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무열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성도윤은 미간을 찌푸리고 차가운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이 여자가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거야?’“왜 그래, 도윤아? 마누라한테 무슨 일이 생겼어?”이미 일어나서 떠날 준비를 하던 소건우는 진무열의 소란스러운 목소리에 또 자리에 앉았다.찻집에는 당연히 TV가 있었고, 성도윤은 내색하지 않고 직원에게 켜라고 했다.TV에서 차설아는 수수한 옷차림에 창백한 얼굴을 하고, 수백 곳의 언론사 앞에 나타나 성도윤과 이혼했다는 사실을 가엽게 발표했다.“안 좋은 소식으로 인사를 드려 죄송하지만, 저랑 성도윤 씨는 4년간의 결혼생활을 끝으로 합의 이혼을 했음을 발표합니다.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그분도 행복하길 바랍니다.”밑에 있던 기자들은 우수수 손을 들며 차설아에게 질문을 퍼부었다.“차설아 씨, 성도윤 씨와의 결혼 파탄은 제3자의 개입과 연관이 있나요?”“차설아 씨, 전에 라이브 방송에서 성도윤 씨의 내연녀가 아기까지 가졌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배씨 가문의 여섯째 도련님, 배경수 씨와 자주 외박을 하신다는 소문이 있는데, 남편분과 맞바람을 피우신 건가요?”차설아는 눈을 늘어뜨리고 조용히 흐느끼며 처량한 표정을 지었다.“저랑 성도윤 씨는 같은 세계 사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맞지 않았어요. 헤어지는 게 서로를 위해서 좋은 선택이에요. 그리고 다른 것들은... 말씀드릴 수도 없고, 그럴 용기도 없습니다.”차설아는 비록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임대옥에 버금가는 억울한 표정으로 모든 걸 말해주었다.이 기자회견이 끝나면 성대 그룹에 향한 부정적인 평가와 질타가 봇물 터지듯 쏟아질 것이다.사실, 차설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도, 재벌가의 이혼이 언론에 알려지면 반드시 큰 파장을 일으킨다.그래서 차설아의 이런 행동은, 일부러 성도윤을 욕보이게 하고, 어젯밤 그의 ‘지나친’ 행위에 대해 복수를 한 것이다.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소건우는 진심으로 성도윤을 동정하며 서둘러 직
성도윤은 어이없이 한숨을 내쉬고 차를 몰고 본가로 향했다.소씨 그룹과 협력하기로 선택한 후부터 할아버지의 반대를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올 줄은 몰랐다.이따가 한바탕 혼이 날 것이다.마침 이 기회에 소씨 가문이 대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자세히 물어볼 수 있다.성도윤이 저택에 들어가기도 전에 할아버지의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글렀어, 그 자식은 글렀어. 돈에 눈이 멀어서 다른 건 안중에도 없어. 오늘 반드시 때려죽일 것이니 아무도 나 말리지 마!”성도윤의 등에 난 채찍 상처가 낫지도 않았다. 성도윤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조여왔다.성주혁은 군인 출신이라 후손들을 단순 폭력적으로 교육해 왔다.그래서 성가의 후손들은 모두 품행이 단정했고, 성도윤도 할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었다.유독 차설아에 관한 일에서 그는 통제력을 잃고 말았다...“할아버지.”성도윤은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무거운 걸음으로 별장 로비로 들어갔다.집사는 아주 기뻐했다.“어르신, 화 좀 푸세요. 둘째 도련님께서 돌아오셨어요.”성주혁은 고개를 들고, 치타 같은 매서운 눈으로 성도윤을 노려보더니 “쾅” 찻잔을 내리쳤다.“너 이 자식, 무슨 낯짝으로 굴러들어 와?”성도윤은 어이가 없었다.“할아버지께서 부르셨잖아요?”“이것 좀 봐. 이 자식은 틀려먹었다니까. 내 앞에서 감히 말대꾸를 하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 아니면 이 늙은이는 안중에도 없는 건지! 이것도 손주라고 키웠으니, 짐승만도 못한 놈!”어르신은 화를 내고, 욕설을 퍼부으며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일찌감치 익숙해진 성도윤은 순순히 고개를 숙이고 혼이 났다.성도윤의 아버지를 비롯한 많은 집안 식구들이 괜히 오랜 세월 동안 할아버지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뜻을 거역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어르신이 일단 화가 나면, 막무가내로 모든 것을 틀렸다고 나무라기 때문이다. 숨 쉬는 것조차 죄가 될 수 있을 정도였다.“내가 성대 그룹은 절대 그 집안과 협력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지 않았느냐? 절대 소건우와 접촉
성주혁은 차설아의 기자회견 녹화분을 보고 한참이나 침묵했다. 주름진 얼굴에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성도윤은 말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속으로는 할아버지가 드디어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좋아했다.물론, 성도윤은 차설아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상처를 줬었다.하지만, 차설아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성도윤은 임채원과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척 한 것이지만, 차설아와 배경수는 진심이고 아이까지 낳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래서 그들의 이혼은 분명히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인데 왜 성도윤만 모든 것을 뒤집어써야 하는가?“할아버지, 보셨다시피 설아는 저와 이혼하고 싶어 안달이 났어요. 그래야 그 잘난 배경수와 떳떳한 사이가 되죠. 아니면 우리 이혼 소식을 벌써 공식 발표할 리가 없잖아요.”성도윤의 얼굴은 차가웠고, 목소리에는 화가 가득 차서 말했다.“할아버지가 생각하시는 것처럼 순수한 여자 아니에요. 모두 위장된 겉모습에 속았다고요.”TV를 응시하던 성주혁은 성도윤에게 시선을 돌렸다. 흰 눈썹을 잔뜩 찡그리고 말했다.“네놈은 그렇게밖에 이해를 못 하는 거야?”“어쩐지, 학교 다닐 때 다른 과목은 만점을 받으면서, 국어만 약하더라니. 독해력이 너무 떨어져!”“멍청한 놈!”성주혁은 성도윤의 등짝을 후려쳤다.“보고도 모르겠어? 설아는 널 잡고 싶은 거야!”성도윤은 어이없게 한숨을 내쉬고 거리낌 없이 반박했다.“제가 눈이 부실해서 몰랐네요.”“넌 당연히 모르지, 넌 눈이 멀었으니까!”성주혁은 돋보기 안경을 밀고, 녹화 영상의 어느 한 장면으로 돌아가 화면을 가리키며, 마치 학술 연구를 하는 것처럼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봐봐. 이 말의 핵심이 무엇이냐. 설아가 너와 4년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하지 않냐. 이 말이 무슨 뜻인 것 같아?”“무슨 뜻인데요?”“바로 널 잊지 못했고, 너와 재혼하고 싶다는 걸 암시하고 있는 거지!”성주혁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성도윤은 화를 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랐다.
저녁 식사는 매우 풍성했다. 하늘에서 날고, 물에서 헤엄치는 것까지 모두 갖춰져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자리에 앉던 성도윤은 미간을 찌푸렸다.‘할아버지는 늘 담백하고 간단하게 드셨는데, 오늘 내가 왔을 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거하게 준비하셨지?’보아하니 단순한 저녁 식사가 아니라, 어쩌면 잔칫상이 될지도 모른다.성도윤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수저를 들었다.성주혁은 자리에 앉더니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아직 사람이 다 오지도 않았는데 뭐가 그리 급해?”역시나!성도윤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잠자코 수저를 내려놓았다.아마 차설아를 불러와, 강제로 자리를 만들려는 속셈일 것이다.성도윤은 굳어진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할아버지, 무슨 속셈인지 알아요. 저와 설아는 이미 끝났어요. 그러니 더 이상 헛수고하지 마세요.”“참, 네놈이 김칫국을 제대로 마시는구나!”성주혁은 희끗한 수염을 유유히 쓰다듬으며, 웃는 듯 마는 듯 말했다.“너 같은 못난 놈에게 내가 왜 설아를 붙여주겠어? 그건 설아를 해치는 것이 아니냐!”성도윤은 어리둥절했다.할아버지의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도대체 어느 정도가 진실인지 곰곰이 생각했다.이때, 도우미가 기뻐하며 와서 말했다.“어르신, 도련님, 둘째 사모님 오셨어요!”차설아가 그 뒤를 이어 로비로 들어섰다.성도윤은 여전히 잘생기고 존귀한 자태를 유지하며 차가운 눈을 들어 무심한 척 바라보았다.그리고... 하마터면 화가 나서 피를 토할 뻔했다.차설아는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성도윤이 그토록 싫어하는 배성준의 아들, 배경수도 함께였다.차갑던 성도윤의 얼굴은 더욱 검게 변해있었다.성도윤은 극도로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어르신을 보며, 합리한 설명을 원했다.하지만 성주혁은 이를 외면하고,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자애로운 얼굴로 두 사람을 향해 손짓했다.“얘들아, 어서 와. 내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다고. 얼른 와서 밥 먹어!”차설아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도 성도윤이 여기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성도윤의 말을 들은 차설아는 화가 나서 폭발할 지경이었다.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차설아는 바로 성주혁에게 말했다.“맞아요, 할아버지. 저랑 경수는 스캔들이 아니라 정식으로 사귀기로 했어요. 절 용서하고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요. 경수는 진짜 저를 지켜주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운명적인 사람이에요.”배경수는 몸을 기울여 차설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은 아주 애틋하고 정열적이었다.방금 차설아가 일부러 성도윤을 화나게 하려고 거짓말을 한 걸 알면서도, 배경수는 아주 감동적이었다.차설아에게 그는 남자친구의 후보에도 들 수 없었다.갑자기 차설아 남자친구의 역할을 경험하게 되니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짜릿했다.성주혁은 몇 초간 정색을 한 후 갑자기 껄껄 웃으며 상냥한 모습으로 말했다.“이 녀석, 할아버지는 당연히 널 축복하지. 그렇지 않으면 왜 너희 둘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겠어?”“이 젊은 녀석이 믿을만한지, 널 잘 돌볼 수 있는지, 할아버지가 봐줘야지. 넌 방금 불구덩이에서 나왔는데 또다시 다른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을 내가 어떻게 보겠어?”여기까지 말한 성주혁은 자기 왼쪽에 앉아 있는 성도윤을 하찮게 바라보았다. 그 뜻은 아주 분명했다.배경수도 맞장구를 쳤다.“장군님, 마음대로 시험해 보세요. 저는 무예에 능할 뿐만 아니라, 랩도 할 수 있어요. 제가 바로 한 소절 불러드릴까요?”말을 마친 배경수는 진짜 랩을 하기 시작했다.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으로 어느 배틀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배경수는 작은 태양처럼 어디를 가든 사람들에게 빛과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모습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항상 규칙을 지키던 도우미도 웃고 말았다.유독 성도윤만 차갑게 앉아 있을 뿐,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싱겁긴!”본격적인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성주혁은 와인잔을 두드리며 말했다.“오래간만에 너희가 이 늙은이의 체면을 세워 함께 식사를 하는구나. 난 우리 설아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네가 우리 윤이와 어떤 사이이든, 난 영원히
성도윤은 표정이 굳어졌다.그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결혼한 지 4년이 되었지만, 같은 테이블에 앉은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함께 식사를 했어도 설아의 입맛 취향이 어떤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난 그런 부질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성도윤은 차가운 눈으로 오만하게 말했다.“부질없는 일이요?”배경수의 눈에는 시종일관 유지하던 나른함이 감출 수 없는 분노로 변했다. “그렇죠. 도윤 씨와 같은 냉혈 인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적이니, 어떻게 다른 사람을 신경 쓰겠어요?”배경수는 성도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날카롭게 말했다. 성도윤이라는 무정한 얼음산을 산산조각 낼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설아 누나의 노력이 안타깝네요. 누나는 도윤 씨의 입맛 취향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매운 건 싫어하고, 담백한 걸 즐기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스테이크 미디엄 웰던이라, 도윤 씨를 위해 스테이크 굽는 법만 100가지 넘어 배웠어요. 그 노력이 정말 가엽네요!”배경수의 불평에 성도윤의 냉엄한 얼굴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기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성도윤은 무의식적으로 한자리 건너에 앉은 차설아를 바라보았다. 마치 눈빛으로 배경수의 말이 진짜인지 묻고 있는 것 같았다.차설아는 굳건히 앞을 응시하고, 곱고 하얀 얼굴은 차가운 듯 차갑지 않은 듯했다.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경수의 말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요.”“도윤 씨의 냉혹함에 비하면 전 확실히 인정이 많은 편이죠. 하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제가 신경 쓰고 있는 분들이니 모두의 입맛 취향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했던 노력이 안타깝지는 않아요. 앞으로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그만이죠.”차설아의 말에 성도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성주혁은 미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설아야, 네가 맘고생 한 걸 알아. 윤이와 재결합하라고 부추기지 않으마. 앞으로 경수와 잘 지내거라. 믿을 만한 사람이니 널
매년 개최되는 ‘글로벌 하이 테크 회의’가 글로리 호텔에서 열렸다.언론사들은 카메라 장비들을 메고 날이 밝기도 전에 호텔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그들이 이토록 열정적인 이유는 두 명의 거물 때문이었다.한 명은 이혼 파문에 휩싸인 해안 8대 가문인 성가의 미래 후계자이자, 성대 그룹의 대표 성도윤.그리고 다른 한 명은 전자 칩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선임 연구개발자이자, KCL그룹의 최대주주인 Y씨.Y씨는 신분이 베일에 싸여 있고, 종래로 공식적인 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데다 성도윤과 특별하게 얽혀있어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다.성도윤과 특별한 인연이라면, KCL 그룹에서 개발한 칩은 성대 그룹에게만 공급해 왔다. 이로하여 성대 그룹은 오늘날 하이테크 시장에서 75%를 차지하는 선두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더욱 특별한 것은 성도윤이 호텔에서 자주 한 남자와 만나는데, 이 남자가 Y씨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전시장은 아주 넓고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여기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Forbes유명 인사에서 활약하는 슈퍼 엘리트이다.지역마다 부동한 회사들이 참가하여 자신의 가장 선진적이고 인기 있는 하이테크 제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차설아는 천신 그룹을 대표해 회의에 참가했다. 이런 신생 기업은 연구개발팀도 없어 유명 브랜드가 모인 글로벌 하이 테크 회의에서 존재감이 떨어졌다. 부스도 작고 외진 곳에 위치하여 업계 종사자들의 따돌림과 차별을 받았다.하지만 차설아는 개의치 않았다. 이번 회의에 참가한 주된 목적은 최신 산업 정보를 얻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녔다.제일 큰 전시장은 당연히 성대 그룹과 KCL 그룹이었다. 호텔의 황금 자리에 한 층씩 자리잡고 있었다.이 두 회사의 전시장 앞에는 문전성시를 이루지 못하여 혼잡하기 짝이 없었다.차설아는 혼신의 힘을 다해 KCL 그룹의 전시장에 비집고 들어갔다.늘씬한 웨이트리스는 현대적이고 기술적인 느낌의 의상을 입고 최신 제품을 소개하고 있었다.“여러분 안녕하세요, 보고 계
“혈기 왕성한 두 남자가 호텔에서 같은 룸에 들어가 아직까지 안 나왔는데 대체 뭘 하고 있겠어요?”사람들은 여기까지 말하고 또 이상한 웃음을 지었다.성도윤과 Y에 관한 ‘스캔들’은, 애초에 업계 관계자가 악의적으로 조롱하면서 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또 일련의 우연의 일치와 함께 사실인 양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그리고, 성 대표가 이혼한 것도 다른 여자와 바람피운 게 아니래. 그 내연녀도 사실은 둘이 작정하고 내세운 눈속임일 뿐이래.”“에이, 말도 안 돼요!”여기까지 들은 차설아는 세계관이 무너질 정도였다.하지만 성도윤과의 지난 4년을 돌이켜보면 말이 되는 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성도윤은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여자와의 스캔들이 없고, 늘 엄숙하다.하지만, 진짜 성적 취향이 독특하다면 그녀와 함께한 그날 밤은 또 무엇일까?차설아는 머리가 혼란스러워 말없이 휴대전화를 꺼내 네이버 창을 열었다.현장에 사람이 너무 많아 검색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차설아는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다 실수로 한 남자의 발을 밟았고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다.“죄송합니다.”차설아는 무의식적으로 휴대전화를 주우려 했지만, 임신 때문에 허리를 굽히는 것이 불편했다.이때, 그녀에게 발이 밟힌 남자가 매너 있게 허리를 굽혀 대신 주웠다.“여기 휴대폰이요.”남자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고, 휴대전화를 차설아에게 돌려주었다.돌려주는 과정에 남자는 차설아가 검색한 내용을 힐긋 보더니, 가늘고 긴 눈동자에는 흥미가 차올랐다.“감사합니다!”차설아는 어색하게 휴대전화를 받았다. 아주 난처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삼십육계 줄행랑이 답이다!남자와 차설아는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둘 다 멍해졌다.“당신!”“너!”두 사람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지훈아, 너일 줄은 몰랐어. 아이돌 하는 애가 왜 여기 있어?”차설아는 남자를 쳐다보면서 반달 웃음을 지어 보이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절 기억하고 있
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서씨 가문 서은아였다. 서은아는 그동안 차설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설아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성철이 있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사에게 돈을 쥐여주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수술을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차성철은 살짝 다쳐도 부서질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서은아는 병실 침대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작은 물건을 차성철 베개 옆에 올려놓고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해.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당신 여동생도 기가 죽어서 나대지 못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박성훈이 와서 당신을 살렸지 뭐야? 성도윤이 박성훈한테 부탁한 거라면서? 정말 어이가 없더라. 보나 마나 차설아가 성도윤한테 부탁한 거겠지. 뻔뻔스러운 년이...”서은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날 탓하지 마. 탓하려면 그 못난 여동생을 탓해. 차설아는 내가 성도윤과 약혼한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성도윤한테 달라붙으면서 날 괴롭혔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오빠인 당신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서은아는 말을 마친 뒤, 감시 카메라를 피해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앉아 있던 차설아는 바람이 포장한 음식을 보면서도 어쩐지 불안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이야. 다른 식당에서 하는 건 눅눅해서 맛없지만 이 식당에서 하는 건 바삭하잖아. 바람 씨가 널 위해서 사 온 건데, 한 입이라도 먹어 봐.”배경윤은 불안해하는 차설아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바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이 식당에 줄을 서려고 아침 일찍 깨어났어. 하지만 스파크가 좋아하는 거라면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사러 가야지.”바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피식 웃었다. 그동안 차설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쯧쯧. 바람 씨한테 설아를 맡겼다가는 뚱보가 되겠어. 한 달 안에 10킬로 찐다는 것에 내 머리카락을 걸겠어.”“스파크는 살이 쪄도 예뻐서 괜찮아. 지금처럼 귀여울 거
배경윤은 박성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박성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데려온 의사라는 말에 성도윤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경계했다.“경윤아, 그러지 마. 박 선생님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분이야.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씨 가문의 은인이 될 분이거든.”차설아는 다시 일어나더니 박성훈한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박 선생님, 죄송해요. 경윤이는 늘 저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는 예민하게 굴거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병원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만나본 보호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반응이거든요. 저는 이해해요.”박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 말고 성 대표님께 고맙다고 해야죠. 저는 수술할 생각이 없었는데 성 대표님이 간절하게 부탁했고 제가 좋아하는 바다낚시까지 같이 해주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바다낚시 내기에서도 졌으니 성 대표님 말대로 수술해야 했어요.”“성도윤이 어렵게 모신 분인 건 알고 있었어요. 나중에 오빠가 깨어나면 인사하려고요.”“잘 생각했어요.”박성훈이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이었다.“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힘들 거예요. 사실 생각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으니 마음 편안하게 먹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박성훈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오후 4시라서 박성훈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배경윤은 차설아가 또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밥부터 먹자.”“괜찮아. 난 배고프지 않아.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오빠가 일어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차설아는 병실 밖에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차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그 나쁜 놈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차설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래도 도움받았잖아.”“아...”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머뭇거렸다. 차설아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고는 목적, 증언, 사건 발생 시간으로 보았을 때 성도윤이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성도윤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꺼냈다가 차설아와 성도윤이 싸우게 된다면 손해 보는 건 차설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성도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설아야, 그저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성도윤을 너무 믿지 마. 성도윤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진심을 드러내지 말고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지?”배경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나도 알아. 지금까지 성도윤을 용서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빠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성도윤이 떠올라서 화가 솟구쳐 오르거든... 성도윤이랑 잘 해볼 생각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의사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수술실을 바라보면서 말했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눈에 핏줄이 가득 서렸지만 차성철이 나올 때까지 쉴 수 없었다. 성도윤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설아의 마음이 아팠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애매모호한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더 이상 그 사람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알지만 항상 경계해야 해. 그 사람이 얼마나...”“알겠어. 곧 수술이 끝날 테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자.”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었다.“그래. 같이 기다려보자.”배경윤은 슬픔이 가득 서려 있는 차
사도현은 턱을 쳐들더니 거만하게 말했다.“내가 바로 배경윤 남자 친구예요.”사도현의 말에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회사 대표가 당당하게 공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뭐?”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 사도현이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예상 못했는지 사도현을 향해 부르짖었다.“사도현, 너 정말 미친 거야?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영 오빠 앞에서 공개하다니... 정말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내 미래의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알려주려고 작정한 거야!’“내 말이 틀렸어? 우리 사귀는 사이 맞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온 첫 번째 날에 어떻게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잤겠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사도현이 피식 웃더니 부르짖는 배경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제야 자신의 것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 그건...”배경윤은 말문이 막혔다. 설명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것 같아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진찬영이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두 사람이 한방에 들어가는 것이 사귄다는 증거라면, 사도현 씨는 배경윤 씨가 아니라 윤설 씨의 남자 친구인 것 같은데요? 윤설 씨 곁을 떠난 적이 없잖아요. 도대체 두 분 중에서 누구의 남자 친구인지 헷갈리네요. 아니면 두 분을 속여서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닐까 싶어요.”진찬영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그러고는 도덕적인 면에서 사도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맞아요! 같은 방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날에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외양간에서 자기 싫었거든요. 그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윤설 씨랑 사도현 씨 사이는 각별했어요. 정성을 다해서 보살핀 여자랑 사귀는 것 같은데 왜 나를 언급하고 난리야! 난 너처럼 미친놈이랑 사귈 바
그 말을 들은 장윤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윤태가 다급히 뜯어말렸다.“집에 갈 정도로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죠! 그런 설정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찬영이도 커플 설정을 원하지 않을 테니 강요할 수 없었거든요. 다들 장난치는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장윤태는 게스트들이 말하는 커플 중 한 쌍이 진찬영과 배경윤임을 확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진찬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장 감독님,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배경윤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개인적인 일로 해안시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 프로그램 촬영하는 동안 정말 재밌었어요. 게다가 찬영 오빠랑 커플로 촬영할 수 있다고 하면 더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해요.”“잘생긴 남자라면 다 좋아하나 보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혼자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장윤태는 배경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재빨리 다른 제안을 했다.“급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곧 연애 예능 촬영이 있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우리 찬영이랑 같이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을래요?”“좋아요!”배경윤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진찬영과 함께 촬영할 수 있다면 무슨 프로그램이든지 무조건 출연할 것이다. 진찬영과 떨어지려니 아쉬웠지만 돌아가서 차설아의 곁을 지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작별 인사를 했다.“배경윤 씨랑 같이 출연한다면 저도 좋아요.”진찬영은 배경윤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진찬영은 배경윤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 마을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배경윤이 있는 곳에 꼭 따라갈 것이다.“그럼 두 사람이 사인한 계약서 말고 다른 계약서를 준비할 테니 이제 만나서 얘기해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으면 이 프로그램 계약서대로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장윤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술을 마시면서 껄껄 웃었다.“안 돼요.”사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배경윤은 너무 바빠서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배경윤
사도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누가 진찬영을 밀어주든지 상관없이 배경윤에게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재벌가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윤설 씨가 사도현 씨한테 빌붙어서 드라마 여주인공 역만 맡는 것처럼요?”진찬영이 말을 이었다.“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사도현 씨랑 같은 줄 알고 섣불리 판단할 수밖에 없겠죠. 더 이상 의미 없는 대화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진찬영이 가마뚜껑을 열어보자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추어탕 안에 청양고추를 넣으니 배경윤이 좋아하는 매콤한 추어탕이 완성되었다. 사도현이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할 때, 진찬영이 추어탕을 옮겨 담고는 주방을 나섰다. 사도현은 불을 피우면서 흘러나오는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두 남자의 대결은 사도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여러분, 오늘 메뉴는 추어탕이에요! 어서 드셔보세요!”진찬영은 환하게 웃으면서 쉬고 있던 게스트들을 불렀다. 배경윤은 터벅터벅 걸어 나와서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진찬영이 해준 밥을 먹어서 기쁘긴 했지만 웃을 힘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진찬영은 직접 국을 떠주면서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고 다시 생각해요. 배경윤 씨를 위해 만든 건데, 한 입도 먹지 않으면 좀 속상할 것 같거든요.”“아, 죄송해요. 생각할 게 많아서 신경 쓰지 못했어요.”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추어탕을 먹기 시작했다.“먹어봤던 추어탕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당연히 그렇겠죠. 추어탕에 진찬영 씨의 사랑이 가득 들어갔으니 맛없을 리가 없잖아요. 우리 같은 구경꾼들은 배경윤 씨가 부러워 죽겠다니까요!”“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직접 미꾸라지를 손질했다니깐요. 보통 정성이 아니에요! 그 여자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맛있는 추어탕을 먹어보네요.”추어탕을 맛보던 게스트들이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진찬영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들으면서 배
윤설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나는 그렇다고 한 적 없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더 알려줄 것도 없고요. 정말 궁금하다면 의심 가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세요.”배경윤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미 배후가 밝혀진 마당에 더 캐묻는 건 멍청한 사람이나 할 짓이었다. “그리고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요. 도현 씨랑 성도윤은 생사를 함께 겪은 형제이니 도현 씨를 멀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도현 씨는 성도윤 편을 들 테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차성철이 수술했다는 것을 성도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게다가 성형외과 의사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윤설은 배경윤의 반응을 지켜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성도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성도윤이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 연관된 일이긴 하지만 그게 결국 성도윤의 일이 되는 거지. 난 사실만 말했으니 아무 잘못도 없어. 배경윤, 이제는 도현 씨 곁에서 떨어져!’“난 성도윤이 그런 일을 벌일 줄 알았어요!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라고...”윤설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모든 것이 성도윤과 연관된 일이라고 확신했고 사도현이 성도윤을 도와주었다고 여겼다. ‘계속 여기에 남아있어서는 안 돼. 얼른 해안시로 돌아가서 설아한테 알려줘야지. 그놈 때문에 또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어! 설아야, 조금만 기다려줘!’주방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은 두 남자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진찬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올린 채 두부를 썰었다. 집중하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있어서 여자든 남자든 진찬영에게 반하고 말 것이다.하지만 부뚜막 앞에 앉아 불을 피우고 있는 사도현은 진찬영을 노려보기에 바빴다. 사도현은 장작을 진찬영의 팔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토막으로 끊이고 불 속에 집어넣더니 차갑게 말했다.“우리 둘밖에 없으니 솔직하게 말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예요? 돈 때문이라면 원하는 만큼 줄 테니 말해봐요. 얼마면 되
배경윤은 윤설이 단둘이 얘기하자는 말에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하지만 이 일은 차설아 친오빠의 목숨과 연관된 일이었기에 윤설의 의도를 알면서도 함정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내 방으로 가서 단둘이 얘기해요.”배경윤은 앞장서서 사도현과 지냈던 방으로 들어갔다. 박지영은 윤설을 방까지 부축한 뒤, 재빨리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윤설은 울퉁불퉁한 방바닥, 구멍이 난 천장과 낡아서 당장이라도 망가질 것 같은 침대를 보면서 말문이 막혔다.윤설은 미묘한 감정이 들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도현 씨랑 이런 방에서 같이 지낸 거예요?”“네. 침대도 푹신하고 공기가 좋아서 잘 잤어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배경윤은 윤설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이런 말을 먼저 꺼낼 줄 몰랐다. 사도현은 배경윤과 같은 침대에서 잤지만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윤설 곁을 지켰다.‘이런 것까지 질투하는 건가?’“쓰레기 소각장 같은 곳에서 도현 씨가 지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요. 도현 씨는 결벽증 때문에 이런 곳에서 자지 못했을 거라고요.”“쓰레기 소각장이라고요?”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렸다.“이 방이 아니면 외양간에서 소랑 같이 자야 하거든요. 이 정도면 꽤 좋은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윤설 씨가 결벽증인 것 같아요.”“도현 씨가 배경윤 씨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맞네요. 배경윤 씨를 위해서 이런 누추한 방에서 자고 더러운 진흙으로 들어가 배경윤 씨를 안아 들다니... 내가 배경윤 씨를 얕잡아 봤네요.”윤설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배경윤은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입을 열었다.“본론만 얘기하세요. 배후가 누구기에 성형외과 의사한테 전화하게 된 거죠?”“말해도 배경윤 씨가 할 수 있는 건 없을걸요?”윤설은 차갑게 웃더니 거만한 눈빛을 하고서 배경윤을 훑어보았다. 배경윤이 목을 치려고 하는 배후는 손을 뻗을 수도 없을 만큼 높은 곳에 있었다.“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 하더라도 알 건 알아야겠어요. 더 휘말리고 싶지 않다면 배후가 누구인
게스트들은 사도현의 표정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불을 피우러 가는 게 아니라 사람을 죽이러 가는 것 같은데요?”옆에서 듣고 있던 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네가 불을 피운다고?”그러고는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너처럼 귀하게 자란 도련님들은 장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잖아. 그런데 불을 피우다니, 네가 듣기에도 웃기지 않아?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주방에서 나오는 게 도움이 되겠어.”배경윤은 불을 피우고 진찬영이 요리할 때 옆에서 도와주려고 했다. 그런데 사도현이 갑자기 끼어들어서 몹시 당황했다.‘사도현은 왜 자꾸 끼어들려고 하는 거야! 찬영 오빠랑 같이 경운기를 타려고 할 때, 찬영 오빠랑 미꾸라지를 잡을 때, 찬영 오빠랑 같이 요리하려고 할 때 계속 방해만 하잖아. 명색이 엔터테인먼트 대표라는 놈이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 거야?’“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불 피우는 건 다 거기서 거기 아니야? 아니면 여자가 옆에 있어야 요리할 수 있다는 건가? 세상에 그런 바보가 있을 리가 없잖아.”사도현은 팔짱을 낀 채 진찬영을 쳐다보면서 배경윤한테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사도현의 의도가 무엇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사도현은 일부러 진찬영을 저격했다.“너 자꾸 함부로 말할 거야?”배경윤은 화가 나서 사도현을 노려보았다. 팬으로서 누군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여우 같은 놈, 여자가 없으면 요리를 못하는 놈이라고 욕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괜찮아요.”진찬영이 피식 웃더니 배경윤의 팔목을 잡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는 배경윤 씨가 옆에서 보고 있어야 안심이 되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그럴 능력도 없으면서 혼자 하겠다고 설치다가 일을 망치던데요?”진찬영은 사도현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래도 사도현 씨께서 불을 잘 피울 수 있다고 하셨으니 믿어야죠. 다들 쉬고 계세요. 다 되면 알려드릴게요.”진찬영과 사도현은 주방으로 들어가서 아무 말 없이 각자 할 일을 했다. 마당에 앉아 있던 배