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이 덤덤하게 한 말은 배경윤을 향한 명백한 도발이었다. 배경윤은 윤설과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알 수 없는 불쾌함이 느껴졌다. “눈치 없이 들어와서 죄송해요. 하던 것 마저 하세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배경윤이 입술을 깨문 채 병실을 나가려고 했다.“거기 서.”사도현이 윤설을 뿌리치고는 배경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하마터면 사람이 죽을 뻔했는데 할 말 없어?”사도현은 배경윤의 편이었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가 없었다. 배경윤 편만 들면 배경윤이 앞으로 더한 짓도 할 수 있다고 여겼고 윤설이 질투한다면 배경윤한테 복수할 수 있었기에 일부러 더 차갑게 말했던 것이다.하지만 사도현의 마음을 알 리 없었던 배경윤은 사도현이 윤설 편을 드는 것처럼 느껴졌고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배경윤이 아니었다. 배경윤은 윤설을 노려보면서 말했다.“내가 윤설 씨를 밀어버린 게 아니라는 건 윤설 씨가 제일 잘 알겠죠. 하지만 상황상 내가 책임질 수밖에 없고요. 내가 뭘 하면 될까요? 자필 사과문 아니면 입원비 전액 배상? 말 좀 해봐요.”배경윤은 윤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뒤로 넘어졌는지 알고 있었기에 직설적으로 물었다.“괜, 괜찮아요... 배경윤 씨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요. 도현 씨랑 얘기하면서 기분이 풀렸어요. 배경윤 씨한테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고요. 오늘 일을 없던 일로 하는 건 도현 씨를 위해서예요.”윤설은 말하면서 사도현을 쳐다보더니 미소를 지었다.“사실 배경윤 씨한테 고마워해야 할 판이에요. 저랑 도현 씨는 오해 때문에 멀어졌는데 이번 일로 도현 씨의 진심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다쳤을 때 잔뜩 긴장한 채 달려오는 도현 씨를 보면서 지난 오해들이 풀렸고 예전처럼 서로 응원하는 사이로 남으려고요. 저는 도현 씨랑 서로를 제일 잘 알고 아껴주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어요. 도현 씨, 제 말이 맞죠?”사도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지난 일에 연연하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기로 했어.”“하! 예전처럼 서로 응원하는
윤설은 사도현을 힐끗 쳐다보면서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그렇게 된다면 너무 좋지만 도현 씨 입장도 들어봐야죠.”“들어볼 것도 없어요! 해안시에서 사도현이 윤설 씨를 따르는 충견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몇 년 동안 한 우물만 판 사람이 윤설 씨 말고 다른 여자를 쳐다볼 리 없죠. 두손 두발 다 들고 찬성할 거예요.”배경윤은 사도현을 힐끗 쳐다보면서 말했다. 사도현은 입술을 깨물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배경윤을 덤덤하게 쳐다보았다.“내 말이 틀렸어? 사도현, 우리 윤설 배우님께서 결혼까지 생각했다는데 할 말 없어? 좋으면서 일부러 참고 있는 거야?”배경윤은 사도현에게 질문하면서도 눈을 마주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실 배경윤은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속상했다. 하지만 일부러 속상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두 사람을 이어주려고 노력하는 척했고 억지 부렸다.“내가 할 말을 네가 마저 다 하면 되잖아. 오지랖 넓은 것이 이럴 때 도움 되네.”사도현은 배경윤을 노려보면서 차갑게 말했다. 배경윤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말했다.“너를 첫사랑과 이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잖아. 그런데 날 좀 이상한 사람 취급하네? 내가 오지랖이 넓어도 네가 좋아할 말만 했거든! 은혜도 모르는 놈이 입만 살았네.”“네가 오지랖이 넓은 걸 알고 있었구나. 몰라서 선 넘는 줄 알았지.”사도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배경윤을 노려보면서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세상에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제일 잘하는 여자는 배경윤일 것이다. 다른 여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유혹하는 데도 가만히 있더니 이제는 두 사람을 이어주려고 직접 나섰다.‘배경윤, 볼수록 대단한 여자야. 나랑 윤설을 이어주려고 노력했으니 너한테 절이라도 할까?’“말을 돌려 하면서 날 비난하는 것 같으니까 이만 빠져줄게. 어차피 곧 결혼하게 될 두 사람 앞에서 내가 실언했어. 이러다가 이혼하면 나한테 불똥 튈까 봐 겁나기도 해. 걱정해 줘도 뭐라 하고 축하해줘
말을 마친 배경윤은 씩씩거리면서 병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배경윤은 20 몇 년 동안 살아오면서 이렇게 억울하고 답답한 적은 처음이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뜨겁게 타오르다가도 식는 것이 사랑이구나.’배경윤이 밀어서 언덕에서 떨어졌다고 주장하는 윤설 곁에 사도현이 늘 함께했다. 배경윤은 차성철에 관한 얘기를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윤설의 상태가 나아지면 다시 얘기를 해보면서 그 사건의 배후가 도대체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했다.그래서 배경윤은 마을에서 지냈고 윤설이 가는 곳마다 따라서 갔다. 윤설의 부상으로 인해 예능 >은 촬영이 중단되었고 고정 멤버들은 마당에 모여 앉아 불만을 토로했다. 감독 장윤태는 연못가에 앉아서 한숨만 내쉬는 배경윤을 쳐다보더니 혹시라도 안 좋은 마음이라도 먹을까 봐 말을 걸었다.“배경윤 씨, 촬영할 때 원래 이러저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거든요. 저는 배경윤 씨가 일부러 윤설 씨를 민 게 아니라고 믿고 있으니 자책하지 말아요. 그 영상은 공개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네티즌의 질타를 받을 일이 없도록 제가 책임질게요.”장윤태는 자연스럽게 배경윤 곁에 앉았다.“제가 자책한다고요?”배경윤은 장윤태를 힐끗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저는 자책한 적 없는데요? 제가 밀었다는 듯이 거짓말하는 여자랑 그 옆을 지키고 있는 남자 때문에 속상해한 적도 없어요. 그리고 저는 악플이든 질타든 두렵지 않아요. 예전에 좋아하는 연예인 팬덤 내부에서 말싸움이 벌어졌을 때 제가 결국 이겼고 팬클럽 회장 자리를 이어받았거든요. 그런데 그깟 네티즌의 질타를 두려워할 것 같아요?”배경윤의 말에 장윤태가 껄껄 웃었다.“여전히 씩씩한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네요. 배경윤 씨가 계속 연못을 바라보고 있어서 뛰어내릴까 봐 조마조마하더군요.”“그럴 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아니라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이곳에 던져버리고 싶거든요. 연못에 물고기가 꽤 많더라고요?
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을 이었다.“아, 아니에요. 지금은 서로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 난 사이가 된 것 같아요.”장윤태는 배경윤과 사도현이 여전히 사랑하는 사이라고 생각했기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배경윤 씨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요. 혹시 연예계에 진출할 생각은 없어요? 연예인이 되면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텐데요.”“연예계에 진출하라고요?”“네. 이 프로그램의 고정 멤버로 출연하면서 데뷔하는 거죠. 한 회차로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감독 장윤태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는 예능을 통해 배경윤이 인기를 얻는다면 사도현에게 잘 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장윤태는 오랫동안 예능을 촬영하면서 슬럼프에 빠졌기에 배경윤처럼 독특한 캐릭터를 이용해서 시청률을 높인다면 감독으로서 더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인기를 얻어서 뭘 한다는 거죠?”배경윤이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장윤태한테 물었다.“명예와 돈을 얻을 수 있고 누군가가 배경윤 씨를 일부러 비하하면 팬들이 나서서 보호해 줄 거예요. 그리고 배경윤 씨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직접 만날 수도 있는데, 이것보다 좋은 일이 어딨겠어요!”장윤태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배경윤을 설득하려고 안간힘을 썼다.“제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직접 만날 수 있다고요?”배경윤의 두 눈이 반짝였다. 배경윤은 예전부터 팬 활동에만 전념하던 열정적인 팬이었다. 하지만 사도현을 만난 뒤로 팬 활동을 할 시간이 줄어들면서 잠시 관심을 끄게 되었다. 사도현과 이미 멀어진 지금, 팬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던 것이다. “당연하죠. 제가 이래 봬도 연예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저희 프로그램 고정 멤버로 출연하신다면 배경윤 씨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섭외할게요. 지금 당장 전화 걸 테니까 누구인지 알려주세요. 배경윤 씨가 좋아하는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장윤태의 말에 배경윤은 미소를 지으면서 상상의 나래에 빠졌다. 장윤태는 배경윤을 힐끔 쳐다
“진찬영과 감독님은 각별한 사이인 것 같아요. 진찬영은 잘생기기도 했지만 인성도 좋고 연기가 일품이라 안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늘 겸손하기에 제가 오랫동안 좋아한 배우예요.”배경윤은 말하면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사도현, 너만 첫사랑을 못 잊은 줄 알아? 나도 첫사랑을 여전히 잊지 못했거든!’“장 감독님, 혹시 진찬영한테 연락할 수 있나요? 듣기로는 진찬영이 연예계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다더라고요.”배경윤이 장윤태한테 물었다. 사실 처음부터 장윤태한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진찬영을 존경한다는 말에 곧바로 흥미가 생겼다. 배경윤은 장윤태와 내적 친밀감이 생겨서인지 장윤태와 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졌다.“당연하죠. 배경윤 씨한테만 알려주는 건데, 제가 사실 찬영이를 살려준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연락해서 부탁하면 한 회차 정도는 촬영하러 올 거예요.”장윤태가 턱을 살짝 쳐들고는 자랑스럽게 말했다.연예계에서 아무리 인맥이 넓다고 해도 관건적인 순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 소용도 없었다. “예전에 제가 영화감독을 맡았을 때 특별 출연으로 찬영이가 왔거든요. 잠수해야 하는 장면인데 찬영이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소화했어요.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하면서 물에 뛰어들었다가 몇 분이 지나도 올라오지 않는 거예요. 저는 찬영이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고 그대로 뛰어 들어가서 구해냈어요. 그래서 찬영이랑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온 거고요.”“설마 >를 촬영할 때 있었던 사고 말하는 거예요? 장 감독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에요. 진찬영의 목숨뿐만 아니라 진찬영의 팬들을 살려준 거나 마찬가지예요!”배경윤은 그 당시 전국을 뒤흔들었던 기사를 회억했다. 누군가가 거짓 제보를 했다고 믿었지만 장윤태의 말을 들어보니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 배경윤은 진찬영과 장윤태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만약 제가 찬영이를 섭외한다면 저희 프로그램 고정 멤버로 출연해 줄 건가요?”장윤태는 배경윤을
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모두 제가 윤설을 다치게 했다고 믿으면서 저를 피하고 있어요. 저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기 어려울 것 같아요.”오전에 몇몇 게스트의 질타를 받은 배경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바람에 돛을 다는 게스트들은 사도현이 윤설 곁에서 맴돌자 윤설을 찾아가서 아부를 떨었다. 게스트들이 배경윤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이 상황에 섣불리 출연했다가는 카메라 앞에서 게스트들과 싸우게 될 수도 있었다. “여러 명이 지내다 보면 싸울 수도 있는 거죠. 누군가가 선을 넘으면 배경윤 씨 성격대로 대처하세요. 싸워도 상관없으니 편하게 촬영하면 돼요. 저는 앞뒤 다른 사람을 제일 싫어하거든요.”장윤태가 배경윤을 고정 멤버로 확정한 것은 배경윤이 솔직하고 털털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 예능에 출연한 다른 연예인들은 카메라가 켜졌을 때와 꺼졌을 때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 예능은 점점 구설수에 오른 연예인의 이미지를 세탁하는 작용을 하게 되어 시청자들의 반감을 샀다. 장윤태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제작진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 출연 계약서에 사인했다. 앞으로 몇 회차 동안 고정 멤버로 출연하게 될 것이다.배경윤에게는 손해 볼 것 없는 결정이었다. 윤설은 다 낫고 나서 촬영하기 때문에 나을 때까지 촬영지에 머무를 것이다. 그러면 배경윤은 윤설과 얘기를 나눌 시간이 많아졌고 차설아와 차성철을 위해 진실을 캐낼 수 있었다.두 날 후, 윤설은 깁스한 채로 마을 병원에서 다시 촬영 현장으로 돌아왔다. 사도현은 두 날 동안 윤설을 보살펴주고는 직접 부축하면서 마당으로 들어왔다. 배경윤은 마당에 있는 해먹에 누워서 쏟아지는 햇볕을 만끽하며 미소를 지었다. 계속 기분이 좋을 줄 알았는데 사도현이 윤설을 부축하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는 표정이 일그러졌다.“윤설 씨, 드디어 돌아왔군요! 윤설 씨와 사 대표님이 없는 동안 분위기가 얼마나 안
배경윤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내가 매일 울면서 윤설 앞에 무릎이라도 꿇어야 속이 시원하겠어? 아니면 억울하다고 이곳에서 내 목이라도 그을까?”“그럴 필요 없어.”사도현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적어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지는 말았어야지. 이곳 사람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 같아?”사도현은 모든 게스트가 윤설을 맞이하면서 안부를 물을 때, 배경윤이 진심이든 아니든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먼저 다가가서 인사해야 한다고 여겼다. 모두 배경윤 때문에 촬영이 미루어졌다고 생각하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더 큰 미움을 살 것이다.“나랑 상관없으니까 비켜. 난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여보든지!”말을 마친 배경윤은 손에 쥐고 있던 책을 얼굴 위로 덮고는 해먹에 누워 다리를 꼰 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내가 재수 없어 보일 수는 있지만 윤설처럼 앞뒤 다르고 다른 사람을 해치려고 드는 사람한테는 재수 없게 구는 게 맞아!’윤설은 매니저의 부축을 받아 뒷마당으로 걸어갔고 사도현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도현 씨, 배경윤 씨가 쉬고 있으니 이만 방으로 돌아가요. 저는 배경윤 씨를 용서했다고 여러 번 말했잖아요. 그러니까 우연히 일어난 일 때문에 배경윤 씨를 자꾸 비난하지 말아요.”누가 들어도 윤설은 아량이 넓고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여자들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던 사도현도 윤설이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사도현은 배경윤을 내려다보더니 차갑게 말했다.“윤설이 착하니까 널 봐준 거야. 고마운 줄 알아.”“흥!”배경윤은 콧방귀를 뀌었다. 윤설의 얕은수에 사도현이 넘어갈 줄 몰랐던 것이다. 이때 감독 장윤태가 격동된 어조로 말했다.“찬영아, 벌써 다 왔다고? 멀리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내가 마중 갈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줘. 정말 고마워!”“진찬영 씨가 온 걸까?”배경윤은 장윤태의 목소리를 듣고는 얼굴에 덮은 책을 내팽개치더니 재빨리 일어났다. 그러고는 앞을 막고 있는 사도현과 윤설을 뒤로 하고 장윤
장윤태가 경운기 뒷좌석의 난간을 붙잡고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도현을 향해 외쳤다.“사 대표님, 꽉 잡지 않으면 튕겨 나갈 수도 있어요! 길이 험해서 잘 잡고 있으세요.”사도현은 입술을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릿결 때문인지 오늘따라 사도현이 더 멋져 보였다. 깔끔하던 회사 대표가 아닌 야생적인 남자의 모습이었다.“진찬영이 누구죠?”사도현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장윤태한테 물었다.“사 대표님, 진찬영은 연예계에서 유명한 남자 배우예요. 연기 실력이 뛰어난 데다가 겸손하거든요. 예능에 출연하는 배우는 아니라서 잘 모를 수도 있어요.”장윤태는 거칠게 부는 바람을 견뎌내면서 사도현을 향해 외쳤다.“남자 배우라고요?”사도현은 남자라는 말에 표정이 잔뜩 일그러지더니 계속해서 물었다.“몇 살인데요? 어떻게 생겼어요? 어떤 스타일인데요?”“아마 사 대표님보다 세 살 정도 어릴 거예요. 너무 잘생겨서 어릴 때부터 연예인 할 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대요. 언뜻 보기에는 차갑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에요. 진찬영이 겸손하기도 하고 조용하게 지냈지만 진찬영한테 푹 빠진 사람이 엄청 많아요. 배경윤 씨도 진찬영의 팬이라기에 제가 섭외했거든요. 그럼 배경윤 씨도 고정 멤버로 몇 회차 출연하겠다고 했어요.”장윤태는 점점 어두워지는 사도현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계속 말했다. 배경윤은 운전에 집중했고 경운기 특유의 소리 때문에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못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차에서 내렸다. 장윤태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배경윤 씨, 어디 가세요?”“들꽃이 너무 예뻐서 따다가 우리 진찬영 씨한테 주려고요.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인데 어떻게 선물도 없이 만나러 가겠어요.”배경윤은 말하면서 허리를 굽혀 길가에 예쁘게 핀 들꽃을 하나둘 꺾기 시작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들꽃은 햇볕 아래에서 유난히 빛났다. 이때 사도현이 입을 삐죽 내밀더니 차갑게 말했다.“꽃을 마음대로 꺾으면 안 된다는 거 몰라? 이렇게 생각이 없
박서영은 그녀를 믿지 못하겠는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정말 기꺼이 두 눈을 내놓을 생각이 있으신가요?”그녀는 세상에 이렇게 바보 같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분명 무슨 속셈을 꾸미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제가 성진한테 빚진 걸 갚는 거예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어요.”차설아가 말했다.“저를 못 믿겠다면 제가 무사하다는 것을 굳이 알릴 필요 없어요. 다만 그때 가서 일이 커지면 알아서 처리하세요.”거짓말할 마음도 없는 차설아는 진심으로 이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었다.항상 성진의 헌신 덕분에 남의 인생을 도둑질한 것처럼 느꼈고, 가끔 즐거울 때도 불안한 마음에 죄책감을 느꼈다.이 기간에 성진에게 연락하지 않았지만, 밤이 깊어질 때마다 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이 남자가 어떤 어둠 속에 처해있을지, 어떤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를 상상했다. 어쩌면 원수의 손에 잡혔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가능성이 마치 비수처럼 심장에 꽂혀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기만 했다.차설아는 더 이상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빚을 한 번에 갚고 싶어 했고, 그렇게 되면 그나마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럼 어떤 방법으로 무사하다고 전할 건데요?”박서영은 차설아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여전히 경계하는 어조로 물었다.“SNS에 올리면 되죠.”차설아가 웃으면서 말했다.“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위험에 처했을 때 SNS를 올릴 마음이 있겠어요? 제가 SNS를 올려버리면 적어도 제가 안전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SNS만 올리게요?”박서영은 나름대로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SNS면 충분해요.”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차성철도, 배경윤도, 선우 시원도 각자 바빴기 때문에 그녀를 신경쓸 새도 없었다.이럴 때 SNS를 올리면 최소한 무사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좋아요. SNS 올리는 것만은 허락해 줄게요.”박서영이 여러 번 고민
“하하. 성도윤 씨랑 데이트하고, 선우가문의 도련님과 애정 어린 농담을 주고받고, 배씨 가문 도련님과 술 마시는 시간은 있으면서 저희 도련님을 찾을 시간은 없었나 보죠? 저희 도련님을 잊어버릴 정도로 바빴나 봐요.”서영이 흥분한 나머지 차설아의 목을 직접 움켜잡으면서 말했다.“그거 알아요? 당신이 성도윤 씨랑 얽히고설켜 있을 때, 저희 도련님은 좌절감에 스스로 인생을 끝내려고 했어요. 손목에 상처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아무리 칼날을 숨겨봤자 어떻게든 찾더라고요. 그렇게 강하던 사람이 이제는 약해빠져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요. 알아요?”차설아는 저항하지도 않고 박서영이 자기 목을 조르는 대로 놔두었다. 애처롭게 바라보던 그녀의 두 눈에는 핏줄이 보이기 시작했다.“흥. 절대로 당신이 쉽게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박서영은 그제야 차설아를 놓아주며 차갑게 말했다.“당신한테 죗값을 치르게 하려고 이 저택으로 데려온 거예요.”“켁! 켁! 켁!”차설아는 잠깐의 질식 때문에 기침하면서 숨을 헐떡이며 박서영에게 물었다.“제가 어떻게 죗값을 치르기를 원해요?”“아주 간단해요. 저희 도련님의 시력을 돌려주면 돼요.”박서영은 앞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그동안 저는 도련님을 위해 거부반응이 없고 잘 맞는 한 쌍의 눈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지만, 아쉽게도 찾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설아 씨의 건강 검진 데이터를 우연히 얻게 되었는데 아주 특별한 두 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마침 저희 도련님한테 빚진 것도 있으니까, 설아 씨의 눈을 저희 도련님의 눈과 바꾸는 거 어렵지 않겠죠?”차설아는 박서영의 최종목적을 듣고 침묵하고 말았다.“제 눈이 정말 성진한테 맞나요?”그때 성도윤이 실명했을 때도 눈을 물색하고 다녔는데 오직 혈연관계가 있는 성진의 눈만 거부반응이 없었다.그때는 성도윤이 빨리 낫기를 바라면서 성진을 신경 쓰지도 못했다.하지만 마음의 빚 때문에 계속 숨이 안 쉬어졌다.만약 자기 눈으로 성진의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마음의 위로 때문이라
차설아는 다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커다란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온통 흰색 인테리어인 낯선 이곳은 영안실에 온 기분이었다.“드디어 깨셨군요, 약효가 너무 강해서 무려 사흘 동안 혼수상태였어요. 이러다 죽어버리는 줄 알았어요...”창가에서 한 여자의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에게는 생과 사가 그저 자거나 깨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경계 태세로 창가를 바라보던 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당신이었어요?”그날 밤 병원에서, 몰래 차설아의 병실로 들어간 그녀였다.“저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네요. 영광이에요.”박서영은 창가에 앉아 꽃다발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녀의 옆에 놓인 꽃병에는 이제 막 정원에서 따온 해바라기가 꽂혀있었다.박서영은 황금빛으로 만개한 해바라기 줄기를 비스듬히 잘라 하나씩 예쁘게 꽃병에 꽂아 넣었다.“저희 주인님께서는 설아 씨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해바라기라면서 정원에 해바라기를 심으라고 했어요. 이제는 만개했는데 볼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워요. 마치 다른 사람한테 보이지 않는 주인님의 마음처럼 말이에요.”이때 박서영은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꽃가지를 단단히 잘라버렸다.“주인님이라 하면 성진을 말씀하시는 거예요?”차설아는 사고가 날카로운 사람이라 바로 상대방을 추측해 냈다.그녀의 기억 속에서 일편단심이면서 실명한 사람은 성진뿐이었다.“도련님을 아직 기억하고 계셔서 다행이네요. 도련님 정성이 헛되지 않았네요.”박서영은 차설아가 성진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 그나마 그녀를 향한 증오가 줄어드는 듯했다.“정말 성진이에요?”차설아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려 했지만, 온몸이 무기력해 마치 마비된 것처럼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다.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박서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저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걱정하지 마세요. 그저 마취제 때문에 잠깐 의식을 잃고 침대에 누워있었을 뿐이니까요.”차설아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마에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리 일어나고 싶어
진찬영은 배경윤에게 핸드폰을 건네면서 이 둘의 말다툼을 중단시켰다.“고마워요. 찬영 오빠는 역시 최고예요.”배경윤은 배시시 웃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차설아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정말 제가 좋다면 이제는 찬영 오빠라고 부르지 마요...”진찬영은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찬영 씨라고 불러요.”“아, 그게...”배경윤은 진찬영의 갑작스러운 감정변화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심지어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찬영 오빠는 팬분들이 불러주는 호칭인데 저희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 이제부터는 찬영 씨라고 부르는 거 어때요?”“알았어요. 찬영 씨...”호칭을 바꿔 부른 배경윤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왜 이렇게 부끄럽지?’역시 호칭은 알게모르게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지 설명할 수 있었다.찬영 오빠라고 부를 때에는 팬이 연예인에 대한 애정으로 별로 부끄럽지 않았는데 찬영 씨라고 부르니 확 부끄러워지는 느낌이었다.옆에 있던 사도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 저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거예요?”지금 사도현이 비꼬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느낄수 있었다.“너랑 무슨 상관이야. 보기 싫으면 나가든가.”배경윤의 말을 비수처럼 심장에 박혔고, 사도현의 체면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흥! 누가 설아에 대해 나쁜 말을 하라고 했어?’배경윤은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해서 무응답 상태였다. 반복해서 네다섯 번을 걸었지만, 여전히 아무도 받지 않았다.“무슨 일이지?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지? 뭔가 잘못됐어.”비경윤은 불안한 예감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쯤 병원에 있어야 하는 설아는 원래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언제나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 왜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 걸까? 분명 무슨 일이 있어!’배경윤이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일어나려 한다.“제발 가만히 있어!”사도현이 다시 그녀를 침대에 눕히면서 말했다.“설아가 어린애야? 실력도 좋은데 무슨 일이 있겠어. 다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두세 시간 뒤에요.”진찬영이 대답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모든 독소를 제거하려면 세 시간 후에 전신 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물을 마시면 안 돼요.”“아직 시간이 많네요...”배경윤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제 핸드폰은 어디 있어요? 설아에게 안부를 전해야 하거든요.”사도현이 배경윤을 다시 침대에 눕히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이 어떤 때인데, 너나 잘 챙겨. 설아를 챙기는 사람은 많고도 많아.”“누군데? 설마 너의 그 쓰레기 같은 친구 성도윤은 아니지?”배경윤이 무례하게 반박했다.“난 그 자식이 방해할까 봐 걱정돼서 설아랑 계속 연락하려고 하는 거야.”사도현은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도윤이 형이 대체 너한테 뭘 잘못했다고 그래?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그 두 사람은 딱봐도 재능과 미모를 갖춘 천생연분인데, 그냥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을 뿐이잖아. 우리 도윤이 형을 바람둥이라고 단정 짓지는 말지?”“그 사람이 바람둥이 아니면 누가 바람둥이인데!”배경윤은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사도현과 따지려고 했다.“혼인 중에 바람을 피우고,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고, 겨우 설아 마음을 되돌리더니 또 다른 재벌 딸과 약혼하고. 이게 바람둥이가 아니면 뭔데?”“설아도 너의 오빠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잖아. 요즘에는 선우 가문 도련님과도 뜨겁게 보내더니. 그리고 도윤이 형은 왜 이렇게 되었는데! 어떻게 실명하고 기억을 잃게 되었는지 설아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거야?”“그건 그냥 사고일 뿐인데 설아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원망할 거면 하느님을 원망해. 누가 그런 악행을 많이 저지르라고 했어. 하느님도 노해서 가만두지 않은 거지.”“배경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나한테 막말은 해도 도윤이 형한테는 그러면 안 되지.”“내가 뭘 어쨌다고? 너도 방금 우리 설아한테 뭐라고 했잖아!”두 사람은 마치 싸움닭처럼 감정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이것은 두 사람이 계속 다투게 되는 주제라
진찬영은 사도현이 지금까지 만난 가장 자아도취적이고 오만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경윤 씨한테 물어봤어요? 당신과 저 사이에 도대체 누가 외부인인지.”사도현은 말을 끝내자마자 진찬영의 품에서 배경윤을 뺏어오려고 했다.이때 이미 힘이 풀린 배경윤이 입술이 약간 창백해져서 말했다.“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계속 싸웠다간 제가 죽을지도 몰라요. 빨리... 저 좀 병원에 데려다줘요!”배경윤은 눈앞이 어두워지면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근처 병원의 환자 침대에 누워있었다.병상 앞에는 사도현과 진찬영이 앉아있었고, 분위기는 쓰러지기 전과 같았다.하지만 다행히도, 아직은 죽은 목숨이 아니었다.“경윤아, 깼어? 목말라? 물 따라줄까?”배경윤이 눈을 뜨자, 진찬영은 두 눈이 반짝거렸다.“이틀 동안 혼수상태였는데, 목마르냐고 묻는 시간에 이미 다 마셨겠어요.”사도현이 이 말을 할 때, 진찬영은 이미 따뜻한 물을 배경윤한테 건넸다.배경윤은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오른손에 아무런 감각도 없어 전혀 힘을 쓸 수가 없었다.“내... 내 손...”그녀는 침을 삼키면서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손을 절단해야 하는 건가? 이제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걸까?’“걱정 안 해도 돼요. 괜찮아요. 독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마비된 느낌이 들 거예요.”진찬영은 부드럽게 그녀의 마음을 안심시켰다.“아... 깜짝 놀랐잖아요.”배경윤은 절단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도현은 배경윤에게 직접 물을 먹여주면서 대뜸 말했다.“24시간 이내에 독을 깨끗이 배출하지 못하면 신경이 마비되어 절단해야 할수도 있어.”“푸!”배경윤은 물을 다 마시기도 전에 뿜어내고 말았다.“뭐라고?”긴장한 채로 사도현을 쳐다보던 배경윤은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만약 손을 정말 절단해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아직도 이해 못 했어? 독이 말끔히 없어지기 전까진
야맹주를 확인한 배경윤은 신속히 잠수했다.“천천히 가!”사도현은 그녀가 걱정되어 조심하라고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호바다였지만 단면이 너무 높아 일부 산호는 쉽게 만졌다가 위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하지만 이때,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 배경윤은 마치 큰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면서 야맹주 위에 덮여 있던 산호초를 맨손으로 제거했다.그녀는 차설아가 평안 무사할수 있도록 이 야맹주를 선물하고 싶었다.“아!”배경윤이 야맹주에 손을 대려는 순간, 갑자기 산호초 틈새에서 은색 원형 물체가 튀어나와 그녀의 손등을 덥석 물었다.“바다뱀이야!”바다뱀이 배경윤을 물고 옆을 쓱 스쳐 자나가자 머릿속이 하얘진 사도현은 급히 잠수하여 그녀의 손을 잡았다.“봐봐...야맹주!”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배경윤은 그저 벌레에게 물렸다고 생각하면서 순진하게 사도현에게 야맹주를 자랑했다.“입 다물어!”사도현은 눈앞의 이 덜렁거리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녀는 과연 이런 바다뱀이 독성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진찬영은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긴 팔로 배경윤의 허리를 감싸고, 긴 다리를 쭉 뻗어 빠르게 수면으로 올라갔다.진찬영과 하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차례로 수면으로 떠올라 잠수 마스크를 벗었다.“여기 도와주세요! 보트를 준비해 주세요. 병원으로 가야겠어요!”사도현의 잘생긴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고, 잠긴 목소리로 육지에 있는 안전요원에게 외쳤다.“무슨 일이에요?”진찬영이 신속히 배경윤 곁으로 다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벌레에게 물렸을 뿐이에요...”배경윤은 뱀에게 물린 손등을 들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였고, 오히려 사도현이 너무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일반적으로 뱀에게 물리면 독이 체내에 바로 퍼지지 않아 아직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야맹주를 들어 올리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다들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진찬영은 이런 중요한 기회를 사도현을 놓칠 수가 없었다.“저는 저의 파트너로 하늘 씨를 선택하고 싶어요.”진찬영이 사도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안전요원에게 이렇게 말하자 사도현과 배경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 자식 뭐하는 거야. 포기라도 하는 거야?”사도현은 믿기지 않는지 진찬영을 째려보면서 말했다.“어떻게 하늘 씨를 선택할 수 있어요? 어쩌다 정면으로 승부를 겨룰 기회가 생겼는데 왜 포기하는 거예요?”진찬영이 사도현을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잠깐 경윤 씨를 도현 씨한테 맡길게요. 꼭 잘 지켜주셔야 해요.”사도현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잠수복을 입고 하늘과 함께 바다로 뛰어드는 진찬영을 쳐다보았다.“왜 저래?”제대로 한판 붙어볼 줄 알았는데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자기뿐이라 갑자기 김이 새는 느낌에 불쾌하기만 했다.“갑시다. 파트너님.”사도현은 더는 생각하기도 싫어 멍한 표정의 배경윤한테 터벅터벅 걸어갔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랑 짝이 된 거야.”배경윤은 싫증난 표정을 하고있었다.진찬영과 손잡고 바다 경치를 즐길 줄 알았는데 말이다.그런데 아무리 봐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도현한테 자기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아까 등산할 때까지만 해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이 타이밍에 진찬영이 뒤로 물러설 줄 몰랐다.“난 다이빙 챔피언까지 땄던 사람이야. 기다려 봐. 오늘 야맹주를 꼭 찾아줄게.”사도현의 오늘 주요 목적은 야맹주를 찾는 것이었다.비록 전설일 뿐이었지만 만약 정말 찾아서 배경윤한테 준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고 로맨틱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은 하나둘씩 바다에 뛰어들었다.하트섬은 물고기 떼, 가지각색의 산호초가 훤히 보일 정도로 수질이 좋았다. 더 깊이 내려가면 잭피시가 보이기도 했다.배경윤은 산소 호흡기를 꽉 깨물고 천천히 밑으로 향했다.파트너인 사도현은 그녀에게 무슨 사고라도 일어날까 봐 옆에 꼭 붙어있었다.진찬영은 몇 미터 밖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중이염을
이들은 어제저녁 약속한 대로 섬 근처에 있는 청정지역에서 스토클링하기로 했다.이때 감독 최빈이 말했다.“이 섬은 모양이 하트로 되어있어 하트섬이라고 불리는데 물이 맑아 산호초와 열대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들 오늘 운이 좋으면 하트섬 특유의 야맹주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밤이면 빛이 나는 그런 야맹주요.”“정말 야맹주가 있는 거예요?”배경윤이 이번 스노클링이 점점 더 기대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 하트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섬 중앙에는 고가의 진주가 들어있는 천연 조개가 많다고 했다. 최빈이 언급한 야맹주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전설 속에서는 야맹주를 찾은 사람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신난 배경윤은 야맹주를 찾아서 차설아한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호객행위인지 몰랐다.“당연히 있죠. 수년 전에 섬에서 살던 분들이 발견했대요. 찾을 확률은 낮지만, 없는건 아니에요.”최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그럼 뭘 기다려요. 저희 얼른 가요...”조급해 난 배경윤이 이때 대담하게 제의했다.“저희 스노클링하지 말고 아예 다이빙하는 거 어때요? 6미터 가까이 되는 그런 다이빙을 하면 야맹주를 찾을 수 있는 확율이 더욱 높지 않을까요?”“좋아요.”사도현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스노클링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이빙해야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죠.”“저도 좋아요.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물속에서 산소통이 없어도 몇 분씩이나 있을 수 있다고요.”하늘도 찬성의 의미도 손을 들었다.올림픽 금메달 수영선수로서 물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오직 진찬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영 씨는 스노클링하실 거예요? 아니면 다이빙하실 거예요?”최빈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진찬영에게 물었다.“저는 경윤 씨랑 같은 걸 할게요.”진찬영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전에 중이염 수술을 받은 적 있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너무 깊게는 내려가지 못했다. 5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