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불빛으로 가득 채워진 룸 안에는 한껏 꾸민 남자들이 한 줄로 서 있었다.차설아를 본 그들 중에 눈을 찡그리며 매력적인 미소를 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순진무구한 미소를 짓거나 우울함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얼굴을 보인 사람도 있었다. 또 차도남처럼 차가워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이, 이게 무슨 상황이지?”차설아는 뜬금없이 나타난 남자들을 보더니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전화기 너머로 뿌듯함이 담겨 있는 배경윤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언니, 룸에 도착했어? 내가 준비한 선물 어때? 다 엄청 잘생겼지?”룸 입구에 서 있던 차설아는 어안이 벙벙했다.“경윤아, 이게 다 뭐야?”“잊었어? 그날 밤에 언니 이혼하는 거 축하할 때 언니 스카이 클럽 앞에서 말했었잖아. 성도윤보다 잘생긴 남자는 널리고 널렸다고, 원하는 남자 다 가질 거라고.”“하하하, 오늘 언니를 위해 거금을 들였으니까 원하는 스타일 한 번 마음껏 골라봐. 그리고 내가 특별히 오빠도 따돌렸으니 마음 놓고 즐겨. 내가 언니 동생으로서 준비한 거니까 너무 감동하지는 마.”“배경윤, 너 너무하는 거 아니야?”차설아는 원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너 나를 불구덩이로 밀어 넣는 거야. 내가 어떻게 감당한다고 그래...”말하는 사이에 그녀는 룸 안에 있는 남자들을 훑어봤다.‘역시... 경윤이는 내 찐친이야. 내 취향을 참 잘 알아.’룸 안에 있는 남자들은 서로 다른 스타일이었지만 모두 얼굴이 예술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잘생긴 얼굴에 그녀는 정신이 없었다.“됐어, 지금 바쁘니까 먼저 끊을게. 다음에 봐.”차설아는 다가올 상황이 너무 기대가 되어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누나, 안녕하세요!”겨우 스무 살 되어 보이는 잘생기고 풋풋한 남자애가 차설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누나, 수고하셨어요. 제가 누나를 위해 맛있는 디저트랑 과일을 준비했으니까 얼른 들어오세요!”차설아는 남자애가 유난히 눈에 익었다.“쪼꼬미, 널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이 남자애뿐만 아니라 룸 안에 있는 다른
“뭐라고 부르는데?”차설아는 남자애에게 대답하고 있었지만 눈을 ‘차도남’에게서 뗄 수 없었다.이런 설레는 기분은 워낙 오랜만이라 차설아는 온몸이 저려왔다. 요 몇 년 동안 그녀는 이런 감정을 오직 ‘누군가’에게서만 느꼈었는데 말이다.“지훈이 형의 얼굴이 너무 잘생겼잖아요. 성대 그룹의 대표님이신 성도윤 님과 비슷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팬분들은 지훈이 형을 ‘리틀 성도윤’이라고 불러요...”“성도윤?”그 말을 들은 차설아는 흥미가 뚝 떨어졌다.‘왜 어디서나 그 사람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거야? 영혼이 나를 따라다니나?’남자애는 차설아가 성도윤을 모르는 줄 알고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누나 혹시 성도윤 님이 어떻게 생기셨는지 아세요? 모르신다면 여기에 사진이 있어요... 우리 지훈이 형이랑 많이 닮으셨죠?”차설아는 사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재수 없어! 이혼하고 겨우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남자를 만났는데 리틀 성도윤이라니, 너무 재수 없잖아!’리틀 성도윤은 예쁜 손가락으로 스위치 버튼을 누르면서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차설아에게 눈길 한 번 주질 않고는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당연히 성도윤이 누군지 아시겠지, 저분 남편이니까.”“뭐라고? 그럼 예쁜이 누나가... 성도윤 님의 아내분이셨어요?”남자애는 깜짝 놀라더니 뒤로 물러서면서 차설아와 거리를 뒀다.다른 남자들도 맹수를 피하듯 차설아와 멀리 거리를 두려고 했다.“돈 벌기 정말 쉽지 않네. 우리 아이돌들은 걸핏하면 기획사에게 손님 접대나 강요받고, 심지어 오늘은 성대 그룹 대표님의 아내분까지 모셔야 한다니, 자칫하면 앞날을 망칠 수 있다고...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못하겠어!”“나도 안 할래, 안 하겠어!”그러더니 꽃미남들은 잇달아 제복을 벗으면서 자리를 뜨려고 했다.차설아는 다급히 그들의 마음을 달랬다.“다들 너무 겁먹지 마. 남편이 워낙 오픈 마인드라서 괜찮아. 남편도 다른 여자랑 놀고
“그게...”남자랑 너무 가까워진 나머지 성도윤을 빼닮은 얼굴은 무한히 확대되었다.차설아는 숨을 죽이며 괜히 긴장하기 시작했다.그는 성도윤과 똑같이 깊은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치 그녀의 모든 속셈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굳이 두 사람의 차이를 구별하자면 성도윤의 분위기에는 카리스마가 더해졌고, 그와 반대로 지훈은 사연이 많은 사람처럼 눈망울에 차가움과 우울함이 묻어나 있었다.‘참 신기하다니까. 사람은 정말 이상한 동물이야, 왜 항상 똑같은 사람에게 끌리는 것이지?’4년 전 그녀는 성도윤에게 첫눈에 반했었다.4년 후의 지금, 그녀는 또 성도윤과 비슷하게 생긴 남자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도대체 자신을 설레게 하는 사람이 눈앞에 잘생긴 남자인지 성도윤인지 차설아 본인조차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무슨 생각 해요?”남자는 차설아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다.지훈의 낮은 목소리는 오래된 와인처럼 감미로웠고 매혹적이었다.“아니야, 난 이만 갈게.”차설아는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하마터면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남자는 긴 팔로 손쉽게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꼭 끌어안고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저는 당신 남편을 닮은 것뿐이지, 당신 남편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저를 두려워해요?”“두려워하지 않았거든!”차설아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목소리를 높여 반박했다.‘그래, 이 녀석은 그저 도윤 씨랑 비슷하게 생긴 것뿐이야, 도윤 씨도 아닌데 내가 왜 겁을 먹었지? 다른 애들은 내가 성도윤의 아내라는 걸 알고 모두 도망갔는데 이 녀석은 도망가지 않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도발하고 있잖아? 그럼 성도윤을 아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인데, 이 점만으로도 제대로 즐겨야 하겠는걸?’이 생각에 차설아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그녀는 수줍은 자태를 거두고 오히려 당당하게 남자의 턱을 치켜들고는 입꼬리를 올렸다.“너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네가 나한테 겁을 먹을까 봐 걱정돼!
차설아는 택시를 잡아 지훈과 함께 차에 올랐다.택시 기사에게 주소를 말한 후 불과 20여 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도착했으니까 내려.”차설아는 강아지를 이끌듯 남자의 넥타이를 잡으며 차에서 내렸다.그들의 눈앞에 보이는 둥그런 돔 모양에 형광색 지붕의 작은 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어둠 속에서 작은 집은 그윽하고 차가운 빛을 뿜어냈는데 마치 반짝반짝 빛나는 별과 같아 꽤나 낭만적이었다.“어때? 널찍하고 예쁘지?”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지훈을 보더니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여기는 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비밀 아지트야. 웬만한 사람한테는 알려주지 않는다고!”“비밀 아지트요?”지훈은 여러 개의 집을 보더니 눈썹을 치켜들며 흥미를 보였다.“재밌네요.”직원은 가까이 다가오며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차설아 님, 안녕하세요. 그전처럼 3호실을 고르실 거죠? 물건은 다 준비해 드렸습니다.”3호실은 거리가 가장 멀었지만 시설이 최고급이었고 또 조용했기에 방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차설아는 익숙한 듯이 곧바로 3호실로 향하고는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열었다.“들어와, 너 오늘 밤 나랑 놀아주기로 한 거다?”지훈은 이곳이 도대체 어떤 분위기의 모텔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방에 들어서자마자 어안이 벙벙했다.“여... 여기는 뭐 하는 곳이죠?”“바보야, 보면 모르겠어?”차설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방으로 달려가고는 최신형 기계식 키보드를 쓰다듬으면서 눈을 반짝였다.“이 XF 키보드는 수많은 게이머들이 2년을 꼬박 기다린 신제품이야. 키 입력할 때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느낌은 아주 뚜렷하고 부드러워. 타이핑에 따라 LED 조명이 커졌다 꺼졌다 할 수 있고 무엇보다 반응 속도가 정말 대박이야. 최상급 서버와 모니터만 있다면 그 어떤 게임에서도 우리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지훈은 차설아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 5분이나 걸렸다.“그러니까 여기는 모텔이 아니라... PC방이에요?”“모텔?”차설아는 지훈의 이마를 툭 치며 인상
전화기 너머로 딱딱한 통화 안내음이 울렸다.“지금 고객님께서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없는 번호?!성도윤은 애써 화를 억누르고 있었다.‘나 피하려고 일부러 전화번호까지 바꾸진 않았을 텐데 말이야.’그는 다시 차설아와의 채팅창을 열어 물음표 하나를 보냈다.하지만 문자를 보낸 순간 수신이 거부되었는데 아마도 차설아는 성도윤을 차단한 듯했다.“젠장!”성도윤은 싸늘한 얼굴을 보였다.‘정말 독한 여자네. 이렇게 철저하게 연락을 끊겠다고?’그들이 이혼한 지 겨우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차설아는 벌써 성대 그룹의 클라이언트를 모두 채갔다. 그뿐만 아니라 매일 밤 여러 클럽을 누비면서 매번 다른 남자와 즐기곤 했는데 그야말로 최고로 자유로운 삶을 보내고 있었다.심지어 이제는 남자와 방까지 잡는다고 하니 ‘전 남편’은 아예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성도윤은 큰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 한참 고민에 잠긴 후 곧바로 비서 진무열에게 전화를 걸었다.“30분 뒤에 해안시의 모든 호텔이나 모텔의 투숙객 정보를 알아야겠어!”진무열은 어리둥절한 채로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왜 갑자기 투숙객 정보를 알아내려고 하시는 겁니까? 혹시... 불륜을 잡으려고 하시는 겁니까?”“내가 너한테 보고해야 해?”“아닙니다, 지금 바로 움직이겠습니다!”하지만 진무열은 궁금증을 참지 못해 한마디를 보탰다.“그리고... 사모님은 그냥 즐기려는 마음이 있는 것뿐이지, 다른 남자와 방을 잡지는 않았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성도윤의 안색은 한껏 어두워졌다.“닥쳐!”30분 후, 진무열은 한 묶음의 호텔 투숙객 정보를 가져왔지만 그 안에는 차설아의 체크인 기록이 없었다.“대표님,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얌전하고 본분을 지키시는 사모님께서 대표님을 그렇게 사랑하시는데 왜 다른 남자랑 방을 잡겠어요? 전에 클럽을 돌아다니고 젊은 남자들과 어울려서 찍힌 사진들도 아마 일부러 대표님의 질투를 유발하려고 했을 겁니다.”진무열은 방관자로서 조리 정연하게
차설아의 산뜻한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웃음을 머금은 그녀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마치 무슨 재수 없는 것을 보기라도 한 듯 고개를 돌렸다.‘내가 정말 게으른 버릇은 고쳐야 한다니까. 이미 이사를 결심했으면서 왜 아직도 집을 안 찾아보고 버티고 있었던 거야? 바로 맞은편에 살아서 아무리 애써 외면한다고 하더라도 오늘처럼 이렇게 마주하게 되잖아!’차설아는 한참 동안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문은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성도윤은 긴 팔을 내밀어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것을 막았다.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표정이 담겨 있었다.“왜? 나 만나기 부끄러워? 즐길 것 다 즐기더니 이제 양심에 찔려?”양심에 찔린다고?그 말은 차설아의 승부욕을 자극했다.그녀는 허리를 곧게 펴고 엘리베이터를 나서더니 고개를 들고는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성도윤 대표님, 장난이 지나치시네요. 즐겁게 살고 있는 게 뭐 어때서? 내가 무슨 남의 물건을 훔치기라도 했어, 아니면 뺏어오기나 했어. 내가 왜 양심에 찔려야 하는데?”“오히려 한 회사의 대표인 당신이 늦은 밤에 자지도 않고 왜 여자 혼자 살고 있는 집 앞에 서 있는 거야? 마침 나한테 들켰으니 양심에 찔려야 하는 쪽은 그쪽이 아닌가?”성도윤은 논리적인 차설아에 말문이 막혔다. 그는 한참 고민하더니 차가운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당신이 얼마나 막 나가는지는 모르지만 당신 신분을 명심하라고. 요 며칠 다른 남자들과 연예면 기사 난 걸 자랑으로 생각하는 거야?”차설아는 더 화가 나지도 않았다.‘이 남자는 정말 언제나 이렇게 오만방자하네! 내가 전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웠지, 이런 남자를 4년 동안이나 진심으로 사랑했으니 말이야. 괜히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서 나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랑밖에 모르는 여자로 되었잖아? 그래도 다행이지, 이제 정신을 차렸으니까. 더는 성도윤의 뜻을 따르기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남자를 보더니
성도윤은 눈을 떴다. 깊은 눈동자에는 의아함이 비쳤고, 약간의 짜증과 함께 차갑게 말했다.“튕기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적당하면 귀엽지만, 도를 넘으면 재미가 없지.” 말을 마친 후, 성도윤은 더욱 강한 카리스마로 여자를 향해 다가갔다.성도윤은 당연히 차설아도 원하면서 그의 소유욕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튕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에 차설아가 자신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런 마음이 어떻게 금방 사라질 수 있겠는가?급해 난 차설아는 핸드폰을 꺼내 잘생긴 남자의 차가운 얼굴에 들이밀며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다.“성도윤, 당신 정말 미쳤어!”“내가 연예계 뉴스에 올라서 당신 망신을 줬지? 경고하는데 지금 당장 나한테서 떨어지지 않으면 내일 법률 뉴스에 오르게 될 거야!”성도윤은 허리를 곧게 세웠고,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뭘 하려는 거야?”차설아는 대답하지 않고 사진을 찍은 뒤, 112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훌쩍이며 우는 목소리로 말했다.“경찰이죠? 살려주세요. 여기 샘천 레지던스인데요, 어떤 변태가 쫓아와서 저한테 나쁜 짓을 하려고 해요. 빨리 와서 저 좀 구해주세요!”성도윤은 할 말을 잃었다.그는 무의식적으로 부부 싸움이니 경찰에게 상관하지 말라고 하려 했지만, 갑자기 이미 이혼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그래서 법적으로 지금 성도윤의 행동은 성추행에 속하기에 충분했다.성도윤이 멈칫하는 모습을 본 차설아는 자신감을 갖고 말을 이어갔다.“이봐요. 성 대표님, 여기서 2킬로미터도 안 떨어진 곳에 파출소가 있답니다. 만약 경찰이 올 때까지 계속 이러고 계신다면, 옛정이고 뭐고 난 당신을 감옥에 넣을 거예요.”차설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성우에게서 배운 법조를 읽었다.“형법 237조에 근거, 여성을 추행한 정도가 엄중한 자는 징역 5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성우는 이 방면의 사건을 다루는 전문가야. 한번 직접 확인해 볼래?”성도윤의 눈은 점점 차가워지더니, 마치 잠복해 있는 맹수처럼 위험한 기운을 드러내고 있었다.그제야
성도윤은 차설아의 경고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차설아가 다른 남자를 빌미로 자신을 화나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행동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성도윤은 계획대로 골드 찻집에 도착해 소씨 그룹의 사장 소건우와 만나 협력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소씨 그룹은 중국 전역에서 전자 제품 분야의 4대 유통 업체 중 하나이다.소씨 그룹과 함께 이름을 날린 회사는 바로 성대 그룹과 긴밀히 협력했던 남우 그룹이었다.지금 남우 그룹은 차설아에게 빼앗겼으니, 성도윤은 빠른 시일 내로 새로운 협력 상대를 찾아야만 성대 그룹이 생산한 전자 제품의 판매 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찻집의 최고급 룸에서 소건우는 이미 오랫동안 기다렸다.성도윤을 보자 바로 일어나 악수를 하며 환하게 웃었다.“도윤아, 오랜만이구나. 내가 드디어 너랑 차 한 잔을 마실 자격이 되는구나.”“농담이 지나치시네요, 아저씨.”성도윤은 몸을 곧게 펴고 여전히 차갑고 거리감 있는 모습을 유지했다. 덤덤하게 소건우와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도윤아, 어서 이 차를 마셔봐. 중국의 대홍포인데 한 입만 마셔도 입안에서 풍미가 돌아. 너도 분명 좋아할 거야.”소건우는 열정적으로 또 정성스레 차를 따랐다.업계의 이치대로라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은 소건우이다. 하지만 성대 그룹의 강력한 힘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성도윤은 적어도 소건우보다 20살은 어리지만, 타고난 카리스마가 강해서 소건우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숙이게 되었다.무엇보다 성대 그룹이 생산하는 전자제품은 퀄리티가 애플에 버금간다는 입소문을 타고 확고한 팬층을 확보한 상태였다.성대 그룹의 유통 업체가 된다는 건 아시아 전역의 전자제품 시장을 주름잡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몇 년 전, 남우 그룹에게 그 기회를 빼앗기고, 오늘 드디어 소씨 그룹의 차례가 되었으니 당연히 차질 없이 준비해야 한다.“남해진 그 늙은 여우가 성대 그룹을 마다하고 이름도 없는 작은 회사랑 손을 잡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 미련하기 짝이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 다부진 몸매에 끌려 그대를 쭉 지켜보게 되었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대의 모습을 보면서 심장이 떨려왔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그대가 유독 빛나 보였거든요. 그대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하늘은 배경윤이 쓴 편지를 천천히 읽으면서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성 참가자 중에서 진찬영이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진찬영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도현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고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첫인상 1위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대라고 하고 싶어요. 하늘 씨, 앞으로 우리 잘 지내봐요. 하늘 씨랑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하늘 씨의 마음도 궁금해요. 단둘이 얘기 나누고 싶어요.”편지를 다 읽은 하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늘은 부끄러워하면서 머리를 긁적였고 배경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경윤 씨, 언제부터 저한테 호감이 생긴 거예요?”하늘을 포함한 게스트들은 전부 두 눈을 크게 뜨고 배경윤을 쳐다보았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배경윤은 사도현, 진찬영이 아닌 뜬금없는 하늘한테 고백했던 것이다.[지금 사람 마음 갖고 장난하는 거야? 거짓말하지 마. 누구한테 마음이 있는지 다 보이는데 왜 저러는 거야?][이거 대본 맞지? 대본의 냄새를 맡았어. 제작진한테 너무 실망이야.][대본이든 말든 나는 사도현과 배경윤이 이어지길 기도할 거야.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잖아. 이러다가 진짜 이어져서 결혼할 수도 있어.][결혼이라니, 너무 앞서간 거 아니야? 사도현이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아. 배경윤은 진찬영을 더 좋아한다고!]네티즌은 댓글 수백 개씩 달면서 열렬하게 토론했다. 진찬영의 평온한 얼굴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사도현도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사도현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열렬하게 구애했는데도 하늘 씨한테 졌어요. 정말 아쉬워요.”“사도현 씨, 제 말 좀 들어봐요. 경윤 씨가 장난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저는 오늘 경윤 씨랑
배경윤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진찬영은 배경윤이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동안 꾸준하게 좋아했던 연예인이기도 했다.배경윤은 그동안 진찬영과 지내면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정적인 팬에서부터 진찬영을 좋아하는 여자가 되었다.가끔 진찬영과 손을 잡고 천천히 늙어가는 평화로운 삶을 그리기도 했었다.진찬영은 자신을 향해 뻗은 배경윤의 손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불쾌함을 전부 씻어버리고 손을 잡으려고 했었다.그런데 이때 사도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배경윤의 손을 잡았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밤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으니 아무도 빠지면 안 된다고 했어요.”말을 마친 사도현은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그리고 배경윤을 데리고 게스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이 손 안 놔? 누구 마음대로 내 손을 덥석 잡는 거야? 때리기 전에 놔줘.”배경윤은 살기가 넘치는 눈으로 사도현을 쳐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사도현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사도현은 진찬영과 배경윤이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훼방했다.“내가 잡고 싶어서 잡은 줄 알아? 제작진이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사도현은 게스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사회자 최빈을 향해 말했다.“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죠.”최빈은 뒤쪽에 서 있는 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찬영 씨,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곧 고백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은 매일 밤에 게스트들이 모여 앉아 호감이 있는 사람한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야 했다. 다 쓴 편지는 추첨함에 넣고 제작진이 지목한 게스트가 나와서 뽑은 편지를 읽으면 되었다.낯부끄러운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게스트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아주 궁금했다.마음을 편지에 담아 공개하기에
배경윤은 초가집의 뒷문으로 나온 뒤에 일부러 바닷가를 돌아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 곳으로 향했다. 게스트들은 배경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했다.“경윤 언니, 오셨어요?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경윤 언니가 와서 너무 기뻐요.”장유빈이 머무는 숙소는 배경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장유빈은 바비큐 파티에 같이 참가하자고 했지만 배경윤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못내 아쉬웠던 장유빈은 배경윤을 발견하고는 신나서 벌떡 일어났다.“모두 참가했는데 저만 빠지면 그렇잖아요. 저만 유별난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늦게 와서 죄송해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요. 경윤 씨, 이것 좀 봐요. 찬영 오빠가 경윤 씨를 위해서 쉬지 않고 고기만 구웠어요. 경윤 씨가 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더라고요.”소수민은 불판에 올려진 고기를 보면서 부러운 어조로 말했다.“같은 여자라도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요. 저희는 먹고 싶은 걸 구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구웠어요. 그런데 경윤 씨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찬영 오빠가 양념 고기, 불닭 소스 고기, 허니 고기를 준비했대요. 먹음직스러워서 침이 저절로 고였어요.”배경윤은 진찬영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 미안했다.“찬영 오빠, 고기를 굽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제가 오빠를 위해서 뭐라도 할게요.”배경윤은 진찬영의 옆으로 걸어가서 같이 고기를 굽고 양념을 발랐다.“조심해요!”진찬영은 튀어 오르는 숯불을 막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숯불은 그대로 진찬영의 손에 튀었다.“찬영 오빠, 괜찮아요? 이 고귀한 손으로 왜 막은 거예요! 흉이 지면 안 되니까 얼른 가서 약부터 발라요.”소수민은 입을 틀어막고 기겁하더니 이내 소리를 질렀다.“찬영 오빠, 저...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빠가 다쳤어요.”깜짝 놀란 배경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괜찮아요. 덴 것도 아
사도현은 배경윤의 귓가에 속삭였다.“지금 가서 문을 열어주면 어떻게 될까?”“그러지 마!”배경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사도현의 팔을 꼭 붙잡았다. 사도현은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이상한 소리라도 낸다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입 다물고 있어.”배경윤은 진찬영한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진찬영과 시작해 보지도 않고 끝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뻔뻔스러운 감이 있긴 하지만 인성은 늘 그렇듯 욕심이 끝도 없었다.“안에 누구 없어요? 없으면 문 열고 들어갈게요.”쾅!소수민은 문을 점점 세게 두드렸고 허술하게 지어진 초가집이 무너질 것 같았다. 벽이 흔들거렸고 먼지가 떨어졌다.배경윤은 사도현을 끌어안은 채 미간을 찌푸렸고 이 난감한 상황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사도현은 잔뜩 긴장해 있는 배경윤이 우스웠다.어쩐지 기분이 언짢았던 사도현은 일부러 배경윤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혔다.“하하하!”배경윤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고 말았다. 문밖에 서 있던 진찬영과 소수민은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소수민은 큰 소리로 물었다.“계세요? 화장실을 쓰고 싶은데 문을 열어주세요. 저기요!”배경윤은 입을 틀어막고는 사도현을 노려보았다. 사도현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약을 올렸다.“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 다른 곳에 가봐요. 쉬고 있는 사람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요.”진찬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알겠어요. 찬영 오빠는 참 다정해요.”소수민은 짜증이 밀려왔지만 진찬영과 같이 다른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발걸음 소리가 희미해지자 배경윤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주먹으로 사도현을 마구 때리면서 말했다.“사도현, 너 진짜 미친 거지! 일부러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잖아. 이러고도 네가 남자야?”“사람들은 이미 우리를 한 쌍의 커플로 보고 있어. 커플이 같은 침대를 쓰는 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야?”사도현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배경윤을 내려다보았다. 배경윤이 진찬영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 마음에 걸렸고 신경이 거슬렸
“그, 그게...”배경윤은 입술을 깨물면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배경윤은 사도현을 아직도 좋아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감정이 드는지도 몰랐다.‘내가 아직 좋아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설레는 순간은 있었어.’배경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매일 마음을 졸여야 하는 사도현보다 잔잔한 물결 같은 진찬영이 더 좋았다. 진찬영은 다정하고 친절해서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진찬영과 진지하게 만나서 결혼할 생각도 있었다.만약 이 프로그램을 통해 두 사람이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면 그대로 진찬영한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었다.사도현은 빛이 나는 태양이라 열정적이고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치는 건 결국 배경윤이었다.진찬영은 차가워 보이지만 어둠으로 모든 것을 품어주는 달이었다. 달을 바라보고 가까이하는 것만으로 행복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도현아, 사실 나는...”배경윤은 심호흡하고는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다. 그런데 사도현은 이미 대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배경윤의 입을 막아버렸다.“읍!”배경윤은 또다시 사도현과 입을 맞추게 될 줄 몰랐다. 요트 위에서 나눴던 키스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부드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입맞춤이었다.가볍게 부딪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사도현은 두려워했고 비굴하게 보이더라도 배경윤한테 떠나지 말라고 빌고 싶었다.화가 나서 밀치려고 했던 배경윤은 손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쳐다보다가 더 가까이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이 세상에 불쌍하고 가엾은 강아지 같은 남자를 마다할 여자는 없을 거야. 그저 불쌍해 보여서 어쩔 수 없었어.’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사랑을 퍼부었다. 몸이 달아올라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너의 대답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아. 네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사도현은 배경윤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도현아, 혹시 아까 그것도 작정하고 그런 거야?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 나는 네가 미워!”배경윤의
당장이라도 별이 쏟아질 것처럼 몽환적인 순간이었다. 배경윤은 사도현의 어깨에 기대고는 조용히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알 수 없는 기류가 흘렀고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별을 볼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아. 몇 년 전에 보고 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었는데 말이야...”배경윤은 제일 빛나는 별 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슬픔이 가득 묻어나는 눈으로 사도현을 바라보았다.“마지막으로 별을 본 건 대학교 시절에 나, 우리 오빠와, 설아까지 셋이 외국에 여행 갔을 때야. 높은 산과 낮은 산 사이에 있는 구역에 차를 세우고 텐트를 쳤어. 밤만 되면 두 설산 사이로 반짝이는 별들이 얼마나 예뻤는지... 그 별을 따라 가면 이 은하의 끝에 닿을 것만 같아서 손을 뻗어보기도 했어.”“네 말을 들으니까 상상이 돼.”사도현은 아름다운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원지대에서 보는 별을 사뭇 다르다고 들었기에 늘 가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바삐 돌아치는 바람에 가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배경윤의 말을 들은 사도현은 마치 고원지대에 간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그때의 우리는 걱정할 것도 없이 행복하게 지냈어. 시간이 나면 운전해서 바람 쐬러 갔고 등산도 자주 갔었어. 바다를 많이 보지 못한 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지. 별들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제 자리를 잘 지키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변했을까?”배경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행복했던 대학 시절을 돌이켜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도현은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평소에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긍정적인 여자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진지하고 우울한 면이 있었네?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되었어.”배경윤은 사도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별똥별이 한 획을 긋고 떨어지는 것처럼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너는 모든 사람이 너처럼 겉만 화려하고 속은 텅 빈 줄 알아? 사람은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는 말도 모르냐고!”“공주님이 웬일로 울고 있어? 그렇게 슬
“응. 보고 싶어. 그게 어딘데?”배경윤은 진지한 표정을 한 사도현을 바라보았고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그래서 겨우 진정하고 태연하게 물었다.“그럼 나랑 같이 가볼래?”사도현은 배경윤한테 손을 내밀면서 부드럽게 물었다.“이 시간 때에 가야 볼 수 있어. 너만 괜찮다면 같이 가고 싶어. 네가 싫다면 강요하지 않을게.”배경윤은 사도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가자! 혼자서 심심했었어.”“나의 공주님한테는 최고의 선물이 될 거야.”사도현은 눈이 휘어지게 웃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자신만의 아지트로 달려갔다.두 사람이 멀어진 뒤로 배경윤이 처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날이었다.사도현은 자신이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준 모습에 배경윤이 감동했을 것이라고 여겼다.몇 분 후, 두 사람은 섬의 다른 한 끝에 도착했다. 그곳은 사도현이 지내는 초가집이었고 마당에서 게스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모여 앉아 해산물을 구워 먹고 기타를 쳤다. 남성 참가자와 여성 참가자 사이에 핑크빛 기류가 흘렀고 분위기가 한층 더 무르익어갔다.“설마 제일 예쁜 풍경이 저 사람들이 해산물을 구워 먹는 모습은 아니겠지?”배경윤은 멀리서부터 한곳에 모여 놀고 있는 게스트들을 발견했다. 사도현한테 속은 것 같아서 화가 솟구쳐 올랐고 배신감이 들었다.‘이럴 줄 알았어. 진지한 척만 하고 항상 나를 놀리고 싶어 했지. 내가 또 속을 줄 알아?’“그쪽 말고 여기로 가자.”사도현은 배경윤을 데리고 아무도 모르게 뒷문으로 초가집 안에 들어갔다. 배경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사도현을 노려보았다.“고작 초가집을 보여주려고 데리고 온 거야? 그럴 바에는 나가서 다른 사람들이랑 노는 게 낫겠어. 너는 왜 항상 나를 놀리는 건데?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지할 수는 없어?”“잠깐만 기다려 줘. 곧 보게 될 거야.”사도현은 배경윤의 두 눈을 손으로 가리고 불을 껐다.“사도현,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또 허튼수작을 부렸다가는 소리 질러서 너를
[재벌가 도련님과 암컷 돼지의 은밀한 관계!][사도현의 정신 상태 우려스러워...]사도현의 부드러운 노랫소리 덕분에 암컷 돼지는 첫 번째 새끼 돼지를 순리롭게 낳았다.“드디어 아기를 낳았어! 돼지야, 너는 정말 멋진 엄마야. 다른 아기도 힘내서 낳자!”사도현은 새끼 돼지 몸을 수건으로 닦아주고는 낡은 옷에 감싸안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마음이 뭉클했다.예전부터 사도현은 딩크족이었다. 아이는 그저 악마 같은 존재일 뿐, 절대 가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갓 태어난 새끼 돼지를 보면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경윤이랑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거야. 경윤이를 닮은 아이면 얼마나 예쁠까?’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출산이 마무리되었다. 다섯 마리의 암컷 돼지는 순리롭게 몇십 마리의 새끼 돼지를 낳았고 장은학은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사도현이 빨리 달리고 용기를 낸 덕분에 다른 게스트를 제치고 먼저 1000점을 획득했다. 장은학은 마을 이장과 함께 꽃다발을 건넸고 ‘돼지 출산 전문가’라는 글이 적힌 상장도 주었다.사도현의 하얀 셔츠가 더럽혀졌지만 꽃다발과 상장을 안고 있으니 무척 행복했다.사도현은 배경윤 쪽으로 다가가서 환하게 웃더니 상장을 보여주면서 말했다.“경윤아, 내가 결국 해냈어. 네가 후회할 날이 올 거라고 내가 말했었지? 이제는 그렇게 여유롭지 못할 거야. 기대해도 좋아.”배경윤은 싱글벙글 웃는 사도현을 바라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고 슬며시 엄지를 내밀었다.“네가 진짜 해낼 줄은 몰랐어. 진짜 대단해.”날이 어두워지자 사도현은 게스트들을 불러 해산물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게스트들은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도현은 사람을 시켜 진찬영이 파티에 참가하지 못하고 업무 전화만 받게 했다.사도현은 배경윤이 지내는 숙소로 걸어갔다.배경윤은 해산물 바비큐 파티에 참가하지 않고 혼자 별장의 베란다에 기대 넓은 바다를 내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날이 어두워
암컷 돼지들은 괴로워하면서 소리를 질렀고 허공에 대고 발길질했다. 그러면서 몸에 붙어있던 배설물이 사방으로 튀어서 접근하기 어려웠다.사도현은 토하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고 천천히 다가갔다.“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 봐! 난산이어서 이러다가 죽을지도 몰라.”장은학은 급한 마음에 목청을 높여 말했다.“확실히 할 줄 아는 사람 맞아? 할 줄 모르면 당장 나와. 자네 말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어.”“잠시만요. 제가 할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사도현은 코를 막고 겨우 말했다.‘이 세상에 내가 해내지 못하는 일은 없어. 고작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는 걸로 겁먹지 말자. 나는 할 수 있어.’고민하던 사도현은 휴대폰을 꺼내 암컷 돼지의 출산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첫째, 산후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깨끗한 출산 공간을 만들어주고 괴망간산칼륨으로 암컷 돼지의 온몸을 한 번 닦는다.][둘째, 가위를 소독하고 새끼 돼지의 탯줄을 자른다.][셋째, 낡은 수건이거나 옷으로 새끼 돼지의 몸을 닦아주고 감싸안는다.][그리고 출산 과정에서 암컷 돼지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부드러운 말투로 다독이거나 노래를 불러서 암컷 돼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암컷 돼지의 출산 절차를 보고 난 사도현은 당장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재벌가 도련님, 유명한 회사의 대표가 이제는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어야 했기 때문이다.황당한 일이 연속 벌어지니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사도현 씨, 할 수 있는 거 맞아요? 못 하겠으면 빨리 나오세요. 대학교 때 배웠던 적이 있어서 제가 더 잘할 것 같거든요.”하늘은 돼지우리 밖에서 목을 빼 들고 말했다. 하늘은 사도현 다음으로 제일 초라한 별장을 선택한 사람이었기에 별장을 바꾸고 싶었다.“할 수 있으니 들어오지 마세요. 이건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사도현은 심호흡하고는 가만히 누워있는 암컷 돼지를 괴망간산칼륨으로 닦아주었다.암컷 돼지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면서 버둥거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