질까 봐 걱정했다. 차설아는 지금 그를 형을 죽인 범인이라고도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하지만 성도윤은 너무 억울했다. 그때 CCTV 영상을 지운 것도 할아버지의 뜻으로 지운 거였다.“할아버지, 아직도 왜 형이 총을 맞은 영상을 지우라고 하셨는지 모르겠어요. 그때 범인도 끝까지 쫓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이걸 설아가 오해해서 저는 후계자 자리를 위해 형을 죽인 범인으로 되었다고요.”성도윤은 한숨을 푹 쉬었다.지금 그는 이미 ‘죽은’ 신분이다. 아무리 억울해도 차설아 앞에서 해명하지
“뭐라는 거야?”차설아는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곧이어 배경윤도 전화를 걸어오고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지금 어디에 있어? 얼른 보이 바로 가봐. 늦으면 언니가 마음에 들어 하던 택이가 더럽혀질 거야.”“더럽혀진다고?”“그래, 아까 바에 있던 사람이 나한테 도움을 요청하더라고. 택이가 너무 인기 많아서 이미 어떤 여자 보스의 눈에 들었대. 2억 내고 방으로 데려가려고 했는데 택이가 당당하게 거절하고 자기는 이미 주인 있는 몸이라고 했대. 설아 언니를 위해 몸을 지켜야 한다며.”“뭐? 나를 위해 몸을 지킨다고?”차설아는 어이가 없었다.차설아와 택이는 겨우 하룻밤을 같이 보냈고 술김에 키스한 것뿐이었다.‘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나를 위해 몸을 지키겠다고 하니, 설마 내 돈을 뜯어내려고 이러는 건가?’“양쪽에서 싸움이 났대. 언니도 알다시피 바에는 잘생긴 남자들이 많지만 다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애들이라고. 그 여자 보스가 깡패들을 불러 모은 모양이야. 택이가 아닌 바에서 일하는 잘생긴 남자들을 위해서라도 당장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배경윤이 흥분된 목소리로 차설아를 타일렀다.그녀는 마침 택이와 차설아를 어떻게 엮을지 고민하던 참에 이런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이게 하늘이 준 인연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택이는 바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어디 내놓긴 부끄럽지만 그래도 성도윤을 대신해 차설아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다면 그만이었다.지금 차설아는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었기에 그런 그녀를 ‘구하고’ 같이 ‘미친 짓’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차설아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는지 차가운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도움을 요청하려면 경찰을 찾아야지, 나를 왜 찾아? 나 바쁘니까 일단 끊어!”“당연히 언니랑 상관있는 일이니까 찾지. 택이가 언니 때문에 그 여자 보스를 건드렸다잖아. 언니만을 위한 해어화가 악독한 아줌마에게 괴롭힘당하는 꼴을 꼭 봐야겠어?”“그 여자 보스, 풍채가 있으시
여자 보스가 그 말을 듣더니 벌컥 화를 냈다.“뻔뻔스러운 것. 꼭 내가 손을 써야 정신을 차리겠어? 저 녀석 끌어내!”그녀의 말에 택이의 두 팔은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내에게 꽉 잡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여자 보스는 몸에 지닌 채찍을 꺼내고는 택이의 가슴팍을 향해 ‘짝’ 내리쳤다.남자의 흰 셔츠는 찢어졌고, 이내 피로 빨갛게 물들었다. 그의 잘생긴 얼굴과 차가운 분위기까지 더해져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이 아프게 했다.“다시 한번 물을게. 나랑 갈래? 가지 않을래?”“그분 아니면 어디도 안 가요!”“짝짝짝!”여자 보스는 또 그를 향해 채찍을 몇 번 휘둘렀다.보이 바의 사장과 직원들은 부들부들 떤 채 그저 옆에서 지켜보고 있을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보이 바에 여자 보스의 부하들로 꽉 찼고, 택이를 위해 나선다는 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여자 보스가 다시 채찍을 택이의 몸에 내리치려 할 때, 그녀는 갑자기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고개를 뒤로 돌려보니 차설아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하게 되었다.“감히 내 사람도 건드리는 거야?”말을 마친 차설아는 채찍의 다른 끝을 꼭 잡고 힘껏 당겼다.100kg 넘은 여자 보스는 그대로 멀리 날아가 버렸다!주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깊은숨을 들이마셨다.여리여리해 보이는 차설아에게 이 정도의 힘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놔!”차설아가 차가운 얼굴을 보이고는 택이의 두 팔을 잡고 있는 두 건장한 사내에게 명령했다.두 사내는 당연히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에게 손을 쓰려고 했는데 차설아는 바로 두 사람을 발로 세게 걷어찼다.차설아의 싸움 실력으로 이 사람들을 상대하는 건 보잘것없는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과도 같이 쉬웠다.깃털 가면을 쓴 남자는 깊은 눈망울을 반짝이더니 여유롭게 말했다.“당신이 날 구하러 올 줄 알고 있었어요.”왠지 모르게 차설아는 가면을 쓴 녀석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차갑고 도도한 분위기가 ‘그 사람’
“???”차설아는 부하들을 이끌고 바를 떠난 여자 보스를 보고는 어안이 벙벙했다.‘뭐야? 나 농락하는 거야? 싸울 것처럼 하더니 왜 갑자기 가는 거야?’바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사장과 젊은 남자들이 차설아를 둘러싸더니 그녀를 우상 보듯 숭배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위해 무릎도 꿇을 수 있었다.“차설아 씨, 역시 여장부시네요, 실검에 떴던 동영상에서보다도 싸움을 잘하시는데요, 너무 멋있어요!”“차설아 씨, 앞으로 우리 바를 책임져 주세요. 저렇게 막 나가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상대하기 어렵다니까요. 괴롭힘을 당했던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요!”바 사장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차설아에게 애원했다.“특히 우리 택이 말이에요. 워낙 잘생긴 얼굴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니 개나 소나 다 넘보려고 해요. 오늘 그 여자 보스의 뒤를 봐주고 있는 세력이 대단해요. 차설아 씨가 아니었다면 우리 택이는...”차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택이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때? 버틸 수 있겠어?”“캑캑.”택이는 몸을 비틀거리더니 기침을 하면서 창백한 얼굴을 보이고는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직 버틸 수 있어요. 단지 오늘 그 손님의 미움을 샀으니까 나중에 반드시 저에게 복수하려 할 거예요. 오늘이야 별일 없이 여기를 떠날 수 있겠지만 내일 또 그 여자 손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네요!”남자가 말하고는 당장이라도 바닥에 쓰러질 기세였다.“조심해!”차설아는 재빠르게 그를 부축했다.택이는 차설아가 자신을 부축하자 갑자기 힘을 못 쓰더니 그대로 차설아의 어깨를 감싸고는 그녀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옆에 서 있던 다른 잘생긴 남자들이 속삭였다.“역시 택이야. 이 와중에 꼬리 치고 있는 것 좀 봐. 정말 사람 마음을 잘 홀린다니까!”“택이가 뭘 잘못했겠어. 저렇게 예쁜 선을 가진 다리라면 나는 더 꽉 끌어안겠는걸?”바 사장도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재
“먼저 상처부터 치료하는 게 좋겠어요.”차설아는 택이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했지만 택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이 정도 상처로 병원으로 갈 것 없어요. 날 집에 데려다줘요, 며칠 누워있으면 괜찮아질 것이니.”차설아는 얼른 이 성가신 놈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면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다 했으니 마음 놓고 떠날 수 있었다.“알겠어, 데려다줄게.”택이의 집은 바 근처에 있었는데 아파트 투룸이었다. 인테리어는 매혹적인 겉모습과는 달리 아늑하고 포근했다.“됐어, 집까지 데려다줬으니까 푹 쉬어. 시간이 늦었고, 나는 이만 갈게.”차설아는 그래도 선을 지키며 밖에 선 채 작별 인사를 건넸다.한밤중에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게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면 안 좋으니 말이다.훤칠한 택이는 차설아의 부축 없이 병약한 모습을 보이며 휘청거렸다.그는 또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왜요? 제가 잡아먹을까 봐 들어오지 못하는 거예요?”“그건 아니고!”차설아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면서 남자를 샅샅이 훑어보고는 군침을 꿀꺽 삼켰다.“내가 주체하지 못하고 널 잡아먹을까 봐 겁이 나.”“...”가면에 가려진 남자의 잘생긴 얼굴은 순식간에 차가워졌고, 그의 얼굴색도 한껏 어두워졌다.그는 당연히 택이가 아닌 성질 나쁘고 소유욕이 강한 성도윤이었다.오늘 밤에 있었던 일은 모두 그의 자작극이었다.그는 택이의 신분으로 모두를 속였는데 합당한 이유로 뻔뻔스럽게 차설아의 옆을 독차지하려고 했다.바에서 일하는 남자로 차설아의 취향을 쉽게 만족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나도 수월하게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차설아, 이렇게 원칙 없는 여자였어? 이렇게 쉽게 걸려드는 거였어?’“괜찮아요, 저는 어차피 당신 거잖아요. 좋을 대로 저를 즐겨주세요, 저는 아무 불평도 하지 않을 거예요.”성도윤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그게...”그의 말은 차설아를 난감한 상황에 부닥치게 했다.차설아는 그저 택이에게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험악한지
“현관 캐비닛에 있어요. 폐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해요.”성도윤이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는데 연기 대상을 받아도 될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간드러지게 하는 불쌍한 연기를 선보였다.차설아는 현관 캐비닛에서 알코올, 연고 등 여러 가지 약이 들어 있는 약상자를 발견했다. 그녀는 소파에 다시 돌아왔다.완벽에 가까운 얼굴과 보일 듯 말 듯 한 근육 라인, 그리고 차가운 분위기를 보인 남자에게 자꾸만 눈이 갔다. 아니, 눈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먼저 옷 벗어.”차설아는 마치 경험이 많은 바람둥이처럼 남자를 내려다보며 명령했다.‘이렇게 거침없이 말한다고?’성도윤은 오히려 부끄러워 두 손으로 가슴팍을 가로막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옷은 왜 벗어요? 지금 이런 꼴로 무슨 일을 하기는 불편할 거예요... 물론 당신이 굳이 요구한다면 저도 잘 협조할게요.”차설아는 얼굴을 붉히더니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옷을 벗으라고 한 건 너에게 약을 발라주기 위해서야. 옷을 벗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너 약 발라줘?”그의 흰 셔츠는 이미 채찍으로 찢어져 있었고, 얼룩덜룩한 붉은 핏자국은 마치 매혹적인 꽃처럼 그를 더 돋보이게 했다. 차설아는 밤새 그의 얼굴을 감상하고 싶은 지경이었다.하지만 약을 바르기 위해 옷은 벗어야 했으니.“그래요...”성도윤의 목소리에는 실망이 담겨 있었다.그는 방금 차설아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각오를 했는데... 결국 약을 바르는 거였다니?‘하지만 괜찮아, 앞으로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까. 내가 고생해서 만든 완벽한 몸이 차설아를 언젠간 홀리겠지!’성도윤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섹시한 쇄골부터 튼실한 가슴팍, 그리고 초콜릿 복근까지, 하나하나씩 드러났다...차설아는 마치 신이 만들어낸 완벽한 예술작품을 보듯 성도윤의 몸을 뚫어지게 살펴봤다.그러더니 갑자기 복숭아처럼 얼굴이 불그스름해졌는데 차가운 그녀의 얼굴에서 귀여움이 엿보였다.‘쯧쯧, 몸매가 대박
성도윤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제가 겉으로는 바에서 노래나 하는 바람둥이처럼 보이지만 사실 1급 자격증이 있는 심리상담사예요. 심리상담, 심리치유, 재건심리학, 그리고 최면술을 잘해요. 친구분께서 당신에게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나 기분이 우울하다고 하셨는데 제가 당신을 도와주길 바랐어요. 혹시 저를 믿는다면 제가 도와줄게요.”“1급 자격증이 있는 심리상담사라고?”차설아는 의외이기도 하면서 어색한 마음이 들었다.눈앞의 녀석이 온전히 얼굴로만 돈을 버는 줄 알았으니 말이다.“그게 무슨 표정이에요?”성도윤이 웃으면서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헤치며 감미롭고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못 믿으시는 거예요? 아니면 실망스러운 거예요? 사실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몸도 치유할 수 있는데요, 필요하다면요.”“아니, 필요 없어. 고마워.”차설아는 얼굴이 빨개진 채 남자의 몸을 확 밀어내고는 자리에 곧게 앉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연히 너를 믿지 못하는 거지. 네가 온밤 동안 이상한 말을 하고 있는데 심리상담사일 리가 있겠어?”1급 자격증은 심리상담사 자격증 중에서도 최고급의 자격증이었다. 탄탄한 전문지식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공감 능력과 상황판별 능력이 필요한데 겨우 얼굴로 돈을 버는 사람이 어떻게 그 자격증을 딸 수 있단 말인가?“믿지 못하시겠으면 한 번 실험을 해볼까요? 제가 거짓말을 했는지?”“무슨 실험?”“혹시 그림 심리테스트 들어봤어요?”“들어보긴 했지만... 그냥 흰 종이에 집, 나무, 사람 그리는 거 아니야?”“맞아요.”성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림을 다 그리시면 제가 분석을 시작할게요. 만약 제 분석이 맞는다면 저 믿으실 수 있겠죠?”차설아는 심리 테스트가 나름 재밌어 보여 흔쾌히 동의했다.“그래, 한 번 그려보지 뭐. 네가 심리상담사인지 아닌지도 곧 알게 될 거야.”성도윤은 색연필과 종이를 찾아내고는 차설아에게 건네면서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한 번 그려보세요
야맹주를 확인한 배경윤은 신속히 잠수했다.“천천히 가!”사도현은 그녀가 걱정되어 조심하라고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호바다였지만 단면이 너무 높아 일부 산호는 쉽게 만졌다가 위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하지만 이때,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 배경윤은 마치 큰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면서 야맹주 위에 덮여 있던 산호초를 맨손으로 제거했다.그녀는 차설아가 평안 무사할수 있도록 이 야맹주를 선물하고 싶었다.“아!”배경윤이 야맹주에 손을 대려는 순간, 갑자기 산호초 틈새에서 은색 원형 물체가 튀어나와 그녀의 손등을 덥석 물었다.“바다뱀이야!”바다뱀이 배경윤을 물고 옆을 쓱 스쳐 자나가자 머릿속이 하얘진 사도현은 급히 잠수하여 그녀의 손을 잡았다.“봐봐...야맹주!”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배경윤은 그저 벌레에게 물렸다고 생각하면서 순진하게 사도현에게 야맹주를 자랑했다.“입 다물어!”사도현은 눈앞의 이 덜렁거리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녀는 과연 이런 바다뱀이 독성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진찬영은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긴 팔로 배경윤의 허리를 감싸고, 긴 다리를 쭉 뻗어 빠르게 수면으로 올라갔다.진찬영과 하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차례로 수면으로 떠올라 잠수 마스크를 벗었다.“여기 도와주세요! 보트를 준비해 주세요. 병원으로 가야겠어요!”사도현의 잘생긴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고, 잠긴 목소리로 육지에 있는 안전요원에게 외쳤다.“무슨 일이에요?”진찬영이 신속히 배경윤 곁으로 다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벌레에게 물렸을 뿐이에요...”배경윤은 뱀에게 물린 손등을 들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였고, 오히려 사도현이 너무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일반적으로 뱀에게 물리면 독이 체내에 바로 퍼지지 않아 아직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야맹주를 들어 올리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다들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진찬영은 이런 중요한 기회를 사도현을 놓칠 수가 없었다.“저는 저의 파트너로 하늘 씨를 선택하고 싶어요.”진찬영이 사도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안전요원에게 이렇게 말하자 사도현과 배경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 자식 뭐하는 거야. 포기라도 하는 거야?”사도현은 믿기지 않는지 진찬영을 째려보면서 말했다.“어떻게 하늘 씨를 선택할 수 있어요? 어쩌다 정면으로 승부를 겨룰 기회가 생겼는데 왜 포기하는 거예요?”진찬영이 사도현을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잠깐 경윤 씨를 도현 씨한테 맡길게요. 꼭 잘 지켜주셔야 해요.”사도현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잠수복을 입고 하늘과 함께 바다로 뛰어드는 진찬영을 쳐다보았다.“왜 저래?”제대로 한판 붙어볼 줄 알았는데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자기뿐이라 갑자기 김이 새는 느낌에 불쾌하기만 했다.“갑시다. 파트너님.”사도현은 더는 생각하기도 싫어 멍한 표정의 배경윤한테 터벅터벅 걸어갔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랑 짝이 된 거야.”배경윤은 싫증난 표정을 하고있었다.진찬영과 손잡고 바다 경치를 즐길 줄 알았는데 말이다.그런데 아무리 봐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도현한테 자기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아까 등산할 때까지만 해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이 타이밍에 진찬영이 뒤로 물러설 줄 몰랐다.“난 다이빙 챔피언까지 땄던 사람이야. 기다려 봐. 오늘 야맹주를 꼭 찾아줄게.”사도현의 오늘 주요 목적은 야맹주를 찾는 것이었다.비록 전설일 뿐이었지만 만약 정말 찾아서 배경윤한테 준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고 로맨틱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은 하나둘씩 바다에 뛰어들었다.하트섬은 물고기 떼, 가지각색의 산호초가 훤히 보일 정도로 수질이 좋았다. 더 깊이 내려가면 잭피시가 보이기도 했다.배경윤은 산소 호흡기를 꽉 깨물고 천천히 밑으로 향했다.파트너인 사도현은 그녀에게 무슨 사고라도 일어날까 봐 옆에 꼭 붙어있었다.진찬영은 몇 미터 밖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중이염을
이들은 어제저녁 약속한 대로 섬 근처에 있는 청정지역에서 스토클링하기로 했다.이때 감독 최빈이 말했다.“이 섬은 모양이 하트로 되어있어 하트섬이라고 불리는데 물이 맑아 산호초와 열대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들 오늘 운이 좋으면 하트섬 특유의 야맹주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밤이면 빛이 나는 그런 야맹주요.”“정말 야맹주가 있는 거예요?”배경윤이 이번 스노클링이 점점 더 기대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 하트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섬 중앙에는 고가의 진주가 들어있는 천연 조개가 많다고 했다. 최빈이 언급한 야맹주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전설 속에서는 야맹주를 찾은 사람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신난 배경윤은 야맹주를 찾아서 차설아한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호객행위인지 몰랐다.“당연히 있죠. 수년 전에 섬에서 살던 분들이 발견했대요. 찾을 확률은 낮지만, 없는건 아니에요.”최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그럼 뭘 기다려요. 저희 얼른 가요...”조급해 난 배경윤이 이때 대담하게 제의했다.“저희 스노클링하지 말고 아예 다이빙하는 거 어때요? 6미터 가까이 되는 그런 다이빙을 하면 야맹주를 찾을 수 있는 확율이 더욱 높지 않을까요?”“좋아요.”사도현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스노클링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이빙해야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죠.”“저도 좋아요.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물속에서 산소통이 없어도 몇 분씩이나 있을 수 있다고요.”하늘도 찬성의 의미도 손을 들었다.올림픽 금메달 수영선수로서 물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오직 진찬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영 씨는 스노클링하실 거예요? 아니면 다이빙하실 거예요?”최빈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진찬영에게 물었다.“저는 경윤 씨랑 같은 걸 할게요.”진찬영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전에 중이염 수술을 받은 적 있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너무 깊게는 내려가지 못했다. 5미터
배경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머리를 긁적거렸다.“급할 필요 없어요. 아직 시간은 많아요. 어제저녁 하늘 씨를 선택한 것은 저랑 사도현 씨의 모순을 와해시키려고 그랬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오늘 저녁은 경윤 씨 마음에 따라 선택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진찬영은 배경윤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계속 지금처럼 애매모호하지 말았으면 했다.이런 명분 없는 사이가 싫기도 했고, 사도현의 맹렬한 공격하에 배경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했다.그래서 하루빨리 결정짓고 싶었다.“알았어요.”배경윤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저녁은 제 마음에 따라 더는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오늘 아침 진찬영과 함께 잠깐 아침햇살을 만끽하면서 롤러코스터처럼 기복이 심한 생활이 아니라 평온한 생활을 기대했다.배경윤과 진찬영이 함께 하산할 때, 사도현도 마침 기상했다.사도현은 지금까지 스코어가 가장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배경윤과 방을 바꾸기로 하고 짐을 배경윤의 바다뷰 별장으로 옮기기로 했다.복식 별장에는 방이 네 개나 있었고,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배경윤이 상냥하게 대해준다면 기꺼이 방을 하나 내어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같은 지붕 아래에 있는 모습만 상상해도 기분이 좋았다.입이 귀에 걸려있을 때, 배경윤과 진찬영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웃으면서 걸어오는 것이다.“어디 갔었어요?”사도현의 안색은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어딜 갔든 보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냉랭하게 말했다.“그러다 저를 놓칠 수도 있어요. 지금 경윤 씨한테 방을 하나 내어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죠...”사도현이 턱을 만지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 이 상황에서 할수 있는 가장 진지한 말이었다.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유치하긴. 어차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디서 지내든 상관없어요. 도현 씨한테는 천장에 별이 가득 붙어있는 저 방이 어울릴 것 같
다음날.아침햇살이 비추는 섬은 몽롱하고 매력적이었다.아침 조깅하는 습관 있는 배경윤은 다들 자고 있을 때 이미 일어나 뛰고 있었다.산 주위를 따라 2킬로 정도 뛰면서 땀에 흠뻑 젖은 그녀는 개운한 느낌이었다.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에 서서 파란 바닷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좋은 아침이에요.”배경윤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았더니 진찬영이었다.“이런 우연이. 찬영 오빠도 조깅하러 오셨어요?”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의 얼굴은 자기도 모르게 발그레해졌다.어제저녁 진찬영이 대놓고 고백하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의 장벽이 무너져 이제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우연이 아니라...”진찬영은 오늘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살짝 가르마를 탄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어 청춘 로코물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잊지 못하는 킹카처럼 보였다.그는 난간을 잡고 옆모습으로 의미심장하게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번에 경윤 씨가 조깅하는 습관이 있다고 들어서... 일부러 만나려고 온 거예요.”배경윤과 이곳에서 만나려고 그녀보다 한 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난 것이다.그때는 아직 날도 밝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혼자서 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와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속으론 배경윤과 함께 이 경치를 보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배경윤이 흔들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제가 이 코스를 달릴지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다 못 만나면요?”“만나지 못해도 아쉬운 대로 아름다운 경치를 봤잖아요.”진찬영은 고개돌려 전방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저는 어떤 일이든 결과를 바라지 않아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된 거예요. 그리고 결국엔 경윤 씨를 만났잖아요.”배경윤은 잘생긴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렇다. 결과보다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되었다.이 부분에서는 진찬영과 생각이 똑
“에헴!”하늘을 신경 쓰지도 않던 사도현은 두 사람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길래 질투심을 느꼈다.하늘도 그제야 선을 넘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바로 입을 닫으면서 자세를 고쳐잡았다.“죄송해요. 경윤 씨,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다른 사람을 선택해 보세요.”“그게 뭐 어때서요? 어차피 저희 서로 선택하는 과정이잖아요. 하늘 씨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과 셋이 함께 스노클링하면 되잖아요. 둘이든 셋이든 저는 상관없어요.”배경윤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녀는 하늘이 컨트롤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제일 안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진찬영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고 사도현도 어쩔 수가 없었다.“그래요? 경윤 씨는 정말 내일 아침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과 함께 스노클링할 수 있는 거예요?”하늘은 억울한 강아지처럼 순진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럼요. 저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 3각 구도는 제일 안정적이니까요.”배경윤이 익살스럽게 말했다.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입이 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그래요. 그러면 내일 경윤 씨, 저, 그리고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 세 명이 함께 스노클링하는 거예요. 마음이 변하면 안 돼요.”“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빠지는 일이 없을 거예요. 제가 빠지면 평생 짝을 찾지 못할 거예요.”배경윤은 하늘에 대고 진지하게 맹세했다.이때 하늘이 진지하게 말했다.“사실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사도현 씨에요. 그리고 오늘 모든 사람 앞에서 사실대로 말했고요.”사도현이 눈썹을 움찔하더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희 내일 봐요.”‘왜 이렇게 된 거지?’배경윤은 흐뭇한 표정의 사도현을 보면서 그가 일부러 함정을 파놓았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바로 이때, 진찬영이 입을 열었다.“3각 구도가 안정적이긴 하지만 재미가 없잖아요. 저도 끼워주시면 안 돼요?”진찬영은 사도현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사도현을 쳐다보았다.“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은 배경윤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 다부진 몸매에 끌려 그대를 쭉 지켜보게 되었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대의 모습을 보면서 심장이 떨려왔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그대가 유독 빛나 보였거든요. 그대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하늘은 배경윤이 쓴 편지를 천천히 읽으면서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성 참가자 중에서 진찬영이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진찬영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도현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고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첫인상 1위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대라고 하고 싶어요. 하늘 씨, 앞으로 우리 잘 지내봐요. 하늘 씨랑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하늘 씨의 마음도 궁금해요. 단둘이 얘기 나누고 싶어요.”편지를 다 읽은 하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늘은 부끄러워하면서 머리를 긁적였고 배경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경윤 씨, 언제부터 저한테 호감이 생긴 거예요?”하늘을 포함한 게스트들은 전부 두 눈을 크게 뜨고 배경윤을 쳐다보았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배경윤은 사도현, 진찬영이 아닌 뜬금없는 하늘한테 고백했던 것이다.[지금 사람 마음 갖고 장난하는 거야? 거짓말하지 마. 누구한테 마음이 있는지 다 보이는데 왜 저러는 거야?][이거 대본 맞지? 대본의 냄새를 맡았어. 제작진한테 너무 실망이야.][대본이든 말든 나는 사도현과 배경윤이 이어지길 기도할 거야.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잖아. 이러다가 진짜 이어져서 결혼할 수도 있어.][결혼이라니, 너무 앞서간 거 아니야? 사도현이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아. 배경윤은 진찬영을 더 좋아한다고!]네티즌은 댓글 수백 개씩 달면서 열렬하게 토론했다. 진찬영의 평온한 얼굴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사도현도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사도현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열렬하게 구애했는데도 하늘 씨한테 졌어요. 정말 아쉬워요.”“사도현 씨, 제 말 좀 들어봐요. 경윤 씨가 장난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저는 오늘 경윤 씨랑
배경윤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진찬영은 배경윤이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동안 꾸준하게 좋아했던 연예인이기도 했다.배경윤은 그동안 진찬영과 지내면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정적인 팬에서부터 진찬영을 좋아하는 여자가 되었다.가끔 진찬영과 손을 잡고 천천히 늙어가는 평화로운 삶을 그리기도 했었다.진찬영은 자신을 향해 뻗은 배경윤의 손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불쾌함을 전부 씻어버리고 손을 잡으려고 했었다.그런데 이때 사도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배경윤의 손을 잡았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밤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으니 아무도 빠지면 안 된다고 했어요.”말을 마친 사도현은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그리고 배경윤을 데리고 게스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이 손 안 놔? 누구 마음대로 내 손을 덥석 잡는 거야? 때리기 전에 놔줘.”배경윤은 살기가 넘치는 눈으로 사도현을 쳐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사도현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사도현은 진찬영과 배경윤이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훼방했다.“내가 잡고 싶어서 잡은 줄 알아? 제작진이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사도현은 게스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사회자 최빈을 향해 말했다.“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죠.”최빈은 뒤쪽에 서 있는 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찬영 씨,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곧 고백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은 매일 밤에 게스트들이 모여 앉아 호감이 있는 사람한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야 했다. 다 쓴 편지는 추첨함에 넣고 제작진이 지목한 게스트가 나와서 뽑은 편지를 읽으면 되었다.낯부끄러운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게스트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아주 궁금했다.마음을 편지에 담아 공개하기에
배경윤은 초가집의 뒷문으로 나온 뒤에 일부러 바닷가를 돌아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 곳으로 향했다. 게스트들은 배경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했다.“경윤 언니, 오셨어요?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경윤 언니가 와서 너무 기뻐요.”장유빈이 머무는 숙소는 배경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장유빈은 바비큐 파티에 같이 참가하자고 했지만 배경윤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못내 아쉬웠던 장유빈은 배경윤을 발견하고는 신나서 벌떡 일어났다.“모두 참가했는데 저만 빠지면 그렇잖아요. 저만 유별난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늦게 와서 죄송해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요. 경윤 씨, 이것 좀 봐요. 찬영 오빠가 경윤 씨를 위해서 쉬지 않고 고기만 구웠어요. 경윤 씨가 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더라고요.”소수민은 불판에 올려진 고기를 보면서 부러운 어조로 말했다.“같은 여자라도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요. 저희는 먹고 싶은 걸 구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구웠어요. 그런데 경윤 씨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찬영 오빠가 양념 고기, 불닭 소스 고기, 허니 고기를 준비했대요. 먹음직스러워서 침이 저절로 고였어요.”배경윤은 진찬영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 미안했다.“찬영 오빠, 고기를 굽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제가 오빠를 위해서 뭐라도 할게요.”배경윤은 진찬영의 옆으로 걸어가서 같이 고기를 굽고 양념을 발랐다.“조심해요!”진찬영은 튀어 오르는 숯불을 막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숯불은 그대로 진찬영의 손에 튀었다.“찬영 오빠, 괜찮아요? 이 고귀한 손으로 왜 막은 거예요! 흉이 지면 안 되니까 얼른 가서 약부터 발라요.”소수민은 입을 틀어막고 기겁하더니 이내 소리를 질렀다.“찬영 오빠, 저...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빠가 다쳤어요.”깜짝 놀란 배경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괜찮아요. 덴 것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