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윤은 차설아의 경고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차설아가 다른 남자를 빌미로 자신을 화나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행동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성도윤은 계획대로 골드 찻집에 도착해 소씨 그룹의 사장 소건우와 만나 협력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소씨 그룹은 중국 전역에서 전자 제품 분야의 4대 유통 업체 중 하나이다.소씨 그룹과 함께 이름을 날린 회사는 바로 성대 그룹과 긴밀히 협력했던 남우 그룹이었다.지금 남우 그룹은 차설아에게 빼앗겼으니, 성도윤은 빠른 시일 내로 새로운 협력 상대를 찾아야만 성대 그룹이 생산한 전자 제품의 판매 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찻집의 최고급 룸에서 소건우는 이미 오랫동안 기다렸다.성도윤을 보자 바로 일어나 악수를 하며 환하게 웃었다.“도윤아, 오랜만이구나. 내가 드디어 너랑 차 한 잔을 마실 자격이 되는구나.”“농담이 지나치시네요, 아저씨.”성도윤은 몸을 곧게 펴고 여전히 차갑고 거리감 있는 모습을 유지했다. 덤덤하게 소건우와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도윤아, 어서 이 차를 마셔봐. 중국의 대홍포인데 한 입만 마셔도 입안에서 풍미가 돌아. 너도 분명 좋아할 거야.”소건우는 열정적으로 또 정성스레 차를 따랐다.업계의 이치대로라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은 소건우이다. 하지만 성대 그룹의 강력한 힘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성도윤은 적어도 소건우보다 20살은 어리지만, 타고난 카리스마가 강해서 소건우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숙이게 되었다.무엇보다 성대 그룹이 생산하는 전자제품은 퀄리티가 애플에 버금간다는 입소문을 타고 확고한 팬층을 확보한 상태였다.성대 그룹의 유통 업체가 된다는 건 아시아 전역의 전자제품 시장을 주름잡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몇 년 전, 남우 그룹에게 그 기회를 빼앗기고, 오늘 드디어 소씨 그룹의 차례가 되었으니 당연히 차질 없이 준비해야 한다.“남해진 그 늙은 여우가 성대 그룹을 마다하고 이름도 없는 작은 회사랑 손을 잡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 미련하기 짝이
이 말을 들은 소건우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오해야, 어르신은 모래밭을 누비며 적을 쓰러 눕힌 영웅이셔. 그런 분을 내가 존경해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마찰이 생길 수 있겠어?”“사실인가요?”성도윤은 담담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날카로운 눈으로 소건우 말의 진위 여부를 판단했다.사실, 성도윤은 이미 소씨 그룹에 대해 많은 사전조사를 했다. 확실히 두 가문 사이에 그 어떠한 마찰도 조사해 내지 못했다.할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져서, 성도윤을 문전 박대를 하기 때문에 직접 찾아가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당연히 사실이지.”소건우는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지만, 켕기는 듯한 표정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솔직히 털어놓았다.“기껏해야 내가 젊었을 때, 자네 아내의 아버지, 그러니까 이미 돌아가신 자네 장인어른과 약간의 마찰이 있었을 뿐이야.”“차설아의 아버지요?”성도윤은 싸늘한 눈으로 계속 물었다.“그분과 어떤 마찰이 있었죠?”“참, 성인 남자들 사이에 뭔 문제가 있겠어? 당연히 사업 문제, 그리고 여자문제지.”“아주아주 오래전의 일이야. 자네 장인어른이 장모를 만나기 전에, 우리는 원래 사업상 라이벌이었지. 계속 대적하다가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 여자 때문에 크게 싸워서 인연을 끊었지. 그런데 그 독한 여자가 우리 사이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사라져버렸어...”당시 일을 언급하던 소건우는 분노에 차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차설아 아버지와의 마찰이 아쉬운 것이 아니라, 두 남자를 바보로 만들었던 그 여자 때문에 분한 것이었다.“도윤아, 여자는 말이야, 고양이를 가장한 호랑이야. 사람을 속이기로 작정을 하면 혼까지 빼앗아 가니 무조건 조심해야 돼. 절대 여자에게 사로잡히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소건우의 말에 성도윤은 왠지 차설아가 떠올랐다.이혼 전과 후의 모습이 확연히 다른 것을 생각하면, 소건우의 말은 지극히 일리가 있었다.여자는 확실히 변장에 능한 동물이다!“안심하거라, 소씨 가문과 성씨 가문은
진무열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성도윤은 미간을 찌푸리고 차가운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이 여자가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거야?’“왜 그래, 도윤아? 마누라한테 무슨 일이 생겼어?”이미 일어나서 떠날 준비를 하던 소건우는 진무열의 소란스러운 목소리에 또 자리에 앉았다.찻집에는 당연히 TV가 있었고, 성도윤은 내색하지 않고 직원에게 켜라고 했다.TV에서 차설아는 수수한 옷차림에 창백한 얼굴을 하고, 수백 곳의 언론사 앞에 나타나 성도윤과 이혼했다는 사실을 가엽게 발표했다.“안 좋은 소식으로 인사를 드려 죄송하지만, 저랑 성도윤 씨는 4년간의 결혼생활을 끝으로 합의 이혼을 했음을 발표합니다.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그분도 행복하길 바랍니다.”밑에 있던 기자들은 우수수 손을 들며 차설아에게 질문을 퍼부었다.“차설아 씨, 성도윤 씨와의 결혼 파탄은 제3자의 개입과 연관이 있나요?”“차설아 씨, 전에 라이브 방송에서 성도윤 씨의 내연녀가 아기까지 가졌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배씨 가문의 여섯째 도련님, 배경수 씨와 자주 외박을 하신다는 소문이 있는데, 남편분과 맞바람을 피우신 건가요?”차설아는 눈을 늘어뜨리고 조용히 흐느끼며 처량한 표정을 지었다.“저랑 성도윤 씨는 같은 세계 사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맞지 않았어요. 헤어지는 게 서로를 위해서 좋은 선택이에요. 그리고 다른 것들은... 말씀드릴 수도 없고, 그럴 용기도 없습니다.”차설아는 비록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임대옥에 버금가는 억울한 표정으로 모든 걸 말해주었다.이 기자회견이 끝나면 성대 그룹에 향한 부정적인 평가와 질타가 봇물 터지듯 쏟아질 것이다.사실, 차설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도, 재벌가의 이혼이 언론에 알려지면 반드시 큰 파장을 일으킨다.그래서 차설아의 이런 행동은, 일부러 성도윤을 욕보이게 하고, 어젯밤 그의 ‘지나친’ 행위에 대해 복수를 한 것이다.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소건우는 진심으로 성도윤을 동정하며 서둘러 직
성도윤은 어이없이 한숨을 내쉬고 차를 몰고 본가로 향했다.소씨 그룹과 협력하기로 선택한 후부터 할아버지의 반대를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올 줄은 몰랐다.이따가 한바탕 혼이 날 것이다.마침 이 기회에 소씨 가문이 대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자세히 물어볼 수 있다.성도윤이 저택에 들어가기도 전에 할아버지의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글렀어, 그 자식은 글렀어. 돈에 눈이 멀어서 다른 건 안중에도 없어. 오늘 반드시 때려죽일 것이니 아무도 나 말리지 마!”성도윤의 등에 난 채찍 상처가 낫지도 않았다. 성도윤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조여왔다.성주혁은 군인 출신이라 후손들을 단순 폭력적으로 교육해 왔다.그래서 성가의 후손들은 모두 품행이 단정했고, 성도윤도 할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었다.유독 차설아에 관한 일에서 그는 통제력을 잃고 말았다...“할아버지.”성도윤은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무거운 걸음으로 별장 로비로 들어갔다.집사는 아주 기뻐했다.“어르신, 화 좀 푸세요. 둘째 도련님께서 돌아오셨어요.”성주혁은 고개를 들고, 치타 같은 매서운 눈으로 성도윤을 노려보더니 “쾅” 찻잔을 내리쳤다.“너 이 자식, 무슨 낯짝으로 굴러들어 와?”성도윤은 어이가 없었다.“할아버지께서 부르셨잖아요?”“이것 좀 봐. 이 자식은 틀려먹었다니까. 내 앞에서 감히 말대꾸를 하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 아니면 이 늙은이는 안중에도 없는 건지! 이것도 손주라고 키웠으니, 짐승만도 못한 놈!”어르신은 화를 내고, 욕설을 퍼부으며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일찌감치 익숙해진 성도윤은 순순히 고개를 숙이고 혼이 났다.성도윤의 아버지를 비롯한 많은 집안 식구들이 괜히 오랜 세월 동안 할아버지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뜻을 거역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어르신이 일단 화가 나면, 막무가내로 모든 것을 틀렸다고 나무라기 때문이다. 숨 쉬는 것조차 죄가 될 수 있을 정도였다.“내가 성대 그룹은 절대 그 집안과 협력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지 않았느냐? 절대 소건우와 접촉
성주혁은 차설아의 기자회견 녹화분을 보고 한참이나 침묵했다. 주름진 얼굴에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성도윤은 말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속으로는 할아버지가 드디어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좋아했다.물론, 성도윤은 차설아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상처를 줬었다.하지만, 차설아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성도윤은 임채원과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척 한 것이지만, 차설아와 배경수는 진심이고 아이까지 낳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래서 그들의 이혼은 분명히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인데 왜 성도윤만 모든 것을 뒤집어써야 하는가?“할아버지, 보셨다시피 설아는 저와 이혼하고 싶어 안달이 났어요. 그래야 그 잘난 배경수와 떳떳한 사이가 되죠. 아니면 우리 이혼 소식을 벌써 공식 발표할 리가 없잖아요.”성도윤의 얼굴은 차가웠고, 목소리에는 화가 가득 차서 말했다.“할아버지가 생각하시는 것처럼 순수한 여자 아니에요. 모두 위장된 겉모습에 속았다고요.”TV를 응시하던 성주혁은 성도윤에게 시선을 돌렸다. 흰 눈썹을 잔뜩 찡그리고 말했다.“네놈은 그렇게밖에 이해를 못 하는 거야?”“어쩐지, 학교 다닐 때 다른 과목은 만점을 받으면서, 국어만 약하더라니. 독해력이 너무 떨어져!”“멍청한 놈!”성주혁은 성도윤의 등짝을 후려쳤다.“보고도 모르겠어? 설아는 널 잡고 싶은 거야!”성도윤은 어이없게 한숨을 내쉬고 거리낌 없이 반박했다.“제가 눈이 부실해서 몰랐네요.”“넌 당연히 모르지, 넌 눈이 멀었으니까!”성주혁은 돋보기 안경을 밀고, 녹화 영상의 어느 한 장면으로 돌아가 화면을 가리키며, 마치 학술 연구를 하는 것처럼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봐봐. 이 말의 핵심이 무엇이냐. 설아가 너와 4년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하지 않냐. 이 말이 무슨 뜻인 것 같아?”“무슨 뜻인데요?”“바로 널 잊지 못했고, 너와 재혼하고 싶다는 걸 암시하고 있는 거지!”성주혁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성도윤은 화를 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랐다.
저녁 식사는 매우 풍성했다. 하늘에서 날고, 물에서 헤엄치는 것까지 모두 갖춰져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자리에 앉던 성도윤은 미간을 찌푸렸다.‘할아버지는 늘 담백하고 간단하게 드셨는데, 오늘 내가 왔을 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거하게 준비하셨지?’보아하니 단순한 저녁 식사가 아니라, 어쩌면 잔칫상이 될지도 모른다.성도윤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수저를 들었다.성주혁은 자리에 앉더니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아직 사람이 다 오지도 않았는데 뭐가 그리 급해?”역시나!성도윤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잠자코 수저를 내려놓았다.아마 차설아를 불러와, 강제로 자리를 만들려는 속셈일 것이다.성도윤은 굳어진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할아버지, 무슨 속셈인지 알아요. 저와 설아는 이미 끝났어요. 그러니 더 이상 헛수고하지 마세요.”“참, 네놈이 김칫국을 제대로 마시는구나!”성주혁은 희끗한 수염을 유유히 쓰다듬으며, 웃는 듯 마는 듯 말했다.“너 같은 못난 놈에게 내가 왜 설아를 붙여주겠어? 그건 설아를 해치는 것이 아니냐!”성도윤은 어리둥절했다.할아버지의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도대체 어느 정도가 진실인지 곰곰이 생각했다.이때, 도우미가 기뻐하며 와서 말했다.“어르신, 도련님, 둘째 사모님 오셨어요!”차설아가 그 뒤를 이어 로비로 들어섰다.성도윤은 여전히 잘생기고 존귀한 자태를 유지하며 차가운 눈을 들어 무심한 척 바라보았다.그리고... 하마터면 화가 나서 피를 토할 뻔했다.차설아는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성도윤이 그토록 싫어하는 배성준의 아들, 배경수도 함께였다.차갑던 성도윤의 얼굴은 더욱 검게 변해있었다.성도윤은 극도로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어르신을 보며, 합리한 설명을 원했다.하지만 성주혁은 이를 외면하고,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자애로운 얼굴로 두 사람을 향해 손짓했다.“얘들아, 어서 와. 내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다고. 얼른 와서 밥 먹어!”차설아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도 성도윤이 여기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성도윤의 말을 들은 차설아는 화가 나서 폭발할 지경이었다.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차설아는 바로 성주혁에게 말했다.“맞아요, 할아버지. 저랑 경수는 스캔들이 아니라 정식으로 사귀기로 했어요. 절 용서하고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요. 경수는 진짜 저를 지켜주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운명적인 사람이에요.”배경수는 몸을 기울여 차설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은 아주 애틋하고 정열적이었다.방금 차설아가 일부러 성도윤을 화나게 하려고 거짓말을 한 걸 알면서도, 배경수는 아주 감동적이었다.차설아에게 그는 남자친구의 후보에도 들 수 없었다.갑자기 차설아 남자친구의 역할을 경험하게 되니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짜릿했다.성주혁은 몇 초간 정색을 한 후 갑자기 껄껄 웃으며 상냥한 모습으로 말했다.“이 녀석, 할아버지는 당연히 널 축복하지. 그렇지 않으면 왜 너희 둘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겠어?”“이 젊은 녀석이 믿을만한지, 널 잘 돌볼 수 있는지, 할아버지가 봐줘야지. 넌 방금 불구덩이에서 나왔는데 또다시 다른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을 내가 어떻게 보겠어?”여기까지 말한 성주혁은 자기 왼쪽에 앉아 있는 성도윤을 하찮게 바라보았다. 그 뜻은 아주 분명했다.배경수도 맞장구를 쳤다.“장군님, 마음대로 시험해 보세요. 저는 무예에 능할 뿐만 아니라, 랩도 할 수 있어요. 제가 바로 한 소절 불러드릴까요?”말을 마친 배경수는 진짜 랩을 하기 시작했다.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으로 어느 배틀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배경수는 작은 태양처럼 어디를 가든 사람들에게 빛과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모습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항상 규칙을 지키던 도우미도 웃고 말았다.유독 성도윤만 차갑게 앉아 있을 뿐,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싱겁긴!”본격적인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성주혁은 와인잔을 두드리며 말했다.“오래간만에 너희가 이 늙은이의 체면을 세워 함께 식사를 하는구나. 난 우리 설아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네가 우리 윤이와 어떤 사이이든, 난 영원히
성도윤은 표정이 굳어졌다.그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결혼한 지 4년이 되었지만, 같은 테이블에 앉은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함께 식사를 했어도 설아의 입맛 취향이 어떤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난 그런 부질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성도윤은 차가운 눈으로 오만하게 말했다.“부질없는 일이요?”배경수의 눈에는 시종일관 유지하던 나른함이 감출 수 없는 분노로 변했다. “그렇죠. 도윤 씨와 같은 냉혈 인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적이니, 어떻게 다른 사람을 신경 쓰겠어요?”배경수는 성도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날카롭게 말했다. 성도윤이라는 무정한 얼음산을 산산조각 낼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설아 누나의 노력이 안타깝네요. 누나는 도윤 씨의 입맛 취향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매운 건 싫어하고, 담백한 걸 즐기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스테이크 미디엄 웰던이라, 도윤 씨를 위해 스테이크 굽는 법만 100가지 넘어 배웠어요. 그 노력이 정말 가엽네요!”배경수의 불평에 성도윤의 냉엄한 얼굴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기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성도윤은 무의식적으로 한자리 건너에 앉은 차설아를 바라보았다. 마치 눈빛으로 배경수의 말이 진짜인지 묻고 있는 것 같았다.차설아는 굳건히 앞을 응시하고, 곱고 하얀 얼굴은 차가운 듯 차갑지 않은 듯했다.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경수의 말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요.”“도윤 씨의 냉혹함에 비하면 전 확실히 인정이 많은 편이죠. 하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제가 신경 쓰고 있는 분들이니 모두의 입맛 취향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했던 노력이 안타깝지는 않아요. 앞으로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그만이죠.”차설아의 말에 성도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성주혁은 미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설아야, 네가 맘고생 한 걸 알아. 윤이와 재결합하라고 부추기지 않으마. 앞으로 경수와 잘 지내거라. 믿을 만한 사람이니 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