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차설아는 서로 밀치는 게 싫어 억지로 목걸이를 받았다.그녀는 바닥에 넘어진 허청하에게 손을 내밀고는 어쩔 수 없는 듯이 말했다.“알겠어요. 목걸이는 받을게요. 하지만 청하 씨가 말했어요, 어떻게 하든 내 마음이라고. 이따가 바로 쓰레기통에 버릴 거예요.”허청하는 화를 내기는커녕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버려요. 난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겠던데요. 그러니까 설아 씨가 대신 버려줘요... 아까 말했듯이 설아 씨한테 지는 거면 깔끔하게 인정할게요.”그 말을 들은 차설아는 어안이 벙벙했다.‘이상하단 말이야. 두 사람 야간도주를 꾸미던 거 아니었어? 왜 갑자기 날 끌어들이는데? 나한테 진다는 건 또 무슨 말이야?’하지만 그녀는 허청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그녀는 신부로서 도주를 할지 아니면 예정대로 식을 치를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무 많은 걸 물어보면 오히려 신경 쓰이는 티가 날 것이다.‘쳇! 나 하나도 신경 안 쓰인다고!’해질녘이 다가오자 해가 조금씩 지고, 바닷물과 하늘은 주황빛으로 물들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푸른 지붕의 하얀 성당은 사방이 유리 벽으로 되어 성당 안에 있어도 이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고 낭만은 극에 달했다.이때, 종은 ‘쨍그랑’ 몇 번 울리더니 곧 결혼식이 시작될 예정이었다.목사는 손에 십자가를 들고 이미 준비를 마쳤고 하객들도 차례차례 자리에 앉아 신랑 신부가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자리를 안배한 사람이 차설아와 원한이 있는지, 그녀가 성도윤과 이혼한 걸 분명 알면서도 그녀를 성도윤의 옆자리에 앉혔다.더 화가 나는 것은, 그녀의 오른쪽에 성도윤이 앉은 것도 모자라, 왼쪽에는 오랜 원수인 소이서가 앉았다. 좌우로 원수들이 앉았으니 그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오른쪽에 앉아 있는 빙산같이 차가운 얼굴을 보고, 또 왼쪽에 앉아 있는 전 시누이를 보더니 그녀는 당장이라도 자리를 바꾸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할 때, 목사는 신랑 강진우의 입장을 알렸다.그래서 그녀는 어쩔 수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목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목을 가다듬고는 다시 한번 말했다.“인생의 파트너는 항상 늦게 오는 법이죠. 하지만 기다릴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것이니 다시 한번 신부 허청하 양을 모시겠습니다!”음악이 다시 흘러나왔다.하지만 음악이 끝날 때까지 허청하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양가 부모님은 다급한 마음에 상황을 알아보러 사람을 보냈다.하객석에서도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고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되었다.차설아는 팔꿈치를 성도윤을 툭툭 치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당신 짓이야? 신부를 어디에 숨겼어?”어두운 얼굴색을 보인 성도윤은 차갑게 말했다.“혀가 잘려 나간 걸 보기 싫으면 입 다물어.”“...”차설아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바로 입을 꾹 다물었다.‘아니면 아닌 거지. 왜 그렇게 화를 내? 쪼잔한 사람 아니랄까 봐!’사도현이야말로 가장 마음이 다급한 사람이었다. 그는 무대로 뛰어가더니 사람들을 진정시켰다.“다들 진정하세요. 진우 형이랑 청하 누나는 정말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그래서 분명 결혼식을 색다른 방식으로 꾸몄을 테니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사도현은 허청하를 오랫동안 짝사랑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충성을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혼식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바삐 움직였는데 그가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사람이 좋은 사람과 원만한 결혼식을 치르는 걸 바랄 뿐이었다.갑작스런 상황에 사도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괜스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잔뜩 흥분한 사도현과는 달리 가장 급해야 할 신랑 강진우는 오히려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그는 점잖은 얼굴로 제자리에 서 있었고 온화한 얼굴에는 별 표정이 없었다.마치 이 일이 그와 아무 상관이 없듯이 말이다.“큰일 났어요. 허청하 씨가 사라졌어요. 휴게실에는 웨딩드레스만 남아있어요!”곧 누군가가 소식을 전했다.“사라졌다고?”사도현은 소식을 전한 사람의 옷깃을 덥석 잡더니 분노의 얼굴로 말했다.“헛소문 내지 마. 청하 누나가
그 말은 일파만파를 일으켰고 사람들은 방금 말을 한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떠오르는 여배우, 지난번의 골든 피쉬 여우 주연상의 수여자 조여빈이었다.조여빈은 소이서의 옆자리, 즉 성도윤과 차설아 두 사람과 같은 줄에 앉아 있었다.그녀는 줄곧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성도윤과 차설아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다른 사람이라면 성도윤과 차설아가 서로 원수처럼 보이겠지만, 조여빈은 배우로서 날카롭게 두 사람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성도윤과 차설아는 분명 심상치 않은 사이이고, 서로 질투심에 티격태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봤다.그녀는 질투심에 반드시 차설아를 쓰러뜨리고 말겠다는 생각을 굳혔다!사도현은 빠르게 조여빈의 앞으로 걸어가더니 다급하게 물었다.“그게 무슨 소리죠? 신부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어요?”“허청하 씨가 정확히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허청하 씨의 실종이 누구와 관계되는지는 알 것 같아요...”조여빈은 역시 배우였다. 우수에 찬 아름다운 얼굴로 차설아를 힐끔 보더니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눈빛을 따라 차설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차설아는 흥미진진하게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니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뭐예요? 왜 다 저를 보는 거예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조여빈이 말했다.“차설아 씨, 연기 그만하시죠. 아까 허청하 씨랑 싸우고 있는 걸 휴대폰으로 똑똑히 찍었거든요...”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현장은 이내 다시 떠들썩해졌다.사도현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조여빈을 보며 재촉했다.“증거 있나요? 일분일초 다급한 상황이에요. 만약 신부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지금이라도 구하러 가야 한다고요!”역시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허청하는 분명 사고를 당해 갑자기 사라지게 된 것이다...차설아는 갑자기 누명을 쓰게 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그녀는 침착하게 조여빈을 향해 말했다.“맞아요, 증거가 있으면 꺼내봐
소이서의 말은 차설아를 지지하던 사람들도 모두 등 돌리게 했다.차설아는 갑자기 모든 사람의 타깃으로 되었다.성도윤과 강진우를 뺀 모든 사람들은 그녀를 악독하다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다 조용히 하세요!”강진우는 모처럼 진지한 얼굴을 드러내고는 천천히 차설아 앞으로 다가갔다.그는 허청하에게 줄 반지를 꺼내 성도윤에게 건네고는 말했다.“도윤아, 이 반지를 설아 씨한테 끼워줘.”성도윤은 워낙 똑똑했기에 곧바로 강진우의 뜻을 알아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차설아의 손을 잡고는 반지를 그녀의 약지에 끼우려고 했다.차설아는 긴장한 마음에 뒷걸음질을 치며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 반지를 함부로 끼면 안 돼. 얼른 가져가!”“껴!”성도윤이 단호하게 말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충돌이 있는 것처럼 서로 밀고 당기기 시작했다.“땡땡땡.”길시의 종소리가 울렸고 노을은 해면에 더 번지더니 성당에는 예언이 울리기 시작했다...해질녘에 두 남녀가 반지를 서로 끼워준다면 두 사람은 바다의 여신의 축복을 받아 서로를 영원히 떠나지 않고 백년해로한다고 한다.성도윤은 성공적으로 반지를 차설아의 약지에 끼웠고, 차설아는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성도윤을 멀리 밀어버렸다.성도윤은 여세를 몰아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고, 강진우는 이 순간을 즉시 휴대폰으로 촬영했다.그가 찍은 사진은 충분히 차설아와 허청하가 서로 밀고 당기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 또 차설아의 말이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여러분들도 보셨듯이, 두 사람이 꼭 충돌이 있어야만 서로 밀고 당기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차설아 씨의 말대로 본인이 목걸이를 사양했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차설아 씨의 말이 꼭 거짓말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강진우가 사람들을 향해 설명하면서 차설아의 편을 들어줬다.차설아는 그제야 두 사람의 정성을 깨닫고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성도윤을 바라봤지만 차마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는 없었다.성도윤은 도도한 표정을 짓고
사람들은 모두 시선을 스태프한테 옮겼다.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성인리... 성인리 쪽의 절벽에 허청하 님의 신발이 있습니다. 아마 허청하 님이 바다에 빠진 것 같습니다!”성인리는 이 구역의 유명한 곳이었다. C자형 절벽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세가 높고 험난했다.“바다에 떨어졌다고요?”사도현은 다급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청하 누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단 말이에요. 얼른 사람 구하러 가요.”그는 앞장서서 달려 나갔고, 강진우와 성도윤은 그 뒤를 따랐다.차설아가 흠칫하고는 호기심 많은 하객들과 함께 따라갔다.성인리의 바닷물은 비교적 잔잔했다.해는 이미 뉘엿뉘엿 졌기 때문에 날은 점점 어두워졌고 그들은 허청하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차설아는 벼랑 끝에 가지런히 놓인 웨딩화를 보고는 추측하기 시작했다.“혹시 허청하 씨가 하이힐 때문에 힘들어해서 일부러 벗어둔 건 아닐까요? 아직 이 주위에 있을 수도 있잖아요.”“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조여빈은 작정하고 차설아를 물고 늘어졌다.“모두들 알다시피 허청하 씨는 사리가 밝은 사람입니다. 본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 게 말이 돼요? 사람들이 자기를 기다리는 걸 뻔히 알면서도 주위를 돌아볼 마음이 있을까요? 정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오히려 차설아 씨가 도둑이 제 발 저려 시간을 끌려고 하는 게 아닌가요? 우리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린 후에 차마 입밖에 내뱉을 수 없는 이상한 짓을 하려는 게 아닐까요?”“차설아 씨가 허청하 씨를 절벽으로 밀어낸 건 아닌가요? 허청하 씨에게 무슨 사고가 났다면 당신은 가장 혐의가 큰 용의자예요!”조여빈의 말은 일파만파를 일으켰다.“맞아요! 저 사람일 거예요!”허청하의 어머니는 눈이 빨개진 채 차설아에게 달려들고는 그녀를 마구 두드리기 시작했다.“이 악독한 년, 왜 우리 딸을 해치려는 거야? 우리 딸 돌려내!”차설아는 충분히 그녀의 애타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화를 내지도 않고 반격하지도 않았다. 그저 어쩔 수 없는
“4년 동안 결혼생활을 보냈는데 어떻게 아무 상관이 없겠어?”성도윤의 차가운 눈빛에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그래서 황당하게 들리는 말도 사람들은 그럴듯하게 받아들였다.성도윤의 뒤에 선 차설아는 마음이 착잡했다.그녀는 성도윤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의 편을 들어줄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더더욱 생각지 못했다.‘나한테 차갑고 매정하게 굴던 사람이 누군데? 4년 동안 결혼생활을 가장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누군데? 이제 와서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야?’강진우가 입을 열었다.“도윤이 말이 맞아요. 지금 설아 씨가 청하를 바다에 밀어 넣었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어요. 함부로 추측하지 말자고요. 폭력을 쓰면 더더욱 안 되고요. 이럴 시간 있으면 따로 움직여서 바다를 따라 찾아보는 건 어때요?”사람들은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저마다 바다를 따라 허청하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녀를 찾기 시작했다.성도윤도 따라나섰고 차설아는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방금 성도윤의 도움에 감동하여 차설아는 기회를 봐서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하지만 성도윤은 허청하를 많이 걱정한 듯했다. 발걸음은 조급했고 애타는 표정으로 찾고 있었다.역시 허청하는 그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사람이다. 아무리 결혼식을 망치지 않았다고 해서 허청하를 완전히 내려놓은 건 아닌 듯했다.“그게, 도윤 씨...”차설아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남자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지금의 성도윤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냥 빨리 허청하를 찾고 싶었기에 차설아에게 귀찮은 듯이 차갑게 대답했다.“무슨 일인데?”그의 차가운 목소리에 차설아는 몸 둘 바를 몰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편을 들어줘 고마워.”“고마워할 것 없어.”성도윤은 바다를 샅샅이 뒤지고 있어 차설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만약 정말 당신이 한 짓이라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차설아의 얼굴색은 한껏 어두워졌고, 마음도 씁쓸해졌다.‘
하지만 차설아가 아무리 불러도 성도윤은 전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성도윤, 그렇게 죽으려고 작정했으면 나도 안 말리겠어. 당신이 죽는다면 절대 당신을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한편으로는 남자가 걱정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충동적인 행동 때문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성도윤, 이 세상에 정말 미련이 안 남는 거야? 첫사랑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해?’차설아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녀가 알고 있던 차갑던 남자는 사실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다만 성도윤의 뜨거운 사랑은 모두 허청하에게 주어졌을 뿐, 그녀는 바랄 수도 없었다.성도윤은 워낙 수영을 잘했기에 곧바로 허청하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었다. 그는 길 팔로 허청하를 잡고는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두 사람은 곧 얕은 곳까지 오게 되었는데, 갑자기 큰 파도가 치더니 성도윤과 허청하는 또다시 파도에 휩쓸렸다. 어디에서도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상황은 매우 위급해졌다.“안돼!”차설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는데 본능적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강진우와 사도현, 그리고 그들을 뒤따른 사람들까지 거센 파도를 보더니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왜 아직도 멍하니 서 있어요? 얼른 가서 사람 구해야죠. 도윤 씨랑 청하 씨 모두 파도에 휩쓸려 가게 생겼어요!”차설아는 다급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지금처럼 절망적인 순간을 전혀 느껴보지 못했다.뱃속의 두 아이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작 바다로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러 갔을 것이다.사도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다에 뛰어들려고 했는데 강진우는 그를 말렸다.그는 세 사람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맏형으로서 가장 이성적이었다.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사도현에게 말했다.“파도가 너무 거세서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어. 전문 구조대가 이미 출동했으니 우리는 우리 자신부터 보호하자고. 바닷가에서 차분히 기다리자.”“차분히 못 있겠다고!”사도
두 사람은 안전하게 바닷가에 도착했다.강진우가 천천히 그녀를 내려주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까는 죄송했어요. 저도 너무 다급한 나머지 실례를 했네요. 제수씨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괜찮아요, 오히려 제가 고맙죠. 아까는 제가 너무 흥분했어요.”차설아도 진정을 되찾았다. 방금 자신의 행동이 너무 성급했고 선을 넘었다는 걸 깨달았다.막말로 성도윤과 전남편이 죽든 살든 그녀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하지만 정신을 차려서도 차설아는 바닷가에 서서 두 손을 가슴에 두른 채 조용히 해면을 바라봤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저도 모르게 성도윤을 응원하고 있었다.‘돌아와, 성도윤 돌아오라고. 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제발 꼭 돌아와.’그리고 텔레파시가 통한 듯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다.이미 사라진 성도윤은 뛰어난 수영 기술로 파도를 헤치고 헤엄쳐 돌아왔다!“돌아왔어! 돌아왔어요!”사람들은 기쁜 마음에 얼른 앞으로 나가 그들을 맞이했다.이때 이미 기진맥진해 있던 성도윤은 허청하를 강진우와 사도현에게 넘기고는 땀을 뻘뻘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딸아, 우리 예쁜 딸아. 왜 이렇게 됐어? 엄마 아빠 놀라게 하지 마!”허청하의 어머니는 울부짖으면서 허청하를 구하는 데 모든 신경을 썼다.차설아는 성도윤 앞에 다가가고는 애써 희열의 눈물을 삼키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어머, 성도윤은 역시 다르네. 깊은 구역까지 수영해 갈 수 있다니. 상어가 배고플지 걱정되었어? 상이 먹이로 자진하게? 이런 희생정신이 어디 또 있어? 정말 하늘도 감동하겠어!”“...”성도윤은 너무 힘이 든 나머지 차설아와 말할 기운도 없었다.그는 그저 석양에 비친 차설아의 얼굴이 너무 귀여워 보이기만 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듯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도윤 씨 그렇게 사람 돕는 걸 좋아하니 훈남 오빠라고 불러도 되겠어!”차설아는 이러쿵저러쿵 시시콜콜한 말만 하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했다.“훈남 오빠, 어때? 더 버틸 수 있겠어? 의사 불러줄까?”성도윤
“설아야...”차성철이 천천히 손을 뻗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설아야, 그동안 나 때문에 힘들었지? 정말 고생했어. 미안해...”“오빠, 그런 말 하지 마.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차설아는 차성철이 누워있는 병실 침대맡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렸다.“사실 의식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작은 상자에 갇힌 채로 꼼짝도 하지 못했던 거야. 상자를 열지 못해서 이 안에서 죽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자꾸 네 생각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난 하느님께 정말 감사해. 나에게 기회를 주어서 널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야.”차성철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차성철은 많이 변했다. 예전처럼 날카롭고 예민하게 굴지 않았고 한결 부드러워졌고 말투도 다정해졌다.“뭘 자꾸 그런 말을 해! 오빠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서 우리 달이랑 원이가 커서 결혼하는 모습을 봐야지. 손주도 봐야 하는데 불길한 말은 하지 마. 오빠는 그냥 오래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거야. 하느님의 힘을 빌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다시 깨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차설아는 눈물을 닦으면서 차성철을 와락 안았다.“그래. 너랑 달이, 원이를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지내야지.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자. 우리 가족 모두 모여서 재밌게 지내자. 네가 하고 싶었던 걸 같이 하고 가족 여행도 가자.”“말한 대로 해야 해. 지금 약속하자. 앞으로 오빠가 또 다치면 다시는 나 못 볼 줄 알아! 그때는 오빠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남매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눈물의 약속을 했다. 보는 사람마저 눈물이 나는 광경이었다. 배경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생각났던 것이다.차설아의 말에 의하면 배경수는 아주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처음 보는 여자와 결혼했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걱정되었다. 차설아는 울다가 차성철이 베고 있는 베개의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은반지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값이 꽤 되는
바람이 멈칫하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뭐, 뭐라고?”“네가 스파이지? 네가 사주받고 우리 오빠를 죽이려고 한 거잖아! 그렇지 않으면 왜 우리가 식당에 간 사이에 오빠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차설아는 붉어진 두 눈을 하고서 물었다. 그동안 차성철의 상태에 대해 아는 사람은 바람과 차설아 두 사람뿐이었다.‘아무리 바람이 날 보살펴 주고 내 곁을 지켰다고 해도 누군가가 바람한테 지시해서 나를 감시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그래. 바람은 선우 가문 사람이니까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오빠를 죽이려고 했을 수도 있어. 그러면 차씨 가문의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으니까!’배경윤이 차설아를 뜯어말렸다.“설아야, 말이 좀 심하다? 바람 씨가 어떻게 사주를 받고 그랬을 수가 있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바람 씨가 너한테 온갖 심혈을 쏟아부을 리가 없잖아. 성철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움직였겠지. 바람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며 물었다.“넌 알고 있었지?”“그, 그게...”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에서 걸어 나왔다.“의사 선생님, 오빠 어떻게 되었어요?”차설아는 사건의 배후에 대한 생각을 뒤로 하고 의사한테 다가가 물었다.“제때 발견한 덕분에 환자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어요. 호흡도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다행이에요. 정말 감사해요...”차설아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최근 차설아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울었다 웃기를 반복했다. 몸에 무리가 가면서 차설아도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들어가 봐도 돼요. 박 선생님의 말씀대로 곧 깨어날 것 같거든요.”의사의 말에 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해요!”차설아는 병실로 들어가 차성철을 바라보았다. 배경윤도 그 뒤를 따라갔지만 바람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밖에 서 있었다.“바람 씨, 거기서 뭐 해?”배경윤이 고개를 돌려
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서씨 가문 서은아였다. 서은아는 그동안 차설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설아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성철이 있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사에게 돈을 쥐여주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수술을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차성철은 살짝 다쳐도 부서질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서은아는 병실 침대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작은 물건을 차성철 베개 옆에 올려놓고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해.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당신 여동생도 기가 죽어서 나대지 못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박성훈이 와서 당신을 살렸지 뭐야? 성도윤이 박성훈한테 부탁한 거라면서? 정말 어이가 없더라. 보나 마나 차설아가 성도윤한테 부탁한 거겠지. 뻔뻔스러운 년이...”서은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날 탓하지 마. 탓하려면 그 못난 여동생을 탓해. 차설아는 내가 성도윤과 약혼한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성도윤한테 달라붙으면서 날 괴롭혔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오빠인 당신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서은아는 말을 마친 뒤, 감시 카메라를 피해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앉아 있던 차설아는 바람이 포장한 음식을 보면서도 어쩐지 불안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이야. 다른 식당에서 하는 건 눅눅해서 맛없지만 이 식당에서 하는 건 바삭하잖아. 바람 씨가 널 위해서 사 온 건데, 한 입이라도 먹어 봐.”배경윤은 불안해하는 차설아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바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이 식당에 줄을 서려고 아침 일찍 깨어났어. 하지만 스파크가 좋아하는 거라면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사러 가야지.”바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피식 웃었다. 그동안 차설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쯧쯧. 바람 씨한테 설아를 맡겼다가는 뚱보가 되겠어. 한 달 안에 10킬로 찐다는 것에 내 머리카락을 걸겠어.”“스파크는 살이 쪄도 예뻐서 괜찮아. 지금처럼 귀여울 거
배경윤은 박성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박성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데려온 의사라는 말에 성도윤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경계했다.“경윤아, 그러지 마. 박 선생님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분이야.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씨 가문의 은인이 될 분이거든.”차설아는 다시 일어나더니 박성훈한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박 선생님, 죄송해요. 경윤이는 늘 저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는 예민하게 굴거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병원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만나본 보호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반응이거든요. 저는 이해해요.”박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 말고 성 대표님께 고맙다고 해야죠. 저는 수술할 생각이 없었는데 성 대표님이 간절하게 부탁했고 제가 좋아하는 바다낚시까지 같이 해주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바다낚시 내기에서도 졌으니 성 대표님 말대로 수술해야 했어요.”“성도윤이 어렵게 모신 분인 건 알고 있었어요. 나중에 오빠가 깨어나면 인사하려고요.”“잘 생각했어요.”박성훈이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이었다.“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힘들 거예요. 사실 생각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으니 마음 편안하게 먹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박성훈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오후 4시라서 박성훈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배경윤은 차설아가 또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밥부터 먹자.”“괜찮아. 난 배고프지 않아.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오빠가 일어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차설아는 병실 밖에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차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그 나쁜 놈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차설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래도 도움받았잖아.”“아...”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머뭇거렸다. 차설아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고는 목적, 증언, 사건 발생 시간으로 보았을 때 성도윤이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성도윤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꺼냈다가 차설아와 성도윤이 싸우게 된다면 손해 보는 건 차설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성도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설아야, 그저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성도윤을 너무 믿지 마. 성도윤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진심을 드러내지 말고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지?”배경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나도 알아. 지금까지 성도윤을 용서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빠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성도윤이 떠올라서 화가 솟구쳐 오르거든... 성도윤이랑 잘 해볼 생각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의사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수술실을 바라보면서 말했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눈에 핏줄이 가득 서렸지만 차성철이 나올 때까지 쉴 수 없었다. 성도윤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설아의 마음이 아팠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애매모호한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더 이상 그 사람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알지만 항상 경계해야 해. 그 사람이 얼마나...”“알겠어. 곧 수술이 끝날 테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자.”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었다.“그래. 같이 기다려보자.”배경윤은 슬픔이 가득 서려 있는 차
사도현은 턱을 쳐들더니 거만하게 말했다.“내가 바로 배경윤 남자 친구예요.”사도현의 말에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회사 대표가 당당하게 공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뭐?”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 사도현이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예상 못했는지 사도현을 향해 부르짖었다.“사도현, 너 정말 미친 거야?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영 오빠 앞에서 공개하다니... 정말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내 미래의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알려주려고 작정한 거야!’“내 말이 틀렸어? 우리 사귀는 사이 맞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온 첫 번째 날에 어떻게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잤겠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사도현이 피식 웃더니 부르짖는 배경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제야 자신의 것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 그건...”배경윤은 말문이 막혔다. 설명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것 같아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진찬영이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두 사람이 한방에 들어가는 것이 사귄다는 증거라면, 사도현 씨는 배경윤 씨가 아니라 윤설 씨의 남자 친구인 것 같은데요? 윤설 씨 곁을 떠난 적이 없잖아요. 도대체 두 분 중에서 누구의 남자 친구인지 헷갈리네요. 아니면 두 분을 속여서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닐까 싶어요.”진찬영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그러고는 도덕적인 면에서 사도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맞아요! 같은 방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날에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외양간에서 자기 싫었거든요. 그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윤설 씨랑 사도현 씨 사이는 각별했어요. 정성을 다해서 보살핀 여자랑 사귀는 것 같은데 왜 나를 언급하고 난리야! 난 너처럼 미친놈이랑 사귈 바
그 말을 들은 장윤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윤태가 다급히 뜯어말렸다.“집에 갈 정도로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죠! 그런 설정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찬영이도 커플 설정을 원하지 않을 테니 강요할 수 없었거든요. 다들 장난치는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장윤태는 게스트들이 말하는 커플 중 한 쌍이 진찬영과 배경윤임을 확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진찬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장 감독님,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배경윤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개인적인 일로 해안시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 프로그램 촬영하는 동안 정말 재밌었어요. 게다가 찬영 오빠랑 커플로 촬영할 수 있다고 하면 더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해요.”“잘생긴 남자라면 다 좋아하나 보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혼자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장윤태는 배경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재빨리 다른 제안을 했다.“급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곧 연애 예능 촬영이 있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우리 찬영이랑 같이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을래요?”“좋아요!”배경윤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진찬영과 함께 촬영할 수 있다면 무슨 프로그램이든지 무조건 출연할 것이다. 진찬영과 떨어지려니 아쉬웠지만 돌아가서 차설아의 곁을 지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작별 인사를 했다.“배경윤 씨랑 같이 출연한다면 저도 좋아요.”진찬영은 배경윤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진찬영은 배경윤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 마을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배경윤이 있는 곳에 꼭 따라갈 것이다.“그럼 두 사람이 사인한 계약서 말고 다른 계약서를 준비할 테니 이제 만나서 얘기해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으면 이 프로그램 계약서대로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장윤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술을 마시면서 껄껄 웃었다.“안 돼요.”사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배경윤은 너무 바빠서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배경윤
사도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누가 진찬영을 밀어주든지 상관없이 배경윤에게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재벌가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윤설 씨가 사도현 씨한테 빌붙어서 드라마 여주인공 역만 맡는 것처럼요?”진찬영이 말을 이었다.“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사도현 씨랑 같은 줄 알고 섣불리 판단할 수밖에 없겠죠. 더 이상 의미 없는 대화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진찬영이 가마뚜껑을 열어보자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추어탕 안에 청양고추를 넣으니 배경윤이 좋아하는 매콤한 추어탕이 완성되었다. 사도현이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할 때, 진찬영이 추어탕을 옮겨 담고는 주방을 나섰다. 사도현은 불을 피우면서 흘러나오는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두 남자의 대결은 사도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여러분, 오늘 메뉴는 추어탕이에요! 어서 드셔보세요!”진찬영은 환하게 웃으면서 쉬고 있던 게스트들을 불렀다. 배경윤은 터벅터벅 걸어 나와서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진찬영이 해준 밥을 먹어서 기쁘긴 했지만 웃을 힘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진찬영은 직접 국을 떠주면서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고 다시 생각해요. 배경윤 씨를 위해 만든 건데, 한 입도 먹지 않으면 좀 속상할 것 같거든요.”“아, 죄송해요. 생각할 게 많아서 신경 쓰지 못했어요.”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추어탕을 먹기 시작했다.“먹어봤던 추어탕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당연히 그렇겠죠. 추어탕에 진찬영 씨의 사랑이 가득 들어갔으니 맛없을 리가 없잖아요. 우리 같은 구경꾼들은 배경윤 씨가 부러워 죽겠다니까요!”“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직접 미꾸라지를 손질했다니깐요. 보통 정성이 아니에요! 그 여자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맛있는 추어탕을 먹어보네요.”추어탕을 맛보던 게스트들이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진찬영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들으면서 배
윤설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나는 그렇다고 한 적 없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더 알려줄 것도 없고요. 정말 궁금하다면 의심 가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세요.”배경윤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미 배후가 밝혀진 마당에 더 캐묻는 건 멍청한 사람이나 할 짓이었다. “그리고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요. 도현 씨랑 성도윤은 생사를 함께 겪은 형제이니 도현 씨를 멀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도현 씨는 성도윤 편을 들 테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차성철이 수술했다는 것을 성도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게다가 성형외과 의사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윤설은 배경윤의 반응을 지켜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성도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성도윤이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 연관된 일이긴 하지만 그게 결국 성도윤의 일이 되는 거지. 난 사실만 말했으니 아무 잘못도 없어. 배경윤, 이제는 도현 씨 곁에서 떨어져!’“난 성도윤이 그런 일을 벌일 줄 알았어요!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라고...”윤설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모든 것이 성도윤과 연관된 일이라고 확신했고 사도현이 성도윤을 도와주었다고 여겼다. ‘계속 여기에 남아있어서는 안 돼. 얼른 해안시로 돌아가서 설아한테 알려줘야지. 그놈 때문에 또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어! 설아야, 조금만 기다려줘!’주방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은 두 남자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진찬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올린 채 두부를 썰었다. 집중하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있어서 여자든 남자든 진찬영에게 반하고 말 것이다.하지만 부뚜막 앞에 앉아 불을 피우고 있는 사도현은 진찬영을 노려보기에 바빴다. 사도현은 장작을 진찬영의 팔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토막으로 끊이고 불 속에 집어넣더니 차갑게 말했다.“우리 둘밖에 없으니 솔직하게 말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예요? 돈 때문이라면 원하는 만큼 줄 테니 말해봐요. 얼마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